듣는 사람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한 손낙구 식 강연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의 손낙구씨와는 세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는 책으로, 두 번째는 독특한 인터뷰로 만났다.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책으로 인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20년 가까운 시절 동안 노동 현장에서 뛰어다닌 경험과 심상정 의원이 17대 국회에서 의정활동하던 시절 그의 보좌관을 하면서 획득한 고급 자료가 '쌀집아저씨' 같은 인간미와 적절히 버무려진 '전주비빔밥' 같은 책을 만난 것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책을 읽자마자 '작전'에 들어갔다. 마침 베이징올림픽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금메달"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10개 가까운 글을 썼고 운 좋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도 많았다.
추상적이고 구호적인 목소리를 내는 분들과 부동산 문제의 실상을 잘 모르는 분들, '계급'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10월 20일 신촌 아트레온 토즈에서 열린 손낙구 강연(알라딘 제1회 사회과학 연속특강)에 참석할 것을 망설였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손낙구의 강연회는 <부동산 계급사회>를 면밀히 읽은 독자에게는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강연의 큰 틀은 책의 목차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손낙구 강연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목차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문체와 어감에 천착하고, 책의 강점을 어떻게 드러낼지 이 궁리 저 궁리를 다 해본 나 같은 광팬에게는 손낙구의 문어체에서 풍기는 매력을 넘어서는 매력을 구어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미친 놈이 엄청나게 큰 봉다리를 사서 하늘에 펼쳐놓고 '이제부터 숨쉬고 싶으면 나한테 돈을 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런 놈은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손낙구 씨는 상대방의 특징, 질문의 내용, 이해의 정도, 분위기에 따라서 표현과 예시를 달리하는 카멜레온 같은 강연 기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법이라기보다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가지게 된 일종의 직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설명하면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손낙구다. <부동산 계급사회>는 중학생이 이해될 만한 정도로 맞추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그에게 '대학원' 이상의 질문을 해보라. '대학원' 이상의 답변을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낙구 씨는 대중강연의 문법에 맞게 곳곳에 '웃음포인트'를 집어넣기도 하고, 쉬어가는 페이지를 집어넣기도 하면서 2시간 반 동안 방청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주택의 36%를 정부가 소유한다. 집없이 서러운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여러분이 잘 아는 히딩크의 나라에서는 한 집에 대해서 30년 동안 계약을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30년 동안 '방 빼!'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데, 수명이 낮은 사람은 그 안에 죽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손낙구 식 언어의 묘미는 씹는 맛이 달라서 좋다. 왜 일찍이 '저자'로 데뷔하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정도다.


결론은 숫자도 문자도 아닌, 그저 '휴머니스트'

그날의 강연 중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메시지는 바로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이다. '집안심률'이라는 개념도 무척 중요하고 재밌지만, '최저생계비'를 부동산에 적용한 '최저주거기준'은 누가 들어도 무릎을 탁 칠 만한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가리킨다. 예컨대 침실을 기준으로 할 때 부부가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한방을 사용한다면 최거주거기준에 미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들과 딸이 장성했지만, 역시 부모와 한방에 거주하는 경우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달하는 가정은 우리나라에 1,000만 명 정도 된다. 여기서 지하, 옥탑방, 움막, 비닐하우스, 동굴 등 '비상식적'인 주거생활을 하는 인구도 160만명이 된다. 참고로 이것은 2005년의 통계이다. 그 동안 자살자 비중이 엄청나게 늘었으니 비상식적 주거생활자 역시 기하급수로 늘어났을 것이다.


▲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재인용한 2005년 통계청 자료이다. 1과 같이 수도권에 지하(반지하)가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는 붙어 있어야겠고, 먼 곳으로 이사갈 처지가 안 되는 사람들은 박정희가 방공호로 만들어놓은 지하로 내려갔다. 2는 판잣집,움막,동굴 등 수백, 수천 년 전의 생활양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10만명이 넘는다는 것을 가리키는 충격적인 통계 자료다. 부산일보 특별취재팀이 두 달 간의 심층취재로 이 자료가 사실에 부합함을 증명해 주었다.


<부동산 계급사회>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연회에서는 '숫자'가 많이 등장했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정리를 해주었다.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도, "지구상 생명체 중에서 땅을 딛지 않고 살 수 있는 생명체가 하나라도 있나"라는 질문을 결론으로 삼았다.

가장 짠한 장면은 뒤풀이 자리에서 들었다. 남양주 지역에 강연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동향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고 말했다. 옛날의 추억을 하나 둘 이야기하다가 동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적어도 대여섯은 되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남양주로 밀려간 셈이다. 손낙구 씨는 "그들은 밀려났고, 나는 그나마 남아 있다"고 말하며 남은 담배를 마저 피웠다.


번외편 - 독하게 물어봤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가 있었다. 일부러 손낙구 씨 앞에 앉아서 나는 작정한 듯 질문을 했다.

"책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차선이나 차악을 상정한 것 같다. 선생님이 생각할 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얼마나 되나?"

- 손낙구 씨는 차분한 어조로 답변을 했다. 3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어쨌든 유지되든가, 공황적인 상황이 오든가, 아니면 일본처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든가이다. 여기에 또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IMF처럼 대기업 괴물들이 중산층을 학살하면서 폭식을 하거나, 아니면 아주 우연적으로 체질이 변화하거나. IMF처럼 근본적인 변화도 없으면서 양극화는 심화시킨 형태로 가는 것이 최악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나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부동산 거품 붕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헐값의 집을 정부가 사들여 서민들에게 제공해줄 물량을 확보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쯤 되면 정부도 구제금융에 판돈이 다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시기가 아닌가 한다. '주거권'이라는 것은 프랑스나 유럽 국가들처럼 밑바닥에서부터의 도도한 투쟁의 결과로 획득되었지, 우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연적으로 주거권이 확보된 것과 유사한 사례가 있었나?"
- 수십년 동안 노동계에 머물러서 '밑바닥부터의 투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몯느 역사가 '밑바닥에서부터의 투쟁'과 같이 정석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필연성과 우연성이 공존하는 것이 역사 아닌가. (실제로 한국의 현대사는 온갖 역설로 점철돼 있다. 이승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악용한 공천제와 지방자치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하면, 사람들이 오랫동안 싸워가며 19세 투표권을 쟁취했지만 실제 선거에서 19세의 투표율은 미미한 것이 현대사의 역설을 가장 강하게 증명한다 - 글쓴이)




▲ 뒤풀이까지 참여한 독자를 위해서 손낙구 씨의 딸이자 발바닥 그림작가인 해인이에게 발바닥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해인이는 책에 너무나 넣고 싶었지만, 만화적이라는 이유로 캐스팅되지 못한 깜찍한 발바닥을 선물했다.


- 작가와의 만남 1기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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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10-2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잘읽었습니다...우리 지역에서도 꼭 한번 초청했으면 좋겠네요..^^

승주나무 2008-10-23 21:46   좋아요 0 | URL
네~ 넉넉한 인심을 가진 분이라 꼭 응해 주실 겁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우리나라 인구는 1,000만

200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지하,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동굴, 움막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160만명이 넘는다.
그 동안 양극화는 더 심해졌을 테니 200만명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의 저자 손낙구 씨는 '최저생계비'를 주거에 적용한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즉 "인간의 최소한의 품위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을 최저주거기준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침실을 기준으로 할 때 부부가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한방을 사용한다면 최거주거기준에 미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들과 딸이 장성했지만, 역시 부모와 한방에 거주하는 경우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기준이지만, 우리나라는 최저생계비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인구는 1,000만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의 인구만한 수가 제대로 된 주거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런 인구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여기서 지하, 옥탑방, 움막, 비닐하우스, 동굴 등 '비상식적'인 주거생활을 하는 인구도 160만명이 된다.
손낙구 씨는 비상식적인 주거생활을 하는 160만명을 구제하기 위해서 얼마가 드는지 실제로 계산을 해봤다고 한다. 11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재산으로 추정되는 13조(현 공식 주식보유 2조원+이건희 회장 소유로 밝혀진 전·현직 삼성 임원 11명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 가치 2조 5,000억원+삼성증권 등 차명계좌 700개 2조원+나머지 600개 차명계좌 3조 2,000억원+고 이종기씨의 삼성생명 주식 가치 7,000억원)보다 적다. 오죽했으면 손낙구 씨를 찾아간 한 목사가 이건희 회장에게 가서 십일조라도 달라고 하자고 말을 했겠나.


투기 목적의 건설사 토지 6조을 공적자금으로 사들이는 돈이면 80만명이 구제된다

정부가 건설업체의 투기 의심성 토지 6억원 어치를 공적자금으로 사들이는 등 총 9조원 이상의 지원책을 내놓기로 했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럴해저드를 제한하기 위해서 부실 건설사는 퇴출시킨다는 방침인데, 사실상 모든 건설사가 관례상 투기를 조장하고 방만경영을 해온 것이 사실인데 이들에게 혈세를 대폭 제공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된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토지공사는 토지채권을 발행해 3조원을 건설사들에게 지워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언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긴다고 말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시장개입에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입을 하려면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상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160만명의 국민들을 위해서 사용해야지 탐욕에 젖어 있는 건설사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한때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 안건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은행 이용자들의 손실보전을 위한 대안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큰형님격인 미국조차도 일반 예금자의 이익을 보장해주려고 하는데, 그 동생격인 우리나라는 일반 국민의 귄익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제학자 장하준은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부키)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원의 재분배 비용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자원이 재분배되는 데는 인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정부는 일단 기업을 살리고 나서 이를 통해 재분배한다는 생각인데, 재분배라는 말은 말 그대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번에 건설사에 퍼주는 9조원도 어떤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단지 건설사가 대통령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요구하기 쉬웠던 것일 뿐이다. 이에 비하면 국민은 대통령과 얼마나 멀리 있나? 대통령은 벌써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 내 세금 9조원을 건설사에 쏟아부으면 국민인 나는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제발 설명을 해달라.


<부동산 계급사회>, 손낙구, 후마니타스, 378쪽, 15,000원

※ 이상의 글은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책<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를 참조했습니다. 이 책은 부동산 문제에 관한 최초의 실증적인 분석과 대중성을 갖추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의 완충장치를 모두 풀어헤쳐 투기꾼들과 함께 대한민국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이 책을 꼼꼼히 읽고 부동산통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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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품 수집 할머니의 뒷모습이 쓸쓸하네요. 할머니는 지금 일방통행 길로 가고 있습니다.


사무실이 이사 때문에 분주합니다.
하루에 폐품 수집하러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꽤 됩니다.
그 중에 한 할머니가 이사가는 사정을 아시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번 오셨습니다.
버릴 게 무엇인지 몰라서 폐품을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죄송해서 감귤 두 개를 드리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즘 폐품 일 하시는 분이 많아서 사정이 안 좋아지셨다고 들었어요?"
- 말도 마. 예전의 반도 안 되는 것 같아
"요즘에는 2~3만원 정도 버신다고 들었어요."
- 2만원은 무슨. 1만5천원 벌어도 잘 번 거야. 나야 자식들한테 짐 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을 하는 거지만.. 예전에는 3만원 정도 벌었던 것 같아. 폐품 일 하는 사람이 많은 데다, 값도 많이 떨어져서 쉽지 않아.
"킬로그램에 얼마 정도 하나요?"
- 킬로그램당 60원.
"이 일 하다 보면 힘든 일도 많으실 거 같아요."
- 이 일에도 상도라는 게 있어. 폐품을 가져갈 때는 주인한테 일단 허락을 얻어야 하지. 그런데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회사의 서류를 그냥 박스채 가져가는 일도 많아. 자주 가던 회사에서는 그것 때문에 담당하시는 분이 얼굴이 완전 노랗게 되었더라고. 그 후로 그 회사에서 못 들어오게 하잖아.
"그러면 그런 데 또 못 가시니까 수입이 또 줄어들겠네요."
- ......

얼마 전 신문에서 기자가 폐품 수집체험을 하고 나서 쓴 르포 기사를 읽었습니다. 특히 무가지 회사에서 듣기 민망한 욕을 먹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폐품으로 팔려고 쌓아 둔 무가지를 훔쳐갔다느니 하면서.
저는 예전에 시사IN 창간을 도우면서 창간호와 기념품을 거리에서 돌려봐서 길거리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설움을 잘 압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폐품수집하시는 분들이나 전단을 돌리시는 분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분들도 당당한 시민이므로 존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사무실에 폐품을 수집하러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존경심이 들 정도로 인사성이 밝으시고 상도를 지킬 줄 아는 분들이라 제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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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13일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김연수의 신작 소설 출간기념 낭독회(북살롱)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사운드트랙>이 있는 소설을 만났다. 북살롱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왔고 김연수는 여섯 쪽이나 되는 단원을 뭉텅이로 낭송하는 기술을 뽐냈다. (김연수 낭독회에서 들었던 음악이 듣고 싶은 독자들은 김연수 블로그에서 <아키라디오>를 클릭하면 된다) 독자들과 함께 한 낭독회는 시트콤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큰웃음'을 선사했다. 김연수는 남은 장작을 땔감으로 쓰듯 연변에서 품고 살았던 사진집과 자료집을 행운의 독자에게 선사했다. "소설이 다 끝났으니 제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요"라는 말과 함께. 선물을 받지 못해 아쉬운 독자들은 김연수의 목소리를 군불 삼아 '밤의 노래'를 되살리려 애썼고, 나는 지금 김윤아의 '야상곡'(夜想曲, 사운드트랙 두 번째 수록곡)을 들으며 다리 잘린 여옥이(김해연의 애인)를 회상한다. 
 


▲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예스24 북살롱에서 김연수는 신작 <밤은 노래한다>의 구절을 사운드트랙과 함께 낭독했다. 김연수는 독자와 함께 하는 낭독을 몹시 좋아한다. 낭독을 하면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1930년대가 아니었다면 등장할 수 없었던 인물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나는 '1930년대'라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1930년대는 현대사에서도 잘 소개되지 않는 대목이다. 1930년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대륙에 대한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이들은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봉천(奉天; 현 瀋陽) 외각의 류타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滿鐵)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측 소행이라고 트집잡아 32년초까지 거의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같은 해 3월 1일에는 일본의 괴뢰국가(傀儡國家)인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하여 만주를 일본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괴뢰국가 수립 이후 전방(동만, 즉 간도)과 후방(조선)의 항일연합투쟁을 두려워한 일제는 '간도(間島)에서의 조선인 자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민생단'을 창설해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민족배타주의에 빠져 조선인을 탄압할 빌미를 제공했다. 때문에 항일 유격근거지 내에서 조선인이면 일단 민생단의 스파이라고 한번쯤 혐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도 전역에서 민생단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반민생단투쟁이 대대적으로 전개돼 최소 500여 명의 한국인 항일운동가들이 체포·살해되거나 도망가야 했으며, 많은 하부조직들이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와 중국 공산당, 심지어 같은 조선인에게 공격을 받게 된 조선인들의 기막힌 사연과 그 잔인한 시간을 수진무구하고 별볼일 없는 청년 김해연이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소설의 이야기틀이다.

김해연이라는 이름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과 본인의 이름 김'연'수에서 따온 거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김해연'이라는 관광가이드를 통하지 않고는 이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김해연이라는 인물이 별로 맘에 내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펀지처럼 사랑에도 잘 젖고 혁명에도 잘 젖는 듯 보이지만, 반대로 두 가지 모두 제대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김연수는 "김해연이라는 인물은 바로 현대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되는 영화 <모던보이>의 이해명처럼 탄탄대로를 달리며 부르주아의 모퉁이에서 별 유감없이 살아가는 만철의 '드문' 조선인 기사로 일하며 '이정희'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정희가 사실은 중국공산당의 당원으로서 첩보활동을 하고 있는 요원이었던 것이다. '이해명'이 사랑한 '조난실'과 비슷하다. 조금 더 오래된 영화를 원한다면 <플래툰>의 크리스 신병처럼 젊은 시절의 번민을 이겨내기 위해 살점이 찢기고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적군보다 더 두려운 동료들의 전쟁을 견뎌야 하는 잔인한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 사람(김해연)은 '아이'고 '소년'이다. 사랑을 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세상이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며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 김연수의 인물평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와 우리들'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김연수는 1930년대의 다양한 인물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공산당, 중국공산당, 국제주의자, 민족주의자, 친일파, 난봉꾼, '이상' 같은 아웃사이더 등 시대가 만들어낸 온갖 사람들이 살아가는 1930년대를 끝으로 김연수의 이분법적 사고와 결별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분법적 사고로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1930년대를 살아가는 '김해연'의 상황이다.  


▲ 소설을 쓰는 내내 품에 안았을 것 같은 사진자료집에 손수 사인을 해서 독자에게 선물했다. 김연수의 선물을 받은 독자 3명은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소설가가 애착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애착은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내가 애착하는 사람은 고생고생하면서도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지도 못하고 누군가 기억해주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소설가는 이들의 인생에 묘하게 끌린다."

힘없는 약자와 기억될('기억할'이 아니라) 가치조차 없는 군상들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가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소설가의 펜끝에서 되살아난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선망의 눈빛으로 본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다. 역사책 속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역사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우리들은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 틈으로 소설이 들어온다. 소설은 역사가가 쓰기 싫어하는 것을 다룬다.

서금원의 바이올린은 실명하기 전 그가 만들었던 사제폭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그 가락에 맞춰 혁명가요를 부르며 학교 마당을 빠져나갔다. 지난 몇 주 동안, 반민생단 투쟁을 거치면서 모든 일에 소극적이었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들 날창 하나면 38식 보총을 가진 적군 10명쯤은 상대할 수 있다는 듯 기세가 동등했다. 박도만은 적이 찹잡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반면에 여옥이는 벌써 부녀대원 사이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밤은 노래한다>, 256~257쪽

항일전설집에서 연길작탄(깡통에 탄약을 넣어 수류탄처럼 터지게 만든 폭탄)을 만들어 혁명에 큰 보탬이 되었다던 송원금의 화신인 서금원을 비롯해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행동들과 넘치는 자신감은 꽤나 역설적이다. 작가는 매우 공력을 많이 들인 대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한 듯 자세히 설명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그런 것(혁명 따위)을 믿었더라면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무척이나 탐이 났다는 소설의 제목 <사랑하라, 희망없이>를 예로 들었다. 소설의 결말과는 별개로 이곳이 자신이 도달한 지점이라고 김연수는 고백했다. 이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에 했지만,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쓰는 동안 도대체 자신이 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 몇 번이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못 상투적인 고백 하나를 더 보탰다.

"제 인생의 긴 나날이 이 책에 묻어 있어서 특히나 정이 가는 책이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이라는 둔탁한 팻말을 만들어 그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작품에 헛된 의미를 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초에는 '현대사'나 '현실',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소설가의 관점을 부여하려 하였지만,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어린애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김연수를 읽는다면 독자인 나도 어른이 될 방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 몹시 침울하고 멍한 듯하면서도 한 곳을 분명히 주시하는 듯한 어두운 표정의 남자는 어린애에서 어른으로 가는 잔인한 여행의 길잡이 김해연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소설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과 작가 본인의 이름 '연'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김연수는 이 소설을 집필하며 두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말했다. '믿는다'와'혁명'이라는 것은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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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류학에 '빠진 고리'(missing link)라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유인원과 인간의 중간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생물이 있다는 가정 하에 생겨난 상상의 응고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했던 '고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빠진 고리'라는 별칭을 쓴 것이다.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있는 베르베르 베르나르는 '빠진 고리'라는 주제로 <아버지들의 아버지>(열린책들)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어버이날 아버지에게 선물했다가 한참 뒤에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미 흘러간 옛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순수-참여문학 논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문학이 현실에 개입해서 모순점들을 파헤치고 싸우는 전투병 역할을 하려는 게 참여문학의 목표였다. 물론 요즘은 '참여문학'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논쟁처럼 순수문학이 승리했다기보다는 참여문학의 수준이 봐줄 만한 정도가 아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준이 과도하게 높고 금욕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해야 하는데 인간으로서 이를 감당할 리 만무하다. 

가공의 작품이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고도의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바에 한해서, 세계 문학사상 현실을 멋지게 변화시킨 사례가 두 번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의 <엉클 톰스 케빈>(엘리자베스 비처 스토우)과 프랑스의 <파리의 노트르담>(빅토르 위고)이었다.

1852년 3월 엘리자베스 비처 스토우라는 여류작가가 쓴 <엉클 톰스 케빈> 이라는 한권의 소설이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예들의 비참한 상황을 쓴 이 고발소설은 비인도적이고 반인간적인 노예제도의 폐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파리의 노트르담>(1843년) 은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당시에는 중세의 예술에 대한 관념이 매우 불완전했는데,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대의 건축물을 미화, 보존한다는 핑계로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중세 사회와 그것에 의해 창조된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관해서 구체적이고 생생한 관념을 독자들에게 심어줌과 동시에 이를 존중해줄 것을 간청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옛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급기야 노트르담의 성당 역시 1850년 르 뒤크(Violet le Duc)에 의해서 복원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 <실미도>가 흥행에 성공하자 '71년 실미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인권유린과 법률 위반 여부, 국가 책임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김연수의 신작 소설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이야기하면서 엉뚱한 작품들을 사례로 든 까닭은 이 소설 역시 현실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았으며 이 책의 배경이 된 1930년대 초반의 '민생단 사건'으로 박사논문을 쓴 한홍구는 사건에 감춰진 말 못할 사정과 상황논리, 공포와 욕망 등은 이미 역사서술의 경계를 벗어나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현대사의 '빠진 고리'를 채워넣는 기능을 한다. 작가가 의도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 때부터 김연수를 읽기 시작했는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역시 1991년 여름 이른바 '5월투쟁'이 끝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의 분열된 시선으로 역사적 기록의 틈새에 박힌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었다. 김연수의 소설이 여타 다른 소설처럼 기발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으면서 마니아의 층을 두껍게 하고 있는 이유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다'라는 상투적인 언어로 역사서술의 한계를 표현하듯이 역사 서술은 주관과 이해관계라는 웅숭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기득권'이라는 소유자가 엄격하게 있기 마련이지만, 소설은 '형식'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이런 훼방꾼들이 차단된다는 점에서 현실을 노래하기에 적당한 언어다. 단, 노래를 하는 작가는 형식의 높은 장벽 위에 이미 올라설 만큼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김연수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것은 몹시 민망하지만, 김연수의 신작은 최소한 그런 수준에 도달했다는 느낌(혹은 착각)을 주기 충분한 몇몇 군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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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1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씨의 작품은 여행할권리와 함께 요 책 딱 두권 봤는데 앞으로 계속 주목해야 할 작가임에는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승주나무 2008-10-16 16:58   좋아요 0 | URL
저도 여행할권리와 네가 누구든..부터 봤는데~ 저랑 맞는 작가인 것 같아요..진지한게 ㅎㅎ

수양버들 2008-10-1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
표지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