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한 번쯤 해본 놀이가 바로 '천재 놀이'다.
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천재들은 천재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을까가 무척 궁금한 거다.
나도 물론 그런 놀이를 해봤다.

도스또옙스끼는 "천재란 지금까지 지어진 언어의 탑에 '새로운 언어'를 얹어놓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도스또옙스끼의 '천재론'을 들어보면 정말 천재들은 천재에 대해서 그다지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매우 분명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보들레르'에 가면 그러한 점이 더욱 강력해진다. 보들레르의 말을 들어보자.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꿈꾸는 알바트로스> 중에서

요즘 내가 주목하는 '천재'는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당대는 물론 50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사랑을 빼앗겨본 적이 없는 행복한 작가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자랑으로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를 평생 동안 연구해온 김정환 시인은 셰익스피어가 '천재'라기보다는 '민첩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말이다. 김정환 시인에 의하면 '천재'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당대에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김정환 식 '천재'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스피노자와 니체 정도가 되겠다. 스피노자는 평생을 탄압과 협박 속에서 살면서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지도 못했다. 니체는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결국 정신병 속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당대에도 대중적 사랑을 받았으며, 대중적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문학적인 단계로까지 끌어올린 공로가 인정된다고 한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경력을 보면 눈치챌 수 있다. 극작가, 배우, 연출가, 극단 운영가로서 매우 다양한삶의 궤적을 그려왔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대를 읽어내는 감수성이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때문에 빌 게이츠는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21세기형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김정환 시인은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 꽃》《해방 서시》《우리 노동자》《기차에 대하여》《사랑, 파티》《희망의 나이》《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텅 빈 극장》《순금의 기억》《김정환 시집 1980~1999》《해가 뜨다》《하노이 서울 시편》《레닌의 노래》《드러남과 드러냄》등 20여 권의 시집과, 소설 《파경과 광경》《세상 속으로》《그 후》《사랑의 생애》, 산문집 《발언집》《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의 할 말 안 할 말》, 평론집 《삶의 시, 해방의 문학》, 음악 교양서 《클래식은 내 친구》《내 영혼의 음악》, 문학 창작 방법론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의 일곱 장》, 역사 교양서 《상상하는 한국사》《20세기를 만든 사람들》《한국사 오디세이》등이 있으며, 《더블린 사람들》《셰익스피어 평전》 등을 번역했다. 2007년 제9회 백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번역 1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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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감춰진 감시와 통제의 실체



▲ 책을 보다가 한용운 시인의 사진과 만났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기습을 당한 것이다. 사진은 당시 '염라장'이라고 할 정도로 악명높은 장치였는데 이를 통해 수많은 활동가들이 범죄인 취급을 당했다. 사진 하단에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이 보이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국가보안법'이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라는 책은 단순히 경성 일제 치하의 사진과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역사에 박힌 사진'이거나 '사진에 박힌 역사'의 이야기다.
나는 처음에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아내의 디카를 혼자 쓰다시피 하고 있다. 상이 나에게 와서 인사하는 게 좋고, 사진을 뽑을 때 사진이 나에게 점수를 주는 것 같아서 긴장되기 때문이다.

여권사진을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규정이 자못 복잡하다. 귀는 드러내야 하고, 입은 머금어야 하고, 흰색 의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눈동자는 선명하게 보여야 하고... 이런 시시콜콜한 규정까지 다 정해놓고 있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의 저자는 '사진'에 담겨 있는 특성인 '객관적 표상'은 사진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국가기관 같은 외부에서 규정될 때가 많다고 분석했다. 철저히 관리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사진의 규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진은 정치적이다. 1970년대 도입된 주민등록증 제도는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탄생했다. 시,도민증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신분 확인이 필요해지자 발급된 것이다. 하지만 사진의 정치학이 가장 왕성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역시 일제 치하다.

우리 민족의 거목처럼 존경스러워 보이던 한용운 선사(시인)가 범죄인처럼 측면과 정면사진 속에 갇히고 아래 범죄사실이 적시된 자료를 보는 마음이 참으로 혼란스럽다. 갑자기 거인을 소인처럼 만들어버린 것은 바로 '사진의 마술'이다. 나와 한용운 선사 사이에서 '사진'은 마치 유리벽처럼 작용하는데, 나는 관객의 입장이며 사진의 주인은 아니다. 한용운 선사 역시 사진의 주인이 아니다. 사진의 주인은 일제다. '죄인' 한용운을 찍은 일제에게 한용운은 한낱 범죄인이거나 관리대상일 뿐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나 지도자, 사상가, 지식인들은 사진이라는 1차 감옥에 갇혀야 했던 운명이었다. 일찍이 사진의 효율성과 기능을 알고 있던 일제로 인해서 우리들과 사진과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염라대왕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사진'


▲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의 수형기록표, 1919년(사진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진은 일찍이 경찰 행정에서 효용가치가 '발견'되었다. 요시찰 인물로 분류된 사상 운동가나 독립운동 인사들의 감시와 검거를 위해 사진이 활용된 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는 '염라장'(閻羅帳)이라는 명칭이 증명한다. 염라장은 사진이 첨부된 요시찰 인명부나 사진첩을 가리키는 이칭이다.
1929년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사상운동자 명부 작성"에 수집된 사진만 2천여 장이며, 1920년 7월부터 1935년까지 전과자의 범죄 수법과 지문, 그리고 사진을 모아놓은 자료는 35만 4,736매에 달한다.

사진이 부착된 주민증이 없는 사람은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가 내려간 적도 있었다. 1932년 만주국을 세워 그 일대를 통치했던 일제는 비적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만주 장백현에 거주하는 수만 명에 이르는 이주 조선인들에 대한 집단적인 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게 된다. 장백경찰서가 1947년 7월 1일 배포한 포고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주민증은 현내 거주자 는 전부 가질 것, 만일 주민증 없는 자는 비적으로 인정하여 즉시 총살함
2. 조선인, 만주인 남녀 16세 이상은 전부 주민증 본인 사진 2매씩 첨부해서 당자에 7월 말일내로 제출할 것, 거주지가 불분명하거나 독신으로 있는 자는 신원을 조사한 후 발급할 것.


장백현 내에 이주한 동포는 2만6천명이었다.

사진은 그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행위 자체에서도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사진 촬영의 금지를 정해놓은 법률만 해도 요새지대법과 군기보호법, 국가총동원기밀보호법 등으로 다양했다. 군기보호법은 사진 촬영을 광범위하게 규정해놓은 법이다. 이 법은 육군형법(시행령), 해군형법(동 시행령), 해군치죄법, 육해군법회의사소 재판강제집행법, 육군군인속위경죄처분예, 해군군인군속위경위처분예, 계엄령, 군용전신법 등 일본에서 만들어진 다수의 법령들과 함께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 때의 법 시행절차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데, 일본에서 법률이 제정되면 식민지 조선에 자동으로 시행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군기보호법은 군사시설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금지 법령이어서 일반인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는데, 사실상 조선의 모든 영토를 실질적인 제한구역으로 설정한 법률이 바로 '국가총동원기밀보호법'이다. 요새지대가 아닌 지역의 철교, 항만 시설 중 특정 지점 등의 촬영도 금지되어 점차 한반도 전역이 사진 통제 구역으로 변해가게 된다.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해당 구역에서 사진 재료를 구매하기만 해도 법에 저촉되어 제재를 받았고, 레닌의 사진만 소유하거나 집에 걸어놓아도 압수하는 등 사진의 촬영행위, 재료 구매, 배치에서부터 사진 규격에 이르기까지 사진은 통제와 감시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에 담겨 있는 감시와 탄압의 문맥을 비틀면 '공포'가 읽힌다. 그만큼 당시 조선의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와 사람들은 사진을 염라대왕보다 무서워했다면, 사진으로 이들을 관리하려 했던 일제의 공포심은 어떠했을까?

철권통치와 탄압을 일삼는 자들은 겉으로는 무서운 표정을 짓지만, 마음 속에 꽈리를 트는 공포를 지우지 못해 더욱 악독하게 달려들기 마련이다. 사이버 모욕죄로 온라인을 통제하고 방송을 손아귀에 넣고, 사법권을 남용해 시민단체를 깔아뭉개려는 이명박 정부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깊은 공포심이 또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렵다. 이 공포심에서 일제의 향기가 솔솔 올라온다.

참 사진 하나로 별 이야기를 다 꺼낸다.


▲위 글은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를 참조했다. 이 책은 사진 한 쪼가리를 가지고 '사진에 박힌 우리의 근대는 어떠했나?' 라는 물음은 근대의 기원을 찾으려는 속 깊은 작업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탐색해봄으로써 우리들의 '근대'를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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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공판(일명 '언소주 재판')에서 롯데관광의 증인이 피고측 사람들으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받았다며 증언을 거부하는 이른바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언소주의 회원으로서 당일 재판소에서 언소주의 당사자들을 일일이 취재해 전모를 밝히고자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려고 하였으나 한쪽으로 치우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 블로거 주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현장의 재구성

사건의 최초 발단은 롯데관광 증인과 50대 언소주 여성 회원 간에 벌어졌다.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언소주 50대 여성회원은 재판도중 잠깐 밖에 나와 다음 증언을 대기하고 있던 롯데관광개발 광고담당 반모씨에게 웃으면서 “롯데에서 나오셨느냐”고 먼저 인사를 건넸고, 롯데관광의 이미지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와 여행업계의 생리나 관광업계의 현재 시장동향에 대한 대화를 서로 정중하고 편안하게 나누었는데 증인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 것은 바로 그 다음이다.
증인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발을 꼰 상태에서 의자에 반쯤 누워 발을 쭉 뻗고 있는 자세였고, 50대 여성회원은 그 앞에 서서 이야기 하는 도중 가방을 추스리다 실수로 증인의 무릎에 손이 닿자 "야, 어딜 건드려!"라고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고 한다. 여성회원에 따르면 증인이 바로 직전과는 너무 다른 태도를 보여 당혹스러웠지만 애써 무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인은 그 후에도 두 번이나 "어딜 건드려!"라며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여성 회원은 “왜 갑자기 반말을 하세요?”라고 반문했고 마침 법정에서 나오던 남성 회원이 그 상황을 보고 “왜 반말을 하세요”라고 여성회원을 보호하고 나서자, 증인은 “내가 반말 하면 안돼? 내 맘이야!”라고 언성을 높이며 회원들을 자극했다. 

뿐만 아니라 증인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회원에게 "왜 쳐다봐"라고 언성을 높이며 자극하자 그 회원은 “너 말조심하라. 아무한테나 반말하고 그러지 마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그  증인은 “내 맘이다. 이 새끼야”라고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이에 흥분한 회원이 증인의 몸을 밀치려는 액션을 취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으나 다행히 다른 회원이 중간에서 몸으로 두 사람 사이를 막아 불상사는 없었다. 여기까지가 신문지면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이며 그 다음은 신문지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증인이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며 증언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증인한테 뺨 맞고 신문에게 두 번 맞다



위 사건은 거의 모든 신문사에서 대서특필됐다. 신문들마다 사건 자체의 뼈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논조는 조금씩 다르다. 세계일보,연합뉴스,쿠키뉴스, 아시아경제, 뉴시스 등은 이 사건을 '소동'으로 이해했다. 파이낸셜뉴스는 '논란'이라고 표현했다. 신문사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지만 '소동'과 '논란'은 무게감이 다르다.

증인과 피고측 방청객들의 주장을 비교적 균형감 있게 다룬 언론사는 머니투데이와 쿠키뉴스 정도다. 나머지 언론사는 모두 '증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다가 퇴정당했다'는 식의 표현을 쓰고 있는 데 반해, 두 언론사는 방청석에 있던 한 여성은 증인의 위증 의혹을 제기한 대목과 "재판장이 왜 한쪽 의견만을 듣느냐"고 항의한 대목을 상세히 다뤘다. 특히 머니투데이는 법조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민감한 문제라 재판 관계자들이 순간적으로 흥분해 발생한 일 같다", "이런 사안일수록 양측이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도하는 등 이 사건에 대해서 발빠르고 성실하게 취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내용을 보면 증인의 증언 내용에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증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다가 퇴정당했다'는 표현은 '보도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 직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단 후에 "증인으로 나온 피해 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재판을 두 번 참관했던 사람으로서 재판부가 증인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에 적극 찬성한다. 

예컨대 문제의 발언으로 재판정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롯데관광 반모씨는 80킬로그램정도의 건장한 체구였으며 같이 출석한 롯데관광 소속 증인 서 모 씨는 위 반모대리는 평소에도 다혈질이라서  여러차례 질책했다는 증언을 했을 정도다. 언소주에는 여성 회원들이 많은데, 이번 사례처럼 방청한 회원들도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특히 재판정에 출석한 증인들은 방청객들과 피고소 회원들을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몇 마디 나누고 싶어도 마음의 벽을 닫아버려서 한마디도 건넬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증인과 방청객을 격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28일 2차 공판 때도 재판부는 검찰과 예상문제를 교환한 증인을 법정으로 호출해놓고도 필요한 답을 듣지 못한 채 퇴장을 시켜버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사들의 보도와 같이 증인의 신변보호라는 특정 관점뿐만 아니라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증인관리 부분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사항이다. 
 


▲ 언론사 중에서 '경향신문'은 이번 사건을 보도했다가 사실확인 후 기사를 삭제했다.



언소주 내부 "우리가 너무 경솔했다"는 반응

언소주는 이날 운영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상정하고 의견을 공유했는데, 방청한 회원으로서 행동이 경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이 초미의 관심사이며 언소주 자체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조그만 행동이라도 조심하지 못했던 점은 옳지 않다는 날선 비판이 제기됐다.
롯데관광 증인과 함께 언론에 보도된 해당 회원은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사과했다. 그는 "제가 너무 경솔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언소주가 현재 재판에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도 도덕적 우위를 저버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만약 롯데관광 증인처럼 위압적인 태도로 나온다거나 폭력을 사용할 경우 맞대응하기보다는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언소주는 롯데관광 증인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총력을 다해야 할 부분을 분명히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언소주 회원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인지 몸소 체험했다. 우리들이 가진 재산은 '도덕성'밖에 없으며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위험이 따르더라도 옳은 과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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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바마 드라마는 이젠 좀 지겹다."

세계가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좁게 말하면 제시 잭슨 목사의 말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40여년 전에 벌인 투쟁의 결실”이며, 넓게 말하면 당파성과 대립을 종식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피부색과 관계없이 선택을 해왔던 미국 유권자들의 승리다. 그리고 민주-공화라는 양대 정당이 수백 년 동안 영락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형국이다. 최근에는 전 정부에 대한 반대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이른바 '반발의 원리'가 주요한 선거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오바마의 당선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감상적이다.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 - 흑인 민권운동의 두 거목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연설문에 주목해야 한다.

#연설1
“저는 케냐 출신 흑인 남성과 캔자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를 키워준 백인 외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패튼 군단에서 복무했고, 할아버지가 바다 건너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백인 외할머니는 폭격기 생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을 나왔고,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산 적도 있습니다. 노예의 피와 노예 소유주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흑인 여성과 결혼해서 이 혈통을 사랑하는 두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피부색의 형제자매, 조카, 삼촌과 사촌들이 3개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저를 일반적인 후보자들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행한 ‘인종 연설’



#연설2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지아주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죠.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위선만을 봤습니다! 우리에게 미국의 꿈은 없었고 체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말콤X의 연설, 영화 <말콜 X> 중에서..


▲ 영화 말콤X의 한 장면


오바마에게는 2명의 선구자가 있는데 흑인 민권의 상징인 마틴루터 킹과 다소 과격한 흑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콤 X다. 말콤 엑스는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2세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흑인 인권운동에서 명성을 쌓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2세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는 마틴 루터 킹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연설1에서 보듯 오바마는 다양한 인종이 결합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적격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조부모의 집에 머무르던 당시 오바마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농구에 미쳤고 술과 담배,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두운 경험은 말콤 엑스 등 대부분의 흑인 지도자들이 겪는 통과의례인 듯하다. 맬컴 엑스도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과 함께 범죄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1세에 그는 강도죄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게 된다.
오바마가 정치 신인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연설은 그래서 무게감이 있다.

만화로 보는 미국인 대해부

연나라로 연나라를 친다. (맹자)
以燕伐燕


연나라가 연이은 실정과 백성에 대한 탄압으로 민심이 들끓고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제나라는 이 틈을 타 연나라를 점령해 버린다. 연나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나라를 '해방군'으로 인식해 시골 촌부들까지 소쿠리에 음식을 담아와 제나라 군사를 환영했을 정도다. 하지만 제나라는 애초부터 연나라의 혼란을 해결하기보다는 제나라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연나라를 제물로 삼은 것뿐이다. 맹자는 이러한 제나라의 행태를 "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는 촌평으로 비판한다.
미국은 낡은 사고와 새로운 사고가 오랫동안 겨뤄왔던 나라다. 낡은 사고는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이며, 대내적으로 악덕자본가의 사고방식과 인종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 미국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탐욕적,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사고를 고수해 왔다.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리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베트남전의 무차별적 네이팜탄 공격, 19세기 J.P.모건, 존 록펠러, 제이 굴드 등 초기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 희생당한 미국의 노동자들.


1898년 7월 17일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 산티아고에 있는 총독의 궁에는 성조기가 게양됐다. 쿠바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페인의 항복절차에 쿠바인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했다. (<만화미국사> 61쪽)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지만 친일파와 일본 관리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시킴으로써 우리들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고 지금도 친일파가 득세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6.25 전후처리에서도 남한이 당사국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은 미국의 정책 때문이었다. 미군은 어디서나 점령군이어야 했다.
독재정부에 대한 지원도 미국의 전문 분야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아메리카의 독재국가는 미국의 지원으로 탄압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조차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언론탄압 실태와 기자 살인 등에 대한 내용은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미국의 힘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쪽짜리 지식밖에 얻지 못한다. 미국인들은 제국주의, 악덕자본,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여 왔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 사건을 꼽으라면 풀먼 파업을  들 수 있는데 악덕자본이 백인 노동자들을 인디언이나 흑인처럼 천대하던 지역이 바로 풀먼 신도시였다. 유진 빅터 뎁스는 미국철도노동조합의 젊은 지도자로 활약했는데 1893년 경제불황과 공황기에 미국 철도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894년 풀먼사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풀먼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1893년 5월에서 9월 사이에 우리의 임금을 다섯 차례나 삭감했습니다. 그래도 집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고용주로서 우리에게 돈을 지급해놓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1893년 풀먼사 파업 당시 사람의 논물로 목욕을 하는 해골들의 춤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한 세기 뒤 이 현상은 '바닥을 향한 경주(국가나 기업 간의 과다경쟁이 빈곤층을 만든다는 이론)이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고, 월마트의 사업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화 미국사, 32쪽)


노동자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반전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반전운동이 벌어진 나라다. 다만 제국주의적 행태 속에 감춰졌을 뿐이다. 일본이 자민당의 나라라는 오해를 사는 것과 같다. 일본 역시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나라이며 풀뿌리네트워크가 만만치 않다. 선진국은 이와 같이 양식 있는 시민들에 의해 견딜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징집반대연맹을 조직한 엠마 골드만의 일화가 담긴 만화 한 컷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그는 징집법 위반으로 2년 형을 받고 미주리 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재판에서 그녀의 유일한 변호 수단은 감동적인 연설뿐이었다.

"국민을 군사적으로 예속한 상태에서 잉태된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독재정치입니다."


▲ 이 그림은 수감 2년 후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하워드 진이 상상해서 삽입시킨 대목이다. 하워드 진은 '엠마'라는 제목으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쓰기도 했다.


미국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여느 대통령과 다른 이유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속성, 즉 제국주의적 속성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권운동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의 이전 정책기조에서 큰 틀의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인의 의향을 지속적으로 살펴서 정책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의지가 사실상 오바마의 의지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의 경우 한미FTA에서 방점으로 보아야 할 것은 '미국 노동자'이다. 만약 FTA를 통해 미국민들의 손해가 예상된다면 오바마는 이를 없던 일로 하거나, 미국 노동자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급 선회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국익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이익'에 머무른 반면, 오바마가 말하는 미국의 이익은 '미국인의 이익'에 가까울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오바마가 노무현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노무현에 비해 민권운동의 뿌리가 매우 깊은 오바마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리라고 본다. 
미국인, 미국 노동자들은 한국인, 한국 노동자들과 매우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민과 한국 시민, 전 세계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이명박을 통한 FTA는 한국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절대로 대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협의할 수 있다면 미국 노동자의 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에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화 미국사>는 미국의 '반대쪽 에너지'를 알기에 손색이 없다. 궁금한 내용은 추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 한 쪽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한다."


<참고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0250015&code=97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11824005&code=21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1825085&code=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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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워드진의 만화 미국사라고요? 이렇게 흥분될때가.... 이거 수업자료로 최고겠어요. 담아갑니다. ^^

승주나무 2008-11-21 16:02   좋아요 0 | URL
수업자료로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좌파적출 바람'은 조심하세요^^

마노아 2008-11-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 아직 안 도착했어요. 미국 민중사 읽기 전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승주나무 2008-11-21 16:03   좋아요 0 | URL
네~ 미국 민중사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기 위한 워밍업이고, 이 책은 미국 민중사를 읽기 위한 워밍업인 것 같아요^^
 


10년 전 이 계절에 대학 교정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치 단풍산처럼 교정 전체가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나름 감수성이 있었는지 빨간 단풍나무 아래서 아주 조그마한 잎사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 변변하게 자라지도 않았지만 그 애기단풍 역시 '계절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죠. 그 광경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 10년 만에 만난 애기단풍입니다. 옆에 떨어진 단풍을 보면 이 단풍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습니다.

대전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갔다가 빨갛게 물든 단풍 사이에서 애기단풍을 다시 만났습니다. 10년만의 일이죠. 10년 전의 애기단풍은 단풍나무 밑동에 기생하고 있었는데, 이번의 애기단풍은 아예 땅 속에 혼자서 뿌리를 내렸더군요.





▲ 올 가을에는 단풍산 구경을 못 가서 아쉬웠는데, 대전에서의 단풍구경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계절을 지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푸지에>라는 단큐멘터리가 생각합니다.




푸지에는 여섯 살배기 몽골의 여자 아이입니다. 말을 능숙하게 타고 양과 염소를 호령하는 목동입니다. 그는 목동의 임무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앳된 여섯 살배기 표정을 숨길 수는 없지만, 말을 타고 고원을 고원을 호령하는 모습에서 위엄이 느껴집니다. 양 모는 일은 세 살짜리 그의 사촌동생 바사가 넘겨 받았습니다. 우리의 계절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모습입니다. 푸지에의 모습에 애기단풍이 오버랩되었습니다.




▲ 1999년 의사이자 탐험가인 세키노 요시하루가 남미의 최남단에서부터 인류의 탄생지인 아프리카까지를 목표로 여행 하던 중 몽골에 머무르며 푸지에
가족과 인연을 만들어가는데, 세키노에게 푸지에는 유목민의 척도였고, 강한 자립심, 능력, 확신의 소유자였다. 푸지에는 2006년 카즈야 야마다 감독이 발표한 다큐멘터리다. 

 
사람은 세상과 함께 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장면입니다. 몽골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시장경쟁이 도입되면서 유목민들은 부상을 입으면 병원에도 못 가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애처로운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푸지에는 여섯 살에 불과하지만 유목민의 목축업이 계절로 따지면 겨울에 들어섰기 때문에 여섯 살의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푸지에에 대한 달느 이야기는 EBS 다큐멘터리 푸지에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애기단풍은 개인과 세계가 강력한 공동운명체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생을 살아가지만 세계의 운명에 의해서 자신의 생이 결정된다면 나의 운명은 곧 세계의 운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나의 생만 가꿀 것이 아니라 세계의 생을 가꾸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회의 생과 개인의 생이 좀처럼 섞이지 않는 듯 보이지만, 계절의 대세가 천천히 걸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기단풍의 가르침이 10년 만에 새삼 되살아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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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1-1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지에 보고서 참 먹먹했어요. 지금 베트남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에 자본주의 경제가 도입되면서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급 취약해지는 부분들을 보아요. 푸지에도 그랬고요. 씁쓸한 일이지요.

승주나무 2008-11-17 17:00   좋아요 0 | URL
푸지에도 그렇지만 푸지에 엄마의 죽음이야말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죽음이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푸지에 역시 사회적인 죽음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숨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지인은 무방비로 있다가 한방 먹었다는 표현을 썼는데, 참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탐험가 세키노 요시하루씨는 얼마나 먹먹했을까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