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발도로프와 한의학이 만난 학교 1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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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척이나 사람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양호 씨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교육의 대도를 걸었던 사람처럼 인터뷰 하는 내내 여유와 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이라는 사자성어(대학)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10여 년 전부터 대안학교에 대한 절실한 요청이 있었고 몇몇은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하지만 한국교육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대안학교들은 최초의 취지를 지켜나가는 데 대해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독일 발도로프 대안학교에서 수학해 10년 넘게 대안학교에 대해서 고민해 온 이양호 씨를 만났다. 12월3일 홍대 주변 민들레영토에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글숲산책, 이하 '공도인')과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이하 '백설공주는..> 단 두 권에 반해서 인터뷰에 함께 따라나선 독자 1명과 함께였다.
이양호 씨의 두 번째 출간작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글숲산책)에서는 우리가 소홀히 다뤘던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교육철학의 밑바탕으로 삼았고 고전과 토박이말도 주요한 개념으로 넣었다. 특히 심청전과 오이디푸스를 독특하게 해석한 것이 일품이며, 대안학교의 실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도 특색이다.

황색 점퍼 차림에 맑은 눈을 하고 나타난 이양호 씨는 드디어 자신이 생각한 교육철학 방법론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된 데 대해서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 중소형 언론사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메이저 신문에서 자신의 책을 다뤄주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기도 했다.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이름, '도덕'을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 

 
나도 교육의 중요성과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잖은 시간 고민했고 3년간 논술을 가르치며 새로운 교육대안을 고민해보았지만, 이양호 씨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된 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에서 적어도 한두 발자국 정도는 더 나아간 듯 보였다. 이 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는 처음에는 자연과 하나된 인성교육, 전인교육, 건전한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공부와 도덕성을 서로 짝지으셨는데, 요즘 누가 도덕성 생각하면서 공부합니까. 다들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에는 좀 짓궂은 질문으로 화두를 떼었다. 어설프게 꺼낸 우문에 대해 가차없이 현답이 돌아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이란 그야말로 도덕책에서 보았던 '예의범절'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동양의 지혜에 따르면 도(道)는 '우주의 바른 길'을 뜻하며 덕(德)은 '바른 길을 수없이 실천해서 내 몸에 쌓이게 된 것'을 말합니다. 도덕은 그야말로 우주적인 개념이죠. 서양으로 가 볼까요. 서양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떠나서는 도덕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선조들은 별자리를 진지하게 관찰했습니다. 별자리에 박힌 별들은 서로 침범하는 법이 없고 질서를 따르거든요. 웅숭깊은 '보편성'이 내재된 개념이 바로 도덕성입니다."

나의 '부도덕'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맹자>라는 책의 첫머리에서 "선생께서 먼 길을 마다않고 우리 나라에 찾아와 주셨으니 우리에게 어떤 이로운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가 맹자로부터 "왕께서는 어찌 사사로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과 의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대번에 야단맞은 양혜왕이 된 기분이었다. 자세를 바로잡고 대안교육 10년의 흐름과 교육현실, 새로운 대안학교에 대한 밑바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양호 씨는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도덕성, 토박이말, 고전읽기는 교육철학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차등수업료제도'에서부터 대안교육은 시작한다


"신문에 보니까 대안학교 관계자가 “대안학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는 ‘1순위 유학, 2순위 특목고, 3순위 (서울대 신입생을 배출한) 대안학교’라는 말도 나돈다”(시사IN 61호)고 할 정도로 대안학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가 자라온 흐름을 일괄해 주신다면?"
- 대안학교가 우리나라에 시도된 지 1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우학교나 간디학교 등 유명한 대안학교가 있죠. 하지만 대체로 대안학교는 귀족학교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사관 고등학교나 외고 같은 특목고를 대안학교로 잘못 아시는 분들도 많지요. 그리고 어떻게 말이 돌아다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에 50만원 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해도 대안학교에 50만원 내면 엄청나게 부풀려져 현재의 선입견을 키운 것 같습니다. 그것은 대안학교도 대안학교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잡아나가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2006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펴낸 <대안교육백서>에 따르면 대안 고등학교 졸업생 85%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께서 대안학교를 만드시려고 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 대안교육은 현재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과목을 인정하는 속에서 만드는 방법(인가 대안교육시설)과 교과목 자체를 부정하면서 만드는 대안 교육(비인가 대안교육시설)이 있습니다. (인가를 받으려면 40억원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50% 이상 이수하며 교원자격증을 가진 교사를 선발해야 한다.) 저는 지금 있는 대안학교에 대해서 비판하가보다는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수는 160개에 이르며 학생수도 6,000명에 가깝다. 현재 인하대와 성공회대 등 대학교에서도 대안학교 이수자에 대한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등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대안학교 모델을 세우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대안학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 발도로프 대안학교의 제도 중에서 '차등수업료 제도'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 제도가 '의료보험제도'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정의 수입 내역이 파악되고 이에 따라서 수업료가 차등적으로 제시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산내역을 공개하는 걸 상당히 꺼려 하니까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요. 100만원 버는 가정과 1,000만원 버는 가정이 똑같이 50만원을 내는 것은 비교육적인 일이죠. 돈이 있는 분들은 조금 더 내고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도움을 얻는 방식을 만들고, 입학 희망 가정을 설득해서 타협을 이뤄낼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취지가 있습니다. 우선 돈이 없는 사람들도 공평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차원입니다.


"'차등수업료 제도'를 들었을 때 '기여입학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입학금을 내는 정도에 따라서 학부모나 학생들이 지분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 그런 문제가 처음에 터질 거라는 사실을 모든 선생님들이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어떻게 바꿔나갈지 해결방법을 모색하려 합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학생만 되도 컴퓨터 게임 중독 등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너무 오랫동안 길이 들여 있어서 이것을 바꾸기가 굉장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로 낮춰서 기숙사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숙사라는 점이 또 걱정이 될 수 있지만, 생활 전반에 걸쳐서 교육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숙사와 함께 운용하지 않으면 교육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초등 대안학교에 기숙사를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어떤 공기 속에서 생활하는가가 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가면 또 비교육적인 환경, 예컨대 컴퓨터 게임이나 폭력적인 영화, 어른들의 부동산 이야기 등 동심을 왜곡하는 신호가 너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에게 대안교육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야 아이들의 사고가 자라고, 부모들도 이런 사회적 공기 속에서 (차등수업료를 내는 데 대해서) 큰 저항감 없이 교육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공적인 것, 보편성을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원론적인 지점에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교육과 이제까지의 교육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 기자님은 현재 우리 시대의 얼굴이 무엇인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입니다. 최고의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나와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변호사이고, 그들 중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단체가 바로 김앤장이지요. 김앤장 현상은 두 가지 문제점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민사고나 대원외고와 같이 이른바 귀족 학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입학에서부터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공적인 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기 속에서 그들이 갑자기 '공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사적인 영광'일 뿐이죠. 그리고 공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은 '우월감'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우월감이란 이타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척 위험한 것이죠.


"말씀을 들어보니 선생님께서는 '공교육' 중심의 대안을 짜고 계신 듯합니다. 요즘 들어 '수월성 교육'과 '경쟁 시스템'이라는 말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의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공교육 평준화 정책을 '하향 평준화'라고 폄하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국제 올림피아드 같은 엘리트 시험에서 최고 등수를 올리는 학생들이 공교육 때문에 바보가 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공교육과 사교육, 수월성 교육 등 모든 교육 주체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재미교포 김승기씨가 최근 쓴 박사논문 '한인 명문대생 연구'에 따르면 1985∼2007년 하버드대 등 미국의 14개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 1400명 가운데 56%인 784명만 졸업하고, 44%의 학생이 중간에 자퇴했다고 합니다. 미국 학생 34%, 유대인 12.5%, 인도 21.5%, 중국 25%에 비해 한국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매우 높죠. 이 수치는 우리나라 교육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올림피아드'를 거론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엘리트에 대한 데이터일 뿐입니다. 올림피아드보다 OECD 공식 학력 테스트인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적 소양 수준 파악 및 소양 수준에 영향을 주는 배경을 분석하여 각국 교육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시험. 3년에 한 번 OECD가 실시하며 2006년 현재 57개국 40만명의 학생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154개 학교에서 5,000명이 참여했다.)가 좀더 확실한 자료입니다. 보통 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 학생들의 평균실력을 가늠하는 이 시험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을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2006년 기준) 문제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실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이것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2006년 실시된 OECD PISA의 시험 결과. 우리나라는 OECD 평균에서도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ISA는 올림피아드와 달리 '보통 학생'의 시험 결과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교육정책을 짜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선생님이 최근 출간한 <공도인>(글숲산책)에 보면 유난히 '도덕성', '보편성', '자유'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교육 모델에서부터 강조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그것은 우리의 교육철학이 따로 없고 바탕 역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춧돌이 바로 서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공부를 가르칠 때도 '바탕'이 제대로 심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학'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들은 수학공부를 하면서 지혜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학이란 지극히 기능적인 과목으로 한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서양의 문명에서 수학 공부는 자아를 성찰하고 수련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플라톤, 피타고라스, 러셀, 데카르트 등 서양의 철학자들을 생각해 보면 모두 수학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저서(국가 정체)를 읽어 보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주요한 방식이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창의력'에 대해서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창의력'이란 그저 욕망의 분출일 뿐 제대로 된 창의력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 다 창의력은 아니죠. 이전에 없던 것에 하나를 보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산물들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바로 '창의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죠. 역설적인 말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인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전'을 배워야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질문을 드립니다. <공도인>이나 <백설공주는..>에 보면 고전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특히 '토박이말'의 사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만의 소신이 있을 듯합니다"
- 고전은 그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백설공주는..>에서 독일의 자랑 그림형제의 동화 원문으로 우리 고전의 시각에서 해석했습니다. 구전해 내려오는 작품들은 어떤 식이든 상징과 시대정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공도인>에서는 '심청전'을 분석했고, 서양 고전으로는 '오이디푸스'를 분석했습니다. 단지 고전을 읽는 것보다는 하나의 고전을 잡고 여러 가지 관점으로 뜯어보고 오늘날의 현실과 갈마들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토박이말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주체성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속에는 한자어와 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버리고 다른 말을 쓰면 단절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모순'(矛盾)이라는 한자어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을 은연중에 낮추어 보게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문제이며, 우리들의 사유를 오롯이 담아낼 건강한 그릇이 바로 토박이말이라는 점은 많은 철학자들이 강조했던 점입니다. 예컨대 서양에서는 '존재'라는 단어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책을 만들었다면, 우리도 역시 '있음'이라는 말을 써서 철학을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토박이말을 저의 책에 계속 활용하는 것입니다. 토박이말과 고전, 도덕은 저의 교육철학을 이루는 밑바탕이 됩니다. 

 
인터뷰는 3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교육계에 몸담고 있었거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먹먹해짐을 느꼈다. 교육의 현주소를 보면서 개탄하고 바꿔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철학을 세우지 못하고, 대세의 흐름에 정처없이 흘러갔던 그 동안의 세월이 반추되는 듯했다. 대안학교에 뜻을 함께 하는 한의사 분과 지금 대안학교의 밑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양호 씨는 자신의 뜻을 읽고 손을 맞잡아줄 사람들에게 절박한 메시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그의 탄탄한 교육철학이 제대로 된 날개를 얻어 비상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했습니다.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7716&PAGE_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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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네 장 담그기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6
이규희 글, 신민재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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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항상 가을만 되면 작은마루에서 찌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은마루하고 방하고 문으로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서 집안 전체에 메주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냄새가 얼마나 독하던지 일부러 늦게까지 놀다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가는 때도 있었다.
"꼭 이런 데다 널어야 하나?"
하면서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메주를 발로 차면서 화풀이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자주 맡다 보니 향긋하고 달싸름한 냄새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당시 한약을 자주 먹어서 왠만큼 독한 냄새에도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던 나는
메주의 특이한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 건넌방에서 자고 있는 메주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가을이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깜짝 놀라 "할머니, 어떡해요. 메주가 썩었나 봐요. 곰팡이도 나고 아주 못생겨졌어요!"라고 달려간다. 그런데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게 우리 몸에 아주 좋은 곰팡이꽃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했다. (<가을이네 장 담그기> 중 일부)

선량하고 덕 많은 가을이네 부모님과 할머니가 장을 담그는 이야기가 제데로 익은 된장맛으로 그려져 있다.
'책읽는곰' 출판사의 다른 책에 비해 수채화풍으로 넉넉하게 그린 게 특히 인상적이다.
나는 그림에 된장을 묻힌 줄 알았다.
<책읽는곰>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지만,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고 그 안에서 참여하면서 실생활의 지혜를 많이 배울 수 있다.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책곰 책의 장점인 것 같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주인공이 하는 역할이나 느끼는 바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여문 콩을 골라내는 일을 할 때는 할머니를 돕기도 하고, 
콩으로 메주의 형틀을 만들 때도 역시 쪼물락 쪼물락 잘도 만든다.
메주를 볏짚으로 묶어 처마 끝에 매달아놓을 때도 메주 두 개를 짊어지고 아버지를 돕는다.
이런 장면들이 책의 현장감을 높여주고,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직접 체험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나이 찬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 아무도 몰래 동심 속으로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이 그림책 때문이다.




▲ <온고지신> 우리문화 시리즈 그림책의 맨 뒤에는 관련자료를 대화체로 엮어서 알기 쉽게 풀이해 놓았다. 처음에는 자료첨부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문체가 조금씩 발랄해지는 것을 느낀다. 시리즈 10권 정도 가면 참 볼 만한 문장이 나올 듯하다. (이 멘트는 출판사 압박용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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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포도밭 이야기와 한국사의 유산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역사야!

'어른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읽으면서 문득 ‘포도밭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식들에게 포도밭에 엄청난 금덩어리가 있으니 캐서 가지라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포도밭을 일군 자식들. 결국 수확철에 풍성하게 자라난 포도밭을 보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박은봉 선생의 '어른판',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는 '한국사의 상식'이라는 금광을 찾기 위해 저자가 동분서주 뛰어다닌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사의 유산'이다. 사실이 왜 왜곡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왜곡됐으며 누가 왜곡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어느덧 그것 역시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월 26일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박은봉 강연에서 이러한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참고로 박은봉 선생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위해서 들인 집필 기간은 3년이며 구상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5년의 기간이 걸렸다. 읽은 논문만 1,000여 편에 달한다. 어른판은 44개의 꼭지로 이루어졌는데, 어린이판에서는 어린이가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이는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추가해서 1,2권 40개의 꼭지로 나누어 펴냈다. 어른판의 저자인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판'에서는 멀찍이 뒤로 물러서고, 이광희 작가가 어린이의 시각에 맞게 전면적으로 리라이팅을 했다. 그림과 도표, 인터뷰와 인터넷 토론방, 상황극을 넣어서 원작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박은봉 선생은 책 속에서 자신이 '바빠서 이만'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서 내심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리라이팅 결과에 대해서는 흡족한 눈치다. 특히 박은봉 선생이 강연에서도 강조했던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온전하게 살려낸 점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대로 암기하고 문제푸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게 되는지 다양한 유형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라면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소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눈매의 박은봉 선생. 말 한마디, 조사 하나까지 신중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말하는 동안에 진지하게 학문을 하는 사람의 선한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야, 너의 포도밭은 어디 있니?

 

이왕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니까 어린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을 들고,

"역사책에서는 어린이를 만날 기회가 무척이나 적은데, 그 당시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나요? 그리고 어린이와 관련된 역사적 오류도 있나요?"

박은봉 선생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19세기까지 이 세상에는 '어린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에 의하면 어린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의 일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의 서양과 동양의 어린이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우석훈 <괴물의 탄생>에 보면 성인들은 자기들 보수의 1/3만으로 소년, 소녀들을 혹사시켜 20세가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많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어린이 노예는 3년 동안 써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어린이는 19세기 전까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존 스튜어트 밀 등 자유주의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안데르센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쓴 것도 19세기다. '이솝우화'의 '이솝' 하면 어린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솝우화는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를 위한 우화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린이 보는 책에, '그저 마누라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는 진지한 충고를 써넣을까 이말이다.

동양의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박은봉 선생에 의하면 동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워낙에 유아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유교전통 속에서 응석을 부리는 장면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 해야 서당에서 훈장님한테 매맞는 그림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널리 전파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파가 왜 어린이를 사람으로 대우하자고 그렇게 외쳤는지를 보면 당시 어린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와닿는 말이었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들의 직관력과 이해력은 어른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작업이 교과서와 배치되는 점이 내내 우려되었던 선생은 어린이 30여 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설문의 내용은 "교과서의 내용과 (자신의) 책의 내용이 부딪히면 혼란스럽지 않을까?"였다. 어린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였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사실과,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어린이도 이 정도인데, 고등학생들은 어느 정도일까? 그런 학생들에게 좌파 척결한다 어쩐다 하면서 편향된 관점의 현대사 강좌를 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 어른들만은 어린이보다 어리석은 것 같다.

박은봉 선생의 책을 통해서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익혔다면 한번 응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박은봉 선생의 책 내용에 도전해 볼까 한다.

제3장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말한 사람은 최영 장군일까?>의 대목 중 우리가 한때 즐겨 불렀던 유행가사의 한 대목을 문제삼고 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 중

박은봉 선생은 '황금' 발언을 한 사람은 최영 장군이 아니라 최영 장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사를 바꿀 필요는 없을 듯하다. 노래 가사는 최영 장군이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지, 최영 장군이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황금' 발언은 그 전에 있었을 수도 있고, 최영 장군 집안의 가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최영 장군이 그러한 정신을 전파했다는 것이니 '황금' 발언을 최초로 한 사람은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실지 궁금하지만, 어쩌면 칭찬을 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 그 날 어린이들이 참 많이 왔다. 맨 처음에 박은봉 선생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호명하고 나서 '유치원생'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마치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기분이 좋았다.

- 알라딘 제1기 리포터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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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9일자 조선일보 기사. '증인폭행 피의자'라고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 데 대해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언소주에 대해서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해온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객관적인 '헤드'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이른바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관련한 재판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소동 사건이 벌어졌고, 이 사건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조선일보는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김용상 영장전담부장판사의 판시를 인용 ""계획적 범행으로 보이지 않고 심문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점 등에 비춰보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광고주 '협박'이라고 공공연히 보도해온 언어습관에서 한발 물러서 '압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이 산이 아닌가벼~'라는 판단을 재빨리 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 사건이 크게 부각된 11월 20일자 한겨레 신문의 기사를 보면

19일치 지면에서 조선은 사회면 4단 머리기사로 “조·중·동 광고중단 협박 공판 증언 나선 여행사 직원, 재판전 피고인측 방청객한테 폭행 당했다”고 크게 다뤘다. 동아도 같은 날 1면에 “광고주 협박 피해 증인 “피고인측이 폭행”이란 제목의 기사를 2단으로 배치한 데 이어 “수십 차례 협박 전화…살해 위협 느껴”라고 제목의 사회면 머리로 해설기사를 올렸다. 중앙도 2면 3단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 한겨레, 광고중단운동 단체 “조중동 보도는 소설”

뿐만 아니라 동아, 중앙, 세계일보는 사설에까지 이 내용을 다뤄서 이슈화를 시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영장실질심사에서 피의자와 피해자를 보았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피의자는 50대 후반의 노인이었고, 피해자는 180센티미터 80킬로미터의 건장한 30대 초반 청년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매우 재미있으니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뤄볼 예정입니다.

정말 재밌는 것은 조선일보 독자님들의 댓글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 두 개만 공개합니다. 나머지는 직접 보시기를^^

기각시킨 판사 누군가 끝까지 추적해서 실명에 &#50735;긴다음 사상검증을 철저히 하자  [2008.11.29 17:44:56]

무슨 영장기각이란 말인가, 불필요한 온정의 판단이 결국 서서히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존립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판사는 알아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원칙과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뻘개들의 준동을 단호하게 엄격히 처벌하지 않으면 제2의 광고중단운동 일어난다. 좌빠들이 무너뜨린 법치주의를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이 세워야 할것이다.  [2008.11.29 17:08:53]



▲ 11월 28일자 한겨레 기사.

정말 예상 외였던 것은 한겨레 신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여기에는 한겨레와 언소주의 관계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팩트'만을 생각했습니다.
기사에도 밝히고 있듯이 재판에 출석한 증인을 폭행한 혐의로 50대 회원에게 영장이 신청된 건이므로 당연히 '때린 혐의'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때린'이라고 그대로 끝내버려서, 독자로 하여금 50대 회원이 30대 증인을 진짜로 때렸다는 판단을 주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한겨레가 언소주 회원들에게 우호적으로 기사를 써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상식과 이성을 가진 신문으로서 기사의 단어선택, 그것도 가장 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헤드'를 이렇게 뽑을 정도라면 어떻게 '정론'이라는 수식어를 한겨레에 붙여줄 수 있을까요.

한겨레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아서 잠을 못 이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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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링크>

1. [현장] 언소주 재판 증인 폭행(?) 사건의 전모

2. 조선일보, 아무리 '보복성' 기사라지만...


3. [언소주]조중동에 정정보도 요구 공문을 보냈습니다.


4. 광고불매운동 재판정 소동 사건,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 사이"


경찰이 50대 언소주 회원을 연행하기까지의 과정

지난 18일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관련 공판에서 롯데관광 측 증인과 마찰을 빚었던 50대 회원이 오늘 경찰에 의해서 전격 연행되었습니다.
그 회원님과 함께 이었던 회원이 보내온 내용입니다.


"OOO님이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서초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서초경찰서 2층 지능팀으로  연행되었습니다

OOO님은 출국금지 통지서를 어제 가지고 오셨고 왜 그것이 발부되었는지에 대해

서초경찰서에 문의하자 형사 담당자가 전화할테니 OOO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형사가 로비에 와서 전화를 했고 저와 함께 나가서 이야기 하던 중

갑자기 체포영장을 보이며 협박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경찰이 이번에 언소주의 50대 회원을 체포하게 된 것은 11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관련 24인의 재판이 있었던 날에, 증인으로 출석 대기하고 있는 롯데관광의 증인과 시비가 붙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증인은 협박과 폭력을 받았다며 증언을 못하겠다고 증언거부를 했습니다. '폭행'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폭행의 당사자가 50대 여성회원과 50대 남성회원이었는데 그들은 180cm 이상의 건장한 30대 청년에게 폭행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협박을 일삼을 정도의 양식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조중동 광고주불매운동을 하는 언소주의 회원들은 검찰과 경찰, 조중동이 알고 있듯 범죄인집단이 아닙니다. 누가 우리 나라의 척박하고 가련한 언론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가며, 식구와 회사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언론소비자운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대로의 문제의식과 소신, 그리고 교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협박이 있었다면 이권다툼이나 뭔가 구린 것을 있는 재판이어야겠죠. 하지만 이번 재판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희귀한 불매운동에 대한 재판입니다. 불매운동은 선진국 어느 나라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성의 기회를 삼는 캠페인입니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언소주 회원들이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조중동이 정상적인 언론활동과 영업행위를 해야 합니다. 조중은 신문고시에 정해놓고 있는 법률을 밥 먹듯이 위반하면서 우리나라의 신문시장을 거의 학살하다시피 하고 있는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사기업'에 불과한데, 그들이 법의 정의를 운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요. 그래서 재판을 받는 24명의 언소주 회원들은 죄인이 아니기에 떳떳합니다. 오히려 조중동과 검찰이 죄인처럼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들은 재판 결과가 혹시라도 부정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판에 목숨걸고 있습니다. 때문에 10월 28일 2차 공판에서 조선일보 증인이 혹시라도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까봐 신문사항, 즉 예상문제지를 미리 짜맞추고 재판을 진행하다가 변호인에게 발각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왜 경찰은 '출두'가 아니라 '체포'를 택했나?

경찰의 행동에 모순이 있습니다.
만약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서 체포를 해야 했다면 11월 18일 당시나 그 다음날 현행범으로 체포를 했어야 합니다. 경찰이 당시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열흘 만에 '출두 요구'가 아닌 '체포'라는 형식을 쓴다는 것은 열흘 전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표적수사'나 '정치적 탄압'으로 의심을 살 만한 여지가 충분합니다.

'체포'라는 것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내릴 수 있는 조처입니다. 그리고 경찰은 사건 10일 후에 갑자기 50대 언소주 회원을 체포해야만 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갑자기' 판단을 내린 듯합니다.

경찰은 두 가지에 대해서 답변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체포라는 방식을 쓸 만큼 50대 회원의 행위가 중대했었나?
2. 만약 체포를 할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였다고 판단했다면 왜 10일이라는 시간을 흘러보냈나? 그것은 경찰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아무리 대한민국 사법제도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다고 해도,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재판정 소동 사건은 한 쪽은 폭력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쪽에서는 폭력행위나 협박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특정한 편의 주장만 수용해서 처벌을 하는 것은 
사법부가 사법부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위의 링크와 아래의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마이뉴스]조중동 광고불매 재판정 사건,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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