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은 언론소비자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입니다. 
최근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1심 판결이 2월 19일, 내일 모레로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http://cafe.daum.net/stopcjd)이라는 단체에서 시민들과 함께 언론운동을 한 7개월의 소회를 담담히 담았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기사원문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면 알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69468&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NEW_GB=#1

 

내가 죄인? '조중동 반대' 초심이 흔들렸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며 느낀 소회...
2월 19일 1심 선고 예정 
 
 
   
▲ '조중동 광고중단운동' 누리꾼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중단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터넷카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이정기(가운데) 씨, 아이디 천태산인(오른쪽 두번째 모자이크), 시지프스(오른쪽) 씨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카페 회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조중동불매운동

지난 7개월은 발가벗겨져 거리로 내몰린 심정이었다. 고단하고도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평소 한국의 언론현실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촛불정국이 한참 달아오르고 조중동에 대해 지면광고 불매를 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을 때도 이 문제를 절박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끝내 2명이 구속 수감되고 22명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이 싸움에 나섰다.

'다시'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2006년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기자들의 용기와 결단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에서 열혈 회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때문에 회사와도 마찰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면서 집에 있을 시간이 없어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하고, 이 일 저 일 챙기다 보니 회사와도 마찰이 잦아졌다. 공개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17차례 공판에 매주 불려나가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학교 결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곡된 언론현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실천한 사람들은 저마다 적잖은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상식'과 '진실'은 방관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볍고 짊어지는 사람에게는 너무 무겁다. 사람들이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공분이 생겨서가 아니다. 광고 목록을 올리고 조중동 광고주에게 전화해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이 윤리적인 경제활동인지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의 법리적 검토를 함께 진행했다.

언론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헌법 제21조(표현의 자유), 제124조(소비자권리)와 소비자기본법 제4조(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제53조(소비자상담기구의 설치·운영)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합법적인 운동이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 캠페인 사이트
ⓒ 장윤선
출국금지

하지만 검찰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두고 24명을 기소했고 법원마저도 2명의 구속영장을 승인해주는 등 언론운동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불법'이라는 딱지를 받게 됐다. 사법적인 판단을 받게 되자 함께 운동을 하던 시민들이 혼란에 빠졌다.
일단 광고목록 게재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을 계속할지 다른 방법을 쓸지에 대한 내부 논쟁이 극심했다. 이 과정에서 전 대표가 사퇴하고 비상운영위원회 체제가 약 3개월가량 지속되기도 했다. 좌절감을 느낀 누리꾼과 시민들의 카페 탈퇴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촛불을 들던 시민들도 광고불매운동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아래 언소주) 회원들이 너무 전투적이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구속조치 등 험악한 법률 용어가 나오자 우리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수백 번도 더 생각하지만, 몸은 구치소에 갇혀 있고 재판에 매주 끌려다니며 판사와 검사에게 갖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혹시 내가 무슨 죄를 진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의심이 옆의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고 초심을 자꾸 흐려 놓았다.

 

옳은 행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언소주 카페 내에서도 광고불매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분도 없지 않았지만, 난 조중동의 일련의 행위들을 보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실제 6월 중순 <동아일보>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광고목록 삭제를 공식 요청했으며, 6월 23일에는 <조선일보>가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아예 카페를 폐쇄시켜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만큼 많이 아팠다는 뜻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조선일보> 직원이 혹시라도 법정에서 실수를 할까봐 미리 신문사항을 이메일로 검찰에게 전달했고 검찰의 질문지와 <조선일보> 증인의 답변지가 일치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판사에게 이 일이 발각돼 검찰과 <조선일보>는 법정에서 창피를 당했다. (오마이뉴스, 2008.10.30 , <조선> 증인, 법정 '말맞추기' 덜미, 기소 검사와 '예상 질문지'까지 교환)

이 내용은 MBC 뉴스데스크에까지 보도됐다. 검찰은 이 건에 대해서 별도의 논평을 내기도 했다. (MBC 뉴스데스크, 2008-11-01, '고전하는 검찰')

조중동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11월 18일 검찰에서 증인신청을 한 모 관광회사의 직원과 언소주 회원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조중동은 이 내용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검찰도 이에 호응해 해당 회원을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협박과 폭력을 가했다는 회원은 의족을 차 발이 불편한 50대 노인이었고 당한 사람은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젊은 청년이었다. 결국 법원은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중동과 검찰의 이와 같은 과민반응은 오히려 언론소비자운동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재확인시켜주었다.

 

2월 19일 1심 선고... 그들을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언론 소비자 주권 국민캠페인'은 지난해 9월 6일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촛불아 힘내자' 행사에서 조중동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 박상규
촛불집회

지난해 8월 30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시민단체 창립총회를 열기 위해 전 회원에 대한 투표(총 참여자 3727명, 찬성 3685명(98.9%), 반대 42명(1.1%))에 이어 총회준비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나는 정책개발팀 실무를 도우며 사업계획서 작업에 참여했다. 언론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생각은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신을 회원들에게 전달했고 공감대를 얻었다.

언소주가 광고불매운동이라는 네거티브 캠페인만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소주는 포지티브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전교조 선생님들과 정론매체 주간지(시사IN, 위클리경향, 한겨레21)와 협약을 맺어 학교에 정론매체 보내주기 운동을 통해 약 60개 학교에 좋은 정론매체를 읽히고 있다. 그리고 정론매체(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일간지) 배가운동을 하는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 등 자발적으로 언론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와 긴밀한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몇 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언론운동에 뜻있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 주었다. 특히 영국과 호주에 사는 교민과 외국인까지 언소주의 일을 돕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가칭 '영문 번역팀'을 꾸릴 수 있었고 세계 유수의 언론사에 우리의 상황과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통해 우리의 뜻을 전달한 언론사는 아래와 같다.

'BBC NEWS Channel, BBC WORLD NEWS (텔레비전), ITN (ITV & 채널4뉴스), SKY (채널5 뉴스), BBC Radio 4, "Today" (시사전문 아침뉴스쇼), BBC Radio 5live (뉴스 & 스포츠전문 라디오채널), LBC 97.3 (런던 뉴스전문 라디오채널), 로이터, AP, AFP, 알자지라, 알자지라 Listening Post (국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유로뉴스 (유럽연합), 프랑스24, 프레스TV (이란), Deutsche Welle (독일), CNN, The Daily Telegraph, The Times, Financial Times, The Guardian, The Observer, The Independent, Daily Mail, Daily Express, 6EN, The Sun, Daily Mirror, Daily Star (Daily Express 계열), Evening Standard, London Lite (Evening Standard 계열), Metro 런던 (Daily Mail, Evening Standard 계열), The London Paper (The Sun & The Times 계열), The Spectator(영국잡지), The Week, Prospect, Prospect, Private Eye, New Statesman, The Liberal, Morning Star, Press Gazette, TIME, NEWSWEEK, le monde, le monde diplomatique.'

2월 19일 1심 선고가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 최근 법학교수 73인이 언소주 지지 성명서를 낸 데 이어 국회의원, 시민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가 지지의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 예컨대 고려대 박경신 교수의 경우 언소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서 UN에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조중동이 검찰의 탄압을 지원하기 위해 2차 불매운동과 관련해 외국의 재판 사례를 보도한 것이 악의적인 왜곡이라며 정정보도 요청에 이은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오마이뉴스, 2009.02.13, 박경신 "언론소비자 재판 잘못되면 자본주의 근간 무너진다">

이렇게 눈에 띄는 도움부터 눈에 안 보이는 도움에 이르기까지 언론소비자들의 실천은 힘겹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보태주면서도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언소주가 창립총회를 열고 나서 지금까지 직을 맡은 회원들은 최소 1주일에 1회씩 만나 평균 5~6시간 이상의 회의를 했고 일주일 중 많은 시간을 언론운동에 매진했다. 이렇게 강행군을 하고 있는 이유를 며칠 동안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언소주가 검찰의 탄압 등으로 무척 힘든 상태에 있을 때 회원 한 분이 했던 말 한마디가 끝내 잊히지 않는다. 이 말만큼 한국 언론운동의 절박성을 표현해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언론운동이 여기서 좌초하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이런 흐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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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2-1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어요...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멀리서 힘을 보냅니다.

2009-02-18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8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8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촛불의 최대 성과는 조중동이 찌라시임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너무 고생이 많으셨지요? 큰 지지와 성원을 보냅니다.

Arch 2009-02-1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승주나무님.. 힘내세요. 혹여나 미약한 제 도움이나마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나서겠습니다.

글샘 2009-02-1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심 선고 결과야... 당연히 유죄라고 나겠지요. 80년대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썩어빠진 법원에 뭘 기대하겠습니까...
수고가 많으신 님들에게 멀리서 응원을 보냅니다.
 

너무도 강렬했던 에티카와의 첫만남 

나의 인격이랄 수 있는 특징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이다.
정확히 대학 2년생이다.

책도 안 읽고 공부도 하기 싫어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대학에서는 '학문'이 하고 싶어졌다.
맨 처음 만난 책은 <철학 이야기>(윌 듀런트).
몇 년 후 철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이 첫만남이 무척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철학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음 권으로 <에티카>를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사과나무를 심던 스피노자의 필생작을 여름 방학 두 달 내내 잡고 있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윤리학)은 인간과 우주의 질서를 기하학의 관점으로 서술한 대작이다. 때문에 명제, 공리, 정리, 요청 등 수학 용어가 많이 나오며 앞 장과 뒷 장이 연결되면서 머리가 뽀개지기 시작한다. 그 외에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노트에 정서를 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읽고 음미할 만한 구절을 10쪽이고 20쪽이고 정서를 했기 때문에 한 번 정서를 하고 책을 덮을 때도 많았다. 다른 하나는 그 당시 '노가다'라는 것을 처음 해봤다.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뙤약볕 아스팔트에서 낑낑대다가 옷을 갈아입고 7시부터 9시까지 단 두 시간 책을 읽으러 학교 도서관에 올라갔다. 나는 이 두 시간을 신앙처럼 모셨다.

신에 관해서, 이성에 관해서, 감정에 관해서, 감정의 예속에 관해서, 신을 향한 지적 사랑을 위해서, 자유를 위해서... (에티카의 대강의 순서)

어느 하나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본질을 다루는 책을 가장 먼저 만난 탓에 아직도 스피노자의 특징들이 몸에 배어 있다. 죄와 벌의 '라주미힌'(알라딘의 라주미힌이 아님)처럼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갖게 된 것도 스피노자의 영향이 지대하다.

긍정은 힘이 커지는 것이며 부정은 힘이 작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에티카)


<정치론> 리뷰를 위한 메모 

인터파크와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에서 공동 진행하는 '희망의 인문학' 프로그램의 담당자로부터 인문학 분야의 선정위원이 되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째서 편독증 환자에게 그런 중요한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지만, 추천사를 위한 준비 메모 정도의 글을 남겨두려 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아버지이지만 이들의 꿈은 '정치'였다.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철학'을 최고 목표로 삼았다. 얼핏 철학하면 지고지순하며 초연해서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철학을 살펴봐도 '정치'의 결이 보이기 마련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정치'를 지향하지 않은 철학은 공허하다.
우리가 철학자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후손에게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대인'을 위해 고뇌하고 당대인에게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성을 타고 현재까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당대'는 곧 '정치'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정치'라는 키워드로 철학자에게 접근하면 훤하게 길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보지 못한다면 '당대'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부족한 것이다.

고전으로서 정치론으로서 스피노자를 소개하는 이유를 500자에 담기란 이 책을 10번 읽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짧은 말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은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스피노자에게는 '전복'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데, 그를 제외한 어떤 철학자도 책을 덮었을 때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힘들게 억제하도록 만든 사람이 없었다. 오죽 했으면 스피노자를 읽은 사람들이 '마녀의 빗자루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까. 1998년 여름 토익책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소리를 질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철학자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정념의 변화들을 사람들 스스로의 잘못으로 생겨난 악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경건하게 보이려고, 대개는 그러한 정념들을 비웃거나, 측은해 하거나, 또는 비난하고, 저주한다. - <정치론> 맨 첫줄

첫줄부터 스피노자의 진면목이 보인다. 스피노자를 읽을 때는 '정념'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정념뿐만 아니라 '몸'의 가치 역시 스피노자로부터 환기된다. 니체는 '스피노자를 읽고 나서야 나는 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서양 철학에서 정념은 몸과 마찬가지로 저급하게 취급하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다. 스피노자는 한솥밥 먹는 철학자들과 원천적으로 다른 길을 가겠노라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 선언은 평생동안 지켜졌다. 내가 스피노자에게 가장 큰 은혜를 입었고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구절을 공개하면

감정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감정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하면(또는 이해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은 더 이상 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 에티카 중에서

나는 이제까지 이 구절을 '처세술'적으로만 활용했다. 하지만 <정치론>의 첫구절을 읽음으로써 드디어 '이해', 즉 '정념에 대한 이해'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왔다. 10년만의 발견이었다.
10년 만에 또 다른 보너스를 얻었다. 바로 '안또니오 네그리'의 발견이다. 이 철학자는 적어도 두 사람에게 소개받았다. 드팀전 님과 다른 한 분이다. 네그리는 "철학사로는 스피노자를 도저히 담을 수 없다"는 평가를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철학사를 펼 때마다 스피노자 부분을 맨 처음 읽으면서 이내 답답했던 마음이 네그리의 이 한마디로 드디어 '표현'을 얻어서 자유로워졌다.

아무튼 10년 만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행복한 밤이다.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니 이것 역시 축복이다. 500자 추천사와는 별도로 이 시대에 왜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글을 조만간 따로 내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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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2-18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정치론>의 새 국역본 출간이 너무 반가워서ㅡ예전에 <국가론>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적도 있었고 90년대에도 한 번 더 국역된 바 있었지만ㅡ출간 즉시 바로 구입해서 틈틈이 읽어오고 있는데요, 승주나무님의 개인사가 담긴 이 글을 읽으니 더욱 힘을 내서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로 내놓겠다고 말씀하신 <정치론>에 대한 글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승주나무 2009-02-22 23: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고 있는데 스피노자에 대한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갈 길이 밝아지는 듯합니다. 즐거운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
 

카풀해주자 잔뜩 경계의 눈으로 보던 이웃




주누피 님이 올려주신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의 '카풀 레인'입니다. 2인 이상 탑승한 자동차와 오토바이만 다닐 수 있는 길이 1차선이나 2차선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카풀을 한 차들은 일반 차들에 비해서 쌩쌩 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비가 내리던 아침이었습니다.
지하철역까지 십분 이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아내가 자가용을 태워주었습니다.
임산부의 몸이기 때문에 차를 얻어타기가 뭣했지만,
비가 오는데 신발 젖는 모습이 안쓰러워 태워주겠다고 해서 타고 갔습니다.

가는 길에 우산도 없이 혼자 빗길을 걸어가는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지하철역까지 가는 것 같은데, 태워줄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강호순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어.. 그래~" 하고 말끝을 흐리자 아내가 차를 세우고 가는 방향을 묻고 타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차 안쪽을 한동안 훑고 나서야 고맙다며 차에 탔습니다.
만약 그 순간 제가 혼자 차를 몰고 갔거나,
아내가 앉은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분이 카풀 제안에 동승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출근하는 내내 그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선행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현실 서글퍼

강호순에게 살해된 무고한 희생자 중 4명은 버스정류장에서 강호순의 호의동승에 속아 변을 당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덕으로 권장되는 카풀 제도에 찬물을 끼얹어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선의의 카풀러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2006년 경향신문에서 '의사상자 보상 축소'에 관한 기획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남의 위급한 상황에 목숨을 걸어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치료하고 남들로부터 쓸데없는 짓 했다고 질타를 당해 의행을 후회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충격적인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로 인해 경찰청은 의사상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로 결정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래는 관련 기사입니다.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못본 척할 걸…” 義行 후회하는 사회

이 기사에 택시운전사 아저씨의 사례가 나오는데 저까지 씁쓸해졌습니다.

택시기사 이규씨 역시 후회하고 있다. 그는 택시강도를 뒤쫓는 경찰을 보고 강도가 탄 차량을 앞에서 막아섰다. 꽤 큰 충돌이 있었고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역시 보상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영구장애 등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폐차처분한 차량은 온존히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 자차보험 6백만원과 자신의 돈 1천만원을 들여 새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는 그나마 병원장이 무료로 해줘 덜었다. 이규씨는 복지부에서 재산상의 손실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는데도 일단 의상자로 신청을 한 상태다. 그는 “안 되는 줄은 알지만 국회에서 법개정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들어 일단 신청은 해놓았다”면서 “서운하지만 어떡하느냐.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니까. 주변에서는 이제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한다”고 씁쓸해했다.

한 사회의 법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풍습입니다. 정치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국가에서는 법률보다 미풍양속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동양의 경우도 전통적으로 미풍양속이 법률보다 더 나은 정치라고 평가합니다. 9.11 때 경찰관들이 목숨을 걸고 인명구조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강호순 사건의 경우는 범죄행위가 다른 선행을 막아선 경우이지만, 카풀제도는 그 동안 범죄의 수법으로 악용돼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카풀이 일반화되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웃을 믿을 수 없는 사회, 이웃의 선행을 믿지 못하는 사회, 감히 선행을 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서글퍼집니다.

당장 저 혼자 차를 몰고 가다가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여성분을 봤을 때 카풀을 제안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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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15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무도 믿지 못할 세상이 되어가서 서글퍼요. 더구나 어린아이들부터 친절에 경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이 무섭지요.ㅠㅜ

프레이야 2009-02-1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도 친절을 받아들이지도 베풀지도 말라고 당부해야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참 서글프지요. 자꾸만 이기적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되고 있네요.
 

부제 : 휴머니즘과 사형제도..



최진실 자살 땐 '최진실 법', 강호순 땐 '강호순 법'?


냉무(내용없음) 정치, 기분파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언론이 너무 앞서간다"고 점잔을 떨던 정치인들이 언론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 강호순의 연쇄살인이 사회 이슈가 되자 뜬금없이 사형제도를 부활시키자며 보수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사형제도 부활은 유영철 때도 있었다.
사형수들은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사형'이라는 최고형은 잔존하지만 사형이 실제로 실시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된 대한민국에서 사형수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혹리열전'이라는 유명한 편명이 있다. 그야말로 가혹한 정치인들의 열전인데, 죄다 당대인 한나라 시절의 인물들이다. 노자는 "법 조항이 많아질수록 도둑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법 조항을 강화해서 범죄율을 낮춘 사례는 없다. 순간적으로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범죄는 다시 빈번해진다. 사마천은 혹리열전의 맨 마지막 대목에서 당시 사형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던 수많은 살인 사례를 언급하며 "이러한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형제도를 강화하는 나라는 대체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무능함으로 사형제도로 회피하려는 수작이 많다. 


사형제 부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그린 마일"


▲ 존 커피는 어린이 둘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그가 사형판결을 받은 이유는 살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 커피라는 사형수의 경우처럼 사형판결을 받는 사람들 중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사형을 당한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인 논의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작년 여름 100만명의 촛불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정부가 '생명'을 너무 경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 사태'에서도 자살테러범이니 떼쟁이들이니 하는 저주를 퍼부으며 망자를 모욕하는 정치인, 언론인이 적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만사 접어두고 조의의 시간을 가졌던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형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생명'의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마일>에서는 사형의 순간들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마일'은 1935년 대공황기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삭막한 콜드 마운틴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가 놓여 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녹색 복도를 말한다. 간수들이 하는 일은  '그린마일'을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로 갈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영화는 사형수들이 사형판결을 받기까지의 행위를 그리고 있지 않다. 모든 컷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형수(에두아드 델라크로익스, 또는 '델')는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 동료에게 키우던 애완동물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며 사형 집행일 동안 성실하게 시간을 채운다.

사형집행 과정도 세심하게 배려한다. 전기의자에 앉히기 전에 죄수의 머리에 물 묻은 솜을 얹히는 데 그것은 죽기 전에 고통을 최소화시켜 주기 위해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못된 간수가 자신을 골탕먹인 사형수 델에게 복수하기 위해 솜에 물을 묻히지 않고 전기의자를 작동시켰을 때 델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오랫동안 죽을 수도 없었다. 소화기를 들고 물을 끄려 하자 연륜 있는 간수는 이를 막는다. 델의 고통을 끊어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형제 존폐를 떠나서 이 영화는 사형수들이 맞는 마지막 삶의 시간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사형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사형수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컴퓨터에 마우스를 클릭하듯 사형제도를 논한다. 사형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형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현재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교육효과, 그들의 범죄이력 등을 면밀히 살펴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담긴 중요한 정책들을 책상에서 처리하다 못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인간의 생명조차도 책상머리에서 결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것이 청와대의 이메일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으로 물타기하라는 지시를 경찰서로 내려보내면서 당에는 아무 지침을 내리지 않았을까. 혹시 사형제 부활이 용산참사에 대한 물타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휴머니즘도 없고 인간생명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이유가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사형과 범죄율에 대한 연관관계를 깊이 있게 연구해 보고 나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발 기분파 정치는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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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리면 신께 용서 빌던 옛사람

고대 중국에는 병에 걸리면 신께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었던 풍습이 있었다. 병이 찾아오는 이유는 안 아픈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거나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동안 곰곰히 지난 날을 반성하고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을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나면 병이 낫는다는 오래된 풍습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년째 독감을 앓고 있는지라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고심이 깊어진다. 죄 많은 인생을 살아서인지 앓아야 할 것도 반성할 것도 많다.

세계 금융 위기가 실생활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lay-off(일시적 해고)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환경파괴는 극단으로 치달으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재난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교토의정서를 휴지조각처럼 여겨 왔던 미국이 정권교체 이후에 이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반노동자 정책이나 신자유주의 노선, 월스트리트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반성의 물결이 전 미국을 뒤덮고 있는 현실상황이다. 개중에는 교묘한 선전효과를 노리는 정치적 제스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돌아보지 않고서는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선거 때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747공약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서 반성하는 이도 없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도 없다. 7%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도리어 -3~4%까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는데도 경제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는 오만함은 변함없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는데도 유감표명 하나 없고 죽은 사람의 동료와 유족들을 잡아가두고 시체를 몰래 부검해버리는 안하무인의 세태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다. 사람 몸으로 따지면 나라가 큰 감기도 하니고 폐렴에 합병증까지 도졌는데도 돌아보기는커녕 앉아서 쉴 줄도 모른다.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가운데 문화계에서 '반성'을 벽두의 화두로 꺼냈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한 것이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하다

늙고 병든 농부와 그보다 더 고물이 돼 버린 소의 정직한 삶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개봉 28일 만에 40만 관객수를 돌파했다고 난리가 났다. 왜 사람들이 <워낭소리>에 끌리는 것일까. 뻔한 대답이지만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독립 다큐는 감독의 작가주의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대중과 시선을 마주칠 새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중파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노하우가 깊어졌고 극장판 다큐멘터리까지 따로 제작하는 상황(EBS 다큐프라임 <한반도의 공룡>)에서 대중이 다큐를 돈 내고 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짐은 물론 관객의 입장에 충실한 다큐멘터리가 흥행작으로 탄생할 환경은 이미 갖춰진 셈이다.

영화 <워낭소리>는 아주 고집스럽고 미련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의 가축인지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30년지기 늙은 소가 나오는 구식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30년 만에 극장에 처음 와본다는 중년의 부부 관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신기했던 것은 구식의 정직한 생활을 보면서 몸이 들썩거리는 듯한 공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다. 애초부터 인간은 땅에서 나고 땅에서 자라 구식의 유전자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도시로 떠나고 높은 건물에 살면서 점점 공허해져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 공법은 땅에서 나는 산물과 이를 일구는 노동의 가치를  모니터로 완전히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끝간 데까지 가고 나서야 땀 흘리며 한푼 두푼 저금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것은 물론 입소문 때문이지만, 영화평을 남기면서까지 입소문을 퍼뜨리는 적극성은 바로 <워낭소리>가 던져주는 정직과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이 가장 아끼는 장면. 소설가 펄 벅이 한국에 와서 사람이 소의 짐을 나눠 지고 오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감독은 덧붙였다. (시사IN 인터뷰)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워낭소리> 롱런의 비밀

제6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선정작,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이스라엘 사태로 인해 더욱 부각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영화와 책이 거의 동시에 출시됐다. 영화는 몽환적이면서도 해학성이 잔뜩 묻어 있는 OST와 딸려 나오는 영상이 매력이며, 책은 그야말로 압축미가 돋보인다. 책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이야기해본다면, 단순히 이스라엘 사태를 스케치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 이식시켜 놓은 폐해와 학살이 왜 재현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지속적인 전쟁상태에 대한 준엄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만화책으로 120여쪽 남짓한 페이지라서 10분이면 일독이 가능하지만, 읽고 난 후에 파장은 자못 길다. 20년 만에 찾아온 친구의 악몽 이야기를 아무런 준비 없이 맞고 나서 숨어버린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가는 과정이 <바시르와 왈츠를>의 주된 흐름이지만, 기억의 중심으로 가면서 학살사건이라는 기억의 핵으로부터 면면이 그리고 일상적으로 인간을 왜곡시키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허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에서 은폐된 과거를 은폐된 기억으로 환치시켜 불편한 진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반성'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린다. 피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에게는 너무나 완곡해 '면피'라는 비판을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는 제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리 폴먼은 박쥐 신세가 되었지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 손을 들어준 것은 세계가 아직 '반성'이라는 가치를 인정해주었다는 뜻이 아닐까?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지난해에 출간된 책이지만 올해 초에 2쇄를 찍어냈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김종철 선생이 꺼내는 화두는 바로 생태적 상상력이다. 이문재 시인이 생태적 상상력에 대해서 쓸 만한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그는 "생태적 상상력이란 문명과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명을 완연히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강력한 상상력입니다"
 (박원순·김종철의 2009년 화두 "농촌으로 가라" - 오마이뉴스)라고 해석했다.

김종철 선생을 읽음으로 인해 나는 침묵과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벽이 이명박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에 따르면 "적극적인 악행이 있기보다는 변화시키기 힘든 관성의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58쪽) 미국발 금융위기와 <워낭소리>의 경고처럼 땅에서 멀어질수록 감수성이 둔화되고 우리의 삶의 토대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런 인간은 당연히 취직을 위해서 "영혼을 팔게" 되고, 국민 대다수의 이익보다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땅의 옹호>에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지에서 17년 동안이나 강조했던 농적 가치와 소농공동체, 이반 일리치의 우정의 재발견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간디의 제자 네루가 임종의 순간에 써 놓은 반성문이다.

요즈음 나는 갈수록 간디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근대적 산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이고, 최선의 기계와 최고의 효율을 가진 기술을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늘의 형편을 볼 때, 아무리 빠르게 우리가 산업시대를 향해 진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진보의 영향을 입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실일 것입니다. 매우 오랫동안 근대적 발전은 그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좀 더 다른 생산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들의 도구는 근대적 기술에 비해 열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계획을 세워서,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도록 분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나는 이 문제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 <땅의 옹호> 101~102쪽

간디는 네루에게 산업화를 경계하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했지만 네루는 끝내 이를 무시했다. 인도사회를 서구사회 못지 않게 산업사회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은 민중의 고통뿐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짧은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과도 같은 메시지다. 권력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기업이 잘 되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부유해진다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워낭소리>의 최원균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농약이나 비료를 치면 땅이 죽고 소도 죽어 농사를 못 지어.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

적하효과가 사기라는 것은 <워낭소리>의 노인도 아는 사실

김종철 선생과 함께 '반성'의 깃발을 열심히 흔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재일교포 서경식 선생이다. 서경식 선생은 이른바 '경계인'으로서 '국가'라는 틀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르쳐준 귀중한 작가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허위성을 집중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다. 최근 출간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영희)에서는 이제까지 써 왔던 심미적인 문체를 누그러뜨리고 대중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책은 2007년 봄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진행했던 강좌와 그 해 가을에 성공회 대학교 NGO 대학원 학생들과 했던 세미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특히 2부의 제목인 <당연한 것을 다시 묻는다>가 '반성'의 키워드를 대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굳어진 것들을 집요하게 캐물어 우리 사회가 지나치고 있는 편견과 모순과 비합리성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일례로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안중근 열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라고 만세를 불렀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소개되면서 "대만민국 만세"라고 돌변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었다. 후세에 '대한민국'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안중근 열사가 했던 행동과 당시의 상황을 왜곡한 것에 다름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이런 역사적 상황일수록 시대성과 장소성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안중근 선생이 썼던 언어와 행동, 말을 사실 그대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식 선생 본인이 반성을 하는 부분도 있다. 이제까지는 '같은 동포'라는 일체감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2년간의 체류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로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위에서 연대의 길이 가능한지 찾아보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전환점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제목에도 '연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제는 반성이 경쟁력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잘못이다."(논어)

IT의 새로운 흐름인 오픈소스, 웹2.0은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위키피디아, 리눅스 등은 많은 사람들의 공유에 의해서 탄생한 산물이다. 이러한 새로운 온라인 패러다임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반성'에 있다. 오류가 나타나면 짧은 시간 안에 개선이 가능한 것은 실패에 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실패를 먹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면 그것은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자꾸 거짓을 하게 되고 피하고 숨고 누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얼마 못 가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답보상태인 까닭은 '반성'이 부재돼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잃은 쪽에서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아니라 편법과 술수로 그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는 바람에 국민의 마음이 떠나 버린 것이다. 반성은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반성만큼 유익한 행위가 또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반성하는 행동이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쓸만한 화두가 문화계에서 불어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성 바이러스'가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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