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의 단면이 잔뜩 담긴 사례를 이야기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학교의 교수로 있었는데,
일부러 헤겔과 같은 강좌를 개설했다가 그야말로 처참하게 깨지고 대학교수를 그만두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는 시대가 만들어낸 염세다.
10여년 전 나를 철학으로 처음 인도해준 <철학이야기>의 윌 듀런트는 쇼펜하우어 탄생 이전의 절망적인 상황을 괴테의 입을 빌려서 말했다.

"모든 것이 좌절된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을 신께 감사한다."(괴테 말년)

쇼펜하우어는 살아생전에 성공을 누렸다.
윌 듀런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게걸스럽게' 자신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구하기 힘든 자료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구해서 밤새 관음증 환자처럼 즐겼다고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진단하며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고 단정지었다. 아예 이 제목의 진지한 글까지 쓴 적이 있다. (당신은 혹시 쇼펜하우어 증후군?)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나처럼 PC방에서 밤새 외신 기사를 서캐훑이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은 쇼펜하우어 증후군과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합병증이다.

어떤 글을 쓰고 댓글을 확인하는 것을 정도껏 하는 사람에게 이 병증을 꼭 들이댈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정도가 심하다. 글이 베스트에 올라 하루에 수만, 수십만 명이 올랐을 때 하루에 접속하는 횟수를 상상을 초월한다. 초연한 듯 보여도 속은 게걸스럽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심하다.

그런 나에게 참으로 감당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오마이뉴스 메인에도 올라가지 못한 글이 방송에 채택돼 방송과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 한편, 인터파크 희망의 인문학 인문분야 선정위원 섭외, 최근에는 기형도 관련 전화인터뷰 요청...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름 파워블로거로 공인되기라도 한 듯이 이런저런 시선을 끌고, 또 나도 시선을 끌기를 싫어하지 않는 중증환자의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그냥 이런 시선을 발사대로로 삼아 우주로 날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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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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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유명한 인물은 마하트마 간디이지만 최근에 '아룬다티 로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작품으로 노벨상과 같은 급이라는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신데렐라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끝으로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결별한다. 이후로 댐 건설에 관한 아주 실무적으로 기술적인 글에 천착하더니 인도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 칼럼을 지속적으로 게재하는 공격적인 작업을 한다. 한국에는 《6월이여 오라》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녹색평론사 펴냄)이 일로 아룬다티 로이는 중산층의 총아에서 공적으로 전락하지만 그의 공격적인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비크람 세트(Bikram Sett),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i) 등과 같은 영문학 작가들이 영국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 맛살라 인디아 91쪽

인도의 외교관으로서 기업들과 자주 대면하는 저자는 으레 겉할기 정보로 가득 찬 안내서의 내용을 탈피하기 위해서 인도에서의 경험을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개인적 경험이 녹아들어가게 썼다. 그래서 신뢰가 갔다.

특히 이 책은 인도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들을 조율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알다시피 인도는 신성장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중국과 같이 양극화의 수렁에 깊게 빠져 있다. 그리고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엄존하는 현실이 있고, 폭탄테러 등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며 '현재진행형'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디라 간디 전 수상은 1984년 소위 ‘푸른별 작전’으로 불리던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강경 진압이 화근이 되어 암살당했다.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의 뒤를 이어 국민회의당을 이끌던 라지브 간디 수상에 대한 폭탄 테러는 인도 평화유지군 파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스리랑크 분리독립주의 무장단체 ‘타밀 타이거’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에서 정치,종교,인종적 갈등으로 인해 테러나 암살은 그 뿌리가 깊다. (맛살라 인디아 본문)

인도 정치 상황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담담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읽는 맛을 높여 준다.

그러나 심각한 불협화음을 안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인도의 국정 운영은 실제로는 민주 행정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연립정부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자신의 선거구와 소외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절충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최선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느림과 인내의 미학은 그래서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인도의 토양에 맞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최근 미국 CNN은 '인도가 중국을 추월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특집에서 인도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그 요지는 민주국가로서 견제와 절충이라는 합리적 틀을 갖춘 인도가 장기적으로는 일방적이고 탄력성이 없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추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물론 미국 저널리즘이 보도하는 내용을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저자가 학자나 문학가가 아니라는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팩트를 중심으로 하고 오랜 경험과 인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 오는 연구를 통해 지면을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에 대한 개론서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단, 인도를 여행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인도 여행서가 따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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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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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씩 읽었던 <바시르와 왈츠를>

예전에 한문 배우러 다닐 때 강독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삼국유사를 한 페이지씩 본다고 했다. 매번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게 삼국유사이지만, 아침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논어나 맹자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읽곤 했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최근에 좋은 기회가 생겨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았는데 영상미와 음악이 돋보였다. 그래서 책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다를까 하여 보았다. 처음에는 영화의 이미지와 책의 이미지가 같기 때문에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더 뒤적거리다 보니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폭력과 황폐화, 그리고 전쟁 경험으로부터 훨씬 멀리 도망갔는데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스라엘 퇴역병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전쟁에서 죽는 것과 죽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 첫 날이었다. 나는 채 열아홉 살도 되지 않았다. 아직 면도조차 시작할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호위를 받으며 한편은 과수원이고, 다른 한편은 바다 길을 끊임없이 총을 쏘며 내달렸다.
누구를 향해 쏘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단지 총을 쏘아댔다.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
전차병 :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은 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죠?
장교 : 쏴
전차병 : 네? 
장교 : 나도 몰라. 그냥 쏴.
전차병 : 기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장교 : 그럼, 총을 쏘면서 기도 해.

- <바시르와 왈츠를> 35~37쪽

전쟁의 모티브가 됐던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학살만 기억하기 쉽지만 학살은 맨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할 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학살보다는, 학살로 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의 존재가 갇혀 있기 떄문이다. 책 안의 심리 실험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전쟁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 팔다리를 자르듯이 기억의 못된 부분을 잘라버리는 인간의 코나투스(자기생존본능)가 절절히 흐르는 것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120쪽 남짓에 불과한 데다 만화책이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일독이 가능하다. 하지만 10번 정도 읽어야 작가의 메시지가 하나 둘 잡힌다.


광고불매운동과 바시르 사건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에만 천착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 갈마들며 살펴보게 된다. 그렇게 하는 독서가 나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관련을 짓는다는 느낌이 나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다.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정부를 실각시키고 수립한 괴뢰정권의 수장 바시르의 암살 사건에서부터 비롯됐다. 바시르를 따르던 팔랑헤당 당원들은 우리나라 현대사로 따지면 '서북청년단원'(서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승만에게 서북청년단이 있듯이 바시르에게는 팔랑헤당이 있었다. 팔렝헤당 당원들이 바시르를 따르는 것은 거의 광적인 추종에 가까웠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항상 바시르의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녔어. 바시르 목걸이나 귀걸이. 바시르 시계 그리고 이러저러한 바시르 등을.
바시르는 그들의 우상이었고, 슈퍼스타였지.
그들이 바시르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에로틱한 것이었어.
그런데 그들의 우상이 왕관을 쓰기 직전에 살해된 거야.
바시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끔찍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했어.
- <바시르와 왈츠>를 94쪽


이스라엘 군대의 비호를 받으며 사브라ㆍ샤틸라에 도착한 민병대원들은 그러나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이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튀니지로 모든 병력이 피신했고 남은 것은 어린이들과 노약자뿐이었다. 그들이 민병대원들의 처참한 희생량이 되었다. 파악된 것으로만 3,000명이다.

'뒷북 학살'이라는 건 시공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패턴이다. 우리 속담에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듯 제주 4.3 때도 무장대원들에게 습격을 당한 토벌대들은 무장대 색출을 핑계로 무고한 양민을 대량 학살했다.

조중동도 이에 비유할 수 있다. 2008년 5월 100만 인파가 분노의 촛불을 들었을 때 조중동은 대표적인 심판대상이었다. 시민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에 대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광고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본 조중동은 '희생량'이 필요했고 그것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카페다. 사실 그들은 조중동이 받았던 충격과 크게 관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개설자와 도우미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국가기관인 검찰과 공모해 탄압을 가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ㅎㅎㅎ'라는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적시했고, 카페 메인화면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넣었다. 참 궁색하다. 검찰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24인 대부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언론운동을 '살인'(초범)과 같이 보는 검찰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격렬히 싸우다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보다 더 처참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패잔병들에게 학살을 당하는 상황이다. 조중동과 검찰의 뭇매를 맞고 죄인 취급을 당한 언론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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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회원들이 만든 걸게그림. 왼쪽에는 허수아비 검사가, 오른쪽에는 '진실변호사'가 마주 서 있고 판사는 두 눈을 가린 채 저울추를 쥐고 있다. 이 날은 저울추보다 가린 두 눈이 더 눈에 띄었다.


재판이 끝나고 남겨진 사람들

재판이 끝났다. 사법부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재판부의 판결문은 검찰의 공소사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판결문을 판시하는 판사의 입에서 조중동이 애용하는 '광고주 협박'이라는 말만 나오지 않았을 뿐 내용은 조중동의 사설을 방불케 했다. 실제로 판사는 조중동의 논조를 바꾸려는 행위는 개별 독자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판결까지 뱉어냈다.
사법부는 50년 만에 소비자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했다. 앞으로 언론소비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모든 권리 신장 행위는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언소주에서 '법률도우미' 역할을 자청하고 광고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받은 법원 공무원 김대열 회원. 1심의 형이 확정되면 그는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법원이 권력의 자동판매기 역할을 또다시 반복했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직후 피고로 재판에 참석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http://cafe.daum.net/stopcjd, 언소주) 김대열 회원(벌금 300만원형)은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조중동이 이겼고 소비자가 졌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두 가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모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감히 말을 꺼내는 자가 없게 된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려되며, 자신이 일하는 법원이 정의와 인권의 보루가 아니라 권력의 시녀이자 자동판매기였던 굴욕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됨으로써 국민의 사법불신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개탄했다.

소주의 김성균 대표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대비해 여러 가지 성명서를 준비했지만 오늘 나온 판결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성명서로는 판결의 결과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식 밖의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다. 김 대표에 의하면 국회의원, 교수, 일반시민 등 3천여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언소주 카페를 통해서 이림 판사의 정당한 판결을 바라는 3천여 개의 댓글들을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2월 19일은 재판부가 언론운동에 사망선고를 내린 날임과 동시에 사법부가 권력의 힘에 굴복해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삭발단식하기 전 서초동 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언소주 김성균 대표.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가 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며, 언소주는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중동 광고불매 재판에 대한 현직 언론인들의 반응

조중동과 국가권력에 대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시민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아 언소주를 돕고 있는 민주시민언론연합과 언론노동조합의 대표들도 재판 현장에 참석해 지지발언을 했다.

민주시민언론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유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가 유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이번 재판을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과 조중동의 시대, 즉 야만의 시대에 언소주 회원들에게 무죄를 준다는 것은 곧 이명박, 조중동 시대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므로 법원은 반드시 유죄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이명박-조중동 정부의 탄압은 계속될 것이지만 오늘의 재판을 밑거름으로 삼아 시대를 극복하는 활로를 모색해야 하며 민언련도 이를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법원 앞에서 또 다시 상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상식에 근거하는 판결이라야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데 재판부는 상식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겉으로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해놓고서 이렇게 말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이중적 태도일 따름이라고도 말했다. 자신은 언론인으로서 오늘의 재판이 올바른 언론,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라는 시민들의 채찍질이라고 생각하며 언론인들도 이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자신을 '현직 외신'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이라크 전쟁 취재 당시 동료 기자가 머리에 실탄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귀국했지만 이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던 일을 말하며 특히 '시민언론'은 초심이 흐려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언론이 살아야 그 나라의 국민들이 살게 되기 때문"이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언론인은 시민운동의 불을 당긴 이상 '정세와 국면' 그리고 적확한 '대중전략'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해달라는 주문을 전달했다. 그에 따르면 조중동과 보수단체, 기업의 일반적인 CEO들은 혈족처럼 유착돼 있기 때문에 그 끈을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대한 현직 언론인들의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흩어진 말들을 모으며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기성의 논리는 조중동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중동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패러다임의 문제다. 언론시민들에게 잠재적으로 각인된 구시대의 잔재를 걷어내고 언론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다면 조중동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언론시민들이 정권의 재판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오늘의 사건에 대해서, 언론인으로서 국민이 내리는 채찍으로 받아들이며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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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 없었던 재판정 열기, 판사만 '나홀로 판결'

법원에 뒤늦게 도착했는데 재판정에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다른 공판때와는 달리 주요 방송사와 언론사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뤘다.

오늘도 회사에 '반차'를 냈다. 언소주 재판의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회사 일을 제쳐 두고 달려왔던 일들이 내심 미안해 어제는 밤샘근무를 했다. 회사의 정해진 휴일은 많아야 열흘을 넘지 않는데 20일 가까이 '휴가'를 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재판에 피고로 참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재판에서 받은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아랑곳없이 재판의 판결 결과는 허무했다. 카페개설자 회원에게는 징역 10월(집유2년), 구글에 광고를 올렸다는 혐의를 받은 한 회원은 6개월(집유2년) 등 중죄를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회원들에게도 300만원에서 100만원의 판결을 내렸다.

양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재판부가 판시한 각론의 내용이다. 재판부는 대체로 검찰과 조중동의 기소 내용을 그대로 인정했으며, 피해 기업의 측면에서 사안을 판단해 '친기업적 판결'을 함으로써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의 재판부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양형보다 더 무서운 건 재판부가 채운 족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광고중단 요구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위력이란 유무형과 관계없는 폭력으로 피해 기업들은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아 영업에 지장을 받거나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위력을 행사해 업무방해를 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시민들이 분노하게 된 원인보다는 분노의 결과 자체만 상세하게 비춰줌으로써 현 정부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아예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한 곳도 있었다.

곰모와 공동정범에 관한 부분에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명확한 형태로 모의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카페를 개설한 목적과 카페 회원들이 가입한 동기가 분명하고 광고주 불매운동의 성격과 경위, 형태, 과정, 그리고 피고인의 역할과 지배력, 장악력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암묵적 결합에 의한 공모가 이루어졌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암묵적'이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까지 시민들에게 죄의 척도를 들이대는 모습이 참 서글퍼 보였다.

위법성 조각 사유에 대해서도 정당성의 흠결을 지적하며 판단하지 않았다. 즉 헌법과 소비자기본법에서 정한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활동의 자유에 매개하는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유가 보장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법익을 거론하며 침해법익(보장된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자의 권리)과 보호법익(보장된 활동으로 행동하는 자의 권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해 '침해법익(조중동, 조중동 광고주)'의 손을 들어줬다.

조중동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다. 논조변경을 요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별 독자의 역사적인 판단에 맡길 일이지 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한마디로 조중동에 속고 있는 독자에게도 '당신 속았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무식한 백성이니까 한 번은 봐준다는 오만한 재판부

언소주 회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그 이유로는 ‘전과’가 없었고 광고불매 행위가 위법한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언론운동을 하는 소비자들이 잘 몰라서 한 행위에 대해서는 ‘한 번’은 봐준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2008년 5울 초순 촛불집회가 한창이었고 광고중단운동이 국민일반의 상당한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언소주 회원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을 참작했다고 단서를 달았다.

판사의 이 같은 판시는 사법의 한계와 이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동시에 시사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언론운동이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면 죄를 물을 수 없지만, 언소주는 규모가 조그만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있다는 모순이 생긴다.

재판부의 결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의 재판부이기 때문에 그 한계성을 명백히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광우병 쇠고기의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을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를 낸 임수빈 검사, 아니 임수빈 변호사와 10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시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들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 조항”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고 나서 현 정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법복을 벗기로 했다는 박재영 판사를 보면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로부터 법조문에 빠져서 판단을 그르친 사람을 일컬어 ‘도필리’라고 하는데 정권의 논리에 충실한 재판부를 보면서 도필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쨌거나 이림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은 뒤이을 항소심의 기준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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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09-02-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어이가 없더군요. 무식한 것들이 잘 모르고 한 짓이라 봐준다니-_- 법원 스스로가 얼마나 죽은 지식과 더러운 권력에 갇혀 있는지 깨닫지 않는 한 이런 황당한 판결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승주나무 2009-02-21 01:44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 님 말씀처럼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합니다. 법원에 가서 호소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손발을 둘 곳이 없는 신세죠 ㅠㅠ

Mephistopheles 2009-02-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지금까지 조중동의 허위보도와 중상모략에 대한 죄과는 누가 단죄한단 말일까나..아주 갈때까지 가는 사법부 되시겠습니다.

승주나무 2009-02-21 01:45   좋아요 0 | URL
사법부는 그걸 절대 단죄 못하고 시민언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09-02-1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사법부에는 기대를 안 건지 오래됐어요.

승주나무 2009-02-21 01: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귀찮게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