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WBC 대회 정치적으로 보기

한국이 세계적인 강팀들을 누르고 WBC에서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한국의 야구 실력을 우습게 볼 수 없다.
일본의 이치로에게 한 방 맞은 것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9회말 동점타로 만만치 않은 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이 스포츠에서 기적 같은 활약을 벌이면서
국민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었고, 잠시나마 삶의 고통을 위로해줄 수 있었지만
국민들의 고통은 다시 찾아온다.
매운 고추를 먹고 나서 얼음물을 삼켰을 때처럼 순간 매운 기운이 사라졌다가
다시 입가에 가득 침이 고인다.


▲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 이슈 때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경향신문의 만평


우석훈이 시사IN에 남긴 칼럼을 보면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가 한나라당 같은 수구보수의 텃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정치적으로 한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포츠 분야는 아무리 따져봐도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4년 주기의 월드컵과 한국의 지방선거는 주기가 딱 들어맞는다.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불행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한나라당에게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정치 성과를 안겨주었고, 이런 효과는 2006년에도 여전했다. 그러면 2010년 지방선거는? 지난 두 차례 월드컵은 지독할 정도의 쇼비니즘 월드컵인 데다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 지역에 조직을 가지고 있는 토호 세력에게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객관적 정황을 따지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한국 축구에는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예선 탈락해 한 번쯤 쉬어 갔으면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월드컵 주기를 피해서 지방선거 일정을 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본적으로 ‘엘리트 스포츠’를 지향하는 엘리트주의가 한나라당에 아주 잘 맞는 데다 지역 토호들, 이른바 지역 유지들과도 결합한 풀뿌리 조직까지 갖춘 한나라당에게는 특정 세력에 돈을 몰아주는 체육 정책도 잘 부합한다.
- 시사IN 78호, <진보 진영은 스포츠 정책이 있는가 >

나도 솔직히 우석훈과 같은 생각이다.
박찬호, 박세리라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고 하지만 실은 국민보다 실세 정치인들에게 더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3S의 본질이니까.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승전보를 올리고 나서 청와대가 했던 일을 기억하면 짐작할 수 있다.
선수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국민에게 자랑하고, 축하 행사를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귀국하지 못하게 한 '오버액션'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 만약 역전 우승을 했더라면 이명박 대통령께서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며 성명을 밝힐 테고,
청와대로 초청해 일본을 세 번이나 이긴 자랑스런 한국 건아들이라며 치켜세울 것이다.
그리고 병역 면제 문제를 주된 이슈로 띄우며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나도 야구대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이지만,
나에 비하면 이 '관록의 정치인'들이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 이번 WBC를 바라보는 속이 시커먼 사람들의 표정을 그린 경향신문의 만평

따지고 보면 스포츠 이슈에 묻혀 버린 정말 중요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나?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무효
41개 공기업 개혁 확정(사실상 민영화 발표)
일본 유일의 '강제징용전시관' 폐관 소식
강만수 장관 "양극화는 이 시대의 트렌드"

셀 수 없이 많은 이슈들이 묻혔다.
묵직한 스포츠 이슈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들이 겪는 정치적 손실이 너무나 크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또 월드컵을 치르겠다는 정부의 선언을 접하면서 참 씁쓸한 생각이 지나간다.
한국팀에게는 정말 아쉬운 순간이지만,
이제 WBC가 끝났으니 우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치인들을 향한 감시의 눈을 다시금 떠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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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이 한 달 내에 부대복귀를 해야 하는 이유


▲ 왕년의 아이돌 스타 젝스키스 출신 이재진 씨.

군대에서 병 인사를 담당하던 입장으로 이재진의 탈영 사태를 바라보면 이번 군무이탈의 경우 '예외적'으로 오래 걸린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군무이탈은 3일 내에 복귀하거나 검거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2003년 부대생활을 할 때부터 2년간 군무이탈자가 그 이전 2년에 비해서 5배 가까이 늘었다. 전군에서는 군무이탈 사건이 늘어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고심을 거듭했다. 군무이탈이 늘어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대 부적응자들이 해마다 늘어난 상황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군대에서는 새로 입대하는 병사들이 선임병에게 육체적이나 심리적 폭력을 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인사지침을 하달하기까지 했는데, 분대장 이외에 병 상호간에는 누구도 지시를 할 수 없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부대에서는 이등병을 '이등별'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이등병의 눈에 어긋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병사들은 신병을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이등병들의 탈영을 얼마나 완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재진은 이달 초 질병상의 이유로 휴가를 나가 지난 6일 부대 복귀 예정이었다. 하지만 귀대 예정일에서 17일이 지난 23일 현재까지도 자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3~5일 정도 내로 군무이탈 사태가 끝나면 부대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볼 수 있다. 영창은 피할 수 없지만 '기록'은 피할 길이 있다. 1개월 정도 안에 복귀를 하면 여지 없이 구속이 되지만 군무이탈 만큼의 군생활을 더 하기 때문에 영창에 있는 날이 많아질 뿐 본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은 피할 수 없다. 군무이탈로 구속된 기록은 전역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개인의 신상과 상관없이 무조건 복무해야 하는 규정 재검토해야..

문제는 장기 군무이탈 사태가 지속될 때다.
내가 근무하고 있을 때 근무이탈이 6개월 넘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단기 근무이탈은 상급부대 헌병대의 영창생활을 하게 되는데, 장기 근무이탈의 경우 육군교도소로 가게 될 확률이 높다. 초범인 경우 재판을 통해 형량이 가볍게 나올 수 있지만, 육군교도소로 간다는 사실 자체는 본인 경력에 엄청난 누를 남기게 된다.
때문에 인사장교들이 신병교육대나 부대교육 때 병사들을 향해 "최악의 경우 군무이탈이 일어났을 때 일주일 안에는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군무이탈을 할 수 있지만, 냉정함을 발휘해서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충고다.

살인죄의 경우 '시효'가 있지만, 군무이탈의 경우 평생 시효라는 게 없다. 매해마다 국방부장관 명의로 부대복귀 명령을 내리는데, 10년이 지나건 50년이 지나건 군무이탈자는 국방부장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명령불복종죄로 다스려지게 된다. 탈영자에 대한 군대의 조치는 이 정도로 엄격하다. 이재진이 해외에 망명할 것이 아니라면 그 역시 이러한 조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군무이탈한 병사들의 인사기록을 남길 때는 사유를 적게 돼 있다. 사유의 90%는 이성 문제이다. 정말 이성문제 때문에 탈영이 대부분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헌병대에서 탈영병에 대해서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통보해 주기 때문에 이 데이터는 100%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헌병대도 관료제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남겨야 한다. 특이한 사유가 나오면 별도의 보고서를 써야 하기 때문에 있는 사유 중에 일반적인 것을 적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재진의 탈영으로 인해서 그의 입대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답답한 사정이 있었다. 2006년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했으나 부실복무 혐의로 재입대 통보를 받은 데 불복,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재진은 끝내 패소해 지난해 8월 현역으로 조용히 재입대했다.

지난 2006년 아버지를 여읜 이재진은 군 복무 관련 행정소송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난해 5월 다시금 모친상을 당해 충격이 컸다. 부대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입대 후 이재진은 이따금씩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국군병원을 오가기도 했으며 측근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군 복무 당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육군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군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재진은 탈영병과는 분명히 다른 상태로 군 역시 걱정하며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 자진 복귀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군 생활을 하다가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군 생활을 중단하고 문제를 해결한 후 남은 복무기간을 채우는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재진의 경우 우울증이나 양친의 부고가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제도로서 이재진을 감싸지 못했다는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심신이 건강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현역 복무나 예비군 훈련 등 군대와 관련한 규정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격한 편이다. 군이 이재진의 군무이탈 사건을 쉬쉬하는 게 우연은 아니다.

규율만을 강조하는 일방주의적 군 행정은 앞으로 이런 사건사고와 피해자들을 계속 양산해낼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이재진의 부대복귀로 인해 조용히 해결된다면 군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끝나겠지만, 돌발변수로 사건이 확대된다면 군 행정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 법무관들을 파면조치하고 병사들에게 불온도서를 금지한 군대는 지금 이재진 한 사람을 노심초사하며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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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책을 읽게 되는 계절

대학 입학 때부터 철학책을 즐겨 읽었는데, 지난 십여 년의 구비구비마다 철학책을 읽게 되는 계절이 있다.
국문학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 공대에 들어갔지만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문학의 자양분을 얻었다. 문학에는 글을 읽는 행위와 이야기로 나누는 행위, 그리고 직접 글을 쓰는 행위가 있는데 글을 쓰고 싶었던 나는 내 글을 쓰기에 철학이 너무 빈곤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철학의 긴 여정이 그 때부터 시작된다. 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철학의 초심자에게 좋은 도우미가 돼 주었다. 러셀이나 코플스톤 같은 철학사를 여행하면서 서양철학(근대철학까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는데, 서양철학을 보면서 허무함이 몰려왔다. 나는 동양사람인데 서양철학으로서 대부분의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면 올바른 철학여정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미처 공맹과 노장, 그리고 한비자나 '자' 자 들어가는 동양철학으로 물흐르듯 넘어갔다.
기형도나 안도현 시인 등과 결별한 시점도 이 즈음일 것이다.
군 생활 동안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조그마한 불법을 저지름으로써 철학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모두 잠든 심야에 근무가 없는 날에는 화장실 불빛 밑에서 <에티카>를 다시 읽고 플라톤을 읽었다. 운 좋게 행정병으로 선발된 것도 있지만 부대 분위기가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정도 '짬밥'이 찼을 때는 주말마다 사무실로 가서 하루 종일 독서에 빠져들곤 했다. <소피의 세계>를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다가 전역 후에 철학을 꽤 오래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사회 현안에 깊이 천착하고 싶어서 대중 교양서를 많이 읽었다. 우석훈이나 장하준, 박노자 같은 사람을 통해서 내가 연결돼 있는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읽어낼 감수성을 익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들을 뒤로 하고 다시 철학책을 읽고 있다. 아무래도 변덕이 있는 것도 이유겠지만 십여 년간 독서의 방향타를 다듬어 왔고, 사회와 함께 책을 읽는 훈련을 해오면서 내가 어떤 책을 읽고 행동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지금 필요한 책은 철학책과 고전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회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살펴본 바로는 수십 년 동안 엉켜 있는 모순의 실타래가 있다. 그것은 당대의 지성만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을의 큰 선비는 다른 마을의 큰 선비와 벗하고, 한 나라의 큰 선비는 다른 나라의 큰 선비와 벗하며, 천하의 큰 선비는 역시 천하의 큰 선비와 벗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옛 현인들을 논하고, 그의 시를 음미하며, 그가 쓴 책들을 낱낱이 살펴본다면 그를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으랴. 때문에 그의 시대를 논하고 먼 옛 현인까지도 벗삼는 것이리라.
"一鄕之善士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論其世也. 是尙友也." 萬章章句 下-8


맹자의 위 구절을 요즘 자주 들여다 본다.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며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힘을 조금씩 모으듯 우리가 쌓아온 지혜의 우물에서 자꾸 물을 긷고 싶다.
인류가 정성스럽게 쌓아온 지성의 보고를 최대한 이용해 낡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사상이 요구된다는 것을 직관으로 느낀다. 나는 이런 패러다임을 창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리더십(ledership)이 아니라 펠로우십(fellowship)으로 새로운 패러다임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박이문 교수는 이 차이가 대표적인 철학사 서술 방식의 차이라고 말한다. 즉 역사 중심적인 철학사와 문제 중심적인 철학사가 분리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익숙하게 읽었던 철학사는 물론 역사 중심적인 철학사다. 철학과에서 교육을 받을 때도 역사 중심적인 철학 교수법을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철학자가 제시한 철학을 현재 나의 문제, 나의 시대의 당면문제로 전환해서 재구성하는 것을 나의 책임으로 돌렸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당시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철학자들의 메시지로 풀려고 노력하였으나 그 작업은 일반 독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단단했다. 오랜 세월동안 누적되고 얽힌 당면문제가 철학자의 몇몇 사상으로 단숨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철학 교육자들의 상상력 부재를 증명하였던 셈이다.

사춘기를 넘어 이만큼 성장한 철학소설 <드림위버>

<드림위버>뿐만 아니라 철학사 전체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것이 비록 철학의 최신 흐름이 아니라 외서가 국내에 소개되는 순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만, 철학사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당대, 현실의 문제 나의 주변의 문제로 철학사의 관심사가 전환되는 것은 철학사의 하나의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독일에서 60만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는 현재적 가치에 충실하면서, '현재적 물음'이라는 것이 사실은 영원한 질문의 다른 표정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드림위버>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소피의 세계>는 비유의 힘이 강하다. 이 무기를 통해 기본 명제로 달려갈 수 있지만 그 명제가 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소피의 세계>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를 보면, 소피가 철학 선생을 만났을 때나, 힐데와 소피가 만났을 때 느끼는 낯섦은 그것을 뜻하며, 그것을 지켜보는 주위의 반응은 걱정스럽다. 그들의 의식 속에 소피의 고뇌를 해석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마약'이나 '연애'를 유력한 원인으로 생각한다. <드림위버>는 바로 <소피의 세계>를 비롯한 기존 철학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철학사는 보학(譜學), 즉 자신들의 족보를 밝히는 작업에 치중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물질화, 비문화화, 비인간화, 소외화에 대해서 별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 않다. 대중들은 직면한 문제와 철학의 관심사가 멀어지는 순간 철학을 배부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브릿지 역할을 하는 것이 <드림위버>를 비롯한 새로운 철학, 즉 당면문제 중심의 철학 서술작업이다.
 
이와 관련된 철학 담론 중에서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철학사=철학' 담론이다. 철학사가들은 자신들이 하는 작업이 역사가 아니라 '철학'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시대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살펴보기 때문에 현재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들이 현재성을 불어넣기 위해 한 작업이라고는 과거의 철학사를 현대어로 번역한 수준에 불과하다. 박이문 교수도 "철학사는 과거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하나의 역사라는 점에서 철학적 지식에 불과하지 그 자체가 곧 철학적 사유는 아니다"고 규정했다.
그 외에도 내가 철학을 보면서 가장 중시하는 '사랑의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적 철학은 자신의 애정을 선대 철학자들에게 쏟는다. 철학자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승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철학자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당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철학자들은 당대인에 대한 애정으로 넘친다. 비로소 자신과 같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당대인들의 문제를 공감하며 그것을 철학으로 표현한다. 내가 철학서를 고를 때 이 기준은 무척 중요하다.

이제 <드림위버>의 이야기를 해보자. '이안'이라는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학자인 학구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적 담론에 쉽게 빨려들어갈 수 있다. 이런 캐릭터가 그러하듯이, 그는 늙수그레한 지성을 가지고 당면문제에 대해서 엄밀히 따져보고 가공의 노인과 함께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에서는 부모님과 그 문제를 환기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드림위버> 서술의 큰 틀이다.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잘 이해할 수 있는 '숙련된 조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설정은 차라리 솔직하고 전략적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이 책을 보는 대중들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주기는 하지만 철학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의 지성은 총 155명인데 단지 철학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실은 과학철학자)나 헤르만 헤세 같은 문학자, 칼 융 같은 심리학자, 유클리드 같은 수학자가 등장한다. 이것은 철학의 주제가 철학자에서 철학자로 계승된 이전의 방식을 넘어서는 '철학의 다양성'을 확보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하루에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다 보면 오래 전 느끼다 만 '법열'(法悅)이 생기는데 나의 생각이 자라는 느낌은 언제든지 기분이 좋다. 때문에 박이문 선생이 <드림위버>의 추천사에서 밝힌 평가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철학의 본질이 사유에 있고, 사유의 본질이 어떤 특정한 대답의 발견에 앞서 어떤 문제를 끝없이 추구하는 열린 과정에 있다는 점을 전제할 때, 이 책은 <소피의 세계>보다 성숙하고 철학적 방법이다. - <드림위버> 추천사


※ 리더스가이드라는 사이트에서 현재 <드림위버>에 대한 서평이벤트를 하고 있네요. 묵직해서 가격에 부담을 느끼신다면 신청을 해도 될 듯. 서평을 쓰면 책을 보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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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3-2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철학. 하면 찔림과 그리움이 한번에 밀려옵니다. 철학 소설이나 너무나 궁금하네요

승주나무 2009-03-25 13:44   좋아요 0 | URL
이 철학소설은 거창하게 철학자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수만을 이야기에 녹입니다. 철학자들의 이름과 개념은 옆에 붙은 주석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주석은 귀찮으면 그냥 통과해도 무방합니다.

마늘빵 2009-03-2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읽으셨군요. 저도 지금 읽고 있는 거 덮고나면 읽으려고 대기 중인데.

승주나무 2009-03-25 13:44   좋아요 0 | URL
네.. 아프락사스 님이 떠오르던 책이더라구요~
 

정명훈을 감싸는 두 가지 뉴스, 두 가지 이미지


▲ 유니세프와 함께 한 북한어린이돕기 서울시향 콘서트 포스터. 정명훈은 어린이 음악교실 해설자나 초중고 예술교육 강사 등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역할에 유독 집중한 활동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중에서 예술가의 인권이나 처우 등에 대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활동을 보이고 있지 않다.


레디앙과 참세상을 통해서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예술가 정명훈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국립오페라단 전직원 해고 사태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활동가들을 '계집애'라고 부르며 문전박대한 사건은 이제까지 그가 촛불집회에 대해 가진 생각,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까지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충격적인 일화였다.
한국에 정명훈 같은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서 자긍심을 느낀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으니까. 뉴스에서도 정명훈은 너무나 예쁘게 그려진다. (뉴스 링크함)

정명훈씨, 어린이 음악교육 해설자로 나서<한국일보>

- 문화부, '아름다운 만남' 프로그램 예술가와 학생이 함께하는 예술만들기<세계일보>
조수미·정명훈 초·중·고 예술교육 나선다
문화예술교육 명예교사로 3월부터 활동 <대한민국 정책포털>

레디앙과 참세상을 통해서 충격적인 뉴스는 앞선 뉴스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뉴스 링크함)

파리서 만난 예술가 정명훈의 슬픈 본색(참세상)
충격, 지휘자 정명훈 "미국에 구걸하더니 이제와 촛불?"

그를 만난 활동가들이 순진했다. 정명훈을 아는 프랑스 예술가들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정명훈이 절대로 동의를 하지 않을 거라고 귀띔을 해준 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그의 예술가적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예술가적 양심? 이 수완 좋은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적 양심이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이들의 만남은 충격적인 파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합창단이 없어졌다고, 그 합창단을 살려야 되겠다고 지금 여기 와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기에. 그 사람들을 꼭 구해야 돼요? ”
“합창단 하나 없어졌다고...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그리고,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서명하라구?”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주나 하면서 손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되는... 알았어요. 알았어.”
“도대체 제 정신을 좀 차리세요. 공부 좀 하란 말이야. 세상이 그런게 야니야. 이 계집애들이말야. 한 밤 중에 찾아와서.”


이제까지 뉴스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정명훈의 이미지를 만나게 되었다. 정명훈은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저기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여기서 그러지 말고.”라고 말했는데, 과연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언론에 자세하게 보도돼 있었다. 나는 올 1월 말에 보도된 정명훈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이번 뉴스와 비교해 보기로 했다. 


정명훈은 "진정한 음악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라고 말했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아프리카 베냉의 시장 골목으로부터 시작되는 뉴스는 정명훈의 표정을 세심하게 비추며 동선을 따라갔다. 이탈리아 수녀가 설립한 한 학교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아프리카 전통 악기 연주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어울렸는데, 배고픈 아프리카 아이들과 북한 어린이들을 돕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회공헌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저기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여기서 그러지 말고.”(레디앙 보도)

정명훈이 아프리카의 예술가라면 이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나 지식인은 당대의 현실에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 위선적인 지식인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폐단은 집안에서는 전혀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밖에서만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정명훈이 말하는 '구원'과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구원'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짓뭉개버리는 행위는 타당한가?

정 감독이 꿈꾸는 이상적인 오케스트라는 어떤 단체일까. 그 답은 단원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가족 같은 교향악단`. (매일경제 보도)
“이봐요. 내가 서울시향에 있는데 거기서 일 년에 5~6명씩 해고당해요. 여기만 해고당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니예요.”(레디앙 보도)

그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그가 한 언행들을 되짚어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정치인의 수사가 발견되고, 처세가의 면모가 보인다는 점이다.

"세계 어디에 있어도 내 마음은 언제나 서울시향에 있다"
"외국 유명 음대 박사학위를 받아도 프로 연주자로 성공하기 힘들어요. 그래도 아들의 열정이 대단해요. 베이스 기타와 더블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을 두루 배웠고 교회 합창단으로도 활동했어요." (매일경제 보도)

정명훈에게서 뼈아픈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정명훈과 언제 한번 터놓고 대화를 해본 적 있을까? 우리는 그저 뉴스를 통해 정명훈을 본 것뿐이고, 정명훈은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알려왔을 뿐이다. 레디앙과 참세상의 기사를 보면 이제까지 정명훈에 대해서 과도하게 포장된 이미지와 그에 대한 기대, 나아가 예술가의 본질인 자유주의를 체득한 현인의 모습까지 보인다.

정명훈에게 순수한 예술가적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
때문에 정명훈에 대한 배신감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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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명훈,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from 하민혁의 민주통신 2009-03-23 21:01 
    올블로그에 잠깐 들렀다가 괴상한 걸 하나 발견했다. 정명훈 관련 글 몇 개가 베스트로 내걸려 있었다. 웬일인가싶어서 관련 글들 몇 개를 찍어봤더니, 아뿔싸~ 또 저 지겨운 천둥벌거숭이들의 마녀사냥이다. 걸배이 근성이 뼛속까지 배인, 딱 아메바 수준의 뇌를 가진 듯싶은 단세포들이 벌이는 마.녀.사.냥. -_-정명훈,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뭐 자세한 내용이야 생략한다. 굳이 보고싶은 이들이 있다면, 레디앙에 올라온 전혀 충격적이지 않은, 충격, 지휘...
 
 
2009-03-23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5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승주나무 > 마르크스 열풍에 대한 국내 시장의 반응은?


▲ 1989년에 출간된 <자본론> 시리즈(총5권)은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초에 출간된 자본론 해설서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조사일 : 2009년 3월 17일)



마르크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 실제 판매는 어떨까?

중국에서는 한 달에 많아야 2~3질 정도 팔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영 신화통신과 각종 매체에서 이슈로 다룰 정도다. 마르크스의 고국 독일에서는 자본론 판매량이 이미 지난해보다 3배나 늘었다고 한다.
국내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칼럼니스트들이 마르크스를 자주 입에 담았고 마르크스 해설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흐름을 관찰하던 중, 인터넷 서점에서 자본론 관련 서적들을 검색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민주화운동 직후인 1989년 초에 출간된 비봉출판사의 <자본론> 시리즈가 아직도 심심찮게 팔리고 있었다. 인문분야 독자가 많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7천 대의 sails-point를 기록했다. (Sails-point(알라딘), 판매지수(예스24)란 인터넷 서점이 각자의 산출방식으로 매출실적으로 표시하는 지수) 하지만 뒤로 갈수록 판매지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출판영업의 관점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1권과 다른 권의 판매가 도서구매자들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호기심으로 첫 번째 권이나 두 번째 권을 펼쳤지만 도저히 다섯 번째 권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혹은 처음부터 한 질을 모두 구매했을 수도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출간된 지 불과 3~4개월도 안 된 두 권의 책이 20년간 누렸던 '원전' 자본론의 기세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출간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임승수, 2008년 12월),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지승호, 2009년 1월)는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묵직한 원전을 들고 있을 만한 여유가 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을 달래주는 패스트푸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원전보다 해설서가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작가 임승수 씨가 80여 명의 대중들 앞에서 책의 앞 장부터 끝장까지 차근차근 개념을 '강의'하고 있다. 


원전보다 해설서가 각광받는 시대

몇 달 전부터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를 오랫 동안 연구해온 세미나공간에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윤독과 발제를 번갈아 가며 힘들게 진도를 따라간 지 3개월 정도 됐다. 특히 1-1권에 있는 1편~4편이 자본론의 정수이자 가장 건너기 힘든 '대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수 차례 도하를 시도했지만 끝내 넘지 못했던 첫 번째 권은 오랫동안 자본론을 읽어온 대학원생들에 의해 설명을 들으며 일독 정도 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3월 12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장소 : 신촌 아트레온 토즈)은 많은 독자들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효용 가치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자본론 1-1의 주요 개념들을 '선행학습'할 수 있다. 그리고 원전의 무게를 견디지 않고서도 어디 가서 마르크스에 대해서 '아는 척'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임승수 씨도 "내가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할 정도로 이 책은 철저히 자본론 원전 이해에 충실하고 있다. 자본론 1-1권에 부딪힌 독자라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1~6강을 훑고 재도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자본론 서두에 등장하는 난해한 개념을 작가는 아주 쉽게 설명하는 범상찮은 기술을 선보였다.

"상품이라는 녀석의 특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쓰기 위해서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상품이 아니다. 상품은 팔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이 때 팔 수 있는 상품은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상품의 사용가치에 해당하며, 그것에 값을 매길 수 있을 때 이를 교환가치라고 한다. 두 개의 전제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상품이 성립된다."

상품과 사용가치, 교환가치 같은 어려운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하며 화폐와 노동, 자본에 대해서도 곧잘 정리했다. "수많은 상품 중 하나가 튀어나와 화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거래가 늘어나고 재화가 발생하면 화폐의 등장은 필수적이다"라는 설명은 화폐가 상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자본론의 요지를 온전하게 설명했다.
강연장에는 80명 넘는 인파가 몰려 뒷자리 보조좌석과 바깥에까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나이는 대학생부터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강연의 콘셉트는 책의 기획의도에 충실했다. 강사는 1강~15강까지의 챕터를 리플레이해주었다. 현장에서 강연의 분위기와 내용을 지켜보며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지만, 약간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 60석 남짓한 좌서에 빈틈이 없었다. 이것은 앞칸의 모습에 불과하다. 뒤쪽에는 보조의자를 긴급투입했으며 옆방에서까지 강연내용을 지켜볼 정도였다.



되살린 마르크스의 기억, 씨앗은 언제 꽃필까?

"자본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공감하려면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책은 단지 거기에 사다리를 하나 놓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임승수 씨는 자신의 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겸손하기보다는 당당한 멘트로 이해됐다. 구체적인 양태나 방법이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는 것은 미래를 위해 유의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것이 현실의 고질적인 모순을 분쇄하는 무기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대중강연장이 아니라 '헌책방'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 자본론 원전 이해를 위해 헌책방에서 발굴한 책들이다. 자본론의 오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론'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 때 이영협의 <경제학>이 쓸모가 있고, 자본론의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제사적 관점을 길러야 하는데 일반경제사요론을 구할 수 있으면 좋다. 마르크스가 특히 공을 들이던 주제는 '소외'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포함해 소외에 관한 전반적인 담론을 살펴보고 싶다면 정문길의 <소외론연구>를 권할 만하다.


현재의 전방위적인 위기상황은 현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천년에 걸친 모순들이 엉키고 설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단지 대중적인 담론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지성을 통해서 전승된 맑은 담론, 거친 음식과 같은 원전을 힘겹게 소화해야만 미래의 문이 열린다.

요컨대 우리 사회가 마르크스에게 시사점을 얻기 위해서는 젊고 노련한 지성에 의해서 연구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류의 해설서는 철저히 기능서로 분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상황이다. 우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페이퍼에 참여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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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9-03-17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계자료에 대한 해석에 약간 의문이 드네요. 알라딘과 예스의 회원 성향이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자료인 것 같아요. <원숭이도>와 <김수행> 이 두 권의 판매량만 놓고 볼 때, 알라딘과 예스가 거의 2배차이가 나는데요, <자본론>의 경우는 역으로 2배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있어요. 이를 좀 더 확대해석하면 알라딘과 예스의 회원수의 차이가 전자에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예스가 알라딘에 비해 회원이 크게 많잖아요? 그렇게 볼 때 알라딘 독자들이 <자본론>을 무시무시하게 사들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위의 자료를 두고 알라딘과 예스를 일괄적으로 통합해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여요. 3권의 절대 판매량이 예스가 많지만, 알라딘에서의 판매비중이 훨씬 놓을 거라는 판단에서요.

위의 글에서의 통계자료에 대한 해석에서 현재 <자본론>에 대한 판매량보다 다른 2권의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셨는데, 이는 <자본론>이 전5권이라는 점, 출간된지 20년이나 됐다는 점 등을 너무 간과하시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알라딘만 놓고 봤을 때, 출간된지 20년된 책이, 게다가 어렵다고 소문난, 제1권만도 7000부 이상 팔렸다는 건 <원숭이도> 8000여권쯤은 비할바가 아닌거 같은데.

위의 자료를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하자면, 알라딘의 <자본론> 전5권의 판매량 총합만 놓고 볼 때, 나머지 두권의 최근 판매량을 합친 것보다도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우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결론 도출를 위한 성급한 해석이 아니었나 싶네요. ㅎㅎ

승주나무 2009-03-20 10:11   좋아요 0 | URL
댓글 늦어 죄송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통계치에서 적용해서 작성한 것이니만큼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자본론이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최근 출간된 2권의 위세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르크스 열풍과는 상관 없을 정도죠.

따끔한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