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도를 묻는 거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내가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을 왜 그렇게 한 거냐?"

<밤은 노래한다>의 작가 김연수가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에게 대뜸 물었다.
<밤은 노래한다>의 경우 주인공 해연은 원수와의 재회에서 그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김연수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를 용서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을 불행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으면서도 그 가족을 웃으면서 맞아야 했던 할머니의 가슴앓이가 깊게 녹아 있는 다큐멘터리의 최대의 고민은 당사자가 아닌 후손으로서 그의 후손(친구이기도 하다)을 만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이다. 재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멈추지만 관객들 중에는 어머니로 하여금 그 친구를 만나도록 강요한 감독을 원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소설가 김연수도 "안 갔으면 좋았겠는데 가더라"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김연수 작가(왼쪽)는 다큐멘터리에 약하다. 푸지에를 보고 나서 '준비되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고, '워낭소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김연수의 블로그에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알라딘과 인문사회출판협의회는 김연수 작가를 시사회의 게스트로 초대했다. 오른쪽은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


문정현 감독은 담담하게 답했다.
만약 이 영화에서 패배의식을 읽으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한계이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상대, 중대마을과 하대 마을 어른들이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
그 자식들인 어머니 세대에서는 화해가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하려고 강요도 하고 오버도 했다고 말했다.
솔직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심오한 의도와 철학적인 답변이 아니라 내 이웃, 내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답변이라 더 좋았다.

김연수 작가가 동석을 해서 그런지 관객들은 <밤은 노래한다>의 내용과 결부시켜서 질문을 했다.
김연수는 소설의 작업과 다큐멘터리의 작업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만드는 직업은 상당히 이념적이다. 내가 이런 결말을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사실과 결부되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다큐의 묘한 매력이다. 팩트도 있고 드라마도 있지만 흐름 자체에 몸을 맡겨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 자기 개인사와 결부된 현대사를 표현하는 것은 보통 작품을 표현하는 것보다 갑절의 고민과 공력이 든다.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자기가 입은 피해의식과 대중의 인식 사이의 벽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켰다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 사람이라는 소박한 관계망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주도 사람으로서 나도 제주 4.3에 관해서 형상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좀처럼 형식이 잡히지 않았다.
자기가 입은 피해의식과 대중의 인식 사이의 벽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켰다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 사람이라는 소박한 관계망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문 감독은 언제부터 이것을 만들려고 생각했을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최초의 시점은 언제였을까?
그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라는 어머니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다큐멘터리가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문 감독은 영화를 접으려고 했다.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도 할머니에 대한 선물이라는 소박한 목적이지만, 영화를 접으려는 것도 역시 할머니의 죽음에 의한 영화 정체성에 대한 불확신이다. <할매꽃>은 철저히 문정현 감독의 사적인 영역에 있다. 이것은 단점이기보다 오히려 강점일 수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표현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능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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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무장군의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목 하에 4월 1일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1968년, 자료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2009년의 여성 향토예비군 창설 현장. 위의 사진과는 41년 차이가 있지만 여성향토예비군이 창설될 때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의 상황과 권력의 위기감이 그것이다. 여성 예비군은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4조 “예비군 대원에 지원할 수 있는 자는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남녀”라고 명시된 조항에 근거해 편성되고 있다. (1968년, 자료 : 연합뉴스)



최근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여성예비군 부대를 창설한 것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여성예비군이 탄생하는 데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는 북한의 도발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예비군은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창설된다. 1968년은 북한의 도발 행위로 한국전쟁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긴장된 해였다. 강경파가 온건파를 숙청한 북한은 남한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응수로 대남도발을 집중적으로 벌였는데 1월 21일 북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휴전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까지 나타난 것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틀 후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가 북에 의해 나포되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그 해 11월에는 또 울진과 삼척 일대에 무장 게릴라들이 침투하는 사건이 있었다.
2009년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다시 남북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들면서 북한은 핵과 함께 최근 대포동2동호로  미사일
로 추정되는 미사일 발사 준비를 끝내며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미 금강산 관광은 물론 개성공단까지 폐쇄한다는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남북은 정부 접촉은 물론 민간접촉까지 차단된 상황이다. 남한은 공안검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둘째는 북한의 도발 등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권력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다.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한반도는 적대적 상황을 이용해 극우정당이 권력을 잡는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고이즈미, 아베 전 총리나 현 총리 역시 북핵이라는 국면 속에서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북한의 도발 등 불안정한 대외 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1968년 여성예비군 창설은 박정희의 정권 강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고, 학원에서 군사교육(약칭 교련)이 강제된 것도 이 즈음이다. 유신체제 내내 박정희는 북의 도발과 그에 대비한 안보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유지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셋째는 언론의 설레발이다. 위의 사진에서는 '승공의 아성되길'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북괘야욕을 분쇄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도 보인다. 이것이 1968년의 신문기사이다. 2009년의 기사는 어떨까?

향토방위 '아줌마'가 책임진다
"아줌마의 힘, 향토방위 거뜬해요"…女예비군 훈련 열기
듬직한 "향토방위대" 여성예비군
“시누이ㆍ올케 우리가족은 여성 예비군”
 ‘아줌마 부대’ 나라 지킴이 맹활약'' 

언론사에서 뽑은 제목들이다. 하나같이 예찬적이고 피상적이다. 이것은 신문을 읽는 소비자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씁쓸하다.
자주국방과 여권의 신장으로 인한 향토예비군 창설 취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지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역사상 향토예비군을 권력획득과 체제유지로 이용하지 않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국현대사 1호인 서중석 선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를 참조했다. 여성예비군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중요한 맥락을 기사나 사진자료, 통계 등을 통해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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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8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신정근 지음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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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10종의 서로 다른 <논어> 책을 보았고 100번 정도 읽었다. 그래도 필요한 구절을 곧잘 꺼내 쓰지는 못한다. 내가 읽는 논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남회근 선생의 알기 쉬운 논어강의(상,하)>(씨앗을뿌리는사람)과 <주주금석 논어>(현음사)인데, 전자는 논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중국 대륙의 역사를 한 노인의 이야기로 녹여내는 맛이 좋았다. 2권의 매우 지나치게 두꺼운 분량이지만(가격도 그에 대비하여 세지만) 내가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다. 후자는 문장 해석상에서 많이 도움을 얻은 책인데 한문학 교수의 자문을 듣고 구입해 지금까지 읽고 있다.


<논어>를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읽을수록 맛이 나고 생각해볼 여지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귐’도 마찬가지로, 한 번 보면 더 만날 필요도 없는 사람보다는 만날수록 재미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법이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사계절)은 하이퍼텍스트와 오픈텍스트의 웹2.0 정신을 동양고전에 시도한 재미있는 책이다. 하이퍼텍스트란 구절과 구절이 연결돼 있어서 비교해 볼 수 있다는 뜻이고, 오픈텍스트는 해석의 여지를 애초에 넓게 열어둔다는 뜻이다. 국문, 원문, 음을 병기하고 주요 구절마다 논술제시문과 논제를 도입한 다용도의 구성방식과 유가, 도가 등을 섭렵한 작가의 성실함은 어떤 독자든 이 책 한 권으로 논어에 다가감에 무리가 없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전통적 해석 방법에 대한 마르지 않는 비판정신이다.

한문은 '문리'라고 해서 반복적으로 읽고 암송하면서 그 뜻을 통째로 외우게 되고, 그 범례가 '문법'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옛 사람들의 번역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병폐가 많았다. 논어의 편명을 앞자리 두 개를 따서 쓰는 부분에 대해서도 대체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한학자 선생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사학(斯學, 유학을 사학이라고 부른다)을 하는 사람들은 선인이나 스승, 선배의 저작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부딪치는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논어책 한 권을 읽으면서 참신한 해석 4~5개 정도 얻으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지만,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는 각 장마다 4~5개 정도의 참신한 해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 내가 10년 넘게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깨질 때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시대마다 고전이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그 시대의 색채가 오롯이 담긴 번역일 때 이 말은 유효하다. 이런 저에서 우리는 2009년에 어울리는 논어책을 한권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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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3-2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번! 그래서 네가 뼈대 있어 보였구나.ㅋ
이런 책은 나도 읽어보고 싶네!

승주나무 2009-03-27 21:53   좋아요 0 | URL
읽을 때마다 달라요.. 함 읽어보시면 꼭 좋을 듯~
쉽게 쓰여져서 잘 맞으실 거에요~

2009-03-2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바로 보관함에 넣어봅니다.
어서 신선한 해석을 만나고 싶네요 ^^
 
기술과 명예를 가진 자들의 레드 예리코 작전 - 태양의 딸을 찾아서 HGS 비밀결사대 1
조슈아 몰 지음, 강미경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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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레드 예리코>의 활동 무대. 중국 본토와 남중국해, 영국, 이탈리아 피렌체에 걸쳐 있다.


세계 무대와 2천년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들이 노리는 물질인 '태양의 딸'과 그것을 얻기 위한 열쇠인 '자이롤라베'는 기원전 326년 알렉사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33년 과학자와 탐험가를 주축으로 결성된 폐쇄적인 HGS(명예로운 전문가 동업조합)은 자신들의 기술과 지식으로 세계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지만, 3개의 분파로 갈라지고 분파들이 악당들과 몸을 섞으면서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 '태양의 딸'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들과, 그 음모를 막으려는 자들로 나눠지고 이 작전에 긴밀하게 간여한 더그와 레베카의 부모님과 삼촌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물론 이러한 구성은 작가에 의해서 나온 것이지만 세세한 정보들은 분명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에 의해서 나왔다는 사실을 몇 페이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혀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접하며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건너며 중간중간에 밀봉된 '기밀사항'을 긴장된 마음으로 뜯어보았다. 그리고 전투함의 구조라든지 기구의 사용법을 익히며 마치 내가 그 모험에 동참한 듯한 착각을 느꼈다.

고집스럽고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쾌활하고 모험을 즐기는 두 남매 더그와 레베카는 실종된 부모님을 찾기 위해 삼촌을 찾아가는데 부모님의 실종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뒤늦게 사실을 알아채게 되고, 자신들이 그 비밀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HGS 출신의 부모님들의 피를 물려받은 남매 답게 모헙을 피하지 않으며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 예기치 못한 순간들과 적들을 물리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엉뚱한 꼬마과학자 더그가 발휘하는 기지는 번번이 나를 놀라게 만든다. 



<레드 예리코>의 3대 미덕

나는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 다빈치 코드 등 영국적 상상력과 위트가 풍부한 소설들을 읽기에는 나의 독서 목록표가 너무 완고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레드 예리코 작전>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영국 소설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영국인들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레드 예리코>는 우선 성실하다. 어떻게 구상하고 어떻게 디자인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텍스트의 흐름에 맞게 신문기사와 방의 구조도, 장치의 사용방법 등을 면밀히 기록해 놓았다. 특히 선박에 대한 정보 등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부를 많이 한 듯하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데뷔작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룬다티 로이는 그 후로 단 한권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핵실험, 대형댐 건설 프로젝트,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는 정치칼럼을 쓰면서 댐에 관한 기술서, 토목공학에 관한 실무적인 책들을 수없이 공부하며 정치칼럼가로서 다시 한번 태어난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술이나 물리 등에 대해서 소홀히 생각하거나 가볍게 생각하기 쉬운데, 작가가 그런 지식을 갖고 있고 열정적으로 그런 지식을 흡수한다는 것은 분명 뛰어난 자질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 많은 참고문헌이 소용된 소설책은 처음 본다. (책의 말미에 보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참고문헌의 목록이 가득 채워져 있다)

레드 예리코의 구성은 더그와 레베카라는 똑똑하고 까칠하며 고집스러운 남매가 실종된 부모님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모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급격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두 아이의 일기장과 스케치를 통해서 장면들을 환기해 준다. 소설의 내래이션인 셈이다. 소설이 흘러가면서 캐릭터들은 성장을 거듭한다. 성장을 거듭할수록 적들도 더 강해진다. 전형적인 게임의 원리이지만, 생각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생동감 있다. 레베카의 캐릭터는 더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캐릭터 부분도 흥미를 줄 것이다.

캐릭터들의 생생한 대화와 행동은 이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특히 악당에 대한 묘사에서 작가는 경지에 이룬 것 같다. 그 중에서 악당 성팟에 대한 묘사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못됐다'. 성팟은 자신의 요새 주위를 호위하는 무장 경비병을 300명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직접 V자 표시를 새겨 넣었다. 그 표시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같은 것인데 이 표시를 한 이유는 누군가 부하들을 자청하며 요새로 숨어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만약 성팟의 부하로 변신해 침입하고자 한다면 우선 V자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성팟이 직접 한 것이기 때문에 부하를 가장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이처럼 <레드 예리코>에 묘사된 악당은 용의주도하면서도 끔찍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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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할매꽃>, 새벽 3시에 우리의 할머니들이 몸부림쳤던 '그날'

작가, 감독과 함께 한 다큐 데이트


▲ 할머니에게 보여드리려고 만들었다는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은 개봉되지 못할 뻔했다. 문 감독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영화가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문 감독은 영화를 접을까도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할매꽃>은 (당시)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말못할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서 손자인 감독이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현대사와 가족, 이웃, 인간의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큐멘터리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소설가로서 감정 이입이 잘 되며 스크린 바깥, 그리니까 찍지 않은 부분과 다큐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 상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극 영화는 스크린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는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3월 18일 저녁 알라딘과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할매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러 갔다 왔다.(홍대 KT&G 상상마당) 이미 DVD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소설가 김연수 작가가 힘을 보태기 위해 흔쾌히 자리에 동석했다. 그의 최근 작품인 <밤은 노래한다>의 상황을 한 마을의 한 가족에게 대입한다면 <할매꽃>과 비슷하게 그려졌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팜플렛을 통해서 현대사와 가족의 문제를 다룬 다큐라는 설명을 보고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은 대개 극적인 부분을 과장하거나 너무 진지해서 지루한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종류의 난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객관적인 위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작업을 하는 내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문정현 감독 본인도 "앞으로 다시는 가족에 관해 찍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 난제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었을까? 영화는 문 감독의 감미로운 나래이션으로 시작되었다. 문 밖에만 나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좋은 할머니의 인생이 그 비밀을 드러냈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던 감독은 결국 영화를 할머니의 영정 앞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문 감독은 우선 작품의 범위를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 철저히 한정했다. 전쟁 상황에서 학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갈등과 국내의 상황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당대의 상황은 마을 안에서도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그 동안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치 상황이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얼키고 설킨 인간적 감정들이 정치적으로 반영돼 비극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현대사를 둘러 보면 개인의 사적 감정이 국가 대사에 공공연하게 개입되는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컨대 제주 4.3 당시 제주민들을 가장 가혹하게 괴롭혔던 사람들은 북한에서 쫓겨난 부잣집 자식들로 이루어진 서북청년단원이었다. 이들은 반동분자 색출이라는 명분을 개인적 감정과 구분하지 않았다.


새벽 3시에 미친 사람 같이 몸부림쳤던 그의 외할머니와 나의 외할머니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폐부 깊숙이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나의 개인사 속으로 다큐멘터리가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나아가 나의 비밀까지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던 동네 친구에 의해서 동생이 즉결처형되고 또 다른 동생은 고문으로 잃고, 면회간 다른 동생은 경찰이 쏜 공포탄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가세가 완전히 기울고 남은 전답을 마저 팔아야 하는 날 새벽 3시 외할머니는 산발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자신의 소유였던 밭을 헤매며 죽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우물에 몸을 던지려고 우물 안으로 고개를 쳐드는 순간 달빛에 비친 우물물 속에 자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떠올라 끝내 죽지는 못했다고 한다. 새벽 3시에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추억이 겹친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4.3 당시 희생된 친척이 있는데, 지식인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영문도 모르게 잡혀간 이후에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책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에 살던 지식인들은 제거대상 1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감춰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책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새벽 3시마다 남몰래 책을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이 끝도 없어서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머니는 만약 그 때 책을 태우지 않고 남겨 두었더라면 골동품 가치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마을과 중대마을은 예로부터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대마을'이라고 불리던 '풍동마을'은 하인이나 천민들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의 감정의 골은 깊을 대로 깊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 감정의 골은 여지없이 비극을 낳았다. 비극으로 인해 선량한 한 가족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의 가족을 만나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다큐멘터리는 영화 내내 고민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할매꽃>은 '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의 주제는 철저히 '인간'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작용한 결과가 현대사의 비극이며 <할매꽃>의 주변을 이루는 이야기일 뿐이다.

워낭소리가 인생의 큰 의미를 알게 해주는 훈훈한 다큐멘터리라면 <할매꽃>은 이제 당신의 고민은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물음을 던진다. 문정현 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후 나눈 인터뷰에서 "고민하지 않고 완결되는 다큐멘터리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 안에 담긴 깊은 질문과 서사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영화와 인터뷰가 끝나고 밖에서 서성대다가 문정현 감독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4.3 이야기가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데, 문정현 감독은 소설이 되었건 영화가 되었건 지금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으로서도 '해원'할 것은 반드시 해원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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