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 - 교통안전과 학교생활 안전 어린이안전 365 2
박은경 글, 김남균 그림, 한국생활안전연합 감수 / 책읽는곰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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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가위에 손 잘릴 뻔했던 이야기

 
7월말에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예비아빠다. 아이에 관한 책들을 많이는 보지 못하지만 줏어듣는 게 많아진다.
특히 우려되는 게 아이들의 안전사고다. 아이 때는 멋모르고 놀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집이나 학교는 흉기덩어리 같다.
책상 모서리나 문지방, 책이나 숟가락 하나같이 흉기가 아닌 것이 없다.

사내아이라서 그런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았다.
아직도 그 감각이 생생히 살아있는 유치원 때 사건인데, 2단짜리 여닫이문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친구가 문을 확 닫는 바람에 손이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손에서 팔까지 피가 낭자했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도 이에 못지 않은 사건들이 많았다. 

 
▲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배우는 과목 때 유독 사고가 많이 난다. 가위나 펜은 특히 위험한 도구다.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가위에 손이 잘릴 뻔한 사건이다. 친구가 내 가위를 가지고 엿장수 놀이를 했는데, 가위가 필요한 나는 친구에게 가위를 달라고 손을 건넸다. 엿장수처럼 두 손으로 가위질을 싹둑싹둑하던 친구는 내 손을 보지 못하고 손에다 가위질을 해버렸다. 손이 2cm쯤 잘렸고 피가 흥건했다. 어린이라 악력이 세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지만 손이 잘린 것 같은 공포심에 질렸던 하루였다. 
 

▲ 남자아이들은 돌멩이로 곧잘 장난을 친다. 돌멩이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머리나 어깨 등에 맞으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방과후에 친구들과 돌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내 친구가 무심코 던진 돌이 눈 바로 아래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때리는 바람에 피가 났던 적이 있다.
어른들이 했다면 하나같이 범죄에 가깝겠지만 아이들은 무심코 이런 일들을 저지른다.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손길


어린이 안전을 위한 공익그림책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것이다. 책은 그림도 별로 없고 딱딱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안전 가이드북 같은 게 있다면 엄마들이 가장 큰 위안을 받을 것이다.
<책읽는곰> 출판사와 <한국생활안전연합>이 공동으로 펴낸 <어린이안전365>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박은경 글, 김남균 그림)은 어린이의 동선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종 사고사례를 묶어서 예쁜 그림으로 표현한 어린이책이다. 집에서 학교에 가는 길까지의 길목과 학교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사건사고가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골목길에서 운전을 하다가 고양이처럼 아이들이 휙 튀어나와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던 경험이나, 길을 가다가 멈추면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서 걸어오던 사람이나 자전거가 방향을 잡지 못해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내용은 실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그 외에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건넌다든지 차가 멈추는 것을 보면서 길을 건넌다든지, 횡단보도 오른쪽에서 길을 건너면 사고위험이 훨씬 줄어든다는 세부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림은 스케치북에서 갓 그려낸 연필화에 파스텔을 입혀서 친근하다. 컴퓨터그래팩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쓱싹쓱싹 그린 그림이 아이들에게 접근성을 높여준다.

길 건널 때 조심해라, 친구들이랑 싸우지 마라, 학교에서 장난 심하게 치지 마라 같이 추상적이고 따분한 충고만을 일삼던 부모님들은 이 책을 통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아이와 차분하게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본다면 안전사고를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 <책읽는곰>과 <한국생활안전연합>의 합작품이다. 자주 일어나는 어린이 안전사고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와 예방법 등을 예쁜 그림으로 사실적으로 그려 부모님들의 걱정을 조금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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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정치인 유시민에게 종이컵 하나 선물한다

 
▲ 3월 30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유시민과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진행자로 나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욕을 많이 봤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제도정치 경력 6년차의 휴업상태라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정치인'이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와 알라딘이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대화에 나온 유시민을 어떻게, 어떤 존재로 보아야 하는가는 나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여의도 정치에 대한 그의 반감이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궁금했고, '관조자'로서 이번 국면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새 술을 담기 위해 유시민이 새 부대를 장만했는지 보고싶었다.

"대한민국,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유시민, 오마이뉴스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다. 작가나 지식인의 말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 <창작자유의 조건>《김수영 산문전집》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 나는 유시민이 너덜너덜한 정치인의 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모호함에서도 발견된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만큼이나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지식인'과 '장사치'의 중간사쯤 될 것이다. 유시민의 위상은 지식인과 장사치, 정치인 중 어디에 놓여 있는가? 이런 용어의 모호함 때문에 얼마 전 된통 야단을 맞았다. 르네21에서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선생을 초청해 강연회를 할 때 나는 <과학윤리>의 문제를 물었다. 선생은 대뜸 "과학의 윤리 이전에 과학자의 윤리가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사치스럽다"고 답변했다. 과학계 내부의 통제가 안 되고, 과학 언론이 살아서 과학의 모순을 밝혀내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황우석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과학계에 '과학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유시민은 '조어'가 아니라 '표제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유시민과 종이컵

홍대의 '홍콩반점'이라는 음식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 집은 서빙교육을 엄격히 시키는지 손님을 접대하는 요령과 폼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젠가 헛점을 발견했다. 볶음짬뽕은 현금으로 시키고 탕수육은 카드로 주문했는데, 볶음짬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짬뽕'이 나온 것이다. 예측된 시나리오에서는 완벽하지만 예측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유시민과의 간담회에서 공교롭게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달변의 유시민과 본의 아니게 난상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양비론으로 답변해서, 나는 처음으로 '재질문'을 했다.
질문의 요지는 특이하지는 않았다. 사상 최초의 역정권교체를 당했는데, 사상 최초의 정권재탈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2~3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20대가 50대와 정치성향이 비슷하다는 답변을 하며 은근히 20대를 깔보는 '꼰대근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30대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들은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헌법조항'의 소중함을 알지만 '어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사실 그는 2~30대에게 해줄 답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종이컵'의 비유로 답변하고자 한다.
일회용 종이컵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다시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대는 박스 안에 담긴 종이컵처럼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30대 초중반은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과외나 사교육 열풍이 그다지 심각했던 것도 아니고 싸워야 할 독재정권이 엄존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릴 기회가 있었다. 이들이 새로운 종이컵이다. 자유를 누린 만큼 현재 상황에 대한 빚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을 포함해서 386들은 한번 쓰고 난 종이컵이다. 종이컵에 커피를 부었든 떡볶이를 담아 먹었든 쓰고 난 종이컵을 잘 닦아야 또 쓸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잘 닦은 것처럼 보이지만 홈에는 아직도 떡볶이 자국이 남아 있다. 물을 넣어 마시면 떡볶이 냄새가 난다. 홈까지 아주 정성스럽게 잘 닦아서 '새 종이컵'으로 승화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참여정부 시절과 지난 10년의 민주적 성과를 낙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386의 상황을 최첨단으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지는 않다. 유시민의 책이 의미를 얻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지난 시대에 대한 총정리이자 반면교사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후불제 민주주의>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 늘어진 남성이 되어버린 형님들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자본이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빠져 있는 딜레마다. 그들은 시대를 바꿀 힘도 의지도 없고 다만 '지식'을 소비할 뿐이다. 그들의 지식을 사는 사람들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진리와 새삼 조우했다.


<페이퍼에 소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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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 다만 <제주4.3 진상조사위원회>가 국내외 자료와 현지인 제보 등을 망라해서 조사한 자료를 산출한 결과 14,028명이라는 값을 얻을 수 있었지만 으레 학살이 그렇듯 실종이나 비공식 학살 등을 따지면 이 값은 두 배 이상을 추정할 수 있다. 1950년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조사해 밝힌 희생자는 27,719명이었고 한국전쟁 발발 당시 예비검속과 형무소 재소자 희생 3,000명도 이 안에 포함된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밝힌 14,028명 중에서 78.1%인 10,955명은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1,764명(12.6%)는 무장대에 의해, 1,266명(9%)는 공란에 의해 희생됐다. 토벌대란 당국을 말한다. 당시 제주도는 제헌의원 선거를 거부해 정부의 정통성에 상처를 주었으며 남북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북한 정부에 의해서 배제된 기득권 2세들이 제주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희생이 더했다. 제주4.3의 참혹한 역사를 그림으로 승화한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서평을 4월 3일을 생각하며 다시 선보인다 - 편집자


"죽은 어미 위에서 젖 빨던 그 아이 잊을 수 없어"
[서평]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동백꽃 지다>



<제주4.3 60주년을 기념해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보리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당사자 34명의 증언을 제주 4.3 전문가 김종민 씨가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200-2"의 역사적인 의미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열렸다. 이때 총 의석수는 200석이었으나 2표의 무효로 인해 제헌의회는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출범했다. 이 "-2"라는 숫자는 현대사에서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에 상처가 된다는 점이었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치인생의 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는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승만은 현대사에서 '굴종'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권력을 누렸다. 자주독립을 위해 가산과 전 인생을 반납한 독립운동가와 그 자제들, 일제에 협조하여 가산을 지키고 권세를 누렸던 친일파와 그 자제들의 운명은 이승만이 미 군정에 굴종하며 친일 세력을 대거 재임용함에 따라 갈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현대사는 '굴종'이라는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재벌의 편법, 탈법이 일반화되고 정치인과 공직자의 일상적인 부패상은 이 '굴종의 현대사'를 더욱 빛내고 있는 셈이다.

제주 북제주 갑ㆍ을 2개 선거구의 무효는 이러한 '굴종'에 이의를 단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이듬해 5월 10일 이 두 개의 상처(?)는 신속하게 다른 '굴종'들로 채워졌다) 이 "-2"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던진 죄로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명이 죽었다. (제주 4ㆍ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2003년 통과)) 선거철마다 주요 정당이 제주에서 경선을 시작하는 것은 비단 제주가 국토 하단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선거의 향배를 예측하는 캐스팅보드 역할을 오랫동안 자처한 제주의 민심은 그 기원이 대단히 오래 되었다. 예컨대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전국 투표율은 48.7% 대 26.1%였다. 이 차이는 22.6%로 두 후보 사이에 한 명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였다. 제주의 투표율은 어땠을까? 이명박 후보 38.3% 대 정동영 후보 32.4%로 불과 6% 미만의 차이였다. 그나마 정치색이 덜하다는 서울도 53.1% 대 24.4%로 더블스코어 이상의 결과가 나왔던 때다. 제주도의 이 묘한 정치적 균형감각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제주 4.3을 말해주는 '세 가지 마음'


제주 4.3을 감성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관통하는 세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 첫째, 5·10 남한 단독선거가 제주도의 거부로 절름발이가 되자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몹시 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49년 1월 12일 열린 국무회의 의결사항은 '제주도 특별소탕경찰대 1,000명 파견에 관한 건'이었는데, 이 문건에서 대통령의 유시 내용은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였다. 그보다 한달 전인 1948년 12월에 서북청년단 총회에 직접 참석해 연설을 하고 서북청년단원들을 제주도로 파견하였고, 그 단원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볼 때 제주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 4.3 전 영역에 걸쳐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과 초토화 작전이 자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만인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즈음이다. 제주도에 내려온 서북청년단원이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증언하는 바와 같이 제주 4.3의 일차적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다.

둘째는 서북청년단의 '증오심'이다. 일명 '서청'으로 불리는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였다. 따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자신들의 터전을 없애버린 세력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품은 서청과 남로당의 적극적인 활동지인 제주도의 만남은 처참한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셋째는 제주도민의 공분이다. 제주도는 이승만의 반공국시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지역으로 속하는데, 혹자는 제주 4.3이 '빨갱이들의 선동과 주민들의 동조'로 보고 <4.3특별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제주도민이 미군정과 당국의 행태에 공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야 한다.  

제주도가 척박하고 고립된 땅이라고해서 그 정신마저도 고립된 것은 아니다. 제주는 예부터 최후의 유배지로 꼽혔는데, 유배 온 양반들은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때문에 유난히 제주도에는 유풍과 학식이 생활상에 고루 반영돼 있다. 일례로 국어학자 이기문은 일조각에서 발행한 <속담사전>에서 해방 이후의 중요한 업적으로 <제주도 속담 1,2>(진성기 편저)를 소개하며 사전편찬에 도움받은 바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수십 년 동안 '해태(懈怠)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는데, 이는 '해이하거나 태만하지 말라'는 일반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어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늦게 상륙한 이유도 있지만, 제주도민들은 그야말로 해방감을 가장 깊이 맛본 사람들이었다. 이때 남한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치안과 정책을 수행하였다.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이 책의 자료2 <제주 4.3항쟁 일지>에 의하면 3.1절 발포 사건 이후 단행된 민관 총파업을 두고 경무부(지금의 경찰청) 최경진 차장이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161쪽) 이는 단선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제주인들은 부패하고 굴종스러운 기득권의 부조리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마음들의 충돌은 제주 4.3이라는 필연적인 비극을 만들어낸 동력으로 작용했다.



강요배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가 나왔다
 

올해로 제주 4.3 60주년을 맞는다. 그에 걸맞게 다채로운 행사가 제주에서 펼쳐진다. 출판에 업을 두는 사람으로서 나는 강요배 화백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보리)가 나왔다는 데 대해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책을 보자마자 밤새 삽화와 증언을 살폈다. 대학시절 익숙하게 보았던 그림들이 한 책으로 묶인 점이 좋고, '제주 4.3전문가 김종민' 씨가 발품을 팔아서 '당사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은 1998년 학고재에서 낸 <동백꽃 지다>를 다시 낸 것인데, <동백꽃 지다>는 강요백 화백이 1989년부터 3년 동안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1992년 발표한 전시회의 제목이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 위에 엎드려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4.3의 처참함과 제주인의 처절한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기영의 자전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에서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말로 제주인의 이 같은 정신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난리통에는 어린아이와 부녀자 등 노약자가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젖이 빈 것은 당연하다. 빈 젖을 빨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과 고개를 숙인 어미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강요배 화백은 '기행'으로 더 유명한데, 재미있는 예화가 하나 있다. 바람과 풍랑이 잦은 제주도에서도 격렬한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밤에 강요배는 붓과 캔버스만 들고 열 번도 넘게 바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은 파도와 비바람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현재 '민족 미술인 협회' 회장과 '제주 4.3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재는 종이, 펜, 먹, 캔버스를 가리지 않았으며 증언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선택했다. 역시 제주 민중의 일상사와 당시의 처지를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렸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119쪽의 '젖먹이'와 133쪽의 '빈젖'은 당시의 처참한 일상을 고스란히 설명해 준다. '젖먹이'에 대한 증언은 김석보 씨(조천읍 북촌리)의 1998년 증언에 담겨 있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118쪽)


제주어에 '속솜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침묵하거나 아주 작게 말하다'는 뜻이다. 나는 제주 4.3이 발발한지 30년, 한 세대 정도 지난 197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4.3이라는 것을 알고 최초로 어머니에게 물었던 게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니까 일이 벌어진 지 50년이 지난 때다. 어른들은 그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고 그것을 내면화했다. 4.3의 기억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습관을 바꿔버렸다. 어머니와 이모가 우연히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별로 비밀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속솜하게 말했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이상했다.

 비단 어머니와 이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제주 4.3에 속솜했다.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열변을 토했던 참여정부도 역시 제주 4.3의 거대한 뿌리는 만지지 못했다. <나의 서양 미술사 순례>를 써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르쳐준 '재일 조선인 2세'이자 도쿄 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는 '추천하는 말'에서 "'4.3'은 알지 못해도 되는 사건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는 사건도 아니다. 4.3은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부끄러운 그런 사건인 것인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평화와 사람다움을 위하여"(9쪽)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 절차적 민주화, 형식적 민주화가 실현된 것에 머무른 것처럼 제주 4.3 역시 단지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뿐 그것의 역사적 의미나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알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4.3 특별위원회 폐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이다. 단지 제주인만의 문제, 피해의식적인 문제, 감성적인 문제, 빨갱이 문제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더 성숙한 관심으로 세심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환갑이 다 되었으니 '철'이 들 만도 되지 않았나?

 동백꽃 지다: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상세보기
강요배 지음 | 보리 펴냄
제주 4ㆍ3 항쟁의 전 과정을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되살린 강요배의 그림과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 하나가 되어 처절했던 항쟁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동백꽃 지다>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을 피로 물들인 제주 4ㆍ3 항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집이다. 화가 강요배가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제주 민중들의 투쟁과 처참했던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되살려내고, 여기에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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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오늘이 4.3이군요. 죄송해요~
대학생 딸이 사회참여로 시위에 동참했는데, 자기 과에서 딱 세 명 참여했었대요.
빛고을에서 나고 자란 우리딸과 마산 친구와 제주 친구~~~
피흘림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 자라면 토양이 정신을 만들어가지요.
잊지 않고 기억하렵니다. 4.3 일깨워 준 페이퍼 고맙습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1   좋아요 0 | URL
4.3이 돌아오면 항상 죄짓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이 죄를 갚을겁니다.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9-04-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되면 한 번씩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남도 한라산이여....

승주나무 2009-04-07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술취하면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단 옆에서 한때 운동권 선배들이 부추길 때만^^

릴케 현상 2009-04-0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지인이 신랑감을 구했대서 만나봤는데 다른 점에서는 보수적인(?) 회사원이신데 끊임없이 4.3에 관한 얘기를 하시더군요. 알고보니 제주도 사람이었어요. 그 약간의 부조화가 참 인상적이면서도 숙연해지는 게 묘하더군요.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4.3에 관해서는 특수한 것 같아요. 예전에 4.3 연좌제 때문에 사람들이 해병대 많이 지원했거든요. 해병대라는 분위기상 우파가 되면서도 4.3문제만큼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4-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솜한 제주 사람들의 말 습관이, 우리 현대사를 표현해 주네요. '철 드는 게' 너무 힘이 드네요.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철들기 쉽지 않죠. 철들지 않기도 쉽지 않은 것처럼...
 

만우절날을 핑계로 이렇게 남기고 갑니다.

이 말이 진짜인지 사실인지 궁금하실 거에요...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고,

거짓말이기도 하고 거짓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만우절에는 뻔한 거짓말보다는 이런 애매한 말을 해야 어울리지~ 암 ㅋㅋ

궁금하신 분은 취재를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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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9-04-0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관두고, 새로 하나 얻으신 건가요? ^^
요새는 하도 불활이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서, 직장 가지고 농담하는 사람 만나기도 좀 어려워요. 농담할 여유가 있을 때는 아직 괜찮을 때인것같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셨든 아니든, 하시는 일 잘되셨으면 좋겠어요. ^^

승주나무 2009-04-02 09:56   좋아요 0 | URL
네.. 직장을 잃고 직장을 얻고라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직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분해해 버렸습니다. 다른 직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겁니다.
저도 그 흐름에 따르려구요..
쓰고 나니 몹시 묘한 말이 되어 버렸군요~!~

stella.K 2009-04-0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이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네~~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출발 순조로우시기를 바래봅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어떻게 다들 아셨나 봐요^^

바람돌이 2009-04-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새출발이라고 믿겠어요. ^^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네~ 믿어주세요 ㅎㅎ
 

스포츠 스타만 나타나면 자신과 연관시키려는 욕망


▲ 이명박 대통령이 양복 위에 한국 야구대표팀 유니폼을 덧입은 모습. 스포츠스타가 탄생하면 꼭 자신과 연관시키려는 욕망은 서울시장에 이어 대통령이 되어서까지 바뀌지 않았다.
(사진 : 오마이뉴스) 


李대통령, 김연아 선수에게 축하전화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김연아 선수(19·고려대)에게 축하전화를 건 일로 인해 뒷말이 무성하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체로 현실 정치보다 가십거리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모습에 대한 비판과 최근 야구와 피겨에서 떠오른 스타들의 좋은 이미지에 편승하려는 대통령의 '욕심'을 문제삼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국제대회에 우승한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를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 이상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연아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격려한 일이 뉴스에 오르고 구설수로 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역시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이전에 보여주었던 스포츠에 대한 집착과 바뀌지 않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 2002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히딩크 대표팀감독에게 명예서울시민증을 수여하면서 자신의 아들과 사진을 찍게 했는데, 아들의 복장(축구유니폼과 샌들)과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처사가 구설에 올라 결국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사진과 사과문 캡쳐 : 오마이뉴스)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전국민이 축구열풍에 빠져 있을 때 대통령은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행사를 한 것은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인에게 명분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욕심은 여기서 더 나아가 히딩크 감독을 사적인 사진촬영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국민적 공분을 샀다. 가족과의 사진촬영 없이 명예시민증만 수여했더라면 정치적으로 잇속만 챙기고 끝났을 일이다.

얼마 전 WBC 준우승을 한 한국대표팀을 청와대에 초청한 일에서도 이런 문제가 감지된다. 국가원수로서 국가의 이름을 세계에 떨친 스포츠 스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를 한 것은 명분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베이징 올림픽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에 청와대 초청도 신중해 했어야 했다. WBC의 일정과 국내 프로야구 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프로팀 감독들은 전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선수 차출에 동의해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다면 감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선수들이 소속팀에 복귀해 적응을 빨리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청와대로 초청하면 선수들은 그만큼 소속팀 적응이 지체될 수 있는데 그것은 감안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유니폼은 꼭 입어야 했을지 의문이 든다. 베이징 올림픽 사건이나 2002년 사진촬영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용산참사나 언론인탄압이 없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야구 대표팀 유니폼 입은 대통령, '점령군 사령관' 보는 것 같아 씁쓸..

나는 대통령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어쩐지 '점령군 사령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용산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이 불법적 시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고인이 된 분들이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국민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위로의 한마디쯤 해도 좋았을 텐데 '떼법'에 대한 엄중한 사법조치나 '준법'만을 강조했다. 망인들에 대한 위로 한마디에는 그렇게 인색한 대통령이 대표팀의 유니폼은 곧잘 입는 수고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사적인 정치가 위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시장에 가서 자영업하시는 할머니를 안아드리는 일, 현장사무소 가서 실무자들에게 일장 강연을 하는 일, 전봇대 걱정을 하는 일 등은 사적 정치이거나 '쇼'로 분류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그게 무슨 문제인지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달려가서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보여주고 끝나버리는 허무함의 극치이다. 대통령의 이런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정치가가 있다. 바로 정자산인데, 맹자는 자신이 집필한 <맹자>라는 책에서 정자산의 사적 정치에 대해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맡아 보았는데, 자기가 타는 수레로 진수와 유수에서 사람들을 건네 주었다. 이를 두고 맹자가 말했다.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 매년 11월이면 도보로 건너는 널빤지의 작은 다리가 이루어지고, 12월이면 수레가 지나는 큰 다리가 이루어지면, 백성들은 물을 건너는 것을 걱정하지 아니한다. 군자가 정사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나가서 사람을 피하게 해도 좋다. 어찌 사람마다 건네 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모든 각 사람으로 하여금 다 기쁘게 하려면, 날마다 그렇게 해도 부족할 것이다." - 맹자 이루하 편
子産聽鄭國之政, 以其乘輿濟人於溱洧. 孟子曰:  「惠而不知爲政. 君子平其政, 行辟人可也. 焉得人人而濟之? 故爲政者, 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 」


대통령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은 쇼는 잘하지만 정치는 할 줄 모른다. 정치를 잘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쌓인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스포츠와 관련된 구설수가 쌓였다면 당연히 대통령이 되어서는 스포츠에 대해서 얼굴을 들이밀기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격려를 하는 것이 더 낫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적만 내면 청와대로 불려나가야 한다면 누가 기운이 나서 열심히 운동하겠는가. 마치 청와대로 불려오고 대통령과 만나는 것이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올시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가십거리에 몰두한 것이라면 참 한가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불순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명한 대통령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를 자신과 연관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 시사IN 기사에서 캡처한 사진. 우석훈 씨는 엘리트 스포츠를 한나라당이 모두 차지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가 보다. 한나라당은 그새 광고문구를 "경제도 김연아처럼"으로 바꿔 달았다. 3월 12일 6조원 규모의 민생 대책을 결정한 비상경제대책회의 결과를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듣고 있는 장면. (사진 : 뉴시스, 시사IN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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