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12월 아기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사진. 앞으로 100일이면 아기와 만난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짜는' 것

7월 24일 아기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것은 꿈 때문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즈음에는 꿈을 접고 현실에 뛰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짜는 것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단계는 추상적인 사고의 단계다.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것이다. 꿈을 꾸는 단계에서는 별로 나쁠 것이 없다. 어린이들이 행복을 계속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꿈을 끊임없이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짜는 단계'는 이와는 다르다. 그 꿈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한계 상황은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짜는 것'이라는 말 속에는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구조'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는 이유는 '꿈을 짜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이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할 것이다" - 레이놀드 경

사람들이 심사숙고하고 꿈을 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사숙고 끝에 얻어지는 결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꿈을 아무리 정교하게 짠다고 하더라도 세상살이에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뜻한 바가 모두 실패할 수 있다.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기까지 <드림위버>(다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드림위버>('꿈을 짜는 사람들'이라는 뜻)를 통해 나는 나의 꿈이 제대로 짜여졌는지 검증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과 경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지 못하지만, 비전이나 가치, 논리적 결함 등은 충분히 검증 가능했다.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나'가 있을 뿐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해보고 직장인 생활도 해봤지만, 가장 안정적인 것은 역시 고정 수입이 나오는 직장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강제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직장생활 자체가 고문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나'는 한곳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한 곳에 있다고 생각한 나를 제외하고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 똑같은 물이 다시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듯, 인간의 세포 역시 3주라는 생명주기를 가지고 있다. 1분에 약 3만 개의 세포가 죽는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세포로 이루어진 '나'만 남아 있다. 이전의 세포에 둘러싸인 '나'와 전혀 다른 세포에 둘러싸인 '나'가 같은 나가 될 수 있을까?



19세기 프랑스 생리학자 피에르 플로랑은 수술시 사용하는 마취제에 대해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마취제를 통해 환자가 마취상태가 되었을 때 그 기간 동안에는 기억이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났을 때 고통도 기억하지 못한다. 마취 상태에서의 나는 마취 이후의 나와 같은 '나'인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드림위버> 76쪽)

"부모님은 우리에게 나가세나라는 이름을 주셨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공통으로 사용하기 위한 용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자아란 없기 때문입니다."(<드림위버> 78쪽)

이름이란 단지 기호일 뿐 이것이 자아를 설명할 수 없다. 자아란 그만큼 우주적인 존재다. 우주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존재이면서 한곳에 머무르려고 하고, 자신의 존재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슬픈 특성이다. 얼마 전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의 인문학 강좌' 소식이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 적이 있다. 노숙자들은 인문학 강좌를 듣고 나서 삶의 자신감을 찾았다고 한다. 한 노숙자는 "겉으로 나의 환경이 바뀐 것은 없지만 내면은 자신감으로 넘쳐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우주적 존재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깊은 성찰과 경험을 통해서 꿈을 짜는 단계에 진입하면 현실과 가까워진다.

꿈을 짜기 위해 나는 적어도 10년 이상 준비를 했고 최근 3개월 동안 세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위험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끊임없이 돌려 보았다. 그리고 나서 "됐다"는 생각이 든 순간, 행동에 옮겼다. 꿈을 짜는 것은 '철학'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을 통해서 '짜는 행위'가 의미 있는 행위인지, 논리적 결함은 없는지, 비전은 있는지 검증할 수는 있다.

이번 결단에서 철학에게 또 한 번 큰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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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럭무럭 자라고 있네요 ^^
응원합니다. 제게도 힘이 되네요.
저도 오월이면 백수가 되고 여행을 홀로 떠나는데 많이 두렵습니다.

승주나무 2009-04-09 21:17   좋아요 0 | URL
네.. 최근의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있는 게 저 사진밖에 없어요.. 힘이 되었다니 기분 좋네요~~

드팀전 2009-04-0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이 잘 짜여지길...아이도 건겅하게...^^

승주나무 2009-04-09 21:18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 감사합니다. 나를 지켜봐주시는 목격자이자 증언자이신...^^

글샘 2009-04-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됐다"는 순간을 넘기셨군요. ^^
정말 잘 짜여진 꿈이 실현되시길...
아기와 꿈을 함께 펼치는 봄이 되시길...

승주나무 2009-04-09 21:18   좋아요 0 | URL
"아, 됐다"는 순간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착각인 상황을 몇 번 그려 보았고 괴로웠습니다. 이것이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착각이라도 할지라도 많이 괴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04-0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마을에도 속속 결혼소식과 아이소식이... ^^ 전에 축하드린거 같지만 다시 한번 축하해요. 그리고 용기와 과감한 결단에도 박수를! 저도 고민 중입니다. 가랑비 젖듯 계속 직장인화되어가는 제 모습을 보고, 힘이 점점 빠지고 있거든요. -_- 또 한번의 내 안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승주나무 2009-04-10 00:09   좋아요 0 | URL
네.. 멜기님은 걱정 안 되는데.. 아프 님하고 라주미힌이 좀 걱정되긴 해요~~ 라주는 사정권을 훨씬 벗어났으니.. 술먹을 기회도 마땅찮고 ㅎ
합의점을 찾느냐 투쟁을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지만 잘 하시리라 생각해요^^

2009-04-10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노무현 공식 사이트 <사람 사는 세상>의 참여마당에는 4월 8일 현재 평소보다 10배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겨 "노무현 돈 받았다"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 사이트 평소 10배 방문글 기록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의 <참여마당>에는 4월 8일 현재 1100명이 글을 남겼다. 이는 평소의 10배나 되는 수다. 평소 참여마당에 글을 남기는 사람은 100명 남짓이다. 노 전 대통령이 금품수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글을 남긴 4월 7일과 8일 양일에만 1800명이 글을 남겼다. ("사과합니다"라는 글에는 댓글이 1천개도 넘게 달렸다)글은 변함 없는 지지와 비난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과 좌절감, 혼란 등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때문에 4월 8일인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에서 "‘그게 무슨 잘못이냐?’ 또는 ‘정치적 탄압이다.’ 이런 취지의 글을 올리신 분들이 있고, ‘잘못은 잘못이다.’ 또는 ‘좀 지켜보자.’ 이런 글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논쟁이 있고, 싸움도 있습니다."라고 밝혀 홈페이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그리고 "냉정한 평가를 한 글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글을 올리는 것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일 것입니다.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한편 참여정부 당시 비판적인 논조를 보였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강력한 어휘를 사용하여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검은 덫에 걸린 참여정부, 도덕성 파탄났다"는 헤드라인을 뽑았고, 한겨레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형님 이어 부인까지, 노무현 ‘패가망신’>이라고 썼다가 다시 <형님 이어 부인도…노 전 대통령 도덕성 ‘와르르’>로 제목을 고쳤다. 경향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격변기와 '도덕성'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겨레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의 혐의를 파고들었다.

국가 예산으로 모든 활동이 뒷받침되는 청와대 안주인으로서 기업인한테 수억원의 돈을 받은 것은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됐다. 그동안 나온 측근들의 비리 혐의는 노 전 대통령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부인 권씨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남편의 이러저러한 정치활동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빌렸다’는 주장은 국민에게 설득력이 없다.
-한겨레, 기사 일부


열혈 노사모였던 시민들의 반응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알 수 있듯 노무현 지지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도덕성이 있는 대통령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 대통령과 다름 없는 사람이라는 배신감과 정치인들은 다 그저 그렇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이 되기도 했다. '사람 노무현'에 대한 차분한 평가가 아쉬운 하루였다.

그러던 중 노사모 출신의 시민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30대 초반, 40대 중반, 50대 중반 연령층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0대, 40대, 50대로 통일함) 30대는 믿었던 한 축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허탈해했다. 특히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50대는 시기란 현 정부에서 정하는 것이지 우연히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유시민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며 정권교체 후 으레 있는 사정작업으로 평가했으며, 일정표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40대는 '부인'을 거론한 부분에 대해서 분개해 했다. 대통령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에게 권양숙 씨 부친의 사상 문제가 거론되자 "그 문제 때문에 부인과 헤어져야 한다면 나는 대통령 안 하겠다"고 말했던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부인이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왕 벌어진 일이라면 본인이 모두 안고 가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50대는 "노무현에 대해서 인정할 것은 '사실'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부인이 관계돼 있기 때문에 부인을 거론한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노무현은 지는 싸움은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는다"며 전략가로서의 노무현을 회상했다.


"15억원이 정치자금의 기준이 되었다"

1997년 대법원이 추징한 비자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533억원,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97억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5억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돈은 15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관된 금액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기준이 다음 정권에도 이어질 것이란 점을 예상할 수 있다. 노사모 회원들도 이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부패'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이 기준은 가혹한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치적 되치기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4년 탄핵국면에서는 역풍으로 무수한 원내의석을 잃어야 했고, 행정수도 이전과 대연정, 개헌 국면에서 한나라당은 여러 번 씁쓸한 패배를 당했다.

이번 건의 경우도 한나라당과 정부는 바싹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의 칼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하는 일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역풍을 맞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15억원을 받은 사실은 무혐의로 인정해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50대는 "이 문제는 언젠가 털고 가야 했는데 오히려 잘됐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정부가 이 문제를 털어낸 것이 그들에게 유리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불리할 것 같다는 예측도 내놨다. 그리고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이 사태를 관망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언론이나 국민들이 '인간 노무현'이 아니라 생명 없는 상징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라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도덕성 문제에 대해서 지나친 결벽성을 가지고 있다. 도덕성이란 감정이 개입되는 것이고 지고지순한 도덕성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고지순한 도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권을 잡은 사람에 의해서 짓밟힐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그러면 지고지순함이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지나친 자조와 지나친 비난과 지나친 신뢰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국 사회 전체를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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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기 1집 앨범의 타이틀 표지. <친구><길><아침이슬> 등의 노래가 특히 인상적이다.
 

시대가 간절히 원하던 노래, 노찾사와 장기하가 통하다


시대가 간절히 어떤 한 노래를 찾게 만드는 때가 있다.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간절함은 더하다.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는 이미 한 시대다. 어떤 노래가 이들의 서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서정이 아닌, 이웃들의 애환과 불만을 잘 담은 노래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가 됐다. 노찾사는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사람들에게로 구전됐다.

노찾사가 왕성하게 노래를 짓고 활동하던 시기에서 약간 비켜갔던 시기에 태어나고 살았던 나는 그것이 '노찾사' 노래인지도 모르고 무수히 따라 불렀다. 특히 운동권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잠들지 않는 남도>나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투쟁가' 중에서도 유난히 입에 착착 달라붙는 노래는 죄다 '노찾사' 노래였다.

'운동권 선배가 후배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노찾사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대체로 노동가와 투쟁가는 과격하기 때문에 새내기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데, 감수성이 넘치는 노찾사 노래를 들려주면 곧잘 따라부르고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선배들은 노찾사 노래책을 따로 들고 다녔다. 노찾사는 이렇게 대학가에서 곧잘 '악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TV나 연극에서 그때 그 시절을 환기할 때면 나오는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역시 노찾사표 노래다. 통기타를 치고 목로주점에 앉아 장발으르 늘어뜨리고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노찾사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우린 노래 하나로 그 장면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1980년대임을 알 수 있다. 

최근 현실은 노찾사가 탄생하기 직전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지금 불고 있는 '장기하 현상'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음악을 듣는 형식은 레코드나 CD, 테이프 등에서 컴퓨터 음원다운으로 바뀌었지만, 리메이크와 복고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이 현상을 주목한 시사IN>은 1968년과 2009년의 유사성을 분석했다. 1968년 즈음은 그야말로 1960년대 대중문화가 온통 복고와 퇴행으로 치닫던 때였다.


▲ 노찾사 공연 장면


영화계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버림받은 미혼모, 아이 버린 죄 많은 어미의 눈물이 극장을 뒤덮었다. 신파의 부활이었다. 대중가요계에서는, 미8군 출신의 세련된 팝이 주도하던 전반기와 달리, 1965년부터 청승스러운 이미자의 트로트가 인기를 모으더니, 1967년부터는 배호가 남자 트로트를 주도하면서 끈적한 바이브레이션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트로트의 부활이었다.
- 시사IN 81호, 이영미 "'막장' 한복판에서 새 샘물이 솟는다" 일부

대중예술 평론가 이영미는 앞선 글(시사IN 81호))에서 대중예술계가 복고와 퇴행으로 치닫는 때는, 대개 경제와 정치에 희망이 없는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박정희의 무리한 독재와 계획경제 기간이 끝나 이농민과 도시민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권력은 부패에 젖어들었다. 대내외적 위기상황은 문화계에 복고와 퇴행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영미는 '그러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중예술계가 복고와 퇴행에 빠져 있을 때,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통기타와 청바지가 대변하는 청년 문화가 1968~1970년 즈음까지 뚜아에무아·트윈폴리오·한대수 등으로 이어졌고, 1970년을 넘어서면서 텔레비전의 인기 판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노찾사도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했고, 현재의 '장기하'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20대는 장기하라는 가수를 통해 드디어 '입'을 얻었고, 노찾사와 같은 오래된 '입'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지금 386과 20대는 장기하의 노래도, 노찾사의 노래도 함께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김민기의 노래에는 유독 '길'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제목이 많다. 이번에 선보일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에는 <새벽길><길><천리길>이  포함돼 있다. (그림은 이희택의 연필 드로잉)



가요계의 '백석, 정지용'.. 노찾사의 뿌리 '김민기'를 찾아서

백석과 정지용은 월북 혐의를 받고 있는 작가라는 이유로 주옥 같은 작품들이 '판금'이라는 끈에 묶여 있었다. 이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정권이 끝난 이후의 일이다. 이 때 김민기의 작품들도 함께 쓸려 나왔다.  

시대를 대변했던 얼굴이기에 권력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다. 그래서 김민기를 '노래하지 않는 가수'라고 부른다. 잘 알려진 프로필을 따라가다 보면 국민적인 애창곡 <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요,공연기획자요,현실변혁 운동가 김민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6.25 전란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10남매의 막내, 자신보다 너무 크고 무서운 손 위의 형들과 누나들이 직장이며 학교로 가버리고 나면 혼자 텅 빈 집을 지키며 막대기로 마당에 그림을 그리던 외로움과 공포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꼬마 김민기를 만나게 된다(김민기의 프로필, 유년과 관련해서는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가 쓴 글 <노래하지 않는 가수, 김민기>를 참조).

김민기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뿌리입니다. 1984년, 노찾사 1집 음반을 내놓은 장본인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줄곧 노찾사의 고향과도 같았습니다. 김민기의 음악은 대중음악의 한 분수령이자 대한민국 민중가요ㆍ저항가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 소개글 일부

김민기에게 큰 빚을 진 노래문화집단 '노찾사'가 오는 10일과 11일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다. 특히 서울대 미대를 다녔던 김민기의 내적 자아를 탐색하기 위해 서양화가 이택희 화백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이택희의 연필 드로잉은 김민기의 인생 여정을 생경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로 예민하게 그려낸다. 호흡이 짧고 얇은 인상을 지닌 토막들이지만 그 하나 하나 강렬하고 단단한 인상을 뿜어내며 흑백의 색채는 흑, 회색, 흰색의 경계를 넘나든다.

적막한 느낌, 금속성의 질감, 모든 색채를 침묵 속에 삼킨듯한 색상들이 단출한 형상을 깊이 품어 안고 있다. 이는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을 감시와 탄압 속에서 보내며 노랫말 하나하나를 수놓듯 정성을 들였던 김민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이번 공연 내내 영상으로 함께할 이택희의 연필 드로잉을 통해 김민기의 심경으로 다가가려고 시도해도 좋을 듯하다. 


※ 이번 공연의 티켓은 인터파크에서 인터넷 예매로 가능하며, 예매 시 2만2000원, 현장 구매시 2만5000원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노찾사 홈페이지와 노찾사 커뮤니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노찾사는 이번 공연을 위해 배포한 소개글에서 "
김민기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뿌리"라는 사실을 밝히며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노찾사의 '뿌리찾기'는 비단 한 노래단체를 떠나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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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4-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찾사라구? 난 오히려 '산울림'의 21세기 버전이란 생각을 했는데.
암튼 장기하 매력있어.^^

승주나무 2009-04-09 21:21   좋아요 0 | URL
이 글 쓰려고 어제 밤새 김민기, 노찾사 노래 들었어요.. 잠도 안 자고 ㅋ
 

포털사이트에서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보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 부르지 못하는 언론사들. 언론사들이 간만에 '큰웃음'을 선사한다. 지난 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리스트에 조선일보 방 사장과 스포츠조선 사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안다. 보고 못 받았나?"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를 보도한 언론사가 거의 없다고 한다.
미디어스의 보도에 따르면  <오마이뉴스>와 <민중의 소리> <프레시안>만이 언론사와 언론사 대표를 직접 언급했다. <헤럴드 경제> <뉴시스> <이데일리> <아이뉴스24> <CBS> 등은 해당 언론을 ○○일보, XX일보 등으로 보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없는지 뉴스 검색창에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봤다.
일간지는 하나도 없고 미디어오늘이나, PD저널, 미디어스 같은 미디어 전문매체나 인터넷 매체만 보인다.



▲ 포털 뉴스검색창에서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보니 우리가 알 만한 일간지는 하나도 안 나오고, 미디어전문매체나 온라인매체의 기사만 나온다.


이번에는 XX일보를 쳐봤다. 우리가 잘 아는 언론사들이 이제야 얼굴을 드러낸다.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XX일보> X사장을 술자리에 만들어 모셨고, 그 후로 며칠 뒤에 <스포츠XX> X사장이 방문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 세계일보, 노컷뉴스


가장 일반적으로 보도한 유형이다. 그밖에 경향신문과 서울경제, 이데일리, 해럴드생생뉴스 등은 OO일보도 보도했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언론사에게 배포한 참고자료 때문이다. 국회 출입기자 등을 대상으로 작성된 '보도에 참고 바랍니다'라는 자료에는 "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되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 드린다"고 적시돼 있었다.

조선일보가 돌린 자료의 내용이 사실일까. 조선일보를 적시하면 정말 감옥에 가게 될까. 프레시안은 그것이 궁금했는지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고 기사를 내보냈다. 한 변호사는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다퉈 볼 여지 자체는 없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본회의장 발언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법에 걸린다는 식의 '입막음'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도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을 하고 대정부질의를 한 셈인데, 그는 <프레시안>과 대화에서 "그 분 정도면 공적 인물이기 때문에 사생활 부분에 대한 것이라도 프라이버시권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면서 "특히 내 발언을 보도한 언론 매체는, 형법에 의해 면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촘스키의 '선전모델'로 본 주류언론 백태


▲ 노엄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서는 현대사회의 언론이 점점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보다 사기업화되고 있는 모습을 '선전모델'이라는 용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선전모델(Propaganda Model)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이라고 추앙받는 노엄 촘스키다. 선전모델이란 언론의 ‘사회적 목적’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특권 집단의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의제를 대중에게 주입하고 옹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언론은 사회의 건강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기능을 소명으로 아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할 때의 일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언론이지만, 병든 언론은 병든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언론의 주된 책무다. 언론은 주제 선별, 관심 분산, 쟁점 설정, 정보 여과, 강조와 논조를 통해, 그리고 수용할 만한 전제의 범위 안에 논쟁을 제한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한다.
언론은 절대로 전위적일 수 없다. 전위적인 행위가 일반으로부터, 특히 권력자로부터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서 언론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삼성비자금 사건 당시 언론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언론이 삼성으로부터 광고가 끊길 것을 두려워해 '삼성' 두 글자를 무겁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커지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모든 언론들이 동시에 '삼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도 삼성 두 글자를 두려워해 한줄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도 파다하다.

'조선일보 사장 발언 사건' 역시 이렇게 풀릴 가능성이 많다. 조선일보가 협박성 공문을 각 언론사에 전달했지만 모든 언론사가 조선일보를 거론한다면 일일이 대응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묘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대개는 조선일보의 위치에 있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촘스키가 예로 든 사례 중 인도차이나 전쟁이 인상적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끔찍한 양의 화학무기를 사용했는데 케네디 정부는 1961년과 1962년에 화학물질을 이용해 남베트남의 농경지를 파괴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미국이 한 국가의 농경지를 파괴해도 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 것은 너무 흔해서 의아해할 일도 아니다.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지만 미국에게 그런 것이 통할리 만무하다.
1961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 공군은 600만 에이커의 농경지와 숲에 2000만 갤런의 비소계 다이옥신이 첨가된 농축 건조제, 즉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했다. 뿐만 아니라 고성능 최루가스인 CS, 네이팜탄, 인화폭탄도 사용했다. 남베트남 땅의 약 13퍼센트가 화학 공격에 노출됐다. 뿐만 아니라 고무공장 30%, 맹그로브 숲 36% 등이 파괴됐다. 1967년 일본학술위원회 농업경제분과에서 작성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작전으로 인해 남베트남의 농경지 중 380만에이커 이상이 파괴되고, 농민 1,000명과 가축 1만3,000여두가 희생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기사를 보면 어이가 없다. 1990년대에 에이젠트 오렌지와 베트남과 관련한 기사가 많았는데,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로스앤젤레스타임스><뉴스위크><타임>이 내놓은 기사 총 522개 중 농작물을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기사는 단 9건에 불과했다.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포함된 아메리카를 보면 그 노골성이 더 짙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는 언론인 탄압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한 나라다. 언론인을 대낮에 광장에서 살해하거나 시체를 불태우기도 한다. 그 나라에서 언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거나 '어용언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미국의 소중한 우방이었다. 이에 비해 니카라과는 어느 정도 언론자유가 부여된 나라였는데 미국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타임>은 선전모델을 충실히 적용했다. 미국이 싫어했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는 비밀투표의 원칙을 지켰으며 투표행위의 증거로 신분증에 도장을 받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야당을 투표할 뿐만 아니라 기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임>은 니카라과가 '호전적인' 산디니스타 정부가 "무시무시한 폭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자유선거의 경합을 위해" 그들이 "손아귀의 힘을 풀지"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 참여를 강요하는 정도가 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배급표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보도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니카라과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기자와 국민들을 학살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부나 재벌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다루는 장치가 무려 수백 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광고주는 광고로, 정부는 정책으로 탄압할 수 있다. 제도언론이 점점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가는 것은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점점 오웰리즘(Orwellism :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비인간적인 권위주의 사회의 특징으로, 선전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체제를 가리킨다)의 신봉자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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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性일보 이종걸의원에 이어 '명예훼손'으로 블로거 협박?!
    from Green Monkey Blog** 2009-04-08 01:54 
    조性일보 이종걸의원에 이어 '명예훼손'으로 블로거 협박?! 조性일보 편드는(?) 니글루스의 공습경보, 정통망법에 당하다!! * 성(性)과 성(姓)도 구분못하는 XX일보의 이종걸의원 협박질 어제(6일)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이달곤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한 국회대정부질의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에 나온 일간신문사 및 스포츠신문사 회사명과 이들 신문 대표 2명의 성씨를 폭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련 내용을 이종걸 의원 홈페이지와 언론보도에서 확인하고 위..
 
 
 

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김덕신 선생님...
이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나서 큰 학교에 지레 겁먹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 내겐 있었지요.
그때 처음 만난 선생님이 '김덕신 선생님'이었습니다. 죄 많은 제자라 찾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재적 인간은 굳건한 신경을 갖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나약한 신경을 지니고 있다. 전자에게는 이성의 중요성이 막대하지만, 후자에게는 감수성이 거의 심신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러나 천재성 또한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감수성이 심신의 전부를 차지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합니다.
선생님은 매를 들었지만 저는 매를 맞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습니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습니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의 악몽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은 집으로 보내는 생활기록부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승주나무는 수업시간에 딴 짓하고 장난을 잘 치는데, 자기 혼자 그러면 괜찮을 텐데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주니까 각별히 지도를 하시거나 아니면 전학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제가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된 지는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마음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준다는 대목이 특히 슬펐습니다. 나랑 같이 장난치며 사이좋게 놀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추억은 선생님의 생활기록부에 적혀진 글귀의 그림자로 인해서 약간 어두운 색깔이 되었습니다.


▲ 초등학교 입학식 전경(사진 : 오마이뉴스)


쓰레기통에 책을 버린 선생님

우리 어린이들의 학교 생활이 어떤지 아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와는 달라져 있겠지요. 좋은 선생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과의 만남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그렇지 않든 초등학교 1학년때의 추억은 지금도 강렬히 남아 있ㅅ브니다.

이것은 제가 아는 분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으로 맞는 학급회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질문도 싫어하고 소란스러운 것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이 많은 여선생님이셨어요.

"머리가 똑똑한 아이는 설명이 끝난 다음에 바로 질문하지 않는다"고도 하고 "질문 많은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원천봉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충격적인 일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 책을 나눠줬는데, 선생님이 일일이 나눠주지 않고 교실 뒤에 있으니까 한 권씩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지 책 챙기는 걸 잊고 방과후 교실에 갔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교실로 갔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셨다네요. 그래서 교과서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정말 기가 막혀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너무 심하게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혹 아이가 선생님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면 어쩌나 걱정 하면서 물었더니 다행히 선생님이 좀 이상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합니다. 이제 아이와 선생님은 만난 지 1달이 되었고, 남은 시간은 버거울 정도로 깁니다. 
  
이 글을 읽은 다른 어머니는 선생님의 결벽증도 문제라고 하네요. 선생님이 워낙 깔끔하고 꼼꼼해서 그 집 딸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준비물을 챙기는 날에는 온가족이 거의 비상사태라고 합니다.

학교란 거대한 권력의 성이고, 선생님들은 권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교단은 높고 선생님의 매는 무섭고 학생과 학부모는 너무 약해 보입니다. 학교가 학원보다 인기를 잃고 교권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결국 학교란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장소'라는 원초적인 사실로 돌아온다면 이 만남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가슴아픈 사연을 들으니 갑자기 저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억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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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9-04-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생각인데 초등학교 일학년때 선생님이가장중요하다,,
저도 일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로써 많이 동감이 가요
류 담임선생님도 좀 엄하신 분인데,,,,걱정이 조금되기는하는데요, 아이는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요,,

승주나무 2009-04-09 21:19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엄하신 것도 좋지만 사려가 깊으신 분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려가 얕으면서도 엄하기만 한 선생님은 질색...

연두부 2009-04-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딸아이 하나인데...올해 초등학교입학했어요...이래저래 아이도 우리부부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하고 있는데..너무 공감가는 글이에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 딸을 가진 부모님은 특히 무서울 것 같아요. 공감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무스탕 2009-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저도 초등학교(저희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죠 ^^) 1학년 담임선생님이 생각나네요.눈치없이 들러붙는 저를 딸래미라며 귀여워 해주셨었는데.. (선생님이 아들만 둘이셨어요)
찾아뵙지는 못해도 몇년전까진 풍월에 선생님 소식 들었는데 요즘은 들리는 소식이 없는걸보니 정년퇴직하셨나봐요.
오랜만에 저도 첫 선생님 생각도 하고 좋았습니다 ^_^

아이들을 귀찮아 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은요.
엄마들끼리하는 말중에 '저 선생님은 1학년용이 아니야. 1학년용이야' 라고 농담식으로 하는데 엄마들은 분명히 알아요. 다만 내 아이에게 피해가 올까봐 쉬쉬하며 말을 아끼는거지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저도 국민학교 출신이에요. 너무 오래 돼서 모를 까봐 그냥 초등학교라고 했죠~~
저도 어떤 엄마분이 초등학생 아이의 선생님 이야기를 하자 이 생각이 미쳤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인데 저도 그 분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