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동화 행복한 세상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예전에 '이금희 아나운서'가 진행할 때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 사연이 소개되었지 뭡니까.
예전에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를 해 드렸는데,
방송일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4월 29일 수요일 오전 10시 50분)

제목은 <완벽한 이웃이 되는 법>으로 나왔네요.
부제는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가까워진 이웃들"입니다. 

 TV에 소개되는 데 대해서는 소정의 원작료를 지급하므로 수익도 좀 생겼습니다.
책으로 출간되는 분에 대해서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자동 적립되기 때문에
내가 쓴 글로 수입도 올리고 좋은 데 성금도 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원작료가 깎인 데 대해서는 조금 아쉽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작년 2집이 주차 문제로 이사를 갔는데,
그 대열에 제가 끼지 않고 지금은 지날 때마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생방 사수하시고^^
아니면 다시보기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kbs.co.kr/1tv/sisa/happytopia/vod/review/index.html

위 링크를 누르면 다시보기로 볼 수 있어요..
4월 29일 이후에 볼 수 있습니다.
제 글의 방송분은 1976회입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기분은 어떨까 벌써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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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4-2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축하해요.

승주나무 2009-04-30 11: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스탕 2009-04-2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복숭아가 방송을 타는군요!!
축하합니다~~

무스탕 2009-04-30 16:00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다시보기로 봤어요.
내용을 알고봐도 좋더군요 ^^

승주나무 2009-04-30 17:45   좋아요 0 | URL
밤에 링크를 올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뷰리풀말미잘 2009-04-2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악하악-

승주나무 2009-04-30 17:45   좋아요 0 | URL
허걱..허걱!!

순오기 2009-04-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축하드려요.
어제부터 목욜까지 오전에 시험감독인데 금욜이면 본방사수 할 수 있을 듯~
잘 보겠습니다.^^

승주나무 2009-04-30 17: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작가가 또 전화와서 아이템 하나 쓰고 싶다고 하는데.. TV동화 전담 원작자로 나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stella.K 2009-04-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뭐야? 지났잖아. 이틀 전에 알려줬어야지.
난 밤엔 알라딘 안 들어 오는데...>.<;;

승주나무 2009-04-30 17:46   좋아요 0 | URL
네~ 다음부터는 이틀 전에 말씀드릴게요..
 

법, 교육, 언론만 살아있다면 괜찮은 사회

저의 티스토리 블로그 도메인(http://jagong.sisain.co.kr/)에는 중간에 <시사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언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 정도 됩니다.
언론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언론운동이라는 것을 한 지는 4년째 됩니다.
언론운동 때문에 직장을 두 번 그만두고 두 번 옮겼습니다.

논술선생으로 고액(?)연봉을 받다가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은 <시사인> 때문입니다.
벌써 2년도 넘은 이야기이지만 삼성의 기사 삭제 문제로 기자들이 파업한 <시사저널 사태> 때문에 의분에 차서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일없이 언론운동을 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알바도 하고, 밤낮 없이 시사저널 일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시간을 투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시사인> 창간과 함께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때 아내를 고생시킨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합니다.


▲ 2007년 12월 21일 민주시민언론연합이 수여하는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자 선정 근거 일부입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1년여의 파업투쟁으로 자본과 치열한 싸움을 펼치고 있던 ‘시사저널’ 기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구독자들이 2006년 10월에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사모는 거리 캠페인과 문화제 등,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독자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또한 기자들이 ‘시사저널’과 결별한 후 ‘시사IN’을 창간하는 과정에서 시사모는 자본금 모금과 정기구독 캠페인 등을 통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_

촛불을 좇아 인생행로를 바꿔온 1년

시사저널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언론운동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이란 사회감시의 역할을 하고 사회변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계기를 제공해줄 뿐, 사회변화의 근거를 제공해주지는 않습니다. 사회변화의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은 '출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은 너무 빠르고 출판은 너무 느리다는 특징이 있지만, 언론과 출판이 적절히 협력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출판계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나 블로거뉴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독서토론을 다녔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제까지 제가 고수해 왔던 보수적인 독서목록표(인문사회나 자연과학, 문학 등에 치중한)를 버리고 어린이, 청소년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고착화된 나를 깨나갔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5월 촛불집회가 터지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취재와 구상을 끝내고 소설작품을 집필하려고 했지만 끝내 펜을 꺾었습니다. 촛불 이전에는 모르겠지만, 촛불 이후부터는 소설을 쓰기보다는 블로그 글이나 기사 같은 전투적인 글을 써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일주일에 3~4일 촛불로 출근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블로그글이며 오마이뉴스 기사글이며 정신없이 올렸습니다. 그리고 촛불의 가장 큰 언론이슈인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운영진들이 구속되고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카페 자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카페 회원들이 결의해서 NGO 단체로 창립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카페 회원으로 글을 남기다가 창립 과정에서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선일보와 정면대결을 펼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조선일보와 정면대결하고 검찰을 코너로 몰아넣기도 해

조선일보는 참으로 집요했습니다. 2008년 8월부터 올해 1월 20일 검찰의 구형이 내려질 때까지 수십 차례의 공판 동안 매번 기자(들)을 파견해 공판 내용과 관람객들의 동향을 분석해서 건수가 있을 때마다 '악의적'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치졸한 것은 50대 할아버지(의족을 차서 행동에 제약을 받는)를 폭력범으로 몰아붙인 기사였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측 증인이 폭력을 유발하는 폭언 등으로 시비가 붙었는데, 기사거리도 되지 않을 것에 대해서 소설을 써서 50대 할아버지는 긴급 체포되고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나서 조선일보는 풀이 죽었는지 별로 다루지 않더군요.
조선일보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게 된 데는 앞서 망신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증인, 법정 '말바꾸기' 덜미 "기소 검사와 '예상 질문지'까지 교환"(오마이뉴스)
난생 처음 참석한 재판정, "버젓한 법정모독" 씁쓸..(블로거뉴스)

검찰과 조선일보 증인이 법정에서 신문을 하는 신문사항을 짜맞추고 재판을 한 데 대해서 당시 재판을 참관하고 있던 저는 사실 그대로 블로거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실었고 이것은 며칠 후  MBC 뉴스데스크에까지 보도되었습니다.

고전하는 검찰(MBC 뉴스데스크)

1인미디어, 인터넷신문, 방송뉴스 할 것 없이 이 일을 보도하니 조선일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검찰도 이 건에 대해서 별도의 논평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증언에 대해 협의한 것도 문제 될 게 없다"는 한마디였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죠. 검찰과 증인의 짜맞추기 재판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조사를 했으나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형법 및 기타 형사특별법에 법정모독죄는 없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추궁하는 데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언론운동 4년 고민의 결론은 "소소한 이웃의 이야기"

언론운동에 열정을 쏟느라 많은 가정, 직장 등 부분이 소홀했습니다. 공익을 위해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타당성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런 입장에 놓여야 하겠지만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은 죄가 없기에 미안할 수밖에 없지요.
그것보다 더 크게 느낀 것은 '지역언론'에 관한 생각이었습니다. 시사저널 운동할 때 기획한 마지막 프로젝트는 "자발적 구독운동"이었습니다.


▲ 당시 전국운동으로 펼쳐졌던 시사IN의 자발적 구독운동의 흔적입니다. 전국 16개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습니다. 광화문 오프라인 배포까지 합해 총 6,000부 정도의 인쇄물을 배포했습니다. 당시 전국운동을 하면서 언론독자의 전국조직화를 꿈꾸기도 했으나 시사IN 창간이라는 작은 이슈로 전국 조직화는 불가능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은 언론독자의 시대를 예고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진실을 알리는 시민>이라는 전국 조직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하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제도 언론은 정부와 재계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아 바른 말을 전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희망은 독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거대담론을 다투는 일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언론운동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도시 판교로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지역언론을 일으키고 소비자운동이 지속할 수 있도록 자생구조를 만드는 일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뉴스의 중심에서 다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웃 어린이들과 놀고 웃으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습니다. 지역의 이야기가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역소식지 초안을 만들고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khpankyo)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존재감이 없고 미미하지만 집요하게 키워가볼 작정입니다.



▲ 채원이라는 어린이는 솜사탕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오빠 성원이와 달려 옵니다. 신도시 판교의 어린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마땅히 놀거리가 별로 없어서 심심해합니다. 이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 같은 거 하나라도 생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앞으로 <판교뉴스>라는 타이틀로 쓰는 기사에는 <진알시> 캠페인 배너를 달기로 했습니다. 광고이미지가 보기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십시일반 동참해 주신다면 태산처럼 큰힘이 되어 세상을 변화 시킬것 입니다

바로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http://www.jinals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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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09-04-2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오랜만이죠? 혹시 제 글이 불편하시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하지만 예전부터 승주나무님한테는 불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 솔직히 저는 촛불이나 안티조중동에는 찬성 안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뭘 쓰다보면 서로 반대의견이 나올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인간적으로 저는 승주나무님이 좋아요. 항상 맘속으로는 승주나무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추천입니다.^^

승주나무 2009-04-27 21: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OO님~
님의 댓글에 대해서 공개댓글로 하면 좋을 것 같아서..아이디만 가리고 말씀을 드립니다. 촛불이나 안티조중동과 관련해서 충분히 그런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이 승주나무를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다고 이해해도 된다면 제가 생각하는 촛불과 안티조중동에 관한 생각도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촛불을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징후 혹은 계기로 이해합니다. 촛불 자체에 대해서는 촛불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으로서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촛불이 다시 터진다면 저는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1년이 지나고 저의 고민도 1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안티조중동에 관련해서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 없는 청정자치구역"이라는 브랜드로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친구는 "조선일보"라는 네 글자를 지우는 게 어떤가 하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피해의식을 캠페인에 담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요지이지요. 그런데 저는 "조선일보"를 지우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것은 조선일보에 대한 피해의식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지금 시대를 대변해주는 일종의 상징이자 구 패러다임, 구 시대의 대명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촛불과 안티조중동은 계기 혹은 소재일 뿐 핵심은 "패러다임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조중동에게 안티를 할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에게 안티를 할 마음이 강합니다. 저의 타성과 관성들, 아집들, 구석구석을 다 허물어뜨려야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같이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며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 잔재에서 나는 나의 언어를 찾을 것입니다. 승주나무와 촛불, 안티조중동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지 2009-04-28 14:54   좋아요 0 | URL
네, 알아요, 그래서 추천한 것이죠.^^ 제가 승주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래요. 승주님이 남의 말에 귀를 열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게다가 (저로서는 부러울 정도로)열정적으로 수많은 경험을 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죠. 이건 형식적인 말이거나 빈말이 아니에요.. 승주님이 생각하는 그것은 조금 다르다는 것도 이해해요. 끝부분에 하신 말씀도 가슴에 와 닿아요. 음.. 한 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안티조중동은 계기 혹은 소재일 뿐 핵심은 '패러다임 전쟁'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게 솔직한 말인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정권쟁탈, 기득권 다툼, 밥그릇 싸움과 비슷한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싸움은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댈 일은 아닌 게 되는군요. 즉 저쪽에서도 나름대로는 자신의 패러다임이 옳다고 생각할 게 아니겠습니까? 사실 누가 가만히 앉아서 밥그릇을 빼앗기겠습니까. 그렇다면 마치 안티조중동을 하듯이, 강압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인터넷이나 방송을 장악해도 된다는 거네요.. 또 안티조중동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상호공존, 다양한 언론과 의사표현을 보장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결국 언론장악이라는 '방향'에서는 마찬가진데 말이죠. 반대로 저는 언론장악은 누가 해도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승주님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이것은 논쟁을 하려는게 아니고, 일종의 인터뷰처럼 질문을 드려보는 겁니다. 저는 그냥 답변만 듣겠습니다.) 건필하세요 (^.^)


승주나무 2009-04-28 15:03   좋아요 0 | URL
말씀하시는 논점이 굉장히 날카로우신 것 같아요.. 감탄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깊숙이 들어가면 저도 거칠게 제 입장을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티'라는 어감에 대해서 저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反이라고 한다면 '안티'의 의미뿐만 아니라 '반성'이나 '성찰'의 의미도 있어서 저는 그 글자를 선호합니다.

조중동 등 기존 기득권과 패러다임 다툼, 즉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은 없지만 전선이 펼쳐지다 보면 그렇게 비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소주에서 실제로 그렇게 싸웠어요. 그런데 제가 '판교뉴스'라는 성격으로 글을 쓰면서 저도 개인적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시사저널 투쟁할 때도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운동방향을 전환한 것과 같이 언소주에서도 포지티브 노선을 지켜왔습니다. 결국 대중에게 설득하고 대중이 쉽게 따르기 위해서는 포지티브에서 천천히 길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안티조중동 운동 안에 허위와 위선이 들어갈 자리가 너무나도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저도 그런 것들을 깨부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중용'에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중동이 기득권이고 부당한 독점권력이라면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깨뜨리고 나서 스스로 독점권력화가 된다면 그것은 행복한 고민이겠죠. 그때도 '중용'대로 갈 겁니다. 중용대로 간다는 것은 스스로 기득권을 깨뜨리는 것이죠. 시사저널 운동을 끝내면 시사인 창간을 하고 나서 그 시민주역들은 아주 조용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스스로 정신적 지분을 점유하지나 않을까 기득권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일종의 자기파괴를 한 것이죠. 사실 시사저널 운동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다른 게 아니라 그런 '파괴'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논점을 흐트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중동을 깨뜨리는 것이 목표도 아닙니다. 이미 보름달 아닌가 싶어요.. 끝물이라고 할까요.. 끝물을 패러다임으로서 밀어낼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죠.. 하지만 구질구질하게 남아 있고, 그것을 허용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 비참해지겠죠..

모든 것이 완벽히 파괴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죽을똥살똥 버티면서 끝내 죽지 않는 것이라는 어떤 사람의 말은 그래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밀댓글로 남기지 않는 것을 용서하세요.. 좀 엉뚱한 모양이 되긴 했지만.. 비밀댓글로 토론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지 2009-04-28 17:10   좋아요 0 | URL
넵, 답변 잘 보았습니다.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각자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뭐랄까, 그냥 내 생각을 가끔 얘기하고 싶고, 남의 생각이 궁금하달까, 그런 거죠..

그런데 생각을 전개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엉뚱한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걱정이 되어요. 암튼, 승주님, 하시는 일 잘 되시기 바랍니다. 힘 내세요^^

stella.K 2009-04-2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 열심히 사는 줄은 알고 있었다만 작년에 공부 좀 한답시고 너에 대해 모르는 것도 있었네.
넌 뭐든 열심히 하니까 다 잘될거야. 지금은 네가 알지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꽤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서재에 여전히 잘 나와 도장도 잘 찍고 하는데도 말야. 흐흐

승주나무 2009-04-27 21:35   좋아요 0 | URL
그래요..자주 오셔서 댓글도장도 많이 찍어주세요^^

2009-04-27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4-27 23:11   좋아요 0 | URL
정공법을 오랫동안 했으니 이제는 꿈에 그리던 <돌아가기 전략>을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동네뉴스~~ 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하잖아요^^ 암튼 감사합니다~~

Koni 2009-04-27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승주나무님은 멋지세요.

승주나무 2009-04-27 23:11   좋아요 0 | URL
칭찬 들어서 기분 좋네요~~~ 감사합니다. 많은 조언 부탁해요... 사실 좀 두렵기는 합니다...ㅎ

2009-04-28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30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4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생각 2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촛불이 다가오고 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는 촛불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하며 촛불에 대한 한계를 '불편하게' 짚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비판들은 촛불 현장에 머물렀던 눈치 빠르 사람이라면 알만한 상식적인 내용들이다.

촛불이 여중생의 손에서 타오른지 어느덧 1년이 다 돼 간다. 때마침 촛불 주역들도 5개월 만에 보석 석방됐다. 광우병대책회의 박원석·한용진 공동상황실장과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 김동규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 등 5명은  지난해 10월 29일 조계사에서 나와 11월 6일 강원도 동해시의 한 호텔에서 경찰에  붙잡혀 수감 상태로 있다가 4월 17일 보석 석방됐다. 5월을 앞두고 여러 가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촛불'이 다가오고 있다는 심리가 가장 큰 핵심이다.

그 동안 정부는 '명박산성'을 수도 없이 쌓았다. 촛불에 호의적이거나 관심을 보였던 방송사는 사장을 교체하거나 시사프로그램을 갈아치우거나 담당자를 체포하는 등 '군기잡기'에 나섰다. 종이 신문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압박을 해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시사주간지 간부는 "기업에서 갑자기 구독을 중단하거나 광고를 끊는 일이 있는데, 자연스러운 절차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슬슬 몸을 풀고 있다. 용산참사나 미디어악법 입법전쟁이나 MBC PD수첩 제작진의 체포 등 떨어지지 않는 소재 덕에 촛불은  단 하루도 꺼진 적은 없었다. 다시 촛불을 들자고 군불을 때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하지만 작년과 똑같은 방식으로 촛불을 들 수는 없을 것이다.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촛불을 드는 '행동'보다 촛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촛불 한가운데서 시를 썼던 이유는

촛불에 대한 낙관론도 점차 사라지고 진지한 분석의 결과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촛불 현장에서 진지한 사유를 펼쳤던 각계의 지식인, 활동가로 구성된 당대비평 기획위원회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이하 '촛불을 끄셨나요')를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이 책은 촛불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하며 촛불에 대한 한계를 '불편하게' 짚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비판들은 촛불 현장에 머물렀던 눈치 빠르 사람이라면 알 만한 상식적인 내용들이다. 촛불이 비정규직을 비춰주지 못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며 <정치>, <문화>,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촛불>과 연결시키며 중심 키워드에서 주변부로 확대되는 흐름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단지 정치, 문화, 여성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촛불에서 나타난 다양한 문제로 이야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은 소외계층을 상징하며 비정규직, 노숙자, 농부, 실업자, 학생들을 대표한다. 이런 구성은 촛불에 대해서 비교적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촛불에서 파생된 문제들을 긴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촛불 한가운데에서 촛불에 대해 느꼈던 막여한 회의감이 이제야 언어를 찾은 것과 같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촛불 한가운데에서 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고 블로그질을 했다. 하지만 점점 촛불과 촛불시민, 촛불정신에 관한 추상론이 공허하게 들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취재를 접고 시를 썼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내가 기사나 블로그 포스팅 대신 '시(詩)'를 선택한 것은 촛불이 겉테두리를 비추고 있지 않은지,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무조건반사처럼 타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비추고 세심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등의 회의감이 작동한 결과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중략)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 기형도 시작메모


촛불의 한가운데에서는 적어도 기형도 시인처럼 고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그어 놓은 불법이라는 허울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정이 민주적이었고 토론은 합리적이었고 행동과 말은 상식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상식은 상식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촛불을 끄셨나요>은 "촛불은 단지 중간계급의 시민운동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촛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촛불시민들은 촛불의 현상을 이해하는 '상식'선에 멈춰 있었지만, 촛불이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일각'이 아니라 '빙산'을 찾아야 한다. 고구마줄기를 계속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만일 10대들의 외침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고통이 우리 사회 전체의 고통을 좀 더 연속적으로 읽어냈더라면, 그리고 그 목소리를 시민 혹은 국민의 맥락에서 정치적으로 성급하게 번역하기 전에 시민이 되지 못한 국민이 되지 못한 그 어떤 주체들의 목소리를 대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면"(125쪽) 향후 촛불의 의미와 성격은 전혀 달려졌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들의 생각이다. 이런 '무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세력의 가벼운 공격에 쉽게 흔들렸다. 이를 통해서 저 집권세력이 시민들을 '배후조종'당한다고 말했을 때,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을 무능력한 아들이라고 폄하했을 때 시민들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238쪽)

 

질척하지 못한 '사유의 언어'는 아쉬워

<촛불을 끄셨나요>는 이제까지 읽었던 어떤 촛불의 이야기보다 감회를 주고 있다. 한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촛불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도 그의 한 마디 논평 때문이다.
이 책의 모든 논점에 대해서 동의하면서도 책을 덮은 후에 마음속에 남는 아쉬움이 있었다. '상식'을 넘어 깊이 있는 사유를 시도했지만 '상식'을 통과하지 않고 '현장성'이 부족한 점은 이 책의 공감대를 반감시킨다. 정제된 언어만이 아니라 좀 서투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더라면 이 책의  비판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냄새'가 잘 안 난다.

이 책이 던지는 비판을 모두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촛불'이 마련해준 '만남의 공간'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친해지는 과정을 지나야만 비로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촛불을 끄셨나요>의 비판점은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예화가 있다. 2008년 ‘촛불’ 이전에는 화물노조가 공적인 가치를 내걸고 파업을 했지만 시민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민영화 반대, 시민안전, 공공성 확보 등 시민들에게 직결된 사안인데 말이다. 2008년 운수노조는 동일한 명분으로 파업을 했지만, 이번에는 시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촛불이 가져다준 대화의 힘이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고 미약할 것이다. 촛불은 이제 '1살'밖에 되지 않았다. 촛불이 성년이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비판보다는, 촛불이 성년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의 미덕'은 매우 중요한 단서다. 촛불은 이제까지 필요 이상의 찬사를 받아 왔다. 촛불이 실질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음에 비해서는 너무 긍정적 평가다. <촛불을 끄셨나요>의 편집주간은 "독자들이 동의하지 못하고 불편해할 점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불편함'이 촛불을 짚이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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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2009-05-03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주주의 외치고 국민소리 자주외치는 자들은 거의 거짓말이라 생각한다. 주인장은 아니겠지요?
 
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상훈(오른쪽)은 사랑하는 애인에게도 한 번 웃어주지 못할 정도로 폭력에 깊이 노출돼 있었다.


<똥파리>가 상기시켜준 가정폭력의 기억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영화 카피처럼 온통 욕지거리 투성이 영화를 보고 나는 점집에 가서 무당에게 욕바가지를 한껏 얻어들은 것처럼 후련함을 느꼈다. 

 책이나 영화 중 유독 글로 남기고 싶은 작품들은 대체로 자기고백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 <똥파리>를 보았을 때 영화가 보여준 '폭력의 언어'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결손가정'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는 참 우습다. 결손하지 않은 가정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나오는 폭력이 끝에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10초 남짓한 장면이 모든 '폭력'을 설명해 준다. 아들(상훈)이 아버지를 때리는 근친폭력이 크게 문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다.

단지 나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휘두른 폭력의 실체를 모두 알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날마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울먹이며 "승주야 너는 커서 아내를 울리지 마라, 아내를 때리지 마라"라고 하신 말씀이 평생 남아 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는 공처가가 됐고 아내의 눈물에 심장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못난 남자가 됐다. 유년 시절 가정폭력의 경험이 얼마나 생생하냐면 어머니가 들려준 묘사가 한순간도 빠짐없이 지금도 남아 있다.

뱃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배삯을 받는 날은 노름방에 직행한다. 그 날도 노름방에 들어가는데 술까지 한잔 해서 뒷주머니에 수표가 반쯤 나와 있었다. 동네 사람이 어머니에게 제보를 해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수표'를 빼내기 위해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도 못할 만큼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그 매를 다 맞으면서 끝내 수표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어머니는 그 일로 한동안 숨어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폭력을 내면으로부터 밀어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고, 얼마나 많은 책을 소요한지 모르겠다.

나는 일상의 폭력을 일상의 집요함을 통해 극복한 케이스이지만, <똥파리>의 '상훈'은 그렇지 못하다. 극단적인 폭력과 극단적인 사건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다. 극단적인 사건은 한 사람의 전 인생을 억누르는 경우가 있다. 상훈의 경우가 그렇다. 
 


똥파리의 언어는 바로 '폭력' 그 자체

 <똥파리>는 첫장면부터 충격적이다. 뉴스나 블로그 등을 보면 첫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흠씬 패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가 남자를 때려눕히고 여자에게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거기다 침까지 뱉는다.

이 장면은 '폭력'을 언어로 이해하지 않으면 좀처럼 해석되지 않는다. 즉, 상훈은 연민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도 '폭력'이며, 자신의 사랑표현조차도 '폭력'을 쓴다. 육체폭력이 되지 못하면 '언어폭력'이라도 쓴다. 폭력이라는 알파벳이 새겨진 것처럼 그의 폭력적인 문자는 영화 전체를 헤집고 다닌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사채빚을 받으러 간 집에서 한 남자가 가족들을 사정없이 패고 있을 때, 동생들에게 '작업'을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남자를 때려눕히면서 "밖에서는 X도 아닌 것이 집에서만 김일성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무능력자와 김일성, 폭력을 한 문장에 담아내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베어냈다. 폭력이란 행위 그 자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징후를 드러낸다. 말이 들어갈 수 있다면 폭력이 낄 수 없다. 고립과 무능력만큼 폭력에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영화는 당시 정치상황과 사회구조를 설명하는 어떠한 장면도 남기지 않았고, 단지 사적인 공간만으로 사회 전체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습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예컨대 가족을 죽인 죄로 15년을 복역한 상훈 아버지의 모습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한창 때는 가족들에게 허구헌날 폭력을 일삼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출소한 후에는 아들에게 밤마다 폭력을 당해야 했다. 아버지의 폭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해를 한 것이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폭력을 쓸 수 없는 처지'에 대한 욕구불만에서 나온 '자기에게로의 폭력'으로 이해한다. 죄책감에 의한 자살시도로 해석될 만한 근거장면을 찾을 수 없다.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할 때 처할 수 있는 극단적인 형태를 상훈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다면, 더 이상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작정할 때 처할 수 있는 극단적인 형태는 바로 주인공 '상훈'이 보여준다.

상훈이 자신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연희와 사랑을 쌓아가며 점차 폭력의 언어가 치유되고 폭력 자체를 폐기할 수 있게 된 상황과 폭력의 언어를 버렸을 때 상훈이 감당해야 할 상황은 일종의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결말을 봐야 하는 영화의 배열 자체를 가지고 (상훈의 슬픈 결말에 대해서) 한탄을 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폭력 언어를 포기했을 때 사회로부터 어떤 단죄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게 느꼈다는 점을 소득으로 생각할 수 있다.


리얼리티 <똥파리>의 활주로 역할을 해준 <워낭소리> 고마워

뉴스보도에 따르면 <똥파리>는 <워낭소리>보다 흥행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워낭소리>는 300만이라는 기적적인 숫자를 바라보다가 막을 걷었고, <똥파리>가 새로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보도는 <똥파리>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워낭소리>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다. <똥파리>라는 독립영화가 등장할 수 있도록 텃밭을 일궈준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연나라의 '곽외'라는 사람이 생각난다.

연나라 소왕(昭王)이 천하의 현자를 구하자 곽외가 "먼저 이 곽외부터 쓰면 저보다 현명한 사람들이 어찌 천리길을 마다하겠습니까?"라고 자천했다. 연 소왕이 곽외를 스승으로 삼자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齊)나라에서 오는 등 많은 현자들이 몰려들었다.
- 사마천 <사기>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워낭소리>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텔링과 드라마타이징으로 훈훈한 감동을 주는 독립영화이지만, <똥파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리얼리티가 살아날 수 있도록 활주로 역할을 해준 <워낭소리>에 대해서 <똥파리>의 관객들은 고맙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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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23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똥파리가 이런 느낌의 영화였군요. 날 것 그대로의 충격이라니, 심호흡이 필요하겠어요.

승주나무 2009-04-23 21:53   좋아요 0 | URL
한번 기지개 펴시고 보세요^^

프레이야 2009-04-23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말까 망설여지는 영화에요.
독립영화의 활주에 박차를 가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선 끌리지만
보고나면 하루종일 그놈의 욕설과 폭력적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보고싶은쪽으로 더..

승주나무 2009-04-23 21:54   좋아요 0 | URL
요즘 위선을 벗고 까놓고 이야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김앤장의 변호사님들처럼 젠틀하게 웃으며 세상에서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보다 대놓고 폭력쓰고 언어폭력쓰는 이 영화가 더 정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직한 폭력...멋있잖아요 ㅎ
 

미네르바 1심 판결 "일단 안심"


인터넷에 정부 정책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게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20일 오후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미네르바에 대한 1심 재판이 '무죄'로 결론나면서 각계의 희비가 교차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 네티즌들은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반면 '준법'을 구호로 내걸고 '미네르바' 구속을 준법의 본보기로 삼으려는 정부의 시도가 제동을 받는 분위기다.
족벌신문들은 판결 결과에 몹시 불편해 하면서도 대놓고 이야기를 하진 못한다. 그러면서도 미네르바를 “경제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던 30세의 무직 청년 박씨” 따위로 폄하하기에 바쁘다.
가장 분통이 터지는 사람들은 검찰이다. 서울중앙지검 최재경 3차장은 "판결문을 본 결과 재판부가 증거의 취사 선택을 잘못해서 사실관계에 대해 오인했고 박씨가 허위사실임을 인식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배척해 공익침해 목적에 대한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고 반박했다. 반면 미네르바 1심 판결을 맡은 유영현 판사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꼼꼼히 살펴봤더니 그것만으로는 유죄라고 하기에 부족했다”고 밝혔다. 오직 법리로만 판단했다는 판사에게 법리문제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으니 두 사법 기관의 자존심 대결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 제2미네르바에 대한 대비, 어디까지 진행됐나

지난 4월 1일 국회를 통과한 저작권 개정안은 정부의 야심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상 저작권 위반이라고 하면 원저작자와 저작권 침해자(침해 의심자) 양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저작권법 개정의 경우 저작권자와 저작권 위반자, 심지어 양자와 상관 없는 저작물 유통 관리자(포털 등 게시판 관리자)를 모두 정부의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정부여당의 독소조항으로 유명한 사이버모욕죄조차도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할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조항)라는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은 '울트라 독소조항'이라고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예컨대 정부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유통하는 누리꾼과 주요 게시판을 모두 제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가 많이 올라오는 게시판에 인력을 고용해 감시활동을 벌이고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발생할 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명의의 명령을 내리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장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다. 이번 개정된 저작권법을 '언론검열'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저작권법 개정안에 '반의사 불벌죄'와 같은 장치를 두지 않으면 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법을 집행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게시판이 어디까지 해당하느냐는 문제를 두고도 논란이다. 개인 블로그가 게시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유권해석으로 충분히 '저작물을 올리는 모든 웹 공간'으로 법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블로그는 포털사이트와 직결되기 때문에 개인 블로그의 위법사항을 근거로 포털에 대해서 제재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누리꾼의 입장에서 보면 '불펌'으로 메일확인 등 포털의 기본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미네르바는 출소 후 인터뷰에서 "도전받는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앞으로 미네르바가 글을 쓸 때는 전과 같은 상황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기사나 도표, 정보 인용을 할 때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은 원 저작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게시자를 제재하거나 게시판 자체를 폐쇄할 수 있는 무서운 조항이기 때문에 미네르바는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해서 글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표 인용 같은 것은 제약이 많을 것이다. 도표를 분석하고 그 요지를 싣든가 아니면 새로 도표를 그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네르바를 포함해 앞으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은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한 연구를 면밀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독소조항만으로도 인터넷은 완전 정복된 상태다.


MBC는 헛발질, MB는 환한 미소


이명박 정부는 여러가지 다양한 경로로 언론탄압과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KBS와 YTN 낙하산 사장 임명과 MBC PD수첩 수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 통제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해 그런 의지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탄압대상은 MBC인데, 요즘 아주 우스운 꼴이 되었다. 신경민 앵커의 하차 문제로 엄기영 사장이 방문진의 이사들은 이사회에 해암안을 제출한 상태다. 방문진 이사의 구성 면면을 봤을 때 부결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해임 여부와 상관 없이 이번 경우는 MBC의 패착이자 정부에게는 요행이다.
엉뚱하게 앵커 문제를 가지고 MBC가 내분을 겪고 있는 상황은 정부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이 기회에 엄기영 사장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자면, 그는 원만한 처세로 사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원만한 자세 때문에 공적이 된 좋은 반면교사다. 엄기영 사장이 앵커 교체를 반대하고 신경민 앵커를 지켰더라면 MBC와 반MBC의 전선이 명확하게 펼쳐질 수 있었을 텐데, 신 앵커 문제에 개입하면서 전선이 왜곡됐다. 엄기영 사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약 YTN 사장처럼 MB맨이 된 것이라면 그의 처세가 나쁘지는 않겠지만, MBC맨이라면 패착을 범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모든 경황을 놓고 봤을 때 미네르바 출소 후 이전의 영향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네르바가 옥고를 치르는 동안 별도의 전략을 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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