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를 개설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500여 개의 글을 남겼고 방문자는 5월 3일 현재 1,378,133명을 기록했습니다. 하루에 3,700여명이 방문한 셈입니다.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댓글과 트랙백입니다. 게시글당 4개 정도의 댓글이 달려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글 2개 당 1개의 트랙백을 통해서 공동취재, 공동포스팅을 다채롭게 했습니다.


책 서평, 신문 스크랩이나 하던 소심한 블로거

2008년 4월 27일은 촛불이 군불을 떼기 시작한 날입니다. 주로 알라딘 서평쓰기경향신문 스크랩, 오마이뉴스 기사쓰기에 제한돼 있던 저는 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라딘 서평쓰기는 책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서평이라는 재생산에 국한되며, 경향신문 스크랩은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사쓰기는 '기사'라는 일정한 틀에 맞게 써야 하는 제한조건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매체가 필요했던 차였습니다.

더군다나 촛불문화제를 취재하고 새벽까지 글을 정리해 올린 것이 다음날 오후까지 블로그 메인에 올라가는 바람에 순식간에 7만7천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도 500여개나 받고 나서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 어른들이 많이 미안하구나

이것은 수년간 알라딘 서재를 방문한 사람보다 많은 숫자였고, 3년간 2만 개의 기사를 스크랩한 블로그의 방문자의 3분의 1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이 폭발적인 블로그의 힘을 받고 저도 충격이 컸습니다. 나도 블로거로 나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죽을 많이 쒔습니다. 한 이틀 동안 자료 찾아가며 고생고생해서 올린 글에 추천은커녕 조회도 1건도 기록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열번도 넘게 맛본다면 무척 깨닫는 게 많을 겁니다. 그때는 여전히 블로고스피어의 특징과 블로거들과 소통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만 소통 못한다고 할 게 아니라, 나도 나의 고집과 지식의 틀에 빠져서 세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라면 굳이 블로그라는 공적 공간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고민하던 중 생각해낸 게 실생활의 글이었습니다. 내 주위를 살피며 소재거리를 찾아다녔고 사진기를 주머니에 들고 다니거나 아니면 휴대폰카메라로 포착을 하면서 블로그 글에 이미지를 담아갔습니다. 특히 티스토리 블로그는 이미지가 없으면 블로그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 캡쳐는 필수입니다. 이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3개월 헛발질을 한 끝에 '블로거뉴스'를 조금 알게 되다


한 3개월간 헤매다가 드디어 특종을 하나 건졌습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

실물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물가상승률이 살인적으로 다가오던 7월 말 동네시장을 돌아다니면서 1,000원짜리 상품이 유난히 많이 있던 모습을 포착했고, 경제뉴스의 물가통계와 연결시켜 뉴스를 송고했습니다. 이 뉴스 하나로 5만6천의 조회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블로거뉴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 기사는 저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가르쳐줬습니다. 블로거뉴스 중에서 현장성이 있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기사의 경우는 미디어다음에서 특종상을 통해 1~20만원의 활동비를 적립해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기사로 20만원의 부수입을 건졌습니다. 블로거뉴스로 3회의 특종상을 받았고 총 60만원의 수입이 생겼는데, 모두 현장성이 깊게 묻어나는 기사들이었습니다.


블로그 정체성, 블로그 주요 콘텐츠가 중요하다

저는 출판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았고 책 관련 글을 자주 썼습니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책 관련글'이 좀처럼 인기가 없습니다. 다른 포스팅에 비해 책 관련 포스팅은 10분의 1정도로 조회수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관련 글이 잘 안 올라오고, 출판관계자들도 블로그질을 잘 안 합니다.
나는 여기서 역발상 전략으로 갔습니다. 책 관련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되 정직하게 '책 포스팅'으로 하지 않고 시사와 일상 등 블로거들이 좋아하는 주제와 결부시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 블로그 포스팅 중에서 최고 조회수를 자랑하는 포스팅은 책 관련 글입니다.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블로거뉴스 기사는 단번에 4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는 블로그에 구글 애드센스를 깔았는데, 이날만 112달러(현재 원화가치로 144,480원)라는 광고수익을 냈습니다. 이 글과 <우리동네 '1000원샵'>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는 퓨전 포스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은 시장에서 찍은 1,000원짜리 상품과 물가상승률을 연결시켰고,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은 책의 내용과 예전에 답사를 했던 사례를 연결시켜 썼습니다. 한 가지의 메시지는 단조롭고 재미가 떨어지지만 다른 이야기와 연결시켜 구성하면 전혀 새롭게 보입니다. 모든 글에 두 개 이상의 이야기를 연결시킬 필요는 없지만, 블로그 글을 구성할 때 이 기술은 익힐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책 이야기를 자주 쓰는 이유는 블로그를 통해서 좋은 책을 많이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로 세상에 알리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라는 책은 '계급'이라는 개념을 너무 쉽고 실증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에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한 10개는 쓴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2~3개가 1만이나 2만의 조회를 기록했고 판매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해당 출판사가 고맙다며 저자를 소개시켜줬고 식사도 대접받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손낙구 선생은 그 후로 블로거로 전향해 부동산에 관한 좋은 글을 많이 써주고 계십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손낙구 선생(오른쪽 아래)과 책에 예쁜 발가락 그림을 그려준 따님 손해인 양과 함께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이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블로그 때문이었습니다.


촛불의 정신을 계승한 블로거가 되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는 '촛불'과 관계가 깊습니다. 촛불이 낳았고, 촛불을 통해 자랐습니다.
블로그의 글 하나하나마다 '촛불'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단지 촛불이 옳다는 것을 떠나서 촛불이 주는 메시지를 저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때로는 책읽기를 통해, 때로는 현장취재를 통해 그 본체를 그리려는 욕구가 100만 블로그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소통하는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 저 나름대로 소재를 고민했고,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와이프와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하면 "저것은 1만 조회수 정도 되겠는데"하면서 일상을 블로그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블로그는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이 혼재돼 있는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인미디어로서 제도언론에 못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네티즌들도 틀에 박힌 신문기사보다는 정성스럽게 쓴 아마추어 블로거뉴스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온라인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로서의 정체성도 있습니다. 답답한 것 같이 보이는 현실을 헤쳐나갈 열쇠는 '네트워크'에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이 네트워크를 흐트러놓기 위해서 가진 애를 쓰겠지만, 블로그라는 창을 열어놓고 다른 창과 소통하면서 촛불이 밝혀 놓은 곳과 밝히지 못한 곳을 고민하면서 블로그질을 하는 것이 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고를 위한 블로그질,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그질, 어떤 목적을 가진 블로그질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기왕 블로그를 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나의 블로그질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블로그가 의존하는 하나의 '정신'을 밑바탕으로 까는 것이 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것이 '촛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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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을 먹고 나면 집에 가서 반드시 양치질을 해야 해요. 충치가 생기면 부모님들이 싫어하실 테니까요."

반신반의하면서 꺼내든 솜사탕이 말그대로 '대박'났습니다.
동판교와 서판교를 넘나들며 솜사탕 기계를 날랐는데, 솜사탕으로 아이들이 몰려들고 솜사탕 오는 시간을 귀신같이 알아맞혀 끊일 새가 없었습니다.
솜사탕을 말아주면서 해맑은 표정들을 찍다 보니 덩달아 즐거워지더군요.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올려봅니다.

※ 사진은 <판교소식지 만드는 카페>에 오시면 더 많이 볼 수 있어요


판교의 꼬마 스타 채원이와 성원이


▲ 채원이와 성원이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남매입니다. 학교 끝나면 매일같이 솜사탕 먹으러 출근(?)합니다. 워낙 표정이 밝고 장난꾸러기라 사진이 꽉 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위 사진은 성원이가 솜사탕을 수염처럼 붙이며 장난하는 모습입니다.



▲ 동생 채원이(왼쪽)의 백만불짜리 웃음입니다. 둘 다 밝고 장난을 잘 쳐서 당황할 때가 있지만, 이 녀석들이 오면 즐거움이 두 배로 커지는 것 같습니다. 






▲ 오빠 성원이가 장난으로 동생의 솜사탕을 한움큼 뜯어먹어서 동생이 울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맨 아래 있는 사진 속의 채원이가 웃고 있는 이유는? (울다가 웃었는지 표정이 아직도 상기돼 있네요) 채원이나 오빠의 솜사탕을 절반쯤 뚝딱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꼬집히지 않으려고 성원이가 하는 수 없이 솜사탕을 반쯤 뜯어줬습니다. 아니, 뜯기는 것을 용인해 줬습니다. 역시 오빠라서 현명한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져서 놓치지 않고 찍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어요

엄마, 아빠와 함께 먹는 솜사탕은 꿀맛이 두배에요. 판교에서 많은 엄마, 아빠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솜사탕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부모님들의 표정에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판교에 편의시설이나 매점 같은 게 없어서 아이들에게 맛난 것을 사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아련한 마음이 전해오는 듯했습니다.


▲ 엄마 등에 업혀서 솜사탕을 먹었어요. 엄마는 솜사탕을 먹지 않아도 달콤하다는 표정이네요.


▲ 솜사탕을 맛나게 먹으면서도 아빠 손을 놓지 않습니다. 얼굴보다 큰 솜사탕이 맛있나 봅니다.  



▲ 엄마가 돌아보며 한컷 찍어 주십니다. 따님은 사진을 찍든 말든 솜사탕 먹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한자리에 모였어요. 감각 있는 엄마는 선글라스를 쓰고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네요. 아빠는 가면서 먹자고 성화이지만 아이들이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말이죠.



친구들이랑 솜사탕 먹고 직접 만들어도 봤어요

맛있는 것도 친구들이랑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우리 솜사탕 가게에도 주요 고객들이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가장 많고,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간간히 있습니다. 처음 왔던 친구들은 대체로 두어 번 더 오게 됩니다. 와서 솜사탕 마는 법도 돕고, 신문에 스탬프 찍는 일도 돕습니다.




▲ 선평중 학생들이 솜사탕을 먹으러 왔습니다. 솜사탕 앞에서는 초중고, 어른 가릴 것 없이 어린애가 되는가 봅니다.




▲ 그래도 중학생들은 의젓하게 일을 돕기도 합니다. 솜사탕을 왜 만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친구들이 일을 돕겠다며 스탬프를 들고 도장을 찍습니다.  


▲ 도장의 내용입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준 성금으로 <진실을 알리는 시민>(줄여서 '진알시')라는 시민단체에서 경향신문을 받아다 판교 시민들에게 배포를 하면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혹시 판교에 사시는 분이나 판교를 지나시는 분들은 많은 관심 바랍니다.



▲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른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웃음'을 보여줍니다. 저도 이럴 때가 있었죠^^




▲ 솜사탕을 받아든 기념으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표정을 잘도 내네요.




▲ 솜사탕을 갓 받아든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자랑을 하고 있네요. 다른 친구는 다 먹어서 작아졌는데, 그래도 자기 것이 크다고 자랑합니다.




▲ 솜사탕을 먹으려면 "줄을 서시오~" 사진기를 들이대니까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는 모션을 취해 줍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솜사탕 기계 안으로 들어가려는 친구, 손을 집어넣거나 젓가락을 집어넣는 친구, 솜사탕을 말다가 삐져나온 부분을 냉큼 집어가는 친구, 자기가 먼저 왔다며 고성을 지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공평하게 솜사탕을 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신사적이에요. 만6세 이하 어린이가 오면 아무 말 없이 그 동생에게 차례를 양보합니다.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제자가 아니라 바로 선생님이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달콤한 솜사탕을 하나 가져갈 뿐이지만, 솜사탕을 만드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배웁니다. 솜사탕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한마디에서도 배우고, 서로 나누는 대화에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사에 찌들어 있는 어른들에게 솜사탕 하나에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가르쳐 줍니다.

"얘들아, 솜사탕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

촬영에 협조해주신 동판교, 서판교 어린이들과 엄마, 아빠께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 <판교뉴스>라는 타이틀로 쓰는 기사에는 <진알시> 캠페인 배너를 달기로 했습니다. 광고이미지가 보기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십시일반 동참해 주신다면 태산처럼 큰힘이 되어 세상을 변화 시킬것 입니다

바로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http://www.jinalsi.net

판교소식지만들기 카페 http://cafe.daum.net/khpan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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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민 앵커 등이 퇴진하고 난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데스크>라는 간판만 빼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권순표 앵커 동료평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

오늘 MBC 취재를 하다가 우연히 권순표 앵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권순표 선배는 기자들 중에서도 중진급으로 위아래의 연결고리 역할을 잘 할 것이다. 특히 정파적으로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인사다. 그리고 사람좋은 인간적인 저널리스트다"

나도 시사매거진 2580에서 권순표 기자가 명사들을 인터뷰할 때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뉴스데스크>는 <2580>이 아니라는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의 메인앵커 자리에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가 발탁된 것은 저널리즘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非 저널리즘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해서 상식을 가진 저널리스트, 혹은 언론사라면 당연히 감시의 눈을 뜨고 취재와 보도를 해서 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불가피할 텐데,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를 앵커로 기용한 것은 정부와 '편안한 관계'를 가지고 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료들이 평가하는 신경민 앵커는 이에 비해서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의 언론인'(독설닷컴)이다. 독설닷컴은 최문순 의원의 평을 곁들였는데, “신경민 선배는 노조 활동을 며칠 밖에 하지 않았다. 진보성향 언론인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고 최 의원은 말했다. 후배들에게 인간적으로 좋은 선배는 당연히 권순표 앵커이겠지만, 저널리스트로서 호감이 가고 "까칠한 청취자"에게 애착이 가는 앵커는 누구일까.

그렇다고 권순표 앵커를 탓하기는 어렵다. 권순표 앵커는 수십 대 일의 오디션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앵커이므로 축하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오디션을 통해서 이미 차기 앵커의 언행과 보도방침을 규정한 데 있다. 신경민 앵커처럼 '짬밥'이 있다면 데스크에서도 뭐라 못하겠지만, 권순표 앵커처럼 '중간고리'의 인사라면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는 데스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뉴스데스크'에서 '데스크'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이 '9시 뉴스'가 되어 버린다. (<9시 뉴스>는 KBS 뉴스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오늘도 클로징된 클로징 멘트, MBC 노조는 뭐했나

오늘 MBC 뉴스데스크 이틀째다. 크고 작은 뉴스가 많았고,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이 민감한 사안도 많이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클로징 멘트는 사라졌다. 뉴스데스크의 한켠이 날아간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진다. 뉴스데스크의 데스크는 기자들의 보도 자체를 압박하지는 않지만, 메인 앵커의 활동공간을 거의 없애 놓았다. 

MBC의 기자들은 신경민 앵커의 하차를 막기 위해 투쟁하면서 1%라도 메인 앵커의 재량권에 대해 할애했더라면 새로운 뉴스데스크가 이렇게 데스크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임원들이 새 앵커 오디션을 할 때 MBC 노조가 역할을 할 수는 없었을까. 결국 뉴스데스크에서 비판기능이 사라진 것은, MBC의 비판기능, 더 나아가 MBC 노조의 비판기능도 취약해졌다는 것을 매일 밤 9시마다 보여주지 않겠는가.

결국 신경민 앵커도 잃었고, 뉴스데스크의 미덕들도 사라져 버렸다. 오죽했으면 독설닷컴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멘트가 뉴스에서 사라지고, MBC뉴스의 영혼도 사라졌다."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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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7일부터 새롭게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를 맡게 된 권순표 기자와 이정민 아나운서 오프닝멘트 모습. (자료 : MBC)


뉴스데스크 '불편함' 버리고 '편안함' 찾나

MBC는 지난 4월 21일 앵커 오디션을 실시, 모두 50여 명의 기자들이 앵커 오디션에 참가했다. 이들 중 적절한 인물을 22일 아침 편집회의부터 부장단과 협의한 의견을 종합해 논설주간·보도제작국장·보도국장 대행·보도본부장의 회의에서 결정한 뒤 엄 사장이 결재해 확정 발표하는 형식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포스트 신경민 앵커"의 색체가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4월 27일 새 앵커들의 첫 방송에서 드러난다.

MBC 뉴스데스크 평일 메인 앵커 권순표 기자는 오프닝 멘트부터 말을 아꼈다.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새로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첫 소식입니다."

클로징 멘트에서 오프닝의 '온도'를 확인함과 동시에 경영진의 '새로운 방침'(?)까지 읽을 수 있을 듯했다.

"오늘부터 진행을 맡은 저희들의 바람은 MBC 뉴스가 여러분께 보다 더 믿을 수 있고 더 편안한 뉴스로 다가서는 겁니다." (권순표 앵커의 클로징 멘트)

뉴스데스크의 뉴스에 대한 멘트를 분석해 보면 '팩트'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권순표 앵커가 뉴스에 대해서 재구성한 구절이라곤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와 OECD는 이달 초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부동의 세계 1위에서 3위로 낮아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어수룩한 행정, 엉터리 통계였습니다. - <'엉터리' 자살통계‥자살률 축소 1위가 3위로?>

경기도 가평군이 군예산 수천만 원을 경찰과 기자들에게 격려금으로 제공해 온 것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세금을 뇌물로 제공한 셈입니다. - <경기도 가평군, 세금을 예산으로 버젓이 상납>


내가 10년 동안 뉴스데스크 아낀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 아니었다

오프닝, 뉴스멘트, 클로징멘트를 종합하면, 좋게 표현해 '노회한 진행', 나쁘게 표현하면 'KBS와 다름없는 뉴스'라고 말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KBS뉴스는 4~50대들의 호감을 얻는다. 한겨레21은 KBS뉴스와 MBC뉴스의 세대별 시청률 상관관계를 짚었는데 "한국방송 1TV의 주요 시청층이 여전히 TV를 즐겨보는 40~50대 이상인 데 비해, 문화방송의 시청층은 다매체 시대를 영위하는 30~40대라는 점도 문화방송 시청률 하락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라고 했다.

젊은 앵커의 무척이나 보수적인 진행을 보면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MBC뉴스데스크가 10년 시청률 하락을 감수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이른바 "뉴스 철학"이었다고 생각한다.
MBC뉴스데스크를 10년간 봐온 30대 시청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뉴스데스크의 특징은 '불편함'이었다. 뉴스가 편안하다면 MBC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소설가 '김훈'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면서 2분법을 구사하지만, 뉴스 독자의 관점으로 보면 "사실과 의견 사이에서 고뇌"해야 하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사실과 의견 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구덩이가 숨어 있어서 사실(fact)만 가지고 '사실상' 거짓말을 만들어내면서도 숨어 있을 수 있다. 사실만 전달하고 의견을 배제한다면 더욱 풍부한 팩트가 담겨 있는 KBS를 봐야지 굳이 MBC를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결국 KBS가 2개인 셈이므로 MBC뉴스데스크가 필요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권순표 앵커의 클로징 멘트처럼 "불편함"을 버리고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될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시청률이나 광고 수주로만 따지지만 편안한 뉴스를 진행하는 게 좋다. 하지만 뉴스데스크가 지금까지 영향력 있는 매체로 인정 받고 존경을 받았던 것은 단지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10년 내내 KBS에 밀려 있었으니까. 이 설명할 수 없는 뉴스데스크의 가치가 새 앵커들, 정확히 말하면 새 앵커를 발탁한 경영진의 방침에 의해서 훼손된 것 같아 씁쓸하다. 10년 동안 뉴스데스크를 지켜보던 애정을 더 지키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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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손님에게 솜사탕 마는 법을 배우다

"채원이랑 성원이는 집에 안 가고 왜 맨날 솜사탕 먹으러 오는 거야?"
- 응~ 집에 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너희들 여기에 가장 먼저 생겼으면 하는 게 뭐야?
- 문구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용품이라도 사려고 하면 왕복 40분이 걸린다니까요. (선평중 학생들)

난생 처음 솜사탕 가게를 차렸습니다. 하얀 손으로 솜사탕 기계를 돌리려니 좀처럼 손에 익지 않습니다. 물론 '아마추어' 솜사탕 아저씨라서 돈은 받지 않습니다. 솜사탕 기계는 바쁘게 돌아가는데 솜사탕이 동그랗게 잘 안 말아지니까 옆에서 구경하던 성원이가 보다 못해서 일을 거듭니다. 설탕을 넣는 일은 성원이가 하고 솜사탕은 제가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성원이가 솜사탕을 직접 말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쁜 모양으로 솜사탕이 굴러갑니다.

"아저씨는 나보다 더 솜사탕 못 만드는 것 같아"

꼬마에게 꾸중을 듣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성원이가 아저씨보다 더 솜사탕 잘 만든다. 네가 선생님이야"라고 말했더니 신나는 눈치입니다. 같이 솜사탕을 말던 아저씨들에게 성원이는 다 별명을 지어 줬는데 "쫀쫀한 아저씨", "무서운 아저씨"라는 별명 속에서 유독 "인정해준 아저씨"라는 별명을 지어 줍니다. 성원이의 잘하는 점을 인정해주고 격려를 해주니 신이 나서 저를 잘 봐준 모양입니다.



▲ 성원이가 만든 솜사탕입니다. 조금 더 크게 만들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 중간에서 끊었습니다. 성원이가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지역으로 가다

솜사탕 아저씨가 된 사연을 말하자면 깁니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 언론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해 광고불매운동을 벌이던 시민단체에 가입해 언론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촛불이 타는 날은 촛불 취재를 하고, 시민단체의 재판 날(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불매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고발해서 열리게 된 재판)에는 간간히 재판에 참석하면서 언론운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언론운동을 하려고만 하면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도 거대권력과 위험을 감수하고 싸움을 벌이는 훌륭한 언론시민들이 많이 있어서, 그 분들에 기대 저는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여수에 사는 한 시민기자님은 지역언론을 한참 만들고 있는데, 의견을 듣겠다며 서울로 와서 저를 직접 만나셨습니다. 지역언론에 대한 꿈은 시사저널 사태 때 언론운을 하면서부터 내내 생각하던 주제였습니다.

시골은 아니지만, 아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판교신도시로 가려는 친구들이 있어서 직장까지 그만두고 함께 들어갔습니다. 판교는 젊은 도시이고 부자 신문들도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정도로 입주가 덜 돼 있습니다. 어떻게 동네 사람들과 친해질까 하는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솜사탕 기계'를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동력기까지 해서 100만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해서 솜사탕을 돌리자마자 아이들에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매점도 별로 없고, 놀 데도 마땅치 않아 더욱 솜사탕에 끌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역신문도 만들 거예요



지역으로 간 까닭은 단지 솜사탕만 팔거나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지역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언론을 일구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조그마한 소식지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이웃 이야기, 가족 이야기, 아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짧은 이야기, 육아 이야기, 동화 이야기 등을 실을 예정입니다. 창간 준비호는 4면이 나왔지만, 8면으로 증간해서 창간호를 낼 계획입니다.

우리동네 소식지를 위해서 현직 어린이집 선생님과 동화작가 선생님, 한의사 대학생, 어린이 철학교사 등 각계의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보태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이야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너무 '커다란 이야기'에 쏠려 있어서 실생활의 작은 이야기를 담을 공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1인블로거 시대도 열렸고, 독자가 기사를 올려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기 때문에 동네의 이야기를 웹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계획입니다.

주민들이 불편한 일이 있거나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중간에서 취재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지역에 '말'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자꾸 들려드릴게요.


※ 앞으로 <판교뉴스>라는 타이틀로 쓰는 기사에는 <진알시> 캠페인 배너를 달기로 했습니다. 광고이미지가 보기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십시일반 동참해 주신다면 태산처럼 큰힘이 되어 세상을 변화 시킬것 입니다

바로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http://www.jinalsi.net

우리동네 판교 만들기 카페 http://cafe.daum.net/khpan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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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9-04-2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승주나무 2009-05-04 16:32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하늘바람 2009-04-2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일인데 소신있게 좋은 일을 하시는 것같아요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승주나무 2009-05-04 16:33   좋아요 0 | URL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런 결정을 준비하며 이것저것 많이 고민한 것 같아요.. 일단 생활이 돼야 하니까요^^

웽스북스 2009-04-2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보기 좋아요.
나 언제 솜사탕 알바언니 하러 가야겠어요 ^-^
(나이가 서른이라도 받아주시려나 ㅋㅋㅋ)

승주나무 2009-05-04 16:33   좋아요 0 | URL
네~ 언제든지 오세요^^
웬디양 님은 예쁘시니까 받아줄게요^^

드팀전 2009-04-2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운동가로 뛰어드셨군요.^^ 잘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승주나무 2009-05-04 16: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순오기 2009-04-29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솜사탕도 기술이 필요하군요~~~ 홧팅! 응원합니다~~~~

승주나무 2009-05-04 16:34   좋아요 0 | URL
네~ 쉽지 않더군요.. 수십개의 솜사탕을 말아먹은 끝에 이제야 마스터했어요^^

조선인 2009-04-2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결심을 하셨군요. 화이팅!!!

승주나무 2009-05-04 16: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힘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