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학교법인 동일학원의 사학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다가 2006년 6월 28일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 통고까지 받은 조연희씨(42·여·전 동일여고 교사)의 ‘길거리 문학수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뜻을 품고 쫓겨난 선생님들이 많다. 그 선생님들을 찾아서 다시 교단에 세워야 한다. (사진 : 경향신문)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과는 인연이 있는데, 얼마 전 이웃간의 불화를 해결한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실었다가 담당 작가로부터 원작을 사용해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작 허락을 해주었다.
원작료를 적잖이 받아 마음도 지갑도 두둑해진 하루였다.

<내 이야기를 동화로 만든 애니메이션>
<TV동화 행복한 세상> "완벽한 이웃이 되는 법"(클릭)


그 프로그램의 담당작가가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블로그에서 글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문의였다.
내 학창시절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선생님이 인생을 좌우한다(클릭)

내 인생에서 최초로 의미 있는 기억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건이다. 이른바 <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할 정도다.
그 다음에 대단한 반전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손바닥을 올렸고, 선생님은 매를 내리치셨다.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매를 맞지 않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그때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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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5-1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이런 선생님이 계시리라 믿고 싶네요.
이건 정말 아름다운 사도네요~ 우리큰딸한테 꼭 읽게 할게요.
가난한 동네 가난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네요~ ^^

승주나무 2009-05-18 13:29   좋아요 0 | URL
네.. 분명히 그런 선생님이 계실 거에요..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심 감사합니다^^
 


▲ 작년 8월에 있었던 황석영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 이날 동영상 촬영까지 했지만 쓸 게 너무 없어서 기사를 쓰지 않았다. 황석영에 대한 미련을 시원하게 잊게 해준 소설이 바로 <개밥바라기별>이다.



영달은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젊은 노동자이다. 그는 겨울의 새벽 벌판에서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와 고향으로 향하는 중년의 정씨를 만난다. 정씨는 삼포라는 이름의 고향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들은 눈길을 걷다가 읍내식당에서 도망쳐 나온 접대부 백화를 만난다.
이들 셋은 다 함께 강천읍내의 기차를 타기 위해 간다. 영달과 백화는 이내 친해졌으며, 그들은 정씨의 고향얘기에 매료된다.
이윽고 목적지인 강천 역에 도착한 정씨는 뜻밖에도 고향이 호텔 등의 공사로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이제 영달과 정씨는 마음의 고향이 아닌 생활의 터전으로 삼포를 찾는 동행인이 되었으며, 백화는 영달이 마지막 남은 돈으로 사준 차표로 떠나는 것이었다.
- 황석영, <삼포 가는 길> 줄거리



대학 시절 감동적으로 읽은 책 중에서 하나가 삼포 가는 길이다.
그 때 '황석영'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는 지겹게 들었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붙인 것도 황석영이다. 백기완 선생의 원작 시를 기가 막히게 다듬어 촛불에서도 애창곡이 되었다.

그 이후로 황석영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우연찮게 최신작들을 읽게 되었고,
작가강연회에서도 두어 번 찾았다.
최신작을 읽고 촛불을 다니면서 더욱 굳히게 된 사실은 소설가로서의 황석영은 <삼포 가는 길>이 정점이라는 생각이었다.
삼포 이후에도 많은 소설을 썼지만 그것은 황석영의 껍데기나 평판이 썼던 소설에 불과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의 비즈니스적 정치적 행보다.
지난 대선에서 反 이명박 연대를 제안한 사람도 손학규에게 경선 참여를 강력히 제안한 것도 황석영인데,
이번에는 이명박에게 "당신이 중도다"고 마치 중도 대표나 된 양 권리를 부여하려 하는 모습에서 다분히 정치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당시 예스24 주최의 간담회와 오마이뉴스 주최의 강연회에도 다녔지만,
기성 작가 중에서 황석영이 유난히 작가 행사를 많이 다녔다.
독자와의 만남에 다니고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고, 매스컴에 눈에 띄는 것에 따라서 문학성은 점점 멀어져 갔다.

황석영 등의 작가들이 촛불에서 보인 행태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의 꿈을 접어버렸다.
소설가는 앞으로 황석영의 저주에 빠져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학자나 언론인, 작가라는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촛불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그래도 문인은 상상력을 대표하는 사람이니 촛불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만약 누군가 "그래도 황석영은 글솜씨는 있잖아"라고 항변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생활면을 잘 쓰니 그런 대로 쓸 만한 신문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일로 인해서 황석영의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소설가'라는 이름이 어울린 것은 20년도 더 된 일이다.


정치인 황석영에게 그나마 기대할 점이 있다면 

소설가 황석영은 갔지만 정치인 황석영으로 할 역할이 있을까? 그 점이 사실 고민이기는 하다.
황석영은 소설을 쓰고 나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일본의 소설은 시들어 말라버렸고 중국의 소설은 자유가 없고 한국의 소설은 가능성이 넘쳐난다는 따위의 자뻑스러운 이야기가 많았다.

촛불 때도 황석영은 이명박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몹시 고심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명박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한 가지였다.
"누군가 저쪽의 옵저버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였다. 촛불의 입장을 완곡하게 전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순수 촛불에는 이명박이 워낙 반감을 가지기 때문에 그 역할을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했다. 이명박 관련 행사에 참여한 인사 명단이나 방명록 같은 데 글을 남긴 사람 속에서 황석영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발언도 그의 일환일 가능성이 많다.

작가란 본질적으로 저항정신을 갖기 마련인데, 스스로 중재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니 소설가 황석영을 스스로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생각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다.


▲ 한비자의 '세난'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한 글이다. 철학적으로도 영감을 준다. 말을 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 일이고, 그 전에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이 이름을 따서 나도 요즘 "Project <SENAN>(가칭)"이라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이것은 황석영이 처음 쓴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한비자'라는 사람이 '세난'이라는 글에서 펼쳤던 전략이다.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군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

필수가 아니라 '전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황석영의 발언 하나를 가지고 매도하는 것도 옳지는 않고, 황석영이 주장하는 마지막 명분의 답이 올 때까지 '정치인 황석영'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려 한다. 우리 촛불 이후로 일희일비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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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5-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정원 때문에 황석영에 관심을 가졌었어요. 삼포가는길 저는 수능 언어영역 준비할때 징하게 봤었는데 ㅋㅋ 황석영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중도다"라고 말을 보니 인간적인 흥미가 확 떨어지네요.

승주나무 2009-05-14 13:32   좋아요 0 | URL
황석영은 문학을 자산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문학을 정치에 연루시켜서 기소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 문학은 힘이 없어서 문학 쪽에서 필화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아고라라면 몰라도....

로쟈 2009-05-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 스스로 '광대'를 자처했으니까 거기게 걸맞은 행보지요. 그의 광주 콤플렉스를 이번에 한번 더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리더' 의식도...

승주나무 2009-05-14 14:44   좋아요 0 | URL
그러면 소설을 쓰지 말고 에세이 같은 거나 썼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바리데기나 개밥바라기별도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기는 하지만...

글샘 2009-05-1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온 소설은 모두 망했죠.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개밥바라기... 모두 개판이더군요.

승주나무 2009-05-14 16:41   좋아요 0 | URL
소설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은데 독자와 평론가들이 단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마이뉴스)



 ‘심재철 의원 18원 후원 사건’ 을 기억하시나요. 
"광우병에 걸린 소일지라도 SRM(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 나머지 부분은 안전하다" 라는 명언을 남겨서 네티즌들로부터 '사랑의 18원' 후원금을 두둑히 받은 심재철 의원 지금은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심재철 18원 보내기>가 뭔지 궁금한 분들은 클릭

'사랑의 18원'을 해야 할 '사랑스러운' 분이 또 한명 탄생했네요. 바로 신영철 대법관입니다.
신영철 대법관님은 법원 윤리위원회에서 권고를 받고도 대법관직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네요. 사람들은 모두 신영철 대법관님이 후안무치라서 그렇다고 욕을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혹시 신영철 대법관이 '월급 걱정' 때문에 대법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요.

대법관 월급날이 언제인가요? 그리고 대법관 월급은 얼마인가요?
제가 많은 돈은 아니지만 18원 정도는 송금해드릴 수 있고, 제 친구들을 모아서 신 대법관님 월급 정도는 저희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월급이 모아지면 대법관직 그만두기로 우리 약속해요.

대법관이든 대통령이든 돈이 있어야 하는데, 신영철 대법관 님은 주머니 걱정으로 애간장이 탈 수도 있는데 남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적으로 비화하려고만 해서 속상하셨죠. 세금도 내야 하고, 골프장도 다녀야 하고, 이번에 차도 바꿔야 하고 돈 들어갈 데는 한두 군데가 아닌데 요즘은 세상이 하수상해서 '꽁돈'도 안 들어고, 그나마 대법관직 때문에 고정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만둘까 하는 마음 이해합니다.

지금은 대법관직을 그만둘 타이밍이 아니겠지요. 신영철 대법관님의 활약이야 우리 대통령님이 잘 아실 테니, 대법관에서 무러나셔도 전 경찰청장님처럼 코레일 같은 공기업 사장자리는 따논 당상이겠지요. 문제는 대법관 사퇴와 공기업 사장 사이에 있는 공백이 너무 커서 주머니사정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변호사사무실을 차린다고 해도 돈만 많이 들고, 이왕 버린 몸 수임료도 잘 안 들어올 것 같고 애가 타실 거에요.

하지만 우리도 힘들답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돈으로 해결해 드리죠. 대신 약속 하나만 해주세요. 대법관 월급을 채워드리면 대법관직을 벗어던지겠다고. 아니면 필요한 돈을 말씀해 주세요. 우리 네티즌들이 아무리 가난해도 신영철 대법관님 돈 드릴 정도의 경제력은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얼마면 된다'고 말을 해주세요. 답변을 기다리면서 친구들을 설득하고 있을게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가 신영철 대법관 님을 제2의 심재철로 만들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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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초롬너구리 2009-05-1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면에 죄송합니다, 승주나무님. 그동안 님의 글을 읽은바가 있어'돈'을 언급하시는건 돌려 비꼬기위함을 조금 알겠지만, 글쎄요. 돈때문에 그만 못둔다면 돈모아줄테니 그만두라..는 식의 발언은 그닥 제가 보기에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윤리의원회의 결정이나 신영철 대법관의 행태를 비난할만 하지만, 그 행동으로 비판하시지 그 사람의 인격까지 끌어내는 비판은 없었으면 합니다.
허참, 근데 어떻게 마무리를 다 해야 님의 기분이 상하시지 않을지를 모르겠군요. 그럼 다음에 또...^^

승주나무 2009-05-13 12:11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초롬너구리 님~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것도요.
말씀드린 부분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인격적인 비난으로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조롱, 해학, 풍자>는 예부터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우병 쇠고기도 제거하면 괜찮다고 말해서 사람들을 어이 없게 만들었던 심재철 의원에게 18원 보내기 사건도 일종에 그와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지적을 받으니 새롭게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6일 추모제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이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했다며 강제진압하고 있다.  (사진 : 오마이뉴스)

공무원 曰 "내가 당신보다 세금 더 많이 내니까 걱정 말라"

공무원들이 점점 변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시민에게 봉사하고 서비스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공복'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나랏님'으로 바뀌어간다.

얼마 전 성남시에서 언론 캠페인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성남시 공무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당장 치우라"고 명령했다. 어이가 없어서 한 동료가 "왜 이렇게 윽박을 지르느냐"고 말하자 공무원은 "당신은 말하는 것부터가 틀려먹었다. 말을 하면 고분고분 들어야 할 것 아니냐"며 되레 따지고 들었다. 그러면서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라는 훈계까지 남겼다.
부아가 치밀은 동료는 "우리도 세금 내고 성실히 의무 지키며 사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냐?"라고 묻자, 그 공무원은 "내가 당신보다 더 세금 많이 내니까 상관 없다"고 말했다. 자진 철거는 했지만, 철거보다 공무원들의 말 한마디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내가 낸 세금이 막말이 되어 돌아온다"고나 할까?


경찰서장 曰 "개만도 못한 시민"

지난 3일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정문 앞에서 목을 매고 숨진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을 추모하는 집회가 6일에 열렸다. 이날도 경찰의 폭력과 막말로 집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통령 같은 윗분들의 '지령'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제주 4.3 당시 서북청년단원들은 자식으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뺨을 때리라고 강요하거나,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겁간하고 온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잔악한 행위를 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당시 서북청년단 관계자는 "윗선에서 명령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며 윗선의 명령 사실을 환기해 주었다. 지금의 경찰 현장 병력이 시민들에게 하는 행위는 당시 서북청년단원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소속된 민주노총의 '민주'는 거짓이다", "'민주'의 탈을 쓰고서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개만도 못한 일이다"(안억진 대덕경찰서장), "즉시 도로를 점거한 차량을 이동하라… 이동하지 않으면 밥줄 끊겨요" 등의 협박과 조롱이 섞인 말을 쏟아냈다. 이날 동료 직원들이 추모제를 연 장소는 고인이 목숨을 끊은 곳이었다.  


문제가 터진 이후에 그 경찰서장은 '애만도 못하다'라고 한 말을 시민들이 잘못 들었다고 하는데, '애'나 '개'나 시민을 비하한 말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외교부 장관이 "미친 X", 문화체육부장관이 "씨X"이라고 한 데 이어서 정부 관료로부터 이보다 더 강한 막말이 탄생했음을 축하해야 할까?



옛부터 적군 사이에서도 전사자와 포로에 대해서는 예우하는 관례가 지켜졌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엄격히 분리할 뿐만 아니라, 망인에 대해서는 살아생전의 모든 사연을 잊고 추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전쟁 중에 전사자의 시체를 질질 끌고 전장을 한바퀴 도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인간이 줄 수 있는 모욕 중의 최고의 모욕이었다. 신도 인간들도 모두 공분하는 처사였다. 하지만 2009년 대한민국 경찰과 그 경찰에 명령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 '망자'란 한낱 시체라는 물건일 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모욕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받고 있다. 용산, 대덕...

오마이뉴스에서는 새로운 신조어가 생겼다고 썼다.



[속담] '관 앞에서 막말 한다'

<뜻 풀이> 상갓집에서 관을 앞에 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막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예의가 없는 버릇없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래> 2009년 5월 6일 대전 읍내동 대한통운 물류센터 앞에서 열린 고(故)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 1지회장의 추모제에서 대덕경찰서장이 오열하는 동료 근로자들을 향해 '(도로를 점거해 추모제를 하는 것은) 개(또는 애)만도 못한 일' '차량을 이동하지 않으면 밥줄 끊겨요' 등으로 협박과 조롱이 섞인 말을 쏟아낸 데서 유래됐다. 

 



※ <원래 속담>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
: '어떤 경우에라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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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댓글]'사실'과 '의견' (김훈 : 승주나무)

저는 기본적으로 김훈이 '사실과 의견'을 논했을 때 그것이 이분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훈이 말하는 '사실'이 이분법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견'과 무관한 영역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훈이 말하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적 의견'을 말하기 때문에 '사실'이라는 본질과도 다릅니다. 김훈의 이분법은 선악의 이분법과 달리, 의견이라는 개념을 사실과 의견으로 억지로 구분하려 했기 때문에 작위적 이분법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김훈은 '사실'에 대한 일종의 맹목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김훈의 '사실론'은 예컨대 '똥 싸지 않는 인간'을 상정하는 것처럼 허무맹랑해 보입니다.  

김훈에 대한 인간적인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자를 하다가 소설가가 되고 나서 기자와 소설가의 양다리를 걸치면서 정체성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시사저널 사태 때 와서 "나는 언어의 관리자다"라고 말하는 오만함도 그렇습니다. 김훈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이 있어서 안티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김훈의 '사실과 의견'론은 토론을 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 담론은 아니고, 기껏해야 김훈의 개인적 관심사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개인적 호오와 취향은 있는 것이므로 개입할 필요는 없으나, 기왕에 문제제기를 받은 입장에서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세상에 아주 순수한 의미의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속에는 항상 의견이 개입돼 있으며, 사실의 결론 역시 조작되거나 특정한 관점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봐도 역시 편견과 당파성이 개입된 서술방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가에게 월급을 주거나 역사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역사서술이라는 것이, 특히 사실적 역사서술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사실의 배열방식도 의견에 포함되며, 사실의 순결한 속살을 추종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솔직히 "이것은 의견이다"라고 깔고 들어가면 좋겠지만, 자신의 의견임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가지 근거를 갖다 붙이고 사실을 동원하는 방식의 글쓰기는 더 밉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당파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계급존재이기에 일정 부분 당파성의 한계를 인식해야 하며, 이것을 부정하는 순간부터 순수성은 깨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정치적이라는 것, 이것이 '순수성'의 본체가 아닐까요.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인간이 '순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은 사실을 토대로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실은 의견이라는 가설을 토대로 수집방향을 잡아야 하며, 만약 사실 확인 과정 속에서 의견(가설)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행로를 수정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할 때라야만 온전한 의미의 언론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주장은 '과학의 연구방법론'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언론 방식과 사소한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서 갖가지 사실과 인터뷰, 양쪽의 주장, 근거,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심층기자와 과학자의 연구방법이 근본적으로는 같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연결을 시키고 생각해 봤습니다.

안티조중동 문제가 나와서 말씀을 드리자면, 안티조중동 운동 자체를 패러다임 전쟁이라고 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안티조중동 운동은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대에 나타나는 한 가지 징후일 뿐이며, 안티조중동이 패러다임 전쟁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패러다임 전쟁>과 관련해서는 졸고를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취재를 하고 있는데, 만약 출판사를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재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당연히 조중동과 조중동의 잔재에 영향을 받는 이른바 '정론매체'에 대한 전쟁도 포함됩니다. 패러다임 전쟁은 대한민국의 언론환경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경제, 문화 등 모든 범위에서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만 패러다임 스펙트럼의 본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합니다. 조중동을 죽이고 정론매체를 살리는 것만으로 현재의 패러다임 구조가 개선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근의 나의 행동이 정론매체 살리기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정론매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의 1단계일 뿐입니다. 우리 나라에 '정론'이라는 간판을 달고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일단 본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챙겨 주자는 생각에서 1단계를 이렇게 설정했는데 1단계에서 꽤 오래 지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2단계에 대한 구상은 1단계 구상 때부터 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현실화할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2단계가 곧 드러날 것입니다. '언론에 대한 독자 피드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 등등에 관한 이야기도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저는 순수한 의미의 사실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리고 '진리'라는 것도 부정합니다. 공자와 석가, 예수는 지독한 욕망에 사로잡힌 현세인일 뿐입니다.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욕망, 사랑하겠다는 욕망, 아픔을 함께 하고 싶은 욕망 등 초인적인 욕망 덩어리입니다.

<굳나잇 앤 굳럭>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CBS의 뉴스맨과 신경민 앵커가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서 못썼네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내가 옳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뉴스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해당 사안이나 뉴스에 대한 입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뉴스진행방식과 입장을 지지합니다. 나의 주장 역시 어느 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경민의 뉴스진행을 지지하는 것은 그의 결론을 지지한다기보다는 "할 말은 하는", "아닌 건 아닌"을 지지합니다. 언론은 아군이나 적군에게 동시에 비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결국 비판 그 자체가 언론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동영에 대한 사례는 그 사람을 평가하기에 좋은 예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과 무관하지만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입장을 봐야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가에서는 이것을 '봉시불행(逢時不幸 : 공교롭게 아주 좋지 못한 때를 만남)'이라고 하는데, 봉시불행의 사례를 통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영향을 좀 받는 것 같습니다. 아래 이와 관련된 논어의 문구를 하나 인용합니다.


섭공이 공자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우리 고을에 말입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정직한 인물이 있습니다. 전번에 자신의 아버지가 이웃집의 양을 훔치자 그 아들이 관청에다 고발을 했지 뭡니까!"
공자가 [이맛살을 약간 찌푸렸다가 펴며] 반박했다. "[참으로 드문 일이군요. 그러나] 우리 고을에서 말하는 '정직'은 당신의 마을과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 비위 사실을 감추고, 마찬가지로 자식도 아버지를 위해서 비위 사실을 감추어줍니다. 정직은 서로 감추어주는 곳에 들어 있습니다."
葉公語孔子曰 吾黨 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 <논어> 자로편(13) 18절

 

※ 위 예시는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사계절)의 해석본을 따랐습니다.

저는 순수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신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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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5-1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막 승주님의 까칠함이 묻어나오는 듯 ㅎㅎ

"때문에 사실의 배열방식도 의견에 포함되며, 사실의 순결한 속살을 추종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솔직히 "이것은 의견이다"라고 깔고 들어가면 좋겠지만, 자신의 의견임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가지 근거를 갖다 붙이고 사실을 동원하는 방식의 글쓰기는 더 밉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구절이 제일 눈에 띄어요. "사실의 순결한 속살"이라니, +_+

나도 시를 많이 읽으면 저런 표현을 쓸수 있을라나....ㅎㅎㅎ

승주나무 2009-05-10 12:05   좋아요 0 | URL
제이드 님~ 부끄럽게 왜 그래요 ㅎㅎㅎ

사실과 진실, 사실과 의견 등등은 언론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행어'나 '수사'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현장에 있으면 이런 말들이 다 우습거든요^^

'속살'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분위기 전체가 좀 야릇해지는군요^^;

2009-05-12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2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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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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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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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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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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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5-1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지님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말씀해주신 부분, 그리고 글을 면밀히 보고 개념분석을 정확히 해주신 부분에 감탄합니다.

듣고 보니 제가 논점구분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쓴 부분이 있고, 앞뒤가 안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토론이라기보다는 제 마음 속에서 생각을 끄집어내려는 과정 속에서 끼어들어간 불필요한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김훈이나 신경민 등에 대한 나의 감정이 개입돼 말이 더욱 격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읽기 쉽게 좀더 잘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첫술이라고 생각하고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신지님^^

2009-05-12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09-05-1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그동안 저는 훨씬 더 승주님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참고 이해해주시는 넓은 마음이 고맙습니다.

덧) 저 사람은 도대체 내게 왜 저러나..하실까봐 저의 입장을 설명한 것입니다. 승주님의 코멘트로 오해가 풀렸습니다.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하는데.. 고맙습니다.승주님~




2009-05-12 1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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