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한계를 인정하라

로마의 숫자를 보면 3단위로 숫자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3은 Ⅲ이라고 표시하지만 4는 Ⅳ, 9는 Ⅸ라고 표시한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역시 3~4 단위의 숫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작대기를 9개 그어 9를 표시한 문명도 있었지만 이내 폐기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수학자들은 인간이 수를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4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결론내렸고 어느 정도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기억 역시 생물처럼 변화한다는 사실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판명되었다. 만화와 책으로 발표된 에리 풀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에 인용된 유명한 대사가 있다. "기억은 살아있는 것이며 항상 변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편리에 따라 쉽게 조작된다"는 사실이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과거의 사진 중에서 배경을 다르게 조작하고 보여줬더니 대부분은 그런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한 사람도 집에서 생각을 해보고 나서 자신이 잘못 기억했으며 그 사진이 맞다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책에 적용해본다면, 한 페이지의 내용을 기억하기도 힘든데 책 전체의 내용을 기억하고 서평을 쓰거나 회상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메모 리딩(memo reading)을 권한다. 메모하면 명료해진다.

 
▲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면 기억이란 게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기록하고 메모하라, 그러면 명료해질 것이다


메모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뇌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기억하는 창고의 임무에서 벗어나 전체를 조망해 나와의 연관성에서 책을 관조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모나 책의 표시를 통해서 뇌가 책의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뇌는 데이터를 쌓아놓는 창구가 아니다. 정리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거나 파편들을 조합하는 고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뇌를 뇌답게 대우해주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우리들은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뇌에게 허드렛일을 시켜오지 않았는가?

책을 읽은 후에 메모한 부분이나 표시한 부분을 다시 살펴보면 책의 전체가 저절로 간추려질 것이다. 메모독서의 이와 같은 장점을 몸에 익히고 나면 메모를 그만두기 어려울 것이다.


메모 리딩의 방법과 응용

메모의 방법은 자신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체크할 수 있어야 하고, 책을 다 읽은 후에 체크한 부분이 한눈에 펼쳐지도록 해야 한다. 나는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책에 꽂아두고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으면 일반적인 단행본(223*152mm (A5신))에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된다. 빨간색과 파란색 볼펜 등 2가지 정도의 색깔펜을 이용해 짧은 인용문이나 첫어절~끝어절, 그리고 요지문이나 코멘트를 쓰는 식으로 구분하면 훌륭한 기록표가 나온다.

일람표는 짧은 시간에 두 번 독서한 효과를 준다.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는 깊이가 2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배가 된다. 처음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대체로 수박 겉핥기를 할 뿐이고, 다시 볼 때 비로소 확실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메모표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마을의 원님으로 갈 때는 반드시 A4 한 장짜리 일람표를 만들어오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일람표에는 인구 수와, 재산, 부역자, 범죄자, 노약자, 장정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다산 선생은 "한 장의 종이에 마을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마을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마을' 대신 '책'을 집어넣으면 뜻이 통한다.

앞서 소개한 메모의 방법은 “책”의 관점에서 소개한 것이다. 책뿐만 아니라 어떤 주제(예컨대 인권)에 관해서 정리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래 표와 같이 자신의 독서 이력을 정리하면 나의 독서생활 전체를 점검할 수 있다.


▲ 독서 메모표 샘플. 책의 기본정보와 독서기간, 쪽수, 첫어절/끝어절, 요지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전체 독서경험을 관리할 수 있으며, 책의 내용을 명료하게 장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A4용지를 활용한 실제 메모표

★ 지난편 보기(클릭)


※ 책 읽는 사람들의 소셜한 생각, 페이스북 소셜북스
http://www.facebook.com/socialbooks


PS. 7월 18일부터 7월31일까지 매일 <독서의 기술>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딴청을 부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머리는 해야 한다고 자꾸 시키지만 몸은 귀찮아하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서평을 쓰려고 할 때도 몸의 저항이 어김없이 일어난다. 이때 몸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책을 읽게 해주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약속이다. 약속으로 몸을 묶어두면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고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된다.

국민할매 김태원 씨가 무르팍도사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선 뻥 후 노력”이라는 비법을 밝혔다. 소풍 때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어려운 곡을 연주하겠다고 선언한 후에 밤낮 연습을 하면서 끝내 당일 연주를 해낸다.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된 것이다.


안철수 교수(카이스트, 왼쪽)와 록커 김태원 씨(오른쪽)는 '자기 약속'을 통해서 실력을 쌓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진 : 위키트리)

안철수 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모 인터뷰에서 안철수 씨는 자신의 공부법을 공개했다. 자신도 알 리 없는 최신 기술에 대해서 칼럼을 쓰겠다고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지면을 비워두게 한다. 마감일과 지면이 있고 알맹이가 없는 상태에서 그는 최신 기술에 매달리고 결국 좋은 칼럼을 게재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책에 적용해도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한데, 나는 이것을 약속독서라고 부른다.

앞쪽형 인간의 저자인 나덕렬 박사(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의사)는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를 할 때 앞쪽뇌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앞쪽뇌를 통해 뒤쪽뇌에 축적된 지식이 재구성되고 자신만의 지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약속 독서는 읽어야 할 책을 읽게될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약속독서의 방법은 간단하다. 독서토론회를 하거나 친구와 커피숍에서 책 내용을 소개해주겠다고 공언하거나 어떤 약속이든 하면 된다. 독서토론을 하면 발제와 토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약속을 하게 된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저자 이지성 씨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대학과 일반에서 인문고전 독서토론회가 무척 활성화되었다고 하는데, 인문고전뿐만 아니라 독서토론을 통한 “함께읽기 효과”와 약속독서를 통한 뇌의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무척 완성도 높은 독서 프로그램이다.

약속의 힘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중요하다. 회사의 비전과 목표(약속)이 공감대를 얻으면 모든 구성원이 한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는 각자가 살길을 모색하게 돼 회사가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것과 같다.


★ 지난편 보기(클릭)


※ 책 읽는 사람들의 소셜한 생각, 페이스북 소셜북스
http://www.facebook.com/socialbooks


PS. 7월 18일부터 7월31일까지 매일 <독서의 기술>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시장미 2011-07-2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페이스북을 시작하여서 소셜북스에 좋아요~! 했답니다. 근데 운영자가 승주나무님 이신가요? ^^
여하튼 페이스북에서도 뵐 수 있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승주나무 2011-07-21 17:23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 님 안녕하세요. 소셜북스 운영자 맞습니다. 페이스북 운영하느라 알라딘 서재질 뜸하게 됐습니다. 페북에서 만나 반갑네요. 오랜만입니다^^
 

문학시간에 우리는 공감각이라는 말을 배운다. “청각의 시각화”와 같이 두 가지 감각 이상을 쓴다는 뜻이다. 예컨대 김광균의 시 <외인촌>에 쓰인 표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이 공감각이다.

독서를 할 때도 여러 가지 감각을 쓸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감각은 시각일 것이다. 하지만 촉각으로 읽을 수도 있다. 메모를 하면서 책의 구절을 베껴쓰기했다면 촉각을 이용해서 독서를 한 것이다. 밑줄긋기라는 사이트 기능(인터넷서점에서 제공)를 이용해 구절을 키보드로 입력한다면 역시 촉각을 이용한 셈이다.

글쓰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라면 육필로 쓸 때와 키보드로 쓸 때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종이와 키보드는 전혀 다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친구에게 들려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다면 그것은 청각을 이용한 독서가 된다. 입을 쓰지만 귀로 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책 내용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때는 앞쪽뇌(전두엽)가 크게 활성화된다. 앞쪽뇌는 기획 총괄 판단 창의력을 담당하는 뇌의 기관이다. 이 부분이 활성화되면 사업과 연구, 마케팅 등 두뇌를 쓰는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무려 세 가지의 감각을 이용해서 독서를 한다면 당연히 한 가지 감각으로 독서를 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독서효과를 얻게 된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언은 신체의 미디어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귀”라고 했다. 눈은 신체 부위 중에서 비교적 부정확하고 느린 편이다. 마술 등 시각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들이 많은 것도 눈의 취약성을 증명한다.

같은 시각이라고 하더라도 글자와 이미지가 다르다. 책은 대체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직선형으로 펼쳐진다.

마인드맵의 창시자 토니 부잔은 우리의 뇌가 자연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그것은 직선보다 방사형에 가깝다고 했다. 따라서 정보를 방사형으로 모아둔다면 훨씬 오래 갈 수 있다. 일반적인 책의 직선형 정보를 방사형으로 번역하고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창비)에 대한 마인드맵 리뷰

마인드맵의 설명글 보기 : http://goo.gl/qe8sG

오래 읽거나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좋은 책을 한권 정해서 마인드맵 리뷰를 써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샘플 그림 참조)처음 할 때는 시간이 오래걸리고 힘지만, 우리의 뇌는 적응의 제왕이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마음 속에 마인드맵이 자리잡게 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책을 안 읽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단 한권의 책을 제대로 읽으면 자신의 독서력 전체가 업그레이드된다




※ 책 읽는 사람들의 소셜한 생각, 페이스북 소셜북스
http://www.facebook.com/socialbooks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1-07-19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기 서재 이미지 사진 근사한데? 좋다!^^

승주나무 2011-07-20 00:55   좋아요 0 | URL
네~ 강사로서 공식 데뷔전이었습니다. 근사해요? ㅎㅎㅎ

멜기세덱 2011-07-1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간의 시각화'란 말은 첨 들어봐요....ㅎㅎ 공감각의 예로는 좀...ㅎㅎㅎ 그나저나...메일보내신거 보니깐...무슨 대표되셨어요?

승주나무 2011-07-20 00:55   좋아요 0 | URL
역시 국어선생님^^ 시각의 청각화로 바꿨어요. 오감을 둘 이상 사용하니 공간이란 건 들어갈 수 없겠네요. 고마워요. 저 회사 차렸어요.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청계천 평화시장 전태일의 삶을 그린 만화 로 유명한 최호철 작가가 한진중공업과 관련해서 그림 그림(경향신문 7월11일자 3면)

▲ 김두식 교수의 최신작 [불편해도 괜찮아]의 마인드맵 리뷰

이 그림을 보고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와우~ 정말 정리 잘 하셨네요!"

 

미소로 답변을 했지만, 사실 나는 마인드맵으로 책을 정리한 게 아니다. 마인드맵을 통해 "나의 주장"을 펼쳤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주장을 보충하기 위한 매개일 뿐이었다. 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불가피하게 각주를 달아보기로 했다.

 

마인드맵의 여러 가지 원칙 중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직선형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그릴 것

2. 이미지와 색깔, 키워드를 주로 표현할 것

 

맨 가운데의 책 제목은 원래 책을 모방했다. 그림 실력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카피도 이렇게 못 하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베끼기를 하면서 느낀 생각은, 베끼다 보면 더 자세히 사물을 관찰하게 된다는 점이다.

 

책 표지 상단의 이미지는 국제 연합 인권 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RC) 로고다. 그 위에서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가 춤을 추고 있다. [불편하지만 괜찮아]를 읽으면 두 권의 책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데, [빌리 엘리어트]와 [앵무새 죽이기]다.

 

마인드맵은 연결고리를 통해 연관관계를 밝히지만 나는 숫자를 달아놓아서 연상작용을 도왔다. [불편해도 괜찮아]의 첫 번째 장이 청소년 인권이라는 데에는 절대 공감한다. 남자를 중심으로 보면 취학 전, 학창시절, 군대 시절이 인권 지뢰밭이다. '비행 청소년'이라는 한국적인 표현은 청소년들을 잠재적 범죄자이자 보호 대상자로 만든다. 자기 아이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은 '인권'의 출발부터 숨막히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인권 후진국이 된 데는 청소년 인권의 말살이 가장 큰 이유인데, 경기도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청소년인권 헌장이 시급히 필요한 까닭이다.

 

오른쪽으로 1,2,3,4,6장은 공통점이 있다. 인권의 주인공인 '사회적 약자'를 모아놓은 것이다. 인권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등장시킨 캐릭터는 '팩맨'이다. 아이템을 마구마구 집어삼키는 오래된 게임 캐릭터는 인권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언어 관습인 '다르다'(different)는 아이템이 되고, '틀리다'(wrong)는 팩맨이 된다. 성 소수자는 우리나라에서 '틀린 사람' '잘못된 사람'이 되기에 뱀에게 잡혀먹는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장애인은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4번 항목에과 5번 항목에 쓴 아닐 非 자는 무시무시한 무기와 날카로운 가시로 표현했다. 반인권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태도가 자주 나온다.

 

내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3번 '여성인권' 항목인데, 여성 女자를 거꾸로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3번 항목으로 연결된 화살표는 점으로 표현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유치한 수준임을 표현했다. 바로 서 있는 女 자는 점선으로 위태롭게 서 있고, 나머지는 모두 뒤집어져 있다. 그리고 간사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간姦자와 질투(嫉妬시기할 질, 질투할 투)라는 글자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동양의 뿌리깊은 관습을 짚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성을 인간으로 바로볼 수 있는 날을 불안한 시선으로 예견하고 있다. 6번 종교적 양심과 병역거부에서는 십자가에 수갑을 채우는 것으로 현상황을 표현했고, 1년에 600명씩 현재 누적 수감자가 1만명에 달하고 있는 상황을 숫자로 표시했다. 대체복무에 대한 오래된 대안은 병역필이라는 팩맨에게 다시금 잡아먹히는 신세다.

 

인권이 가장 광범위하게 위협받는 사람들은 노동자다. 그래서 5번 노동자 인권은 별도의 비중을 두었다. 5번으로 이어진 화살표는 가시덩쿨인데 한마디로 '가시밭길'을 표현한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차별과 단결이라는 반석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데, 그 아래는 '비정규직'이라는 뿌리가 점점 무섭게 자라나고 있다. 비정규직 다시뿌리 오른쪽에 낫과 압정은 '해고'라는 글자를 표현했다. 낫과 칼, 압정 등은 '살인무기'를 상징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상징을 담고 있다. 불가피하게 해고시킬 수는 있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해고는 보이지 않는 칼로 보이지 않는 영혼을 난도질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기 쉬울 수 있는 아래 그림은 '노동법'이 아니라 '노동볍'이다. 일부러 오탈자를 낸 것이 아니라 '노동법'의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파리가 달라붙고 피와 커피, 물때가 법조문에 묻어 있어서 '누더기'가 되었고, 아전인수로 노동법을 적용하고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낙서한 모습으로 그렸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법은 현재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7번의 검열과 표현의 자유는 한 가지 사실을 중시했다. '19금'은 누가 결정하는가이다. 그리고 그들이 왜 19금이라고 결정하고, 그들이 왜 그 자리에 올라서 가위질을 하느냐이다. 대체로 등급심의위원은 우수한 성적으로 법대 나와서 높은 관직에 있는 지체 높은 분이 저잣거리의 문화를 재단하는 형태가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한다. 19금을 둘러싼 두 가지 질문은 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8번과 9번은 인권의 막장드라마다.

인종차별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인데, [불편해도 괜찮아]에는 이 주장이 설득력 있게 표현돼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의 인권 현실을 처절하게 이해하게 된다. '반구저기'(反求諸己)라는 맹자 편의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앵무새 죽이기]의 변호사 아버지가 주인공인 딸에게 해준 말이자, 이 책의 주제가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란다" 반구저기가 기본적으로 안 되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극단은 인종청소다.

 

이번에는 '다름'의 아이템들이 팩맨에게 먹히는 정도가 아니라 뿌리까지 잘려나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리고 신경써서 그렸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역사 국도'다. '인권 국도'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인종청소, 학살'은 100km로 달릴 수 있고, 정의실현과 인권은 50km의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효율성 측면에서 제노포비아에게 뒤질 수밖에 없다.

 

인권감수성이란 것은 인류가 오랜 인권유린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깊은 지혜다. 처음에는 죽여버리는 게 효율성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끝내는 인권감수성이 국력을 신장해준다는 취지다. UN이 괜히 제네바 협약 등을 합의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감수성이 돈이 된다는 사실은 서구의 선진국에서는 거의 일반적인 상식이 된 것 같다.

 

저자는 인권감수성의 지수로 우리나라를 다시 보는 새로운 관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주 차분한 어조로 우리의 현상황과 가야할 길을 놀랍도록 통찰력 있게 표시해준 작가(김두식 교수)에게 이 그림을 바친다. 그 분이 받아주실 지 모르겠지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1-07-1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니?
그렇지 않아도 통 안 보이길래 궁금했다.
근데 이렇게 짠 나타나 주네.ㅋ
그렇지. 인권감수성이 국력이다. 동감이야.^^

승주나무 2011-07-11 23:38   좋아요 0 | URL
스텔라 누나 잘 지내요.
요새 리뷰 쓰기가 참 힘들어서~~
알라딘 와서 댓글도 남기고 서재들도 마실다녀야 하는데...
사업 시작한 후로는 참 쉽지 않네요. 알지도 소홀하고^^;;;

stella.K 2011-07-13 13:49   좋아요 0 | URL
ㅎㅎ 아참, 사업한다고 했지?
이 사실도 잊을 정도로 멀어졌구나.
그것도 모르고 왜 안 보이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내 정신두...ㅋㅋ
앞으로 네가 안 보이면 사업 잘하고 있나 보다 할게.
그래도 가끔은 소식 전해주면 좋을텐데...ㅠ
 
아직도 가야 할 길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최미양 옮김 / 율리시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선하게 생긴 노인이 재판장으로 불려 왔다. 그리고 변호사석, 검사석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이 재판은 신과 종교,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관한 치열한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배역>

 

재판장 : 소셜북스 회원

 

피고 : 스캇 펙

 

검사 : 스피노자

 

변호사 : 파스칼

 

 

 

<검사 변론>

 

 

존 경하는 재판장님. 본 법정은 신과 인간에 관한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입니다. 스캇 펙 피고는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해 마지 않는 심리치료사입니다. 그리고 그가 심리 연구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 역시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을 '인격신'으로 상정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하느님과 가까이 있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한 자신이 하느님의 권력의 대리자가 되며 하느님처럼 될 것을 강요받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은총에의 부름은 사랑으로 돌보고 수고하는 삶에의 부름이며,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의 부름이다"(<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판) 440쪽)

 

피고는 이런 주장을 책의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 검사는 피고의 이런 주장이 대중의 오해를 호도하며 폐해를 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이며 자기 스스로를 포함해 모든 존재의 원인이 됩니다. 인간은 신의 일부이자 결과로서 존재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스캇 펙 박사가 피고석에 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신과 인간의 이러한 관계를 모르고, 쉽사리 신에게 인간의 정서를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모든 자연물이 어떤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더욱 그는 신이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위험한 까닭은 신의 완전무결성을 훼손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이 인격신이거나 목적을 위하여 작용한다면 그는 자신이 결여하는 어떤 것을 필연적으로 욕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에게 표상을 귀속시킨 것입니다. 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한에 있어서만 인간을 사랑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신에 대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실체인 신과 인간의 관계를 둘로 나누는 순간 커다란 혼란이 야기됩니다.

 

 

<변호사 변론>

 

 

 

존 경하는 재판장님. 검사는 신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무신론에 가깝습니다. 모든 존재에게(미생물까지도) 신적 요소가 담겨 있고 인간도 신의 일부라고 하는 주장은 범신론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검사의 신관(神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신이라는 추상적인 논변보다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신앙은 증명과는 다릅니다. 증명은 인간적인 것이고 신앙은 신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인식에서 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잴 수도 없습니다. 검사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신 이 있다는 것은 불가해(不可解)하고 신이 없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다는 것은 불가해하고,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불가해하고, 세계가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원리가 있다는 것은 불가해하고 원리가 없다는 것도 불가해합니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스피노자 검사도 자신의 철학을 위해서 '신'을 요청했을 뿐입니다.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신으로 하여금 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피고와 본 변호인에겐 있고 검사에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스피노자 검사가 보시는 바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영성을 경험했고,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스캇 펙 피고의 신앙은 정당합니다.

 

 

<검사>

 

 

 

재판장 님, 신의 존재는 불가해하지만 신에 대한 인식은 가해합니다. 파스칼은 무지로부터의 환원(귀류법)을 통해서 신에 대한 인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 컨대 만일 지붕 위의 돌이 머리에 떨어져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면, 그들은 돌이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떨어졌다고 여기고 다음과 같이 증명할 것입니다. 만일 돌이 신의 의지에 따라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정이(왜냐하면 주변의 많은 사정이 흔히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연히 일치할 수 있는가?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다음처럼 반박할 것입니다. 왜 바람이 바로 그때 불었는가? 왜 그 사람은 바로 그곳을 지나갔는가? 만일 여기에 대하여, 전날까지도 날씨가 좋았지만 갑자기 날씨가 거창해지고 그때 바람이 불었으며 그 사람은 벗의 초대를 받았다고 답한다면 물음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처럼 논박할 것입니다. 왜 바다가 거칠어졌는가? 그 사람은 왜 그때 초대를 받았는가? 이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원인의 원인을 물어서 끝내는 신의 의지, 곧 무지의 피난처에 도피할 대까지 그렇게 끊임없이 물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또한 인간의 신체 구조에 대해 경탄하며, 그러한 위대한 기술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이로부터, 그것은 기계적 기술이 아니라 신적 또는 초자연적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져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을 손상시키지 않게끔 되어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므로 기적의 참다운 원인을 탐구하는 사람,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경탄하는 대신에 학자로서 자연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을 흔히 이단자나 불경한 사람으로 여기며, 일반 대중들이 자연과 신들의 대변자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게 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뻔한 수법입니다.

 

본 재판정은 누가 누가 신앙이 깊은가를 가리는 경기장이 아니라 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판받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감정이나 행위에 대한 논의보다는 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본 검사는 판단하는 바입니다.

 

 

재판은 격론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스캇 펙 박사의 최후진술 시간이 되었다.

 

 

<최후진술>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재판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방청객님들. 이 노구의 변변치 못한 노인네를 아껴주셔서 정말 감사하며, 이렇게 피고의 몸으로 재판에 오게 된 점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 는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검사와 변호사, 저는 모두 신앙의 편견에 빠진 기독교인들을 비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기독교인들 때문에 수입이 늘었다"고 농담함으로써 기독교가 인간의 심리를 혼란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을 이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노력에 대해서는 검사님도 인정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 가 쓴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 표현은 논의의 본질이 아닙니다. 다만 스피노자 검사는 인식을 통해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경지를 이야기했고, 저는 "무의식"을 통해서 신과 합일되는 경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미 스피노자 검사 또한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원인을 이해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 신에게 다가가고 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은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도 중요하며, 무의식 역시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스피노자 검사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논변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부분은 과학 자체가 하나의 종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역시 스피노자 검사, 파스칼 변호사, 제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화해를 바랍니다.

우 리 세 명의 과정은 한마디로 영적 성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영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이란 쉬운 길을 가려고 하고 날짜가 지난 지도나 낡은 관행에 집착하려고 하며 변화를 싫어하는 본능 등을 극복하고, 자기 마음대로 길을 가려는 자연의 저항을 이겨 내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 검사가 신앙의 허위에 대해서 파고든 것을 저는 영적 성장으로 간주하고자 합니다.

 

나머지는 재판장님의 판결에 맡기겠습니다. 이 노인은 어떠한 처분을 받든지 유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재판관이라면 어떻게 판결하시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