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세계에는 어른이, 비언어의 세계에는 어린이가 산다

 

주말 나른한 오후. 아빠는 소파에 드러 누워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봅니다. 옆에서 아이는 책을 봅니다. 누워서 봤다가 앉아서 봤다가 아빠와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산만한 모습이 신경 쓰입니다.

 

“OO야, 책은 바른 자세로 읽어야지!”

 

아빠가 기어코 한마디 합니다. 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까요? 부모님들과 함께 특강을 해보면 “아이가 도무지 말을 안 들어요.”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말투는 잘 따라합니다. “잘 한다. 잘 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조롱의 뉘앙스를 정확히 복제해서 사용합니다. 어른은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고 어린이는 비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의 커뮤니케이션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차분히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되돌려보면서 아이가 언제 언어를 사용하는지 본다면 비언어의 존재감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는 태어나서 아무런 말을 못하고 100일 즈음 되면 옹알이를 합니다. 옹알이는 언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돌이 지나고 한참 있어야 엄마 아빠 같은 기본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고, 또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야 ‘문장’이라는 걸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비언어의 생태계에서 언어라는 생물이 태어나는 것처럼 언어와 비언어는 차원이 다른 소통 방식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언어에 대한 의존도가 무척 큽니다.

책은 언어로 이루어진 매체이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과 책을 향유하는 과정은 결코 언어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감정이입을 하거나 두뇌 자극을 받는 일련의 작용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책놀이책>은 책에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족과 가족이 감정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오랫동안 고민하며 썼습니다. 당연히 아이들과 만나는 책놀이 프로그램이나 부모님 특강 역시 ‘비언어’ 부분을 강조합니다.

 

한라도서관 책놀이 프로그램에서도 비언어 소통 방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처음으로 쓴 것은 원기옥 퍼포먼스입니다.

 

“책요정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서니까 가슴이 쿵쾅쿵쾅하고 너무 떨리니까 여러분이 손을 들고 힘을 모아주세요. 마음속으로 떨지 마라 떨지 마라 하고 빌어 주세요.”

 

처음에는 지루해하던 아이들도 손을 번쩍 들고 원기옥 퍼포먼스를 만들어 보니 무척 흥미로워했습니다. 소원을 하나씩 생각하고 한 차례 원기옥을 더 만든 다음에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몇 명의 어린이에게 물어보고 나서 두 번째 비언어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지금부터 옆의 친구들과 사랑의 포옹과 악수를 하겠습니다. 어린이들 모두 양쪽 벽으로 서주세요.“

 

책요정 선생님이 먼저 한 바퀴 돌아가며 아이들을 끌어 안았습니다. 선생님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은 아이들은 순간 당황해 하면서도 재밌어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징그럽다는 투로 피해가기도 했지만 서로 안아주니 기분은 좋은 것 같았습니다. 한 장난꾸러기로부터 ‘변태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별명을 얻는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비언어 소통을 한다고 해서 억지로 하게 하면 안 됩니다.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는 서로 포옹하는 데 대해서 거부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친구들은 악수만 해도 돼요. 악수도 하기 싫으면 손가락으로 악수해요.”라고 한정을 해주면 원활하게 비언어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인간 행동 전문가 앨런 피즈와 바바라 피즈의 30년 연구를 집대성한 몸짓 언어 바이블 <당신은 이미 읽혔다>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방어를 깨드리려면 자세를 무너뜨리라고 충고합니다. 일어서는 동작, 손을 드는 동작, 악수하는 동작, 포옹하는 동작 등을 통해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리고 교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책으로 하는 비언어 소통 방법을 총집합한 책놀이 운동회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 양손을 들고 에너지를 모으는 원기옥 퍼포먼스는 아이들의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므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선보인 책놀이 운동회

 

첫 시간에 예고한 대로 두 번째 시간(8월 6일)에는 책놀이 운동회를 했습니다. 책놀이 운동회는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주로 몸을 많이 쓰는 놀이입니다. 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풍부하게 가지려면 ‘읽는 대상’이라는 한정된 시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책을 만나는 과정을 보면 책이 단순히 읽을 거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의 다섯 살 아이 민준이의 경우 돌이 되기 전에 책은 ‘먹을 것’이었습니다. 책을 빨아먹고 씹어먹는 통에 모서리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돌이 되니 책은 ‘네모난 장난감’으로 변신했습니다. 집어 던지기도 하고 자꾸 만지작거리기도 합니다. 그때까지도 민준이는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두 살 정도 되었을 때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엄마 아빠 무릎에 앉아서 책을 쳐다봤습니다. 마침내 ‘읽을 대상’이 된 것이죠. 책놀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들 책을 읽을 줄 알지만 책놀이 운동회를 하면서 책과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놀이 목록에 포함된 것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집안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곳은 아이들이 집안일로 놀이를 만들어서 즐깁니다. 놀이 안에 책이 들어가 있으면 책에 대한 친근함이 느껴지고 거부감이 사라집니다.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성을 익힙니다. 대표선수를 정하는 과정에서, 플레이 중에서 선수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응원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지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한 연예인이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 생활을 소개하던 중 무척 인상적인 사례를 전해 주었습니다. 아이를 미국 유치원에 보냈는데,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열흘 내내 ‘개집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연예인은 화가 나서 유치원에 가보니 정말 아이들이 나무와 망치를 들고 툭탁툭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빠는 원장실로 찾아가서 항의를 했더니 유치원에서 명답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목공 놀이를 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격과 판단력 등 다양한 능력을 체크합니다. 이 분석 자료를 토대로 아이들에 대한 교육 방식이 정해집니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내보낼 수 있으니 아이를 유치원에서 뺄 건지는 부모님이 결정해 주세요.”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도 있었고 상대편의 플레이를 할 때 방해하거나 놀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 감점을 주고 감점 이유를 말하면 아이들은 룰을 배울 수 있습니다. 머리의 집중력도 중요하지만 몸의 집중력도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이들에게는 몸의 집중력을 키워주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책놀이 운동회를 했더니 특히 남자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습니다. 앞으로 책놀이와 책의 내용을 연결해서 프로그램을 더 연구하면 남자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멀고 가까운 거리의 책 안에 동전을 던져 집어넣는 '동전농구'를 할 때 아이들이 가장 강한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책 놀이를 직접 만들어 봤어요.

 

이번 책놀이 운동회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은 어린이들이 직접 책놀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몇 개의 책놀이를 소개하고 아이들에게 책놀이를 만들게 하였는데, 책놀이를 만들고 친구들의 인정을 받으면 보너스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경쟁의 요소를 가미했더니 아이들의 두뇌가 반짝거렸습니다.

 

첫 번째 놀이는 탁구공 오래 튀기기입니다. 대표선수 세 명을 정해서 오래 튀기기인데, 세 명이 먼저 떨어지는 팀이 패배합니다. 두 번째 게임은 책 탁구입니다. 청팀 다섯 명 백팀 다섯 명 벽을 만들고 3세트 동안 책으로 공을 튀겨서 상대편으로 넘기는 거에요. 한 세트에 10점씩 두 세트를 먼저 이기는 팀이 승리합니다.

 

세 번째 게임은 동전 농구입니다. 동전을 던지는 선을 정해 놓고, 선에서부터 먼 곳, 중간 곳, 가까운 곳에 책을 놓고 가장 먼 곳에는 150점, 중간 먼 곳은 100점, 가장 가까운 곳은 50점을 부여합니다. 양팀이 10개의 동전을 던져서 총점을 가장 많이 획득한 팀이 승리합니다.

 

승리한 팀은 50점을 획득하고, 패배한 팀은 25점을 획득하는데, 책놀이를 만든 팀은 30점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50점 뒤지고 있는 팀이 책놀이를 만들어서 승리를 하면 80점을 얻고 패배하면 25점에 머무르므로 대역전극이 가능합니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는 기발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합니다. 특히 ‘책으로 뿅망치 게임’이 재밌었어요.

 

“뿅망치 게임과 비슷한 건데요. 책으로 상대방 머리를 때려서 다섯 명이 나와서 세 명 이상 비명을 지르면 이기는 거에요. 책으로 사정 없이 때리는 게임.(이한결)”

 

완력이 좋은 남자 아이들은 하자고 막 우기고 여자 아이들은 거수를 거부함으로써 뿅망치 놀이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여자 아이들 자리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책 멀리 던지기 놀이도 재밌었지만 인정은 못 받았습니다. 근사한 놀이도 많았습니다.

 

“한 사람이 책 한 권씩 갖고 있다가 가위바위보 지면 책을 쌓아놓는 거에요. 책이 다 떨이지면 지는 거에요. 책을 계속 쌓아서 책이 없으면 지는 거에요.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은 책을 올려놓고 하는 거에요.”(문서현)

 

문서현 어린이의 설명에 문기현 어린이가 책으로 가위바위보 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문서현-윤기현 놀이’가 만들어졌습니다. 책을 펼쳐가지고 사람 수가 많이 나온 데가 이기는 놀이도 재미 있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고민준-김민재 놀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들이 책놀이를 직접 짜본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됩니다. 책놀이를 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동작들을 알 수 있고, 책의 특징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보강해서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놀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책놀이 각본대로 하는 것도 재밌지만, 직접 각본을 만들어서 배우 역할을 하면 두 배나 더 재미 있을 뿐만 아니라 주체성도 길러집니다. 이 때 지도 선생님은 아이들의 의견을 잘 듣고 요약을 해서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고 추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보조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탁구나 탁구공 튀기기 같은 운동 종목은 남자 아이들이 이겼고, 책으로 가위바위보는 여자 아이들이 이겼습니다. 이날 최종 스코어는 남자 아이들이 많은 백팀이 180점, 여자 아이들이 많은 청팀이 165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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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어린이를 위한 세 가지 무기

8월 1일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니는 30명의 어린이들과 역사적인 책놀이 첫 번째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들과 20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만난 일은 없어서 떨리고 무서웠습니다. 얼마 전 경북의 동성초등학교 어린이들과 2시간짜리 '책놀이 가족오락관'을 했을 때의 '카오스'(?)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번 프로그램은 도서관에서 주최하고 일주일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지역의 부모님들께 큰 관심을 받아서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아이들의 동기 부여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단단히 했습니다.

우선 세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첫 번째로 한 생각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자."입니다.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척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 말 걸어주는 사람, 친구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내가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아이들도 분명 친구처럼 나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존중하자"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을 하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커지고 책놀이 프로그램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강제하지 말고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반영해서 책놀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을 어린이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장기기억보다는 작업기억으로"입니다. 사실 아이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작업기억'이었습니다.

작업기억은 정보를 저장하는 뇌의 일부분으로 임시기억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낯가림을 시작하는 생후 7개월쯤부터 개발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른에 비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어른의 배에 가까운 시냅스 연결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시냅스(synapse)란 두 신경 세포 사이나 신경 세포와 분비 세포, 근육 세포 사이에서 전기적 신경 충격을 전달하는 부위입니다. 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아이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피드백을 주어야 합니다. 시냅스 연결이 활발하지 않은 저 같은 어른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저는 두 시간 동안 일어날 몇 개의 활동을 아주 헐겁게 정하고 아이들이 살을 채워가도록 했습니다.

 

 


어린이를 놀이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 기자회견 놀이를 통해 스타의 역할과 질문 하는 기자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 아이들을 서로 마음을 열고 발표력과 질문력을 기릅니다.

나에게 찾아온 어린이들은 대개 엄마가 도서관의 안내문을 보고 등록한 경우입니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책놀이에 오기 싫었는데 엄마가 오라고 해서 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주인공이고 어린이들이 조연인 채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 관건은 어떻게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 것인가입니다. 저는 2회차 공지를 어린이들에게 미리 했습니다.

"내일은 책놀이 운동회를 할 거에요!"

'운동회'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운동회를 할 거냐고 막 물어봤습니다. 저는 천천히 말하며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켰습니다. 몇 개의 놀이는 선생님이 만들었는데 여러분들이 만든 놀이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청팀과 백팀으로 두 팀을 나눠야 하는데 팀을 어떻게 나누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다음에 차근차근 말하라고 안내를 해주었더니 손을 번쩍 듭니다. 이렇게 해서 네 가지 주장이 나왔습니다.

조현철 : 저는 이렇게 딱 반 잘라서.
이한결 : 저는 여자 남자 나눠서 하면 좋겠습니다.
윤기현 : 대표를 정해서 팀을 뽑으면 좋겠습니다.
문서현 : 종이에 자기가 원하는 팀을 적어서 나누고 팀이 적으면 다시 정하면 돼요.


네 명의 후보를 앞으로 오게 한 다음에 자신이 주장하는 이유를 친구들에게 설명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깊이 고민하면서 차분히 단어를 고르며 친구들을 설득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제가 다 대견해 보였습니다.

이한결 : 저는 이한결입니다. 저는 여자 남자로 팀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여자 남자로 팀을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조현철 : 저는 조현철입니다. 저는 손으로 반띵해서 청군 백군 정하면 좋겠습니다. 쉽게 쉽게 해요.
윤기현 : 윤기현입니다. 저는 남자 여자 대표를 정해서 팀을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남자 여자가 잘 섞이면 좋기 때문입니다.
문서현 : 저는 문서현이라고 합니다. 저의 의견은 자신이 원하는 팀을 적어 투표를 하면 좋겠습니다.


한결이는 여섯 표를 받았고, 현철이는 세 표를 받았습니다. 기현이는 설명을 잘 했는지 무려 16표를 받았습니다. 서현이도 예상을 뒤엎고 15표를 받았습니다. 이 때 어린이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현철이가 자기 의견에 자기가 손을 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현철이는 절대 그런 적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관찰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던지 제가 다 긴장되었습니다. 저는 현철이와 서현이를 남겨 놓고 나머지 어린이들을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여러분! 두 친구가 들어갔고 두 친구가 남았죠. 이제 결선투표를 할 거에요. 한 번의 발언권을 더 줄 거에요. 친구들을 잘 설득해 봐요."

어린이들은 최대득표제도에 익숙하지만 저는 프랑스식 결선 투표제를 소개했습니다. 최종 득표수에서는 기현이가 앞섰지만 2위를 득표한 서현이에게 부당할 수 있고, 책놀이에 참여한 모든 어린이의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선투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을 아이들에게 다 할 필요는 없지만 '결선투표'라는 방식이 어린이들에게 흥미로운 자극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남은 결선투표의 후보들이 자신의 주장을 조리 있게 설명했습니다.

윤기현 : 저는 주장을 정해서 팀을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팀원을 뽑을 수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못 뽑으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주장이 뽑으면 그 사람이 좋아서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문서현 : 저는 투표를 해서 자기 팀을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친구라도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선투표답게 어린이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갖췄습니다. 어린이들은 '중복 투표'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리가 있었습니다. 많은 후보들이 나왔을 때는 중복 투표를 하면서 좋은 주장을 고를 수 있었지만, 최종 후보가 정해진 상황에서 중복 투표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현이의 주장이 마음에 드는 아이들은 오른쪽 벽에, 서현이의 주장이 맘에 드는 아이들은 왼쪽 벽에 서도록 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문서현 14명, 윤기현 11명(5명은 결석)으로 문서현 어린이의 주장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서현이의 의견대로 투표지를 만들고 이름과 팀 이름을 쓰도록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백팀을, 여자 아이들은 청팀을 많이 써서 결과적으로 남자팀 여자팀이 되었지만 어린이들이 주장하고 동의하고 결정하는 팀 정하기는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서현이는 "왠지 과학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각 팀의 대장을 가위바위보로 뽑고 대장 인사를 시켰습니다.

청팀 대장 인사 : 저는 남광초등학교 3학년 문서현이라고 합니다. 청팀을 어떻게 이끌고 싶냐면,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고 서로 믿으며 이기고 싶습니다. 박수!!!
백팀 대장 인사 : 저는 이한결입니다. 저는 백팀을 어떻게 이끌 거냐면 저도 승복하고 즐겁게 게임을 하도록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과 책놀이를 하기 전에 머리말("1년을 기다린 어린들과의 책놀이, 궁금해요?")에서도 어린이들은 민주주의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제 확인을 해봤더니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팀을 뽑는 방식, 팀장을 정하는 방식, 주장하고 투표하는 방식 등 민주주의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놀이로 구성했더니 무척 친숙하게 따라왔습니다. 말 그대로 민주주주의 놀이는 어린이들에게 딱 맞는 놀이였습니다.

 

 

 

▲ 기자회견이 거듭될수록 질문의 질이 좋아졌고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다경이는 기자회견문을 미리 정리해 와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회견 놀이

오늘 처음으로 진행한 책놀이는 '기자 회견 놀이'입니다. 기자 회견 놀이는 인터뷰 놀이를 응용한 방식입니다. 자기 소개와 가족 소개, 책 읽기 습관이나 고민 등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둘러볼 수 있고, 궁금한 질문을 하면서 서로 친해질 수 있습니다. 책놀이의 첫걸음은 '마음 열기'입니다. 마음을 열어야 책을 제대로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인데, 김연아나 류현진 같은 스타들 기자회견 하는 거 봤어요?"
"가끔 가다 한번씩 봤어요."
"여러분 기자 알아요?"
"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지만 TV도 많이 보고 미디어에 노출되었으니 기자회견 놀이는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있을 때는 스타가 되는 거고, 거기 있을 때는 기자가 되는 거에요. 나는 몇 학년이고 어떤 책 좋아하고, 부모님이나 가족 중에서 소개할 사람 소개하고 좋은 점, 자기 자랑, 책 관련된 고민 얘기하면 돼요. 처음에는 내 소개, 내 소개할 때 뭐뭐 들어가요. 이름, 자기 초등학교, 학년, 자랑, 그 다음에 가족도 들억가겠죠. 가족 얘기하면서 가족이랑 친한지 싸움 잘 하는지 칭찬 많이하는지 '우리 엄마는 칭찬 많이해요.' '꾸중 많이 해요.' '잘 놀아줘요' '아빠랑 식물원도 갔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처음에는 무대에 가서 자기 소개하는 것을 어색해 했지만 질문을 자주 주고 받으면서 친숙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윤기현입니다.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부설초등학교에 다니고 3학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만화책이고 싫어하는 책은 교과서입니다. 저는 독서록 쓰는 게 귀찮습니다. 엄마 아빠 동생입니다."
질문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동생이랑 친하게 지내고 맘에 들어요?"
윤기현 : 아니요.
"동생 칭찬 해준다면."
윤기현 : 우리 정현이는 그림을 잘 그려요.
"교과서 중에 어떤 게 제일 싫습니까. (이한결 어린이)
윤기현 : 수학입니다. 어려운 것도 있지만 좀 그래요.
"교과서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윤기현 : 체육.
"이한결 : 체육 중에서 어떤 체육을 가장 좋아합니까?"
윤기현 : 축구입니다.


기자 회견 놀이를 하면서 어린이들은 질문을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질문은 그 자체로 요약능력을 높여주는데, '좋아하는 반찬은 무엇입니까?' '싫어하는 과목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을 하면서 어린이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접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싫어하는 반찬과 좋아하는 과목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감정이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할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이들이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습니다.

다경이는 종이에 기자회견 내용을 빼곡이 써와서 읽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이 차차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질문의 내용 또한 제가 추가 질문이나 연결된 질문을 했더니 아이들이 곧잘 학습하며 수준 높은 질문들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구분이 없어지고 모두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와 질문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린이들과의 첫 번째 만남을 통해서 저는 자신감을 얻었고, 아이들과 함께 친구가 되며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책놀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몸으로 뛰어 노는 '책놀이 운동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강연장을 빠져나가는 어린이들의 표정에서 설렘이 읽혔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지역의 육아 카페에 후기를 올렸더니 책놀이 참여 어린이의 엄마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울 아들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던데요^^ 자신있게 나가서 자기 소개했다고.. 내일 책가지고 재미있는거 할꺼라고 벌써 들떠 있네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성공적으로 첫 번째 만남을 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허기졌습니다. 상으로 스스로에게 맛난 점심과 복숭아 한 봉지를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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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8월 23일까지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방학 특집 책놀이 프로그램 이야기를 10회 연재합니다. 아이들과 현장에서 책놀이를 하고 싶은 분들께 작은 선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ㅡ 기자 말

오래 준비한 만남

해님이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입니다. 남새밭에 심어 놓은 고추는 더 맵고, 여름이 더운 해의 겨울은 무척 추우니 또한 걱정이 됩니다. 바다로 산으로, 그리고 캠핑장으로 가족들이 피서를 즐기러 떠났지만 동네는 한적합니다. 벌겋게 달궈진 놀이터에도 학교 운동장에도 아이들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도서관이나 수영장에서 주로 여름을 나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피부가 보얗습니다. 가끔 검게 그을린 까무잡잡한 아이들은 무척 건강해 보입니다.

어린이를 만나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은 1년 전 여름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 말썽쟁이였습니다. 지금은 시골길에서도 아이들을 구경하기 힘들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는 골목마다 자리를 잡아 놓고 구슬치기, 오징어 땅콩, 자치기 같은 것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게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으면서 놀고 헤엄치기도 했습니다. 풀밭에 가면 메뚜기도 잡고 지네도 잡고 삥이라고 부르는 풀도 따먹고 산딸기도 따먹었습니다. 비료 푸대를 들고 동산에 가서 썰매타기도 했죠.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남자 아이를 둘 낳고 기르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집안의 두 아이가 내 맘 속의 아이를 깨우니 우리 집에는 세 명의 아이가 놀고 있습니다. 내 맘 속에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아이는 다른 가족의 어른들 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우는 일을 합니다.  엄마 아빠 맘 속의 아이가 깨어나면 아이들은 좋은 친구 한 명을 더 얻게 되니 반가운 일입니다. 내 맘 속의 어린이가 완전히 깨어나 친구 맞을 준비를 마치고 나면 어린이들과 함께 재밌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만나는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누가 나에게 뭘 믿고 아이를 맡기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요즘 어린이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차곡차곡 1년을 기다렸습니다. 부모님들을 만나 책 놀이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부모님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어린이들에게 간접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엄마, 회사 가지 말고 책 놀이 더 배우고 오면 좋겠어"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습니다. 어린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자 힘이 났습니다. 지역 신문이나 주간지 등 사용할 수 있는 지면을 얻어 어린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글을 계속 남겼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제 고향 제주의 한라도서관에서 방학 특집 어린이 책놀이 프로그램을 10회 진행해달라고 의뢰해 온 것입니다. 신나게 계획을 짜면서 어린이와 만날 날을 기다렸습니다.

어린이 관찰 보고서

이 글은 어린이들과 마주 앉아 책놀이를 하고 싶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요즘은 육아에 대해서 무척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져 있어 반갑습니다. 육아(育兒)라는 말 자체가 '어린이를 기름'이라는 뜻이다 보니 어른의 입장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나 사회의 인재가 될 때까지 기른다는 생각은 물론 대견한 일입니다. 그 갈래도 여럿입니다. 최신 기법을 소개하는 육아법에서부터 "육아는 철학이다"는 고찰이 담긴 접근 방법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는 생각에 입각해 부모가 제대로 된 모습을 아이들에게 비춰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 전 유명한 육아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어른)이 정신적으로 뛰어난 사람(어린이)를 가르친다"며 일장 호통을 친 선생님은 "도대체 누가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라며 일갈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절박하게 대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굳이 부모를 죄인으로 만들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디에 있지?" 어른으로 시작해서 어른으로 끝나는 말의 향연 속에서 어린이들은 꽤나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어린이들과 실제 놀이를 하면서 충분히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어린이로 돌리고 한동안 들여다 보았더니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년간 어린이의 모습을 관찰하며 저는 '미래'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이를 관찰하며 얻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 아이들은 타고난 논리학자, 민주주의자로서 유전자에 논리와 민주주의가 새겨져 있다.
- 아이들은 창의력 또한 타고 났다. 밖에서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은 창의력뿐만 아니라 학습능력과 독서력, 판단력 등 기본적인 두뇌 능력을 낡은 것으로 만들 뿐이다. 아이들에게 있는 것을 자극해야 한다.
- 어린이들은 무척 진지하다. 어른들이 어린이의 반만큼이라도 진지하다면 이 정도로 단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른 욕구 단계에 이미 진입했다. 즉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넘어서 소속/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 실현 욕구의 상위 욕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패러다임은 2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낡았다고 할 수 있다.
- 아이들은 놀이의 천재다. 책으로 노는 방법을 알려주면 재창조를 곧잘 해낸다.
- 아이들에게 교육자의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고 발견자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어른들은 주연의 자리에서 조연의 자리로 내려오고 어린이가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입장에 머물러야 한다.

모든 활동의 시작은 '인간 이해'입니다. 정치, 예술, 교육 등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정치가 답보 상태에 있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물어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와 책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는 문화활동과 교육활동은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실제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비전과 목표는 바로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아울러 어린이를 만나는 태도 또한 여기서 나옵니다.

어른들이 걸어다니는 과거라면 어린이는 걸어 다니는 미래입니다. 현재란 과거와 미래가 만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의 작용은 다릅니다. 과거가 지배하면 미래는 과거를 닮아갑니다. 미래가 주인공이 되면 미래의 본래 모습을 점점 발견해 갑니다.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른이 충실히 조연에 머물러야 합니다. 많은 가정의 어른들은 이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입니다.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자기 중심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린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인 것은 나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30년을 뛰어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미래의 어린이 만남 프로젝트

아이를 낳는 순간 과거와 미래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만남이어야 하는가는 무척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어린이와 어른이 만났던 방식을 되돌아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30년 후의 인간에게 30년 전의 인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만나는 책놀이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그 대신 30년 후의 인간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책놀이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미래의 어린이 만남 프로젝트'입니다.

어린 시절의 꿈과 우정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은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를 파괴하는 것도 어린 시절의 꿈이며, 세계를 파괴로부터 구하는 것도 어린 시절의 꿈입니다. 어린 시절 입었던 마음의 상처는 점점 자라나 세계에 상처를 입힙니다. 거대해져버린 세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과와 용서, 화해가 적절한 때를 찾을 때 지구는 안도합니다.

어른과 어린이들의 만남이 가장 극단적인 파괴를 불러온 작품은 <몬스터>입니다. <몬스터>는 공산주의 시절 구동독 정부가 어린이를 인간 병기로 만들기 위해서 입에 담지 못할 훈련과 약물치료 등을 진행하는데, 그 중에서 한 아이가 수용소의 모든 어린이와 어른들을 죽이고 '몬스터'로 완성되고 그 쌍둥이 동생과 정의로운 외과 의사가 이를 막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실제로 아기들을 수용하는 시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의 완전한 박탈'은 세계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읽고 나는 어린이와 만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완전한 박탈'만큼은 아니더라도 박탈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나는 방식은 어른이 결정합니다. 부모님들을 만나면 아이의 자존감 문제를 걱정합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걱정하는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박탈된 어린이'를 보게 됩니다. 어린이는 존중 받고 있지 못했습니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부모들은 아이의 자존감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만나는 일의 첫 번째 원칙은 그래서 '존중'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어린이를 존중하자"가 목표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주인공인 어린이가 발견할 수 있도록, 어른은 충실한 조연이 된다" 입니다.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는 '연결'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어린이와 어른의 연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설국열차에 탄 착한 어른들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어린이를 위해 길을 열어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차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혹한 계급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어른이지만, 그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방법을 모릅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미래의 인간인 어린이들을 돕는 일입니다. 나는 <설국열차>를 보고 어린이들의 '남궁민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른이 마치 어린이가 된 것처럼 해야 합니다. 책놀이를 진행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기고, 때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기는데 어린이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른은 어린이의 연장입니다. 저는 어린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단 한 가지 능력을 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어린이를 만나는 열쇠이자 '만남의 조건'입니다. 보들레르가 '천재성'이라고 표현한 어른의 조건입니다.

"천재성이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보들레르)

보들레르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지성인들은 어린이를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맹자, 공자, 예수, 아리스토텔레스 등 인류의 스승에 따르면 어린이란 단지 어릴 적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도달해야 하는 목표인 것이죠. 어린이들이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어린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가 가능한 어른이 될 때 어린이들과 책놀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본격적으로 책놀이를 하기에 앞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관해서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매 회 2시간씩 10회에 걸친 만남의 시간 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놀 놀이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100% 진행되지도 않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이 놀이의 방법을 결정하고, 아예 바꿔버리기도 하고, 새로운 놀이를 즉석에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놀 기회를 받은 어른인 나는 이것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결코 나의 철학과 교육 사상을 어린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책놀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눈빛과 반응을 살피면서 재미가 없다면 다른 놀이로 바꿔줘야 합니다. 대개의 교육 프로그램은 '장기 기억'에 의존합니다. 장기 기억이란 2시간 분량의 내용을 기억하고 그대로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놀이는 장기 기억을 포기하고 작업 기억에 의존합니다. 작업 기억이란 아이들의 눈빛과 반응, 행동과 말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관심과 흥미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으로 현재까지 다섯 차례의 만남을 진행했고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현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놀이로 어린이들과 어떻게 만났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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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면 영화가 시작되는 독특한 영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설국열차>를 보고 나서 되돌아가는 길은 씁쓸했다. 그리고 허무했다. ‘용두사미’ 작품으로 규정하고
페이스북에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글을 올리고 났더니 한 페친이 의외의 호평을 한다. “설국열차 괜찮던데. 봉준호
감독이 10년 전에 꽂힌 작품이라던데.” 좋았던 반응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나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겨울 열차를 타는
상상을 했다. 눈이 쌓인 평야를 달려가며 아무도 안 밟았을 것 같은 숫눈 구경을 하는 맛이 일품이다. 기차는 같은 레일을 쓰고
어딘가로 향하는 것만 같을 뿐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목표는 제각각이다. 그런데 설국열차는 그렇지가 않다. 오로지 달리는
것만을 목표로 달리며 그 외에는 죽음뿐이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누웠지만 내 마음 속의 ‘겨울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영화는
용두사미가 아니었다. 사두용미. 용의 꼬리가 너무 커져서 숨이 막힐 듯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과 메시지,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라는 사람의 숨결이 거칠에 몰아치는 설국 속에서 나는 온몸을 다해 헤쳐 나왔다.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탔던 상상의
겨울 열차에서 내가 보았던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영화가 끝나면 시작되는 독특한 영화이며, 봉 감독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는 결론을 맺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누가 타고 있는가

상상의 겨울 열차를 타고 가면서 문득 한 가지 물음이 스쳤다.

“가만! 열차에 누가 타고 있었지?”

앞 칸과 꼬리칸, 그리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 칸에 담긴 사람들은 자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차는 인도의 카르텔처럼 엄격한
계급 사회의 압축판이다. 하지만 이것은 설명 장치일 뿐이다. 그보다 높은 차원에서는 ‘균형’이 있다. 인위적인 인구 수
조정(학살), 반란, 꼬리 칸과 머리 칸의 짬짜미. 하지만 이것 역시 설명 장치일 뿐이다. 이런 설명 장치에 기대
<설국열차>를 디스토피아적이라고 하는 것은 섣부른 추측일 수 있다. 영화에는 봉준호의 메시지를 머금고 있는 메신저들이
존재한다.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기존의 세계 위에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축하며 대결을 펼치고 끝내 승리한다.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된다. 심지어 아이들은 설국열차의 목표마저 바꿔 버린다. 그러니까 영화에 펼쳐진 모든
설명장치들은 어린이로 대표되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들이다. 여기서 ‘어린이’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어린이 관찰 보고서와 설국열차의 어린이

나는 세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그리고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독서 책을 쓴 이유로 많은 가족과 어린이를
만나서 오랫동안 관찰했다. 내가 관찰한 어린이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아이들은 타고난 논리학자, 민주주의자로서 유전자에 논리와 민주주의가 새겨져 있다.
2. 아이들은 창의력 또한 타고 났다. 밖에서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은 창의력뿐만 아니라 학습능력과 독서력, 판단력 등 기본적인
두뇌 능력을 낡은 것으로 만들 뿐이다. 아이들에게 있는 것을 자극해야 한다.
3.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른 욕구 단계에 이미 진입했다. 즉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넘어서 소속/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 실현 욕구의 상위 욕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패러다임은 2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낡았다고 할 수
있다.
4. 아이들은 놀이의 천재다. 책으로 노는 방법을 알려주면 재창조를 곧잘 해낸다.
5.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어른들이 기존의 사고로 깨지 못하는 세계를 깨워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어린이다. <왕의 귀환>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아이들은 곧 주인공으로 귀환할 것이다.
6. 아이들은 온몸이 거울과 같다. 짝퉁을 비추면 짝퉁이 반사되고, 창조를 비추면 창조가 반사된다.

<설국열차>에서는 적어도 3~6까지의 관점이 녹아 있다. 회고해 볼까? 설국열차의 세계는 어른이 만들었다. 단지 죽지 않기
위해서 열차 안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이지 목표 따위는 애초에 없다. 균형 따위도 없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세계다.
영화의 출발은 디스토피아다. 철저한 어른의 세계에서 어린이들이란 한낱 “고기가 맛있다”거나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시킬 수
있다”는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앞칸과 꼬리칸이 공유하는 관점이지만 균열이 생겼다. 꼬리칸의 사람들이 어린이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앞칸은 꼬리칸에서 어린이를 공급받는 입장이었던 데 반해, 꼬리칸은 어린이를 낳는다. 낳은 자식을 잡아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꼬리칸 사람들에게 어린이들은 희망이다. 그래서 소중히 여긴다. 열차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산다. 트레인
베이비(train baby)들은 앞칸 승객들이 낳은 아이들로 어른의 세계의 완벽한 복제물이다. 실제가 되어 버린 짝퉁의 세계를
충실히 반영하는 거울이다. 엔진칸에서 노역을 하는 어린이들은 작업장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이 역시 착취의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열차가 전복되고 두 아이가 짝퉁의 세계에서 실제의 세계로 넘어왔다. 아이들은 기꺼이 실제의
세계로 들어간다. 발견된 것은 코라콜라 광고에 나오는 북극곰이 전부인 가시밭길이지만 온몸이 세계의 거울인 아이들은 반영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가 다시 시작된다.

“나는 사실 100% 희망적인 엔딩을 생각하고 찍었다. 한 시스템이, 한 체제가 종말을 고했고, 인류의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봉준호)


도스토옙스키와 봉준호의 아이들

봉준호 감독의 최근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가족’이다. <괴물>, <마더>는 가족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가족
테마가 전면에 배치해 있다. <설국열차>에도 가족 테마는 왕성한 힘을 발휘하는데, 이번에는 ‘괴물’에서 선을 보인 ‘어린이’가
전면에 등장한다. 가족과 어린이를 예술작품에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는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생애 마지막으로 쓴 유작으로서 작가의 치열한 작품 인생을 훌륭하게 종합해낸 역작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에는 <카라마조프 씨네 아이들>의 주제와 설정을 빌려 쓴 대목이 여럿 등장한다. 커티스가 윌포드의 문 앞에서 “아기
고기의 맛을 알게 되었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등장인물 이반 카라마조프가 동생 알료사에게
들려주는 터키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터키인들은 음탕한 쾌감을 느끼면서 아이들을 괴롭혔다는데, 어머니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를 꺼내는가 하면 심지어 어머니의
눈앞에서 젖먹이를 위로 집어던진 뒤 총검을 받아내는 짓까지 한다는 거야. 어머니들의 눈앞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데 쾌감의
핵심이 있는 거지. 그런데 나의 흥미를 아주 자극하는 명장면이 있어. 한번 상상을 해 봐, 젖먹이가 부들부들 떨고 잇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고, 그 주위를 여기로 들어온 터키인들이 에워싸고 있는 거야. 그 녀석들은 즐거운 장난거리 하나를 생각해
냈어. 그 녀석들은 갓난애를 웃기려고 얼러 보기도 하고 웃어 보기도 하는데, 결국 성공해서 갓난애가 깔깔 웃게 됐어. 이
순간, 터키 녀석 한 놈이 갓난애의 얼굴에서 불과 4베르쇼크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갓난애를 향해 권총을 겨누는 거야. 아이는
즐겁게 깔깔거리면서 권총을 잡기 위해 고사리 손을 내뻗는데, 갑자기 이 예술가는 아이의 얼굴 정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서 작은
머리를 박살 내는 거지..”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아버지와 자식들의 투쟁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고 아들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를 죽인 것에
대해서 대가를 갚는다. 특히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변호사의 연설 장면은 소설의 주제와 같은데, 변론의 골자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한낱 노리개로 여기고 스스로 가족을 파괴하기 때문에 미래가 위태롭다는 주장이다. 설국열차에서 봉준호 감독이 의도한 주제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주인공 알료사는 아버지를 놀리는 아이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서 싸우다가 죽은 한 소년을 추모하면서 어린이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풍긴다. 그러니까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디스토피아 현실과 유토피아 미래의 혈투다. 꼬리칸의
어른들이 혈투를 주도할 때는 싸움의 목적이 명확치 않았지만 어린이가 주도하는 순간 싸움의 목적이 명확해진다. 예컨대 “리포드의
열차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린이는 이런 답을 내놓는다. “열차는 멈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봉준호와 헐리우드 봉준호의 차이점

커티스가 윌포드 문 앞에서 문을 박차고 깨부수려고 하는 ‘오버 액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나는 마치 베드신을 보는
듯한 야릇함을 느꼈다. 커티스가 윌포드 문 앞에서 발악하는 순간 커티스의 역할은 끝났다. 커티스의 목표는 열차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머리칸에 있는 자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커티스는 ‘기억’을 상징한다. 설국열차의 어른에게 부여된 쓸 만한
역할은 기억이다. 길리엄과 남궁 민수 역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꼬리칸의 어른들은 왜 어린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가? 그것이
미래이고 생명임을 믿기 때문이다. 낮고 차가운 곳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어른은 아이들과 ‘연결’된다. 이것 역시 봉준호 감독이
설정한 유토피아의 한 열쇠일 것이다.

끝으로 헐리우드 봉준호와 봉준호의 차이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설국열차>는 헐리우드 문법에 충실한 영화다. 퀘스트와 액션이
있고 영웅이 등장한다. 헐리우드 영화는 구도 자체가 무척 단순해야 한다. 단순한 구도 속에서 세계관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영화가 끝난 후 영화가 시작되는 방식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특성이 동양과 서양의
관객들을 설득하고 보편타당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양과 서양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 방법이기도 하다.
요컨대 형식적으로 메시지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룬 봉준호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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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로 중용을 풀다 이한우의 사서삼경 2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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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해방 - 주자학의 세계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주자(朱子, 주희(朱熹 ; 1130~1200)의 존칭)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주희(朱熹)는 중국 남송 시절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는데 성리학을 확립시켜 유학사와 동아시아 사상사의 불후의 영향을 미쳤다. 

특히 주희가 맹자를 거의 천 년 만에 복권시킨 사실은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맹자는 역성혁명을 주장하는 등 권력자가 불편할 만한 말을 많이 남긴 죄로 왕들에게 금서로 낙인 찍힌 이래 주희에게 복권되기 전까지 1000년 가깐운 세월 동안 묻혀 있었다. 주희가 완성한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주석서 사서집주는 1313년부터 1912년까지 사서는 중국의 학교 교육과 관료 선발시험에서 공식적인 기본 교재이기도 했다.

나는 운 좋게 한학자 선생님을 만나 3년간 사서를 교육받았다. 교재는 주자집주였다. 동양철학 초년에 공자와 맹자를 직접 원문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주희의 집주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주자학의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 

10년 정도 주자의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다 보니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 빠져들수록 주자에 대한 내적 저항심이 커졌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자를 건너 뛰거나 무시하는 전략밖에 없었다. 주자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려면 주자를 넘어서야 한다. 즉, 주자가 펼친 철학 세계를 스스로 깨부수고 그 자리에 나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러던 차에 이한우 기자의 <논어로 중용을 풀다>(해냄)을 접하게 되었다. 이한우 기자는 학부 때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 석사와 박사를 철학으로 전공했다. 현재는 <조선일보>의 문화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양철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는 최근 조선사를 되돌아보며 왕들의 고뇌와 정신을 서술한 '군주열전'과 사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야심차게 실천하며 <논어로 논어를 풀다>, <논어로 중용을 풀다>의 사서(四書 :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저자가 사서 중에서도 '논어'를 축으로 삼은 까닭은 사서 전체가 공자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서에는 공자가 들어 있지 않다. 

다만 공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를 열거하면 논어, 중용, 대학, 맹자 순서이다. 공교롭게도 저자의 집필 순서도 <논어로 논어를 풀다>(2012.5), <논어로 중용을 풀다>(2013.2) 순이다. 나머지 두 책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주자는 네 권의 책 다음으로 공자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네 권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서술했으므로 공자와 가장 근접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는 공자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인물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피비린내 나는 학문과 철학의 전쟁 이야기다. 내가 무려 10년 동안이나 주자의 통치하에 살았다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애로사항을 말하는 게 아니라, 동양철학에 대한 정신적 자유가 묶여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학문은 권력이며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치르는 전쟁이다. 11세기 중국의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창하면서 거의 1000년간에 걸쳐 실추되었던 유학의 학문적·사상적인 우위성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주자는 성리학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강력한 '루키'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학문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용어는 '관학(官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생 동안 대부분의 벼슬을 사양하고 말년에 고위직에서 파문되고 중상모략을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학문체계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정책의 도덕원칙으로 삼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저자는 "주희는 철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다"라고 주장한다. 나를 일깨운 한마디다. 한 대목을 소개한다.

<논어>에 등장하는 지(知/智)는 대부분 사람을 아는 것[知人]으로 풀이해야만 문장의 생생한 의미와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나곤 했다. 그런데 주희의 집주는 오히려 지를 지인(知人)으로 해석하는 데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그의 집주에 의존해 <논어>를 읽어갈 경우 <논어>는 한 덩어리의 책이 아니라 듬성듬성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잠언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 <논어로 중용을 풀다>, 259쪽

저자는 주희에 대한 비판의 결론에 "주희의 도움을 받되 끊임없이 그의 집주를 의심해 가며 공자의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말을 듣기 전에 나는 막연하게 주희의 주석을 경계하기 시작해 아예 사서의 원문만 반복해서 보곤 했다. 저자의 말을 통해 비로소 주희에 대한 내 입장이 맑아졌고 나는 해방감을 맛봤다.

두 번째 해방 - 현재성에 대한 치열한 접근

동양철학이나 동양 고전의 번역문을 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 '당대성'이다. 현재의 입장에서 당대의 일을 재단하지 말라는 내용이 골자다. 사서뿐 아니라 삼국지 같은 고전문학의 번역문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보이는데, 특히 이문열의 삼국지에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따지고 보면 주자 역시 남송의 사고방식으로 공자를 재단하지 않았는가? 

<논어로 중용을 풀다>를 읽기 시작할 때는 저자가 서양철학을 근거로 동양학을 지나치게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 역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저수지 가운데 이상한 둑을 설치해 서로 흐르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학문과 철학, 지적 결실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쳐질 제물이자 영양분이다. 이런 관점으로 동양철학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자를 피해 가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자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신성시했던 것 같다.

주자가 철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라는 주장은 그 동안 품었던 모든 심증들을 정리해 주는 명쾌한 말이다. 주자뿐만 아니라 공자와 장자를 제외한 중국의 모든 철학자들은 필연적으로 주석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는 스승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금기하는 문화가 있다. 이의제기를 하면 이단으로 치부하여 파문하는데, 파문이란 생계의 끊김, 즉 사실상 '지적이면서 동시에 물리적 처형'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강경한 압력 속에서 동양의 지성인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아류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현대의 지성인들도 '비판정신'을 잊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서양철학을 주무기로 동양철학을 다시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주자는 <대학>의 서문에서 불교 등을 비판하며 '허무적멸지교'(異端虛無寂滅之敎)라는 용어를 썼다. 하지만 주자가 사용하는 개념은 불교에서 차용한 것이 상당히 많았다. 사실상 불교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타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스승들에게도 적용했어야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자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주석가이거나 언어학자로 봄이 적당하다.

저자의 책을 읽고 저자를 직접 찻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저자가 한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동양철학이야말로 심리학 중에서 심리학이다"는 말이다. 동양철학을 대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 현대적이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공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저자는 자신이 닦은 모든 학문과 경험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 중에서도 서양철학은 아주 중요한 자원이었다.

나는 저자로 인해서 주자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만, 결국 저자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사이에 있는 임시 둑이 무너졌다는 것은 앞으로 읽고 공부해야 할 철학의 영역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로부터 받은 두 가지 도움은 어쩌면 거대한 정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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