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미힌 님은 제게 자주 말을 걸어주는 알라디너입니다.
'말을 건다'는 행위는 인간 관계의 가장 극적이고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시' 에서
알라딘에서 논지 얼마 안 되고, 혼자 글을 쓰고 있었는데, 내게 다가와서 맨 먼저 말을 걸어준 분
그것이 '라주미힌' 님에 대한 처음의 기억입니다.
그 이외에 그 이름이 가지는 이미지는 '유쾌함'입니다.
라주미힌 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가 마치 '라스콜리니코프'가 된 느낌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 나오는 비중 있는 조연인 '라주미힌'의 '유쾌한 잡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권위자라고 생각합니다. '헛소리'라는 것을 천마디, 아니 수백만 마디 하다보면 그 중에 한마디는 '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도 씨의 소설에 심취해 한 동안 '므이쉬낀'이라는 인물과 동일시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 씨의 소설을 즐기는 친구는 제가 착한 백치 '므이쉬낀'보다는 '로고진'에 가깝다는 말을 해서 '로고진'을 아이디로 썼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라주미힌' 님의 유쾌함은 전혀 엉뚱한 데서 나옵니다. 그분의 적업을 얼마 전에 캐물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허락도 없이 직업을 공개하기 죄송스럽지만, '유쾌함'의 엉뚱한 근거를 위해 필요하니 양해 바랍니다. IT개발자이기 때문에 알라딘에 자주 올 수 있었는데, 일을 하기가 싫기 때문에 알라딘에 자주 찾아온다는 그분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꼭 같습니다. 저도 원고를 쓰거나, 미션을 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자꾸 알라딘을 서성거리기 때문입니다. '알트 탭(Alt Tab)'이면 충분한 접속이죠.
그러니까 쉽게 '업무'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전환 혹은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제게 있어서는 '유쾌한 그것'이었습니다. 나의 사례를 통해 짐짓 속어림을 하는 것입니다.
다 읽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페이퍼를 양산해내는 라주미힌 님의 '오지랖'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이 '라주미힌 님' 편 뒤에 숫자 '1'을 써놓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