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 Thir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왜'를 생각하면서 '박쥐'를 보면 재미없다.

박쥐라는 영화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박쥐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화가 났다. "너무나 불친절한 영화"라고나 할까. 영화의 논리적 개연성이나 극중 인물의 콘텍스트(문맥)을 중시하는 나에게 '박쥐'라는 영화는 너무 뜬금없었다. 주인공이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이 너무 엉성해 '박찬욱 영화 맞아?'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었다. 상현(송강호)가 어떻게 해서 뱀파이어가 되었건 간에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 살아가는 현실이 중요한 것이다. 하기야 나도 직장 잘 다니다 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을 보고 "왜 그랬어?"라고 따지듯 묻는 지인들에게 "사연이 복잡해"라는 말 이외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초반부 스토리에서만 '왜?'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영화 전체에서 '왜'는 마치 금칙어와 같다. 금칙어를 대신해서 차지한 개념은 '바로 지금'이다. 그것은 태주(김옥빈)의 돌변이다. 마치 조용한 연못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상현의 등장에 태주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한복집에서 말 잘 들으면서 조용하게 살아온 태주는 상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조용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현을 만나고 나서 인생의 섬광을 느꼈고, 섬광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태주의 돌변이 믿기지 않고 환타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황석영을 보라. 황석영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보다 극적인 변화는 언제든 누구에게서든 일어난다.

인생은 고요한 연못과 같다. 누군가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다 그렇다. 돌을 맞고 파문이 일다가 다시금 고요히 잠잠해지기는 하지만 '파문'을 만나 파문 속으로 몸을 던지고 아예 해일이 되지 않으란 법이 어디 있을까?




캐릭터를 폭발하게 만드는 힘이 영화에는 있다

영화 <박쥐>를 보고 내내 못마땅하다가 떠오른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각각 캐릭터들이 너무나 강렬하다는 것이다. 소설가든 영화감독이든 가장 어려운 것이 캐릭터의 창조이고, 그 다음이 상황의 설정이다. 나머지는 이것들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박쥐>는 캐릭터가 살아서 날아다닌다. 그것은 단지 연기자들이 연기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다. 연기력보다는 연기자들이 편안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극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고민 때문에 50명 중에 1명만 살아남는다는 신약 실험에 투신했지만 사실은 상현의 욕망을 숨기기 위한 기제였을 뿐이라는 것이 태주에 의해서 드러난다. 태주 역시 강우에게 학대를 받은 사실이 없지만 상현이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학대 받는 여자'가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빛이 날 때가 언제인가? 바로 '욕망'이 작용할 때다.

나는 박쥐의 부제를 <욕망의 저항사>라고 쓰고 싶다. 은폐하려는 자(상현)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 망각한 자(태주)로부터 깨어나려는 욕망. 하지만 욕망과 욕망의 부딪힘은 결코 신사적인 결말을 만날 수 없다.

"하나의 욕망은 더 큰 욕망에 의해서 제압될 뿐이다"(스피노자)

욕망의 이데아가 있다면 나는 태주의 욕망이야말로 욕망의 이데아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판타지적 욕망이다. 현실적 욕망은 상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상현의 욕망은 반거충이 욕망이다. 항상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욕망의 편에도 이성의 편에도 설 수 없는 <박쥐> 같은 존재가 바로 상현이다. 내가 제목에 도달한 길은 이와 같다.

상현의 캐릭터를 욕망과 이성의 대결구도로 본다면 상현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상현은 욕망의 이데아도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이성도 대표할 수 없다. 상현은 '갈등'과 '고뇌', '방황'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상현의 마지막 결단을 보면 이성이 욕망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과연 이성이 승리를 했을까. 이성은 욕망의 엄청난 힘에 눌려 '자폭'을 한 것뿐이다. 고뇌하고 갈등을 한다는 것은 이성이 받쳐줄 때의 일이다. 고뇌와 갈등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성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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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5-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에서도 호평을 받았나봐요. 기사라 주르륵 떴어요.
-마치 조용한 연못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현상의 등장에 태주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앞부분에 모두 '현상'이라고 적혀 있어요. '상현'으로 고쳐야겠어요.^^

승주나무 2009-05-17 01:17   좋아요 0 | URL
박찬욱 감동의 인지도와 칸의 수상 내역.. 그리고 실제 영화를 접하면서 받는 느낌을 순수학 구획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해서 고민을 오랫동안 했지만, 칸의 수상 내역이 호평을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지도 모르겠지요. 확실한 것은 판에 박힌 독법으로 <박쥐>에 다가가면 열이면 일곱여덟은 실망을 하게 될 것이란 점입니다. <사이보그는..>필이 조금 나거든요^^

오탈자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현상현이라고 할 걸 그랬어요^^
 


▲ 5월 15일부터 제주도 전역에서 김태환지사 주민소환투표가 시작됐다. 광역단체장으로서는 최초의 소환투표다.

나는 서울에 사는 제주도민이다.
제주 사람들은 마을공동체끼리 매우 친하다.
이를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삼촌'인데,
아버지와 어버니 등 친지 어른들을 제외한 모든 어른들에게 '삼촌'이라고 부른다. (남자어른이든 여자어른이든)

그리고 친구의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의 어머니는 '어머니'라고 부른다.
00아버지, 00어머니가 아니라 '내 아버지', '내 어머니'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친분관계는 역사적으로도 잘 볼 수 있는데,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제주민들이 협심을 잘 하게 된 데는 예부터 중앙의 탄압을 많이 받았던 것도 주된 원인일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삼별초 항쟁'이다.
원나라에 끝까지 저항한 고려 무신들이 강화도-진도-제주도까지 퇴각하면서 끝까지 저항한 사건은 역사에서 미담으로 전해오지만,
사실 제주민의 입장에서는 2중으로 고통을 당했다.
2중고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제주4.3 당시에도 공비와 토벌대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토벌대는 공비에게 협조한다고, 공비에게는 밥을 안 주거나 토벌대에게 협조한다고..
그래서 제주민들은 서로 살기 위해서 협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요즘 제주도민의 유대감과 공동체정신이 거의 파탄날 지경에 처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제주해군 기지 때문이다.

평화의 섬이나 다른 추상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해군기지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공동체가 와해됐다는 점이다.
강정마을은 둘로 쪼개져 얼굴도 마주보지 않는다.
어른들이 그러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네편, 내편이 되어 다툰다.
공동체가 살아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강정마을도 반목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제주도지사 김태환이 추진하는 해군기지 자체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해군기지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MBC PD수첩 해군기지 편을 보니,
국정원과 경찰, 도청 등 권력기관들이 주민들의 반목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을 추진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것은 가정파괴보다 더 심각한 공동체파괴 범죄다.
김태환 도지사의 임기는 1년 남았지만,
이대로 해군기지가 처리된다면 100년도 넘게 뒤처리를 할지도 모른다.

경부고속도로를 떠올려 보자.
원래 경부고속도로는 개통 예정일이 1971년 6월 30일이었는데, 박정희는 1971년 4월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예정보다 1년 앞당겨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다.
무리한 일정 때문에 7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개통한 다음 날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되었고, 보수 비용만 건설비의 4배가 됐다.

제주해군기지의 강행은 77명이 죽는 차원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는 심각한 공동체 위기에 몰려 있다.

김태환이 물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김태환이 물러나고 공동체정신 회복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그보다 큰 다행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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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학교법인 동일학원의 사학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다가 2006년 6월 28일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 통고까지 받은 조연희씨(42·여·전 동일여고 교사)의 ‘길거리 문학수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뜻을 품고 쫓겨난 선생님들이 많다. 그 선생님들을 찾아서 다시 교단에 세워야 한다. (사진 : 경향신문)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과는 인연이 있는데, 얼마 전 이웃간의 불화를 해결한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실었다가 담당 작가로부터 원작을 사용해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작 허락을 해주었다.
원작료를 적잖이 받아 마음도 지갑도 두둑해진 하루였다.

<내 이야기를 동화로 만든 애니메이션>
<TV동화 행복한 세상> "완벽한 이웃이 되는 법"(클릭)


그 프로그램의 담당작가가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블로그에서 글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문의였다.
내 학창시절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선생님이 인생을 좌우한다(클릭)

내 인생에서 최초로 의미 있는 기억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건이다. 이른바 <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할 정도다.
그 다음에 대단한 반전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손바닥을 올렸고, 선생님은 매를 내리치셨다.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매를 맞지 않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그때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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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5-1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이런 선생님이 계시리라 믿고 싶네요.
이건 정말 아름다운 사도네요~ 우리큰딸한테 꼭 읽게 할게요.
가난한 동네 가난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네요~ ^^

승주나무 2009-05-18 13:29   좋아요 0 | URL
네.. 분명히 그런 선생님이 계실 거에요..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심 감사합니다^^
 


▲ 작년 8월에 있었던 황석영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 이날 동영상 촬영까지 했지만 쓸 게 너무 없어서 기사를 쓰지 않았다. 황석영에 대한 미련을 시원하게 잊게 해준 소설이 바로 <개밥바라기별>이다.



영달은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젊은 노동자이다. 그는 겨울의 새벽 벌판에서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와 고향으로 향하는 중년의 정씨를 만난다. 정씨는 삼포라는 이름의 고향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들은 눈길을 걷다가 읍내식당에서 도망쳐 나온 접대부 백화를 만난다.
이들 셋은 다 함께 강천읍내의 기차를 타기 위해 간다. 영달과 백화는 이내 친해졌으며, 그들은 정씨의 고향얘기에 매료된다.
이윽고 목적지인 강천 역에 도착한 정씨는 뜻밖에도 고향이 호텔 등의 공사로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이제 영달과 정씨는 마음의 고향이 아닌 생활의 터전으로 삼포를 찾는 동행인이 되었으며, 백화는 영달이 마지막 남은 돈으로 사준 차표로 떠나는 것이었다.
- 황석영, <삼포 가는 길> 줄거리



대학 시절 감동적으로 읽은 책 중에서 하나가 삼포 가는 길이다.
그 때 '황석영'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는 지겹게 들었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붙인 것도 황석영이다. 백기완 선생의 원작 시를 기가 막히게 다듬어 촛불에서도 애창곡이 되었다.

그 이후로 황석영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우연찮게 최신작들을 읽게 되었고,
작가강연회에서도 두어 번 찾았다.
최신작을 읽고 촛불을 다니면서 더욱 굳히게 된 사실은 소설가로서의 황석영은 <삼포 가는 길>이 정점이라는 생각이었다.
삼포 이후에도 많은 소설을 썼지만 그것은 황석영의 껍데기나 평판이 썼던 소설에 불과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의 비즈니스적 정치적 행보다.
지난 대선에서 反 이명박 연대를 제안한 사람도 손학규에게 경선 참여를 강력히 제안한 것도 황석영인데,
이번에는 이명박에게 "당신이 중도다"고 마치 중도 대표나 된 양 권리를 부여하려 하는 모습에서 다분히 정치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당시 예스24 주최의 간담회와 오마이뉴스 주최의 강연회에도 다녔지만,
기성 작가 중에서 황석영이 유난히 작가 행사를 많이 다녔다.
독자와의 만남에 다니고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고, 매스컴에 눈에 띄는 것에 따라서 문학성은 점점 멀어져 갔다.

황석영 등의 작가들이 촛불에서 보인 행태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의 꿈을 접어버렸다.
소설가는 앞으로 황석영의 저주에 빠져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학자나 언론인, 작가라는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촛불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그래도 문인은 상상력을 대표하는 사람이니 촛불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만약 누군가 "그래도 황석영은 글솜씨는 있잖아"라고 항변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생활면을 잘 쓰니 그런 대로 쓸 만한 신문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일로 인해서 황석영의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소설가'라는 이름이 어울린 것은 20년도 더 된 일이다.


정치인 황석영에게 그나마 기대할 점이 있다면 

소설가 황석영은 갔지만 정치인 황석영으로 할 역할이 있을까? 그 점이 사실 고민이기는 하다.
황석영은 소설을 쓰고 나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일본의 소설은 시들어 말라버렸고 중국의 소설은 자유가 없고 한국의 소설은 가능성이 넘쳐난다는 따위의 자뻑스러운 이야기가 많았다.

촛불 때도 황석영은 이명박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몹시 고심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명박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한 가지였다.
"누군가 저쪽의 옵저버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였다. 촛불의 입장을 완곡하게 전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순수 촛불에는 이명박이 워낙 반감을 가지기 때문에 그 역할을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했다. 이명박 관련 행사에 참여한 인사 명단이나 방명록 같은 데 글을 남긴 사람 속에서 황석영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발언도 그의 일환일 가능성이 많다.

작가란 본질적으로 저항정신을 갖기 마련인데, 스스로 중재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니 소설가 황석영을 스스로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생각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다.


▲ 한비자의 '세난'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한 글이다. 철학적으로도 영감을 준다. 말을 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 일이고, 그 전에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이 이름을 따서 나도 요즘 "Project <SENAN>(가칭)"이라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이것은 황석영이 처음 쓴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한비자'라는 사람이 '세난'이라는 글에서 펼쳤던 전략이다.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군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

필수가 아니라 '전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황석영의 발언 하나를 가지고 매도하는 것도 옳지는 않고, 황석영이 주장하는 마지막 명분의 답이 올 때까지 '정치인 황석영'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려 한다. 우리 촛불 이후로 일희일비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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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5-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정원 때문에 황석영에 관심을 가졌었어요. 삼포가는길 저는 수능 언어영역 준비할때 징하게 봤었는데 ㅋㅋ 황석영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중도다"라고 말을 보니 인간적인 흥미가 확 떨어지네요.

승주나무 2009-05-14 13:32   좋아요 0 | URL
황석영은 문학을 자산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문학을 정치에 연루시켜서 기소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 문학은 힘이 없어서 문학 쪽에서 필화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아고라라면 몰라도....

로쟈 2009-05-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 스스로 '광대'를 자처했으니까 거기게 걸맞은 행보지요. 그의 광주 콤플렉스를 이번에 한번 더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리더' 의식도...

승주나무 2009-05-14 14:44   좋아요 0 | URL
그러면 소설을 쓰지 말고 에세이 같은 거나 썼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바리데기나 개밥바라기별도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기는 하지만...

글샘 2009-05-1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온 소설은 모두 망했죠.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개밥바라기... 모두 개판이더군요.

승주나무 2009-05-14 16:41   좋아요 0 | URL
소설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은데 독자와 평론가들이 단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마이뉴스)



 ‘심재철 의원 18원 후원 사건’ 을 기억하시나요. 
"광우병에 걸린 소일지라도 SRM(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 나머지 부분은 안전하다" 라는 명언을 남겨서 네티즌들로부터 '사랑의 18원' 후원금을 두둑히 받은 심재철 의원 지금은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심재철 18원 보내기>가 뭔지 궁금한 분들은 클릭

'사랑의 18원'을 해야 할 '사랑스러운' 분이 또 한명 탄생했네요. 바로 신영철 대법관입니다.
신영철 대법관님은 법원 윤리위원회에서 권고를 받고도 대법관직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네요. 사람들은 모두 신영철 대법관님이 후안무치라서 그렇다고 욕을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혹시 신영철 대법관이 '월급 걱정' 때문에 대법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요.

대법관 월급날이 언제인가요? 그리고 대법관 월급은 얼마인가요?
제가 많은 돈은 아니지만 18원 정도는 송금해드릴 수 있고, 제 친구들을 모아서 신 대법관님 월급 정도는 저희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월급이 모아지면 대법관직 그만두기로 우리 약속해요.

대법관이든 대통령이든 돈이 있어야 하는데, 신영철 대법관 님은 주머니 걱정으로 애간장이 탈 수도 있는데 남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적으로 비화하려고만 해서 속상하셨죠. 세금도 내야 하고, 골프장도 다녀야 하고, 이번에 차도 바꿔야 하고 돈 들어갈 데는 한두 군데가 아닌데 요즘은 세상이 하수상해서 '꽁돈'도 안 들어고, 그나마 대법관직 때문에 고정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만둘까 하는 마음 이해합니다.

지금은 대법관직을 그만둘 타이밍이 아니겠지요. 신영철 대법관님의 활약이야 우리 대통령님이 잘 아실 테니, 대법관에서 무러나셔도 전 경찰청장님처럼 코레일 같은 공기업 사장자리는 따논 당상이겠지요. 문제는 대법관 사퇴와 공기업 사장 사이에 있는 공백이 너무 커서 주머니사정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변호사사무실을 차린다고 해도 돈만 많이 들고, 이왕 버린 몸 수임료도 잘 안 들어올 것 같고 애가 타실 거에요.

하지만 우리도 힘들답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돈으로 해결해 드리죠. 대신 약속 하나만 해주세요. 대법관 월급을 채워드리면 대법관직을 벗어던지겠다고. 아니면 필요한 돈을 말씀해 주세요. 우리 네티즌들이 아무리 가난해도 신영철 대법관님 돈 드릴 정도의 경제력은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얼마면 된다'고 말을 해주세요. 답변을 기다리면서 친구들을 설득하고 있을게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가 신영철 대법관 님을 제2의 심재철로 만들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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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초롬너구리 2009-05-1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면에 죄송합니다, 승주나무님. 그동안 님의 글을 읽은바가 있어'돈'을 언급하시는건 돌려 비꼬기위함을 조금 알겠지만, 글쎄요. 돈때문에 그만 못둔다면 돈모아줄테니 그만두라..는 식의 발언은 그닥 제가 보기에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윤리의원회의 결정이나 신영철 대법관의 행태를 비난할만 하지만, 그 행동으로 비판하시지 그 사람의 인격까지 끌어내는 비판은 없었으면 합니다.
허참, 근데 어떻게 마무리를 다 해야 님의 기분이 상하시지 않을지를 모르겠군요. 그럼 다음에 또...^^

승주나무 2009-05-13 12:11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초롬너구리 님~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것도요.
말씀드린 부분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인격적인 비난으로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조롱, 해학, 풍자>는 예부터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우병 쇠고기도 제거하면 괜찮다고 말해서 사람들을 어이 없게 만들었던 심재철 의원에게 18원 보내기 사건도 일종에 그와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지적을 받으니 새롭게 들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