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년 8월에 있었던 황석영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 이날 동영상 촬영까지 했지만 쓸 게 너무 없어서 기사를 쓰지 않았다. 황석영에 대한 미련을 시원하게 잊게 해준 소설이 바로 <개밥바라기별>이다.
영달은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젊은 노동자이다. 그는 겨울의 새벽 벌판에서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와 고향으로 향하는 중년의 정씨를 만난다. 정씨는 삼포라는 이름의 고향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들은 눈길을 걷다가 읍내식당에서 도망쳐 나온 접대부 백화를 만난다.
이들 셋은 다 함께 강천읍내의 기차를 타기 위해 간다. 영달과 백화는 이내 친해졌으며, 그들은 정씨의 고향얘기에 매료된다.
이윽고 목적지인 강천 역에 도착한 정씨는 뜻밖에도 고향이 호텔 등의 공사로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이제 영달과 정씨는 마음의 고향이 아닌 생활의 터전으로 삼포를 찾는 동행인이 되었으며, 백화는 영달이 마지막 남은 돈으로 사준 차표로 떠나는 것이었다.
- 황석영, <삼포 가는 길> 줄거리
대학 시절 감동적으로 읽은 책 중에서 하나가 삼포 가는 길이다.
그 때 '황석영'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는 지겹게 들었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붙인 것도 황석영이다. 백기완 선생의 원작 시를 기가 막히게 다듬어 촛불에서도 애창곡이 되었다.
그 이후로 황석영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우연찮게 최신작들을 읽게 되었고,
작가강연회에서도 두어 번 찾았다.
최신작을 읽고 촛불을 다니면서 더욱 굳히게 된 사실은 소설가로서의 황석영은 <삼포 가는 길>이 정점이라는 생각이었다.
삼포 이후에도 많은 소설을 썼지만 그것은 황석영의 껍데기나 평판이 썼던 소설에 불과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의 비즈니스적 정치적 행보다.
지난 대선에서 反 이명박 연대를 제안한 사람도 손학규에게 경선 참여를 강력히 제안한 것도 황석영인데,
이번에는 이명박에게 "당신이 중도다"고 마치 중도 대표나 된 양 권리를 부여하려 하는 모습에서 다분히 정치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당시 예스24 주최의 간담회와 오마이뉴스 주최의 강연회에도 다녔지만,
기성 작가 중에서 황석영이 유난히 작가 행사를 많이 다녔다.
독자와의 만남에 다니고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고, 매스컴에 눈에 띄는 것에 따라서 문학성은 점점 멀어져 갔다.
황석영 등의 작가들이 촛불에서 보인 행태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의 꿈을 접어버렸다.
소설가는 앞으로 황석영의 저주에 빠져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학자나 언론인, 작가라는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촛불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그래도 문인은 상상력을 대표하는 사람이니 촛불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만약 누군가 "그래도 황석영은 글솜씨는 있잖아"라고 항변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생활면을 잘 쓰니 그런 대로 쓸 만한 신문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일로 인해서 황석영의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소설가'라는 이름이 어울린 것은 20년도 더 된 일이다.
정치인 황석영에게 그나마 기대할 점이 있다면
소설가 황석영은 갔지만 정치인 황석영으로 할 역할이 있을까? 그 점이 사실 고민이기는 하다.
황석영은 소설을 쓰고 나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일본의 소설은 시들어 말라버렸고 중국의 소설은 자유가 없고 한국의 소설은 가능성이 넘쳐난다는 따위의 자뻑스러운 이야기가 많았다.
촛불 때도 황석영은 이명박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몹시 고심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명박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한 가지였다.
"누군가 저쪽의 옵저버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였다. 촛불의 입장을 완곡하게 전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순수 촛불에는 이명박이 워낙 반감을 가지기 때문에 그 역할을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했다. 이명박 관련 행사에 참여한 인사 명단이나 방명록 같은 데 글을 남긴 사람 속에서 황석영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발언도 그의 일환일 가능성이 많다.
작가란 본질적으로 저항정신을 갖기 마련인데, 스스로 중재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니 소설가 황석영을 스스로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생각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다.

▲ 한비자의 '세난'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한 글이다. 철학적으로도 영감을 준다. 말을 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 일이고, 그 전에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이 이름을 따서 나도 요즘 "Project <SENAN>(가칭)"이라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이것은 황석영이 처음 쓴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한비자'라는 사람이 '세난'이라는 글에서 펼쳤던 전략이다.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군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
필수가 아니라 '전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황석영의 발언 하나를 가지고 매도하는 것도 옳지는 않고, 황석영이 주장하는 마지막 명분의 답이 올 때까지 '정치인 황석영'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려 한다. 우리 촛불 이후로 일희일비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