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마의 10%벽을 넘지 못한 MBC 뉴스데스크

<뉴스데스크>가 KBS <뉴스9> 시청률에 뒤처진 것은 10년도 더 된 일이다. 엄기영 사장이 앵커로 높은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도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KBS에 밀렸다. 방송가에서는 방송뉴스를 보는 연령대를 큰 이유로 설명한다. 즉, KBS 1TV의 주요 시청층이 여전히 TV를 즐겨보는 40~50대 이상인 데 비해, MBC의 시청층은 다매체 시대를 영위하는 30~40대라는 점이다. MBC를 시청하는 젊은 세대는 뉴스를 접하는 다양한 창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이보다 나이든 세대는 오래 전부터 즐겨 보던 '방송'에 의지하기 때문에 10% 고착화가 생겨난다.

그런데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 동안, MBC뉴스데스크가 KBS 뉴스9 시청률을 넘어서는 '이변'을 보여주었다. 뉴스 시청률의 이러한 사정을 아는 시청자들은 MBC 뉴스데스크 게시판에 축하인사를 할 정도였다. 도대체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KBS의 고봉순이 '김비서'로 변질되다



▲ 지난 일주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KBS는 연예, 개그 프로그램을 방영하거나 현장의 사실과 전혀 다르게 보도하는 '거짓말'을 하는 등 공분을 사는 행태를 빈번히 저질렀다. 이것이 시청률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일 주일 동안 단 세 번 KBS 뉴스9를 앞질렀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3번이었고, 전국에서는 단 1번만 앞섰다. 노무현 서거 국면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있지만 이것은 앞으로 뉴스데스크가 시청률 경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일주일을 통해 KBS는 '관급언론', '김비서'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병순 사장 체제 이후 정권의 노골적인 나팔수로 변모하고 있다. KBS가 언론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부의 편에 설 때는 젊은 시청자든 나이든 시청자든 외면하기 마련이다. MBC는 시민의 입장에서 뉴스를 내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예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나 각종 추모행사의 인원은 주최측 추산을 먼저 다루고, 경찰 추산을 나중에 다룬다. 이에 비해 KBS는 경찰측 추산만을 보도하는 경우가 있거나, 아예 의도적으로 터무니없이 줄여서 보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KBS는 MB방송, MBC는 국민방송이라는 이미지가 생성되는 분위기다.


▲ MBC 뉴스데스크는 5월 1일~22일까지 절반 이상 20위권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 절반값만 평균을 내서 비교해도 KBS에 비해서 6% 가까이 밀리는 것을 볼 수 있다. 20위권 이하의 시청률까지 포함하면 마의 10%벽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이다. 5월 23일 전까지는 '수도권 방송'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5월 23일 이전의 양사 뉴스의 시청률을 보면 지난 일주일간의 변화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이 마무리되고, 특보를 생산하지 않는 '평시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앞으로 MBC 뉴스데스크가 어떤 방송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시청률이 달라질 수 있다.


MBC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는 '주말용'인가?

신경민 앵커 이후 클로징멘트가 취약해졌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 온 MBC 뉴스데스크가 간만에 예전의 예봉을 되찾은 모습을 간헐적으로 보여줬다. 평일 뉴스를 진행하는 권순표-이정민 앵커는 아예 클로징멘트를 하지 않거나 부담 없는 형식적인 클로징 멘트를 했다. 권순표-이정민 앵커는 5월 25일 " 우리 모두가 변화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힘 있는 쪽이 더 먼저, 더 많이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클로징멘트를 보냈을 뿐, 26일과 28일은 클로징멘트가 전혀 없었고, 27일은 북한 이야기, 29일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형식적인 멘트만을 보냈다. 평일 클로징멘트는 거의 '제로'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왕종명-손정은 앵커가 진행하는 주말 뉴스데스크는 분위기가 자못 다르다.

"국민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새벽, 경찰이 시민들이 만든 분향소에 대해 기습 철거를 시도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국민 통합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순수한 애도의 마음이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바뀌게끔 자극하는 일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 30일(토) 클로징멘트

"뒤늦게 모내기를 하는 봉하마을 주민이 "먹고 살려면 해야죠"라고 말한 게 인상적입니다.이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갈 겁니다.일부 의경의 실수였든, 경찰의 조급증이었든, 시민 분향소의 운명도 시간이 결정하도록 지켜봐 주는 게 옳을 거 같습니다." - 31일(일) 클로징멘트

주말 뉴스데스크는 이틀 연속으로 경찰이 시민들의 분향소를 기습 철거한 일을 꺼내며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냈다. 이를 바라본 시청자들은 간만에 막혔던 속이 뚫리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았다. 뉴스데스크의 클로징멘트가 주말용으로 축소된 데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관급방송으로 전락한 KBS와 달리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계속 만들면서 비판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면 KBS와의 시청률 경쟁은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것이고, 시청률에 기반한 광고 수익도 나아질 것이다. 결국 방송사의 수입이라는 것은 시청자가 벌어다준다는 평범한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양사 메인 뉴스의 시청률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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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6-0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수가 많아서 제 추천이 의미가 없네요^^

승주나무 2009-06-02 16:28   좋아요 0 | URL
아녜요~! 다 보고 있습니다. 알라딘 님들과도 생각을 함께 하고 싶어서 올린 것이니 추천 많이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신 없어서 댓글 신속히 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아량을 부탁할게요^^

saint236 2009-06-0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그립습니다. 특히 총맞은 것처럼 친절한 문방위원장들의...이라는 클로징멘트는 압권이었습니다. 간혹 정신줄을 놓고 뉴스는 공정해야 하는데 그게 뭐하는 꼬락서니냐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답답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 경찰에 의해 훼손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 모습. 찢겨진 현수막 사진이 나뒹굴고 있다. (사진 : 문순C)


전경들은 조직된 군대다.
오합지졸이 아니다.
전경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덕수궁 빈소를 능멸하고 훼손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윗선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3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덕수궁 대한문 앞 빈소 강제철거와 관련해 "일선의 경찰들이 작전지역을 오해해 벌어진 실수"라고 해명했는데,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시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부 전경들이 흥분해서 벌어진 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명백히 국가지도자에 대한 모욕 행위를 한 것이다. 사안이 그만큼 무거운 것인데 경찰청장이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농담따먹기 하는 식으로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사진이 훼손된 것으로 봐서 경찰의 군홧발에 여러 번 밟힌 것으로 보인다. (사진 : SooFeeL)

경찰청장의 해명과 비공식 사과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 이유는,
첫째, 경찰청장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 대한 통제가 전혀 안 된다는 말이다. 영이 서지 않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국가 지도자(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식의 진압은 하지 말라는 지침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경찰의 조직 체계와 통제력이 완전히 무력화된 상황이거나 경찰이 의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훼손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이 훼손됐다손 치더라도 이미 벌어진 사태에 대한 여권의 유감표명이 전혀 없다. 노무현 대통령 빈소를 훼손한 데 대한 관련자 처벌이나 책임규명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의 멘트나 청와대의 멘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권력의 실세들이 경찰의 전 대통령 빈소 훼손에 대해서 사소한 헤프닝 정도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때문에 주상용 경찰청장의 '사과'는 거짓말이거나 허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주상용 청장은 " 일부 의경들이 작전구역을 벗어났다"고 해명했는데, 현장을 직접 목격한 네티즌 SooFeel에 따르면 최소한 3명 이상의 지휘관이 현장에서 전의경들을 지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최소한 주상용 청장은 "일부 지휘관들이 작전구역을 벗어났다"거나 "일부 지휘관들이 지침을 어겼다"(지침이란 게 있었다면)으로 수정돼야 한다.







▲ 현장에 있었던 네티즌 SooFeel이 촬영한 사진에는 최소한 3명의 지휘관들이 나온다. 지휘관의 지시를 받고 전경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철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과 사진, 현수막 등이 훼손됐다. 이들은 지휘관복을 입은 전경들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국가지도자 영정 훼손과 관련해 처벌받은 경찰관이 있다는 말은 전혀 없다. 다만 경찰청장의 '실수' 발언만 흘러나올 뿐이다. 주상용 경찰청장의 '실수' 발언을 듣고 오히려 모욕감과 수치심이 생기는 것은 나뿐일까?




▲ 경찰은 조폭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조직되고 교육받은 기관이다. 때문에 일선의 전경이라고 하더라도 수뇌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실랑이가 아니라 국가지도자의 빈소와 영정 훼손에 대한 중대한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은, 상부의 지침이 없었거나 오히려 '묵인'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진 : 문순C, Soo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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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5-3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산, 노점상 쓸어내듯...;
급살이나 맞아라..

비연 2009-06-0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무슨 80년대 사진을 보는 듯 하는군요....저들은 21세기가 안드로메다인 듯.

글샘 2009-06-0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 넘들...
이것은 반드시 지침이나 명령이 시달된 행동입니다.
경찰이란 잡것들이 저런 짓거리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두뇌'는 애초에 없습니다.
씨벌럼들... 자손 만대로 저주를 내릴 것이다.(참고로, 제 저주는 일본에 강도 7.2의 고베 지진을 일으킨 예가 있습니다.)

딸기 2009-06-02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분향소에서 무슨 '작전'을 하려고 했기에 '작전지역을 오해'했을까?
2. 전직 대통령 분향소에서 어떻게 '오해'를 하고 '실수'를 했을까?
3. 전직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돌아가신 분 추모하는데 상가집 짓밟고 부수고 나서 '오해'하고 '실수'했다고 하면 인간말종 패륜아 되는 거 아닌가?

글샘님 말씀대로 지금 경찰 간부들, 검찰들은 순 씨벌럼들이니
저런 의문을 가진들, 꾸지람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대통령 안 하겠다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던 당신,무뚝뚝하기만 하던 당신의 속 깊은 사랑에 저는 말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2002년 11월 19일 권양숙 여사가 남편에게 쓴 편지 일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친구들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민주주의, 인권, 가치, 지도자 등 여러 가지 수사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고개를 끄덕인 평가는 '남자'였다.
노무현을 보면서 "남자답게 사는 법"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평가는 어찌 보면 편협하고 감정적이고 마초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100%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노무현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맹자>의 유명한 구절 중에서 후세의 선비들이 '대장부 편'이라고 이름붙인 대목이 있다.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고,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해나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리를 행하며, 부귀도 그의 마음을 음탕하게 할 수 없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이동할 수 없으며,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굽히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대장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맹자, 등문공 하>


외형으로만 보면 토이남, 초식남( 자기애가 강하고 온순하며 ‘여자인 친구’가 많은 유형의 남자)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남자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결정적으로 용기 있게 결단하고 책임지는 모습으로서의 남자도 많이 사라졌다. 한동안 남자를 구경하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어쩌면 대한민국의 유일한 남자였던 노무현이 떠남으로써 남자에 대한 유형을 잊지 않도록 남기고 싶다.
글을 쓰다 보면 노무현 찬양글이 될 위험이 있지만, 미안하지만 찬양이라도 좀 해야겠다.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노무현의 인생과 일상을 살펴보면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 글은 그런 나를 위로하고 자책하는 의미로 쓴다. 


낮은 곳에 임할 줄 아는 남자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가 쓴 포스팅에 첨부된 사진을 파노라마식으로 올려 본다.
요양원 어르신들과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당연히 뒷자리 말석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첫 번째 사진)
하지만 어르신들은 앞자리 상석에 노무현 대통령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안내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리를 재차 물은 다음에야 상석에 앉았다. (두 번째 사진)
사진을 찍을 때도 어르신들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세 번째 사진)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네 번째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다리를 쫙 벌리고 약간은 우스운 포즈를 취하는 이유는
여성들에 비해 자신의 키가 크기 때문에 키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노무현 대통령 뒤에 선 여성의 표정이 나올 수 있었다.
평소에 따뜻한 인간성과 세심한 배려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이다.



전경들이 경례를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하고 있다.

다른 정치인 같으면 손을 살짝 드는 정도로 했을 텐데,
정치인으로서 누구를 높여야 하는지를 뼛속까지 깊이 아는 것이다.
전경 역시 한 사람의 귀중한 국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노무현 대통령의 가르침을 전경들은 이해하고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를 파괴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찢고 짓밟아 버리는 전경들을 보면서 이 사진이 떠올랐다.




▲ 전경에 의해 찢겨진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과 경찰이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를 부수는 장면. (사진 : 문순c)

예로부터 '불치하문(不恥下問 :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을 잘한 정치가와 그 나라는 오랫동안 융성했다. 춘추시대 제나라에서는 수도에 학당을 만들어 놓고 천하의 인재들을 정성껏 모셨다. 그것을 직하학당이라고 한다. 현인 순자 등이 좨주로 있으면서 나라의 일에 참여했고, 왕은 어떻게 하면 인재들을 불러모으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을지 밤낮 고민했다. 대통령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엄청나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된 사람일수록 낮은 곳을 생각하고 낮은 곳에 머무르려고 하면 권력은 그에게 모이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도리어 높은 곳을 생각하면 점점 권력으로부터 도태될 뿐이다. 이것이 노무현과 MB의 차이이다.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굽히게 할 수 없다



3당야합은 당시 정치현실에서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에 내세웠던 명분이야 어쨌든 대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팽개쳐도 된다는 논리가 강했다. 여기서의 대의란 '선거 승리'였다. 승리를 위해서는 영혼까지 팔고 싶다는 생각이 여기서부터 싹텄고, 정치인의 말과 생각은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도 이때쯤이 아닌가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정치인의 부류와 같이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때부터 방랑의 길, 바보 노무현의 길로 들어선다.





인신구속이란 누구에게든 두려운 것이다. 구속과 죽음을 초월한 사람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부림사건(전두환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부산지역 민주인사들이 이적 표현물을 학습했다는 이유로 정부 전복집단으로 매도돼 총 22명이 구속된 5공화국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을 맡고 고문당한 학생을 보았을 때, 노무현 당시 변호사는 자신의 아이도 이제 곧 대학생이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민주/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87년 9월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인 규명작업에 나섰다가 3자 개입과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되고 만다. 전두환과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5공 청문회 때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준 활약으로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알린다. 노무현 대통령이 숨졌을 때 전두환은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서도 전직대통령으로서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는 말을 남겼다. 전두환에게 '꿋꿋하다'는 말과, 노무현에게 '꿋꿋하다'는 말은 전혀 다른 단어다. 







부시와 맞장을 뜰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만한 부시조차도 노무현 앞에서는 답변이 궁색해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마이클 그린 백악관 선임 보좌관도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만난 수십명의 정상 중 가장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국내를 의식한 반미 발언으로 미국을 당혹시켰다. 그러나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친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이상이었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누구에게 머리를 숙이고, 누구에게 숙이지 말아야 할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 이빨이 다 빠진 말년 대통령 부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오버를 한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였던 오바마에 대한 정보도 관심도 없었기에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바마 당선 후에 국민들은 한미관계를 걱정해야 했다. 줏대도 없고 정세분석도 없었고 남자다움도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민주주의적 가치들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오랫 동안 연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됐는지 오히려 위태롭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다만 한 인간의 삶으로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남자로서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다.

"여러분들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지만 나는 뙤양볕에서 이렇게 땡볕을 얻어맞는 그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이 좀 부족하니 저는 모자도 벗겠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 노무현의 비공개 파일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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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5-3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남자다운 남자, 저도 그가 참 좋습니다.
추천!

순오기 2009-06-0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노무현 좋지요~~ 국민의 대통령이었음을 사진이 말하고 있어요.
 




할 말이 왜 없었겠는가?
이 날은 사건도 많았다.
용산에는 새벽부터 용역깡패들이 출몰해 문정현 신부님을 폭행했고,
민심이 노무현 대통령에게로 쏠린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재판인 삼성 불법승계 최종심판이 '무죄'로 결론났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금싸라기땅인 1면에 사진 1장과 단 11글자만을 써넣었다. (하단 의견광고 제외)

"이 추모의 민심은 무엇인가"

사실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슬픈 것이고, 모두와 함께 있어 행복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편집술은 처음이다. 사진 하나에 글 하나라니.
신문 편집은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면을 자세히 보니 사진을 찍은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의 치세는 일제시대나 다름없는 이제시대(李帝時代)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이 1면의 제목을 이렇게 쓰기로 했다.

"노무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정오임을 알리고 가다"


▲ 경향 1면과 한겨레1면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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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5-3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경향신문 1면을 보며 커뮤니케이션을 좀 아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하늘바람 2009-05-3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민심을 읽은 듯합니다

마늘빵 2009-05-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경향신문 보고서 저 사진 찾으려고 신문사 사이트 들어갔는데 사진이 안보이더라고요. 못 찾은 건지. 승주나무님은 직접 찍으셨군요!

이매지 2009-05-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고 굵네요.

마노아 2009-05-3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컷으로, 한 문장으로 모든 걸 설명했네요. 오싹해지는 편집이에요.

qualia 2009-05-3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있어 큰 다행입니다. 두 신문마저 없는 이제시대(李帝時代)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몽입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민심이 분출하는 국민광장 서울광장인데, 민심과 광장을 억압적으로 틀어막는 이 정권이 제대로나 굴러갈 수 있을까요?

글샘 2009-05-3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보다 경향이 낫네요.
한겨레는 추모에, 경향은 저항에 초점이 놓였으니 말입니다.

짱꿀라 2009-05-3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두 신문이 있어 다행입니다.

비연 2009-05-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경향신문 멋집니다!

건조기후 2009-05-3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말씀에 동감^^ 멋지네요.

도넛공주 2009-06-0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액자해서 걸어놓고 싶네요.

순오기 2009-06-0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신문 보고 울컥~~ 했어요.
경향신문 판촉이라도 하고 싶더라니까요.
 

5월 26일 덕수궁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 당시는 그래도 경찰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를 표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 사흘 후인 5월 29일 경찰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가증스러운 장면이었는 깨달았습니다.





경찰은 아주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근무복을 입고
가슴께는 근조 리본을 달고 서울 덕수궁과 시청 광장을 지켰습니다.
그 날 저녁에는 당장 진압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경찰들은 시민들이 서울 광장에 설치한 분향소를 뜯어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찢고 밟아 버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경찰의 마음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여의도 농민 시위 과정에서 농민이 숨지는 바람에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때의 감정이 지금 남아 있어서일까요?
용산 참사 현장에서도 노동쟁의 현장에서도
이제 경찰은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듯합니다.
사람 한 명 죽었다고 경찰청장이 사퇴하는 데 대해서 무척 억울해 한 것일까요?

전쟁을 하는 적끼리도 종교사찰이나 주요 기관 등에 대해서는 존중합니다.
군법을 강하게 적용하여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거나 그 상징물을 훼손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노무현 영정 하나가 거기에 있었고 진압 과정에서 우연히 훼손되었다고 하면 간단하지만,
경찰이 이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습니다.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찢어버리는 경찰의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로서는 해독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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