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샤머니즘의 땅이다.
이국적인 정취에다 토양에 깃들어 있는 기운이 무척이나 신령스럽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제주 사람들은 샤머니즘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우리 엄마만 해도 내가 어릴 적에 다치고 오거나 잦은 사고가 나면
넋이 달아날 수 있으므로 '넋 들이러' 다니곤 했다.

한라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바위마다 촛농 자국이 심하게 남아 있었다.
무당들이 넋을 들였던 흔적이다.
나는 어릴 때 넋을 들이고 나서 엄마와 무당으로부터 혼자 어둠 속을 뚫고 나가라는 명령을 듣고,
무서움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마라"라고 충고했다. 나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모들이 병원에서 각서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도 세 번 이상 각서를 썼다.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다.
급성 폐렴, 임파선 결핵, 동맥 절단... 각종 결핵과 종양들...

너무 어린 시절(유아기)에 혹독한 병마를 견딘 덕에 아기 때 울음 한번 시원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학교 다니면서 철이 다시 없어져서 식구들 마음고생을 심하게 시켰지만...

"승주"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당시 돈으로 5만원인가 쓰고 지어온 이름이다.
나중에 점쟁이에게 들은 말이라며 어머니는 이름 덕에 목숨을 건졌다고 하셨다.
하기야 동네에 나처럼은 아니지만 앓이를 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부모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방치했다가 하늘나라로 갔고,
나는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어머니가 부여잡아서 붙들어 놓았다.

작은누나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는 아기 승주 옆에 항상 삽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늘나라로 가면 묻어주기 위해서다. 항상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가 그 때는 아기였지만 "죽음의 언어"를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항상 무슨 "알"을 품고 있지 않았는가 상상했다.
나는 욕망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는데,
중학교 때 성욕을 느꼈는지 큰 배개를 안고 <흉내내기>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욕망 덩어리는 살인이나 성욕 등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 속에서는 아직도 끔찍한 행위가 도사린다.
아무튼 이 "알"을 관리하기 위해서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사람들은 승주의 열정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 했는데,
"죽을 아이"의 시기를 거쳐 "죽음의 언어"를 느끼고 그와 관계가 깊은 "알"을 조합하면
열정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누구보다 큰 욕망 덩어리다.
큰 욕망이라고 해도 이건희 따위의 욕망이나 이명박 따위의 욕망은 아니다.
그들의 욕망은 너무 작고 소박한 거 아닌가. 그들의 욕망이란 오히려 '팔자'에 가깝다.
단 한 번이라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아닌가.

민준이라는 이름을 얻으러 작명가에게 갔는데,
마침 내 사주를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거다.
75살까지 현역을 일을 하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거다.
그래도 75살까지 치매에 안 걸린다니 다행이다.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나는 가끔, 보다는 조금 더 자주 "영적 판단"을 할 때가 있다.
논리와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직관과 가까운 판단인데,
이런 판단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수호천사들이 나타나 판단을 도와준다.
지금의 나의 상황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처지 중 하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인사하듯 걱정스럽게 묻는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돈은 언제 버냐"고...

그것을 서양에서는 "서클"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기도한다.
때로는 논리가 앞설 때도 있고, 때로는 상식이 앞설 때도 있으며,
직관이나 영적 판단이 이를 압도할 때도 있다.

거창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과 삶을 떠난 상태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피부에 와닿는 죽음의 공포는 아직 이겨낼 정도는 아니지만,
추상적 의미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나는 죽음의 반은 이겨낼 자신이 있다.
이명박은 단지 계기를 강화시켜준 물건일 뿐이다...

"환퇴가 나를 어찌 하겠느냐?"(테러 위협에 빠진 공자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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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8-0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머니즘 영향이시라면...팔꿈치..혹은 대퇴부 도사로 겸업을 하시는 것도...=3=3=3=3
 

아기를 낳고 나서 좀 더 과묵해지고, 현실 처세에 따라야 하건만..
불온한 승주나무는 그렇게 하질 못하겠습니다.

자식에게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겠지요.

물질적인 보호자, 육체적인 보호자는 내가 보호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니 별다른 의미를 붙일 게 없겠지요.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것을 물려주어야 나는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돈 벌 궁리, 분유값 벌 궁리를 하면서 사람이 현실 친화적으로 변한다는데, 저는 오히려 더 불온해지고 사회 비판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봐주십시오. 제가 아기와 가정을 다 포기하고 사는 파렴치한 놈은 아닙니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생활은 견디는 것"이라는 진리를 무척이나 존중합니다.

저는 아기의 시대에 여전히 "공포의 언어"가 활개를 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경찰이 쌍용차 노조원에게 실탄을 제외한 모든 공격수단을 쓴 것은 국민에 대한 전쟁선포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공포의 언어"가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접수했다고 생각합니다.


엘 고어 씨의 <이성의 위기>는 "이성의 언어"와 "공포의 언어"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포는 이성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공포와 이성은 둘 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둘의 관계는 무척 불안정하다. 때로는 이성이 공포를 해소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 독립혁명이 일어나기 20년 전 에드먼드 버크가 영국에서 썼듯이 "어떠한 열정도 공포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에서 행동과 이성의 힘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빼앗지 못한다"
- 이성의 위기, 43쪽



저는 개인적으로 "공포의 언어"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대치동에서 월급 많이 받는 논술강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입시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죠. 전교 1등 하는 친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부모님과 사장의 방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나오는 친구는 사색이 다 됩니다. 그리고 좀비처럼 이 강좌 저 강좌를 등록하는 데 수표를 남발합니다. 어머니는 옆에서 돈을 세고 있습니다.

전교 1등하는 친구가 사색의 좀비가 된 것은 간단합니다. 사장이 "공포의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매뉴얼이죠. 그 친구에게 <전국 석차>를 들이대면 됩니다. 학교가 1500여 개가 되는데, 그 중에서 1명씩만 추려도 그 학생은 전국에서 1500등이 됩니다. 서울대 입학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국에서 잘 하는 친구의 내신성적과 이런 저런 실적표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모범답안지>인데, 이런 모범답안지를 소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널렸다고 말하면 학생은 사색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팔 다리 다 잘리는 신세가 됩니다. 아주 순식간에 학생의 자긍심은 산산히 무너집니다. 이 학생에게는 약간의 오만함만 눌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색의 좀비가 되고 나면 값비싼 강좌(강의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에 다급하게 등록을 합니다.

이런 행태를 1년 넘게 지켜보면서 나는 영혼이 개먹어들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어떻게든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회사 저 회사 전전하다가 영혼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포의 언어"입니다. 나는 내 자식에게 "공포의 언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알려주기 싫습니다. 역사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그 언어가 사실은 아버지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도록 세상을 "이성의 언어"로 바꿔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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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만일까요? 이런 세상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왜 세상은 이다지도 가혹한 것일까 생각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도 되구요.
 






 

네티즌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미디어악법 저지 헌법재판소 청원>이 3만2천명에 달했습니다.

청원의 특성상 10만이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100만을 돌파할 교두보를 마련하게 됩니다

10만까지 가기는 어려워도, 10만에서 100만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의 장기집권 음모인 미디어악법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국민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려주고,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많이 알려주세요.블로그 파워로 한나라당 미디어악법 음모를 응징해줍시다!

 

네이버, 다음, 티스토리 블로그, 다음 카페의 순서로 청원 위젯을 다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위젯은 다음 아고라 청원게시판 하단에 있습니다. (링크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 거기서 블로그 종류와 카페에 위젯달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청원 위젯 달기>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 다음 위젯뱅크에서 네이버를 선택하면 바로 네이버 로그인 화면이 나옵니다. 로그인을 하시면 자동으로 설정창이 뜹니다.

 

 

 

 

▲ 네이버 로그인 이후에 <위젯사용설정>을 클릭하면 청원 위젯을 넣을 수 있는 화면이 나타납니다.

 

 

 

▲ 설정을 하면 <아고라청원>이라는 위젯이 나타납니다. 이를 드래그해서 목 좋은 곳에 위치시키면 바로 청원 위젯이 내 블로그에 반영됩니다.

 

 

 

 

짠~~~! 네이버 블로그에 <헌법재판소 청원 위젯> 올리기 성공입니다!!!

 

 

 

 

 

<다음 블로그에 청원 위젯 달기>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 다음 블로그도 네이버 블로그와 방식이 비슷합니다. <내 블로그 가기>를 누르면 설정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다음 블로그 상단의 <위젯 세트>를 보면 바로 서명 위젯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아래에 작게 표시된 숫자 중 <2쪽>을 클릭하시면 <서명합니다>라는 위젯이 보입니다.

 

 

 

▲ 이것으로 끝이 아니에요!!! <서명합니다>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설정창이 나오는데 <수정> 버튼을 클릭합니다. 설정에서 헌법재판소 위젯으로 맞춰주면 됩니다.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 <확인>을 누르고 나서 오른쪽 상단에 <적용>을 누르면~!~~

 

 

 

 

 

 

▲ 다음 블로그에도 <헌법재판소 청원 위젯> 탑재 성공!!!!!!!!

 

 

<티스토리 블로그에 청원 위젯 달기>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자 티스토리 블로그 차례입니다. 다음에서 티스토리를 인수해서 방법이 어렵지 않습니다. <티스토리>를 선택하고 <퍼가기>를 클릭하면 설정화면이 뜹니다. 이 때 <지금 적용하기>를 클릭해서 티스토리 관리자모드로 이동하세요.

 

 

 

▲ <플러그인> 화면을 보면 퍼가기했던 청원 위젯이 뜬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클릭하세요~~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 <플러그인> 설정이 끝나면 그 옆에 <스킨>설정을 해야 합니다. <스킨>에 마우스를 갖다 대고 <사이드바 설정>을 클릭합니다.

 

 

 

 

<아고라청원>을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괜찮은 위치에 올리면 설정 끝!!!

 

 

 

▲ 티스토리 블로그에도 <헌법재판소 청원 위젯> 탑재 성공!!!!!!

 

 

<다음 카페에 청원 위젯 달기> 

 

 

자 이제 하이라이트인 다음 카페에 위젯달기 방법입니다.

 

★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 맨 처음의 화면인 위젯뱅크에서 다음 카페를 선택해서 <퍼가기>를 클릭하세요.

 

 

 

카페명과 청원ID 설정하기를 꼭 맞춰주셔야 합니다. 청원아이디는 반드시 <77354>로 써주세요. 다른 번호로 쓰면 엉뚱한 청원위젯이 만들어집니다.

 

 

 

▲ 자~ 이제 카페로 이동합니다!

 

 

 

 

▲ 오른쪽 하단에 '위젯'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쪽수를 <1쪽>으로 맞춰주시면 <아고라청원>이 보입니다. 

 

 

 

▲ <아고라청원> 위젯의 위치를 정해주시면 됩니다. 마우스로 끌어다가 잘 보이는 곳에 놓아주세요. 

 

 

 

 

▲ 다음 카페에도 <헌법재판소 청원 위젯> 탑재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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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기자의 트위터(twitter)에 놀러 갔다가 의미심장한 글을 봤습니다.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3일째.... 넘 힘들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 더위도 밉지만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 서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은 정말 싫다.."


정말 사람을 힘빠지게 하는 것은 불볕 더위에 서서 현장을 지켜야 하는 고단함이 아닐지 모릅니다.
공권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이 휘두르는 곤봉과 물대포가 아닌지 모릅니다.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하는 행동이 사람을 김 빠지고 힘들게 만듭니다.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까지 힘을 쏙 빼놓습니다.

일상을 함께 지낼 동료가 혹시 유사시에 나의 등에 칼을 꽂는다고 생각하기만 한다면,
그에게 의지하거나 신뢰를 줄 수 있을까요??
옆 동료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면 사회 전체에 불신이 만연하게 돼 정말 피곤해질 것 같습니다.



▲ 사진자료 : 미디어충청

쌍용차 사측이 노조원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마치 지옥에서 악마가 보낸 문자 같네요. 온통 증오로 가득한 문자를 보니 어떻게 인간이, 아니 어제까지 함께 웃으며 일하던 동료가 동료에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

 "한때는 같은 직장을 다니던 동료였는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다"
(쌍용차 노조원 가족의 인터뷰 일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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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8-0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문자가 섬뜩하네요.
결국은 끈끈한 동료애 마저 갈라놓았군요.

꼬마요정 2009-08-0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스러운데요.. 납량특집이라도 찍나요.. 정말 그냥 납량특집이면 좋겠습니다.
나쁜 놈들은 따로 있는데, 동료들끼리 저렇게 해야 하는지...
이번 상황에 단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것 뿐인데, 언제 그 자리에 있게 될 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웃기다는 표현 하나로 요약되는군요..
 






여성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여성들이 한켠에서 눈치를 보면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여성들이 담배에 대한 일종의 기피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피를 없앤 것은 바로 '미디어'의 힘이라고 합니다.
"홍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버네이즈라는 사람은 히틀러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미국에서 상업 광고와 정치적 설득이라는 분야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담배' 때문이었습니다.

1920년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심리 분석가들을 면담한 결과,
여성들은 담배를 남근, 혹은 남성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담배가 아무래도 여성에게는 적절치 않다는 편견이 생겼다는 것이죠.

그래서 버네이즈는 이런 편견을 깨고 담배를 여성들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한 가지 계책을 마련합니다.
그는 일단의 여성들을 고용해 여성의 참정권을 외치는 시위대를 꾸밉니다.
그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뉴욕 5번가를 행진하던 도중, 사진 기자들 앞에서 담배르 피워 물고
그것을 '자유의 횃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전략은 그대로 적중해 여성들의 담배에 대한 거부가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광고의 기초적인 전략이지만,
무서운 것은 이것이  미디어와 정치와 결합돼
"동의를 제조"하는 상황까지 가는 점입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이 대중들에게 왜곡된 메시지를 보내거나 의도적으로 심리를 조작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면, 사회의 공공선은 물론 상식이 여지없이 파괴돼 버리겠죠.
어릴 적에 아무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을 텐데,
우리들의 유년시절은 그토록 지독한 반공소년소녀가 돼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미디어의 힘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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