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질병의 잠재력과 가공할 만한 위력


질병이나 고통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자극을 준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공포'의 대상이다. 정치적 선동가들이 '암세포' 같은 병을 비유하고, 히틀러가 전체주의를 강요하면서 대수술 같은 처방을 비유로 든 것은 병이 주는 공포의 은유를 알기 때문이다. 질병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데, 수술이라는 더욱 강력한 고통을 통해서 삶을 유지하느냐, 더 큰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질병이 안내하는 죽음의 길로 가느냐라는 두 개의 선택지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들 부시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했던 앨 고어는 <이성의 위기>(중앙books)에서 공포가 이성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공포와 이성은 모두 인간을 행동으로 이끄는 강력한 동인이 되지만 권력자는 '공포'에 유혹을 받는다.

한편 질병의 상태는 그 자체로 인간을 고양시킨다. <은유로서의 질병>(이후)이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내 평생의 의문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나의 경우 '열정'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그것은 오랜 질병 상태를 통해서 고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사로 보는 질병(고통)과 열정의 상관관계

비록 신생아라고 할지라도 질병에 오래도록 둘러싸여 있다면 성숙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목숨을 건 싸움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생아와 유아기 동안에만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맞았다. 부모님은 세 번이나 각서를 썼다. "아기가 죽어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당시로서는 일상적인 각서라고 한다. 그리고 내 옆에 언제나 '삽'을 준비하셨다. 내일 당장 하늘나라로 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명은 급성폐렴, 임파성 결핵, 동맥절단 등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과다한 항생제를 쓴 탓에 신생아 때 머리가 홀랑 다 벗겨졌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땜통'이라는 어감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던지 내 유년시절의 상처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아 있다. 무서운 질병들로 인해 나의 체질과 성격은 스무살이 될 때까지 완전히 주눅들어 있었다.

감기에만 걸려도 꼬박 두 달간 병원에 다녔다. 병원에서 <보물섬>이라는 어린이 만화잡지를 즐겨 봤는데, 의사 선생님이 부를 때마다 <보물섬>에게 "다음에 병원오면 또 봐야지"하고 말을 걸곤 했다. 병원에 오는 패턴이 5일장처럼 지속되다 보니 연속성이 생긴 것이다.

그 당시 얼마나 민감해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그때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딜레마가 하나 있었다. "만약 지옥에서 누군가 엄마의 목숨과 1,000명의 목숨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였다. 어린 나이에 왜 이 문제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엄마의 목숨을, 때로는 1,000명의 목숨을 선택하며 마음속으로 괴로워했다.

"폐병은 자네처럼 멋진 시를 쓰는 사람들을 특히 좋아하는 병이라네..."(시인 셸리가 키츠를 위로하며)
나는 계속 기침을 내뱉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침 때문에 내 모습이 추해지기는커녕, 내게 매우 잘 어울리는 우수 어린 분위기가 생겼다. (마리 바쉬커체프)

도스또옙스끼는 평생 간질에 시달렸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들이 질병이나 고통과 직접 관계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를 연구한 수많은 비평가들은 '간질'이라는 키워드가 도스또옙스끼라는 인물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서양에서 '벼락'이 치면 엎드려서 하늘에 죄를 비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질병'에 걸리면 역시 엎드려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신에게 용서를 비는 풍습이 있었다. 질병으로 통해서 신이 인간의 잘못을 꾸짖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32년 동안 질병 상태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거의 없었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합친다면 아마 모든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을 때, 어떤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매우 이상해하면서도 다른 사람에 비해 무척 행복해해하고 괜히 고마워했던 기억이 많이 나아 있다.

오장육부가 다 안 좋고, 왼쪽 팔은 오십견 걸린 것처럼 아프고 치아는 씹는 것을 두려워한다. 눈은 예전부터 안 좋아 안경을 썼다. 왼쪽 다리는 수술 때문에 걸음걸이에서 묘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오장육부 신체기관 마디마디 중에서 괜찮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부모에게 받은 건강복도 없을 뿐더러 신생아 때 죽음의 문턱을 넘어오면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질병 마디마디, 고통 순간순간마다 내 감정은 고양되었고 내면은 거의 여성에 가까울만큼 섬세해졌다.


질병에 시달리는 고통과 견뎌내는 고통의 어마어마한 차이

그 사망자의 수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많고, 별다른 치료도 먹혀들지 않은 주요한 질병일수록 그 질병은 무수한 의미들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다. (88쪽)

질병과 고통이 인간에게 주는 자극이 엄청나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질병의 비유는 단련되거나 악용될 것이다. 하지만 질병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님은 시민들을 향한 감사 인사에서 "제 남편은 평생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히틀러의 독일 국민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좋은 비교 대상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통은 하나의 시험이기도 했다. 불의에 타협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고통에 처해지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모함과 저주의 고통에 시달렸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런 고통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사실 질병과 인간의 관계에서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히틀러의 독일 국민들은 고통에 시달렸고 고통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제시한 허무맹랑하고 위험천만한 수술방식을 지지했다. 애꿎은 독일국민 탓할 것이 아니라 작년의 대한민국 국민만 하더라도 정체모를 고통을 없애주는 만병통치약 '뉴타운 처방약'에 열광해 한나라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병이 환상이 되고 약장사의 영업 대상이 될 때 불행한 운명과 만난다.

나는 신념적으로 병과 고통은 일종의 메시지를 머금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 때로는 문제를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란다.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려 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고 한다. 심지어는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약물을 먹고 자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런 태도가 바로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 스캇 팩 박사, <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 일부


고통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자에게는 최고의 재앙이 뒤따르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그 메시지를 얻으려는 자들은 한 단계 성장한다. 사실 수전 손택이 이 책을 통해서 던지려는 메시지도 이것이다.

손택은 자신의 책이 에이즈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에이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를 다룬 책-그러니까, 에이즈를 다룬 또 다른 책이 아니라, 그저 에이즈를 주요 사례로 들고 있는 책"이라고 설명해 줬다. - 부록, 수전 손택과의 대화 일부(243)

질병에 관한 주제선별도 그렇고 이를 통해 추구한 메시지도 그렇고, 영감을 주는 작가의 특징은 어떤 주제로 출발하건 간에 인간의 주요한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질병이라는 주제어가 생뚱맞았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 주제가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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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8-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도 질병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미화되는지를 깨닫고 정말 놀랐어요. 그때부터 생명을 담보한 고통보다도 고통이 주는 실루엣을 그린 문학작품을 경계하게 된것 같아요. 리뷰 잘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9-08-30 20:12   좋아요 0 | URL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책은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통을 제대로 그린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대체로 고통은 판매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린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한 분향 의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이런 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 서울광장 추모를 못 드렸는데,
그분의 고향인 전라도에서 헌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주 21일부터 23일까지의 일정으로 여수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여수에는 대형 전광판에 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추모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경건했습니다.





아침이라 조문객이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헌화와 조문을 마치고 나서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저도 눈시울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저들끼리 뛰어놀았지만,
그 현장에 있는 것이 큰 체험일 것입니다.
저도 얼마 전 사촌형이 돌아가셨을 때 사촌형의 어린 딸이 또래 친척들과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조문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향소에서 아이들을 보는 기분이 남달랐습니다.




차라리 국민장이었으면 나았을 것을...

국장이라 그런지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조기가 개양돼 있었습니다.
여수에 사는 지인들이랑 이야기를 하던 차에 "국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행안부에서 장의보고를 할 때 국민장을 기정사실화하자 아고라 등 네티즌 사이에서 국장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의 과업과 위상, 특히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를 들어 '짧은 국장'으로 결정했습니다.

국장은 장의에 관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여수의 예만 들어도,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간에는 시민성금이 6,000만원 이상 걷혔다고 합니다. 장의를 다 하고 나서도 돈이 많이 남아 노무현 재단에 기부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화에서부터 영정사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손으로 꾸미던 국민의 장이었던 반면,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공무원들이 주축이 되고 국가비용으로 부담해서 그런지 시민들의 참여가 전만 같지 못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거 당시 "국장"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국민장"을 치러서 국민의 품과 돈을 보태 치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한줄기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수의 섬마을에서 만난 김대중꽃 인동초

여수에는 섬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2개밖에 없는 해상국립공원이 여수에 걸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사도라는 곳에 갔습니다.

처음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상 2마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곳에는 공룡 발자국들이 무더기로 있었습니다.
주민들도 해초를 캐면서 그거이 공룡 발자국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공룡 발자국뿐만 아니라 공룡 바위도 있고 거북 바위도 있고, 갖가지 기암괴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더 행복한 것은 이곳이 인적이 드물어 보존상태가 최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외지인에게 행복할 뿐이겠죠.




설핏한 낙조햇살을 쬐고 있는 늙은 거북바위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얼굴의 주름과 등껍질이 선명해 마치 살아 있는 거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돌아가다가 "인동초"라는 꽃을 봤습니다. 실제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꽃 박사인 "실비단안개" 님이 이것이 인동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핏 보면 갯벌에 방치된 듯보이지만, 저 혼자 살아서 꽃을 피워낸 게 대견합니다.
위태롭게 길가에 피어 있지만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집념이 전해집니다.
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약 30년간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온갖 박해와 탄압을 받은 그는 스스로 “겨울을 견디고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술회한 것이 계기가 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여수의 명소라고 하는 사도지만, 기반 시설은 그야말로 '안습'이었습니다.
그 흔한 대중화장실 하나 없었습니다.



여수시와 사도가 야심차게 게 모양의 화장실을 건립했지만,
화장실 용수 공급이 여의치 않아 닫아놓은 실정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고향이 이렇게 낙후되었나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습니다.
34.6㎢나 되는 작지 않은 면적에 2100여명이 살지만 담배소매점은 고작 4군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다방은 구경할 수 없고 택시 2대와 소형버스 한대가 대중교통의 전부입니다. 게다가 전국 면단위 가운데 약국이 없는 곳은 하의도가 유일할 것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들은 권좌에 앉자마자 경상도를 서울로 만들려고 몹시나 애를 쓰면서도 전라도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 직에 올랐을 때 경상도를 후퇴시키고 전라도를 편애할 것이라는 악담을 하고 다녔고, 경상도에서 조직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마을을 '감시차'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영광이 있을 때나 영광이 없을 때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동초를 보고 나오지 않은 눈물이 방치된 게 화장실을 보면서 또 쏟아집니다.

논어에서 읽었던 증자의 임종 유지가 한자락 떠오릅니다. 전전긍긍하고 마치 살얼음판을 밟듯이 살아왔다는 말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증자가 병환이 깊어지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말하였다.
“<이불을 헤쳐>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戰戰(전전)하고 兢兢(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나는 <이 몸을 스스로 해칠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노라. 제자들아!”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논어 태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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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8-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글입니다.행여나 전라도만 끼고 돈다는 욕먹을까봐 굉장히 조심했지요.서글픈 역사였습니다.

승주나무 2009-08-29 00:3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 공감하셨다니 기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호남, 광주 시민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담뿍 느끼고 나니 이 또한 역사의 짓궂은 장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도 어쩌지 못할 것이 있었겠죠. 노무현 대통령도 어쩌지 못한 것이 있었던 것처럼...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82874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 구석구석 장면을 뽑아서 틈새논평을 만드시다.

딴지총수에게 3주간 특별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불쌍해서 두 주를 내리 만나주었다.
아직도 그 가르침을 다 채우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달아놓는 쉼표 하나 부사 한구절이
무척 정밀하다는 느낌이 들고,
대단한 내공이 몸에 와닿는다.

문정우 시사인 전 편집국장이 귀띔을 해준 바에 따르면
딴지총수는 글쓸 때 실에 수를 놓듯이 한다고 한다.
한줄 한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땀 한땀"인 게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틈새는 그나저나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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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많이 만나보고 강연회도 많이 쫓아다녀 보았습니다만,
가장 많이 남은 것은 자본론 강독할 때였습니다.
그날 분량의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발제도 하고,
요약도 해야 하는 강도 높은 공부가 기억도 많이 나고
생생한 느낌이 더합니다.

역시 품을 들여야 공부인 것이지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고민 많이 하지 않고 질러 버렸습니다.

우선 강좌에 있는 책들 상당수가 내가 읽은, 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책들이어서 책값 부담은 덜었고, '사회적 열공'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독서량과 공부량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간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이라서 나쁘지 않네요.
저를 위한 안배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치과를 바꿔야겠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가입해서 14만원인데,
그 중에서 몇 개는 기사 써서 한 5만원 선에서 부담을 나눠가져야겠네요.

혹시 저랑 "열공"하실 분 안 계신가요...
이제부터 강연책 독서모드로 들어갑니다^^


오마이뉴스 열공 강독회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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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1면 김대중 대통령 서거 기사

출근길에 신문 보며 눈물 펑펑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은 한 정치인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고인의 인생을 반추하고 추모객과 각계의 반응을 전하는 내용이지만, 눈물이 고이더니 신문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자동차 시세와 부동산 정보를 보고 있었고, 옆에 앉은 사람은 휴대폰으로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서러워서 더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다가 혹시 바보 같이 보일까봐 주위 눈치를 살폈지만, 오늘만큼은 내 마음껏 울고 싶은 마음에 소리도 내서 울었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상관없다. 오늘은 슬픈 날이니까.

대통령이 돌아간 것은 슬픈 일이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비통함은 컸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나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슬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들의 아버지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가 어부로 살았으니 어부의 비유를 들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부의 땀과 꿈을 실은 만선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만선을 실은 바다다. 
요즘 일본에서 건너 온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남해안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만선의 꿈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만선의 꿈이 날아간 바다에서는 울기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눈물을 쏟아낼 바다가 없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 중에서


나는 영웅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대인

 "김대중 씨가 죽고 나면 한국인들은 그때 가서야 그에게 정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도쿄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버나드 크리셔 씨가 남긴 말이다. 과연 우리는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대의 소시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이후 오로지 남북화해만을 위해서 대북특사로 가겠다고 간절히 요구했을 때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며 의지를 꺾은 것은 우리들이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고인을 위해서 꼭 남기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간절히 원했을 때도 말을 꺼낼 수조차 없게 한 것도 우리들이다.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나는 내가 한 일, 우리가 한 일,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했던 일을 알고 있다. 그것을 기록할 것이다. 기록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매래에 부끄러움을 전이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과거와 현재에게 충분히 부끄러럽다. 

한 달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분향소에 갈 수는 없고, 2009년에 일어난 일들을 차곡차곡 챙겨두었다가 머리가 깨면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2009년에는 시민들이 무능해서 애꿎은 영웅이 죽고 간악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영광을 차지했다고. 그리고 미래의 그 날에 간악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 '상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싸울 것이다. 

이 마음을 담아 얼굴 없는 시민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영전에 이 추도사를 바친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라며 정치와 관계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자들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저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 일부




다음 아고라에도 올렸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8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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