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 인간


한 컴퓨터로 여려 명이 메일함을 이용하면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컴퓨터를 주로 쓰는 사람은 로그아웃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메일을 열었을 때 사소한 비밀이 들킬 수도 있다. 문제는 잠시 그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도 로그아웃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그 컴퓨터는 몇 번의 주인을 바꾸며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한다. 만약 그게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집에서는 가족이라는 연극을, 학교에서는 학생이라는 연극을, 회사에서는 회사원이라는 연극을, 식당에 가면 손님이라는 연극을, 알바를 할 때는 알바생이라는 연극을 하다가 다시 나로 로그인할 수 있을까? 이것을 '노동'으로 옮기면 헤겔과 칸트 간의 유명한 논쟁이 있다. 헤겔은 자신의 24시간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투잡(two job) 쓰리잡을 해도 상관 없다고 한 반면, 칸트는 인간은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두잡만 해도 정체성의 큰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헤겔이 디지털파라면 칸트는 아날로그파이다. 쉽게 누구의 의견을 손들어주기 쉽지 않다. 이 주제를 카프카는 「상인」이라는 손바닥 소설로 이야기했다. 인간은 엔간해서는 멀티가 잘 안 된다. 뇌과학자들은 멀티플레이는 없다고 아예 단언한다. 뇌를 소모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카프카의 손바닥 소설 「상인」은 로그아웃과 로그인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자신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상인의 이야기다.


이제 어느 평일날 저녁 가게문이 닫히고, 갑자기 내 눈앞에 내 가게의 끊임없는 용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시간들을 보게 될 때면, 아침에 멀리 보내버렸던 흥분이 다시 되돌아오는 밀물처럼 내 마음속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에서 참지 못하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내 마음을 휩쓸어간다.

「상인」


하지만 상인은 그러한 기분을 살릴 수 없다. 마치 신기루 또는 꿈처럼 그런 감정을 가지고 출근하고 있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니 사무실 입구, 또는 지하철역이나 주차장 등 사무실에서 가까운 어디쯤에서부터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상인은 상인 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매우 낯설어 한다.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의 돈을 가지고 있고, 자신과 상관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을 한 계절 전에 예측해야 하는 일(시장 조사)은 언제나 낯설다.

「상인」


하루에도 열 번의 로그아웃/로그인과 열 번의 아바타 뒤집어쓰기를 하는 현대인의 기억은 짧아지지 않을 수 없다. (숏트/릴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



온전한 나로 되돌아오기 전에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는 끝내 온전한 나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온전한 나로 되돌아온 기억이 아득하기 때문에 이제는 온전하지 않은 내가 온전한 내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다. 온전하지 않은 나의 감정과 기억은 분열적일 수밖에 없고 간헐적일 수밖에 없다. 끊김현상이 잦은 음악처럼 간헐적 감수성은 짧지만 자극적인 감정을 원한다. 숏츠 또는 릴스가 점점 더 유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릴스 등 쇼트폼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네이버-카카오도 본격 참전한다는 동아일보 기사(2023.3.15)



긴 기억, 긴 이야기, 시간이 필요한 감정들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소설은 부커 상을 받았다는 단신으로 자극할 뿐이며, 유일한 긴 이야기는 '드라마'뿐이다. 드라마는 전형적인 소설의 응용이며 중간광고처럼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를 콕 찔러줘야 한다. 카프카 「상인」의 엘레베이터 긴 독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장면이 있기 전에 갑자기 상인은 자기가 홀로라는 것을 깨달았고, 엘리베이터에서도 혼자가 되고 화가 나서 이를 갈면서 외치는 것이다. 누구에게 외치는 것인지 역시 불분명하다. 엘리베이터를 아래층으로 내려보내고 초인종으로 누르고 나서 소녀가 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처음에 소녀는 딸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맞다. 상인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어떤 곳이라고 보는 게 합당한 것 같다. 혼자 있는 상황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소녀가 사는 곳은 어디일까? 상인은 왜 인사를 한 걸까?


「상인」은 자본주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인간의 분열적이고 간헐적 기억과 감정이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현상을 다뤘다. 독방에 갇히기 두려운 죄수처럼 홀로 있는 상황이 견딜 수 없는 현대인들은 같이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귀멸의 칼날의 루이가 조잡하게 긁어모은 가족처럼.


▲ 일본 애니 『귀멸의 칼날』 하현6 루이의 에피소드는 가장 슬픈 가족의 형태라는 점에서 현대 가족의 모습을 가장 잘 형상화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3-16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 드라마가 있는데 애써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회의가 들기도 하지. 솔직히 드라마도 보는데 꽤 시간 걸려.
요즘엔 영화도 20분짜리 만든다고 하더군.
90분도 길다고.
난 며칠 전 <닥터 지바고> 소장용을 싸게 팔아서 언제고 봐야지 하는 걸
아예 사버렸거든. 그게 무려 3시간짜리야. 앉은 자리에서 다 볼 수는 업고
3, 4번에 잘라서 보려고. 이런 영화 요즘 같은 세상에 절대로 안 보지. ㅋㅋ

승주나무 2023-03-16 16: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드라마도 길어요. 그래서 지무비나 팅잘 같은 유투브 채널로 대신하기도 해요. ㅎㅎ

2023-03-16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23-03-16 16:28   좋아요 1 | URL
오~ 좋겠네요. 파란흙, 여유로움, 수양버들, 알지 님. 다 그리운 이름들이군요.
저는 제주도라 참석은 어려울 것 같아요.
반가운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쬐끔 약오르기는 해요 ㅎㅎㅎ
 

상인이 하는 일을 통해 철저히 도구화되고 자기 자신과 진정한 관계 맺기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자본주의 인간형의 모습을 꿰뚫는 구절이다

나는 몇 시간 전에 미리 결정을 내려야 하고, 심부름꾼의 기억력을 일깨워주어야 하고, 염려되는 실수를 미리 경고해야 되며, 그리고 한 계절에 벌써 다음 계절의 유행을 생각해내야만 하는데, 그것도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될 것이 아니고, 가까이하기 힘든 시골 주민들의 유행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만 오늘날이나 후에는 실제에서도 하나의 육신과 하나의 진짜 마리, 그러니까 손으로 치기 위한 이마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서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이 나의 집이 될 수 있는 단 한 사람 : 안회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가난이라고 하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으니 '빈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자. 더군다나 '만들어진 빈곤'이라니! 만들어진 빈곤이라고 하는 이유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만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산업예비군'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산업극빈층'이라고 해야 옳다.



숙소 가까이에 있는 어떤 술집에는 이런 아가씨도 있었다. 1년 내내 아침 일곱 시부터 자정까지 식사할 때는 제외하고는 앉아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춤추러 가자고 그녀에게 청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웃으며 자기는 몇 달 동안 길모퉁이도 돌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폐병 환자였는데 내가 파리를 떠날 즈음 죽고 말았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만약 그녀가 몇 달 동안 길모퉁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단 한 번씩만 돌아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건 좀 아니지'라고 자책하며 최소한의 여유를 누리고자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말 잔인할 정도로 이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수입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가들의 엄격한 원칙이었다.



논어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난에 관해서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단연 안회다. 안회는 공자보다 먼저 죽었는데, 논어에서는 공자가 꺼이꺼이 하면서 우는 장면이 나온다. 제자들의 만류에 공자는 "이 사람이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안회에 대한 정보가 워낙 적어서 신화적이라는 인상을 풍기는데, 안회에 대한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만을 토대로 말해보겠다. 공자의 어머니 이름은 안징재였다. 아버지 추숙흘이 별세했을 때는 공자 나이가 세 살배기에 불과했다. 추숙흘은 건강한 아들을 얻기 위해서 야합에 가까운 결혼, 그러니까 손녀뻘 여자와 결혼을 한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 가문의 후원을 받을 수 없었고 외가에 의존했는데 그것이 바로 안씨 가문이다. 공자와 안회는 외가 쪽으로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 안씨 가문은 전반적으로 가난했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아동노동을 해야 했는데, 그것만 봐도 안씨 가문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안회는 위생 문제로 사망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결국 빈곤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에 안회도 당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안회를 초인적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은 가난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말했다.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골목에 있는 것이 남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근심이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

『논어』, 「옹야」 편


가난을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것, 그리고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다는 게 구체저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가난이 나의 집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이것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명백한 모욕이 될 것이다. 이 세상 에너지의 원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뺏어먹으면서 부를 유지하지만 안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가난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을 가난에서 구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서 가난을 낭만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그들을 더 가난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가난을 미화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가난했다. 이 정도라고 하더라도 나는 안회가 가난의 대가, 빈곤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자들이 부와 권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동서양 할 것 없이 권력자나 부자라면 다 알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을 자신의 부와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지들이야말로 세상의 원천이자 세상의 목적이며 그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을 자신의 앎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은 안회처럼 "가난은 나의 집이다!"라고 선언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당장 가난하지 않더라도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고통에서 헤어나오게끔 하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조지 오웰은 똥침을 놓는다, 가난에 대한 고정관념을 향해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조지 오웰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1931년 4월 조지 오웰이 처음 문학적인 에세이로 게재한 르포르타주 <스파이크>(The Spike ; 부랑자(노숙자)를 위한 임시 무료 수용소를 일컫는 속어)를 발전시켜서 쓴 작품이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27장과 35장에 <스파이크>의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까 조지 오웰은 소설가보다는 르포르타주 작가로서 세상에 첫인사를 한 셈이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뿐 아니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등이 르포르타주 작품이며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르포르타주 작가로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잭 런던의 『밑바닥 사람들』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밑바닥 사람들』이 미국의 밑바닥을 조명한 데 비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영국과 프랑스의 밑바닥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지 오웰이 작품속에서 잭 런던과 그의 작품, 미국 빈곤 문화와 영국의 빈곤 문화에 대해서 논평하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논평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무착 중요한 메시지다.



미국인 부랑인을 다룬 잭 런던의 책에 등장하는 냉소적이고 의도적인 기생주의는 영국인의 성격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영국인은 빈곤에 대해 강한 죄의식을 가진 양심적인 민족이다. 보통의 영국인이 일부러 기생충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한 국민성이 실직을 했다고 결코 변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인즉 떠돌이란 실직한 영국인에 불과하고, 법률에 의해 방랑 생활을 강요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떠돌이 괴물이라는 관념은 사라진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한마디로 조지 오웰은 미국인을 유대인 다음으로 혐오한다. 프랑스 식당에서 미국인 손님을 만나면 등쳐먹으려고 인달이다. 등쳐먹으면서 돈을 버는 것도 있지만 스포츠처럼 즐기는 부분도 있다. 유럽인들이 미국인이게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도 있다. 한 돈 많은 미국인에게 시리얼과 마멀레이드를 제공하고 만찬의 식사값을 받는가 하면, 피츠버그에서 온 손님은 건포도와 스크램블드에, 코코아 저녁식사를 주고 원가절감을 했다. (232쪽)


앞서 인용한 것처럼 영국인에게 빈곤이라는 개념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상위계층 같은 고급 개념은 언감생심이고 범죄자로 보는 경우가 있었다. '노오력'을 하지 않아서 빈곤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했다. '사회적 빈곤'이라는 개념도 형성되기 훨씬 이전이었다. 빈곤이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사실, 빈곤을 산소호흡기로 자본주의가 연명한다는 사실은 그저 본능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은 보호소에서 멀쩡한 음식을 짬시키고 극빈자들에게는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피해자가 하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신도 다른 떠돌이와 마찬가지로 굶주리고 있지만, 그는 음식을 떠돌이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이유를 곧 간파했다. 그는 아주 엄중하게 나를 훈계했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죠."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런 곳을 너무 편하게 만들어놓으면 전국에 있는 인간쓰레기들은 모두 몰려들 겁니다. 그런 쓰레기들을 못 오게 하는 건 형편없는 음식뿐이고요. 여기 이 떠돌이들은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바로 그게 크게 잘못된 거죠. 그런 자들을 격려할 피룡는 없습니다. 그네들은 쓰레기예요." 나는 그가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려 했으나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그러고 보니 정리해고된 실업자가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던 『빌리 엘리어트』도 영국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똥침을 놓는다. 빈곤이 범죄라고 부르는 무지와 몰상식에 대해서, 빈곤한 자들은 노오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빈곤한 자들을 구제하고 새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단체 사람들을 향해서. 이를 논어적으로 해석하자면 '다원(多媛)'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무분별하게 이익을 추구하면 곳곳에서 원망이 들끓는다.

『논어』, 「이인」 편


조지 오웰이 만난 부랑아, 극빈자, 노숙자, 거리의 화가들은 주눅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난해진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함부로 하는 자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그 복수가 짜릿하다.


오르간이 미리 몇 번 우릉우릉하더니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그 즉시 신호라도 떨어진 것처럼 떠돌이들은 가장 난폭한 형태로 무례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서 그러한 광경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회랑 곳곳에서 예배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소란스럽게 지껄이고, 앞으로 몸을 내밀어 아래층 교인들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졌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약간의 완력을 써야 제지해야만 했다. 떠돌이들은 예배를 순전히 희극의 한 장면으로 취급했다. 정말, 몹시도 우스꽝스러운 예배였다. 느닷없이 '할렐루야!'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즉석기도를 끝도 없이 해댔다. 그래도 떠돌이들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회중에 늙은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부틀 형제인가 하는 이름이었다-그는 몇 차례 우리를 기도로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노인이 일어설 때마다 떠돌이들은 극장 안에서나 하는 발 구르기를 시작했다. 떠돌이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번 예배 때는 즉석기도를 25분이나 끌어서 마침내 목사가 그만하라고 중지시켰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부틀 형제가 일어서자 떠돌이 한 사람이 말했다. "절대 7분 이상은 안 돼!" 그 소리가 무척 커서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들었다. 얼마 안 가서 우리가 내는 소음이 목사의 설교 소리보다 훨씬 커졌다. 수시로 아래층에서 누군가가 화난 목소리로 "쉿!" 쇨를 내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예배를 우롱하기로 한 이상 우리를 저지할 재간은 없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 오웰은 프랑스에서는 보리스라는 러시아 친구와, 그리고 영국에서는 거리의 화가 보조라는 친구 등과 함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들을 밀착 취재한다. 스스로 따라지 인생이 되어서. 영국에서 빈곤에 대한 혐오가 어느 정도 해소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빈곤에 대한 혐오가 왕성하기에 빈곤 문화와 빈곤에 대한 이해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조지 오웰이 보수주의자인 점이 밑바닥 사람들의 문제와 사회적 빈곤의 문제를 건드리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동물농장』이 출간되자마자 거의 1등으로 한국에 번역된 것은 러시아와 북한 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키려는 미국 정보당국의 전략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조지 오웰의 정치적 스탠스를 잘 알 수 있다. 물론 조지 오웰이 반공 작가라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공산당에 허위를 직업적으로 비판했을 뿐이다. 러시아 팬클럽이 광범위했던 당시 영국에서 『동물농장』이 1인출판사나 영세출판사를 구해서 겨우 출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만약 조지 오웰이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었다면 가난에 어떤 관념을 형성했을 것이다. 만약 '사회적 빈곤'이라는 것이 지금도 중요한 의제라고 생각한다면 조지 오웰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발제자다.






 노동조합의 의뢰를 받아 위건 탄광에서 직접 광부 일을 하면서 쓴 책 <윅건 부두로 가는 길>



▲ 1937년 3월 쿠데타로부터 스페인 민주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하고 군사 교관을 하는 키다리 아저씨 조지 오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프카라면 '독신자의 불행'에 대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펠리체 바흐어와 두 번의 약혼과 두 번의 파혼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카프카는 결국 독신으로 살다 죽었지만 독신자로 살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독신자의 불행을 잘 알고, 평생 독신자의 불행에 대해서 생각한 카프카는 왜 독신자로 살아야 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글쓰는 자유를 위해서다. 펠리체 바흐어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카프카는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견적이 안 나왔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자유이자 생존인데 그것이 위협받을 바에는 차라리 독신자의 불행을 선택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카프카는 약혼을 두 번이나 했느냐 하는 것이다. 약혼을 깬 것보다 약혼을 한 것이 나는 더 궁금하다. 카프카는 가족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다. 형제 관계도 별로였다. 마음의 집이 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결혼생활과 글쓰기가 공존할 수 있다면 약간의 자유를 희생하면서도 해볼만 했을 것이다. 실제로 카프카는 결혼생활과 글쓰기 생활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제까지의 연구와 비평은 카프카의 파혼에 집중한 반면, 두 번의 약혼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도 '왜 가뒀느냐?'가 아니라 '왜 풀어줬느냐?'는 질문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유지태가 말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 파혼 원인은 아버지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아버지의 강력한 통제력 하에서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살았던 장남 카프카에게 결혼이란 것은 아버지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을 말할 것이다. 결혼은 펠리체 바우어와의 결합도 있지만, 카프카 집안과 펠리체 집안의 거래적 성격이 강하다면 글쓰기의 자유는 더욱 제약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댁의 구속'과 '처가의 구속'은 실체가 있는 구속이니까.

카프카는 마음의 집이 될 사람을 애타게 찾음과 동시에 독신자의 불행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독신자의 불행>에는 그런 감정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몸이 아프게 되면 자신의 침대 한구석에서 몇 주일씩이라도 텅 빈 방을 바라보아야 하고, 언제나 대문 앞에서 작별을 해야 할 뿐 한 번도 자신의 부인과 나란히 층계를 올라올 수 없고, 자신의 방안에 있는 앞문들은 단지 낯선 집안으로 통해 있을 뿐이며, 늘 한손에는 자신의 저녁거리를 들고 집으로 와야 하고, 낯선 아이들을 놀라워하며 바라보아야 하지만 "나에겐 아이들이 하나도 없구나"하고 줄곧 되풀이해서도 안 되며, 젊은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두 독신자들을 따라 외모와 태도를 꾸며 나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카프카 단편전집』, 「독신자의 불행」


카프카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독신주의자'라는 평가일 것이다. 위의 문장을 보면 독신주의자라는 말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약혼을 두 번이나 했다가 파혼을 하는 과정 역시 독신주의자로서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마도 카프카가 자신은 독신자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체념적으로 깨달으면서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고 덧붙인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카프카는 어쨌든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파혼이며 독신자의 길이다. 고통스러운 결단의 과정에서 카프카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상처투성이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글을 쓰는 카프카 자신이다.


다만 오늘날이나 후에는 실제에서도 하나의 육신과 하나의 진짜 머리, 그러니까 손으로 치기 위한 이마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서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느 말이다.

『카프카 단편전집』, 「독신자의 불행」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3-06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카프카 일기 멋모르고 도전했다가 깨갱댔는데...
경지가 느껴지는 글이군. 흠.

승주나무 2023-03-06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무슨 경지 씩이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