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언어생활을 마이크로스타일이 지배하게 된 이유는, 일부 비평가들의 주장과 달리 우리가 집단적으로 주의력결핍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이크로스타일은 문화적 쇠락의 징후가 아니다. 그저 경제학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은유의 경제학이다. 언어적 관심의 경제학 말이다.
- 마이크로스타일(13쪽)



죽간에 글을 팠던 시대와 모바일폰으로 트위터, 페이스북을 올리는 시대가 서로 상응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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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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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멋대로 나꼼수 분석 3부

잡스, 주커버그, 김어준은 미디어 신봉자





스티브 잡스는 쿨미디어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쿨미디어' '핫미디어'의 개념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언이 창안했는데, 그는 자신의 대작 <미디어의 이해>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뜨 거운 미디어란 단일한 감각을 "고밀도"로 확장시키는 미디어다. 여기서 고밀도란 데이터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한다. 사진은 시각적인 면에서 고밀도다. 반면 만화는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가 극히 적다는 점에서 저밀도다. 전화는 차가운 미디어, 혹은 저밀도의 미디어다. 왜냐하면 뒤에 주어지는 정보량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뜨거운 미디어는 이용자가 채워 넣거나 완성해야 할 게 별로 없다.
- <미디어의 이해>(커뮤니케이션출판사), 60쪽

아 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잡스가 혼신을 기울인 작업은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다. 소비자행태를 분석하고 반영했다. 그 결과 갓난아기도 쓸 수 있는 직관적인 UI가 탄생했다. 아이폰은 '쿨미디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참여로 완성되는 쿨미디어 그 자체다. 페이스북은 서드파티 업체가 놀 수 있는 앱 플랫폼을 제공해주고, 이용자들이 놀 수 있도록 친숙한 기능들과 UI를 제공한다.
특히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의 성장과정을 온전히 담아낸 포춘 지 전 기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의 주저 <페이스북 이펙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페이스북 사람들이 숭배하는 유명한 사회 철학자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은 1964년 자신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통일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지구를 통일시킬 수 있다고 예견했다.
- <페이스북 이펙트>(에이콘출판사), 490쪽

' 존나 씨바', '쫄지마' 같은 '구어체 김어준'과는 달리 기사를 검색해서 마주보는 '문어체 김어준'은 상당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김어준이 발언한 일련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그가 '미디어'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전달되지 않는 메시지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크게 외쳐도 독백일 뿐이다."
"전혀 다른 메시지 유통 채널의 구축이 가능한 물적 토대의 출현―딴지일보 때는 인터넷+PC였고 나꼼수는 인터넷+스마트폰+트위터―이란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나머지 디테일은 마이너하다."
- 오마이뉴스 인터뷰, 2011.11.11 "나꼼수와 'MB 멘토' 최시중의 대결... 승자는?"


김어준은 핫미디어를 쿨하게 사용하는 미디어 고수



▲ 미디어 이론의 전설이 된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 전공자는 아니다. 동양철학을 지독히 사랑하는 영문학자였다. 미디어를 전공하는 전문가에 따르면 엄 격한 사회과학 방법론(자연과학과 같은)이 주류를 이루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학계에서는 마셜 맥루언을 경계하고 무시하다가 최근 그에 대한 재발견, 재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잡스, 주커버그, 김어준은 맥루언의 신봉자다..라고 추정된다.

김 어준을 표현하는 3대 키워드는 딴지일보(인터넷), 나는 꼼수다(팟캐스트), 닥치고 정치(책)이다. 딴지일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핫미디어를 구사하고 있다. 딴지일보 역시 '김어준의 아이들'이 콘텐츠를 주로 쓴다는 점에서 제한성이 있다. 딴지일보보다는' 딴지일보 총수'가 김어준을 대변한다. '총수'란 간섭을 불허하는 절대 지위의 직함을 말한다. 삼성 이건희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김어준의 진정한 힘은 뜨거운 미디어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뜨거운 미디어를 '차갑게' 구사한다.

라디오는 뜨거운 미디어다. 자극의 강도를 높일수록, 라디오의 효과는 점점 더 높아진다.
- 마셜 맥루언, 위 책, 524

< 나는 꼼수다>는 아이폰이 만들어낸 팟캐스트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이지만 본질은 라디오다. 참여를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에 청취자가 직접 만든 음원을 집어넣고, '존나 씨바', '쫄지마' 같은 말들을 '냉각제'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닥치고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이라는 미디어는 문자를 쓰기 때문에 진정으로 뜨거운 미디어다. 이 또한 김어준 식대로 쿨하게 구사하고 있다.
<닥치고 정치>는 에세이 식이 아니라 방담 식이다. 인터뷰어 지승호와 김어준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구어체로 쓰여진 책'이다. 여기다가 김어준 트레이드마크인 걸쭉한 육두문자가 자주 등장하면서 "핫미디어를 쿨하게"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 김어준을 비교한 까닭은 이들이 모두 '미디어'의 관점으로 접근해 성공을 거둔 인물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많은 기획자들은 아직도 표피적인 차원, 또는 본능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디어적 접근은 이보다 두 계단 정도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미디어감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기획은 이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난 글>


"나는 꼼수다는 정통언론이다"
나꼼수 홈런의 비밀은 '원샷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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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

아룬다티 로이를 보면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이 깊게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불가촉천민에게 허락된 유일한 경전..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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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짧고 책은 길다

수능날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달려온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영화나 여행, 적당한 음주도 좋다.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과서를 벗어나 읽고 싶은 책들을 맘껏 읽는 것도 좋겠다.
책벌레들의 모임인 페이스북 소셜북스(http://www.facebook.com/socialbooks) 회원들이 수험생들이 수능 끝나고 읽을 만한 책들을 추천했다. 재밌는 책과 의미 있는 책을 적절히 섞었다. 크게 문학과 에세이(역사류)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문학의 재미와 힘을 듬뿍 얻다

   

 2000년 일본 나오키문학상을 받은 재일교포 2세 가네시로 카즈키의 작품으로, 조총련계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국적을 옮기고, 나중엔 일본학교에 진학하는 고등학생 스기하라의 연애담이다.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추천자는 "어차피 대학가면 또 학점이다 취업공부다 박터질텐데 그전에 상쾌통쾌한 시각의 소설을 읽고 현재를 즐기는 방법을 먼저 깨달았음해요 :)( Jinyu Chae 님)라고 추천이유를 설명했다.

동양철학과 철학 전반에 조예가 깊은 Woo Ju Chun 님은 조정래 <태백산맥>과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추천했는데 "모두 이 시대를 규정한 역사를 알게 함이고 개인의 주체성을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소개했다.

소셜북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 소설, 산문 1편씩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1편을 추천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를 평범한 작가에서 러시아의 천재 작가 타이틀을 거머쥐게 한 작품으로 귀족 출신의 여성과 하급 공무원의 연애편지 형식으로 그려진 사랑 이야기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는 여자주인공과 맹목적인 남자주인공의 온도차를 보면서 연애와 실연의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백석 시인은 우리 시인 중에서도 빼어난 시인인데, 우리말의 원형, 원시의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유년기를 다룬 시가 환상적이며 <여우난골족> 한편만 읽어도 감이 온다.
소설에서 백석 역할을 하는 작가가 김유정이다. 해학의 힘을 강력히 보여주고, 역시 우리말의 맛을 잘 살린 작품들이 일품이다. <떡> 같은 작품은 웃다가 배꼽이 빠질 정도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양가의 감정을 동시에 던져준다. 특히 요즘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풍자의 전통을 볼 수 있다. 연암 박지원-김유정-이문구-성석제-나꼼수(시간순) 이렇게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젊음을 응원하는 산문을 읽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두 말이 필요없는 책이다. 추천자 이호진 님은 "이제 곧 대학생이 될 수험생들이 읽고 무엇인가 느꼈으면 하는 책입니다."라고 추천이유를 남겼다.
그리고 서점가 베스트셀러 1,2위를 다투는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도 추천을 받았다. 추천자 원종관 님은 "좀 선정적이긴 하지만...;; 내 삶과 정치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소셜북스는 <김수영 산문전집>을 추천했다. 피천득, 한용운 같은 빼어난 산문가가 많지만 모순투성이 세상의 명령에 순응하기보다는 이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려면 김수영 산문집을 읽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 역시 추천을 받았는데, 요새 유행하는 “쫄지마!!”를 잘 표현해주는 책이다. 주눅들지 않고 기발하고 발칙하게 젊음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고, 보는 것만으로 속이 시원해진다.
고전 작품 중에서는 사마천의 <사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추천했다. 특히 삼국지만 읽은 사람이 사마천 <사기>를 읽으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든다.  분들에게는 하늘이 쪼개지는 느낌을 줄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가 어떤 사람들, 어떤 사건들로 이 이루어졌는지 소설보다 재밌게 그려져 있고 인생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 사기에 버금가는 서양 역사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일품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비교하는 비교열전 형식인으로서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 서양사와 서양철학에 기반해 있다면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강력한 열쇠가 될 것이다.

수능이 끝나서 극장, 술집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서점으로 가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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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1-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능 끝낸 우리아들은 며칠째 컴터 앞에만 붙어 있더니, 오늘 온 '닥치고 정치'를 집어들고 열독중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제가 아들에게 강추한 책인데, 아직 들여다보지 않아요.
엄마가 추천하는 이유가 뻔히 보이기 때문일까요?^^

두 아드님은 많이 컷겠네요, 큰아들은 재롱과 악동의 경계에 있을까요? 궁금...

승주나무 2011-11-17 12:5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갑습니다. 그래도 닥치고 정치를 읽어주니 대견하네요. 큰아들보다 작은아들이 악동의 경계에 먼저 가 있습니다 ㅋㅋ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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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진보논쟁, 2D에서 3D로 진화하다


진보, '말의 잔치'가 시작되다


MB정권의 실정으로 진보진영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때에 맞춰 진보진영에서 '진보' 키워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히 "나는 진보다" 논쟁으로 불릴 만하다. 썩 반가운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소출되는 담론들을 보면 만족할 만한 게 없다. 치열하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 망한다. (보수의 인식 수준은 논의할 게 못 된다)

진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최근 언급한 사람은 조국-오연호(책 <진보집권플랜>), 김규항, 진중권(이하, 한겨레신문 지면), 김어준(책 <닥치고 정치>)이다. 진보진영의 내로라 하는 '이빨'들이다. (상세한 소개 생략)

최근 김어준은 책 <닥치고 정치> 등을 통해 "나는 진보다" 대열에 합류했다. 김어준은 이 한마디로 이전의 진보 논쟁을 정리해버렸다.

"이건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정서적 직관의 영역이지. 내가 자꾸 '느낌'을 이야기하는 이유야. 대중정치는 사실 이 영역에서 결정되거든. 진보 진영에선 정치가 논리의 영역에서 결정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 <닥치고 정치>(푸른숲) 전자책 29쪽

이전의 진보 논쟁은 관념이거나 논리이거나, 최소한 정서적 직관을 감안하지 않은 2D의 차원에서 전개되었고, 김어준은 3D 수준으로 논의를 끌어올렸다. 2D와 3D를 구분하는 기준은 김수영 시인의 시론이 던져준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김수영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 민음사(1975)

여기서 시작(詩作)을 '진보'로 바꿔 써도 좋다. 2D까지는 밑단부터 차곡 차곡 쌓아가는 이른바 '선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3D부터는 쌓는 순간 전체가 되고 영원이 되는 '비선형적 직관'의 영역이다. 이것은 내 주장이 아니다. 이미 4세기 전인 17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럽에서 줄곧 논의되던 방식이다.

참된 원리들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명제들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때로는 직관에 의해 또 때로는 연역에 의해 인식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참된 원리 자체에 대해서는 직관에 의해서만, 반면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결론들은 연역에 의해서만 인식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데카르트,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1628년)

스 피노자 인식의 3단계(에티카) : 첫째, 감각은 영혼의 표상을 초래한다. 이것은 원인에 관한 통찰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에 대한 관계를 밝히지 못하므로 불완전한 인식이다. 둘째, 이성은 보편 개념을 가지고 표상을 가다듬는 것, 즉 표상의 원인을 발견하여 더욱 높은 단계의 인식에 도달한다. 셋째, 실체에 대한 인식은 직관적인 인식에서 도달된다. (1662~1665)


김어준의 사바나 가설에 대한 교정

김어준은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를 사바나의 원시 세계로 데리고 간다. 포식자나 자연재해 등 예측할 수 없는 공포에 대해 살고자 하는 욕망의 자세에서 좌와 우가 구분된다는 논리다. 여기서 '우'는 공포에 지배당한 자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계관이라고 하기 뭣하다는 게 김어준의 입장이다. 그래서 우를 '겁먹은 동물'에 비유한다. 다만, 보수에게 '세계관'이라고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이다. 자존심 없는 우는 역시 동물일 뿐이다.
이에 반해 좌는 공포의 구조(시스템)를 상대하며 모든 사람이 부담할 수 있도록 논리의 칼로 잘게 잘라낸다. 그래서 반응보다는 '세계관'으로 불릴만 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밀림 전체를 상대하면서 오만에 빠져 대중들로부터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사바나 가설'이라고 부르겠다.

김어준의 사바나 가설은 보수에 대한 노골적인 폄하와 함께 진보에 대한 과도한 상대우위이다. 솔직히 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이 이야기하는 우와 좌의 시점은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불공정하기까지 하다. '18세기 우'와 '21세기 좌'를 비교할 수 있을까? 좌가 공포를 구조화하는 인식에 도달했다면 우 역시 그러한 인식에 도달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게임이 되지 않을까? 역사는 좌와 우의 끊임없는 경쟁이니까. 이보다 더 과학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앞발, 즉 두 손에 여유가 생겼다. 직립보행 자체도 전체 구조의 변화다. 내게는 27개월 된 민준이와 9개월 된 민서 두 아기가 있다. 민서가 7개월 될 때만 해도 형 민준이는 '민서야, 까꿍~!' 하면서 아기 대접을 해줬다. 그런데 민서가 9개월이 되자 밥상을 짚고 일어섰다. 이때부터 민서에 대한 동생 대접이 끝났다. 민준이는 민서 위에 올라타며 친구처럼 놀았다. 이것이 세계의 일반적인 변화다.

사바나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남은 손으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즉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협업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좌와 우가 구분되지 않는다. 마치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좌와 우가 구분없는 것처럼. 잉여물이 생기고 부족이 생기면서 권력이 등장한다. 지배가 시작되고 전쟁이 시작되고 제국이 생겨난다. 이 지점에서 '우'가 탄생한다. 우는 높은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이며, 좌는 낮은 피해대중을 생각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의지이다. 동양에서 우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공자, 맹자, 한비자 등이며, 좌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노자와 장자, 묵자 등이다. 좌와 우의 관심사는 '낮은 곳', 즉 대중이지만 각자 대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한나라당이 '복지'를 '시혜'로 해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D 진보논쟁을 좀 더 자세히

김어준을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진보 논쟁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보수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이다. 이를 박차고 뛰쳐나와야 한다. 즉, "진보, 보수"라는 '구분'이 아니라 "진보-보수"라는 '섞임' 속에서만 진정한 진보 논쟁이 가능하다. 동양의 음양 이론의 거울로 보면 진보와 보수를 바라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섞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는 양(陽), 어머니는 음(陰)이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양 자식이 음이 된다. 그러니 내가 없을 때는 어머니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존경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이 보여주는 음양이론의 특징은 음과 양이 서로 위치를 바꾼다는 데 있다. 이것은 주역의 일반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 간에도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한마디로 총괄해서 정리하자면 이념은 서구의 것이되, 그걸 수행하고 주장하는 방식은 여전히 성리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 <닥치고 정치> 전자책 593쪽)

요컨대 진보는 보수의 안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고, 보수 역시 진보의 안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다. 한 국가를 지휘하는 장군의 전투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장군 본인도 아니고 부하들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백성도 아니고 오직 적병과 적장이다. 적과의 교전 속에서만 장수의 능력이 표현되는 것이니까. 음양이론 중 하나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하늘은 틀이 있으면 죽고, 땅은 틀이 없으면 죽는데, 사람은 하늘과 땅이 없으면 죽는다."

결국 남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성, 보수가 아니라 보수성, 그 비율의 차이뿐이다. 이 비율 중 진보성이 51% 이상이면 '진보'라 표현하며, 진보성이 49% 이하라면 '보수'라고 표현한다.

음양이론뿐 아니라 서양철학으로도 진보와 보수를 설명할 수 있다. 플라톤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유명한 그림인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1483~1520)의 "아테네학당"(School of Athens, 1510~11)을 직관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그림 참조) 플라톤(왼쪽)이 들고 있는 책은 "티마이오스Timaeus"로 추상적, 논리적 철학으로서의 정신적 이데아를 상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가 들고 있는 책은"니코마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으로서 자연과 생물의 관찰을 중시하는 현상적, 경험적 철학을 상징한다.
이 그림의 포인트는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다.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 그 자체다. 즉,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 안에서 의미를 가지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구분하는 순간 철학은 공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플라톤이 의미를 획득했고, 플라톤이 있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을 구분하고 읽어버리면 서양철학의 첫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안에서 플라톤을 읽고, 플라톤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어야 한다.


김어준을 읽을 때 주의사항

김어준은 '직관'의 언어를 사용한 근래 보기 드문 진보논객이다. 김어준의 '정서적 직관'은 충분히 대중적이며 '스타일돋는다'. 하지만 반쪽의 정서, 반쪽의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성-보수성, 음-양처럼 모든 것은 짝을 이룰 때 의미가 분명해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성성-여성성이 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모든 인간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남성성-여성성을 가지고 있다. 이 비율에 따라서 시대정신이 결정된다.

김어준은 자칭 타칭 '마초'다. 남성성 과잉이다. 김어준의 '말'을 대할 때 정서적 쾌감과 동시에 '정서적 반감'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은 김어준의 '타고난 애티튜드'이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김어준을 읽을 때 이 부분에 주의를 해야 한다.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보들레르(프랑스 시인)

우리들의 시대정신은 '아빠 멘토'가 아니라 '엄마 멘토'다. 아빠 멘토는 김어준처럼 한수 가르치고 명령하는 방식이다. 엄마 멘토는 상처를 보듬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세심하게 설명을 해준다. 물론 김어준의 말에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지만, 김어준이 보듬어주지 못하는 상처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부분에 유의하며 '나꼼수'와 '닥치고 정치'를 권한다.

김어준은 '개념찬 꼰대'로서 '구시대와 새 시대를 연결짓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구시대의 연결고리를 증명하는 간단한 방법은 나꼼수 방송을 듣고나 <닥치고 정치>를 읽은 후에 질문을 하나 던져보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

이것은 김어준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새시대의 연결고리'들이 찾아야 한다. 김어준은 다만
몰상식이 진흙탕처럼 흐르는 시대를 증언하는 데 머무른다.

사람에 대한 최대의 예의는 제대로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김어준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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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2011-11-0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아 근데 님 글은 재미없다. 길고. 공부하신 분 같은데 뭐해. 읽히지가 않는데.

승주나무 2011-11-08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짧고 재밌게 못쓰겠네요. 닥치고 기다리삼.. 그런 글 읽으려면..

junmin 2011-12-1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한 방이군요...닥치고 기다리삼 !!!!..잘 읽었습니다.특히, 좌와우의 명쾌한 비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11-12-2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블로그 배경은 환삼덩굴같은데 환삼넝쿨과 승주나무와 관련성이 있나해서요.

713266153 2012-01-0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책을 못 읽었지만.. 승주나무님의 해석이 좋게 다가오네요.. 참, 숨은 고수들 많군요..

승주나무 2012-0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nmin 님//제가 부족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댓글을 받은 것 자체가 완전무결하지 않고 말이 길다는 뜻도 되니까요.^^;
터닝포인트 님//블로그 배경은 알라딘에 있는 거 그냥 썼어요. 시시한 결론이어서 지송~~^^

승주나무 2012-0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님 님//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보다 엄청난 고수가 너무 많아서 명함 내밀기도 좀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