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회근 선생의 알기 쉬운 논어강의 - 상
남회근 지음, 채책 기록. 송찬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독후감이라고 쓰니 참 감회가 새롭다. 이것을 번역해서 뜻을 알아낸 것은 최근이었는데 '읽은 후의 감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남회근 선생의 논어강의라는 책은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비싸다. 특히 나처럼 별다른 생계도 없는 학생에게 삼만여원의 돈은 형성하기 힘들다. 게다가 상하권을 구입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내게 있어서는 하나의 발견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미친척하고 하권을 주문했다. 그리고 하권이 도착하기 전에 냉큼 상권에 대한 독후감을 써버릴테다.

글을 쓰는 건 아무리 봐도 힘들다. 방금 전까지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을 좀 봤는데 지금 내 눈 사정이 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을 더 좁혀서 거의 졸린 눈을 하고 쓰고 있다. 작가들이 참 존경스러울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하나의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러나 원작에 촛점이 실리느냐, 독자에게 촛점이 실리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전문직종이 아닌 바에야 대체로 쓰는 타입은 후자가 될 것인데 그것도 아직 숙성하지는 않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그러한데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을 다 비워내야 속이 풀린다. 그것은 시적 거리감을 위해서도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고 감상으로 도배를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럴 거면 차라리 창작을 하는 편이 수월하겠다. 다른 책을 보고 혹은 작품을 보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기 지론이나 문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더 솔직한 이유는 전일에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그리스 철학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다. 많은 자료들 앞에 선뜻 집필을 하기가 머뭇거려지지만 빨리 내가 선정한 자료들을 훑어보고 칼을 뽑아야겠다. 아! 오늘도 서론이 너무 길다.

사실 논어에 관한 에세이라면 논어 자체의 내용만 두고라고 유익한 일이다. 덕분에 나는 논어와 한 노인의 이야기 두 맛을 한꺼번에 보았다. 그전에는 그래도 논어책 한두번은 읽은 경력으로 자신있게 책을 쥐었다.(참고로 이 책을 읽기 전에 논어 전편을 어느 텍스트라도 잡고 봐두면 도움이 크다) 그러나 이전에 내가 익혔던 해석의 방침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말았다. 대개 이러한 경우에 남는 것은 허무한 공허나 독단의 기만 정도인데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회근이라는 파격적 해석자는 모습을 살짝 감추고 건강한 원시의 깔끔함이 남겨졌다. (공맹 유학을 원시 유학이라고도 한다) 확실히 노인의 노련함이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남회근이라는 노인이 구름을 걷어가고 남은 뚜렷한 자리는 사실 한마디 뿐이다. 그것은 '경으로 경을 이해한다'는 이른바 '以經解經'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 대개 머리말을 보는 타입이다. 머리말에 들어가기 전에 흑백사진으로 남회근 선생의 근영이 나왔는데, 일자눈썹에다 코든 머리든 손가락이든 볼이든 둥글둥글하다. 웃는 표정도 그렇다. 그 웃는 표정은 머리말에서 나에게 한가지 암시를 주었다. 그것은 마지막 대목이었는데

이 책이름을 '별재別裁'라고 정한 것도 이번의 강의가 정통유가의 정학 밖에서 다른 체재로ㅎ 이루어진 단지 개인적인 견해일 뿐, 학술적인 부류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일을 논할 만한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판 머리말 중에서

별재라는 것은 아마 우리말로 별책부록 정도가 아닐까 한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눈요기용 책이라는 의미가 문맥에 보인다. 왜 정통유학에 깊이 통하고 불교 도교에다가 대학 교수까지 하여 논문이라면 달인이 되었을텐데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이 의문은 책을 선택한 후에 자세히 느낀 것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남선생이 문화와 민족의 근대사적 아픔을 온몸으로 쓰리도록 감당했고 누구보다 사랑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에 가득 차 있다는 억측으로 본다면 이는 분명히 이전 학문적 접근에 대한 회의일 것 같았다. (이것에 대해 여친은 좀처럼 수긍할 수 없다는 눈치다) 그리고 어투를 존댓말로 써 내려가는 것도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존댓말로 써 내려간다는 말은 내가 생각할 때 상당한 경지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리고 차분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실타래를 풀어나가듯이 말 속에서 같이 돌면서 풀어나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크리슈나무르티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종전에 원문과 주석을 두루두루 보던 습관을 버리고 주석을 일단 버려둘 것을 제안한다틀렸다고 하기 일쑤다. 이 글을 읽고 과거 문화와 선인들을 내가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그것은 특히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그 원문을 앞뒤좌우로 잘 살펴보라고 한다. 뭐가 보이지 않느냐 하면서. 사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위치나 존재를 너무 자의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정리해내지 못하면 그것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선현들을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다루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더욱 가려내기 어렵다.

문화와 기술이 언제부터 결별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혹은 결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둘은 서로 뜻이 맞지 않았는지 기술은 앞만 보고 내달렸고 문화는 가만히 멈춰 버린 것 같다. 선현들과 이전문화의 성실치 못한 재판(再版)에 불과한 우리는 실마리도 알지 못하고 사장시켜버린 고귀한 유산들이 얼마나 많은가. 축성술, 건축술, 종을 만드는 기술, 도자기 만드는 기술 등 많은 기술은 선현의 업적을 따라가지 못할 뿐더러 제대로 모방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마침 최근에 내가 다니는 서당의 훈장님이 말씀하셨는데, 이전에 편집 기술은 정말 오묘하고 세밀하다고 한다. 그 때도 당연히 '영원한 맹자'를 보고 있었는데, 맹자는 권도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하면서 권도에 대해서 여러 방향으로 말하고 있었다. 맹자도 이러할진대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 격인 논어는 어떠하겠는가? 한학에 정통한 학자들도 한문의 문장은 모두 맹자나 논어에서 나온다고 한다. 당시로 말하면 세계제일의 인재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논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지금 각국의 석학들이 성경을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회근 선생은 논어의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잘된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 문맥적 상호작용을 염두해 두면서 한권의 책을 서술해 나갔다. 역사가는 하나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카아가 말하듯이 한 사상에 대한 해석도 관점으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관점이 있으면 그에 대한 비약도 따르기 마련이다. 간간히 그런 부분이 없지 않지만 노인의 숙련된 이야기로 충분히 커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이전의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 중국이 한창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때는 많은 중국인들이 세계 정세에 궤를 같이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에 휩싸였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상을 부수고 그의 토대 위에 세워진 문화를 논리적, 비논리적으로 비판하려고 달려들었지만 화무십일홍처럼 얼마 못가 다시 복원하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비판에 가세하던 서양에서 공자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들의 시대가 그들에게 준 너무나 무거운 짐을 어떻게든 감당하려는 절박한 발상에서 시작한 사건이었다고 저자는 그들을 조용히 두둔해주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최근 김교수라는 사람이 공자를 죽이고자 나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읽어보았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가 진정으로 공자를 죽이기를, 그렇지 못한다면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정당하게 죽이려는 시도라도 남겼으면 했다. 진정한 질문이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서점에서 그 책을 보았는데 커버 색깔이 시원한 바다출판사 색으로 바뀌었고 판과 쇄를 수십번 하였더랬다. 씁쓸한 미소 외에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다. '당신은 공자를 죽였다기 보다 쉽게 열정을 보이는 국민의 기질을 이용해서 돈을 챙긴 거요?'라는 질문을 견딜 수 있는지 마음속으로 물음을 가져본다.
논어강의의 저자는 공자의 해석자들이 공자를 의곡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이 사태에 직면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물론 내 생각에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라고 본다. 좀 더 다른 무엇이 요구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자가 영원에 닿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논어텍스트는 대개 주자집주일텐데 주자주 정도를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존경하는 율곡선생의 구결까지 때로는 버려야 한다는 대가가 따른다. 한문에 달려 있는 토씨를 구결이라고 한느데, 그것은 옛부터 율곡 선생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구결이 바뀌면 문장 성분도 바뀌고 해석 자체가 바뀌게 된다. 이것이 저자가 보이는 두번째 억측의 여지도 되지만 그는 자신의 해석의 확실한 근거들을 들고 있다. 가끔 쉽게 넘어가 버리기는 하지만 다른 해석들처럼 빙산을 절단기로 깎아서 공허하게 하는 형세가 아니라 새로운 빙산으로 예전의 빙산을 쳐서 대치시키는 형세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보고서 내가 얻은 소득이라면 숨겨졌던 문맥이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경전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故의 수수께끼'에 말려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내용 뒤에 '때문에'라는 말이 나오면 분명히 인과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이전에 논어를 읽을 때 공자는 어쩔 때는 유동적이며 인정세태에 두루 통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어떤 때는 완고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공자의 말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어려움에 특히 배려를 하고 문맥을 살리고 공자의 본의를 복원하는데 거의 모든 페이지를 썼다. 덕분에 나는 공자의 올바른 모델에 접근하는 상을 머릿속에 갖게 되었고, 한 이십년 정도 젊은 공자를 모시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소득이다.

좀더 본격적인 글을 써서 이 글이 나타내고 있는 특징들을 살펴보고 싶지만 글의 성격도 성격이고, 그렇게 할 시간이 없기도 하기 때문에 예고편으로 하나의 대목만 귀뜸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논어의 제일 첫편은 학이편으로 '배움'이라는 의미를 알려주는 중요한 장이다. 이 때의 '학'이라는 개념은 좀 더 확장을 해야 하는 개념이다. 나는 독서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서 더욱 넓은 개념으로 가고자 하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이 '학'의 개념은 심오하기도 해서 지금까지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나름대로 그것을 해석해 본다면 '하나하나 체험하고 직접 깨우쳐 가면서 얻은 진정한 지식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하는 '현명한 자를 벗으로 두어 자기의 잘못을 고쳐나가고 제힘껏 부모를 모시고 온몸으로 주인을 섬기고 벗과 교제할 때는 신의 있게 말을 한다면 비록 글공부는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고 나는 반드시 학문을 한다고 평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학문정신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자로가 공자에게 '선생님, 백성들이 있고 사직이 있는데 꼭 독서를 해야만 학문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은 대목에서는 분명히 차이점이 드러난다. 학이시습지운운 하는 장 다음에는 바로 유자가 효제를 강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효제와 학을 연결시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효제는 가족들에 대한 윤리를 강조하고 있는 덕목이며 뿐만 아니라 독특하게 벗과의 교제도 강조한다. 가족은 가깝게는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 있는데 어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잘 아껴서 과로사에 이르거나 상하지 말하야 하며 형제들과의 우애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안다. 세상에 가족에 대해서 부끄러운 점이 없거나 잘못이 없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다. 그 점으로 따지면 아직 나는 '학' 자의 한 획도 긋지 못했다. 항상 누나에게는 성급하고 애티나는 말을 쉽게 내뱉고 내몸을 관리하지 못해 벌써 열번이 넘는 전신마취를 하여 부모의 속을 태웠다. 이것은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대응하는 것의 몇백배는 더 힘든 경지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과거 중국의 국가 개념은 하나의 대가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가는 그러한 관계에 주목한 학파다. '가'는 할아방(할아버지)의 할아방의 할아방 중에 왕할아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씨를 낳고 또 그 씨가 씨를 낳아서 형성된 국가이다. 때문에 왕실이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효제라는 것은 나라 전체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게다가 친구와의 관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면 사회관계까지 효가 걸쳐 있는 셈이다. 그것이 바로 '인'과 '학'의 근본이자 시작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일단 본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한다.

논어의 백미는 담박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논어를 읽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려구 한다. 안연이 죽어서 공자가 통곡할 때는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공자가 제자들과 산책을 가거나 조용하게 한마디 하는 대목에서는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 답답하고 눈물이 콱 쏟아질 것 같다. 그 이유를 한번 고민해봐야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하권을 보고나서 논어를 마음속에서나마 정리해야겠다.

사람의 뼈대를 형성하는 것은 고전이지만 고전에 침잠하면 그만큼 고전적인 사람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전적인 부분을 유머로 승화시켜서 하나의 장점을 갖지 못한다면 어딜 가서 사랑받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요즘 나의 큰 숙제이다.



*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胃之學矣 -學而 8
**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 先進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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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페인트의 주위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정치적 참여가 가장 활발한 사람은 ‘신상품사업개발단장’이다. 신상품사업개발단의 창립 이념은 ‘이제는 물질보다 정신을 팔자’이다. 정신을 팔다니, 정신을 팔아서 무슨 수익을 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정신은 어떻게 파는 것인가. 처음에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쇼페인트의 친구들은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지만, 그보다 기대가 더하다.

이들의 특징은 특이하지만 유용하고, 기발하지만 평범한 데서 출발한다.

 

신상품단장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아주 평범한 사연에서 출발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켰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밥을 시켰는데, 거기가 먼저 밥이 나왔다. 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맛있게 먹겠습니다'라든지 '감사합니다' 등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단장은 아주 순간적으로 물질과 화폐의 교환으로 대표되는 경제 논리가 일순간 '고마운 감정'으로 인해 무너진 현장을 포착했다. 그렇다. 물질의 교환과, 고마움의 표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이다. 곧이어 단장의 상에도 밥이 왔다. 그도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환히 웃으며, '맛있게 드세요. 김치 이번에 담가서 맛이 잘 들었을 거에요' 하고 한마디 붙이는 것이었다. 이 순간 받은 '정감의 세례'를 통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술회하였는데, 참 시시하기도 하다. 습관보다 미미한 정감이 거대한 관계론을 낳을 수 있는가. 아무튼 그 '관계론'은 이만큼 커진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와 만나며 요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완결된 텍스트 운동’이 바로 신상품개발사업단의 작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완결된 텍스트 운동’이란 몇몇 인식 있는 신문사에서부터 시작한 운동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텍스트인 신문에서부터 한글맞춤법을 준수해 학생이나 일반인들, 외국인들이 한국어, 띄어쓰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 운동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는 ‘모든 신문 텍스트의 한국어 문법 교재화’이다. 이 운동은 상당한 반향을 얻고 있다. 외국에서도 이 운동을 벤치마킹해서 자국 언어 사용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멀게만 느껴졌던 한글맞춤법이 보편화되었음은 물론, 한글맞춤법이 한글의 특징을 잘 구현한 작품이라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다. 한글의 어떤 성분과 어떤 성분이 만나면 유독 특이한 화학 현상을 일으키는가도 사람들은 잘 알게 되었고, 거의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맞춤법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이것이 시작된 계기는 신상품개발사업단에서 출판한 ‘신문맞춤법’이라는 책이 화제를 일으키면서부터이다. 신문맞춤법은 신문사가 맞춤법을 좀처럼 지키지 않아, 국민들의 언어 생활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신문맞춤법 총칙 제2항이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 2항을 교묘하게 변형해 ‘문장의 각 단어는 붙여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붙여 씀’도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신문맞춤법은 이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신문사 측은 지면 배분 관계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해 왔으나, 조사 결과 띄어쓰기를 엄격히 적용해도 지면의 1%를 초과하지 않으며, 그것도 각 기사의 폭을 줄이거나, 남은 여백을 이용하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눈에 띄는 조항은 ‘단위명사는 절대로 띄어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오백 원 같은 것들은 의미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거의 모든 문장을 '붙여쓰기'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문맞춤법은 띄어쓰기 조항을 특히 어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업단의 노력으로 몇몇 대형 신문사를 시작으로 교열부를 강화하기 시작하여, 각 신문사는 맞춤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금은 교재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사를 써내고 있다. 이 운동을 온몸으로 겪은 한 기자는 ‘맞춤법이 마치 반드시 지켜야 할 법률인 것처럼 생각돼 반발심도 생겼으나, 우리말을 절묘히 표현한 작품임을 알게 되고 나서 우리말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다른 기자는 ‘맞춤법 공부가 문법 능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논리력도 상당히 강화시켜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이 사업단이 ‘악학대사전(惡學大事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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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님의 "과거에서 찾아낸 현재와 미래"

저도 이 책 덕분에 '이주의 리뷰'에 뽑혔는데, 클리오 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전체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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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님의 "부당한 것에 맞설 수 있는 용기"

이 책은 저도 선배의 추천으로 일찌감치 읽어보았습니다. 나치 시대에 맞선 사람들에 대한 책으로 '부분과 전체'와 함께 보니 좋았습니다. 정면적 저항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에서 의연히 저항하는 것은 좀 더 현실에 맞는 선택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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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비젠탈의 질문


두어 주일 전이다. 아침신문을 대강 훑다가 시몬 비젠탈이라는 유대인의 별세 기사에 눈이 딱 멈췄다. 마침 그가 쓴 ‘해바라기’(박중서 옮김. 뜨인돌 펴냄)를 사서 읽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구나 싶었다. 애초에 생소했던 이름이 새삼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책 내용은 해바라기의 서정성과 동떨어진 전율로 참담하다. 그렇다면 향년 97세로 삶을 마치는 순간의 당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문은 오스트리아 빈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미진한 느낌을 어쩔 수 없다. ‘나치 사냥’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던 탓이다.

나치 사냥꾼 비젠탈이 겪었던 고뇌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건축가 생활을 하던 비젠탈은 1941년 나치수용소로 끌려가 3년을 보냈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89명의 일가친척을 잃고 아내와 단둘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것으로 얘기가 끝났다면 이번 책을 포함한 몇몇 나치 고발 서적의 저자로만 알려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때부터 파천황의 대사업을 마음먹었다. 30여 명의 다른 집단수용소 출신 생존자들과 함께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설립해서, 1,100여 나치 전범들을 법정에 줄줄이 세운 것이다.

수십 년이 걸렸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안네 프랑크를 체포한 경찰관이, 이들의 촘촘하고 집요한 색출 활동에 차례차례 걸려들었다. 비젠탈은 네덜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정부의 훈장과, 미국 의회가 주는 황금 메달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기려 세운 시몬 비젠탈 센터는 또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성명도 발표(2001년)했다. “주변국 침략에 대한 사실이 충분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나무랐다.

그러나 ‘해바라기’의 내면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이런 게 아니다. 기왕에 보아 온, 차라리 지루하기까지한 그때 그 이야기와는 다른 질문을 중심화제로 밀고 나간다. 회개와 용서와 침묵에 대한 응답을 줄창 물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시물레이션 아닌 실제상황을 곧바로 들이대면서 말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기신기신 수용소 생활을 견디던 비젠탈은 어느 날 ‘임종실’에서 얼굴과 온몸을 붕대로 감은 나치스 친위대원의 참회를 듣는다. 죽기 직전의 스물한 살짜리 SS대원은 고백한다. 2백명 가량의 유대 어린이와 여자와 노인을 3층 가옥에 가두고 불을 질러 총질하는 살인행위에 자기도 가담했노라고. 어린애의 눈을 손으로 가린 채 2층에서 뛰어내린 부부를 떠올리며 읍소한다.

“저는 마음 편히 죽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누구든지 유대인을 만나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쉽지 않으리라는 건 압니다만 당신이 대답해주지 않으면 저는 결코 마음 편히 죽지 못할겁니다.”

하지만 비젠탈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선다. 고뇌끝에 대답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자초지종을 들은 수용소 단짝들의 의견 또한 갈렸다. ‘자네가 그를 용서했다면, 자네는 평생 자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이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면 모를까,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말할 수조차 없는 사치’라는 소리도 나왔다.

그래서 그는 책을 통해 호소했을 터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를 고민해달라고.

가해자 참회 있어야, 피해자 용서를 고뇌하거늘

1976년 미국에서 ‘해바라기’가 처음 나온 후로, 아닌게아니라 신학자와 윤리 지도자, 또는 작가들의 답변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해서 20년 후에 그런 견해를 모아 개정판을 다시 냈는데, 한국에서는 이번 여름에야 번역 출간된 모양이다.

여러 나라 여러 계층 인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바 아니지만, 한 독자로서의 나 역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유대민족이 살았던 잔인무도한 세월을 십분 인정하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저 같은 군림은 무엇인가. 독일은 과거의 죄상 앞에 무릎을 꿇었거늘, 일본은 한사코 잡아뗀다. 오히려 은혜를 입혔다고 떵떵거린다. 그게 짧은 홀로코스트와 ‘야금야금 36년’의 차이인가.

‘비젠탈딜레마’는 필경 용서의 문제다. 때문에 과거사로 논란이 그칠 날 없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지난 날의 숱한 양민 학살과 ‘광주’의 예에서 경험했듯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용서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참회는 없다. 그것이 지금껏 겪은 한국적 과거사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망각은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지만, 용서는 의지의 문제라고 시몬 비젠탈은 술회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고난을 당한 장본인 뿐이라는 지적을 곁들여 슬픈 글쓰기의 끝을 맺고 있다.


글쓴이 / 최일남
· 소설가
·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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