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문화혁명, 한류(韓流)와 일류(日流)


얼마전 일본의 후지TV와 인터뷰를 했다. TV는 원체 소질이 없어 잘 나서지를 않는 편인데 그 취지가 흥미로워 수락했다. 요지는 이렇다. 왜 일본소설이 한국소설시장을 석권하고 있는가?

리포터는 야마다 아까네(山田あかね)라는 40대 후반의 일본 여성작가다. 그녀는 TV쪽에서 오래 일했다. 1995년에 등단해서 작년에 첫 장편 『베이비 샤워』를 출간했다. 그런데 자신의 처녀장편을 번역하겠다는 한국쪽의 연락을 받고 너무나 놀랐다는 것이다.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 같은 유명작가라면 모를까 무명에 가까운 일본작가의 작품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한국의 사정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어 그 방면을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현재 한국에서 일본소설이 대유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차, 이 문제를 다루어 볼 필요에 직접 이렇게 나섰다, 대충 이런 얘기다.

통역을 맡은 북코스모스의 김수경씨도 거든다. 하루끼붐도 요즘은 옛날일이란다. 요즘 한국소설시장에서 일본소설은 오히려 젊은 작가의 새 작품들이 더욱 인기라는 얘기다. 김수경씨가 아는 여성작가가 있는데 그녀도 친구들이 자기 소설은 읽지도 않고 최근 유행하는 일본소설 이야기만 해서 난감해 한단다.

한국 소설계는 일류(日流)가

나도 내심 저으기 놀랐다. 일본소설을 비롯해 외국소설들이 한국소설시장에서 강세라는 것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 지경에 이를 줄은 몰랐던 터다. 뒤에 어느 자리에서 만난 탁석산씨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이 아는 한국문인의 상한은 김승옥(金承鈺), 그 이후 한국문학에 대해서는 까막눈 신세란다. 김승옥도 알고 싶어 안다기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덕분인데, 학생들이 즐겨 찾아 읽는 작품들은 거의 일본소설이라니,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한류(韓流)로 자리를 잡고 있는 사이, 한국소설계에는 일류(日流)가 채를 잡고 있는 것이다.

아다시피 최근 출판계, 특히 문학분야는 전반적으로 독자의 격감을 실감하고 있다. 문학출판의 중심은 소설이다. 때로는 최영미(崔英美)처럼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문학시장을 주도해 온 것은 소설이다. 그런데 한국소설을 변함없이 지지해 온 독자들이 지금 급속히 분해중인 것이다. 그 동안 이 현상을 영상언어의 발달에서 원인을 찾아왔다. 영화 드라마 그리고 IT의 발달로 독서시장이 위축일로를 걸어왔던 게 사실이다. 이처럼 독서층이 얇아져 가는 추세 속에 그 남은 파이를 일본소설이 점유해 들어가고 있다니 한국소설은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왜 한국의 젊은 독자들은 일본의 젊은 소설에 매료되고 있는가? 이는 명백히 한국소설에 대한 거절이다. 독자들은 한국소설의 무엇에 대해 반란하고 있는가?

이념과잉의 80년대 소설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 이후 한국의 작가들은 탈사회성으로 탈주하였다. 서사의 붕괴 속에 소설의 재미가 적어졌다. 일본소설의 강세를 90년대 이후 가속화한 탈사회적 한국소설에 대한 부정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일본소설은 한국보다 한술 더 뜬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은 한계가 있다. 가라따니 고오진(柄谷行人)이 하루끼를 ‘학생운동세대가 흘러든 패션’이라고 비판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일본소설은 일찍이 고도산업사회 안으로 포섭되었다. 그렇다면 최근 한국독자들의 일본소설 경도는 사회성이 강한 한국소설의 전통 전체에 대한 부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를 재구축할 호기 아닐까

한국의 일류와 일본의 한류는 어쩌면 함께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한류가 전통적인 일본근대문화 전체에 대한 일본인의 거절이듯이 한국의 일류에도 한국의 현대문학 전체에 대한 강렬한 부정이 숨쉬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한류까지 고려하면 현재 동아시아에는 일종의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가, 차단되었던 이웃나라 문화 또는 문학에 경도로 분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진행되는 동아시아 문화혁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새로운 접근이 절실하다.

동아시아에서 드물게도 문화교차 현상이 착종되고 있는 경향을 제대로 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각 국민문화를 쇄신하면서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를 재구축할 호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꿈도 꾸게 된다.


글쓴이 / 최원식
· 인하대 문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 서울대 국문학박사
· 민족문학사학회 공동대표
· 저서 : 한국의 민족문학론
           한국 근대소설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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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조건: 스웨덴의 경우


어려운 이웃들에게 복지 혜택을 늘리고, 경쟁에서 뒤떨어진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 안전망을 더 넓고 튼튼하게 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무엇이 바람직한 복지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 안정망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에 있을 뿐이다.

사회 복지 지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나라는 복지병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을 잃기도 했으나 어떤 나라는 성장과 복지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장론자들은 전자의 경험을 강조하고, 분배론자들은 후자의 성공담을 내세운다. 분배론자들이 성공적 복지 국가로 흔히 예시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복지비 지출을 많이 하면서도 안정적 성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웨덴의 경험을 살필 때 유의해야 할 것은 복지비 지출의 구조와 재원조달의 원천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에 중점을 둔 복지비 지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복지비는 실업수당, 기초 생계비 지원, 노인연금 등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경우는 다르다. 스웨덴 복지 지출의 중점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에 있다. 공교육, 직업 전환에 필요한 재훈련이나 실업자에 대한 직업 알선, 공중 보건, 공공 유아원 시설 등에 대한 지출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스웨덴 복지 정책의 특징이다. 이러한 지출은 노동생산성과 노동의 이동성, 여성의 노동 참여율 등을 제고시킴으로써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는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지출을 위한 비용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스웨덴의 세입구조를 보면 근로소득세, 소비세 등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법인소득, 배당, 이자, 재산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세금을 부담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입구조는 세금이 기업활동에 주는 부담을 가볍게 해주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세입구조 또한 성장지향형인 셈이다.

이러한 복지비 지출 내용과 세입 구조에 대해서 스웨덴의 노조(LO)는 반대의사를 표시했고 지배 정당인 사회민주당(SAP) 또한 불만스러워 했다. 그러나 해외로의 자본 이탈(Capital Flight)이 가져올 경제에 대한 파괴적 영향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한 스웨덴 국민들은 이러한 선택을 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했다.

일하는 사람에 더 큰 혜택을 주는 생산적 복지

70년대에 스웨덴의 노조연맹은 기업 이윤에 대해 중과세해서 그 세입 자금으로 근로소득자 기금(Wage-earner's Fund)을 조성하여 기업들을 인수하려는 시도를 했을 정도로 강했다. 또한 스웨덴의 장기 집권당은 사회주의적 성향의 사회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비 지출이나 세입구조를 설정함에 있어서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노는 사람보다는 일하는 사람에 더 큰 혜택을 주는 내용을 선택했다. 바로 이것이 생산적 복지 아닐까.

스웨덴 정부는 대기업들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 황금주를 인정하고 있고, 소유 집중을 문제 삼고 있지도 않다. 대기업이 국유지를 활용하여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하는 것을 허용했고, 그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그 단지에 공과대학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래도 특혜논란은 없다. 스웨덴의 은행들 또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구하는데 적극적이다. 이것이 복지국가 스웨덴의 사회 분위기이다.

성장지향형 복지제도와 기업지원형 사회 분위기가 성장과 복지의 병행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이러한 원동력의 정착 없이 성장과 복지의 병행은 어렵다고 보며,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집권 세력의 정책 이데올로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글쓴이 / 김광두
· 서강대 교수 (경제학)
· 미국 하와이 주립대 경제학박사
·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 국제경제학회 회장(현) 
· (사)국가경쟁력 연구원 원장(현) 
· 저서: <대외지향형 경제의 정책과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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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워야 뭇 사람을 얻는다

 

유교주의자였던 다산은 최종 목표로 언제나 요순주공(堯舜周孔)의 삶과 정치철학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욕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오학론(五學論)」이라는 논문을 읽어보면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에 가장 큰 위세를 지닌 성리학·술수학·문장학·훈고학·과거학 등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요순과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철학에는 접근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던 것입니다.

공자는 고위직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거나 예(禮)를 차리면서 공경스럽게 하지 않으면 무얼 볼 게 있겠느냐 하였고, “너그러우면 뭇 사람을 얻는다”(寬則得衆)라는 훌륭한 격언을 남겼습니다. 다산은 이런 공자의 말씀에 감동하면서 고위공직자들이 실천해야 할 인품으로 ‘너그러움(寬)’을 큰 덕목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목민심서』 율기(律己) 칙궁(飭躬)조)

일반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오르면 ‘매서움(猛)’을 숭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훌륭한 정사(政事)를 펼 수 없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경(詩經)』에 나온, “그대의 위의(威儀)를 공경히 하여 유가(柔嘉)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敬爾威儀 無不柔嘉)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인용합니다. 유(柔)는 편안함(安)의 뜻이고 가(嘉)는 착하다(善)는 뜻으로 유순하고 착한 모습이 용맹스러운 모습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관(寬)과 유가(柔嘉)를 풀이하면서 마음은 너그럽게, 용모나 모습은 유가하게 지녀야지 사나웁거나 매서운 모습을 지닌다고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아랫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한 것입니다. 

남의 잘못에 혹독한 비판이나 퍼붓고, 법집행에 가혹함만 보인다고 세상이 제대로 가지 않는다는 경고를 내렸습니다. 오히려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고, 유순하고 착한 태도와 모습일 때 더 큰 위력으로 잘못을 바로 잡고 악한 짓을 못하게 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구속시켜야만 직성이 풀리고 관용을 베풀면 비난하는 요즘의 세태에서 『목민심서』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에 너그러움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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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씀이의 절약

 

『목민심서』는 고위 공직자가 청백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씀씀이를 절약한다는 한자어는 ‘절용(節用)’입니다. 절용의 중요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봅시다. “목민관 노릇을 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롭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야하고, 청렴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일은 목민관의 첫째가는 임무다.”(善爲牧者必慈 欲慈者必廉 欲廉者必約 節用者 牧之首務)<節用條>

이런 원칙을 천명한 다산은 어떻게 해야 씀씀이를 절약할 수 있고, 절약해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도 제대로 밝혀줍니다. “재물을 낭비하는 근본은 언제나 아내와 첩(妾)을 데리고 임지에 부임하고 자제(子弟)를 왕래하게 하며, 권세 있고 귀한 집안과 결탁하여 자주 오고가게 하며, 진귀한 보물들을 수집하기 좋아하는 일에서 생긴다”라고 하여 낭비의 요소를 줄이고 없애야만 절용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절약한다는 것은 한계를 두어 절제한다는 것이다. 한계를 두어 절제하는 데에는 반드시 법식(法式)이 있어야 한다. 법식이란 절용의 근본이다.” 사용할 재물의 한계와 정도를 정해 놓은 법식대로 재화를 사용해야만 절용이 가능하고, 절용만이 바른 목민관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의복과 음식은 검소한 것으로써 법식을 삼아야 한다. 조금만 법식을 넘어도 그 씀씀이에 절도가 없어져버린다.”(衣服飮食 以儉爲式 輕踰其式 斯其用無節矣) 이렇게 명확한 원칙을 정해놓고 세부적으로 법식을 열거했습니다. 의복은 성글고 검소한 것을 입도록 힘쓸 것이며, 아침저녁의 식사는 밥 한 그릇, 죽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장 한 종지(一飯一羹一齏一醬) 외에는 네 접시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식을 지키지 않고 어떻게 재물을 절약해서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조금 잘 산다고 지나치게 낭비가 심한 오늘의 세상, 다산의 절약정신에도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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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전이과정 밝혀졌다
입력: 2005년 12월 08일 22:55:02 : 3 : 0
 
암이 최초 발생 부위에서 신체의 다른 부위로 전이하는 방식이 규명됨에 따라 암의 전이를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코넬대 데이비드 라이든 박사 연구팀이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최신호(12월8일자)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암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제2종양 부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암세포는 직접 이동하기 며칠 전에 일종의 화학적 신호를 발산, 정상 골수세포를 ‘선발대’로 전이할 부위로 먼저 보내서 암세포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라이든 박사는 쥐의 피부에 폐암세포를 주입했지만 암세포가 폐로 직접 이동하기 며칠 전에 골수세포가 먼저 폐로 이동하는 것이 관찰됐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2차 종양 부위의 세포들은 끈끈이와 같은 피브로넥틴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특사’로 옮겨온 골수세포를 억류, 암세포가 서식할 ‘착륙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김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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