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황우석의 '입'이었다
고비마다 황 교수 이해 철저 대변... 진실 규명 앞장서 막아
텍스트만보기   특별취재팀(news)   
▲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발행하는 <조선노보> 768호
'황우석 사태' 보도에 대한 언론사들의 반성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도 노조를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 22일자 노보를 통해 황 교수 사건과 관련한 자사 보도를 점검했다. 조선노보는 "줄기세포는 없는 것 같다"는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발언이 나온 지난 15일 밤 편집국의 분위기가 "(2002년) 대선 개표가 끝난 직후처럼 침울했다"고 전했다.

또 "황우석에게 휘둘렸다"는 비판론과 "사과해선 안 된다"는 옹호론을 나란히 소개하면서 대체로 비판론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조선노보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방향은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를 못마땅해 하는 세력들은 분명 이를 계기로 공격 강도를 높일 것이므로 내부적 결속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자사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것 같지만 자성이 아닌 내부단합이라는 전혀 엉뚱한, 하지만 늘 조선일보가 그래왔던 대로 사익위주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

더욱이 '비판론'조차도 조선일보 보도의 문제점을 호도하고 있다. 조선노보가 소개한 내부 비판론은 "우리 신문의 보도태도는 심정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부분이 있다”는 정도다. 만약 그 정도의 편향성이라면 조선일보의 보도에서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이고 굳이 여기서 짚을 필요는 없다.

이번 사태에서 조선일보는 심리적 편향성의 오류에 빠진 정도가 아니라 사실추구를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저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조선일보가 터뜨린 수많은 특종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진실로 가는 길에 1차, 2차, 3차 바리케이드를 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대가로 애국적인 매체로 스스로를 부각시키려 했다.

지난 5일자 조선일보를 보자. 이 신문은 "황우석 교수팀이 MBC PD수첩의 '협박·회유 취재'에 시달리는 사이 일본이 줄기세포 관련 분야에서 또 다른 세계 최초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논문은 황 교수팀도 준비 중이었던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면서 마치 PD수첩이 황 박사팀의 발목을 잡아 일본에 선수를 빼앗긴 것처럼 보도했다.

<조선> 보도 편향성의 오류에 빠진 정도가 아니었다

▲ <조선일보>의 "'세계 첫 논문' 일에 선수 뺏겨"라는 제목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보도 배경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의 취재원은 황 박사팀에서 논문조작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 이 교수는 "우리가 10개를 했다면 일본팀은 5개를 한 수준"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저널에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최근 논란 때문에 손을 놓은 사이 일본이 좀 더 아래 단계의 저널에 발표해 김이 샜다"고 아쉬워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이 기사가 나가자 포털 사이트에서 '반 MBC'의 거센 광풍이 불었다.

조선일보가 지칭한 논문은 일본 오사카 부립대 연구팀이 자연교배로 얻은 수정란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며 지난달 16일 국제학술지 '분자생식 및 발달'(Molecular Reproduction and Development)에 게재한 논문(Isol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embryonic stem-like cells from canine blastocysts).

그러나 전세계 1천여개의 과학저널을 소개하는 '윌리인터사이언스'(www3.interscience.
wiley.com) 기사에 따르면, 이 논문은 이미 지난 5월 29일 제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분자생식 및 발달'은 8월 22일 이 논문을 채택했다.

MBC < PD수첩 >이 제보를 통해 황우석 박사의 난자매매 의혹 취재를 시작한 것은 지난 6월경이기 때문에 황 박사 팀이 < PD수첩 >의 '협박 취재'에 시달리기 전이다.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학술논문의 게재절차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쓸 수 없는 기사였고 논문의 진위논쟁을 황 박사팀에 대한 연구방해 논란으로 끌고가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족하다.

사흘 뒤인 지난 8일 조선일보는 또다른 '특종'을 낚아 올린다. "배아줄기세포 핵심 기술 보유자로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팀에 파견된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원 3명 중 일부 연구원의 미국 영주권 신청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이 신문은 "영주권 신청이 구체화되어 받아들여질 경우 이들의 체미 기간이 장기화되고, 이 과정에서 복제 기술의 유출이 현실화돼 한미 간 '기술 분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로 MBC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매국노' 수준으로 내려갔다.

기사가 그럴 듯했던 것이 황 교수팀 관계자뿐 아니라 국내 관계당국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 객관성을 더하고 있기 때문. 조선일보에 따르면 관계당국의 한 관계자도 "현재 미국에 파견된 세 연구원의 동향에 대해 면밀히 체크하고 있다"면서 "미 영주권 신청 움직임에 대해서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제인 더필드 피츠버그대 대변인의 말을 인용, 황우석 교수팀에서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 연구팀에 파견된 한국인 연구원 3명의 미국 체류 신분에는 변화가 없으며 대학측이 이들에 대한 영주권 신속 처리를 요청한 적도 없다고 보도했다.

더필드 대변인은 또 피츠버그대가 현지 한국계 법무법인을 통해 한국인 연구원들의 영주권 신청을 신속히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구의 보도가 맞는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학 측은 그들의 체류신분이 'J1' 비자라고 확인했다. 보통 '방문교수나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에 발급되는 비자다. 이 비자 단계에서 바로 영주권 신청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H1' 취업비자를 받은 뒤 몇년이 지나야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 보호 위해 오보도 마다 않아

▲ <조선>의 12월 13일자. <조선>은 섀튼 교수와 안규리 교수가 통화한 내용을 받아 섀튼이 "300% 신뢰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음날 섀튼 교수는 "논문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도 한국인 이민 전문변호사의 말을 인용, 황 박사팀에 속한 연구원들이라면 이 과정을 속성으로 밟아 1년 내에 영주권을 받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조선일보는 기사가 너무 앞서갔다고 판단했는지 한·미간 '줄기세포 기술 분쟁'의 최악의 국면으로 가지 않도록 한·미 당국이 '조정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흐름도 없지않아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모호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통해 기사를 분식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추측일 뿐이다. 기사에서 한·미 당국이 나설지 모른다는 이 추측을 받쳐줄 어떤 근거도 없다. 이런 추측성 기사를 1면에 전진배치하면서 조선일보는 황 박사 논문의 진위논쟁을 국부 유출 논쟁으로 바꿔나갔다.

황 교수팀과의 직접적 접근이 가능했던 조선일보는 지난 13일에도 10일 섀튼 교수가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이언스> 논문의 진정성을 300% 신뢰한다"고 말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안 교수의 말을 인용, 섀튼 교수의 '300%'를 강조하며 "이렇게 했음에도 황 교수팀의 사이언스 논문의 진정성이 훼손될 경우 황 교수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섀튼 교수는 바로 이틀 뒤 황 교수팀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표시하면서 논문 철회를 <사이언스>에 요청했다. 그러자 국내 언론들은 섀튼 교수가 오락가락 한다고 섀튼 교수에 화살을 돌렸는데 이것은 안 교수의 전언 나아가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의 단독취재가 사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이 역시 황 박사의 논문 조작의혹에 대한 초점을 분산시키는데 톡톡히 역할을 한 기사다. 안 교수가 황 박사팀의 일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입을 통해 섀튼 박사의 말을 전하는 것은 처음부터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21일에도 특종을 떠뜨리는데 "제럴드 섀튼 미 피츠버그대 교수가 황우석 교수에게 지난 9월 미화 20만달러(한화 약 2억원)의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 익명의 서울대 관계자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는데 결국 사실로 드러나기는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먼저 터뜨리는 대신 황 교수팀에 유리하게 이 사건을 끌고 나갔다. 돈을 주고 외국의 권위를 사려 했던 황 교수의 부도덕성보다는 섀튼 교수 요구의 과도함 쪽으로 논점을 몰고 갔다. 황 교수와 결별을 선언, 황 교수를 궁지로 몰아넣은 섀튼 박사에 대한 반감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충천해 있던 차에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비난의 물꼬는 섀튼 쪽으로 터졌다.

조선일보는 이처럼 황 교수 쪽에 서서 사실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육탄저지하는 대가로 황 교수로부터는 이례적인 대우를 받는다. 황 교수는 12월 들어 지금까지 공개 기자회견 이외 단 세 차례 개별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수혜자' 또는 '거래자'는 모두 조선일보였다.

황 교수의 세 차례 인터뷰, 수혜자는 모두 <조선>

▲ <조선> 12월 6일자 황우석 교수 인터뷰 기사.
지난 11월 24일 '눈물'의 기자회견 이후 지방으로 잠적했던 황 교수는 언론과 연락을 두절하고 침묵을 지켜오다 11일 만에 처음으로 조선일보에 입을 열었다. 당시 기사가 압권이다.

"모든 것을 아주 접고 싶었습니다…."
5일 오전 9시30분 어렵사리 연결된 휴대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황우석 교수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MBC PD수첩의 '협박취재'에 시달리다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세상이 싫다"는 말을 측근에게 남기고 지방 모처에서 칩거에 들어간 지 11일 만에 들려온 황 교수의 음성이었다.


황 교수가 인터뷰에 응해준 데 감격한 조선일보 기자는 쉽게 기자의 본분을 접었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국민들이 하루빨리 황 교수님이 연구실로 돌아오시길 바란다"고 기자가 말을 건네자 황 교수의 음색은 어둡게 변했다. "내가 그동안 심신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목소리는 곧 '콜록콜록' 하는 기침 소리에 막혀 끊겼다. "몸이 이 상태라서, 몸살에 걸려서…."

'황 교수님'에게 몸살을 걸리게 한 < PD수첩 >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려는 의도였을까. '음색이 어둡게 변했다' '콜록콜록'과 같은 인터뷰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을 중간중간 집어넣는다. 기자가 인터뷰를 할 때 취재원의 건강을 확인하려는 취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가 다시 이어진다.

황 교수는 이어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힘겨움을 토로했다. "이런 풍토에서 이런 과학이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힘을 내시라"고 하자 황 교수는 "어찌됐든 상황이 이러니 기다려 주십시오. 상황이 사그라지고 과학을 과학으로 볼 수 있을 때(연구실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대목에 이르면 기자는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게 아니었다. 마치 제자가 스승을 대하듯 위문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복귀를 재촉한다.

황 교수는 거듭 "이번주 중에는 복귀하시느냐"고 묻자 "조금 있다가 곧 뵙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황 교수는 다시 침묵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7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기자들이 병실 밖에서 황 교수의 말을 한마디라도 따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동안에 조선일보는 두 차례나 유유히 전화로 인터뷰를 한다.

15일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줄기세포는 없는 것 같다"는 발언이 알려진 직후 이에 대한 황 교수의 반응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을 때 조선일보는 황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이렇게 물었다.

"내 말을 국민에 알려달라" 황 교수 당부

▲ 12월 16일 <조선>은 황우석 교수와의 전화인터뷰 기사를 통해 "내 말을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려달라"는 황 교수의 당부를 충실히 전달했다.
"노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해명해 달라." 이에 대한 황 박사의 답변은 조선일보와 자신의 음험한 거래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내 말을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려 달라."

그가 조선일보에게 원한 것은 그의 입장을 대변해 달라는 것이고 조선일보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단독 인터뷰의 기회를 계속 얻고 있었다. 나흘 뒤인 지난 19일 황 교수는 다시 조선일보에게 단독 인터뷰할 기회를 주며 2005년과 2004년 <사이언스> 제출 논문에 대한 과학계의 각종 의혹 제기 등에 대해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와 황 교수의 수상쩍은 관계는 제1단계인 난자기증 논란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월 17일자에서 미국의 생명윤리사건 전문 법률회사 3곳에 연구원의 난자기증 논란에 대한 자문을 의뢰한 결과, 모두 연구원의 자발적인 난자기증이라면 법적·윤리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의견을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미국도 줄기세포 연구에서의 난자기증 등에 대한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명문화된 윤리지침이 2005년에야 확정됐기 때문에" 그 이전의 난자기증에 대해서는 소급력이 없다고 지극히 우호적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는 조선일보의 단독보도였다. 출처는 '서울대병원의 세계줄기세포허브 관계자.' 역시 황 교수팀의 내부자다. 황 교수팀은 이처럼 '중요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조선일보를 통해 먼저 흘렸다.

이처럼 박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조선일보 노보가 일부의 의견으로 지적한 것처럼 "심정적으로 치우친' 정도가 아니다. 한 언론이 얼마나 사회의 의사소통 과정을 중간에서 왜곡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왜곡을 통해서 얼마나 반사이익을 챙기려 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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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0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래 '나와 누나와 화장실, 화장실, 화장실'은 한 편에 담으려고 했던 에피소드인데, 쓰다 보니 말이 많이 붙어서 3편으로 나누었다. '화장실'이 세번 나오는 것은 당연히 세 가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마지막 세 번째가 하이라이트가 된다는 의미도 된다. 화장실 시리즈 마지막에 오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들려준 이야기는 서론에 불과하다. 지금도 이 이야기를 쓸지 말지 고민이다. 일단 '깍두기' 님이 누나의 명예를 보장해준다고 했으니까 마지막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와 누나와 화장실, 화장실, 화장실 - 엉덩이 이야기

그 때는 화장실에 관련된 이런 유머도 있었다.

병팔이는 맨날 화장실에 떨어진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에 떨어지려 하면 팔을 벌리라고 했다. 화장실에 간 병팔이는 팔을 벌려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병팔이는 너무 좋아서 '만세!'를 외쳤는데, 그와 동시에 다시 화장실로 빠지고 말았다.

이건 시시한 유머이지만, 그 당시 어린이들이 얼마나 화장실에 공포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나도 실제로 화장실 그 구멍에 빠지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화장실에 빠지는 것은 사소한 공포이지만, 나는 화장실 곳곳을 기어다니는 '구더기'가 더 무서웠다. 누나의 손전등으로 화장실 안을 살피면서 구더기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소문에는 구더기가 '사람의 살'을 좋아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은 어린이에게는 꽤 큰 편이었다.

지금 하는 고백이지만, 살작 엉덩이를 대 본 적도 있다. 그 덕분에 안심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내 엉덩이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엉덩이'에 관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누나와 나는 화장실 안에서 많은 추억을 녹였다. 하루는 서로 급하다고 다투었는데, 결과는 함께 동시에 '하자'였다. 다음은 그와 그의 남동생이 나눈 대화이다.

누나 : 승주(아! 가명을 쓸 걸 그랬다)야, 근 데 둘이 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작은 것 같아.

나 : 아니야, 누나 엉덩이가 대빵 커서 그래. 나는 이렇게 조그맣잖아.

누나 : 구멍에 넣지 못하면 옆으로 샐 텐데, 그러면 또 청소해야 되잖아.

나 : 그럼 누나가 나중에 싸등가!!(짜증 좀 섞임)

누나 :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나 : 엉덩이 두 개를 같이 있으면 함께 쌀 수 없으니까, 내가 엉덩이를 누나 거 위로 해서 쌀게.

누나 : 그러다가 네 똥이 내게 묻으면 어떡해?

나 : 뭐 닦으면 돼지..(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누나 : 아니 그게 아니라, '똥독'이 그렇게 심하다잖아. 나 똥독 오르면 어떡해..

나 : 에잇! 그러면 누나가 엉덩이 올리면 되잖아. 내가 똥독 걸릴게. 빨리 싸기나 해

누나 :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나 설사란 말야. 니가 나중에 싸라..응?

나는 씩씩거리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고, 화장실 밖에서 자꾸 '아직 멀언(멀었어)' '아직 멀언' 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화장실 문도 자꾸 걷어찼던 것 같다.

누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똥이 멈춰서 안 떨어져, 어떡해?'

그날 밤 긴 시간 동안 동생과 누나는 화장실 안팎에서 실갱이를 벌였다는 슬픈 이야기는 이로써 끝을 맺는다. 다음에는 좀 '청결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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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6-01-20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편부터 읽으면서 정말 아련한 추억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걸 느껴요.
변소와 구더기에 얽힌 추억....저도 정말 많았는데....페이퍼에 쓴 적도 있죠^^
누님의 명예는....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때 이 정도 추억이 없는 사람 있겠어요?^^

갑자기 어렸을 때 세 살던 집 주인이 똥간을 안 퍼줘서 똥이 산처럼 싸인 변소에서 어디다 볼일을 봐야할지 난감해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ㅡ..ㅡ;

승주나무 2006-01-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공감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자신을 유난히 '유난히'로 보는 경향이 있어가지구요. 공감을 할 이야기가 맞겠죠. 제가 이상한 게 아니죠???
 

나와 누나의 화장실 문화

우리집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뀐 것은 작년이다. 언제나 우리집 화장실은 밑이 뚫려 있었고, 돼지는 없었지만, 똥을 떨어뜨리면 밑에서 '퐁' 하고 똥물이 튀어오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로 '쉬아'는 밭에다 하거나, 아니면 '싱크대'(아~ 이거까지 밝혀야 되나?), 목욕탕 같은 데다 하는 편이었다.

'검정고무신'에 보면 '기영이'도 그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엉덩이를 손으로 막을까. 그네를 타면서 타이밍에 맞춰 떨어뜨릴까. 참 공감이 가는 만화였다.

먼저 나의 이야기다. 아마 국민학교 2학년쯤의 일일 것 같다. 나는 화장실에서 주로 머리를 잘랐다. 조금씩 조금씩, 어쩌다가 그런 '요망한' 습관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티는 잘 안 났다. 그 때는 뭔가를 자르는 게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해에 내 친구 녀석이 가위를 가지고 품바처럼 '철렁 철렁'하면서 놀았는데, 거기다 손을 댔다가 잘라먹을 뻔한 일도 있다. 암튼 그 때 그 시절은 엉뚱하면서도 참으로 '위험한' 시기이다. 그런데 문제의 그 날은 좀 많이 잘랐다 싶었는데, 학교에 가자 애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내 사촌형도 내 반에 오더니 '완전 원숭이'라며 웃어댔다. 그냥 원숭이도 아니고, 완전 원숭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둘 것. 어린이가 거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머리를 자르면 '원숭이' 모양이 나온다. 그 별명은 국민학교를 졸업해야 떼어낼 수 있었다.

우리 누나는 참 이상하다. 화장실 갈 때마다 맨날 나를 데리고 간다.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거 하고 있을 때는 더 짜증났다. 그것은 누나가 읍내로 유학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누나는 화장실 갈 때마다 손전등 큰 걸 들고 갔다. 그 전까지 우리 집에서는 손전등을 쓸 일도 없었고, 쓴 적도 없었는데, 순전히 누나 화장실용으로 산 것 같다. 화장실에 맨 처음 가면 손전등을 켜고 화장실 구멍 안을 구석구석 비춘다. 안에서 귀신이 나와서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내가 두 학년 어렸지만, 어린 내가 봐도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암튼 그렇게 한 5분 정도 확인을 한 후, 일을 보는데..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편이다. 달도 보고, 쥐새끼 소리도 듣고,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도 들리고, 어쩔 땐 파도가 모래를 쓸어담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승주야', '승주 있니', '승주 안 갔지' 하는 소리를 1~2분 간격으로 듣는다. 나는 그때마다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어느 날은 못 미더웠는지,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누나는 완전 미쳐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난 항상 그 좁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누나가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도 궁금한 것은 내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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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을 '누나와 똥 이야기'로 하였다가, 누나와 똥을 함께 쓰는 것은 아니다 싶어 제목을 위와 같이 바꾸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과 '화장실'에 얼킨 이야기이므로, '똥'은 2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미식가 돼지를 돋통(통시,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함께 쓰는 제주도 특유의 양식)에 두지 마라

우리 삼촌네 집에는 돼지를 키웠다. 그런데 화장실은 '없었다'가 아니라 있긴 있었다. 그러니까 돼지우리에 돌담으로 구멍을 만들어서 거기 앉을 수 있게 만든 것이 화장실이다. 우리들이 쓰는 수세식 화장실이 맨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이승만 정권 시절이었는데, '고려호텔'이라는 곳과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두 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좌변기가 차가워져 일 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눈치 빠른 한 정치인이 미국 유학 갔다가, 좌변기 커버를 가지고 와서 이승만 대통령한테 바쳤는데, 굉장히 흡족해 하였다고 한다. 그 사람은 후에 장관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를 '변기통 장관, 좌변기 장관' 하였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이 놈의 돼지와 나의 신경전이다. 녀석이 '똥맛'을 아는지, 돼지우리에 떨어진 '식은 똥'보다는 '갓 데운' 인분을 또 그렇게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돼지놈이 그 구멍과 좀 떨어져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날도 급했지만, 돼지가 구멍 가까이 있어서, 돌멩이를 던져서 거리를 좀 떨어뜨렸다.

그래서 겨우 구멍 위에 앉을 수 있었는데, 밑이 축축하고 뜨끈뜨근한 것이었다. 이 '느낌'은 상상만 했지, 실제 경험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 이 놈의 돼지가 혀로 넬롬 내 엉덩이를 핥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거의 비데 수준이었겠지만, 녀석은 이빨로 내 '똥'뿐만 아니라, 엉덩이도 씹어먹을 태세였다. 나는 하마터면 우리로 떨어질 뻔했고, 거의 졸도 직전까지 갔다. 지금도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으면 그 때의 공포가 몰려온다.

공교롭게도 '돼지의 공포'는 그 일뿐만이 아니다. 주위가 바다여서 여름이면 가까운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나는 그렇게 헤엄을 잘 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모래사장하고 가까운 바다, 그러니까 내 목 정도 오는 곳에서 놀고 있었다. 가까운 언덕에서는 어른들이 '돼지'를 잡고 있었다. 그 때의 장면은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공포'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단 낮은 절벽에서 돼지를 떨어뜨린다. 돼지가 기절을 하면 몽둥이로 살짝 다듬어 주고, 용접공이 쓰는 그 센 불로 돼지를 '그을린다.' 물론 이것은 '돼지 잡기 시나리오'다. 그날은 당연히 '시나리오'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돼지는 낭떠러지가 낮았는지, 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것도 내가 설레설레 헤엄치고 있는 곳을 향하여, 나를 향하여 정면으로 헤엄쳐 왔다. 그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끔찍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울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람들이 돌을 던졌다. 다행히 돼지는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웰컴투 동막골'을 보았는데, 멧돼지가 신하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장면을 보고 또 그 '공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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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6-01-2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데....ㅎㅎㅎ 우리 조상들은 현명했다니까요^^

승주나무 2006-01-2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그 느낌을 유추해보면, 돼지의 혀는 굉장히 깨끗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휴대폰을 거울삼아 잇바디의 고추가루를 남김없이 제거하듯, 그 놈도 입청소는 깔끔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 느낌을 유추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구요^^
 

안 보면 생각나고, 생각나면 뭐 웃음도 나고.. 웃다가 괜히 중얼거리고.. 또 혼자 쑥쓰러와지고

 

사랑에 관해 가슴 뭉클하게 표현한 시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정재영 다음으로 황정민을 좋아하게 될까?

아니면 황정민 다음으로...

암튼 색깔있는 굵은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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