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시형, 청아출판사, 2005년 8월, 246쪽
죽음의 수용소는 군 전역하고, 한 달간 쉬면서 읽었던 첫 번째 책입니다. 심리학을 좀 볼까 하여 읽게 되었는데, 이 책 이후로 심리학 책은 보지 못했군요. 언젠가는 심리학을 나의 주 이야기로 삼아야겠습니다.
심리를 알아야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이나, 이에 고통받는 사람이나, 잘 속는 사람들을 잘 가려낼 테니까요.
저술가이며 정신의학자인 플랭클 박사는 크고 작은 갖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 그의 환자들에게 때로, “어째서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 환자들은 대답한다. 한 사람은 자기의 삶이 자기 자식들에 대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은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이바지하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사람은 간직할 보람이 있는 추억 속에 잠기고 싶은 미련이 유일한 이유인지도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프랭클 박사는 이러한 대답에서 심리요법에 관한 지침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의미와 책임의 확고한 유형으로 짜 만드는 것이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현대 ‘실존적 분석’과 ‘로고데라피’의 목적이요 추구하는 바다.
……
잔인한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생활로 그는 그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어리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그의 아내 등이 강제 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거나 가스 처형실로 보내졌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누이만을 제외하고 그의 온 가족은 강제수용소에서몰살을 당하고 만 셈이었다.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흉포한 핍박 속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몸을 떨어야 할 고통을 그가 어떻게 견뎌냈으며, 어떻게 보람찬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다른 정신의학자들은 그와 같은 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정신의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가 아닌 그 누구라도 우리 인간의 조건을 슬기롭게 동정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었으리라. 프랭클 박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허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체험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뜻 깊은 진실의 울림을 갖고 있다.
……
프로이트는 갈등과 무의식의 동기로 인해 일어난 불안에서 우울증의 부조리라는 근원을 찾는다. 반면에, 프랭클은 신경질환을 여러 형태로 분류하고, 어떤 신경질환(정신적, 또는 심령적 신경증)을 환자가 실존에서 찾지 못한 의미와 책임감을 원인으로 캐어내고 있다. 또 프로이트는 성 생활의 욕구불만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프랭클은 ‘의미에의 의지’의 좌절을 강조하고 있다.
……
프랭클 박사는 그가 “우스꽝스럽게도 벌거숭이가 된 그의 몸뚱어리밖에는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간이 무엇을 하게 되는가를 배운다. 그리고 그의 정감과 무관심이 얽혀서 흐르는 듯한 묘사는 독자들의 심금을 사로잡고 말리라! 먼저 인간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차갑고도 초연해진 호기심을 가짐으로써 구원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리고 곧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은데도 남아있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작전이 묘사된다. 굶주림과 수모, 공포의 불의에 대한 깊은 분노가 가까이 지켜보고 있는 듯한 사랑하는 이의 영상, 종교, 음침한 유머 감각,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의 아픔을 아물게 해주는 나무나 노을 등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순간적인 주시에 의해 극복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
산다는 것은 고통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삶에 어떠한 목적이라도 있다면 겪는 고통과 죽어 가는 마당에서도 반드시 목적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목적을 이야기해 줄 수 없다. 반드시 각자가 그 스로로 찾아내야 할 것이며, 그 대답을 전제로 하는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가 찾아내는 데에 성공한다면 그는 온갖 모독에도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
옛날 스토아 학파1)와 똑같이 현대의 실존주의자들이 인정한 이 궁극적인 자유는 프랭클의 작품에서 뚜렷한 깊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부.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존주의로
이 책은 사실상 사건들이라기보다는 수백만이나 되는 죄수들이 수없이 겪어야 하였던 고통, 즉 인간적 체험에 관한 기술이다. 다시 말하면, 강제 수용소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한 사람이 말해주는 강제 수용소의 내면사인 것이다.
……
따라서 저명한 인사의 고난이 아니라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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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죄수들은 먹지 못하여 굶주릴 때 카포(Capo)2) 들은 배를 두드리는 형편이었다. 실제에 있어서 많은 카포들은 그들 생애의 어느 때보다도 수용소에 있을 때 가장 영양섭취를 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대체로 감시하는 병사들보다도, 나치스의 친위대원들보다도 더 죄수들에게 가혹했고 악질적이었다. 물론 그러한 카포들 역시 죄수들 가운데서 뽑힌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성격은 그러한 모진 일에 적합하다는 평을 받은 자들이고, 만약 그들에게 기대되었던 바를 수행하지 못하였을 때 그들은 즉각 쫓겨나야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나치스의 친위대원이나 감시병들을 닮아 갔고, 또한 친위대원 및 감시병들과 유사한 심리적 바탕에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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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은 수용소의 일정한 수의 죄수들을 다른 수용소로 이송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그러면 모두들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가스실이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을 했다. 병자나 일을 할 수 없는 연약자들 가운데서 뽑힌 사람들은 가스실과 화장터가 설치된 중앙의 대수용소로 옮겨지리라는 것이다. 이 선발 과정은 모든 죄수들 상호간, 혹은 떼를 지은 집단끼리의 제약 없는 싸움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다른 한 명의 희생자가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이름이나 자기의 친구를 희생자 명단에서 지우려고 아우성을 쳤다.
한 번에 몇 명의 포로가 수송되느냐, 하는 것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수송되는 죄수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번호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숫자만 채워지면 되었지, 누가 수송되느냐 하는 것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18 ~ 19
수송되기 직전의 죄수들을 지켜보자. 이와 같은 처지에서는 그 누구도 도덕이나 윤리적인 문제들을 고려해 볼 여유나 욕망이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 친구들을 구해주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대신할 다른 죄수나 ‘번호’를 수송자 명단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카포들의 선발 과정은 음성적인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죄수들 가운데 가장 야만스러운 자들에게만 이 직책이 부여되었다. 물론 나치스 친위대의 책임 아래 카포들이 선발되었다. 그러나 이 외에도 모든 죄수들 사이에 일종의 자기선택적 과정이 언제나 행해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수년간 끌려다닌 끝에 삶을 위한 투쟁에서 도의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죄수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온갖 방법과 수단을 쓸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잔혹한 폭력, 도둑질,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어떻게 불러도 상관이 없겠지만 천만다행히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던 소수의 우리들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 ~ 20
1944년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나는 소위 ‘상여배급표’라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노예처럼 팔려가 일을 해준 토건회사에서 발행한 것이었다. 원래 토건회사에서는 죄수 한 사람당의 일당이 얼마하고 정해진 가격에 따라 수용소 당국에 임금을 지불하여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 배급표 한 장에 회사측에서 오십 페니를 지불한다고 하는데 겨우 여섯 개비의 담배, 그것도 한참 후에야 바꿀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 어떤 때는 배급표와 완전히 무효화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열두 개비의 담배로 열두 그릇의 수프와 바꾸어 먹을 수 있고, 열두 그릇의 수프는 종종 굶주림을 한동안 면하게 해준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담배를 피우는 특권은 카포들에게만 확보되어 있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일정한 양을 보장받고 있었다. 혹은 창고나 작업장의 감독으로 일하는 죄수들만이 위험한 일을 하는 대가로 몇 개비의 담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고 최후의 며칠간만이라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담배를 피웠다. 따라서 동료인 죄수가 담배를 피우는 양을 보게 되면 우리는 곧 그가 버티고 나갈 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일단 믿음을 상실하게 되면 삶에의 의지는 좀처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죄수들의 관찰과 체험의 결과로서 모은 방대한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수용소 생활에 대한 재소자의 정신적 반응을 3단계로 나눌 수 있음이 분명해진다. 제1단계는 입소 직후의 시기, 제2단계는 수용소의 일상생활을 확립한 시기, 그리고 제3단계는 석방에 이은 유리된 시기이다.
22 ~ 23
정신의학에 있어서는 ‘집행유예의 환상’(delusion of reprieve)으로 알려진 어떤 상태가 있다.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가 형 집행 바로 직전에 어쩌면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집행 유예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25
잠시 후 나는 그와 얼굴을 마주 보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나는 키가 큰 편이었다. 훤칠한 것이 매끈한 그의 제복에 잘 어울렸다. 얼마나 대조적인 우리들인가? 나는 그와 반대로 오랜 여행 끝이라 꾀죄죄하고 초췌한 몰골이었다. 그런데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굽을 받치듯 붙잡은 채 무심하고 편안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치켜든 오른손의 집게손가락으로 매우 느릿하게 오른쪽 혹은 왼쪽을 가리키곤 했다. 그 자의 손가락이 왼쪽을 훨씬 더 많이 가리켰으며, 우리들 가운데 그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이는 이면에 숨겨져 있는 비운의 뜻을 조금이라도 눈치 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 나의 차례였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오른쪽으로 보내지는 것은 작업을 의미하고, 왼쪽은 병자나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보내는데 그들은 특별한 수용소로 보내질 것이라고 속삭여 주었다. 나는 운명이 정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들이닥치게 될 순간들,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순간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빵 주머니가 지닌 무게에 나는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나는 애써 똑바로 걸었다. 그 친위대 장교는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그는 두 손을 나의 어깨 위에 얹었다. 나는 미끈하게 보이도록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오른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어깨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하여 나는 오른쪽으로 가게 되었다.
손가락의 깊은 뜻을 우리들은 그날 저녁에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최초의 선발이며, 생존이냐 죽음이냐를 결정하는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번에 수송된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이라고 할 90퍼센트는 죽음을 선고받은 셈이었다. 이들에 대한 선고는 몇 시간도 채 되기 전에 집행되었다. 왼쪽으로 가게 된 사람들은 역에서 곧장 화장터로 행진해 갔다. 그곳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건물의 문에는 유럽의 몇 나라 말로 ‘목욕탕’이라는 이름이 씌어져 있다는 것이다. 들어가기 직전에 모든 죄수에게 한 조각의 비누가 나누어지고, 그런 연후―나로서는 차마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끔찍한 사건에 관한 많은 보거서가 작성되었으니까.
수송된 인원 가운데 구원을 받은 소수의 우리는 그날 저녁에야 진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동료이자 친구인 그가 어디로 간 것인가 하고 고참 죄수에게 물었다.
“그는 왼쪽으로 보내졌소?”
“그렇소.”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기서 그 친구를 볼 수 있을 게요.”
“어디 말이오?”
그는 한 손으로 몇 백 야드 밖의 굴뚝들을 가리켰다. 굴뚝에서는 폴란드의 잿빛 하늘로 불기둥과 같은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화염은 곧 불길한 구름과 같은 연기로 화했다.
“당신의 친구는 저기에서 두둥실 하늘나라로 떠나고 있소.”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쉬운 말로 설명해 줄 때까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27 ~ 28
우리는 바로 그 가축우리와 같은 건물에서 기다렸다. 이 건물은 소독실에 들어가기 전에 기다려야 하는 대기실처럼 보였다. 친위대의 대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담요를 펼쳐 들었으며 우리들은 우리들의 모든 소지품, 시계와 보석들을 담요 안으로 던졌다. 우리들 가운데는 아직도 순진한 죄수들이 있어서 결혼반지나 메달 혹은 호신부와 같은 것은 가져도 좋으냐고 물었다. 그 결과 그곳에 보조원으로 와 있던, 보다 단련된 죄수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직까지도 모든 물건이압수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비밀을 한 고참 죄수에게 털어놓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로 살그머니 다가가 안쪽 주머니에 있는 한 묶음의 원고를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저, 이것은 과학서적의 원고랍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압니다. 나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사실만도 감사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행운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정을 해보지 않을 수 없군요. 나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이 원고를 간직해야 합니다. 나의 일생 동안 기울인 심혈이 여기에 담겨 있답니다. 이 말을 아시겠습니까?”
그렇지, 그는 이해하는 듯했다. 희미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동정어린 미소였고, 그 다음에는 즐거운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비웃듯, 경멸에 찬 웃음으로 변했는가 했을 때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 마디를 벼락같이 내뱉었다.
“빌어먹을 새끼!”
이 말은 수용소 생활을 거쳤던 재소자들에게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낱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제1단계인 나의 심리학적 반응의 절정을 특징짓는 행동을 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진 전 생애의 말살이었다.
29 ~ 30
“2분간의 여유를 주겠다. 내 시계로 시간을 잴 것이다. 이 2분 동안에 너희들이 입고 있는 옷들을 모조리 벗어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과 함께 선 자리에 던져 놓도록 하여야 한다. 신발과 혁대 혹은 멜빵과 탈장대 이외에 모든 것을 던지도록. 자, 시작.”
상상할 수 없이 빠른 동작으로 사람들은 옷을 벗어 던졌다. 남은 시간이 짧아질수록 그들은 차차 신경질적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그들의 내의와 허리띠 그리고 구두끈을 어줍지 않게 마구 잡아당겼다. 그러자 우리들의 귀에 첫 번째의 채찍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죽 채찍이 사정없이 벌거벗은 몸뚱어리들 위로 떨어졌다.
그 다음 그들은 털을 깎기 위해서 우리들을 소매처럼 다른 실내로 몰아넣었다. 우리들의 머리칼을 쳐낼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몸에 난 털이라는 털은 모조리 깎여야 했다. 그런 연후에 샤워실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우리들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샤워실의 분무기에서 진짜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샤워를 기다리고 있는 도안 우리들은 벌거숭이가 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들은 이제 적나라한 몸뚱어리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는 솜털까지도 남지 않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자 그대로 우리들의 적나라한 실존뿐이었다. 여태껏 살아온 삶과 연결될 수 있는 물질로서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 있겠는가? 나에게는 안경과 혁대만이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었다.
30 ~ 31
우리는 그토록 가소롭게도 벌거숭이 삶 밖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샤워의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할 때 우리들 모두는 우리들 자신과 서로 간에 농담을 주고받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어쨌든 분무기에서 진짜 물이 쏴 하고 흘러내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이 야릇한 종류의 유머 외에도 우리를 사로잡은 또 다른 감각이 있었다. 그것은 호기심이었다. 나는 기이한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반응으로 나타나는 이런 종류의 호기심을 전에도 체험한 바가 있었다. 나의 삶은 등반사고로 인해 한 번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절대적인 순간에 단 하나의 느낌밖에 없었다. 호기심. 내가 이 위기에서 살아나느냐, 아니면 해골이 박살나느냐,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떤 상처를 입게 되느냐 하는 호기심이었다.
냉혹한 호기심은 아우슈비츠의 죄수들까지도 지배했다. 어느 정도 처해진 환경에서 마음을 초연하게 가질 수 있고, 주위환경을 일종의 객관성을 띤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했다. 이런 때 사람은 보호의 수단으로 이러한 상태의 마음가짐을 가꾸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하고 궁금하게 여겼다.
31 ~ 32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매우 짧은 순간일망정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의 소산이었으며, 매일 같이 그리고 시시각각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위기의식은 우리의 마음을 지긋이 내리눌렀다.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 사실에 괴로움을 겪었다. 잠시 후에 언급될 내 개인의 확신감에서 수용소에 들어온 첫날밤에 나는 결코 ‘철조망에 몸을 던지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을 했다. 철조망에 몸을 던진다는 말은 수용소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취하는 자살방법을 일컫는 관용구인데 고압전기가 흐르는 담장에 손만 갖다 대도 의도하는 자살을 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와 같은 결심을 내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일반적인 재소자에게 있어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계산하고 모든 가능한 기회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자살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죄수는 모든 선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너무나 낮았고, 그와 같은 확률에서 어떠한 보장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죄수들은 제1단계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과 최초의 며칠을 보낸 후에는 가스 처형실까지도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충격은 그로 하여금 자살이라는 행동을 보류케 만드는 것이다.
34 ~ 35
“그런데 한 가지 자네들에게 당부할 일이 있네……”
그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매일과 같이 수염을 깎게. 한 개의 유리조각을 사용하더라도 수염을 깎아야 한단 말일세. 심지어 마지막 한 조각의 빵을 대가로 지불하더라도……그러면 자네들은 젊어 보일 것이며, 긁고 문지른 덕택으로 두 뺨은 혈색이 좋아보일 것이네. 자네들이 살아남고 싶다면 노동력이 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세. 만약에 자네들 가운데 그 누군가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고 치세. 그로 인하여 그 자가 발을 절룩이고, 친위대의 대원들이 그런 양을 보았다면 그는 곧 그 자를 비켜서도록 손짓을 할 것이고 그 이튿날 그 자는 틀림없이 가스실로 보내질 걸세. 자네들은 우리들이 ‘회교도’라고 부르는 뜻을 알고 있는가? 병들고 쇠약해져 비실비실거리는 참담한 모습에 고된 육체적 노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회교도’라고 한다네. 조만간, 어쩌면 좀 더 빨리 모든 ‘회교도’는 가스처형실로 갈 것일세. 따라서 명심할 것은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걷도록 하라는 것일세. 그러면 가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네. 여기 서 있는 모든 사람들, 이곳에 온지 스물 네 시간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네. 어쩌면 당신을 제외하고……”
레싱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이성을 반드시 잃게 하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일이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정상적인 행위가 된다. 심지어 우리 정신과 의사들도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의 반응을 기대한다. 정신 요양소의 신세를 진다거나 정상적인 척도에 비례하는 비정상적인 반응을 예로써 들 수 있다. 강제수용소로 들어가게 된 사람의 반응 역시 비정상적인 심적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이를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주어진 환경에 전형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36 ~ 37
나는 발진 티푸스 화자로서 얼마간 오두막집 병실에서 보낸 적이 있다. 티푸스 환자들은 높은 열이 올라 혼수상태에 빠져들곤 했으며, 많은 환자들이 산송장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막 죽고 난 후 곧이어 벌어지는 광경에도 나는 전혀 정서적인 좌절감을 맛보지 않고 지켜볼 수 있었다. 한 환자가 죽고 난 후 벌어지는 광경은 되풀이되었던 것이다……모두 차례로 여전히 체온이 남아 있는 시체 곁으로 다가간다. 한 사람이 불결한 감자밥의 찌꺼기를 움켜잡았다. 다른 한 사람은 시체의 종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이 자기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바꾸어 신었다. 세 번째의 사내는 죽은 자의 코트를 자기의 것과 바꾸어 입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진짜 노끈을 약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흐뭇하게 여겼다. 상상이나 해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가!
이 모든 광경을 나는 무관심으로 지켜본 것이다.
39
나의 위치는 막사의 맞은편 쪽이었다. 바로 옆에는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벽에 조그마하게 난 창구가 하나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두 손으로 뜨거운 수프가 담긴 그릇을 움켜잡고서 맛있게 국물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바로 조금 전에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죽은 동태의 눈깔처럼 희뿌연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만 해도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나는 계속해서 국물을 홀짝이고 있는 것이다.
직업적인 흥미의 관점에서 정서의 결핍이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와 같은 사고를 지금 기억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거의 미미한 감정의 동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을 조금도 상관치 않게 만드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인 무감동은 죄수의 심리학적인 반응의 2단계에서 일어나는 증후였다. 이는 끝내 죄수로 하여금 매일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구타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무감각의 수단으로 죄수는 곧 그 자신의 주위에 매우 필수적인 보호막3)을 쌓게 된다.
……
진정 이상한 것이지만 한 대의 주먹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상황 아래서는 정신적으로 입은 상처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시사하는 모멸감이었다.
39 ~ 40
정신분석을 배운 몇 명의 동료들이 수용소에 있었는데 그들은 종종 재소자의 퇴행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즉, 보다 원시적인 정신생활의 형태로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수들의 소원과 욕구는 꿈에서 나타났다.
……
어느 날 밤 나는 같은 죄수인 동료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일어났던 일을 영영 잊을 수 없다. 그가 꿈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항상 무서운 악몽이나 황홀경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딱하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깨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려고 손을 뻗쳤으나 내가 하려던 짓에 오히려 내가 놀라 갑자기 손을 거두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절실하게 의식했다. 그 사실은 아무리 무서운 꿈이라도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수용소의 현실보다 더 고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뻗쳤던 손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46 ~ 47
나는 언제나 음식에 대한 토론을 위험한 일로 보았다. 극단적으로 적은 음식 양의 배당과 낮은 열량에 겨우 적응하게 되었을 때 맛좋은 음식에 관하여 그토록 잣하고 효과적으로 생생히 묘사한다는 것은 내장기관에 자극을 주는 나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음식에 대한 토의가 순간적으로 심리학적인 위안을 줄지 모르지만 생리학적으로 반드시 위험하지 않은 환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
마지막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해골에 가죽과 넝마 옷을 입혀놓은 것 같이 보이게 되었을 우리들은 우리의 육신이 자기의 살을 뜯어먹기 시작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내장 기관은 그것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근육은 사라졌다. 그런 두 육신은 저항력을 깡그리 상실,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조그만 공동체로 보아야 할 우리 막사의 일원은 한 사람 또 한 사람씩 죽어 갔다. 우리들 모두 매우 정확하게 다음에는 누구의 차례가 될 것이며, 언제 자기 자신의 차례가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많은 관찰을 한 후 우리들은 우리들 예측의 정확성을 매우 확실하게 해주는 증후를 알았다. “그는 오래 가지 않겠군.” 혹은 “다음 차례는 이 사람이군.” 하고 우리들은 속삭였다.
47 ~ 48
하루 스물 네 시간의 수용소 생활 가운데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아침 점호 때였다. 아직도 캄캄한 밤인데 날카로운 세 번의 호루라기 소리는 곤히 잠들어 꿈속에서 그리움을 달래는 우리들을 사정없이 찢어놓기라도 할 듯이 울려 퍼진다. 그러면 우리는 부종에 아프고 부운 발을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은 신발에 끼워 넣느라고 씨름을 하여야 했다. 이럴 때 흔히 신발 끈으로 사용하는 철사 줄이 끊어지는 등의 사소한 말썽으로 이곳저곳에서 끙끙거리는 신음소리와 투덜대는 소리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어느 날 아침 평소 용감하고 패기 있는 사람으로 알려진 친구가 엉엉 울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의 신발이 그가 신기에는 너무나 적어져 있었고, 끝내 눈에 덮인 마당에 맨발로 뛰어나가야 하며 작업장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사연이었다. 이와 같이 두려운 순간에도 나는 한 조각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주머니에 든 빵 조각을 꺼내 기쁨에 들떠 와싹 깨물 때의 위안이란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50
영양실조는 음식에 전념케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어쩌면 성적 충동이 일반적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할지도 모른다.
……
죄수는 꿈속에서도 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좌절된 정서와 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감정을 꿈속에서 명확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다수의 죄수들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생활과 목숨을 건지겠다는 생각에만 매달리는 노력은 그 목적에 뒷받침이 되지 않은 어떤 일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상태로 이끌려 가게 되었고, 또한 죄수에게 감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51
1945년의 겨울과 봄에 발진 티푸스가 발생했으며, 거의 모든 죄수들에게 전염되었다. 가능한 중노동을 계속해야 하였던 연약자의 사망률은 엄청났다. 환자들을 위한 입원실이 가장 불충분했다. 거기다가 쓸 만한 의료품이나 자격을 갖춘 의료보조원도 없었다. 이 병의 어떤 증세는 음식이라곤 쌀 한 톨도 삼킬 수 없도록 심한 혐오감(이는 삶에 대한 위험을 가중시킨다)과 무섭게 엄습해 오는 정신 착란이었다.나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은 아주 심한 착란증에 괴로움을 당했는데 한 번은 자기가 죽어 가는 줄 알고 기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착란 중에 기도할 말을 떠올릴 수 없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착란증세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많은 그러했듯이 나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나는 몇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작문을 했다. 끝내 나는 아우슈비츠의 소독실에서 잃어버렸던 원고의 내용을 되살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조그만 종이 조각에 속기로 요점이 되는 단어들을 적어놓는 것이다.
52 ~ 53
강제수용소의 생활에 있어 육체적 및 정신적인 원시성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령적인 생활의 심화는 가능했다. 풍부한 지성적인 생활에 익숙했던, 감수성이 강한 사람들은 보다 많은 고통(흔히 미묘한 성질을 가졌었다)을 당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내면적인 자아가 받은 손상은 보다 적었다. 그들은 주위의 끔찍한 생활 환경으로부터 내면적 풍부함과 심령적인 자유의 삶으로 물러날 수 있었다. 이는 대체로, 보다 덜 건장하게 생긴 죄수들이 튼튼한 체질의 죄수들보다 수용소 생활에 더 잘 견뎌낸, 뚜렷한 역설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도리인 것이다.
54
“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그리고 사랑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짧은 순간이나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명상함으로써 여전히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이유를 이해하였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처지에서 확고한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못할지라도, 그의 유일한 성취가 올바른 방향―명예로운 길―으로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데에 있을 뿐이라 할지라도 그가 지니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즐겨 관조함으로써 그 사람은 충족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애에 있어서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천사는 무한한 영광의 항구적인 명상에 열중하게 된다.”
내 앞에서 가던 한 사람이 미끄러져 쓰러졌고, 그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 뒤로 엎어졌다. 감시병은 재빨리 달려와, 가지고 있던 채찍을 그들 모두에게 휘둘렀다. 그래서 나의 생각은 몇 분간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곧 죄수의 실존에서 다른 세계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계속했다. 내가 그녀에게 질문을 하고 그녀는 대답을 했다.
56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존립한다는 것이다. 그의 정신적인 존재, 내면적인 자아에 그 가장 깊은 듯을 지니고 있다. 그가 실재로 현존하든 하지 않든 혹은 아직 살아 있는 죽었든 간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
“나를 그대의 가슴에 새겨주소서, 그러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해지리라.”
57
내면적인 생활의 심화는 죄수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과거 속으로 내던짐으로써 그의 실존의 심령적인 빈곤과 공허 그리고 고독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도록 도와주었다. 억류에서 풀려 자유롭게 된다면 하는 가정에서 그는 과거의 사건을 멋대로 상상하였다. 과거의 사건들이란 중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질구레한 사건들과 사소한 일들이었다. 그의 향수적인 추억은 그들을 빛나게 하고, 또한 그들이 기이한 성격을 띠게 했다. 그들의 세계와 실존은 매우 요원해 보였고, 그들의 심령은 그리움으로 과거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나의 상상의 세계에서 버스를 탔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문을 열쇠로 열었다. 그리고 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전등을 껐다. 우리들의 생각은 대개 그와 같이 자질구레한 일들에 집중되었고, 이와 같은 추억은 다른 사람을 눈물이 나도록 감동케 할 수 있었다.
57 ~ 58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절망에 마지막으로 격렬한 항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나의 성령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성령이 절망과 덧없는 이 세상과는 초연해 계심을 느꼈다.
……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Et lux in tenebris lucet)―그런데 그 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이나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은 땅덩어리를 파고 또 팠다. 감시병이 지나가면서 욕을 했으나 나는 다시 한 번 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나누었다. 점점 나는 그녀가 현존하는 것 같고, 바로 내 옆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손을 뻗쳐 그녀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이 느꼈다. 그러한 느낌은 매우 강했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순간, 한 마리의 새가 말없이 날아 내리더니 바로 내 앞의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앉아서 차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60 ~ 61
강제 수용소에 예술과 비슷한 것이 있다는 발견은 국외자에게 있어서 매우 놀라운 일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예술과 똑같이 유머의 감각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더 더욱 놀라워할지도 모른다. 물론 유머의 희미한 자국에 지나지 않으며 몇 초나 몇 분 동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머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서 또 다른 영혼의 무기였다. 그리고 유머가 몇 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 성에 있어서 다른 어떠한 것들보다도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초연함과 능력을 부여해 주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62 ~ 63
유머는 감각을 발전시키고 유머스러운 점으로 사물을 보자는 시도는 삶의 예술을 익히는 동안 배우게 된 일종의 요령인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곳곳에 있긴 하지만 강제 수용소에서도 삶의 예술을 실천하는 것은 가능하였다.
64
사람의 성격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를 위협받고 또 의혹 속으로 내던져버린 정신적 혼란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수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세계의 영향력 아래 인간의 삶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니고 있는가는 이미 가치 있는 것으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인간 의지를 강탈하고 처형(물론 처음에는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최후에는 인간의 육체적 자원인 한 방울의 피와 한 점의 살까지 빼앗는 계획 아래)시킬 대상으로 만드는 영향력 아래 개인의 자아는 끝내 가치를 박탈당하게 되고 말았다.
만약에 강제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이에 대항하여 그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는 개인으로서, 마음과 내면적 자유 그리고 인격적 가치를 가진 인간의 감정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을 엄청난 집단의 일부로서만 생각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때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끌려다니게 될 것이고, 때로는 함께 쫓기다가 떨어지게 되는 한 떼의 양처럼 사고의 능력이나 그들 자신의 의지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소수이나 위험한, 고문과 병적인 잔혹성에 매우 정통한 무리들로부터 사방에서 감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양떼와 같은 우리를 끊임없이 고함과 발길질 그리고 주먹으로, 앞으로 또는 뒤로, 몰고 다닐 것이다. 따라서 양떼인 우리들은 어떻게 사악한 개떼들을 피하고 조금이나마 먹이를 얻게 될까 하는 두 가지 일에만 열중하게 될 것이다.
70 ~ 71
내가 일하고 있는 막사에는 약 오십 명이나 되는 정신착란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 막사 뒤로 수용소 주위를 에워싼 이중 철조망 한 귀퉁이에 조용한 곳이 있었다. 이곳에 여섯 구의 시체(수용소의 하루 사망률)를 안치하기 위해 몇 개의 기둥과 나뭇가지를 얽어 임시로 세운 천막이 있었다.
71
그러나 아직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뒤에 남게 된 죄수들은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이용하여야 했다. 그들은 결코 감시병들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운명의 노리개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그들은 환경이 정해놓은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비인격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74
몇 주일 전 똑같은 수송이 마련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역시 모두들 환자들이 가스 처형실로 옮겨질 운명에 놓여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수용소 당국에서 수송될 환자들을 상대로 그 무서운 야간 작업반으로 가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호송 환자 명단에서 뽑아주겠다고 하자 대번에 82명의 환자가 자원해 나섰다. 그런데 십오 분 후 환자 수송은 취소되고, 82명의 자원자들은 야간 작업반으로 돌려졌다. 이와 같은 조처는 야간 작업반으로 돌려진 대다수가 2주일 안으로 주검이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제 두 번째로 요양 수용소로 환자들을 보낸다는 방침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겨우 열나흘 간밖에 써먹을 수 없지만 환자들 가운데서 마지막 한 줌의 노동력이라도 꺼내보자는 계책인지, 아니면 가스 처형실로 보내질 것인지, 또는 정말로 요양소로 보내줄 것인지를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호감을갖고 있는 주치의는 어느 날 저녁 열 시 십오 분 전에 나를 불러서는 넌지시 당부했다.
“나는 당직실에 이야기를 잘 해 두었소. 당신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울 수 있도록 했으니 열 시까지 당직실로 가서 이름을 지우도록 하구료.”
나는 그에게 나로서는 그럴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나는 운명이 정해주는 대로 따를 것을 배웠노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나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의 두 눈에 연민의 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없이 악수를 청했다. 그 악수는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작별인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나의 막사로 되돌아왔다. 거기에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는 정말 그들과 함께 갈 텐가?” 그는 슬픈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네. 나는 떠날 작정이라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는 그를 위로해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해야할 어떤 일―나의 유언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듣게 웃토, 만약에 내가 집으로, 아내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물론 자네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내가 날마다, 시시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해 주게. 거억하겠지?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그녀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했다고. 세 번째는, 나와 그녀의 짧은 결혼 생활은 이 세상의 어떤 것, 심지어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전부보다도 가치 있고 보람찬 것이었다고 전해주게.”
웃토, 지금 자네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살아있는가? 자네와 내가 그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한 이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자네는 자네의 아내를 다시 찾기라도 했는가? 그리고 아직도 기억하겠지, 자네가 어린애처럼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유언을, 한마디 한마디씩 외우게 하던 일을?
그 이튿날 아침 나는 수송되는 환자들과 더불어 그 수용소에서 떠나왔다. 이번에는 계책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가스처형실로 보내진 것이 아니고, 실제로 요양 수용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를 동정했던 사람들이 남아 있던 그 수용소에서는 우리가 새로이 도착한 수용소보다 더 격심한 기근현상이 일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구하려고 분투했으나 그들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을 뿐이었다.
몇 달 후, 이미 해방된 후가 되겠는데 우연히 옛 수용소의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그 후에 일어난 일들에 관해 들려주었다. 그는 수용소 보안원으로써 한 조각의 인육덩어리를 찾아내게 된 전말도 이야기를 했다. 시체 더미에서 사라진 인육 덩어리를 압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수용소에서는 기아에 못 이겨 시체의 살덩이를 뜯어먹는 식인풍조(cannibalism)가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때 늦지 않게 떠나온 셈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보니 ‘테헤란의 죽음’(Death in teheran)이란 이야기가 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페르샤의 어느 돈많고 권세등등한 실력자가 하루는 한 명의 하인을 거느린 채 화원을 거닐고 있었다. 이때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조금 전 죽음의 신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죽음의 신은 그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인은 주인에게 주인의 가장 빠른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도달할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다. 주인은 응낙을 했다. 하인은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나갔다. 주인은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주인이 죽음의 신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주인은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대는 나의 하인에게 겁을 주고 위협까지 하였느뇨?”
죽음의 신은 대답했다.
“저는 그를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 밤 테헤란에서 그와 만나기로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그가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을 뿐입니다.”
75 ~ 78
수용소 재소자들은 어떤 일이든 간에 결정을 내린다든가 어떠한 자세로든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는 운명이 자기의 지배자란 강한 감정의 결과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운명이 정해주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거기다가 죄수의 감정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심한 무관심도 크게 작용했다.
78
그와 같은 수용소 마지막 날은 자유에 대한 기대 속에 저물어 갔다. 그러나 우리들의 환희는 너무나 이른 것이다. 적십자사 대표자는 우리들에게 협정이 조인되었으며 이 수용소를 비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트럭과 함께 친위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수용소를 비워야 한다는 명령을 전달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죄수들을 중앙 수용소로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48시간 안으로 ―전쟁 포로들과 교환되어―스위스로 보내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거의 친위대원들을 몰라볼 정도였다. 그들은 너무나 우호적이었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트럭을 타도록 우리들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으며, 우리들의 행운에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말도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꽤 건장한 편에 속하는 사람들은 떼를 지어 트럭 위로 올랐고 병들고 연약해진 사람들은 힘겹게 트럭 위로 옮겨졌다.
이때 나의 친구와 나는 우리의 배낭을 숨기지 않고 제일 뒤에 위치한 그룹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의 트럭에 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트럭에는 열세 명만이 타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서 두 번째의 트럭이 당도했다. 수용소의 주치의는 필요한 열세 사람을 지명하였다. 그런데 나와 나의 친구는 그 열세 사람 중에서 제외되었다. 뽑힌 열세 사람은 그 트럭에 올랐고, 우리 두 사람은 뒤에 처졌다. 놀라움과 울화 그리고 실망 끝에 우리는 주치의에게 따지고 들었다. 주치의는 피곤하고 정신이 어수선하여 그렇게 되었노라고 변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우리가 탈출을 기도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배낭을 깔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반쯤 드러누웠다. 그리고 몇 명 되지 않는 죄수들과 마지막 트럭을 기다렸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였다. 끝내 우리들은 사람이 없는 초소의 매트리스를 깔고 완전히 드러눕고 말았다. 마지막 몇 시간 그리고 며칠 동안 흥분으로 우리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사실 마지막 며칠 동안 우리는 계속하여 희망과 절망 사이를 거센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행에 대비해 옷과 신발을 입고 신은 채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시끄러운 대포소리와 총소리에 놀라 깨었다. 예광탄이 번쩍이고 총알이 막사 안까지 날아들었다. 주치의가 달려 들어오면서 우리들에게 땅바닥에 엎드리도록 명했다. 한 죄수는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는 침대에서 신발을 신은 채 나의 배 위로 뛰어들었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우리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전선이 바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가까워진 것이다! 총 소리는 점차 드문드문해지면서 먼동이 터왔다. 수용소 문 바깥쪽에 하얀 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수주일이 지난 후 우리는 마지막 몇 시간에도 운명은 수용소에 남아 있는, 몇 명 되지 않는 우리 죄수들을 희롱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특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는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똑바로 깨달았다. 나는 우리의 수용소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조그만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들을 마주 대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자유의 땅으로 떠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트럭을 타고서 수용소를 떠난 우리 친구들은 옮겨 가는 즉시 막사에 갇히게 되었고, 곧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들의 부분적으로 시커멓게 탄 육신은 사진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테헤란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83 ~ 84
무관심은 고열의 환자들 사이에 유난히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전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어떤 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에 나는 그들을 때리지 않도록 엄청난 자제력을 필요로 하였다. 이는 한 사람의 짜증이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이란 증세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한 사람의 신경질로 일어나게 될 위기(검열관의 접근으로)의 국면을 더욱 가중시키기 때문이었다.
87
강제수용소에서 살았던 우리들은 막사 앞을 지나가던 죄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든가, 그들의 마지막 남은 빵조각까지도 주고 가던 광경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 가지 만족할만한 확증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뭇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수용소에서는 언제나 취해야 하 선택이 있었다. 매일같이, 시시로, 결정을 내려야 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정이란 당신의 적나라한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겠다고 위협하는 권력층에 당신이 굴복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여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그리고 판에 박힌 듯한 전형적인 재소자의 형태로 화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88 ~ 89
“이 세상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한 가지 사실은 내가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 헛된다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이 말은, 강제수용소에서 최후의 내적 자유는 상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행동으로써, 고통과 죽음으로써 증언을 해준 순교자들을 알게 된 이후, 빈번하게 나의 마음속에 떠오르곤 하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받은 고통은 보람찬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 낸 방법은 순수한 내적인 성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빼앗길 수 없는 심령적 자유야말로 삶을 의미 있고 목적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89
능동적인 삶은 창조적인 일에 가치들을 실현할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하는 목적에 도움이 된다. 반면, 피동적인 삶의 즐거움은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으려는 기회를 인간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이 똑같이 메마른 삶에도 목적은 있다. 이러한 삶의 목적은 행위의 한 가지 가능성만을 허용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실존에 대한 자세에 있어서 한 가지 가능성을 수용한 목적이 외부의 세력에 제한된 실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적인 삶과 즐기는 삶은 그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단 창조와 즐거움만이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궁극적으로 그 삶에 의미가 있다면 고통을 겪는 데서 얻는 의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고통이란 운명과 죽음과 같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인 것이다. 고통과 죽음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완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89 ~ 90
이와 같은 고찰이 세속적이 못되고 진실한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사람만이 이와 같이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죄수들 가운데서도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만이 충만된 내적인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안겨주는 가치들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안겨주는 가치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례가 단 한 사람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인간의 내적인 힘이 그의 표면에 나타난 운명 이상으로 그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고 하겠다. 그러한 사람들은 비단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90
그 젊은 여인은 자기가 며칠 안으로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매우 기분이 좋은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운명이 그토록 무서운 충격을 나에게 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예전에 인생을 너무나 쉽게만 살아왔어요. 그리고 심령적인 성취 같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손을 들어 막사의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서 있는 나무가 나의 고독한 삶의 유일한 친구에요.”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밤나무에서 뻗친 한 가지와 그 가지 위에 핀 두 송이 꽃이었다.
“저는 종종 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죠.”
그녀는 나에게 그와 같이 말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일시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헛소리를 했던 것일까? 때때로 환각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궁금해서 그 나무가 대답을 하더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요.”
나는 다시 그녀에게 무슨 대답을 해주더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나무는 나에게 말했어요. ‘나는 여기 있어요……나는 여기에 이렇게 있잖아요……나는 삶이에요, 영원한 삶이라구요.”
92 ~ 93
죄수들에 관한 심리적인 고찰에서 그들의 내면 계가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도덕적 및 심령적 자아들이 굴복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들만이 끝내 수용소의 타락된 영향력에 희생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과거의 죄수였던 사람들은 그들의 체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를 할 때 모든 것 중에 가장 절망적으로 그들에게 작용한 것이 구금을 당해야 할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 수 없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죄수는 그의 석방 날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우리가 갇혀 있던 수용소에서는 석방 날짜에 대한 논의마저 요령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사실상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죄수들의 기한은 일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연구 전문의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삶이란 ‘잠정적 실존’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한 마디를 덧붙여 ‘한계를 알 수 없는 잠정적 실존’으로 정의할 수 있다.
93
수용소에 들어오는 즉시 새로 온 죄수들의 마음속에는 변화가 일었다. 먼저 번 불안이 가셔지면서 새로운, 언제 수용소 생활이 끝나나 하는 불안이 고개를 쳐든다. 이와 같은 실존의 형태가 끝날 것인지, 혹은 끝난다면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내다보기는 불가능하였다.
93 ~ 94
언젠가 한 번 나의 동료에게 수용소의 하루가 한 주일 보다 더 긴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는 옳다고 동의하였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우리들의 시간 체험인가.
……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역에서 수용소로 다른 입소자들과 함께 기다란 행렬을 지어 행진하였다. 이는 그 누구나 겪는 바이지만 그 후 그는 나에게 그와 같이 행진하는 것이 꼭 자기 자신의 장례식 행진인 것처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의 삶에 장례라는 것이 완전히 말살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자기라는 사람이 이미 죽은 것처럼, 삶이 끝나고 다시 살아온 것처럼 생각되더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삶의 부재에 대한 느낌은 다른 원인으로 더욱 심해진다. 시간적으로, 그들에게 가장 뼈아픈, 감금생활의 기한이 무한정이라는 데서 심화된다. 공간적으로는, 죄수에게 제한된 좁은 지역이 그와 같은 느낌을 부채질하게 된다. 철조망 밖의 모든 사물은 그토록 요원하여 손으로 잡을 수가 없는가 하면 어떤 면에서는 헛것으로까지 보이게 되었다. 바깥세상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일들이 있고 또 행해졌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정상적인 삶이 죄수에게는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비쳤다. 바깥 세계의 삶이란 것이 그가 볼 수 있는 만큼 좁은 세계에 불과했지만 저승에 가 있는 죽은 사람에게 비치는 이승처럼 그에게도 그렇게 비쳐지고 있었다.
95
미래의 어떠한 목표도 볼 수 없으매 그 자신의 붕괴를 허용하게 된 인간은 회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과거를 되돌아보면 볼수록 공포로 가득찬 현실이 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지도록 도움이 되는 경향에 관해 언급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진실성을 말살하는데도 위험이 가로놓여 있다. 수용소 생활을 어떤 긍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회는 확실히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를 그냥 지나쳐버리기는 아주 쉬운 것이다.
우리들의 ‘감정적인 실존’을 비실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 자체가 죄수들이 그들의 삶에서 간직하고 있던 것을 상실케 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모든 일은 어떤 면에서 요령이 없는 것으로 변했다. 그리하여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부적 상황이 종종 심령적으로 그 자신을 초월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은 수용소 생활의 어려움을 그들 자신의 내면적인 힘에 대한 시험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무어나 하찮은 것으로 경멸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눈을 과거로 밀착시키고 과거 속에서만 살려고 하였다.
……
“삶이란 치과의사 앞에 앉아 있을 때와 같다. 당신은 언제나 가장 심한 통증이 곧 이어지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면 통증은 이미 끝나 있을 것이다.”(비스마르크)
96
수용소에서 죄수가 입은 심리 및 병리학적 영향을 정신요법이나 정신위생학적 수법으로 치료코자 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죄수에게 미래의 목표를 지적해줌으로써 내면적인 힘을 길러주고자 하는 계획을 세워야 하였다. 그럼으로써 그 죄수는 미래의 목표를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어떤 죄수들은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어야만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묘한 특수성이다. 즉 영원한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때로 자기의 마음을 미래라는 과제에 매달릴 수 있도록 억지를 쓰기는 하지만 실존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놓이게 되었을 때 미래는 그의 구제수단이 된다.
97
오늘밤은 무엇을 먹게 될까? 특별 배당으로 한 조각의 소시지라도 나온다면 한 조각의 빵과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 보상으로 받았으나 아껴 두었던 한 개비의 담배로 한 그릇의 수프와 바꿀까? 나의 신발 한 짝의 끈이 동강이 나고 말았는데 이를 대처할 한 토막의 철사줄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시간에 늦지 않게 작업장으로 가서 평소 내가 일하던 작업반에 낄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반에 끼게 되었다가 야수와 같은 감독이 있기라도 한다면 어떡하지? 이와 같이 무섭고 긴 행진을 매일같이 하는 대신 수용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얻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카포와 잘 사귀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옳을까?
나는 매일같이 그리고 시시로 이와 같이 자질구레한 일들에만 매달리게끔 강요하는 상태에 지겨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라도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를 썼다. 별안간, 나는 불이 환히 켜지고 따뜻하며 아늑한 강단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내 앞에는 주의 깊은 청중들이 쾌적하고 폭신폭신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에 나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은 객관적으로 변하고, 과학과 거리가 먼 관점에서 보여지고 묘사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했던 상태를 괴로운 순간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98
미래―자기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죄수는 파멸이란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될 운명이 정해지게 마련이었다. 미래에 대한 신념을 상실함과 더불어 그는 그의 심령적 의지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그 자신으로 하여금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부패의 온상으로 변했다. 대체로 이와 같은 현상의 징후는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재소자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우리 모두 이 순간을 두려워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들 자신을 위해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 친구들을 위해 두려워하였다.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현상은 죄수가 어느날 아침 일어나 옷을 입고 세수하거나 점호장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곤 하였다. 그는 그저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가 병으로 초래되었다면 그는 병동으로 옮겨지거나 그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거절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는 막무가내로 꼼짝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삶을 포기한 것이다. 거기에 자기 자신이 쏟아놓은 배설물과 함께 누운 채로 꼼짝하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그가 마음을 쓸 일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때 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그와 같이 위험한 자포자기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짓고 있는 극적이고도 실재적인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F씨, 우리 구역 고참 관리인인 그는 아주 유명한 작곡가이자 작사자였다. 그러한 그가 어느 날 은근히 나를 불러 속사정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선생,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소. 나는 이상야릇한 꿈을 꾸었었소. 그 꿈속에서 어떤 음성이 나에게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더구료. 즉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가지는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소. 그래서 내가 뭐라고 청했는지 아시오? 나는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 알고 싶다고 말했소. 의사 양반, 당신은 내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나를 위해서―을 했는지 짐작할 것이오. 나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로부터 모두가 해방되고 우리의 고통이 종식될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언제 그런 꿈을 꾸셨나요?”
그는 대답했다.
“그게 1945년 2월이었지.”
그렇다면 3월이 시작될 무렵에 해당되는 시일이었다.
“그런데 그 꿈속의 음성이 뭐라고 대답하던가요?”
그는 나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3월 30일이라고 하더군.”
F씨가 그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는 여전히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꿈속에서 들려 오던 음성이 반드시 맞아떨어질 것이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약속된 그 날짜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 수용소로 전해지는 전쟁 소식은 약속된 그 날짜에 우리가 석방되리라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29일이 되자 F씨는 갑자기 병이 났으며, 열이 심하게 올랐다. 3월 30일, 이 날은 그의 예언자가 그를 위해 전쟁과 우리의 모든 고통이 끝나리라고 그에게 말했던 날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으며 의식마저 잃고 말았다. 3월 31일, 그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겉으로 나타난 증세는 그가 발진 티푸스로 죽었다고 판명되었다. (결국 예언가의 예언은 맞은 셈이다.)
99 ~ 100
내 친구가 죽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기대했던 해방이 찾아오지 않자 매우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는 데에 있었다. 이와 같은 좌절은 잠복하고 있던 발진 티푸스의 감염에 대한 그의 육신의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
이러한 경우의 관찰과 이로써 끌어낸 결론은 우리 강제 수용소의 주치의가 나의 주의를 이끌 수 있었던 어떤 사실과 일치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의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의 일주일간에 수용소의 사망률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의 의견을 빌리면, 이와 같은 증가가 중노동의 여건이나 우리에게 공급되는 음식의 악화 혹은 기후의 변화 및 새로운 전염병에 있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단순히 대다수의 죄수가 성탄절까지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가냘픈 희망에 기대를 걸고 살아왔던 탓이었다고 하였다.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고무적인 소식을 들을 수 없자 죄수들은 용기를 잃게 되었고, 커다란 실의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상당수의 죄수들이 죽어간 것이었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수용소 재소자였던 사람들의 내면적인 힘을 되찾아주는 어떠한 시도에도 먼저 그에게 미래의 어떤 목표를 보여주는 데 성공해야 하겠다.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니체의 말은 심리요법적 및 정신위생적 노력을 죄수들에게 쏟아놓으려는 모든 사람들의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101
“우리가 삶에 걸고 있는 기대는 진실로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인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멈출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매일같이, 또는 수시로 삶에게 질문을 받는 존재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대답은 반드시 말과 명상이 아닌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는 삶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앞에 끊임없이 놓여지는 삶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102
일단 우리가 고통의 의미를 알아낸 이상에는 수용소 당국자들이 가하는 고문을 축소하거나 경감시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수용소에서 입는 형벌을 무시하거나 헛된 환상에 몰두하고 인위적인 낙관주의를 마음속에 품는 것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고통은 우리들의 과제로 변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결코 그 과제에 등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고통 속에 성취에로의 기회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04
나는 아직도 자살 미수의 두 경우를 기억하고 있다. 이들 자살 미수자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을 서로 갖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자살을 하려고 했던 의도를 털어 놓았다. 두 사람 모두 전형적인 논리를 앞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삶에서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두 가지 경우가 하나같이 그들에게 삶이 아직도 그 무엇을 그들에게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의 그 무엇이 그들에게 바라고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해 주어야 했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들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외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일이었다. 이 사람은 과학자였다. 그는 강제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에 일련의 책을 집필했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 완성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야말로 그의 작업은 그 어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이 자기의 아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의 위치를 결코 대신할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이 모든 개인을 구별하고 개인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특이성과 유사성은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 못지않게 창조적인 작용을 나타내고 있다. 한 인간을 바꾸어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간은 그 실존과 실존의 연속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책임감을 그의 실존의 모든 형태와 양상에 나타나게 된다.
105 ~ 106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아침 점호를 받을 때였는데 수용소 당국에서는 앞으로 많은 행위를 하나의 태업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자는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목매달아 죽이겠다고 선포하였다. 그들이 범법으로 다루려는 행위 가운데는 우리들이 덮고 자는 담요에서 조그만 조각이라도 찢어내는 짓(이는 발목을 싸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과 감자 한 알이라도 훔치는 조그만 ‘절도죄’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반쯤 굶어 죽게 된 죄수가 감자를 쌓아 놓은 창고에 뛰어들어 몇 파운드의 감자를 훔쳐낸 일이 있었다. 이 절도사건은 곧 발각되었고, 어떤 죄수들은 그 ‘도둑’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용소 당국은 그와 같은 사실을 소문으로 듣게 되자 모든 죄수들에게 그 범죄자를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렇지 않을 때 전체 수용소의 죄수들을 꼬박 하루 동안을 굶기겠다고 엄포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2,500명이나 되는 죄수들은 하루의 단식을 택했으며 그 도둑을 수용소 당국에 내놓지 않았다.
단식을 하게 된 그날의 저녁 무렵이었다. 우리는 흙담의 우리 막사에 누워 있었다. 거의 말들을 나누지 않았으며, 한마디의 말도 귀에 매우 거슬리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전기불이 나가고 만 것이다. 이제 기분은 잡칠 대로 잡쳐 울화통을 터뜨리기 일보 전이었다. 그러나 우리 고참 구역 관리인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즉흥적으로 짧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그 순간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던 일들과 관계가 있었다. 그는 많은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동료들은 최근 수일 동안 병으로, 혹은 자살로 죽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죽게 된 진정한 이유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말도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극단적인 사태로까지 몰고 가는 희생자들을 앞으로 가능한 막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넌지시 그와 같이 충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진정 천만의 말씀이었다. 나는 결코 심리학적인 설명이나 설교―동료들의 영혼을 의학적으로 돌보아 주는 친절을 베푸는―같은 것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있었고 또 초조하였다. 그러나 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고 이 특이한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용기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가장 시시껄렁한 위로의 말부터 던짐으로써 나의 작업을 진행시키게 되었다. 나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래 여섯 번째로 맞는 겨울이지만 지금의 유럽 형세를 보면 우리들의 처지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몸서리치는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제각기 고통을 당하기 시작한 이래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을 잃은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자고 제의하였다. 나는 그들 대부분이 진정 둘도 없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하고 추측하였다. 누구든지 아직도 살아 있다면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는 것이다. 건강, 가정, 행복, 직업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인 지위―이 모든 것들은 다시 성취시킬 수 있거나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골격을 완전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극복한다면 장래에 그 고통은 우리들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였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굳세게 만들 것이다.”
그런 후 나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나는 공평하고도 솔직하게 말해서 미래는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 살아남을 기회가 얼마나 희박한가 하는 것을 짐작하고 있으리라는 사실에도 동의하였다. 아직 우리 수용소에는 발진 티푸스가 유행되지 않고 있지만 내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20대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는 조금도 없다는 점도 그들에게 말하였다. 왜냐하면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욱이 다음 한 시간 동안 어떤 일이 밀어닥칠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며칠 안으로 우리들은 어떠한 세상을 놀라게 할 군사적인 사건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수용소 체험을 통해, 적어도 개인에게 있어서의 커다란 기회가 때로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생각지도 않았는데 특별한 작업반으로 배속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작업반은 이례적으로 훌륭한 작업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죄수에게는 ‘행운’을 성립시키는 종류의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설파하였다.
나는 비단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미래를 가리고 있는 장막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나는 또한 과거의 일도 언급하였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둠에 휩싸여 있지만 과거의 모든 기쁨과 기쁨의 빛이 우리들을 얼마나 밝게 비춰주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다시 한 구절의 시―내 자신이 설교자처럼 들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그대가 체험한 바는 이 세상의 어떠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대로부터 그 경험을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
우리들의 경험뿐이 아니었다.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위대한 사색,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모든 고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과거 속으로 흘러간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로 흘러가 버린 모든 것을 실존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했었다는 것은 일종의 실존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확실한 실존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혹은 가능성)에 관해 언급하였다. 나는 나의 동료들(때때로 들을 수 있는 어떤 기척을 내기도 하지만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에게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인간의 삶은 결코 의미를 가지지 못할 때가 없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는 고통과 임종, 곤궁함과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두운 막사 안에서 나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불쌍한 하느님의 피창조물들에게 우리의 처지의 심각함에 과감히 맞서자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투쟁이 가망이 없다 해도 삶의 존엄성과 그 의미를 떨어뜨리거나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험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을 때 그 누구―친구, 아내, 살아있거나 죽은 그 누구, 혹은 하느님―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는 결코 그를 실망시킬 우리들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는 우리들이 자랑스럽게 고통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결코 비참하지 않은 모습을, 그리고 어떻게 죽어가야 할 것인지를 알고 있는 우리들을 찾아내려고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나는 우리들의 희생에 관해 언급하였고, 우리들이 치루는 어떠한 경우의 희생이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희생은 그 본질에 있어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의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우리들의 희생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솔직한 태도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종교적 신앙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한 동료는 수용소에 도착하는 즉시 하느님에게 계약을 맺고자 노력하였다. 내용은 그가 받는 고통과 죽음으로써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운 종말로부터 구제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탄원이었다. 그러한 그의 희생이야말로 가장 뜻 깊은 것이리라. 그는 아무 보람도 없는 죽음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 가운데도 헛된 죽음을 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나는 동료들에게 들려준 말을 끝맺었다.
내가 그와 같은 말을 하게 된 목적은 막사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삶과 실제로 희망이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삶에 충분한 의미를 찾아보자는 데에 있었다. 나는 나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기불이 다시 들어와 주위가 밝아지게 되었을 때 참담한모습의 친구들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비틀거리며 나에게 몰려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고통을 받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힘을 거의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 같이 내적인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쳤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106 ~ 111
수용소 감시병들의 심리학적인 구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많은 죄수들이 당했다고 말하는 짓들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들이 똑같은 인간에게 다른 사람이라고 하여 저지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사건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또 그와 같은 사건들이 진실로 일어났다는 것을 믿게 된 사람들은 어김없이 심리학적으로 어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해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아주 상세하게 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을 반드시 지적해 두어야 하겠다.
첫째, 감시병들 가운데 가학성 변태성욕자, 임상학적 의미의 사디스트들이 있었다.
둘째, 이러한 가학성 변태성욕자들은 정말로 잔인한 감시병들 몇 명을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수용소 당국에 의해서 선발되었다.
때때로 작업장에서는 우리들에게 몇 분간(대체로 아주 추운 숲속에서 두 시간의 노동이 있은 후 허락한다)이나마 불을 쬐게 해준다. 이때의 기쁨이야말로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그만 난로에 나무 가지와 토막난 조각들로 불을 지피고 그 난로 앞에 우리는 둘러앉아 불을 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이와 같은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것을 최대의 낙으로 삼는 감독들이 언제나 몇 명 있었다. 그들은 비단 우리들에게 불을 쬐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난로를 뒤엎고 그토록 아늑한 감을 주는 불을 눈 속에 묻어 꺼버리곤 하였다. 그럴 때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희열은 너무나 뚜렷하였다. 그런가 하면 나치 친위대원이 어떤 죄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하자. 그런데 친위대에는 언제나 못된 짓에 열성을 보이고, 고도로 전문화되고 변태적인 고문에 정통한 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점찍힌 죄수는 불행히도 고문의 명수인 친위대원에게 보내지곤 하였다.
셋째, 대다수 감시병의 감정은 수년간에 걸친 수용소 생활에서 점점 더 심해지는 야만적인 고문 수법을 익히 보아 왔던 터이라 둔화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적어도 정신적으로 냉혹해진 사람들은 변태적인 고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넷째, 감시병들 가운데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들을 동정하고 도와주려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밝혀 두어야 한다. 여기서 나는 내가 해방을 맞았던 그때 내가 속해 있던 수용소 소장 한 사람만을 언급하기로 하겠다. 해방―수용소 의사이며 죄수였던 한 사람만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이 된 후 이 사실이 밝혀졌는데 수용소 소장은 가장 가까운 읍에서 그가 관할하고 있는 수용소의 죄수들에게 주려고 의료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죄수인 수용소 고참 관리인은 어떠한 친위대의 대원들보다도 냉혹하였다. 내가 아는 바로는 수용소의 소장이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도 손 한 번 든 적이 없는 반면에 이 고참 수용소 관리인은 눈꼽만한 실수를 기회로 삼아 죄수들을 마구 구타했었다.
111 ~ 113
매우 긴장된 며칠이 지난 후 우리는 수용소 문 위에 하얀 기발이 펄럭이는 아침을 맞게 되었다. 이때의 내면적인 흥분의 상태는 곧바로 전체적인 이완을 가져왔다. 그러나 우리들이 미칠 듯이 기뻐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럼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죄수들은 지친 걸음으로 우리 자신들을 끌다시피 하면서 수용소의 문께로 다가갔다. 우리들은 겁먹은 시선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후 수용소 밖으로 몇 걸음 과감히 옮겨 보았다. 이번에는 우리를 향해 고함으로 명령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주먹이나 발길질을 피하기 위하여 재빨리 자맥질 하듯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었다. 오, 하늘이여! 이번에는 감시병들이 우리들에게 담배를 권하지 않는가! 처음에 우리들은 하마터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뻔하였다. 그들은 약삭빠르게 편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던 것이다.
우리는 수용소 밖으로 쭉 뻗쳐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우리들은 곧 발에 전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힘이 없어서 주저앉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절뚝이면서 나아갔다. 우리는 자유인의 눈으로 아직 구경하지 못한 수용소의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우리들은 스스로 되뇌어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자유가 절실하게 우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들은 지나 온 수년간,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고 그토록 흔하게 입에 담았던 그 한마디였건만 이제 그 의미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자유의실재가 우리들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들은 자유가 우리들 것이란 사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꽃들이 만발한 꽃밭에 이르렀다. 우리는 꽃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깨달을 수 있었으나 꽃들에 대한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가 다양한 빛의 깃털로 장식된 꼬리를 가진 수탉이 인근 농가의 마당에서 거닐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섬광과 같은 기쁨이 찰나적으로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섬광으로 끝났다. 우리들은 아직 이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우리들 모두가 막사에 다시 모이게 되었을 때 한사람이 은밀히 묻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해 보게. 오늘 자네 기쁘던가?”
그러자 질문을 받은 그 사람은 우리들 역시 비슷한 감정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으로 부끄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정말이지, 기쁘지 않았다네!”
우리는 글 그대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도 천천히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쁨을 다시 닦고 익혀야 하리라.
심리학적으로 석방된 죄수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같은 현상을 비인격화(depersonalization)라고 부를수 있다.
일이 꿈속에서 느끼는 것처럼 실제 같지도 않고 비슷하지도 않게 보인다.
115 ~ 116
석방된 포로들이 정신적인 돌봄을 전혀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토록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오랫동안 받아왔던 사람이 석방 후 쉽게 어떤 위험에 빠진다는 것, 특히 압박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해소되었기 때문에 더욱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위험(심리학적인 위생의 뜻에서)은 잠수병의 심리학적인 대응자, 즉 똑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물속의 잠함4)에서 일하는 잠수부가 갑자기 잠함에서(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벗어나게 되었을 때의 신체적 건강상태와 똑같다고 하겠다. 따라서 갑자기 정신적 압박에서 해방이 된 사람은 그의 도덕적, 심령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단계에서, 원시적 성격이 보다 강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야만적 행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관찰하였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자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전매특허인양 마구 휘두르고 잔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변화한 것은 그들이 이제 핍박을 받는 사람이 되는 대신에 박해자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친히 겪은 무서운 체험들에 의하여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이런 현상은 확실히 무의미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종종 나타났다.
어느날 나는 친구와 수용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인근 읍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들판에 난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들은 푸르름이 싱싱한, 곡식이 될 식물들이 반쯤 자란 밭 앞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밭을 피해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손을 뻗쳐 나의 팔을 잡더니 나를 끌고 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듬거리며 얼마 자라지 않은 곡식을 짓밟지 말자는 뜻으로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대번에 신경질을 냈다. 나를 노려보더니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나의 아내와 아이는 가스 처형실에서 죽었단 말일세. 이제 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 없겠지. 그런데도 자네는 나에게 몇 포기의 귀리를 밟지 말라구!”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어느 누구든지 나쁜 짓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 아무리 부당한 짓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부당한 짓을 저지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오로지 참을성 있게 깨우쳐 주어야만이 그들이 성공적으로, 진리에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진실에로 이끌어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귀리 수천 포기가 망가지는 피해보다 훨씬 악화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죄수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먹 쥔 오른 손을 내 코앞에다 뻗치며 삿대질하듯 외치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이 손을 시뻘건 피로 물들여 놓지 않는다면 차라리 잘라 버리고 말테다!”
내가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와 같이 외치던 친구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도, 그 후에도 가장 훌륭한 동지였다.
118 ~ 120
정신적 압박에서 갑작스럽게 헤어나게 된 결함을 제외하고도 석방된 포로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을만한 근본적인 체험이 두 가지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갔을 때 죄수가 얻게 되는 비통과 환멸이다.
비통은 전에 살았던 고장으로 그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을 때 여러 가지 일로 일어나고는 하였다. 귀향한 후 그는 많은 곳에서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이때 그는 비통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되고, 그가 겪었던 모든 고통을 왜 겪어내어야 했던가 하고 자신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몰랐었네.” 또는, “우리 또한 그런 고통을 겪었지.”하는 똑같은 말을 그가 가는 곳마다 듣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진실로 보다 정다운 말을 나에게 해줄 수 없었을까 하고 자신에게 묻게 된다.
환멸의 경험은 이와는 좀 다르다. 여기서의 환멸은 동족(그들의 상투적인 인사와 감정의 결여는 그토록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인간들이 하는 말과 짓거리를 듣지도 보지도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에 대한 것이라 운명 그 자체가 그토록 잔인해 보일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온갖 가능한 고통이 절대적인 한계까지 견뎌왔다고 수년간에 걸쳐 생각해 온 그는 이제 고통이란 한계가 없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보다 많은 고통과 심한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수용소에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했다는 시도에 관해 언급하게 되었을 때 미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삶이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어떤 인간이 자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마음속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홀로 그 사람의 모습만 더듬어 보아도 수용소 생활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사람은 집에 돌아와 보니 없지 않은가! 아니, 슬프게도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가버렸고, 이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된지 오래였다. 끝내 그가 꿈꾸던 그 날이 찾아왔건만 슬프게도 그가 열망하던 모든 것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먼 길을 여행하여 고향에 발을 디딘 그는 어쩌면 전차를 타고 집 앞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쨌든 수년간이나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집 앞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꿈속에서 수백 번, 수천 번이나 하고 싶었던 대로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나 그 결과 겨우 알게 된 것은 그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람이 거기에 없다는 것과 다시는 그곳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사실 뿐이었으니……
우리들은 수용소에 있을 때 우리가 겪은 모든 고통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속세의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서로들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행복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가 겪는 고통, 우리의 희생,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불행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환멸은 소수의 죄수들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환멸은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 많은 사람들의 체험이었고, 정신의학자에게도 그들로 하여금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가 매우 어렵다고 느낀 체험인 것이다. 그러나 환멸이 그에게 실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자극이 되고 격려가 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120 ~ 121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모든 체험 가운데 다시없는 체험은 끝내 그가 모든 것을 견뎌냈으며, 이 세상에서 그 이상 더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의 하느님 밖에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일 것이다.
122
제2부 로고데라피의 기본개념
정신분석과 비교하여 볼 때 로고데라피는 덜 ‘회고적’이요, 덜 ‘내성적’인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로고데라피는 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환자가 장래에 실천(혹은 충족)되어야 할 임무와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로고데라피는 신경질환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모든 악순환 형성5)과 송환기제(feedback machanisam)을 흐려 놓거나 빗나가게 한다. 그리하여 신경성 질환이 있는 환자의 전형적인 자기만을 위주로 하는 현상이 계속하여 촉진되고 강화되는 대신 파괴되고 만다.
126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희랍 단어이다. 로고데라피는 혹은 저술가들이 ’비엔나 제3의 심리요법 학파‘라고 불렀듯이 인간실존의 의미와 더불어 그러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로고데라피에 의하면, 한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투쟁은 인간에게 있어서 원초적 동력(primary motivational force)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서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또는 우리가 일컬을 수 있는 ’쾌락에의 의지‘)뿐 아니라 아들러 심리학파가 강조하고 있는 ’권력에의 의지‘와 대조적으로 ’의미에의 의지‘라고 칭하는 것이다.
127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89%의 사람들이 삶을 위하여 ‘무엇인가 뜻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61%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그 무엇인가, 또는 그 누구가 있었으며 그(것)들을 위해서는 죽을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인정하였다. 나는 비엔나에 있는 나의 진료소에서 환자들과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같은 여론 조사를 실시한 바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프랑스에서 수천 명에게 선발 실시한 것과 똑같았다고 할 수 있었다. 차이라고는 불과 2%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에의 의지는 ‘사실’이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128
우리는 단순히 그 자신에 대한 자아표현에 의해서 가치를 다루고자 하는 경향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로고스’ 혹은 ‘의미’는 실존 그 자체에서 떠올랐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존과 맞서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실천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의미가 진실로 단순한 자기표현에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소망에 대한 투사6)일 뿐이라면 의미는 그 즉시 요구적이고 도전적인 특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용기를 불러일으키거나 북돋아줄 수 없게 되고 만다. 이는 흔히들 본능적인 충동의 승화라고 일컫는, 칼 구스타프 융7)이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8)이라고 불렀던 현상에도 적용된다. 그런 까닭에 후자는 소위 인류 전체의 자기표현일 수도 있는 것이다.
129
인간이 갖는 의지 역시 좌절을 당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 로고데라피에서는 ‘실존적 욕구불만(또는 좌절)’이라고 부른다. ‘실존적’이라는 낱말은 세 가지 면에서 그 뜻을 존재하는 특이한 양식이다.
(1) 실존적 그 자체. 이는 인간이 존재하는 특이한 양식이다.
(2) 실존적 ‘의미’
(3) 개인적 투쟁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투쟁. 즉, 의미에의 ‘의지’ 등에 언급될 수 있다.
131
심령적 신경증은 충동과 본능의 갈등에서 드러난다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가치의 갈등에서 발생한다. 바꾸어 말하면 도덕적인 갈등, 혹은 보다 일반적인 면으로 말해서 심령적인 문제에서 야기된다. 이러한 문제들에서 실존적 욕구불만이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심령적 증세에 있어서 적절하고 완전한 요법은 일반적인 심리요법보다 로고데라피 요법인 것이 분명하다. 이 요법은 인간실존의 심령적 차원에도 과감히 뛰어들어 다루는 요법인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로고스’는 희랍어로 ‘의미’를 뜻할 뿐만 아니라 ‘심령’도 뜻한다. 인간의 의미있는 실존적 열망이나 이 열망의 좌절 등과 같은 심령적 문제들은 로고데라피에서 ‘심령적’인 견징서 다루어진다. 그러니까 그러한 문제점들을 로고데라피에서는, 단순히 무의식의 뿌리와 원천을 더듬어 올라가는 ‘본능적’인 견지에서 다루려 하지 않고 심령적인 견지에서 진지하고도 열의 있게 다루게 된다는 것이다.
132
어느날 상당한 지위에 있는 미국인 외교관이 정신분석 치료를 계속 받기 위하여 비엔나에 있는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이미 뉴욕에 있는 분석가로부터 5년간이나 치료를 받아온 터였다. 나는 그를 대하자마자, 왜 나와 상담을 하여야겠다고 작정했으며, 애당초 정신분석을 받게 되었던 이유를 물었다. 결국 환자는 자기의 직업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미국 외교정책의 수행을 가장 어려운 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헌데 그의 분석가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와 화해하도록 노력하여야 된다고 수없이 되풀이하여 충고하였다. 이유는 그의 상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정부가 그의 부친의 심상9)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직업에 대한 불만은 그의 아버지에게 무의식적으로 품게 된 증오심에 기인한 결과였다고 하는 설명이었다. 5년이란 세월에 걸쳐 분석을 받는 동안에 환자는 분석가의 설명을 더욱 더 받아들이도록 암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상징과 표상의 나무들로 가려진 숲의 실재를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몇 번 상담을 나누게 된 후 나는 그의 직무로 인해 의미에서 의지가 좌절되었고, 다른 종류의 일에 종사하고 싶다는 소망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에 종사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업을 바꾸었고,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직업에 종사한지도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는 최근의 자기가 여전히 흡족한 마음으로 새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 경우에는 나는 신경증 환자를 다루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정신요법은 물론, 로고데라피의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였다. 실제로 그는 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 내면적으로 겪고 있는 갈등이란 갈등이 모조리 신경증일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정상적이고 건전한 것이다.
……
나는 인간의 실존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든가, 혹은 그 의미를 의심한다든가 하는 모든 경우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어떠한 질환에서 파생되었다거나 초래하였다는 사고방식은 단호하게 부정하고 싶다.
132 ~ 134
로고데라피는 환자를 도와 그의 삶에 있는 의미를 찾는 것으로서 그 연구 과제를 삼고 있다. 또한 환자의 실존에 숨겨진 ‘로고스’를 자각토록 만들어주는 까닭에 하나의 분석적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범주에서 로고데라피는 정신분석과 흡사하다. 하지만 로고데라피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다시 의식토록 해주려고 시도한다. 그러한 시도에서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본능적’ 실상에 대한 활동력을 제한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충족되어야 할 그의 실존이 잠재하고 있는 의미와 같은 ‘심령적’ 실체들을 ‘의지’에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배려한다. 어떠한 분석이라도 그 치료의 과정에서 정신론적이나 혹은 심령적 범위를 포함하지 않도록 삼가야 한다 하더라도 환자가 생존의 한복판에서 실제로 동경하고 있는 바를 깨우칠 수가 있도록 하여 주려고 노력을 한다. 로고데라피는 정신분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고데라피는 인간을 단순하게 충동과 본능에 대한 만족과 충족, 이드10)와 자아11) 그리고 초자아12)의 사웅된 욕구의 단순한 조화, 혹은 사회와 환경에 대한 단순한 적응과 조정에만 주된 관심을 가진 존재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보다 오히려 의미의 충족과 가치의 실현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자 한다.
……
확실히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추구는 내면적인 균형보다 내면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이러한 긴장은 정신 건강의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 세상에 최악의 상태에서도 인간이 잔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감히 말하거니와 그런 일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하는 인식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니체가 한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그의 말에 많은 예지가 담겨있는 것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도 참고 견디어 나갈 수 있다.”
나는 니체의 이 한 마디 말에 어떠한 심리요법에도 유효적절한 좌우명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35 ~ 136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긴장의 상태라기보다 그에게 어떤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한 노력과 투쟁이다.
……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항상성이 아니고 “심령역학”이라고 내가 부르는 것이다. 심령 역학은 긴장이란 일종의 자극장에서 한쪽이 극이 실천되어야 할 의미에 의해 나타낸다고 한다면 다른 한쪽은 극은 그 의미를 충족시켜야 할 인간에 의하여 나타내게 된 것이다.
……
건축가가 오래된 아치를 견고히 하려고 할 때는 그 아치의 무게를 ‘증가’시킨다. 이렇게 되면 아치의 각 부분은 강하게 밀착되고 튼튼해진다. 따라서 요법가는 환자의 정신 건강을 촉구하고자 원할 때 삶의 의미에로 향하게 하는 재교육을 통해서 환자에게 증가시켜야 할 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137
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들어와 광범위하게 퍼진 현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기 때문에 입어야 할 이중적인 손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역사의 초창기에 인간은 동물의 행위가 깊이 마음속에 새겨지고, 또 그로 인해 안전을 지킬 수 있었던 기본적인 동물의 본능 일부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간은 선택을 해야 했다. 헌데 이와 더불어 인간은 보다 최근의 발전으로 또 다른 한 가지를 상실하는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인간의 행위를 뒷받침해주었던 전통이 이제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일러주는 본능도 없고, 그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그에게 알려주는 전통도 없다. 때로 그는 그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고(순응주의),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원하는 일(전체주의13))을 하거나 한다.
비엔나 외래 진료소의 신경과에 있는 의료진을 지휘하여 나는 환자들과 간호원들을 대상으로 횡단면적 및 통계적인 관찰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이 연구결과 질문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55%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실존적 공허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한다면, 그들 가운데 반수 이상이 삶의 뜻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의 공허는 주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분명해진다. 이제 우리는 쇼펜하우어가 인류는 영원히 고민과 권태라는 양극 사이에서 시계의 추처럼 오락가락하도록 분명히 운명지어졌다고 말할 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오늘날에 있어서는 권태가 고민보다 더 많은 풀어야 할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으며, 또 정신병 의사에게 제기하고 있다.
……
예로써, 요즘 신문지상이나 잡지에서 많이 거론되는 ‘일요병’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는 일종의 우울증으로서, 사람들이 바쁘게 설치던 일주일이 지나고 그들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던 공허가 명백하게 되었을 대 그들의 삶에 결여된 만족감을 의식하게 됨으로써 앓게 되는 증세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자살의 경우들이 이러한 실존적 공허로 그 원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알콜중독이나 청소년 범죄 등과 같은 폭넓게 퍼진 현상은 그 밑에 이와 같은 실존적 공허가 뒷받침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실존적 공허가 나타날 때 갖가지 탈을 쓰거나 위장을 한다. 때로 의미에의 의지가 좌절을 당하게 되었을 때 가장 원시적 권력에의 의지와 황금만능에의 의지를 포함한 권력의 의지가 그 대신으로 보상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좌절이 종종 성적 보상으로 끝나게 되는 이유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우리들은 성적인 리비도14)가 실존적 공허 속에서 만연하게 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138 ~ 139
궁극적으로 인간은 그의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질문을 받은 쪽이 그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모든 사람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대답으로써 삶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로고데라피는 책임에서 인간 실존의 적나라한 본질을 찾는다.
141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로고데라피 요법자의 역할은 화가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안과 전문의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그가 본대로 세상의 풍경을 우리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안과 의사는 실재의 모습 그대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따라서 안과 의사의 역할은 환자의 시야를 넓히고 확대해주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의미와 가치를 환자가 인식하게 되고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로고데라피는 환자에게 어떠한 판단도 내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실제에 있어서 진실은 저절로 내려지고 간섭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인간 실존은 본질적으로 자아실현이라기보다 자아초월(self-transcendence)인 것이다. 자아실현이란 가능한 목적이 아니다. 단순한 이유로, 인간이 자아실현을 위해 투쟁하면 할수록 자아실현의 목적이 자꾸만 빗나간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인간이 삶의 의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자신을 떠맡는 만큼 그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뿐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자아실현은 그것 자체로서 목적을 삼는다면 얻어질 수 없고, 오로지 자아초월의 부산물로만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142 ~ 143
한 번은 나이 지긋한 개업의가 심한 우울증으로 상담차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2년 전에 아내를 잃은 몸이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아내를 사랑했던 그는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 이제 내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나는 그에게 어떠한 충고를 해주는 것도 삼갔다. 그러나 그 대신 다음과 같은 문제를 그에게 제기하였다.
“선생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선생의 부인께서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 그는 말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내가 먼저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죠. 그녀가 어떻게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겠소?”
그래서 그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부인께서는 그와 같은 고통을 면하신 거죠. 더구나 그녀의 그와 같은 고통을 모면케 해주신 것은 선생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께서 살아남으시고 그녀를 애도함으로써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나의 손을 잡고 흔들었으며, 그리고 조용히 침착하게 나의 사무실에서 나갔다. 고통은 희생의 의미처럼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된 순간에 어떤 면에서 고통이 될 수 없었다.
물론 이는 타당한 의미에서 치료가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의 절망은 병이 아니었다. 둘째, 나는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없었고, 그의 아내를 소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나는 그의 변경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자세를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므로 그 순간부터 그는 적어도 그가 받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주된 관심이 즐거움을 얻거나 아픔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의 삶에서 의미를 찾도록 하자는 것이 로고데라피의 기본적 원리의 하나이다.
144 ~ 145
전통적인 정신요법은 환자가 일할 수 있고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주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로고데라피는 이 목적을 내포하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되찾아주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필요하다면 고통 속에 숨겨진 의미까지 발견토록 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죠지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에디즈 바이스코프 요엘슨 여사는 그녀의 로고데라피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정신위생학적 철학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복하여야 하며, 불행은 적응불능의 징후라는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 체계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짐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그것 자체의 불행에 의해 증가되고 있는 엄연한 사실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논문에서 그녀는 로고데라피가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의 환자가 그의 고통에 자랑을 느낄 수 있고, 고통이 품위를 떨어뜨리기는커녕 고귀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미국의 오늘날 문화에서 나타나는, 건전하지 못한 추세를 중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불행할 뿐만 아니라 불행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145 ~ 146
강제 수용소에서 내가 겪은 바는 가장 깊은 의미의 체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정확한 통계에 의해서 입증될 수 있듯이 28대 1도 되지 않았다. 내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나의 코트 안쪽에 감추었던 나의 첫 번째 책이 될 원고 뭉치가 건져질 수 있게 될 가능성은커녕, 있음직도 않아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정신적 아들을 잃은 고통을 당해야 하였고 극복해야 하였다. 헌데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고, 벌거숭이 내 몸뚱어리 이외ㅇ는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자신의 친자식이나 정신적인 자식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상황 아래 놓인 나의 삶이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텅 빈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에 직면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그토록 성의와 열의를 다해서 얻으려고 하던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고, 따라서 곧 그 해답이 나에게 주어지리라는 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답이 주어질 기회가 곧 닥쳐왔다. 그러니까 내가 수용소에 도착하여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내주는 대신 아우슈비츠 철도역에 도착하는 즉시 가스 처형실로 보내진, 재소자가 입고 있던 넝마와 같은 옷을 배급받게 되었다. 그 넝마가 된 윗저고리의 주머니 안에서 많은 페이지의 기도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기도서는 주요한 유대교의 기도문, 세마 이스라엘(Shema Yisrael)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이 우연의 일치야말로 무엇보다도 나의 사상사고를 단순한 종이에만 옮기지 말고 실천하라는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얼마 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내가 곧 가까운 장래에 죽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절대적인 위기 상황에 처했어도 나는 대부분의 나의 동료들과는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의문은, “우리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할 때 이 모든 고통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이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이, 주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의미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이곳에 살아남는다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삶의 의미가 그와 같이 우연한 일―도피할 수 있든 없든―에 좌우된다면 궁극적으로 삶의 보람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146 ~ 148
어느 날 열한 살 난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후 나의 진료소로 찾아왔다. 나의 보조원인 코코렉 박사는 그녀를 치료받고 있는 한 그룹에 가입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진료실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코코렉 박사가 심리극(psychodrama)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아들을 잃어버린 그 어머니가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때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아들을 잃은 후 다른 아들, 죽은 아들의 형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이 불쌍한 소년은 움직일 때마다 그 누가 있어서 그가 앉아있는 의자를 밀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불구가 된 아들을 바라보고 살게 된 그의 어머니는 끝내 그녀의 운명에 반기를 들었다. 그녀는 불구가 된 아들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그러나 다리를 절룩이는 아들은 어머니의 그와 같은 행동을 반대하고 막았다. 그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아직도 의미있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어째서 그의 어머니는 자살을 해야 하는가? 어째서 어머니는 아직도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녀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인가?
즉흥적으로 나는 그 토의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그 그룹에 끼어있는 다른 부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먼저 그녀에게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서른이에요.”
나는 즉시 응수했다.
“아니오. 당신은 서른 살을 먹은 것이 아니고 팔십이오. 그리고 죽음의 침대에 누워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소. 자, 이제 당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시오. 당신의 생애에 자식을 갖지는 못하였지만 재정적인 성공과 사회적 명성으로 가득찬 삶이었소.”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지금 이 상황에 처해 있는 기분이 어떠냐고 생각해보라는 청을 하였다.
“당신은 지금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리고 당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죠?”
이제 토의가 계속되는 동안 녹음기에 수록된, 그녀가 진실로 한 말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오, 나는 백만장자에게 시집을 갔었죠. 나는 경제적으로 아주 풍족한,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며, 한껏 기분대로 살 수 있었죠. 나는 사내들과 놀아나기도 했고, 또 사내들을 농락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지금 나는 여든 살이에요. 나는 내가 낳은 자식도 없어요. 이제 늙은 여자가 되어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니 도대체 무어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알 수가 없구만요. 나는 진실로 말하고 싶어요.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 실패자였어요!”
그리고 난 후에 나는 불구자의 아들을 가진 어머니에게 그녀가 살아온 삶을 비슷하게 생각해보도록 청했다. 이제 녹음기에 수록된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했어요. 그리하여 그 소망을 이룰 수가 있었어요. 아이 둘을 낳게 되었는데 모두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만 한 아이가 죽고 말았어요. 남은 한 아이는 다리를 저는 불구였어요. 만약 내가 그 애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 애는 공공기관으로 보내졌을 거예요. 그 애는 다리를 저는 불구의 몸이고 가망이 없었지만 역시 내가 낳은 자식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위해 가능한 보람이 있는 삶을 보낼 수 있도록 할 거에요. 그리고 나의 아들이 보다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보살펴 줄 작정이에요.”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소리내어 말을 계속하였다.
“나 자신으로 말하면, 나의 삶을 차분한 심정으로 돌아볼 수 있어요. 나의 삶은 의미로 가득찼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그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 노력했으니까요. 나는 최선을 다했어요. 나의 삶은 결코 실패자가 아니에요!”
그녀는 임종하는 자기의 침대에서 자기의 삶을 관조하듯 갑자기 그녀가 삶에 포함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의미야말로 그녀가 겪은 모든 고통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깨달음으로써, 예를 들면 그녀의 죽은 애와 같이 짧은 기간의 삶이라 할지라도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찼던 삶이 팔십년이란 세월 속에 영위된 하나의 삶보다 많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여실하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148 ~ 150
궁극적인 의미는 인간의 한정된 지적 능력을 필연적으로 능가하고 초월한다. 로고데라피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초월의 의미로 부른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실존 철학자들이 가르치듯이 삶의 무의미함을 견뎌 내는 데 있지 않다. 모름지기 합리적인 설명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절대적인 무의미함을, 그의 무능력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보다 더 심오하다.
정신의학자가 초월의 의미에 관한 개념에 통달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그의 환자에 의해 당황해지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나는 여섯 살 먹은 나의 딸애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그와 똑같은 당황을 맛보아야 하였다.
“왜 아빠는 착하신 주님이라고 하나요?”
그래서 나는 대답하였다.
“몇 주일 전 너는 홍역을 앓았었지?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착하신 하느님은 너를 회복시켜 주신 거란다.”
헌데 어린 딸애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말에요, 맨처음 주께서 나에게 홍역을 앓게 해주신 것을 왜 잊었나요?”
151
예기적 불안(anticipatory anxity) 같은 공포의 특징은 정확히 말해서 환자가 두려워하는 그것 자체가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로써, 어느 커다란 방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제에 있어서 얼굴을 붉히게 된다. 이런 점을 볼 때 “소원은 생각의 아버지”라는 한마디를 “공포는 결과의 아버지”라고 돌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풍자적이지만 공포 자체가 두려워하는 바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요된 의도는 매우 강한 욕구를 이루어주지 못한다. 이와 같이 과잉된 의욕, 또는 내가 부르고자 하는 ‘과다한 의욕(hyper intension)은 특히 성적 신경증에 관찰될 수 있다. 남자가 자기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 여자가 오르가즘을 체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또 여자가 오르가즘을 체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의 성공률은 반대로 적어지게 마련이다. 쾌락은 부차적으로 얻는 결과 혹은 부산물이며, 또 반드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쾌락 자체에 목적을 두게 될 정도가 되면 쾌락은 망쳐지게 되고 결딴나게 될 것이다.
155
어느 날 젊은 의사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땀을 많이 흘리는데 대한 공포로 나와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그가 발한증이 터지리라고 예상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발한작용은 찾아들곤 하였다. 이와 같은 예상적인 불안은 과다한 발한작용을 촉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와 같은 순환형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환자에게 충고하였다. 땀이 다시 나려고 할 경우에 그가 얼마나 흘릴 수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여유 있게 보여주기 위해 작정하라고. 한 주일이 지난 후 그는 보고차 다시 나를 찾아왔다. 즉 그는 그의 예상적 불안을 야기시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만나기만 하면 다시 자신에게 타일렀다.
“지난 번 나는 한 쿼터밖에 땀을 흘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적어도 열 쿼터는 흘려야지.”
그 결과 그는 이미 그의 공포증에서 비롯된 고통을 사년이나 겪어온 지금 단 한 번의 치료로서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 시일에 영원히 헤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과정이 환자의 공포가 역설적인 소망으로 대체되는 까닭으로 환자의 자세가 완전히 뒤집히는 데 있다는 것을 주의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치료로써, 불안이라는 돛단배의 바람이 머리로 돌아서 바람 길을 막게 되는 것이다. 즉, 환자의 허를 찔러 불안을 제거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정은 선천적인 유머 감각에 자아초월을 할 수 있는 특수한 인간능력을 반드시 이용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은 로고데라피적 테크닉에서 부르는 ‘역설적인 의도’를 적용시킬 때마다 실현될 수 있다. 동시에 환자는 그 자신의 신경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자기를 떼어놓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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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경우의 환자는 경리계 직원이었다. 그는 많은 의사들과 몇 곳의 진료소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아무런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가 우리 진료소로 찾아왔을 때 그는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스스로 자살할 지경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였다. 몇 년 동안 그는 손가락 경련의 증세에 고통을 당해왔는데 최근에는 아주 심각해져 잘못하면 직장에서 쫓겨날 곤경에 빠져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즉각적이고도 단기간의 치료로서만이 그와 같은 상황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의 동료는 환자에게 평소처럼 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해보라고 충고하였다. 그러니까 가능한 단정하게 알아보기 쉽게 글을 쓰는 대신에 가장 심하게 개발과 같은 글씨체로 휘갈겨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충고를 받고 그는 자기 자신에 다짐을 했다.
“이제 내가 얼마나 심한 악필인가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지.”
그런데 그가 일부러 글씨를 휘갈겨쓰려고 하는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튿날 그는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나는 글씨를 마구 휘갈겨보려고 했습니다만 어쩐지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48시간도 채 되지 못하는 사이에 이 환자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의 손가락 경련이란 증세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치료된 후에도 상당한 관찰기간 동안 재발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다시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그의 작업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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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는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데 장애를 가진 환자였다. 그의 외래진료소의 인후과에 있는 동료로부터 나에게 소개되었다. 나의 동료는 몇 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대해 보았지만 이 환자와 같이 아주 심한 말더듬이는 처음 본다고 하였다. 그만큼 이 환자는 심한 언어의 장애를 일으키고 있었으며, 그의 기억으로 말을 더듬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딱 한 번 그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열두 살 때 일어난 일이었다. 열두 살 때 그는 어린 마음으로 차표도 없이 전차를 탔다. 공짜로 전차를 탐보겠다는 심산이었는데 불행히도 그만 차장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차장에게서 무사히 놓여나는 길은 차장의 동정을 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말더듬이 소년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헌데 그가 더듬이의 말을 하려는 그 순간, 그는 말을 더듬거릴 수가 없었다. 말한 것도 없이 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설적인 의도를 실천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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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공포는 잠을 자야겠다는 과잉된 의도와는 반대로 환자가 잠을 잘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자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 반대 방향, 즉 가능한 오랫동안 깨어있도록 노력해보라고 나는 종종 환자에게 충고한다. 다시 말하면, 잠을 자야겠다는 과잉 의도는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적 불안으로 야기된 것인 바, 반드시 잠을 자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의도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곧 잠들게 될 것이다.
160
신경증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이상 심리(콤플렉스)와 갈등 그리고 신체의 외상 등이 때로는 신경증의 원인이라기보다 신경증의 증후가 될 수 있다. 해변가의 바위가 썰물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썰물이 바위를 드러나도록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61
지금까지 우리가 관찰해 왔듯이 예상적 불안은 역설적 의도로 반드시 중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과잉 의도와 과잉 반영도 반드시 약화된 반영으로 중화시켜야 한다.
……
순환 형성을 깨뜨리는 것은 연민이나 멸시든 간에 신경 질환자의 자기관심이 아니다. 치료의 실마리는 어디까지나 자아초월에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아무것도 아닐 뿐’이라는 인간의 가르침에 본래부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것도 아닐 뿐’이라는 이론은 인간이 생물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여러 조건의 결과나 유전학과 환경의 산물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을 본다는 것은 그 자신을 인간 이하의 로보트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이 신경증적인 숙명론은 인간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정신요법에 의해서 조장되고 강화되었다.
163
너무나 오랜 기간, 정확히 말해서 반세기 동안 정신의학은 인간의 마음을 단순한 기제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신적 질환의 치료를 한낱 테크닉으로만 간주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꿈속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지평선 너머로 아련히 떠오르고 있는 것은 심리학적인 의학의 윤곽이 아니고 참된 사랑으로 이루어진 정신의학의 모습이다.
하지만 주로 시술자로서 그 스스로의 역할을 아직도 해명하고자 하는 의사는 질병의 뒤에 숨겨진 인간을 보고 있는 대신 환자를 하나의 기계 이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사물 가운데 놓여있는 한 가지 물건이 아니다. 물건은 각기 서로를 결정한다. 그런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아결정적 존재이다. 인간은 타고난 재능과 환경의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 자신이 가꾸고 일구어야 할 것이다.
……
결국 인간이란 아우슈비츠의 가스 처형실을 고안해 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주님의 기도문이나 세마 이스라엘을 입으로 외우며 곧장 가스처형실로 들어서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167 ~ 168
제3부 무의식적인 신
내가 아는 한 독특한 인간의 현상인 웃음이 있는 곳보다 우리를 매우 편안하게 하는 곳은 없다고 본다. 그대는 그 누구에게도 웃음을 명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그를 웃기려고 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던져야 할 것이다.
176
종교가 존속하려면 철저하게 개인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77
큰 불꽃이 강풍에 더욱 거세어지는 반면 조그만 불꽃은 그로 인해 꺼져버리는 것처럼 강한 신앙은 곤경과 재난에 의하여 더욱 굳건해지는 반면 연약한 믿음은 그로 인해 약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78
정신분석은 객관성만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에 굴복하고 있다. 객관성은 결과적으로 객관화, 혹은 물상화로 이르게 된다. 즉, 인간 객체가 목적이 되고, 인간 존재는 사물로 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환자를 한낱 ‘기제’에 지배받는 존재로밖에 보지 않으며, 요법가들을 그와 같은 기제를 조종할 줄 아는 사람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요법가는 장애를 일으킨 기제들을 치료할 수도 있는 테크닉을 알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다.
……
어찌하여 정신분석가들은 기술적으로 주의를 요하는, 기계적인 관점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이 점에 관해서는 정신분석학이 발달하게 된 지성적 풍토를 고려한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시대의 사회적 환경이란 전후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로 말하면 그야말로 점잔만 빼는 사회환경이었다. 사실상 오늘에 있어서는 많은 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정신분석이 한 시대의 반응, 즉 반동이었다. 사실상 오늘에 있어서는 많은 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정신분석이 한 시대의 반응, 즉 반동이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반동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비단 그의 시대에 반동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였다. 그가 그의 강의 내용에 반동을 형성하게 되었을 때 그는 연상주의의 영향과 감화 아래 철저하게 반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연상주의(연술상)는 심리학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상주의는 19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이념인 자연주의의 산물이었다. 프로이트의 교수법의 내용을 보면 정신분석의 두 기본적인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하고 있다. 즉, 심리학적인 원자론과 정신적 에네르기의 이론을 가장 특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정신을 전체적인 하나로 보고 있다. 원자론적으로 정신을 각기 떨어져 있는 조각을 짜 맞춘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각기 떨어져 있는 조각, 혹은 부품은 물론 다양한 충동을 말한다. 이 충동이 차례로 소위 ‘충동적 구성요소’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정신은 원자로 분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현상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정신의 분석은 정신의 해부학으로 화하고 만다. 이와 똑같이 인간 개체의 전체성은 어떤 의미에서 파멸되고 만다. 심지어 정신분석이 인간을 비인격화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반면, 정신분석은 정신의 전체성 안에 있는 개인적인 양상을 인격화한다. 개인적인 양상은 종종 서로 간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양상은 인격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악마처럼 변화하기도 한다. 어떤 때이냐 하면, 이드 혹은 초자아가 마치 상관적인 독립체처럼 그 자체에 의인화한 힘을 다루게 되었을 때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방향으로 통일된 인간 개체의 전체를 파괴한다. 그런 연후에 조각들 가운데서 전체적 인간의 재구성이란 과제에 착수한다. 에고가 ‘에고의 뭇 충동’에서 형성된다는 것은 프로이트의 가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 가설에 의하면 충동을 억압하는 검열관 자체가 바로 하나의 충동이란 것이다.
180 ~ 181
심리학적 현상은 충동과 본능으로 격하되고, 그와 같이 전체적으로 영향과 원인이란 의미에서 본능과 충동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충동에 강요받는 존재라는 견지에서 정신분석에 의하여 하나의 우선적인 존재로 설명된다. 이 또한 에고가 하나의 구성원이란 자격을 박탈당하였다가 충동으로 다시 구성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원자론적, 에네르기적, 그리고 기제적 개념으로서 정신분석은 인간을 마지막 분석에서 정신적인 기관의 자동장치(또는 자동인형)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실존분석이 등장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실존분석은 정신분석적인 것과 대조적인 또 다른 인간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제 실존분석은 정신적 기관의 자동장치보다 심령적 실존의 자동장치에 초점을 집중하고 있다. ‘심령적’이라 함은 물론 제2부에서도 지적한 대로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다루게 된 특수한 인간적인 현상(다른 동물과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는 인간에 가까운 현상과 대조적인)을 오히려 똑바로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심령적’이라 함은 사람에게 있는 인간적인 것이다.
……
실제에 있어서 실존분석은 인간의 실존과 더불어 인간적인 존재 및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182 ~ 183
로고데라피의 형태에 있어서 실존분석은 신경질환의 생활양식을 가진 독특한 존재와 연관되어 있고, 특히 신경질환이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책임감을 깨닫도록 하는 데에 집중하여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신요법적 수법을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가 보듯이 실존 분석에 있어서도 인간이 그 어떤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인간이 본능적인 것에 관하여 의식케 되는 반면에 실존분석이나 로고데라피에서는 인간이 그 어떤 심령적인 것, 혹은 실존적인 것을 의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영성(spirituality), 혹은 실존의 관점에서만이 책임진ㄴ 존재라는 말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존 분석에 있어서 의식케 되는 것은 충동이나 본능이 아니다. 이드의 충동도 아니고, 에고의 충동도 아니며, 바로 자아인 것이다. 실존분석에서 이드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에고가 아니라 자아이다. 따라서 자아와 자아의 영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3 ~ 184
프로이트는 그가 이름을 붙인 이드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본능적인 것밖에 보지 못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무의식은 가장 우선하는 억압된 본능의 저장소였다. 그러나 심령적인 것에 무의식적인 것이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실존의 근본은 결코 충분히 반영될 수 있고, 또 충분히 그 자체를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실존이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일 수 있다.
……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은 매우 유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기 때문에 그 영역은 언제나 침식될 수 있다.
185 ~ 186
실존은 무의식적일 때라 하더라도 확실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으로 인간은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존재할 뿐이다. 확실히 실존은 자아가 그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곳에 나타나는 것이지, 이드에게 강요당하는 곳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이 인간 실존을 이드화하고 또 비자아화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단순한 부속적 현상으로 격하시킨 한, 자아를 버렸으며, 이드에게 넘겼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프로이트는 본능적인 것만 보았지, 심령적인 면을 간과하였다는 점에서 무의식을 더렵혔다.
186 ~ 187
우리는 인간적인 존재가 언제나 객관화된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 핵심이 인격(person)이며, 막시 쉴러의 말을 빌리면 이 인격이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심령적 활동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심령적 인격 중심이 외면의 정신물리학적 층(켜)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심령적 실존과 정신물리학 실재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신에 심령적인 인격과 ‘그것의’ 정신물리학의 외연에 관해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에 의하여 우리는 인격이 심령적‘인’ 반면에 정신물리학적 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자아는 ‘나의 자아’, 심지어 ‘내 자신’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진실로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아‘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한다면, 나는 이드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확히 정신 물리학적 사실성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188
인간 존재의 구조가 연관된 만큼 우리는 지금까지 표층의 본보기 대 계층(stratum) 본보기에 우선하여 왔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쉴러가 제출한 본보기인 중심이 같은 표층의 본보기로 무의식, 전의식과 의식 계층의 종단적 체계와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계층의 본보기를 표층의 본보기와 결합시킴으로써 한걸음 더 나아가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중심이 같은 표층을 3차원적인 구조의 평면도로 상상할 수 없는 이유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인격적 핵심―외면의 인체적 및 정신적 표층(켜)으로 둘러싸인 심령적 중심―을 늘이게 된다고 상상하기만 한다면 인격적 핵심을 하나의 축(굴대)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축을 늘릴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축을 감싸고 있는 주위의 표층과 더불어 전의식, 의식, 무의식 전반에 걸친 계층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는 두 이원적 본보기를 합침으로써 하나의 3차원적인 본보기를 만들어 냈다. 이제 먼저번의 두 본보기는 하나로 화해서 삼원적인 본보기의 이원적 도안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도안이 우리가 묘사하고자 하는 인간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어떠한 인간적 현상이라도 인격적 축, 혹은 인체적―정신적 표층에 속하든 간에 무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의식의 선상에서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심층의 심리학’에 관한 쟁점을 논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개념의 의미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심층 심리학은 인간을 더듬어 인간 본능의 심층까지 들어가게 되었으나 인간의 심령에는 거의 파고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심층’은 무의식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인격은 인격의 심층, 심령은 심령의 심층, 또는 그런 점으로 인간 실존이 그 심층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무의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즉, 심령적인 활동은 심령적 행위의 집행자로서 인격에 너무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가 무엇인지 반영할 능력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자아는 종합적 자아반영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 실존은 기본적으로 반영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그 자체 안에 존재한다. 인간 실존은 반영으로보다 오히려 행위에 존재한다.
이난 실존이 그 자체에 의하여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 충분히 분석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실존적 분석이 될 수 없으며, 실존에 대한 분석만이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 실존은 한 근원적 현상으로 남는다. 근원적 현상이라 함은 분석될 수 없고 변형될 수 없는 현상이다.
188 ~ 190
망막은 정확히 말해서 애시당초부터 망막에 해부학에서 시각적 신경의 입구라고 부르는 곳에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심령은 그 근원적 발생부터 ‘맹목’적, 자아관찰과 그 자체를 반영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심령이 ‘원초적’ 심령이며 그 자체로 충분하였을 때 역시 그 자체에 무의식적이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인도의 베다(veda)에 적혀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 있다는 것이 본 것일 수도 없고, 듣고 있는 것이 들은 것으로 될 수 없다. 따라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될 수 없느니라.”
191
양심의 현상은 심령적 무의식의 개념을 한걸음 더 나아가 설명하고자 하는 본보기로서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양심은 책임감과 더불어 참된 근원적 현상이며, 결정적인 존재 또는 확고한 존재로서의 인간존재가 타고난 별변의 현상이다. 이제 우리가 앞에서 이론적으로 끌어내고자 하였던 문제들은 양심의 현상을 매체로 하여 현상학15)적으로 그 자체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양심은 무의식의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뻗쳐나고 있다. 그리고 양심의 현상은 중요하고도 실존적으로 확실한 제 결정으로, 그러한 결정들은 전혀 무분별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정확히 그 발생의 시작에서부터 양심은 무의식에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하겠다.
193
사랑 역시 그 과녁이 특이하다는 점에서 양심과 병행한다. 양심이 각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잠재하고 있는 가능성의 특이성에 겨냥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잠재하고 있는 독특한 가능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더욱이 사랑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받는 사람의 독자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준다. 이와 같은 뜻에서 사랑은 뜻 깊은 의식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런 점은 고대 희랍 사람들이 사랑의 행위와 인지의 행위에 똑같은 글자를 사용하였을 때 이미 이해하게 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
확실히 배우자의 선택은 충동에 의하여 지시를 받지 않았을 때만이 유일하게 참된 선택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무의식적인 심상이며 한 마리의 ‘성충(image)'이 나의 ’선택‘을 결정하는 한 그 사랑은 사랑의 본질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자아가 이드에 의하여 강요를 당하고 그대에게 향하는 한, 그것 역시 사랑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사랑하고 있다면 자아는 이드에게 강요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가 그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196 ~ 197
우리는 언제나 가능한 의식적으로 연주하려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경우를 알고 있다. 바이올린을 그의 어깨에 얹어놓는 일부터 가장 시시한 기술적인 사항에 이르기까지 그는 의식적으로 자아반영에 가득찬 연구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의식적인 연주는 철저한 예술적 실패로 이끌어졌다. 치료는 자아반영과 자아관찰, 혹은 로고데라피에서 전문적 용어로서 ‘과잉 반영’이라고 불려지는, 지나친 경향을 제거하는 수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요법은 로고데라피에서 ‘반영 약화’라고 부르는 수법에 목표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치료는 환자에게 의식보다 무의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더 예술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여 줌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무의식에 대한 믿음을 되찾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실제에 있어서, 이와 같은 치료는 그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예술적 ‘창의력’의 개방으로 그의 무의식에 환자가 의지하도록 바로잡아 주자는 것이다. 반영의 약화는 전혀 불필요한 반영의 결과로 묶여있던 금제로부터 창작적인 과정이 풀려나게 하였다.
198 ~ 199
심령적인 자아 그 자체가 무의식의 심층에 깊이 빠져있는 한, 사랑과 양심이란 예술의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헌데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면, 다시 말해서 의사 정신적 이드가 의식으로 침입해 들어온다면 울는 그 증세가 심인성이냐, 인체성이냐에 따라 신경질환이나 정신병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199
사랑은 공공연한 장소를 피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성스럽게 여기는 것이 공개되었다가 더렵혀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206
순수한 종교관은 그 순수성을 위하여 공개된 장소에서 숨는다. 이것이 바로 신앙심이 돈독한 환자들이 종종 그들의 은밀한 경허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혹시 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는커녕 오해를 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207
강의실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환자들이 그들의 성생활에 관하여 지극히 은밀한 일들은 물론 변태적인 자질구레한일들도 털어놓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이 토의가 그들의 사사로운 삶으로 옮겨지는 순간에는 단번에 난색을 표명하는 것이다.
208 ~ 209
나의 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내가 어떻게 종교적인 것을 모조리 부끄러워하게 되었으며 종교적인 것이 나에게 귀찮고 냉소적인 것으로 보여지게 되었을까? 나는 나의 종교적 동경에 대하여 부끄럽게 느끼고 있는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 27년간에 걸쳐 온갖 정신요법의 치료를 받아오던 동안에 종교에 대한 동경이 비실재적이고 근거 없는 생각에 불과하다는 의사들의 말없는 확신에 다소간 물들고 만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만져질 수 있는 것만이 실재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정신적 외상이나 질환 속으로 도망을 침으로써 삶을 도피코자 하는 소망에 의하여 야기된 허튼 수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에 대한 나의 열망을 나타내게 되면 나는 그들이 나에게 환자 구속복을 입히지 않을까, 하고 대체로 두려워하였다. 지금까지 모든 형태의 심리요법은 그 점을 주의하지 못하고 있다.”
209
모든 자유는 ‘어떤 것에서’ ‘어떤 것에로’의 과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에서’의 인간 자유는 강요받는 그의 존재이다. 그리고 ‘어떤 것에로’의 인간 자유는 책임을 지는 그의 존재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그의 양심이다. 이와 같은 조건의 두 양상은 마리아(Maria von Ebner-Eschenbach)가 내린 단순한 권고의 한마디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너의 의지의 주인이 되고 너의 양심의 종이 될 지어다!”
우리는 이 도덕적 한마디의 명제로부터 우리가 양심의 초월성이라고 불렀던 현상을 밝히고자 하는 바이다.
“너의 의지의 주인이 되어라…….”
나는 인간이고 나의 인간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미 나의 의지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내가 책임감이라는 견지에서 이 인간성을 설명을 하는 한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나의 양심의 종’이 되어야 한다면, 나는 양심이 내 자신이기보다 다른 어떤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게 될 것이다. 즉, 양심은 단순하게 양심의 ‘음성’을 지각하는 자체보다 차원이 높은 어떤 것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말한다면, 나는 인간을 초월한 현상으로서 양심을 이해하지 않는 한, 내 양심의 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양심을 단순히 심리학적 실재성의 견지에서 생각할 수 없고, 반드시 양심의 초월적 본질로서도 양심을 파악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213 ~ 214
양심은 초월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또한 초월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사실은 양심의 변형될 수 없는 성질을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양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면 존재론적인 회담 외에는 달리 심리학적인 해답을 할 수가 없다. 단순한 실재의 변형을 노리는 어떠한 시도, 정신 분석으로 양심을 변형시키려 하는 어떠한 시도라 하더라도 무모한 짓으로 증명된다. 이는 19세기의 작가인 헤벨이 유에슈트리쯔(Uechtritz)에게 보낸 1857년 5월 13일자 편지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양심은 물질주의에 의하여 이끌어질 수 있는 어떠한 가치관에도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누가 양심을 성적 충동이나 번식의 본능으로 깎아내리려고 한다면―만약 벌써 일어나지 않았다면 조만간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지만―그때라도 양심은 설명될 수 없을 것이고, 또 깎아내릴 수도 없을 것이네.”
여기서 헤벨이 예언한 바는 맞아들어 그 동안에 정녕 일어나고 말았다. 사실 정신 분석은 정신 역학적 용어로 양심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여 왔으며, 초자아로 변형시키고, 내사된(introjected) 부친의 심상으로부터 초자아의 계통을 더듬어 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아를 에고와 동일시할 수 없었던 것처럼 양심도 마찬가지로 초자아와 동일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누구이든 자아의 실존성과 양심의 초월성이라는 두 가지의 현상이 지니고 있는 불변성을 반드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전자의 현상에 관해서는 책임질 수 있는 인간 존재가 결코 강요당하고 있는 인간 존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즉, 자아는 충동이나 본능 등 어떠한 것으로 결코 되돌려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아는 충동과 본능을 억압하고 승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자아 자체는 결코 그러한 것들로부터 유래할 수가 없다.
218 ~ 219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언제라도 인간이 행동하고자 원할 때면 원하는 행위는 언제나 그가 마땅히 하여야 할 바에 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218
첫 출발점은 기본적인 현상학적 사실이었다. 즉, 인간적인 존재는 의식적인 존재이며,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의 현상을 묶어서, 소위 인간 책임감의 의식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의 전개는 실존 분석이 무의식적인 심령으로 과감하게 파고든 데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1926년 경 로고데라피, 즉 실존적 분석에 접근의 임상학적 적용은 심령적 차원 혹은 로고스를 포함하는 정신적 및 심리학적 차원 너머로 정신 분석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서, 무의식의 로고스는 본능적 무의식 위에 심령적 무의식의 발견을 들추어냈다. 이러한 무의식적 심층에서 위대한 실존적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 후 책임을 지는 인간 존재가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뻗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따라서 의식적인 책임감 외에도 무의식적인 책임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와 같이 심령적인 무의식의 발견으로 실존적 분석은 정신 분석이 소위 무의식을 이드화함으로써 굴복하게 될 위기를 모면케 해 주었다. 심령적 무의식의 개념으로서 실존적 분석의 로고데라피는 또한 인간에 대한 주지주의와 합리주의의 이론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로고데라피는 논리적인 것보다 심오하다. 따라서 인간이 이미 합리적인 존재로서 결코 간주될 수 없다는 사실은 정신분석가들이 한 것처럼, 맹목적으로 비합리적 및 본능적인 것을 숭배하는, 다른 극단적인 이론에 휩쓸리지 않는 로고데라피에 의하여서 인식케 되었다.
220 ~ 221
지식이란 그 자체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는 한 그 자체를 알 수가 있다든가 그 자체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든가 하지 못한다. 같은 논조로서, 과학이란 그 자체의 내재적 영역을 초월하고 존재론적 제 검토를 받지 않는 한, 그 자체의 결과를 가늠할 수 없고, 그 함축된 뜻을 깨달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현상학적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기 위하여 엄밀한 과학의 경계선을 초월하도록 강요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실험적 의미에서 조사는 존재론적 기대에 어울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실험적이고 임상적 자료를 딛고 선 우리의 굳건한 바탕이 우리가 신학적 도락과 즉석적 추상론으로 명명했던 것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와 같은 바탕을 유지하여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제의 단순한 경험적 사실로부터 시작하되, 이와 더불어 전통적 정신병학적 방법론, 예를 들면, 고전적인 자유 연상법을 우리의 꿈의 분석에 자극한다든가 하는 방법론의 경향에 따라 경험적 사실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그와 같이 하는 한편으로는 현상학적 ‘사실’애도 똑같이 적절한 정성을 바쳐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들 역시‘ 사실에 입각한’ 것들이며, 또한 어떠한 진일보적인 분석적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사실적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분명히 종교를 갖지 않은 환자들로 알려진 사람들이 꾼 언어도단적인 꿈을 고찰하여 보기로 하자. 그러한 꿈들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깨어있을 때는 환자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축복의 황홀한 체험이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현상을 억지로 짜맞춤으로써 우리의 지성적인 공정성을 위반하기로 정하지 않는 한, 그러한 체험 뒤에 반드시 성애적인 뜻이 도사리고 있다고 단순히 주장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상은 설명의 선입견적 유형에 관한 것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이제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잠재적 오역을 다루고자 한다. 무의식이 신성하지도 않았으며, 전지전능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신에 대한 모든 관계 이상으로 심오한 인격적이라는 점뿐임은 충분히 강조될 수 없다. ‘무의식적 신’은 반드시 인간에게 효과적인 비인격적 힘으로 오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칼 융이 저지르게 된 커다란 잘못이었다. 융은 무의식 안에 자리잡고 있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를 발견하였을 때 그러한 요소를 반드시 믿어야 하였다. 헌데 그는 무의식적 인간의 종교관을 부당하게 처리하게 되었고, 인격적 및 실존적 영역에서 무의식적인 신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대신 그는 무의식을 충동과 본능의 영역으로 할당하였다. 이 영역에서 무의식적 종교관은 이미 선택과 결정의 본질을 남길 수가 없었다. 융에 의하면, 나 자신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종교적이나 그렇다고 내가 종교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나의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신에게로 향하도록 강요하나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질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칼 융은 무의식적 종교관을 집단 무의식에 속하는 종교적 원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가 하면 그는 무의식적인 종교관이 인격적 결정에 거의 미치는 바가 없으나 본질적으로 사람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비인격적, 집단적, ‘전형적(원형적)’ 과정으로 변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종교관이 절대로 집단적인 무의식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바로 종교가 아무리 무의식적 기준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행하는 가장 인격적인 결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과정에로 그러한 결정을 남겨둘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융과 그 학파의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적인 종교관이 언제나 본능적인 어떤 것을 다소간 남긴다고 보고 있다. 뱅지게(H.Bȁnziger)씨는 1947년 발행된 『스위스 심리학』지에서 다음과 같이 퉁명스럽게 부르고 있다.
“우리는 성적 및 공격적 충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이 종교적 충동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종교이길래 내가 성에 충동을 강요받는 것처럼 종교에게로 쫓기듯 달려가게 하는 것일까? 내 자신에 관한 한, 나는 어떤 ‘종교적 충동’으로 돌려야 할 종교관에 대해서 조금도 마음에 두고 싶지 않은 바이다. 순수한 종교관은 충동적 강요에 의한 특성을 갖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결정적 성질의 것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사실, 종교관은 종교의 결정적 성향과 일치하고 충동적 성향과는 충돌한다. 간단히 말해서 종교곤은 실존적이거나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함께 융은 이런 관점에서 프로이트와 전혀 다른 것도 없지만, 종교적 양상을 포함한 무의식이 인격을 결정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보았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종교적 무의식, 혹은 그 문제점에 있어서의 심령적 무의식이 무의식에 의하여 충동을 강요받는 존재라기보다는 무의식적 존재를 결정한다는 내용을 취지로 삼고 있다. 우리가 보듯이, 심령적 무의식, 심지어는 그 종교적 양상, 즉 우리가 말하는 초월적 무의식이 본능적 요소라기보다는 하나의 실존적 행위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의식은 심리학적 실재성에 속하기보다는 심령적 실존에 속한다. 물론 이러한 점을 융은 무시하였다. 그는 원형이 “어떤 면에서 대뇌와 연결되어 있는 정신의 구조적 고유성 혹은 조건적 특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논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종교관은 인간 실존의 신체적 및 정신적 조건 문제로 그만 둔갑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실제로, 종교관은 그와 같은 조건을 세우는 심령적 인격의 문제인 것이다.
융이 보았듯이 종교적 원형은 어느 정도 미리 형성된 심리학적 요인과 정신물리학적 실재성에 속하는 것들로서, 파헤쳐질 수 있는 집단적 무의식의 비인격적 형태이다. 이러한 종교로부터 종교적인 원형은 자율적인 힘으로, 그들이 인격적 결정에 독립적이라는 의미에서 자율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관점은 무의식적 종교관이 인류에 의하여 나누어진 심상의 비인격적 웅덩이라기보다는 개체화된 인간의 인격적 중심으로부터 뻗쳐 나온 것이라는 점에 있다.
만약 우리가 무의식적 종교관을 차별하여 심령 및 실존적 특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적인 실재성의 성역에 할당한다던가 한다면 무의식적 종교관은 또한 타고난 어떤 것으로 간주하기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무의식적 종교관이 생물학적 의미에서 형질 유전과 유대를 갖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 종교관은 사람이 타고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모든 종교관이 항상 예정된 일정한 통로와 발전의 유형 안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고나거나 유전되는 원형이 아니라 인격적 종교관을 쏟아 넣은, 미리 준비된 문화적 거푸집 속에 억지로 맞추어넣은 것이다. 이러한 거푸집의 꼴은 생물학적 방향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어진 문화에 전통적 상징들이 토착하고 있는 세계를 통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이 같은 상징의세계는 우리들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 세계 속에 낳아지는 것이다.
223 ~ 226
실제에 있어서, 실존적 분석이 그 요소를 들추어내고 억압으로부터 풀어나게 해줄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가장 참되고 가장 훌륭한 어휘의 뜻에서 어린애같은 신앙과 마주치게 된다.
227
실존적 분석은 현상학적 경험주의라는 엄격한 뜻에서 실체인 것이다. 확실히, 실존적 분석은 또한 무의식으로 남아 있을 수 있거나, 무의식으로 변하던가, 또는 억압되거나 하는 실체인 것이다. 헌데 정확히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 로고데라피의 과제는 환자에게 무의식적 종교관을 깨닫도록 하는 것, 즉 무의식적 종교곤이 다시 환자의 의식적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궁극적인 밑바닥까지 존재하고 있는 신경질환적 양상을 캐내는 것이 실존적 분석의 로고데라피가 수행하여야 할 업무인 것이다. 때로 신경질환이 존재하고 있는 바탕에서 어떤 결함이 발견될 때가 있는데 이러한 결함으로 초월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억압된다.
227 ~ 228
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교는 인류의 우주적 강박적 신경질환이다. 어린애의 신경질환처럼 종교는 외디팔(odeipal) 콤플렉스, 그리고 부친에 대한 친족관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기록을 보면 우리는 프로이트의 말을 뒤엎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감히 강박적 신경질환이 병든 종교관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실제에 있어서, 임상적 증거는 인간이 갖는 종교적 의미의 감퇴가 일그러진 종교적 개념을 결과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혹은 이를 임상적 영역보다 덜한 표현을 빌리면 우리 안에 있는 천사가 일단 억압되면 천사는 악마로 화한다. 심지어 사회문화적 수준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억압된 종교가 미신으로 격호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고 입증하여 왔기 때문이다. 본 세기에 접어들어 신성시된 이성과 과대망상적 공업기술은 억압된 구조인데 이 구조에 종교적 감정은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처한 오늘날 상태의 많은 면을 설명하여 준다. 사실 그와 같은 상태는 ‘인류의 우주적 강박 신경질환’과 비슷하다. 그런데 인간이 처한 오늘날 상태의 많은 면이란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그렇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예외는 종교인 것이다.
229 ~ 230
우리는 종교가 실존적일 때만이, 인간이 어떤 면으로 종교에 강요당하지 않고 오직 신앙을 가지겠다는 자유로운 결정에 의하여 종교에 자기 자신을 맡길 때만이 순수하다고 말하여 왔다. 이제 우리는 종교의 실존성이 종교의 실존성이 종교의 자발성에 의하여 조화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순수한 종교관은 그 여가의 시간을 개방하여야 한다. 그 누구도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순수한 종교에로 향하도록 본능에 의하여 강요당할 수 없으며, 정신 의학자도 아닌 인간을 순수한 종교에로 끌고 갈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31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자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자유는 신 앞에서도 아니오, 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반드시 포함한다. 이와 똑같이 과학의 존엄성 역시 진리에 대한 독립적인 욕구를 보장받고 있는 무제한의 자유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가 아니오, 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듯이 과학적 조사연구의 자유 또한 조사연구의 결과가 종교적 신앙 및 그 신념과 반대되는 것으로 밝혀질 수 있는 위험을 반드시 직시하여야 한다. 그러한 자율적인 사상을 위하여 투쟁적으로 싸울 수 있는 자세를 갖춘 과학자만이 의기양양하게 살면서 그의 연구 결과가 모순당착됨이 없이 드디어 그가 믿고 있는 자리에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존엄성을 말함에 있어서―인간의 존엄서이든, 과학의 존엄성이 되었든―우리는 그 가치가 나에게 반대되는 만큼 그 자체에 있는 어떤 것의 가치로 존엄성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정신요법을 신학의 들러리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신학의 종으로서 자율적인 과학의 존엄성을 강탈할 뿐만 아니라 종교를 위하여 가질 수 있는 잠재적 가치를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요법은 부산물, 혹은 부작용이란 점에 의해서만이 종교에 소용이 될 수 있고, 시작부터 그 효용성이 의도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신 요법이 종교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면 그 경험적 조사의 결과에 의한 것도 아니고, 치료의 요법적 효과에 의한 것도 아니지만 정신요법은 종교적 취향에 따른 어떠한 선입견적 목표의 설정도 반드시 삼갔다는 것이다. 오로지 독립된 연구 조사에 의하여서 얻어졌고, 종교에서 빌려온 전제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은, 그러한 결과만이 종교에 도움이 된 적이 있고 가치가 있을 수 있었다. 만약 정신 요법이, 인간 정신이 진실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소위 타고난 본성에 의한 종교란 점에 어떤 증거를 제공한 적이 있다면, 그러한 증거는 과학적 본질에 의한 무종교란 뜻은, 말하자면, 그 본질에 의한 종교요법이 종교적으로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일찍이 받은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신 요법이 한 시녀로서 신학에 이바지하도록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않을수록 실제로 신학에 행하여지는 봉사가 더욱 커질 것이다.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종이 될 필요가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