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작은글씨)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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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요한 모랄리스트> 못마땅한 인생사, 풍자, 불만, 그리고 시 - 라로슈푸코

 

흔히 모랄리스트를 이야기할 때는 '파스칼'과 '라로슈푸코'를 지목한다. 라로슈푸코는 국내에서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세계의 수많은 저술가들이 '라로슈푸코'가 남긴 구절을 애용한다.

파스칼과 라로슈푸코는 똑같이 인간성을 탐구했으나,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다. 파스칼은 사상의 근원을 영성에서 찾고 있는 반면 라로슈푸코는 허무하지만 생동감 있는 현장의 삶에서 찾고 있다. 자연히 파스칼의 어조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세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고귀하고 벅찬 '원천'이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라로슈푸코는 정치하다가 숙청된 인물로 세상에 대한 강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으로 염세적 풍자를 드러내기 때문에 당대에도 많은 비판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으나, 그가 인생의 리얼리티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은 찬사를 받는 점이다. 다만 파스칼은 '실존'을, 라로슈푸코는 '염세'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생각하는 인생이란 '녹록치' 않거나 '탐탁치' 않은 둘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두 사람이 만나는 '최소한의 지점'이다.

 

 자연은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두었다. 우리는 그들 중에 일자를 타자에게 포함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각자는 그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 파스칼, '팡세'

 

라로슈푸코에게서 위와 같은 언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자기가 자기를 깎아내는 것은 다만 남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이다. - 라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위의 언어는 부분에 불과하지만, 진정 '라로슈푸코적'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성의 허위를 이토록 적나라하며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려내는 것은 '라'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러나 라로슈푸코의 사상은 삶과 현실, 생활과 허위 등 인간의 '드러나 있는 면모'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글의 '문학성' 측면으로 본다면 '라로슈푸코'가 파스칼보다 더욱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라로슈푸코의 언어는 '시'에 가깝거나, 그 자체로 '시'인 경우가 많았다.

 

운명과 운명 사이에 얼마만한 차별이 보이게 될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길흉화복의 어떤 상쇄가 있어서 운명과 운명을 평등하게 한다.

 

운명은 이성도 교정할 수 없는 많은 결점을 교정하여 준다.

 

위선이란 악덕이 미덕에게 바치는 찬사인 것이다.

 

늙음의 고개를 오를 무렵이 되면, 육신이 쇠퇴하는 소식을 알려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지만 아름답지 않고, 또 아름답지만 젊지 않은 것은 아무 쓸모도 없다. - 이상, '잠언과 성찰' 본문

 

위의 문구를 접하며 우리는 달관한 인생관이 묻어나는 시 구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로슈푸코를 '염세와 불만'의 사상가로만 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글귀 안에는 '정의'와 '섭리', 세상사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글 속에 풍자와 애정을 골고루 섞어 놓았다. 가끔 번뜩이는 심리학자의 면모 또한 곳곳에서 포착된다.

 

아무리 화려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위대한 계획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닌 한 위대하다고 간과할 것은 못된다.

 

군자의 무리에게 끊임없이 주목을 끌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군자의 몸가짐이다.

 

너무 성급하게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얻어진 명예는 얻어야 할 명예의 담보물이다.

 

우리들은 왕왕 우리들을 괴롭히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쪽에서 짓궂게 구는 상대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인간 전반을 안다는 것은 개개의 인간을 아는 것보다 쉽다.(히틀러 : 군중을 속이는 것이 개인을 속이는 것보다 쉽다.) - 이상, '잠언과 성찰' 본문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문학자의 첫째 덕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스칼은 철학자에 가깝고, 라로슈푸코는 문학자에 가깝다. 인생을 함께 할 든든한 벗 하나 없고, 허위와 기만에 가득 찬 사람들을 쳐다보아야 하는 고통을 우리는 라로슈푸코에게서 더 많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모랄리스트들은 도덕과 가치를 위해서 '인간성'을 탐구하는 사명을 가지지만, '도덕과 가치'보다는 '인간성 반성'에 더욱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각자가 '모랄리스트'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며, 나와 당신의 생각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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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0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모랄에 관심은 있는데 깊이 생각해 보는 건 싫네요.
그래도 이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
아침에 읽고 답글은 지금.

승주나무 2006-02-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엔 깊이 생각하는 것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자꾸 우려내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한적한 생각'이 좋습니다. 요즘은^^
 

의뢰인 책비싸(가명 : 23세)의 고민

어제는 4만원을, 그리고 오늘은 9만원을 질러버렸습니다.
이제껏 서점을 이용했었는데 없는 책이 많아서 많이 못 샀었거든요.
헌데 인터넷으로 책을 구하니까 없는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이틀만에 13만원이라는 거금을 부었습니다.
아, 이러다가 거지 되겠어요. 좀 싸게 구매할 수 있는 tip이 있으시면 한 수 가르쳐 주시죠

나의 진단

1. 일단 하나의 서점을 공략할 것.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서재' 등을 만들 것.
☞ 서점을 여기저기 분산시키면, 그에 대한 마일리지도, 멤버십도 떨어지기 때문. 일례로 13만원을 '알라딘'에 가입해서 풀었으면, '실버회원'이 되어서, 사는 책마다 '1%'의 추가 마일리지가 붙었을 것임
※ 주지하다시피 서점들은 망해가는데, 인터넷 서점은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의 책을 구입하는 것은 인터넷 서점, 특히 1,2위를 달리며 전체 시장의 5~60%를 지배하는 '예스24'와 '알라딘'이 혜택이 많음

2. 인터넷 서점(위에 예시한 두 서점도 좋음)에서 의외로 자신이 읽고 싶던 책에 대한 이벤트가 많이 있으므로(이벤트는 대개 마일리지나 할인, 할인쿠폰 등의 이벤트가 많음), 그런 세일 상품을 점검할 것

3. 책에 대한 서평인 '리뷰'와 '페이퍼' 등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블로그 풀'에 가서 심심찮게 댓글을 달면서 이웃들과 친해질 것. 특히 '우수 리뷰'에 대한 '상금(적립금)'이 있으므로, 열심히 쓴다면 비용을 많이 덜게 될 것임.
※ 알라딘의 경우 'thanks to'라는 제도가 있어서 도서 구매에 도움이 되었을 때 '클릭'하는 것이 있는데, 구매시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이 1%의 마일리지가 붙는데, 이것도 모이면 만만치 않음. 어떤 사람은 이것으로 수십 만원 짜리 니체 전집을 구매했다는 소문도...

4. 책 비교검색 사이트에 가서, 가장 저렴한 것을 고를 것
☞ 마북 : http://www.mabook.com/(13개 출판사 비교검색), 노란북 : http://www.noranbook.net (14개 출판사 비교검색) 등

5. 서점마다 홍보 활동으로 '서평단'을 모집하는 데, 지속적으로 응모해 볼 것. 가끔 눈에 띄는 책들도 있으며, 잘만 되면 공짜로 볼 수도 있음

6. <좀더 현실적인 방법>

'뭐 죄다 신간으로 구매할 거 뭐 있어. 헌책 사다 봐'

책의 출판시기를 잘 선별하면, 반드시 '신간'이 아니더라도, 헌책방에서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50% 선의 초저가로 구매해서 볼 것. 일단 그 책을 검색해서, 출판년도를 보고, 현재에서 1년 정도 넘은 책이면 헌책방의 루트를 통해 알아볼 것.

헌책방에 대한 정보는, 나의 절친한 이웃 '라주미힌'님의 친절한 설명을 참고할 것(절친한..친절한..^^?)

링크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10623

사례..
내가 자주 애용하는 알라딘에서 최근 80000원 가량의 책을 구매했는데, 마일리지가 15,830원이었다.
기본 마일리지 : 2,160원 (20%), 900원 (10%), 3,510원 (30%), 1,890원 (15%),  1,260원 (10%), 1,260원 (10%), 1,260원 (10%)
추가 마일리지 : 책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에 'thanks to'를 찍으면, 구매할 때 1%의 추가 마일리지 제공, 380, 120,  130, 90(작지만 큰 힘), '골든 회원'이기 때문에 '2%'의 추가 마일리지를 얻는다. 총 구매액 80,000원의 추가 마일리지는 1,600원 정도, 4만원 이상 구매시 2,000원의 추가 마일리지가 붙는다.
그래서 총 15,830원의 마일리지를 남겼으며, 그걸로 그대로 다음 책을 구매할 수 있다.

※ 이상, 알라딘에 대한 광고성 글은 아니었음. 하지만 다분히 그런 성격이 없지 않음.


덧 : 그렇지만 최근 인터넷 서점만의 '나홀로 성장'과 같은 '기형적 현상'은 출판 시장 전체를 볼 때는 심히 우려할 만한 부분이며, 이러한 추세로 가다가는 인터넷 서점도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예견을 할 수 있음. 이 점은 인터넷 서점도 심각하게 받아들여 '중소, 대형 출판사'와 '오프라인, 온라인 서점'이 모두 상생하는 윈윈전략을 다각도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은 우리나라 출판 시장 활성화와 '독서 활성화'라는 커다란 지향점 위에서 행해져야 할 것임.

이상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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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마일리지 주는곳에 서평써서 마일리지 모으면 공짜로도 책살수 있어요 - 마일리지 인생인 만두 드림 -^^

승주나무 2006-02-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잘 해석이 안 되는데요. 초심자들을 위해서(실은 저를 위해서)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2006-02-04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04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2003년 6월, 636쪽

 

李政權[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서 참석하고 돌아올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잖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문제이다.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모든 창작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상으로는 38선이 있지만 감정이나 꿈에 있어서는 38선이란 타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너무나 초보적인 창작활동의 원칙을 올바르게 이행해보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문학을 해본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십수 년 동안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문학작품이 없는 곳에 문학자가 어디 있었겠으며 문학자가 없는 곳에 무슨 문학단체가 있었겠는가. 아마 있었다면 문학단체의 이름을 도용한 반공단체는 있었을 것이지만, 이 반공단체라는 것조차 사실에 있어서는 반공을 판 돈벌이단체이거나, 문학과 반공을 <이중으로> 팔아먹은 돈벌이단체에 불과하였다.

 

-- 『김수영 전집』, 「창작자유의 조건」 중에서

 

김수영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달라져야 할 것이 있다면 첫째도 언론자유, 둘째도 언론자유, 셋째도 언론자유라고 했다. 1퍼센트의 자유가 불허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가히 문학자의 지표로 삼을 만한 말이다. 언론의 자유란 언로(言路)가 막히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예전에는 정권이 언로를 막았지만, 현재는 여론이 언로를 막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터넷 폭력 등이 대표적 예이다.

 

예전에는 문학이 자유의 침해에 대항해 투쟁했다면, 이제는 '부당함‘에 대항해 싸워야 할 것이다. 부당하게 내몰린 사람들과 사회적 사각에 방치된 약자들만으로도 우리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문학자는 항상 얼굴에 불만이 가득 해야 하며, 윗사람들이 보기에는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는 자세는 ’약자들의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고 부당에게 신탁통치를 의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비타협은 문학도의 덕목으로 손색이 없다.

 

몇 십 년 만에 지식인들이 꿈에도 그리던 남북 문학자 연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북한 작가가 남한의 문학상을 받기도 하고, 북한의 작품집에 남한 작가의 작품이 오르기도 하는 날이 온 것이다. 이것은 『고향』의 작가 이기영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정신의 통일을 이룩하고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현실적 통일이자, 진정한 통일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결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상 속에서 굳건히 쌓이고, 기정사실화 되어야 한다. 미국의 인디언 출입 금지법과 우리의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거나 사문화에 준하여 결국 폐기되고 마는 것도 현실의 투쟁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이런 악습들을 극복했을 때에 따라오는 선물인 셈이다. 통일과 자유, 타당성 등도 마음 안에 꾸준하게 그려질 때 현실적으로 무색한 날이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는 말의 길 뿐만 아니라 마음의 길도 애써 가꿔나가야 우리가 만나는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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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전집 2 - 소설, 문학
김유정 지음 / 가람기획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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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정'이라고 부르는 나의 오만불손함에 대해 항변코자 한다. 내게 있어서 유정은 '점순이'나 '이쁜이'처럼, '암팡스럽'거나 '숭글숭글한' 인물이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 언뜻언뜻 비추는 그를 자주 접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유정을 접하게 된 계기는 어느 계간지에서 이문구(李文求)의 고백을 접하고 나서이다.

'언어는 유정에게 배우고, 정신은 동리에게 배웠지.'

이 말이 내게는 새삼 큼직하게 다가왔다. 일전에 유정의 소설 몇 편을 선배의 권유로 읽어본 일이 있어서 사뭇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결심이 유정의 전작품을 읽고 입말공부도 하고, 작품세계도 탐구해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소설을 쓰고 싶은 문학도로서 임하는 탐구였다. 때문에 이 글은, 유정의 특정한 작품을 읽고 나서 쓰는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유정의 작품들과 알려진 유정에 대한 사실을 토대로 쓰는 '김유정 감상'의 특징을 가짐을 미리 부언하는 바이다. 아직은 그의 전작품 중에 반 정도밖에 소화해내지 못했지만, 그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국어사전은 물론, 대사전에다 별도로 김유정어휘사전도 참고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생소한 토속어 한자 한자를 찾아 읽으면서 얻은 것은 어휘뿐만이 아니었다. 4년 동안에 발표한 소설 치고 그의 소설에는 8천여 개의 어휘와 그 중에서도 83%이 토박이 말임을 알 수 있다.그것은 유정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토박이말을 담아냈다는 점을 말해준다. 여기서 유정이 소설을 쓰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작가마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지한 대중을 계도하기 위해서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최고 지성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고매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글쓰기,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글쓰기도 있을 것이다. 유정의 경우는―썩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세 번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시대와 공간을 되도록 진솔하게 담아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거기에 들어가는 요소로서 토박이말이 있다. 그렇다고 유정이 우리말만을 숭상한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쓰는 말이라면 일본어, 다른 외래어라도 가리지 않고 써넣었다. 그러나 유정에게서 언어만을 배워간다면 그것은 반도 못 배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가 쓰는 언어는 그가 만들어낸―정확히 표현하자면 묘사해낸―인물들에 의해서―개성과 운명 등에 의해서―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김유정의 농촌은 그것이 가진 사회역사적 본질에 의해 매개되지 못한 채 묘사됨으로써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등 여타의 비판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지역사회의 이해라는 것은 그 안의 구성원이 관찰하고 세심하게 기록해 놓은 자료를 토대로, 그 안에서 특징들을 추려내어 이론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사회역사적 본질이라는 말뜻도 이해키 어려운 척도로 가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해된 지역사회의 본질이라면 그만큼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유정은 인물들의 행위와 성격을 직접 평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행위를 관찰하고 꼼꼼하게 묘사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그들을 평가한 어떠한 말보다 더욱 가깝게 그들의 사회역사적 현실을 보며, 더불어 함께 웃을 수도, 가슴아파할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는 유정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입심에 넘어가기는 하지만, 그의 세계에 함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정은 우리를 함몰할 세계를 가질 만큼 독단가는 아니다. 오히려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한 걸음 물러난 숙연한 기록자로서 유정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춘호'나 그 밖의 여러 이름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안정감에 있다. 그들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이웃이며, 그 시대에 엄밀히 존재했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정의 소설에서는 창조적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을 누르는 운명의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인물들의 발버둥질이 더욱 애절하게 와 닿을 뿐이다.

우리는 유정이 대학을 다니다가 고향으로 내려왔을 적에 자신이 시대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척 고민을 했던 사실을 접할 수 있는데, 그 후에 야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그림을 연상할 수 있었다. 야학을 하며 문맹인 이웃들을 가르치는 유정의 가슴속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도 글자를 가르치며 아름다운 우리말에 충분히 세례를 받았을 줄로 안다. 여기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이나 시대적 조건, 주위 환경 등을 그려보는 것은 예비작가로서 나에게 하나의 큰 가르침이 된다. 즉, 자신의 힘과 시대를 두고 진지한 대화를 했던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하면서도 유정다운 가르침은 바로 그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유정의 '사람됨'이다. 유정이 단순히 지식인이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쁜이가 그에게 속맘을 비춰줄 수 있었을까? 그야말로 촌스럽게 '점순이'가 '봄감자'로 사랑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유정의 사람됨과 닮게 유정의 인물들 중에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 '뚝건달 뭉태'도 악인은 아니다. 유일한 악인이라면 인물들을 기형적으로 변질시키고, 위에서 내리누르는 사회이며, 시대이며, 지겨운 운명이다. 때문에 유정의 모든 인물들은 운명의 피해자들이다. 그리고 개중에 몇몇 불쌍한 사람들은 피해자들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유정은 악인을 따로 상정하지 않고서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얼마 안 되는 소설가이다. 이 점은 내게 있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갈등과 긴장은 언제나 선악의 대립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대립해야 할 필요도 없다. 유정의 인물들은 모두 같은 방향에 서서 '드러나지 않은 악'을 쳐다보고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이 글의 서두에 왜 이문구의 고백을 집어놨는지 눈치를 챘을 줄 안다. 요컨대 내가 유정에게 배운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이지만, 그 한 단어 한 단어에 풍성한 생명과 가치를 부여하는 유정의 정신을 배웠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불순물을 남겨놓지 않고 제 몸을 녹여서 만들어낸 순수 결정체의 정신이며, 그 이면에, 숙연하지만 자신이 할 말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소설의 그릇에 온전히 담아내는 작가로서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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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이라는 '잘 나가는 청소년도서 전문 출판사'에게 오늘 퇴짜 메일을 받았다.

논술과 관련된 샘플 원고를 보낸 것에 대한 결과 방침을 받은 것,

이유는 '논술답지' 않아서..

인정한다. 재미있게 쓰려보니 늘어지고, '비논술'의 경향이 좀 많았던 것 같다.

자고로 '논술'을 대비하는 '도구서'라고 하면,

각 장마다 생각할 커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논술문제'에 가까워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낮'이니 그럴 수도 없고..

다시 써보자.

그보다 '논술적인' 글로,

그보다 강력하고 재미있고 흡인력 있는 내용은,

그보다 크고 놀라운 출판사를 향해서,

우리들의 암울한 논술 현실을 너머 '논술 미래'를 향하여

최소한 이정도까지는 재미있고 논술답게 써야 먹힐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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