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되는 내 독서의 역사를 말하자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원수 선생의 세계소년소녀동화집과 헤어지고나서
대학 2학년 때 헤르만 헤세와 재회하기까지 꼭 십일년 동안 공백을 가졌다. 그때부터는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는데, 나를 키워 온 책은 많았지만, 돌풍처럼 내 생활과 세계관을 발칵 뒤집은 책은 단 세권이다.

한번은 99년인가 내 친구가 공군 입대해서 일병휴가인가 하는 것을 올 때다. 그 녀석에게 내가 갖는 열등의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독서의 속도이다. 만화책을 보면 그녀석 두 권 읽을 때 나는 한권도 다 못 읽는다. 그래서 그 녀석은 두 권 읽고 나서 세권은 읽지 않고 담배를 한 대 천천히 피면, 그때야 끄적끄적 나는 한 권 다 읽으려구한다. 그림이 안 들어간 책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문열의 삼국지 단행본을 하루 종일 읽으면 두 권을 읽을 수 있는데, 그녀석은 하루에 열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그녀석과 대화를 해보면 과연 책을 많이 읽었는가 의심이 가지만 어쨌든 속도의 달인이다. 그녀석이 공군에서 책을 읽다가 발견한 책을 한 권 소개시켜줬는데, 그 책은 자신도 도저히 빨리 읽을 수 없고, 한 구절 읽을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히고 책장 넘기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한다. 그 책 이름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다. 나는 괜히 헛된 열정을 발휘해서 그 책을 대번에 읽어갔지만, 나도 역시 다 읽지 못했다. 특히 반말체가 아니라 존댓말체로 찬찬히 전개하는 그의 생각은 나를 완전 발가벗겨 놓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 내용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어쨌든 한동안 나는 그 책에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유익하다는 말도 빼 놓을 수 없다.

 

 

 


두번째도 역시 99년 여름의 일인 것 같다. 그 당시는 처음으로 철학 관련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히 '스피노자'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그 때는 무척이나 더웠고, 아스팔트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던 때라 내게 '가난'이라는 의미를 절실히 가르쳐준 시절이었다. 그때 읽던 책이 '에티카'라는 책이었는데, '-기하학적 질서에 의한 윤리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말 읽어내려가기 피곤했다. 아마 한달 내내 그 책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아침에 일어나면 '노가다'라는 걸 하러가서 해가 떨어지려고 하면 돌아와서는 샤워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그러면 한 일곱시 반 정도 되는데, 그 때부터 막차 시간까지 '에티카'를 잡고 읽었다. 정말 괴로운 한낮이었고, 더욱 괴로운 저녁 시간이었지만, 왜그랬는지 마치 부적처럼 잡고 읽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을 읽게 되었을 즈음 내 몸이 거대한 파도에 실려 광대한 바다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스피노자는 내가 요즘 철학사나 여러 철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한번씩은 꼭 찾아보는 철학자인데, 그 경건함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서양철학자들도 그의 사상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의 자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아무튼 한 달 내내 힘든 막노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에티카 때문이었으며, 그 책 때문에 내가 한 번 업그레이드 되었고, 학문에 더욱 발을 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현재 불거지고 있는 세계 핵문제에 관한 아주 무서운 발언을 하고 있다. 그것은 감정에 관한 장에 나오는데,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현된다. 그것을 제어하는 다른 감정이나 판단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금 핵의 문제에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현재의 핵 보유국들은 핵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세계는 정세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며 아주 극단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는 '세계정신'이라고 생각한다.(헤겔도 이러한 용어를 썼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관계가 없고, 그의 용어도 잘 모른다)
가령 북한같은 나라가 처절한 생계의 위기에 몰리면 핵폭탄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위협을 할지 모른다. 그것이 잘못될 경우 그것을 쓸 것인가 쓰지 않을 것인가는 바로 북한 수뇌부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아무래도 북한이 NPT를 탈퇴한 것이 하나의 불길한 전주곡만 같아 보인다.
세계정신과 애국정신은 어느 나라나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부딪친다면 애국정신을 버릴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지금 미국이 아주 그러한데, 유교적 사고방식을 빌어서 말한다면, 미국은 춘추전국시대 패도와 권모를 써서 세계를 제패하다가 힘이 다하자 아무런 유익한 기억도 없이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나라들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인자(仁者)는 세계정신을 위해 애국정신을 거침없이 버릴 수 있으며, 지자(知者; 이 때의 지는 지혜를 말함)는 애국정신을 버리고 세계정신을 취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몇십배는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애국정신을 버린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 두 가지 아무것에도 닿아 있지 못하다. 힘의 균형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옛날의 영광스런 제국들을 생각해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것을 즐기면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기호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볼 때 현재 미국의 배타적 애국심은 세계 시민들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킬 위험이 크다.
바로 이 세계정신이라는 의미는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는 사상에서 빌려온 말이다. 즉, 인간의 세계는 신의 깊은 이치와 원리에 의해서 정성스럽게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정당하지 못하더라도 그 내면에 감춰진 신의 보편적이고 공평한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동양의 유학과도 통하는 철학인데, 천명(天命)에 따르는 생활을 하여야 문제가 없고 그것이 바로 왕도(王道)이다. 그것은 스피노자에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피노자는 아름다운 음악이 병든 사람에게는 오히려 괴로운 것이고,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듯이 이 세상에 나쁘고 좋다는 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견해일 뿐이며 그 위의 원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아무튼 스피노자의 몇몇 사상이 나의 근본을 형성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길게 써봤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권의 책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책은 꼭 복병 같다. 나는 요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살펴보고 있으며, 동시에 '민족문화추진회' 시험 준비 때문에 논어를 보고 있다. 비중은 전자 7 후자 3 정도에 두고 있었는데, 이 책 때문에 한 닷새간 결과적으로 논어만 보게 되었다. 책이름은 '(하는데, 남회근이라는 분은 1918년 중국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유교 경전을 두루 통하였고 20세 이후로는 불교에 귀의하여 깊이 침잠했으며 티베트로도 가서 공부하다가 대륙이 공산화되는 광경을 생생히 목격했고, 여러 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홍콩에 거처하고 있다고 한다.
내 인생의 큰 틀을 맡아준 두 노인이 계신다. 한 분은 만 3년간 내게 유교의 경전을 가르쳐주시고 평생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주어 내가 한낱 서생 혹은 샌님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주신 은사님(근자엔 농담식으로 '훈장님'이라고 하던 분)이 있고, 두 번째로는 이 남회근이라는 분이다.
인생의 여러 체험을 위주로 논어의 깊은 뜻을 잘 설명하시고 있고, 중국 역사와 여러 사상과 관련하여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좀 자세히 얘기하고 싶은데, 서당에 가야겠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으련만...
이렇게 하니 꼭 책장사 같다.









*
논어 해설서는 내가 몇 권 가지고 있는데 논어를 볼 사람에게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된 류종목 교수의 <논어의 문법적 이해>라는 책은 제목과 같이 문법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잘 짚어주면서 그에 대한 용례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 기계적인 부분이 있어서 논어 본연의 맛에 흠이 될 수 도 있다. 명문당에서 간행된 김성원씨의 <논어신강의> 라는 책은 구절 풀이가 다른 책에 비해서 더욱 세심하다. 그리고 띄어 읽는 토시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는데, 무조건 따르기는 힘들다.
현음사에서 간행된 김도련 선생의 <주주금석 논어>라는 책은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소개하며 논어를 해석하고 있는데, 문맥에 염두하며 세련된 해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음사에서 간행된 김종무씨의 <논어신해>는 신선한 해석을 하고 있으나 그 논리가 받아들이기는 힘든 구석이 좀 있다.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논어(동양고전연구회)책도 볼만 하다. 표지에는 여덟명의 철학자가 10년에 걸쳐 이뤄낸 과업이라고 나왔는데, 아마 각각 다른 일을 하다가 틈틈히 만나서 작업을 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즉, 표현처럼 혼신을 기울인 것 같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정리해낸 성과가 돋보인다. 논어와 이전의 권위있는 주석들을 세심하게 선별하여 수록해놓았고, 서로의 토론을 통한 짤막한 해설이 가끔 시원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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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친구들은 열광을 하고 있는데 저는 정말 힘든 방학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귀신이라도 쓰인 것처럼.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더럽고 무서웠습니다. 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안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으로 머리는 가득차고, 행동은 말대로 생각대로 안 되는데... 이런 제가 너무 미워 울기도 많이 울고, 친구들한테도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짜증도 많이 내고, 무뚝뚝하게 대응하고 말입니다. 정말 혼자 끙끙 앓다가 너무 힘들어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위로해주시고, 걱정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저에게 보내는 편지도 많이 쓰고, 운동도 무리하게 하고, 잠도 푹 자고, 먹는 것도 많이 먹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웃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썼습니다. 다행히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더욱 힘을 얻어 계속해서 방법을 써가며 극복했습니다. 제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제게 편지를 보내는 것과 웃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긍정적으로 생활하려고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활을 하면 아무리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조금은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위의 상황은 일시적인 호조인 것 같다. 여고생을 억누르는 기제와 마음 속의 갈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고생은 스스로를 억누르고, 자신과의 굴욕적인 타협으로 갈등을 잠시 봉인했을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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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마술사전 2


이제 국어사전을 어떻게 활용하면 유익한지 아셨나요? 국어사전의 기본적인 기능은 ‘어휘에 대한 지식’이지만, 우리말의 사용법 전반에 대한 이해가 국어사전에서 나옵니다. 앞에서 소개한 지식 외에, 국어사전에서는 ‘장단음’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습니다. 예컨대, 물건의 가격을 정한다는 의미의 ‘평가(評價)’는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空氣)’는 짧게 발음해야 하는데, 길게 발음할 경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기’가 되어버리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말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능력에 따라 성패가 결정나는 정보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를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직관력이 있어야 하며, 그 정보에 ‘익숙해’ 있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쓴 표현이 맞춤법인지 아닌지 의심이 든다면, 그것은 언어생활에 충실했다는 반증입니다.


우리는 “어물쩡하다”는 말을 무심코 사용합니다.


① 어물쩡 넘어가다

② 어물쩍 넘어가다


위의 경우 ‘어물쩍’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있다면 올바른 표현을 찾을 수 있지만, ‘어물쩍’을 전혀 알지 못할 경우는 아무리 사전을 찾아도 알 수 없습니다. 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① 편지풍파를 일으키다

② 평지풍파를 일으키다


한자에 익숙한 세대라면, 어느 것이 옳은지 쉽게 찾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세대에게는 어느 것이 옳은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평지(平地)는 ‘평평한 땅’이라는 말이니, 예기치 못한 ‘풍파’가 찾아왔다는 ②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편지는 ‘편지(片志 : 자그마한 뜻)’와 ‘편지(便紙 : 안부를 보내는 글)’밖에 없으니 ‘풍파’가 일어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여가 시간에 너는 무엇을 하니?

② 진위여부를 가려내야 한다.


우리들이 대표적으로 자주 틀리는 표현으로 ①은 중복 표현입니다. ‘여가(餘暇)’가 이미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라는 뜻이므로 ‘시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불필요하겠죠? 그것은 ‘여가’만 찾아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②는 ‘진실여부’라고 쓰든지 ‘진위’라고 써야 합니다. ‘진위(眞僞)’ 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뜻이며, ‘여부(與否)’는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라는 뜻으로, ‘진위인지 아닌지’라는 말은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전에서 ‘진위’를 찾는다면, 굳이 ‘여부’까지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신문지상에서 ‘진위여부’라는 말이 자주 쓰이므로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사용되지만, 그 사실을 안다면 틀린 표현을 삼가고, 고쳐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은 모든 정보를 알려줄 수 없으며, 어떤 경우는 잘 찾아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에 소개한 대로, ‘기본형’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찾을 수 없는 단어도 많이 있습니다. 즉, 국어사전이 ‘마술사전’이 되느냐 ‘국어사전’에 머무느냐는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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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마술사전 1




우리가 국어사전을 찾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모르는 단어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통해서 우리는 한자공부와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익힐 수 있습니다. 특히 띄어쓰기의 경우, 그 단어가 표제어에 등재되었는지, 그 단어의 품사가 무엇인지만 알면 대부분의 띄어쓰기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먹고살다’라는 말을 어떻게 띄어 써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당연히 ‘먹고’와 ‘살다’가 독립된 단어이기 때문에 띄어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에서 ‘먹고살다’를 찾아보면 ‘생계를 유지하다’라는 뜻의 동사임을 알 수 있다. 관용적으로 굳어져서 합성어의 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표제어로 등재가 된 것입니다. 이때는 당연히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씁니다.




국어사전을 찾을 때는 여러분의 직관이 필요합니다. 만약 앞의 단어를 두고 띄어쓰기를 고민하고 있다면, 어느 부분이 나로 하여금 띄어쓰기를 방해하는지 찾아내는 것이 직관력입니다. ‘어느새’를 봅시다. 이를 올바른 띄어쓰기 용법에 맞춰 써야 할 텐데, 어느 말을 찾아야 할까요?




① 어느, ② 새, ③ 어느새




답은 ③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모두 찾더라도 오래 걸리지 않으니 다 찾아보아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쉴새없이바빴어’를 띄어쓰기하려고 하는데 ‘쉴새’가 문제가 됩니다. 일단 ‘쉴’은 앞에서 ‘ㄹ’의 기능을 설명한 부분을 볼 때, 후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에 ‘쉴새’를 찾아서 나온다면 관용적 표현으로 보아 사전의 지시에 따르면 되지만, 나오지 않는다면 ‘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새’는 ‘사이’의 준말로 명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띄어야 하겠죠.




① 열 살 짜리


② 열살짜리


③ 열 살짜리




셋 중에 어느 게 맞을까요.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때는 ‘살’과 '짜리‘가 띄어쓰기를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은 단위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하는데, ’짜리‘는 ’접(미)사‘이므로 붙여서 씁니다. 결국 ③이 답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있음직한


② 있음 직한




위의 경우는 더 난해합니다. 왜냐하면 사전에 ‘직한’이나 ‘ㅁ직한’이라는 말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사전에 ‘직한’이나 ‘ㅁ직한’이라는 말이 표제어로 실리면 사전의 쪽수는 엄청난게 늘어날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형’을 알아야 합니다. ‘직한’의 기본형은 ‘직하다’입니다. ‘직하다’로 찾아보세요. 그러면 보조형용사로 앞말과 띄어 씀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형’을 알고 있으면 문장 구사의 도사가 되며, 맞춤법 오류를 정확히 피해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품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개념만 알고 있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띄어쓰기’를 올바로 활용할 수 있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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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사만 알아도 띄어쓰기의 반은 넘은 셈 3


- 품사 휘두르기




우리는 앞서 자립성을 갖춘 오만한 명사족과 용언, 부사 등이 띄어쓰기의 요체가 되며, 기생의 왕 조사를 비롯해 말의 앞뒤에 붙는 접사(접미사와 접두사), 말꼬리인 어미가 붙여쓰기의 요체가 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어떨 때 붙여 쓰고 어떨 때 띄어 쓰는 지 대강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실제의 세계는 이보다 복잡하고 헷갈립니다. 이 장에서는 그 중에 몇 가지만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하고 뒤에 가서 자세히 따져보겠습니다.




우리말이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졌듯이 품사도 알록달록, 올망졸망 모여서 말을 이룹니다. 즉 고르지 않게 분포되어 있다는 말인데, 같은 문장 성분이 중첩되어 쓰이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없지도 않습니다. 체언과 체언이 합하면 합성어가 되기도 하고 앞의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면서 뒤의 체언을 꾸미기도 합니다. 당연히 앞의 경우는 붙여 쓰고, 뒤의 경우는 띄어 쓰는 것이지요. 조사와 조사가 붙는 경우는 모두 합쳐서 조사의 구실을 한다고 보면 되고, 용언과 용언이 모이면 이 중 하나는 보조용언으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이때 붙여쓰기는 허용입니다. 즉 붙여 쓰거나 띄어 쓰거나 상관 없다는 말입니다.




가보다 O(가 보다 O), 해보다 O(해 보다 O), 먹어버리다 O(먹어 버리다 O)




부사와 부사는 어떨까요. 부사는 체언과 친척쯤 되는 모양으로 혼자 놀기를 좋아합니다. 조사가 붙지 않는 한 다른 성분과도 띄어 쓰고, 같은 성분끼리도 띄어 씁니다.


퀴즈를 하나 풀어봅시다. ‘하기는커녕’이라고 쓸까요? ‘하기는 커녕’이라고 쓸까요? ‘커녕’은 조사입니다. 조사는 체언, 용언, 부사, 조사에 모두 붙을 수 있다고 했지요? 따라서 붙여 써야 합니다.


어떤 말은 접사인지 체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도 있습니다. 한자를 병기해야 밝아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총연습(總演習)


② 총(銃) 연습




①은 접두사로 연습을 꾸며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연습했던 것들을 모두 정식으로 한 번 해보는 것이지요. ②는 총이 관형사형으로 쓰였습니다.


반면 한자까지 보아도 알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① 전(全)국민


② 전(全) 국민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립니다. 이때 사전이 필요한 것이지요. ‘전’은 전체를 나타내는 관형사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부사, 관형사, 의존명사 등은 대개 띄어 쓰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조사, 접사, 어미 등은 붙여 쓰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만 알아두고 다음은 품사를 이용하여 국어사전을 마술상자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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