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라주미힌 > [퍼온글]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종교적 갈등을 넘어 다차원적 접근 필요
엄한진(성균관대) 
상대적으로 일국 차원의 현상이었던 프랑스 소요사태나 국제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었던 9.11테러와 달리 만평사태는 매우 많은 요인들이 연관된 현상이다. 우선 유럽-이슬람 관계의 역사, 유럽 내 무슬림들의 문제, 제2차 이라크전쟁 이후의 중동정세와 유럽-아랍의 정치적 관계, 극우주의 및 유대인문제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는 최근 유럽을 포함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사회의 갈등, 특히 “종교 관련 사항을 세속법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되짚어 보자. 2005년 9월 30일 덴마크 보수일간지 율란트-포스텐(Jyllands-Posten)에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마호멧을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그림 등 12장의 만평이 게재되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내에서만 문제가 되었다가 2005년 12월 경 중동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만평문제가 세계적인 사안이 되자 2006년 1월 10일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 매거지넷(Magazinet)이 12장 그림 전체를 게재하였고 주로 언론간 연대 차원에서 2월 1일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 수아(France Soir), 그리고 이어서 독일(Die Welt), 스위스(Tribune de Geneve, Le Temps) 등 여러 유럽국가들에서 신문 게재가 이어졌습니다. 아랍 등 이슬람국가들에서도 만평이 유럽처럼 몇몇 언론에 게재되었었다. 만평사건이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한 후에는 예상되었던 대로 각지에서 이슬람신자들의 격한 대응이 잇따랐고 그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작품,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의 개입 증대가

우리는 여기에서 이번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만평이 처음 게재된 지 2달이 넘게 지난 2005년 12월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는 마침 57개국 정상들이 모인 이슬람회의(Organis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가 사우디의 메카에서 열리고 난 직후였다는 점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이 회의를 결산하는 성명서에 덴마크의 만평문제가 언급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부 차원의 노력이 만평문제가 본격화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만평에 표현된 마호멧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은 이 만평이 있기 오래전부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말 속에, 심지어는 다양한 이미지들에 깊이 뿌리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인식은 9.11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사실 이번 12장의 그림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시한폭탄 형태의 터번을 쓴 마호멧 그림이 상징하는 테러리즘으로서의 이슬람이라는 표상은 세계정세에 어두운 우리에게조차도 너무 익숙한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우리를 놀라게 한 프랑스 소요사태 역시 무엇보다도 국가의 작품이었듯이, 이번 만평 파문 역시 다소 사소하고, 그리 새로울 것 없고 국지적인 사안이 위로부터, 즉 이번 경우에는 이슬람국가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정권들이 이렇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그 배경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상당수 아랍국가들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하는 등 아랍정치권력이 구가해 온 그간의 장기집권을 위협할 수 있는 최근의 정치변동을 떠올릴 수 있다. 즉 유럽 대 이슬람이라는 대립구도에 대중의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동원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권유지 전략에 '유럽'이라는 요인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번 사태에서의 아랍진영의 과도한 대응의 이면에는 점증하는 유럽의 중동개입이라는 현실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만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자신들에게 희생과 모욕을 준 미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아랍 국가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럽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의아하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게 적극적인 대응을 한 나라들이 공히 최근 유럽과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번 사태의 본질 중 하나는 3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와 달리 중동, 동유럽,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점차 미국에 협력하고 미국을 대체해가고 있는 유럽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주도적인 대응은 시아파의 예외적인 신앙심때문이라기보다 이란 핵문제에서 유럽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이 된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이란의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부당한 의심을 막아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5년 9월 갑자기 이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면서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 상정 등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이란은 이 의심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란의 핵관련 기술은 언젠가는 핵무기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는 미국의 억지를 이겨낼 수 없었고 그 와중에 2005년 9월 만평 게재문제가 덴마크에서 불거진 것이다. 결국 미국에 더해 유럽까지 가세한 최근의 압력으로 인해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던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만평사건은 유럽의 압력이 이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무슬림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유용한 논리를 준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나토군의 유럽병력이 점차 미군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 직접 싸우게 되는 것은 미국이기보다는 유럽이 된 것이다. 탈레반을 후원해 온 파키스탄이 이번 만평 사건에서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지역에서 유럽 대 탈레반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리아의 다마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격렬한 시위 역시 최근 프랑스가 시리아의 레바논 간섭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슬람을 모독한 자들에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슬람인들의 머리 속엔 만평의 작가보다는 유럽국가의 정부들, 그리고 아랍세계에 평화유지군으로, 엔지오로, 성직자로, 기업가로 와 있는 유럽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너무도 명백한 지배자가 된 미국과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좀더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제국주의 유럽의 악몽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이슬람 문제’가 두려운 유럽의 무슬림들

이번 사태와 연관된 사람들은 유럽 외부의 무슬림들만이 아니다. 지난 프랑스의 소요사태에서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만평과 만평이 대변하는 편견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오히려 유럽 사회 내의 무슬림들이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 이 두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유럽의 극우세력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유럽의 경우 극우정당의 주된 자원이 반이민정서이며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주된 이민집단은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슬람권 출신자들과 연관된 이민문제를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유럽의 극우세력에게 이번 사건은 이슬람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력 확장의 호기인 셈이다.

일찍이 만평이 게재되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 2005년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진보당이 22%의 득표로 제1야당이 되었는데 이번 사건에서의 노르웨이를 겨냥한 시위와 폭력은 극우주의의 기반인 반이슬람 정서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세력들은 만평 게재지인 프랑스 수아(France Soir)와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번 사건을 외부 이슬람인들에 의한 자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번 프랑스 소요사태에서도 그러했듯이 서유럽의 이슬람신자들은 이슬람국가들의 신자들에 비해 매우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이슬람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다“. 이민문제, 이슬람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이슬람문화권 출신의 유럽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들은 유럽의 주류 백인사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이나 아랍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니는 해악적인 효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 아랍인보다는 프랑스시민, 덴마크시민으로 남과 다름없이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시민으로 평등하게 대접해 주지 않으려는 주류사회가 그들을 아랍인, 이슬람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희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 우리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즉 진정한 프랑스인, 독일인이 될 수 없으며, 너희들은 다르니까 다른 대접을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유럽의 무슬림들을 주류사회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유럽사회뿐이 아니다. 알제리, 파키스탄, 터키, 이란 등 자신들의 모국 역시 대유럽 전략에 유럽에 있는 자국동포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이슬람이나 아랍과 관련된 논의를 매개로 유럽-이슬람 관계에 이용되는데 반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의 이슬람문화권 출신 후예들은 더 이상 유럽과 오리엔트, 중동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재중동포들의 경우처럼 유럽에 온지 매우 오래되었거나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의 문화와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인 것이다.

신앙의 존중 대 표현의 자유

“이번 사건에서 게재 당사자들이나 이들 편에 선 지식인, 언론이 주창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그들의 반이슬람적, 인종차별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신앙이 다른 집단, 특히 그간 강대국의 미움을 사온 무슬림들을 모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은 이슬람을 그 무엇보다도 적대시해 온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 종교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신중함,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아랍세계에서의 폭력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는 만평을 게재한 서방언론들에 대한 비판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만평 게재를 비판하며 언론에 책임성과 분별력을 요구한 코피 아난의 논평(2월 9일)이나 “표현의 자유의 실현이기보다는 점증하는 유럽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무감각, 그들의 거부감을 표현한 것“(2006년 2월 8일자)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일견 진보적인 해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론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사태 당시 국민의 68%가 자극적인 언사와 강경대응으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내무장관 사르코지(N. Sarkozy)의 행동을 지지(Le Monde 2005년 11월 17일자)했던 프랑스의 경우, 이번 경우에는 국민의 54%가 만평을 게재한 미디어들을 비판하고 있다.(Le Monde 2006년 2월 9일자)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사회통제의 강화, 그 속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약화라는 최근의 전지구적 경향이 놓여 있다. 즉 매우 폭력적인, 따라서 매우 격렬한 사회적 저항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특히 9.11테러 이후 노골화된 사회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이나 여론을 빌미로 약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종교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유대인 문제에 대한 견해표명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새로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사회적 논의나 글, 영화, 광고, 만평 등에서 종교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즉 교황을 풍자한 꼭두각시 인형에 대한 제재,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선정적으로 패러디한 광고에 대한 제재 등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모독’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만평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보면 기독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이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길에 동참하고 있다. 낙태문제, 동성애자 결혼문제, 생명윤리, 신성모독 등의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현 세계는 종교간 갈등만큼이나 종교와 사회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것이다. 이번 사안의 당사자인 유럽도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와 ‘차이의 존중’,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존중’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들을 조화시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의 주류사회 자신들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정체성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즉 단일한 유럽이라는 이상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데 유럽연합 내부에는 무수한 경제적, 종교적, 종족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종교적 신념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번 만평을 비판한 교황을 비롯해 각 종교의 대표자들이 이번 만평사건에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이러한 중요한 경향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매우 종교적인 부시가 이번 만평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형식적인 제스처만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비록 그 시발점이나 전개과정에 유럽국가들과 이슬람국가들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지만, 단지 정치적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전망

아직 진행중이지만 이번 사태가 초래할 결과를 예견해 보면, 우선 ‘이슬람’이라는 요인의 중요성,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이슬람과 서양, 이슬람과 민주주의, 이슬람과 인권과 같은 이분법이 다시금 활력소를 찾을 것이다. 이번 만평과 흡사했던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결과를 되새겨 보면 이러한 유형의 현상이 해당 사회집단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함을 알 수 있다. 살만 루쉬디 사건 이전에 영국의 파키스탄 이민자들 내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중시하는 만큼이나 주류사회에 통합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무슬림에 대한 낙인은 이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게토에 갇힌 폐쇄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다.

이 점과 관련해 아쉬운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 순 있지만 아랍세계 역시 이번 사태에 냉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이슬람’과 ‘민주주의’라는 오랫동안 상호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반대로 언제나 그러했듯이 서양이 끌고 가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세계해석을 더 강화시키는데 협력한 꼴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11이 우리에게 이슬람을 미국, 제국, 테러리즘, 세계화 및 반세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이슬람 과 아랍을 유럽, 종교 일반, 시민권, 이민문제, 극우주의 등 또 다른 개념들과 연관해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엄한진 님은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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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2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개입이 문제라구요..으음.... 어쨌든 종교적 근본주의로 비춰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나저나 승주나무님, 오늘 한겨레에 님의 서평이 인용되었더군요. 축하드려요. 반갑더라구요!(이빨에 대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승주나무 2006-02-2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반갑습니다. 마태님.. 한겨레 글은 방금 확인 했어요. 미디어에 올라가니까 기분은 좋네용.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춤법으로 뒷다리 걸 때는 혹시 맘 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랍니다.
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다른 것에 대한 무지와 배척'이 이 사태의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요
 

한 신문사의 기사를 6월부터 매일같이 스크랩을 하면서 함께 모니터링도 해왔습니다.

텍스트만큼은 꼼꼼히 보자는 게 저의 지론이어서 맞춤법이나 오탈자에는 민감한 편입니다.

이 내용을 싣는 이유는 특정한 신문사를 폄훼할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1. 신문기사와 같은 전문적인 글쓰기도 빈번하게 잘못 쓰는 용례가 많은 만큼 자신의 맞춤법 실태에 대해 '위안'을 삼기를 바라는 점과, 2. 가장 영향력이 많은 매체인 신문이 매일같이 독자에게 틀린 어법을 전수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견제'입니다.

제 개인의 차원에서는 여러 신문을 모니터할 수 없기 때문에 평소 기획력 있는 기사를 써서 언론의 의제 생산 기능을 비교적 성실히 수행한다고 판단되는 신문사의 기사를 '제물'로 삼은 것이니, 혹시라도 관계자가 있다면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경향신문 오탈자 보고서'에 들어갈 자료들(06.2.22 업뎃)


신문의 맞춤법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원', '박사' 등의 단위명사는 앞 단어와 띄어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띄어 쓰지 않고, '못'이나 '안' 같은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도 적용하지 않아 않는 등, 대체로 띄어쓰기 관련한 맞춤법은 거의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항간에는 맞춤법 제2항인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에 대해 신문사는 '문장의 각 단어는 붙여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왜곡하는 이른바 '신문맞춤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의미를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에, 이에 소홀할 경우 글의 논리를 상당히 잃어버릴 수 있으며,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신문사의 경우, '틀린 글쓰기'를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그 사태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신문사들의 오탈자 실태도 위험 수위이다. 본 보고서는 수 개월간 경향신문의 인터넷판과 종이 신문 중 문제가 될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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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보고서의 대략적인 내용이며, 자료가 20개를 넘어서는 시점부터 공식적으로 문제화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경향신문의 교열 관계자나 기타 관계자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신문 기사 작성과 교열에 더욱 신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독자센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의 글을 올렸으나 몇 달이 넘도록 한 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심히 언짢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논리를 통해 정당한 의제설정의 기관인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그간 발견된 사례의 모음으로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으며, 띄어쓰기의 경우는 양도 워낙 방대할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문제삼는 모양도 좋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띄어쓰기 위반사례'에 대해서 세세히 분류하여 항간에 떠도는 '신문맞춤법'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낭설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판명하게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05. 7. 19 6면 기획 '다시쓰는 독립운동열전'


유이하게 → 유일하게


 


'05. 8. 26 22면 스포츠


호투를 펼쳐쳤지만 → 호투를 펼쳤지만


 


'05.9.9 11면 : 이색 스크린여행 '떠나봅시다'


에니메이션 → 애니메이션


(다음 단락에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옳게 씀)


 


인터넷판 9월 20일 > 경제 > 금융ㆍ재테크


'절세 미인' 올해 안에 잡으세요 (누군가의 장난으로 보임)


신문면에는 '節稅 상품'(일반 신문, 9.21, 21면)라고 표기됨.


 


05. 10. 28 2면 : 종합 <기자메모>


화제 → 화재(火災)


 


05.11.5 국제 8면 : 美행정부 '냉가슴' 2題


닉슨 대토령 → 닉슨 대통령(인터넷판도 오탈자 그대로 올라감)


 


05.11.6 사회 9면 : 10년만에 귀국 로버트 김


운명(殞命)을 달리했다 → 유명(幽冥)을 달리했다


운명(殞命)은 죽음을 이르며, 유명(幽冥)은 '이승과 저승'을 말하므로, '이승과 저승을 달리했다'는 '유명을 달리했다'를 써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협상을 할 것도 주문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으면 미국도 안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으면 미국도 이에 합당하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편집의 오류로 보이는 이 글쓰기는 행간의 한 문장이 통째로 누락되면서 큰 따옴표의 완결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맥 자체도 모호하게 되어 버린 사례이다.

'05. 12.9 종합 4면 : DJ 노벨상수상 5주년 기념식 특강


민누노총 → 민주노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12091156421&code=940401
'05.12.9, 교육입시
민주노총 "한나라당이 사학비리 몸통"

교토의정서에 반대해온 미국은 8일 대표단을 철수했고
대표단에서 철수했고(교토의정서 대표단이 여러 나라인 경우)
대표단을 철수시켰고(교토의정서 협약에 미국 대표단을 파견시킨 경우)
☞ 모호한 문장은 이해를 어렵게 한다.

'05.12.12 국제11면 "2012년 이후도 온실가스 규제"


자기식구 감사기 → 자기식구 감싸기
※ 타이틀 제목도 노회찬 "주식회사 검찰 고객은 3부류'라고 하여 큰따옴표, 작은따옴표를 혼동함.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12142215391&code=910402
'05.12.14, 국회ㆍ정당
노회찬 "주식회사 검찰 고객은 3부류'

형평성을 높이다 → 형평성을 갖추다, 얻다
☞ 형평성은 '형평을 이루는 성질'이라는 뜻이므로, 그 자체의 높낮이를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쉽고 어렵다'는 뜻의 '난이도'를 높인다는 경우와 비슷하다.
'05.12.23 종합 4면, '탈루' 자영업자 422명 고강도 세무조사 '칼날'

반대를 하던가 했어야 한다
반대를 하든가 했어야 한다
☞ 선택을 의미할 때는 '든'을, 과거의 행위를 의미할 때는 '던'을 쓰는데, 반대로 쓰였다.
'05.12.27 1면 타이틀 기사 '입법조율? 黨 따로 靑 따로'

디지털TV 수요가 폭발적으로 주문량의 50%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 폭발적으로 늘어 주문량의 50%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 중간에 '늘어'와 같은 술어를 누락시켰다.
'06.1.2 경제14면, 'LCD 생산 '분초를 다툰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대변인은 3일 새해 첫 브리핑에서 "우리는 미국 달러의 위조, 마약거래, 무기 기술의 확산 등은 우리의 우려 대상임을 매우 분명히해왔다"면서 "이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보호하고 북한의 불법행위들과 싸우는 문제"라고 말했다.
→ 우리 나라의 이익을 보호하고
☞ '우리나라'를 붙이는 것은 한글맞춤법 4절 49항에 따른 것으로, 위와 같이 붙여 쓰면 그것은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되기 때문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이 경우는 일반 명사로 보아 '우리(의) 나라'로 써야 한다.
'06.1.5 종합2면, '美, 對北 금융제재 해제 거부'


'대연합'의 축이 되겠다는 밝힌 바 있다→ 축이 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중간에 단어를 누락한 경우이다. 단어뿐만 아니라 줄이나, 단락 자체를 누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06.2.4 종합5면, '표심잡기' 노선ㆍ정책대결 불붙었다


마지못해 벌이는 억지 춘향이식 기부가 갖는 한계이다.
→ 억지 춘양식
☞ 춘양목(春陽木)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의 높은 산 지대에서 자라는 질 좋은 소나무의 이름으로, 온갖 사대부 집안에서 세를 과시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춘양목을 있다고 하는 세태에서 유래했다. 심지어 경북에서 훨씬 떨어진 황해도 같은 곳에서도 '춘양목'이라고 우기는 사대부들이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억지 춘양'이라고 해야 한다.
'06.2.14. 30면, <경향의 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다
 

아이로니컬
→ 아이러니컬
☞ '아이러니(irony)'는 '모순', '역설', '이율배반'이라는 뜻으로, 외래어 표기상 '아이러니'로 써야 한다.  

'06.2.20. 국제 11면, '日 극우와 대립각 세운 보수논객(와타나베 요미우리 회장)'


이로써 2003년 반짝했던 언론 자유 분위기는 ... 언론 통제의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 이로서
☞ '이로써'는 도구격 조사로서, '이를 가지고, 이것을 통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위의 경우는 자격격조사인 '-로서'를 써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어떻게 되었다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로써'는 '동사형' 문장을 예견하지만, '이로서'는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형 문장을 예견한다는 사실이다.

'06.2.21. 국제 14면, '中 언론에 다시 '재갈' 지식인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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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2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셔요

승주나무 2006-02-23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안녕하세요. 대단하기는요, 그나저나 신문들이 맞춤법에 신경을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띄어쓰기는 완전 무시하지요^^;
 

오늘 알라딘에 도서 주문을 했다. 간만에…….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조현진.유서연 옮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로얼드 호프만 지음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상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 옮김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 옮김

2006-02-22 33,020원
2006-02-22 4,460원 캐쉬백포인트, 적립금37,000원 정도

할인이란 할인은 다 긁어모아 싸게 샀다.

그런데 주총액이 4만원 이상 되어야 한다고 해서 주문취소를 얼른 눌러버렸다. 그래서 다시 주문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

73,250 원 (상품가격 73,250원, 배송료 0원, 선물포장료 0원)
쿠폰할인 1,000 원,적립금 32,000 원 
40,250


아, 얼마나 얍삽한가. 적립금을 32,250으로 하고 싶었지만, 너무 '티가 날까봐'  3만2천원으로 조작한 솜씨..

그런데, 잘 읽어보니 실 결제금액이 아니라 '주문총액'이 4만원을 넘으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3만4천원 적립금을 쓰고, 6천원 결제했어도, 2천원의 추가 마일리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일이다.

추가 마일리지 받으려고 알량한 꼼수를 썼다가 낭패를 본 오늘의 모습을 반성한다.
차라리 7000원 더해서 두 번 받으면 좋았을 것을.(아니, 반성의 기미가 전혀)

혹시 모를 알라디너는 이를 보고 4만원 결제에 맞추려고 애쓰지 않기를 권한다. 적립금이 있다면 그것을 쓰고 총액만 맞추면 된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마일리지 많이 주는 책은 되도록 실비로 결제하고, 마일리지 조금밖에 주지 않는 책은 적립금으로 결제하면 '경제적인 책테크'를 할 수 있다. 일분 상식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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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6-02-23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제대로 걸렸네요. '얍쌉'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으로 '알량-'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른 지적도 모두 옳으신 말씀이구요.
다만 '일분'은 띄어 쓰는 것이 맞지만 '일 분 더 줘'처럼 가독성을 해칠 경우에는 붙일 수 있고, 관용적으로 쓰이는 '일분'의 단위는 2,3,4분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 확실한 경우는 붙여 쓰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얍삽'은 "사람이 얕은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태도가 있다"는 의미의 속된 표현입니다. 감사합니다^^

담뽀뽀님//'꼼수'가 맞군요. 오탈자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나네요^^ 요즘은 책테크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어요. 책 구매하는 책테크, 서평단 활동하는 책테크 등이요

진주 2006-03-0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핫
 

 악몽, 퓌슬리

그림보여주는손가락 | 2006-02-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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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특히 초등학생 작자미상 교과서 '장님 딜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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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2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또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었군요.

승주나무 2006-02-23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오랜만입니다. 참 색감 있는 작품이지요^^
 
 전출처 : 마늘빵 > 한겨레에 쓰인 내 서평에 대한 기자의 답변

어제 '씩씩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신문에 쓰인 제 서평의 일부에 대해 기자에게 문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항의는 아니고.

↓ 얘는 어제 쓴 그 글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21916

↓ 얘는 어제자 한겨레 '고전다시읽기' 에 쓰인 내 서평의 일부
http://www.hani.co.kr/arti/BOOK/102848.html 

무단도용이라고 생각하고 어찌된 경로로 쓰였는지 문의 메일을 보낸 결과 오늘 아침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겨레 오철우입니다. 메일 잘 받았습니다. 

고전다시읽기를 운영하면서, 50자평을 싣고 있는데요. 직접 독자를 찾아 청탁을 하거나 알라딘 마이리뷰, 아마존닷컴 독자평 등에서 독자평 가운데 하일라이트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인용보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독자평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고, 흔히 언론매체에서 게시판의 글이나 인터넷 내용을 출처를 분명히 밝힌 뒤에 인용보도를 하듯이 독자평을 인용보도 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이런 경우에도 모두 동의를 받지 않아도 보도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법적으로 확실하게 따져보지는 못했습니다. (죄송) 혹시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고 소홀히 다룬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우연하게도 저는 다음주부터 휴직하게 되어, 적절한 사후 개선이 필요하다면 후임자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살아 있습니다) 

답장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어제 라주미힌님 께서 댓글을 통해 말씀하셨을 때 아 그렇게 그냥  쓰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는데, 기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라딘을 통해 올린 서평은 이미 나를 떠난 것이고, 누구든 필요에 따라 쓰일 수 있지 않냐, 라는 생각.

또 저 역시 <타인의 목소리> 카테고리나 <고종석> <진중권> 등의 카테고리에 그 들의 글을 퍼다놓았으니 할 말은 없겠다 싶기도 해요. 저는 물론 글의 출처를 밝히고 퍼다놓았지만 - 다른  사람이 펀 것을 다시 펀 경우는 출처 불명이 될 수도 있지만 - 기자 역시 제 글이 알라딘 아프락사스에게서 나온 거다라고 출처를 밝혔으니 문제될 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 찜찜함은 뭘까. 그래도 이건 아닌거 같은데 하는 기분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게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알라디너 분의 방명록에는 출판사에서 새로 개정판을 찍는데 거기 표지에 일부를 쓰고 싶다라고 밝히며 동의를 구하는 글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출판사는 그냥 퍼가지 않고 동의글을 남겼을까.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한겨레가 그냥 가져간 것과 출판사가 동의글을 남긴 것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의문이 또 지배합니다.

한겨레 '고전다시읽기'는 이윤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출판사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고. 그렇진 않은거 같은데. 내 서평 일부가 거기 들어간다고 신문의 판매부수는 전혀! 움직이지 않겠고, 알라딘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신문에서 내 글을 볼 사람은 없으니 실어도 그만 안실어도 그만인데. 한겨레 측 입장에선.

그래서 답변으로, 허락이나 양해까지는 아니어도 그렇다면 어디어디에 어떤 글을 실겠다라는 통보성 댓글만이라도 남겨달라고 했습니다. 흠. 어떻게 하는게 맞는걸까요? 도통 생각이 꽉 잡히질 않습니다. 라주미힌님은 인터넷에 올린 글은 많이 여기저기 쓰이면 좋지 않냐고 하셨는데 전 그건 반대입니다. 저작권 이란건 보호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래서 MP3를 쓰지 않습니다. 밴드 연습곡의 경우 몇몇개는 MD로 실시간 녹음을 해서 듣기는 하지만. (그런면에서 본다면 저도 저작권을 100% 지키고 있다고 말 할 순 없지만 지금의 세태에서 제가 하고 있는 수준이라면 저작권 존중하고 있다고 봐야할듯)

다른 님들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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