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지은이), 홍영남 (옮긴이) | 을유문화사,  431쪽
 

 

이기적 유전자


진화란 자기 복제자(유늘날의 유전자)가 오류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생겨난 일이다.                                  - 45


DNA의 지령은 자연 선택에 의해 조립되어 온 것이므로 물론 ‘건축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 52


유전자는 인체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영향은 엄밀히 일방 통행이다. 이것은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음을 뜻한다. 생애에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더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 중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각각 새로운 세대는 무(無)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 53

유전자는 인체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영향은 엄밀히 일방 통행이다. 이것은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음을 뜻한다. 생애에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더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 중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각각 새로운 세대는 무(無)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 53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유해한 과오(돌연변이)가 중요한 것은 때때로 이것이 함께 있어야만 작용하는 유전 물질 조각에 긴말한 ‘연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64



이것과 관련된 가장 근접한 예의 하나는 ‘의태’라고 알려진 현상이다. 어떤 종류의 나비는 구역질 나는 맛이 있다. 그것들은 보통 선명하고 눈에 띄는 색깔을 하고 있어서 새들은 그 ‘경고’ 표지를 기억하여 그런 종류의 나비를 피한다. 바면에 맛이 나쁘지 않은 다른 종류의 나비는 잡혀 먹히게 된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나비들은 나쁜 맛의 나비를 흉내낸다. 즉 나쁜 맛의 나비를 닮은 색깔과 형태(맛은 닮지 않은)를 가지고 태어난다. 박물학자들도 종종 그것들에게 감쪽같이 속는 경우가 있으며 새들도 속는다. 정말 나쁜 맛의 나비를 한 번 맛본 새는 비슷하게 보이는 나비를 모두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에는 의태종도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의태의 유전자는 자연 선택상 유리하게 된다. 이것이 의태가 진화하는 이유이다.                                                                     - 65



유전 단위를 실제로 불가분의 독립 입자로서 다룰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은 멘델GreGor Mendel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 나는 불가분의 입자성이라는 이러한 이상에 극도로 가까워질 수 있는 단위로서 유전자를 정의하였다.……

유전자는 할아버지․할머니로부터 손자, 손녀에 이르기까지 다른 유전자와 섞이지 않고 그대로 중간 세대를 통과하여 여행한다. 유전자가 끊임없이 혼합된다면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자연 선택은 불가능하다. 우연히도 다윈의 생애에 이러한 사실이 증명되었다. 당시에는 유전이 혼합 과정일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다윈을 곤혹스럽게 했다. 멘델의 발견은 이미 출판되어 있었으므로 그것이 다윈을 도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윈은 그것을 몰랐다. 사람들이 그것을 읽은 것은 다윈과 멘델이 죽고 난 후 몇 년이 지나서였다. 멘델은 아마도 자신이 발견한 사실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는 다윈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 67, 68



유전자는 생존 중에 그 대립 유전자와 직접 경쟁하고 있다. 유전자 풀 내의 대립 유전자는 다음 세대의 염색체상의 한 자리를 놓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대립 유전자를 희생하여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생존 기회를 증가하도록 행동하는 유전자는 어느 것이든, 동의 반복적인 의미에서 오래 살아남는 경향이 있다.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 단위인 것이다.                                       - 72


훌륭한 조정 선수의 자질 중 하나는 팀워크, 즉 크루의 나머지 선수들과 협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강한 근육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비의 예에서 말한 대로 자연 선택은 역위와 다른 염색체 일부의 대규모 이동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유전자 복합체를 ‘편집’해 잘 협조하는 유전자를 모아서 긴밀하게 결합한 집단으로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유능한 육식 동물의 몸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필요하다. 그 중에는 고기를 자르는 이빨, 고기를 소화하기에 적합한 소화관,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한편 유능한 초식 동물은 풀을 씹기 위한 평평한 어금니와 특별한 소화 기구를 가진 매우 긴 창자를 필요로 한다.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 속에서 육식용의 날카로운 이빨을 그 소유자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유전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육식이라는 착상이 나빠서가 아니다. 적합한 소화관과 기타 육식 생활에 필요한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고기를 효율적으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식용의 예리한 이빨에 관한 유전자가 본래 열등한 유전자는 아니다. 그것은 초식성을 위한 유전자가 우세한 유전자 풀 속에 있을 때에만 열등한 유전자이다.                                                       - 76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수를 늘리고, 어떤 유전자는 수를 줄이는 과정이다.                                                                  - 84



우리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안드로메다 사람이 지구상의 일을 조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들은 컴퓨터가 시시각각 하는 일을 직접 제어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정보가 그들에게 전해지려면 200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 컴퓨터의 의사 결정과 행동은 전적으로 독립적인 것이었다. 컴퓨터는 주인에게서 일반적인 방침의 지시를 받는 것까지도 불가능했다. 넘을 수 없는 200년이란 벽 때문에 그 지령은 모두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했다.

……

안드로메다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일상적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거 지구상에 컴퓨터를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유저자도 뇌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유전자는 암호화된 지령을 보낸 안드로메다 사람에 상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령 자체이기도 하다. 유전자가 우리를 인형 끈으로 직접 조종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즉 시간 지연 때문이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제어하는 일을 통해 작용한다. 이것은 세계를 조종하는 강력한 방법인데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배embryo를 만드는 데는 인내를 갖고 몇 개월 동안 단백질(합성)의 끈을 조작해야만 한다. 반면에 행동의 특징으로 중요한 점은 빠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 개월이라는 시간 단위가 아닌 몇 초 또는 몇 분의 1초라는 시간 단위로 작용한다. 이 세상에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부엉이가 머리 위를 휙 지나가고 키 큰 풀숲이 부스럭거리며 포획물이 있는 곳을 알리면 1/1000초 단위로 신경계가 흥분하여 근육이 떨리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또는 잃기도 한다. 유전자는 그처럼 신속한 반응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안드로메다 사람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신속히 작동하는 컴퓨터를 조립하여 ‘예측’할 수 있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가능성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사전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미리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 두는 것뿐이다.

                                                                      - 99, 100


매우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예측해야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학습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프로그램은 생존 기계에게 다음과 같은 지령을 행할 것이다. “여기에 달콤한 것, 오르가슴, 따스한 기후, 방실거리는 아이 등과 같은 보상이라고 정의되는 사물의 목록이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고통, 구역질, 공복, 울고 있는 아이 등에 해당되는 싫은 사물의 목록이 있다.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그 후에 싫은 사물 중의 하나가 생기면 다시 그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좋은 사물 중의 하나가 생기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

우리의 예에서 유전자는 입 속의 단맛이나 오르가슴은 사탕의 섭취나 교미가 유전자의 생존에 적합하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 예에 따르면 사카린과 수음의 가능성은 제대로 예측되지 않으며, 오늘날의 환경에서 사탕의 과다 섭취도 제대로 예측되지 않고 있다.                                                          - 103


의식에 의해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가 무엇이든 의식이란 실행상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된다고 하는 진화 경향의 극치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매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고 그것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도 있다. 또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가급적 많은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에 해당된다. 그러나 앞으로 이야기 될 부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인간은 이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

유전자는 일차적 방침 결정자이고 뇌는 집행자이다. 그러나 뇌가 다시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실제의 방침 결정을 맡게 되었다. 이때에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 된 것이다. 어떤 종도 아직까지는 이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으나 이 경향이 계속 진행되면, 그 논리의 귀결은 결국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 단 하나의 종합적인 방침을 지령하게 될 것이다.                                                   - 107



유전자 풀은 유전자의 장기적인 환경이다. ‘우수한’ 유전자란 맹목적으로 선택되어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관찰된 사실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동어 반복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전자가 우수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첫 시도로서 유전자가 우수하다는 것은 유능한 생존 기계, 즉 몸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진술에 단서를 붙여 두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 풀은 하나의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자 세트이다.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에 의해서도 침입될 수 없는 유전자 풀로 정의된다. 돌연변이나 재조합이나 이입에 의해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벌을 받아 즉시 도태되고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때때로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하여 유전자 풀 내에 퍼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드디어 하나의 새로운 진화적으로 안정된 조합을 이룬다. 작은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 145, 146



가령 내가 한입의 음식물을 가지고 동생과 경합하고 있고 게다가 동생은 나보다 훨씬 어리므로 그 음식물에 의해 동생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내가 그것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크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 음식물을 동생에게 양보하는 편이 나의 유전자를 위해서도 유리할 것이다. 연상의 형제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경우와 같은 근거에서 어린 형제에 대해 이타적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 209



한배 자식 중 한마리가 특히 작은 경우가 있다. 대개 이런 새끼는 다른 형제들처럼 힘차게 먹이를 다투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미 어미에게 있어 이와 같은 자식은 죽게 놔두는 것이 실제로 유리하게 되는 조건을 살펴본 바 있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 놈은 최후까지 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으로는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작은 자식의 여명은 소형화․쇠약화로 짧아져서 부모의 투자나 그에게 주는 이익이 동량의 투자에 의해 다른 아이들이 획득할 수 있는 이익의 1/2 이하로 되면 그는 스스로 기꺼이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하는 것이 자기의 유전자에게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11, 212



지난 1년 사이에 내가 배운 가장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스페인의 알바레스, 아리아스 드 레이나, 그리고 세구라가 보고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뻐꾸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가진 양모가 침입자인 뻐꾸기 알이나 2세를 검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련의 실험 중에서 그들은 뻐꾸기의 알과 2세를 까치 둥지에 넣어 본 적이 있었다. 이때에 뻐꾸기와의 명확한 비교를 위해 제비를 비롯하여 다른 종의 알이나 2세를 까치 둥지에 넣었다. 한 번은 아기 제비 한 마리를 까치 둥지에 넣어 보았다. 다음날 그들은 둥지 아래 지면에 까치 알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이 깨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주워서 다시 둥지에 넣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해 보았다. 그들이 본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아기제비가 아기뻐꾸기와 똑같은 동작으로 까치의 알을 내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떨어진 알을 또 한 번 둥지에 넣어 보았다. 전과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아기제비 역시 알을 등에 업고 작은 날개로 알의 균형을 잡으면서 뒷걸음으로 둥지의 벽을 기어올라가 알을 밖으로 떨어뜨림으로써 뻐꾸기와 같은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

무서운 생각일지는 몰라도 제비의 자식 상호간에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맨 처음 태어난 2세는 다음에 부화되는 동생들과 부모의 투자를 놓고 결국은 경쟁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생애의 첫번째 일로서 우선 다른 알을 둥지에서 내던지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218 ~ 220



동형 배우자가 융합할 경우, 새로운 개체에 기여하는 두 배우자의 유전자가 동수인 것은 물론 두 배우자가 기여하는 음식물의 비축량도 같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의 기여수는 같다. 그러나 음식물 비축에 대해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실제로 정자의 기여는 전혀 없고 다만 정자는 유전자를 가급적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임신 시점에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투자한 자원량은 공평한 분담량, 즉 50%보다 훨씬 적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아서 수컷은 매일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수컷이 서로 다른 암컷들을 이용하여 단시간 내에 많은 수의 2세를 만드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개의 배가 수정할 때 어미로부터 충분한 먹이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 반면에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수컷이 암컷을 상대로 한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 231, 232



자연 선택은 새로운 암컷을 취한 직후, 잠재적인 의붓자식은 모두 죽여버리는 방법을 취하는 수컷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소위 ‘Bruce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효과는 쥐에서 알려진 것으로 수컷이 분비하는 어떤 화학 물질을 임신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현상이다. 암컷이 유산을 하는 경우는 이전의 배우자의 것과는 다른 냄새를 맡았을 때에 한정된다. 수컷의 쥐는 이 방법으로 잠재적인 의붓자식을 죽이고 새로운 암컷이 자신의 정적 접근에 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아드리는 이 Bruce 효과를 개체군 조절의 매커니즘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자에서도 유사한 예가 알려져 있는데 한 무리 속에 새로운 수사자들이 끼게 되면 그들은 거기에 있는 자식을 모두 죽여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녀석들이 자기들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 240



구애 의식에 있어서 수컷은 종종 적지 않은 혼전(婚前)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다. 수컷이 집을 완성할 때까지 암컷은 교미를 거절하는 수도 있고, 수컷이 암컷에게 충분히 먹이를 줘야만 할 때도 있다. 암컷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큰 이익인 동시에 또한 이것은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의 또 다른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암컷은 교미에 응하기 전에 수컷으로 하여금 2세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도록 하여 그 때문에 ‘교미 후’의 수컷이 처자를 버린다 해도 결국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은 재미있는 발상이다. 수줍어하는 암컷이 결국 자기와 교미에 응하기를 기다리는 수컷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 된다. 즉 수컷은 다른 암컷과의 교미 기회를 포기하고 있으며, 구애 때문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수컷은 특정의 암컷이 최종적으로 교미에 응할 때까지는 필연적으로 암컷에게 몹시 ‘속박’당할 것이다. 다른 암컷도 교미에 응하기에 앞서 이 암컷과 같은 방법으로 지연 전술을 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수컷은 이 암컷을 버리려고 하는 유혹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244



암컷이 가정의 행복 전략을 실제로 행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지적한 대로 수컷이 집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거나 또는 최소한도로 수컷이 집짓기를 돕지 않을 때는 그 수컷과의 교미를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실제로 일부일처제형의 조류에서는 집이 완성될 때까지 교미하지 않는다. 그 결과 수컷은 수정하는 순간에 이미 자신의 값싼 정자보다 더 많은 투자를 자식에게 한 것이 된다.

신랑 후보자에게 집짓기를 요구하는 것은 수컷을 붙잡아 두기 위한 암컷의 수단으로서 확실히 유효하다. 수컷에 대해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을 가령 그 대가가 아직 낳지도 않은 자식에게 이익이 되는 형태로 되지는 않더라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집단 내 모든 암컷이 수컷과의 교미에 동의하기에 앞서 어떤 곤란하고 대가 높은 행위, 예를 들어 용을 잡아온다던가 어떤 산에 오른다던가 하는 행위를 요구한다면 이 때문에 암컷들은 수컷이 교미 후에 암컷을 버리려고 하는 유혹에 빠지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암컷을 찾아 유전자를 더 퍼뜨리고 싶다는 유혹을 가진 어떤 수컷이라도 한 마리의 용을 더 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구혼자에게 용 잡기나 성배(聖杯) 찾기 같은 것을 마구잡이로 요구하는 암컷은 없다. 그 이유는 수컷에게 무의미한 사랑의 노력을 요구하는 로맨틱한 암컷보다는 암컷과 자식을 위해 필요한 일을 수컷에게 요구한 암컷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용 잡기나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을 수영해 건너는 것에 비하면 집짓기는 확실히 로맨틱하지는 않으나 암컷에게 수컷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훨씬 필요한 것이다.

                                                                      - 249, 250



그러나 실제로 암컷보다도 수컷이 자식의 보호에 많은 노력을 쏟는 동물도 있다. 이와 같이 아비가 자식 때문에 헌신하는 예는 새와 포유류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어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 이것은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으로서는 하나의 난제이고 나도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카라일(T.R.Carlisle)이 그 해답을 가르쳐 주었다.

“대부분의 어류는 교미를 하는 대신에 그냥 생식 세포를 물 속에 방출한다. 수정은 배우자의 체내에서 일어나지 않고 물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성생식이 처음 출현했을 때에도 아마 이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새, 포유류, 그리고 파충류 같은 육상동물은 이런 형태로 체외 수정을 할 수 없다. 그들의 생식 세포는 매우 건조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컷의 운동 능력을 가진 정자가 암컷의 젖에 있는 체내로 주입된다.” 이상은 다만 사실의 확인일 뿐이다. 칼라일의 아이디어는 이제부터다. “교미 후 육상 동물의 암컷은 얼마 동안 체내에 배를 가지고 있게 된다. 만일 암컷이 교미 직후에 수정란을 낳는다고 해도 수컷에게는 여전히 도망쳐서 암컷을 트라이버스의 ‘가혹한 속박’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다. 수컷에게는 암컷의 선택을 봉쇄하고 먼저 도망칠 결단을 내릴 기회가 필연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아이를 내버려 확실히 죽게 할 것인가, 아니면 머물러서 양육을 할 것인가의 결단을 모두 암컷에게 떠밀어 버린다. 그러므로 육상 동물의 자식 보호에는 아비보다 어미에게 기회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비롯한 다른 수생 동물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수컷이 암컷의 체내에 정자를 주입하지 않는다면 암컷이 ‘자식을 품고’ 혼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수정이 막 끝난 알을 상대에게 맡기고 급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암수 모두에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에 종종 수컷이 버림받는 이유는 어느 쪽이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하는가를 가지고 진화적인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한 개체는 수정된 배를 상대에게 떠맡길 수 있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동시에 배우자가 자칫하면 뒤따라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범하게 된다. 이 점에서는 정자가 난자보다 가벼워서 확산이 쉽다는 것만을 고려해 봐도 수컷 쪽의 위험이 크다. 암컷은 수컷이 아직 준비가 되자 않은 상태에서 알을 빨리 방출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알은 비교적 크고 무거워서 잠시 동안은 한 덩어리가 되어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암컷은 먼저 산란하는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있다. 물고기의 수컷은 이런 위험을 무릅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해 버리면 암컷이 방출하기 전에 정자가 흩어져 버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암컷은 산란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알을 낳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확산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산란하기를 기다려 그 후 알에 정자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 초간을 얻을 수 있다. 그 사이에 몸을 감추고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서 수컷을 트라이버스의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론은 수컷에 의한 자식의 보호가 왜 물 속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고 건조한 육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인지를 솜씨 좋게 설명하고 있다.

                                                                      - 252 ~ 254



수컷이 서로 경쟁하여 암컷으로부터 훌륭한 수컷임을 지명받으려고 하는 사회에 있어서 어미가 자기의 유전자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책의 하나는 자식을 매력적이고 훌륭한 수컷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성체가 됐을 때에 집단 속에서 대부분의 짝짓기를 독점하는 소수의 행운을 잡은 수컷의 일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식을 만들어 내면 암컷이 획득할 수 있는 손자 수는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이 결과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즉 암컷의 눈으로 볼 때에 수컷이 갖춰야 할 가장 바람직한 성질의 하나는 단적으로 성적 매력을 들 수 있다. 특히 매력적인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낳은 자식은 다음 세대의 암컷들에 대해서도 매력적인 수컷이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이 자식들은 어미에게 많은 손자를 갖도록 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암컷도 큰 몸체와 같은 분명히 유익한 성질을 기준으로 하여 수컷을 선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일단 그 종이 암컷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면 그 성질은 단순히 매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 선택에 있어서 유리함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조 수컷의 꼬리와 같은 사치스러움은 어떤 종류의 불안정하고 너무 빠른 과정을 거쳐 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옛날 풍조의 암컷은 보통보다 조금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바람직한 성질의 소유자로 보고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튼튼하고 건강한 체격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수컷의 꼬리가 짧은 것은 비타민 부족의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일부러 짧은 꼬리 그 자체가 유전된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주의하라. 단순히 짧은 꼬리가 어떤 유전적 열세의 하나의 지표로 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풍조의 선조였던 종의 암컷은 평균보다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적으로 찾아다녔다고 가정하자. 수컷의 꼬리의 평균 길이는 위에서 살펴본 암컷의 선택에 의해 길어졌음에 틀림없다. 암컷이 따르는 규칙은 단순하다. 모든 수컷 중에서 가장 긴 꼬리를 가진 개체를 선택하면 된다. 너무 긴 꼬리가 수컷에게는 실제로 부담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 암컷은 불리하게 된다. 왜냐하면 꼬리가 긴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암컷들은 자식이 매력적이라는 평판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의상이나 미국의 자동차 디자인과 같이 보다 긴 꼬리를 가지는 경향은 이렇게 시작되어 자기 스스로 세력을 늘린 것이다. 꼬리가 너무 기괴할 만한 길이에 달해 결국 그 때문에 성적 매력이라는 유리함을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 경향이 멈추게 됐다.        - 256, 257



성적으로 매력적이고 화려한 색체를 나타내는 것은 수컷 쪽이고, 반면에 좀 단조로운 색체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암컷 쪽이다. 암수 어느 개체도 포식자에게 먹히기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면 두 성 모두 단조로운 색체를 나타내는 방향으로 어떤 진화적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선명한 색체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포식자도 유인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말로 말하면 단조로운 색체를 나타내게 하는 유전자보다 선명한 색체를 나타내는 유전자가 포식자의 뱃속에서 생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다음 세대에 전해질 가능성이라면 아마도 단조로운 색체를 띠게 하는 유전자가 선명한 색체를 띠게 하는 유전자보다 덜할지도 모른다. 색이 단조로운 개체는 배우자를 유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두 가지의 서로 대립하는 선택력을 볼 수 있다. 즉 포식자는 유전자 풀에서 선명한 색체의 유전자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고, 성적 파트너는 단조로운 색체를 띠게 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경향을 보인다. 많은 경우와 같이 유능한 생존 기계는 대립하는 선택력의 타협의 산물로 생각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수컷으로서의 최적 타협점이 암컷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수컷이 큰 위험을 걸고 큰 벌이를 노리는 도박꾼의 존재라고 보는 우리의 견해와도 완전히 일치된다. 암컷이 만드는 난자 1개에 대응하여 수컷이 만드는 정자는 막대한 수에 달하므로 개체군 속의 정자의 수는 난자를 훨씬 웃돈다. 따라서 임의의 난자 1개가 성적 융합을 이룰 가능성은 정자보다 훨씬 높다. 난자는 상대적으로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암컷은 수컷의 경우만큼 성적 매력이 강하지 못해도 난자의 수정을 보증할 수 있다. 한 마리의 수컷이 수많은 암컷에게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려한 꼬리가 포식자를 유인하거나 덤불에 걸리거나 해서 단명하더라도 수컷은 죽을 때까지 막대한 수의 자식을 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적 매력이 없는 단조로운 색체의 수컷은 암컷만큼 오래 살지는 몰라도 자식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자기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세계를 손에 넣어도 불멸의 유전자를 잃어버리면 수컷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262, 263



사실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도 부모의 투자는 크고 뚜렷이 불균형하지 않다. 확실히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아버지보다 더 직접적인 일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이에게 주는 물질적 자원을 얻기 위해 보다 간접적인 의미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난혼 사회도 있고 하렘제에 기초한 사회도 많다. 이 놀랄 만한 다양성은 인간의 생활양식이 유전자가 아닌 오히려 문화에 의해 주로 결정됨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진화론적 입장에서 예상하는 대로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난혼 경향이 있고 여성에게는 일부일처제의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사회에 있어서 이 두 가지 경향 중 어느 것이 우세한지는 문화적 상황의 세부적인 것에 의존한다. 이것은 다른 동물 종들에 있어서 그것이 바로 생테적 세부 사항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 266


만일 동물이 무리를 지어 함께 산다면 그들 유전자는 이 연합에 의해 그들이 투입한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무리를 짓는 하이에나는 단독으로 먹이를 잡는 것보다 훨씬 큰 먹이를 포획할 수 있다. 물론 먹이를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떼지어 사냥하는 것은 개개의 이기적 개체에게 유리하다. 어떤 종의 거미들이 협력하여 거대한 공동의 망을 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황제펭귄은 서로 몸을 맞대서 열을 보존하면 혼자 있을 때보다 비바람에 내놓은 몸의 표면적이 적어지기 때문에 모든 개체가 이익을 얻게 된다. 다른 개체의 뒤에서 비스듬히 헤엄치는 물고기는 앞의 개체가 만든 물결 덕분에 유체역학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이것은 물고기가 떼지어 헤엄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공기의 파동을 이용한 같은 요령이 경륜 선수에게도 적용되며 새가 V자형 편대로 비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무리의 선두에 서는 것은 불리하므로 이것을 피하려고 하는 경쟁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새들은 힘든 리더 역할을 교대로 떠맡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이 장의 끝부분에서 논의하게 될 자연성의 호혜적 이타주의의 한 형태이다.

                                                                              - 270


톰슨가젤의 높이뛰기 위장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아드리는 그 행위가 명백히 자살적인 이타적 행위로 보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룹 선택에 의해서만 설명된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이 예는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보다 더 어려운 문제이다.

……

자하비 이론은 다음과 같다. 그의 수평 사고의 결정적 생각은 높이뛰기 위장이 다른 영양에 대한 신호와는 전혀 관계없이 실제로 포식자를 향하여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것을 본 다른 영양이 행동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그것은 부수적일 뿐, 어쨌든 그것은 무엇보다도 포식자에 대한 신호로서 선택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자! 나는 이처럼 높이 뛴다. 이렇게 활기차고 건강한 나를 잡는다는 것은 네게는 무리다. 나만큼 높이 뛸 수 없는 것들을 쫓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인간의 형태와는 다르게 포식자는 쉽게 잡힐 만한 먹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높게 허세 부리는 뛰기를 가능케 하는 유전자는 포식자에게 쉽게 먹히지 않는다. 특히 많은 포식성 포유류는 늙은 개체와 건강치 못한 개체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뛰는 개체는 그리 늙지도 않고, 또 건강하다는 사실을 과장된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그 과시는 이타주의와는 관계가 멀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이기적 행위이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목적 때문에 포식자에게 다른 개체를 쫓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누가 제일 높이 뛰는가를 확인하는 경쟁이다. 이 경쟁의 패자는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276, 277


수렵과 채집 생활보다 정착해서 먹이를 양식하는 것이 훨씬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사회성 곤충은 인간보다 훨씬 이전에 발견했다.

예컨대 아메리카 대륙의 개미종과 아프리카의 흰개미들은 매우 독립적으로 균원(fungus garden, 菌園)을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남미 우산개미parasol ant의 종족이다. 이들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한 군체당 개미수가 200만을 넘는 예도 발견되었다. 그들의 군체는 지하에 퍼지는 통로와 길다란 방의 거대한 복합체로서 그 깊이는 3미터 또는 그 이상에 달하기 때무에 파내는 흙의 양은 40톤이나 된다. 지하의 방에는 균원이 있으며, 식물의 잎을 세분하여 특수한 퇴비 못자리를 만들고 개미들은 일부러 거기에 특수한 종류의 균류를 뿌린다. 일개미는 즉시 먹이가 될 만한 것을 구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고 퇴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잎을 수집하러 나간다. 우산개미의 군집이 잎을 수집할 때의 ‘식욕’은 놀랄 만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큰 경제 피해를 주는 해충이기도 하다. 수집된 잎은 그들 자신의 먹이가 아닌 그들이 키우는 균류의 먹이가 된다. 얼마 후 그들은 그 륜류를 수확하여 자신도 먹고 아기들에게도 먹인다. 개미의 위보다 균류가 높은 효율로 잎을 분해한다. 그런 조치가 개미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균류 쪽에서도 물론 수확하는 동시에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포자의 분산이라는 매커니즘보다 개미의 도움이 효율적으로 균류를 증식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개미들은 균원의 ‘김매기’까지 해주어 다른 종의 균류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개미에게 지배되는 균류는 이익을 얻는 셈이 된다. 개미와 균류 사이에는 일종의 상호 이타주의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계통적으로 서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각종의 흰개미들 사이에서 매우 닮은 균류 재배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도 놀랄 만한 일이다.

……

개미류는 지배용의 식물뿐만 아니라 가축도 소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진딧물이 그것이다. 진딧물류는 식물의 즙을 흡입하기 위해 고도로 특수화된 곤충이다. 그들은 식물의 즙을 매우 효율적으로 빨아내기 때문에 자기들이 소화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양을 빨아낸다. 또한 영양가를 조금만 흡수하고 난 나머지 액체는 분비한다. 당분을 많이 포함한 ‘꿀방울’이 몸의 후미에서 대량으로 흘러 넘쳐 나오며, 자기의 체중을 넘는 정도의 꿀방울을 매시간 분비할 때도 있다. 꿀방울은 마치 비처럼 지상에서 떨어진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주신 양식인 ‘만나manna'는 사실 이 꿀방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개미 중에는 그 꿀방울이 진딧물의 몸에서 이탈하는 순간에 즉시 그것을 탈취해 버리는 종류가 있다. 그들은 더듬이와 다리로 진딧물의 궁둥이를 비벼서 ‘꿀을 짠다.’ 진딧물도 개미에게 반응한다. 개미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작은 꿀방울을 뱃속으로 되돌리는 예도 있다. 어떤 종의 진딧물은 개미를 쉽게 유인하기 위해서 개미의 안면과 닮은 외관과 감촉을 가진 엉덩이가 진화됐다. 이 상호 관계로 진딧물이 얻은 것은 분명히 천적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인간에게 사육되고 있는 젖소처럼 그들도 보호받는 생활을 하고 있고 개미로부터 사육되고 있는 종들은 정상적인 자기 방어 매커니즘을 잃어버렸다. 개미가 자기들의 지하 짐 속에서 진딧물의 알을 돌봐 주는 예도 있다. 이 경우 개미는 진딧물의 애벌레에 먹이를 주고, 마침내 그들이 성장하면 그들을 보호받을 수 있는 풀밭에서 풀을 뜯도록 조심스럽게 운반한다.                                                               - 290 ~ 292



청소어는 특별한 세로줄 무늬를 가지고 있고 또한 특별한 춤으로 과시 행동을 한다. 이것이 바로 청소어라는 표지인 것이다. 대형어는 세로줄 무늬에 춤을 추면서 접근하는 작은 물고기에 대해 포식을 억제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 대신에 그와 같은 작은 물고기와 우연히 만나면 그들은 황홀한 경지에 빠져들어 청소어가 그들의 몸 안팎을 자유로이 출입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기성이라는 유전자의 본성으로 말하면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냉혹한 사기꾼이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실 대형어에게 안전하게 접근하기 위해 청소어와 똑같은 외양을 가지고 게다가 똑같은 식의 춤을 추는 소형 어류가 있다. 이 사기꾼은 대형어가 청소를 기대하며 황홀한 경지에 빠지면 그 지느러미에서 살점을 뜯어 물고 줄행랑치곤 한다. 이런 사기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청소어와 그 불청객들의 관계는 대체로 우호적이고 안정적이다. 청소꾼이란 직업은 산호초의 생물 군락의 일상 생활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소어는 각각 자기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대형어들은 거기에 줄을 서서 마치 이발소의 손님처럼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 301



밈의 예에는 곡조나 사상, 표어, 의복과 양식, 단지 만드는 법, 또는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하는 데 정자나 난자를 운반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 것과 같이 밈이 밈 풀 내에서 번식할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는 것이다. 만약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처럼 그 생각을 잘 이해하면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놓는다는 것은 문자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 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의 운반체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수백만 번 전 세계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어 있지 않은가.”

……

문화 환경 속에서 신의 관념이 안정성과 침투력을 주는 것은 도대체 그 관념이 갖는 어떤 성질 때문일까? 밈 풀 속에서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가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이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 바로 고쳐진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해서는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위약(僞藥)과 같아서 상상에 빠져드는 데 효력이 있는 것이다.

……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는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분자의 자기 복제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원시 수프에서 그 일을 맡고 있다. 그리하여 30억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영원히 그 전매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종류의 자기 복제자가 자기의 사본을 만들 조건이 생기기만 하면, 바로 그 새로이 나타난 자기 복제자가 세력을 확장해 그 자체의 새로운 종류의 진화를 시작하게 된다. 일단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확장해 그 자체의 새로운 종류의 진화를 시작하게 된다. 일단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이미 낡은 유형이 된 진화를 따라야만 할 필연성은 없다. 유전자를 단위로 하는 낡은 진화는 뇌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해 수프를 마련해 주었고, 그 수프 속에서 최초의 밈이 생겨났다. 일단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밈이 등장하면 그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유형의 진화를 시작한다. 우리 생물학자는 유전자에 의한 진화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사실 그것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진화 중 일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칫하면 잊어버리게 된다.

……

넓은 의미에서 모방은 밈이 자기 복제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자기 복제가 가능한 모든 유전자가 성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밈은 풀 속에서 다른 밈보다 성공적일 수도 있다. 이것은 자연 선택과 유사하다.

……

내 머리 속에 있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의 선율 사본은 내 수명 동안만 존재할 것이다. 내 수중에 있는 <스코틀랜드 학생 가곡집>에 인쇄된 같은 선율의 사본도 올드랭사인 사본에 비하여 그리 오래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같은 선율의 사본은 종이에 인쇄되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앞으로 수백 년이라도 계속 보존할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여기서도 특정한 사본의 수명보다 다산성인 것이 훨씬 중요하다.

……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밈 속에도 급격한 증식에 의해 아주 단기적인 성공을 달성하면서 밈 풀 속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것도 있다. 유행가나 필요 이상으로 뾰족한 스파이크힐 등이 그에 해당된다. 한편 유대교의 율법과 같이 수천 년에 걸쳐 계속되는 것도 있는데 보이는 보통 기록된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출한 잠재적 영속성 때문이다.

……

본래의 밈은 변형되어 독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입자의 성질처럼 전부냐 아니냐 하는 성질을 가진 유전자 전달과는 전혀 닮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이제 베토벤의 제9교향곡 중에 충분히 뛰어나고 외우기 쉬운 한 악구가 있다고 하자. 더욱이 그것은 미칠 듯이 주입시키는 유럽의 한 방송국이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할 정도로 뛰어나게 외우기 쉬운 악구라고 한다면, 그 악구는 위 사정에 적합한 범위에서 하나의 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실질적으로 원래의 그 교향곡을 즐기는 나의 능력은 저하되고 말았다.

……

이 책의 전체를 통하여 나는 유전자를 의식을 가진 목적 지향적인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유전자는 맹목적인 자연 선택의 작용에 의해 마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져 있다. 또한 목적 의식을 전제로 유전자를 설명하는 편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예컨대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사본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표현할 경우, 실제의 의미는 “우리가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유전자가 나타내는 효과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수를 증가시키려고 행동할 것 같은 유전자다”라는 것을 뜻한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능동적인 존재로서 유전자를 생각하는 것이 편리했던 것처럼 밈에 관해서도 똑같이 생각하면 편리할지 모른다.

……

일반적으로 밈은 적절하게 짝을 이룬 다수의 염색체 형태로 존재하는 오늘날의 유전자와는 별로 닮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옛 원시 수프 속을 무질서하게 제멋대로 떠 있던 초기의 자기 복제 분자를 닮았다.

……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이다. 거기서는 시간이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 하에 있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한 인간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다.

……

하나의 특별한 예를 들어보자. 사람에게 종교 의식을 강요하기 위해 유효했던 교의의 하나는 지옥불이라는 협박이다. 많은 아아들 그리고 일부 어른들까지도 종교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사후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중세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게 하는 매우 간악한 설득 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효과적이다. 아마도 그것은 심층 심리학적인 교화 기술의 훈련을 받은 성직자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기술을 만들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성직자들이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는 의식을 갖지 않는 밈들이 성공하는 유전자가 나타내는 것과 같은 준잔인성이라는 특성을 가진 덕분에 스스로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지옥불이라는 관념은 아주 단순히 그 자체가 가지는 강렬한 심리적 충격 때문에 자기를 영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밈과 연관된 것은 양쪽이 서로 강하게 화합하여 밈 풀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밈 복합체의 또 하나의 성분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증거가 없어도―증거를 무시하고라도―맹신한다는 것이다. 불신의 도마(Thomas :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 이야기는 우리가 도마를 숭배하도록 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와 비교 대조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사도들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한 이야기다. 도마는 증거를 요구했다. 어떤 종류의 밈에게는 증거를 찾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다른 사도들은 아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증거가 필요하지 않았고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추켜세웠다.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자기의 영속을 확보하는 것이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또는 같은 신을 믿는데 의식이 다르다면 다만 그것만으로도 맹신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단다, 화형을 한다,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 베이루트 노상에서 사살한다, 벨파스트의 술집에서 폭탄을 날린다, 무엇인든 닥치는 대로 정당화시킬 수 있다. 맹신이라는 밈들은 각기 독특한 잔인한 방법을 가지고 스스로 번식해 가고 있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똑같다.

……

밈과 유전자는 종종 서로 보강하지만 때로는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의 습관 같은 것은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성 곤충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하게 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독신주의의 밈은 밈 풀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나는 상호 적응하는 유전자 복합체의 진화와 같은 방식으로 밈의 복합체가 진화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선택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취하고 있는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문화적 환경은 같은 식으로 선택을 받고 있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밈 풀이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게 되어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면, 예컨대 좋은 의견을 내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점화 플러그를 발명하거나, 시를 쓰거나 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버린 후에도 온전히 생존할지도 모른다. 윌리엄스가 지적한 대로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에서 현재 세계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 과연 하나라도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을 두고 있을 것인가.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마르코니 등등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지 않은가.

……

종교, 음악, 그리고 제식 춤 등에는 생물학적인 생존가가 있는지 몰라도 그것에 관해 판에 박힌 생물학적 생존가를 찾을 필요는 없다. 유전자가 그 생존기계에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제공하게 되면 밈들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는다. 모방에 유전적 유리함이 있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유리함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뇌에 모방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뿐이다. 그런 다음에 밈은 그 능력을 완전무결하게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

이기적 존재인 유전자는(그리고 독자가 이 장의 사변을 인정한다면 밈에게도) 선견 능력이 없다. 그들은 의식을 갖지 않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인 것이다.

……

유전자이든 밈이든 무지한 자기 복제자라는 것은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보다는 ‘비둘기파의 공동행위’를 취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한데도 자연 선택은 반드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해 나간다.

……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어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

                                                                              - 308 ~ 322



만일 두꺼운 껍질이 정말로 달팽이에게 유리하다면 도대체 그들은 왜 두꺼운 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답은 아마도 경제적인 것에 있을 것이다. 껍질을 만드는 것은 달팽이에게 지출을 요하는 일이다. 그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애서 얻은 먹이에서 추출해야만 하는 칼슘과 다른 화학 물질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자원이 만일 껍질을 만들기 위해 소비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2세를 만드는 등, 다른 유익한 것에 소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분의 두꺼운 껍질을 만들기 위해 다량의 자원을 소비하는 달팽이는 자기 자신의 몸을 위한 안전을 확보한 셈이다.                                           - 379



우리 자신의 유전자들의 서로 협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로의 같은 출구―알이나 정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과 같은 한 개의 생물체에 들어 있는 어떤 유전자도 만일 정자 또는 난자라고 하는 재래의 경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퍼뜨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여 협력을 덜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몸 속의 다른 유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장래 결과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감수 분열을 왜곡하는 유전자의 실례를 보았다. 아마도 정자 내지는 알이라는 ‘적절한 통로’를 완전히 부수고 옆길을 개척한 유전자도 있을지 모른다.                                  - 386



감기가 들거나 기침이 나면 보통 우리는 그 증후를 바이러스 활동에 의한 귀찮은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경우 그 증후는 한 사람의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이동하기 위한 방편으로 바이러스에 의해 의도적으로 꾸민 일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바이러스는 단순히 공기 중으로 호흡을 통해 뿜어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에게 재채기나 기침을 하도록 해서 힘차게 토해내도록 한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었을 때에 타액에 섞여서 감염된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는 흉포하게 무는 개가 되어 입에서 거품을 내게 된다. 또한 이 개는 불길하게도 보통 개의 행동 반경인 1마일 이내의 행동권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광범위하게 퍼뜨리게 된다. 잘 알고 있듯이 물을 무서워하는 증후도 개가 입에서 거품을―이에 동반하여 바이러스 그 자체를―뿌리는 것을 조장하고 있음을 시사하기까지 한다.

                                                                              - 388



양부모가 속아서 뻐꾸기의 알을 품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는 쉽다. 알을 채집하는 사람들 역시 뻐꾸기의 알이 논종다리 알이나 개개비 알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많이 속곤한다.(암 뻐꾸기는 품종마다 각각 다른 숙주 종에 전문화되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번식기 후기에 거의 둥지에서 날아갈 수 있기 직전에 아기뻐꾸기에 대해 양부모가 취하는 행동이다. 뻐꾸기는 보통 양부모보다 훨씬 체구가 크다. 나는 지금 바위종다리hedge sparrow의 어미새 사진을 보고 있는데, 그 괴물과 같은 양자에 비하여 양부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먹이를 주기 위해서는 그 놈의 등에 올라타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숙주에게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다. 그 어리석음, 즉 잘 속는데 놀란다. 틀림없이 아무리 바보 같은 동물일지라도 그러한 자식을 보고 어딘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기뻐꾸기는 오히려 그 숙주를 그냥 ‘속임’ 이상의 그 무엇, 즉 단순히 정체를 숨기는 어떤 시늉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숙주의 신경계에 상습적인 마약과 같은 형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비록 마약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까지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남자는 여성의 육체 사진에 흥분하여 발기까지도 한다. 그는 결코 인쇄된 종이 위의 잉크를 보고 있음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으나 그의 신경계는 진짜 여성에게 반응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반응하고 만다.

우리는 비록 그 상대와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누구의 이익도 안됨을 판단할 경우일지라도 특정 이성의 매력에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물에 대한 참기 어려운 매력도 마찬가지다. 바위종다리는 장기적으로 본 자기의 최선의 이익에 대해서 분명한 자각이 없다. 따라서 그 신경계가 특정한 종류의 자극을 참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은 훨씬 간단하기까지 하다.

아기뻐꾸기의 벌린 입에 먹이를 넣어 주고 가는 다른 종의 어미새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새는 자기 자식에게 줄 먹이를 물고 집으로 오는 도중이었을지 모른다. 갑자기 눈에 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 둥지 속에 있는 아기뻐꾸기의 특별히 크게 벌린 빨간 입을 발견하게 된다. 이 새는 남의 둥지를 향해 방향을 바꿔 자기 자식에게 주려고 했던 먹이를 뻐꾸기의 입 속에다 넣어 준다.

이와 같은 ‘불가항력설irresistibility theory'은 양모가 ’마약 중독자‘처럼 행동하여 아기뻐꾸기가 그 중독자의 “비행”이라고 말한 초기 독일 조류학자들의 견해와 일치한다.

                                                                              - 392



문제의 전체를 정리하는 하나의 방법은 ‘자기 복제자’와 ‘운반자behicle'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자연 선택의 근본적인 단위로 생존에 성공 또는 실패하는 기본적인 것, 그리고 때때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수반하면서 동일한 사본의 계보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를 자기 복제자라고 한다. DNA 분자는 자기 복제자이다. 자기 복제자는 일반적으로 뒤에서 기술하는 이유에 의해 거대한 공동체적 생존기계, 즉 운반자 속에서 집단화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운반자는 우리 자신과 같은 개체의 몸이다. 그러나 몸은 자기 복제자가 아니다. 그것은 운반자인 것이다. 이 점은 지금까지 오해되어 왔기 때문에 특히 강조해 둔다. 운반자 그 자신은 스스로를 복제하지 못한다. 운반자는 자기를 구성하는 자기 복제자들을 증식하도록 작용한다. 자기 복제자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세계를 지각하지도 못하며 먹이를 잡거나 또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도 않는다. 자기 복제자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을 하는 운반자를 만든다.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서 생물학자는 그 관심을 운반자의 수준에 집중하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나 다른 목적에서 생물학자는 자기 복제자의 수준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편리하다. 유전자와 생물 개체는 다윈의 드라마에서 같은 주역의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가 아니다. 양자는 서로 다르고 보완적이며, 많은 점에서 똑같이 중요한 역할, 즉 자기 복제자라는 역할과 운반자라는 역할을 배당받는다.                               

                                                                              - 399



왜 세포는 집단을 이루는가, 왜 쿵쿵거리며 움직이는 로봇이 됐는가?

……

세포가 클럽을 만드는 이점은 몸의 크기에 그치지 않는다. 클럽 속의 세포는 특수화되어 이에 따라 각각의 특이한 임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특수화된 세포는 클럽 중의 다른 세포들을 위해 봉사하고 동시에 다른 전문 세포들의 능률적인 일에서 이익도 얻는다. 만일 많은 세포가 있으면 어떤 세포는 먹이를 발견하는 감지기로서 특수화하고, 다른 세포는 메시지를 전하는 신경으로서, 또 다른 세포는 촉수를 이용해 움직이고 잡는 근육 세포로, 먹이를 분배하는 분비 세포로, 더 나아가 그 소화된 액을 흡수하는 세포로 특수화될 수 있다.

……

코끼리 한 마리의 몸에 얼마나 많은 세포가 있는가에 상관없이 그 생애를 단일 세포인 수정란에서 시작했다. 이 수정란이 좁은 병목이고, 이것이 배 발생의 과정을 통해 몇 조의 세포로 불어나서 한 마리의 코끼리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세포가 얼마나 많은 특수화된 세포로 이루어져 성체 코끼리가 달릴 수 있게 하는, 상상도 못할 상세한 일에 협조하든지 간에 이들 모든 세포의 노력은 오직 단일 세포(정자 또는 알)의 생산이라는 최종 목표로 수렴된다. 코끼리는 그 시작에 있어서 단일 세포, 즉 수정란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 목표 또는 최종 산물을 의미하는 그 목적도 다음 세대의 수정란이라는 단일 세포들의 생산에 있다. 코끼리의 폭넓고 거대한 생활사는 처음과 끝 모두에 좁은 병목이 있다. 이 병목은 모든 다세포 동물과 거의 모든 식물의 생활사의 특징이다.    - 405, 406



모든 생명의 근본적인 단위인 원동력은 자기 복제자이다. 우주에서 자신의 사본을 만들 수 있는 자는 어떤 것이든지 자기 복제자이다. 자기 복제자는 최초로 우연히 작은 입자들이 마구 부딪혀서 출현한다. 자기 복제자가 일단 존재하게 되면 그것은 스스로의 복제를 한없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복제 과정도 완전하지 않으며 자기 복제자들의 집단은 서로가 다른 몇 개의 변이를 품게 된다. 이 같은 변이의 어떤 것은 자기 복제의 능력을 잃어서 그들 자신이 소멸할 때 그 변종도 아울러 소멸하고 만다. 다른 변이는 아직 복제를 할 수는 있으나 효율이 나쁠 수 있다. 또 다른 변종은 새로운 묘법을 획득하여 자기의 조상이나 동시대의 다른 변종보다 훨씬 효율이 좋게 자기 복제를 한다. 집단 중에서 우세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자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계는 가장 강하고 재주 있는 자기 복제자로 채워져 나가게 된다.

……

어떤 자기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이미 존재하는 조건―인가에 달려 있다. 이런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자기 복제자와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일 것이다. 영국인과 독일인 조정 선수의 예와 마찬가지로 서로가 이익을 주고받는 자기 복제자끼리는 서로의 존재하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

생물 물질의 개별 운반자 속에 이처럼 포장해 넣는 것은 현저히 뚜렷한 모습이기 때문에, 생물학자가 이 세상에 등장하여 생물에 관한 물음을 시작했을 때 그들의 물음은 대부분 운반자, 즉 생물 개체에 관한 것이었다. 생물학자의 의식에 의하면 생물 개체가 먼저 등장하였고, 자기 복제자(현재로는 유전자로 알려짐)는 생물 개체가 쓰는 장치의 일부로 인정됐다. 생물학을 다시 올바른 길로 돌려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중요성에서도 자기 복제자가 앞선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명심하기 위해서도 의식적인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를 명심시키는 하나의 방법은 오늘에 있어서까지도 한 유전자의 표현형 효과가 반드시 모두 그것이 위치하는 개체의 몸 속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해 사실상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 세계에 있는 대상을 조작한다. 대상의 일부는 생명이 없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아주 작은 상상력만 있다면 방사상으로 뻗은 확장된 표현형의 힘의 그물눈 중심에 위치하는 유전자를 볼 수 있다. 세계 속에 있는 하나의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위치하는 여러 유전자로부터 오는 영향력의 그물이 집중하는 중심인 것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모든 세계에는 멀리 또는 가깝게 유전자와 표현형 효과를 연계하는 인과의 화살이 종횡으로 교차하고 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실제적으로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상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져 왔다는 사실이다. 이미 자기 복제자는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거대한 군체(개체의 몸) 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형 효과의 결과는 세계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동일 개체에 응결해 왔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는 그렇게도 낯익은 그 개체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생기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 414 ~ 416.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수영 (지은이) | 민음사, 636쪽

한국작가시리즈3 - 洙映寸鐵

김수영 산문 모음



駱駝過飮 



Y여, 내가 어째서 그렇게 과음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예수교 신자도 아닌 내가 무슨 독실한 신앙심에서 성탄제를 축하하기 위하여 술을 마신 것도 아니겠고, 단순한 고독과 울분에서 마신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근 두달 동안이나 술을 마시지 않다가 별안간에 마신 과음이 나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허탈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는 지금 낙타산이, 멀리 겨울의 햇빛을 받고 알을 낳는 암탉모양으로 유순하게 앉아있는 것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이는 다방의 창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Y여, 어저께는 자네집 아틀리에에서 춤을 추고 미친 지랄을 하고 나서 어떻게 걸어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어떤 자동차 운전수하고 싸움을 한 모양이다. 눈자위와 이마와 손에 상처가 나고 의복이 말이 아니다.

오늘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누워있는 곳은 나의 집이 아니라 동대문 안에 있는 고모의 집이었고 목도리도 모자도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머리가 무거웁고 오장이 뒤집힐 듯 메스꺼워서 오정이 지나고 한참 후에까지 누워있었다.

옷이 이렇게 전부 흙투성이가 되었으니 중앙지대의 번화한 다방에는 나갈 용기가 아니 나고 나가기도 싫고 몸도 피곤하여 여기 이 외떨어진 다방에나 잠시 앉았다가 집으로 들어갈 작정이다.

인제는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데가 내 고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를 가서 어떻게 앉아있어도 쓸쓸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몹시 쓸쓸하다

B양의 생각이 난다. B양이 어저께 무슨 까닭으로 참석하지 않았는지? 그러고보니 나는 어제 억병이 된 취중에도 B양을 보러 갔던가?그렇다면 이렇게* 이 외떨어진 다방에 고독하게 앉아서 넋없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B양에 대한 그리움이 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B양의 눈맵시, 그리고 그 유닉하게 생긴 입에 칠한 루즈가 주마등과 같이 나의 가슴을 스쳐간다.

Y여, 그리고 자네의 애인인 림양이 춤을 추다 말고 나와서 외투와 핸드백을 집어들고 B를 부르러 간 것도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난 일같이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이 머리 안에서 마치 안개 속에 숨은 불빛같이 애절하게 꺼졌다가는 사라진다.

나는 지금 무엇에 홀린 사람모양으로 이 목적 없는 글을 쓰고 있다.

이 무서운 고독의 절정 위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겠나?

자네의 모습이며 림양의 모습이며 B양의 모습이 연황색 혹은 연옥색 대리석으로 조각을 하여놓은 것처럼 신선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워 보인다.

이 아름다움으로 사람에게 느끼는 아름다운 냄새를 나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람에게 환멸과 절망을 느낄수록 사람이 더 그리워지고 끊임없는 열렬한 애정이 솟아오르기만 하는 것이 이상하다.

갈 데가 없으니 다방에라도 가서, 여기가 세상을 내어다보는 유일한 나의 창이거니 생각하고 앉아있는 것인데,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은 언제나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있는 난로 가장자리는 아니고, 몸이 좀 춥더라도 구석쪽 외떨어진 자리를 오히려 택하여 앉기를 즐겨하는 나다. 이렇게 앉아서 고드름이 얼어붙은 창을 어린아이같이 내다보는 것이다.

창을 내다보며 공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무기체와 같이 그냥 앉아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창밖에는 희고 노란 빛을 띤 낙타산이 바라보인다.***

지금 내 몸은 전부가 공상의 덩어리가 되어있다. 내가 나의 작은 머리를 작용시켜서 공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전신이 그대로 공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말을 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 사실인즉 미안하지만 자네는 이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목적이 없는 글이니 목적이 없는 정서를 써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자인한다.

어느 거리, 어느 다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계집아이들.

붉은 양단저고리에 비로오드 검정치마를 아껴가며 입고 있는 계집아이들. 내가 이 아이들을 볼 때는 무심하고 범연하게 보고 있지만 이 아이들이 생각에 잠겨있는 지금의 나를 볼 때는 여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걸세.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공연히 엄숙한 마음이 드네. 그리고 그들이 스치고 가는 치맛바람에서 나는 온 인간의 비애를 느끼고 가슴이 뜨거워지네.

술이 깨어날 때 기진맥진한 이 경지가 나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좋으이.

이것은 내가 <안다는> 것보다도 <느끼는> 것에 굶주린 탓이라고 믿네. 즉 생활에 굶주린 탓이고 애정에 기갈을 느끼고 있는 탓이야.

그러나 나는 이 고독의 귀결을 자네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네.

거기에는 너무 참혹한 귀결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내 자신에게 고백하기도 무서워. 이를테면 죽음이 아니면 못된 약의 중독 따위일 것이니까.

자네는 나를 「잊어버린 주말」에 나오는 레이 미란드 같다고 놀리지만 정말 자네 말대로 되어가는 것같애.

운명이란 우스운 것이야.

나도 모르게 내가 빠지는 것이고, 또 내가 빠져있는 것이고 한 것이 운명이야.

실로 운명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야. 그것은 말할수없이 가벼운 것이고 연약한 것이야.

Y여, 자네의 집에서 열린 간밤의 성탄제 잔치는 화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단아하고 구수한 것이었어.

나는 이대로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으이. 이것은 결코 단순한 비관이 아닐세.

낙타산에 붙어있던 햇빛이 없어지고 하늘은 금시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이 무거우이.

Y여, 나의 가슴에도 언제 눈이 오나?

새해에는 나의 가슴에도 눈이 올까?

서러운 눈이 올까?

머릿속은 방망이로 얻어맞는 것같이 지끈지끈 아프고 늑골 옆에서는 철철거리며 개울물 내려가는 소리가 나네.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다닥칠 때 나라는 동물은 비로소 생명을 느낄 수 있고 설움의 물결이 이 동물의 가슴을 휘감아 둘 때 암흑에 가까운 낙타산의 원경이 황금빛을 띠고 번쩍거리네.

나는 확실히 미치지 않은 미친 사람일세 그려.

아름다움으로 병든 미친 사람일세.




원주 

* 뼈가 말신말신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니된 것도 B양이 오지 않은 외로움에 못이겨 무의식중에 저지른 일종의 발악이었던가.

** 아무튼 나는 내 자신이 우습다. 한없이 우습기만 하다.

*** 낙타산은 나와는 인연이 두터운 곳이다. 낙타산 밑에서 사귄 소녀가 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약 십오년 전에 동경으로 갔었다. 내가 동경으로 가서 얼마 아니 되어 그 여자는 서울로 다시 돌아왔고, 내가 오랜 방랑을 끝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는 미국으로 가버렸다. 지금 그 여자는 미국 태평양 연안의 어느 대도시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영원히 이곳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가 그의 오빠에게로 왔다 한다. 나와 그 여자의 오빠는 죽마지우이다.


<1953. 12>










治癒될 기세도 없이





없는 사람이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운동을 노골적으로 억압하는 정부의 처사가 상식화되어가고 있는 사태처럼 요즈음 우리들을 다시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국민들이 무엇보다도 염려하는, 앞으로 다가올 경제위기를 가장 자신 있게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씩씩한 정치가들이 국회 안에는 산더미같이 와글거리고 있는데 바깥의 현실은, 비근한 예가 慶北敎組나 京紡파업문제 같은 것만 하더라도 당국의 태도는 여전히 <빨갱이>에 대하는 태도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우리는 이것을 <過政>의 태도라고 볼 수가 없고, 마치 새로 설 新政府의 서곡이나 부지공사처럼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국무총리를 新派가 잡든 舊派가 잡든 우리들의 관심은 그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총신경은 진정한 민주운동을 누가 어떠한 구실로 어느 정도까지 다시 탄압하기 시작하느냐의 여부에 쏘려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억압 밑에서 살아온 민중이라 억압의 기미에 대해서는 지극히 민감한 것도 사실이지만 반면에 지극히 비굴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같이 자칫하면 과거의 타성에서 수그러지기 쉬운 국민의 혁명적 사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운동에 원수가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교조운동같은 것이 서푼어치 가치도 안 되는 청리선출보다 훨씬 더 중요하면 중요했지 못한 것은 아닌데 이천만의 늠름한 대변인들은 지금 명분이 서지 않는 감투싸움에만 바쁘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교조원도 교원도 아니지만 혁명에 대한 인식착오로 <과정>의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만은 그들과 동일하다. 4월혁명 후에 나는 세 번이나 신문사로부터 졸시를 퇴짜를 맞았다. 한 편은 <과정>의 사이비 혁명행정을 야유한 것이고, 한 편은 민주당과 혁신당을 야유한 것이고, 나머지 한 편ㅇ느 청탁을 받아가지고 쓴 동시인데, 이것은 李承晩이를 다시 잡아오라는 내용이 아이들에게 읽히기에 온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통과가 안됐다. 그런데 이 동시를 각하한 H신문사는 社是로서 李起鵬이까지는 욕을 해도 좋지만 이승만이는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內規가 있다는 말을 그후 어느 글쓰는 선배한테 듣고 알았다.

여하튼 詩作 15년 간에, 그것도 두 달 사이에 세 편의 시를 퇴짜를 맞아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검열에 통과가 안됐다면 싸우기라도 해보겠지만 아는 친구들이 허다하게 있는 신문사에서 멱국을 먹었으니 하소연할 데도 없다. 아무튼 정치하는 놈들이 살인귀나 강도같이 보이는 나의 偏心症은 아직 손톱눈만큼도 치유될 기세가 없으니 초조하기만 하다.

金利錫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평소부터 죽음에는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같이 생각했는데 건방진 생각이었다. 利錫형이 죽고 그후 기관지염으로 몸이 성치 않아서 기침을 자주 하고 있으려니까 나도 그를 따라가는 것같은 생각이 들고 아직도 죽음에 대한 수양이 모자라는구나 하는 절실한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이럴 때면 어쩌다 주워읽는 토막글까지도 어찌나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만 읽혀지는지! 馬海松씨의 「살고 있다며」라는 수필을 무심코 읽어보고 깜짝 놀랐고, 한편 또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利錫형이 舊자유신문사 건너편 화ㄱ집에서 결혼잔치를 할 때에 주례역할을 해준 것이 이 馬영감이었다. 그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가 죽은 뒤에 朴女史를 만나러 가서 빈 방에서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보니 그때의 사진이 있었다. 馬선생의 왼편에는 崔貞熙여사가 앉아있고 바른편에 노신랑신부가 앉아있고 그 뒤에 元應瑞 朴南秀 金鎭壽 千寬宇 石榮鶴 朴淵禧 黃廉秀 李明成(白水社 주인) 金洙映 등등의 돌팔이들이 제법 의젓하게 서있었다. 약 7년밖에는 안 될 것이다. 우리집 큰놈이 국민학교에 들어갈 임시였으니까 많아야 7년밖에는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이 상당히 오래된 것같이 생각된다. 모두 다 바쁜 탓도 있고, 세상이 그동안에 많이 변한 탓도 있지만 이러한 착각의 원인은 사실은 朴여사와 그가 중년결혼을 한 탓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결혼은 그때보다 적어도 한 10년쯤 전에 한 것같은 착각이 든다. 이러한 착각은 나만의 착각은 아닌 것같다. 利錫도 아마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았으리라고 믿어진다.

그러니까 7년 전부터 그는(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급작스럽게 변했다. 그가 변하기 시작한 7년 전 그때부터 그는 그전처럼 심하게 술을 마시지 않았고 옷차림이 깨끗해지고 몸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들러리의 朴淵禧 金鎭壽 金耀燮 그리고 나같은 술깡패들은 利錫이가 갑자기 사람이 변하고 매력이 없어졌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변한 것은 利錫이뿐이 아니었다. 모두다 그전처럼 폭음을 하지 않게 되었고 제각기의 생활에 바빠졌다. 그러나 유독 利錫이만이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은 전날의 주정 때문이다. 주정은 나도 심하고 金鎭壽의 주정도 유명했지만 利錫의 주정도 굉장했다. 주정을 하다가 얻어맞고 다친 큰 사건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한 너댓번가량 된다. 한번은 이마가 터져서 병원에서 꿰매고 나온 채로 명동의 길바닥 위에 드러누워있는 것을 내가 우리집으로 데리고 간 일이 있었고, 그후 코를 얻어맞아서 콧날이 부러져가지고 고생을 한 일도 있었고, 넓적다리를 다쳤다고 절뚝거리고 다니는 것도 보았다. 이런 주정이 살림을 하자마자 없어졌다. 그는 마당에다 장미를 가꾸기 시작했고 신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집에는 꼭 시간을 대어서 들어갔고 술은 마셔도 과음은 하는 일이 없고, 계절마다 멋있는 색깔의 넥카이를 갈아 매고 나와서 멋쩍은 듯이 픽 웃어 보이고는 했다. 나는 넥타이같은 것에 신경을 쓰는 따위의 취미는 벌써 무시하고 사는 지 오래이지만 利錫이 풀빛 단색 넥타이를 매고 나오는 것을 보면 어쩐지 무슨 향수같은 것이 느껴져서 공연히 다정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신경을 쓰는 것은 넥타이뿐이 아니었다. 모자도 나중에는 베레모를 쓰고 나왔고, 털스웨터도 구제품시장에서 발굴해옴직한 씨의 옷차림은 얼핏 보면 얼빠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들이었다. 나중에는 베레모도 집어치우고 등산모로 바꾸었지만, 나는 그가 소설가가 아닌 것처럼 보았다. 좀 나쁘게 말하자면 그는 《文學界》나 《群像》의 사진에 나오는 고급 소설가들을 본따려고 은근히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는 그런 정도로 나르시스적이었다.

옷뿐이 아니었다. 산보를 하 과일을 깎아 먹으러 들르는 가게도 그가 들어가는 가게는 보통 가게와는 달랐다. 분위기가 되어있는 가게야만 했다. 그는 결혼을 하기 전에 한동안 마포에서 나하고 한 동네서 산 일이 있었지만 그렇게 고생을 할 때에도 그는 미식을 하는 취미를 버리지 않았다. 마포 전차종점에 오래된 설렁탕집이 있었는데 그는 나하고 같이 들어올 때면 곧잘 이 집에를 들러서 그가 좋아하는 우설을 먹으면서 중아침을 했다. 이러한 의식주에 대한 그의 취미벽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모든 것에 실속과 취미가 맞아떨어져야 했다. 그와 함께 문학산보를 하는 동안에 나는 나중에는 길을 가다가도 그가 좋아함직한 음식점이나 과일가게를 그보다도 먼저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러한 취미들도 나쁘게 말하자면 로스트 제너레이션 시대의 유물같은 인상을 주어서 나는 무슨 복습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따라다녔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平壤이 있었던 모양이고, 이 평양에 대한 향수가 그의 취미에까지도 그러한 구태를 버리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평양을 몹시도 못잊어 했다. 혹시 책가게같은 데를 들러서 古書를 찾다가 평양시가지 사진이라도 나오면 싫증이 날 정도로 지나치게 지루한 설명을 했다. 이런 때면 평양의 옛친구들의 얘기에서부터 아버지가 돈을 번 이야기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평양기담은 정말 장편소설에 가까운 찬란한 연대기였다. 그러나 利錫은 그가 두고 온 처자의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또 李仲燮의 이야기도 자세히 들어본 일이 없다. 黃廉秀의 말에 의하면 중섭을 위해서 제일 헌신을 많이 한 사람이 利錫이었다고 하는데, 그러고보면 利錫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중섭이 이야기만은 아무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利錫형을 내가 처음 본 것은 환도 후에 文學藝術社가 미도파 건너편의 漢稷부인이 하던 술집 2층에 있을 때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朴泰鎭의 소개로 元應瑞씨를 찾아갔을 때 문학예술의 편집실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풀이 죽은 회색빛 라글란 오바에 거무죽죽한 회색 중절모를 쓰고 창문턱 앞 의자에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첫눈에, 저치도 나만큼 가난하고 나만큼 고독하고 나만큼 울분이 많고 나만큼 뗑깡이 심한 치겠구나 하고 느꼈다. 그후 얼마 있다가 자유시장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그는 어떻게 나를 알았던지 다짜고짜로 내 팔을 끌고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소주를 마구 마시더니, 내가 안내한 찻집에 가서는 내 입에다 미친 듯이 입을 맞추면서 창가에 늘어놓은 화분의 화초를 모조리 뿌리째 뽑아내꼰졌다. 그후 우리들은 만나면 꼭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꼭 해갈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정과는 반대로 그의 소설은 너무나 차분하고 조용한 것이 조금도 과격한 데가 없었다. 지금 죽고 난 뒤의 그의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고운 사람이었구나 하는 감회가 제일 크다. 고운 얼굴의 선, 고운 인정, 고운 옷맵시, 고운 취미, 고운 교우관계, 고운 연애, 고운 향수, 고운 문학―이렇게 쳐가면 곱지 않은 것은 괴팍한 그 주정벽밖에 없는데 그것도 원인은 지나치게 고운 데서 나온 게 아닌가―그의 모든 것은 이 고운 순정이라는 한마디로 통일될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된다. 이처럼 그의 문학도 곱고 차분한 것이기는 했지만 내가 보기에 너무 야심이 없는 것같았다. 혹은 나는 그의 문학에서 감동을 받기 전에 너무 빨리 그의 인간미를 흡수하고 소화해버렸기 때문에 그의 문학을 정당하게 느낄 수 있는 위치를 오래 전에 상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들은 피차가 자기들의 문학을 지나치게 멸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자학벽은 우리들의 공통적인 단점이었고, 그는 뇌일혈로 죽었다고 하지만 더 깊은 원인은 이 자학병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떼어버릴 수가 없다.) 그의 첫 창작집 「失碑銘」이 나온 것이 그가 마포에 있을 때인데 그가 준 책을 다 읽어보고도 늘 그의 사상이 더 궁금했고, 이쪽이야기보다도 저쪽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그의 단편집은 그러한 나의 개인적인 호기심을 하나도 풀어주지 않았다. 어떻게 그쪽에서 나왔나? 그와 술을 마실 때나 그의 작품을 읽을 때나 내가 알고 싶은 가장 안타까운 문제가 이것이었는데 그는 가족이나 중섭이 얘기를 하지 않은 것처럼 이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도 더 겁이 많았다. 술이 취하면 나는 이북노래를 부르는 악벽이 있는데 그런 때면 利錫은 반드시 이튿날 정색을 하고 나에게 훈계를 했다. 내가 보기에는 利錫은 너무 소심했다. 그리고 그는 선천적으로 소시민적인 작가였다. 그가 동경하는 것은 예술이지 사상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정복준이(井伏鱒二) 구보전만태랑(久保田萬太郞) 같은 계열의 작가의 격조있는 잔잔한 세계였다. 이런 작가는 移種을 하기가 힘이 든다. 그의 배양토는 <피양>이었는데 이 뿌리의 흙을 모조리 다 털고 나와보니 다시 새 흙에 뿌리를 박기까지가 퍽 힘이 들었다. 그리고 겨우 새 흙에서 물이 오를만하게 되자 그는 죽어버렸다.

그가 쓴 신문소설은 그야말로 생활상 하는수없이 쓴 것이었다. 그는 취직을 하기를 막무가내로 싫어했다. 『작가가 취직을 하는 것은 작가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 하면서 그는 취직한 친구들을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문소설로도 겨우 인정을 받기 시작하게 되자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한국일보와 계약이 된 「대원군」을 쓰느라고 그는오랫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지방으로 조사를 하러 다니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石榮鶴이하고 친하게 지냈고 이런 지방 유람에는 둘이서 같이 다니는 적이 많았다. 죽기 일주일 전에 향주라는 데를 가보자고 石하고 같이 우리집에를 들렀는데 비가 온 끝이라 강을 건너지 못해서 북한산성에 가서 놀다 왔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 향주라는 곳도 「대원군」과 관계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신문소설을 써도 그의 생활은 여전히 옹색해 보였다. 우리나라의 글쓰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그는 <신문소설>이 없으면 없는대로 불안했고 있으면 있는대로 자기 글을 못 쓰니까 불안했다. 월남 후 14년을 그는 내내 고생만 하다가 죽은 셈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작가를 기를만한 자격이 없다. 이중섭 차근호 김이석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었나 보아라. 나는 김이석의 죽음을 목도하고 친구로서보다도, 이남태생의 한 주민으로서 부끄러움과 슬픔이 더 크다.

利錫도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사상적인 작가는 못되었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좀더 깊이 있는 고운 작품을 더 많이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할 수 있는 말보다 할 수 없는 말이 더 많았을 것이다. 바로 그의 추도문을 쓰는 이 글에서 내가 그에 대해서 할 수 없는 말이 할 수 있는 말보다 더 많은 것처럼.


附記―재주가 워낙 서투른 데다가 자서전이나 傳記物類는 성격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잡지사의 청탁을 일단 거절했다가 다시 하는수없이 쓰게 되었다. 그러나 붓을 들고보니 고인에 대해서는 의외로 쓰고 싶은 일이 많은 것을 깨달았고 시간만 있으면 좀더 요령있게 자세히 가다듬어 쓰고 싶었는데 마감기일도 벌써 넘고 해서 미흡한대로 하는수없이 내놓게 되었다. 혹시 고인을 욕되게나 하지 않았나 두려웁다. 이런 글은 왜곡된 점이 있어도 너무 골자만 골라 써도 독자에게 뜻하지 않은 그릇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1964>

養鷄 辨明




날더러 양계를 한다니 내 솜씨에 무슨 양계를 하겠습니까. 우리집 여편네가 하는 거지요. 내가 취직도 하지 않고 수입도 비정기적이고 하니 하는수없이 여편네가 시작한 거지요. 그걸 세상은 내가 양계를 하는줄 알게 되고 나도 어느틈에 정말 내가 양계를 하느니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걸 시작한 게 한 8년 가까이 되나봅니다. 성북동에서 이곳 마포 서강 강변으로 이사를 온 것이 그렇게 되니까요. 먼저 우리들은 돼지를 기르면서 닭을 한 열 마리가량 치고 있었지요. 몇 마리 되지 않는 닭이었지만 마당 한귀퉁이에 선 돼지우리간 옆에 집을 짓고 망을 쳐 주었지요. 그놈이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잘 자랐어요. 겨울에는 망사간막이 위에서 자는 닭 등에 아침이면 눈이 소북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래도 알을 잘 낳았어요. 하루 8,9개는 꼭 낳은 것같아요. 그런데 돼지는 되지 않았어요. 경험이 없어서 여편네가 가을돼지를 사지 않았겠어요. 돼지는 봄에 사서 가을에 파는 거라는데 우리는 가을에 사가지고 한겨울 동안 먹이를 길어 나르느라고 죽을 고생을 하고 봄에 팔았지요. 이익금이 (지금 돈으로) 4백원가량 되었던가요. 그래서 그때부터 돼지는 단념하고 닭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내가 닭띠가 돼서 그런지 나는 닭이 싫지 않았습니다. 먼첨에는 100마리쯤 길렀지요. 부화장에서 병아리를 사다가 안방 아랫목에서 상자 속에 구공탄을 피워 넣고 병아리 참고서를 펴보면서 기르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이 들더군요. 그래도 되지 않은 원고벌이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하지요. 나는 난생처음으로 직업을 가진 것같은 자홀감을 느꼈습니다. 아시다시피 병아리에는 白痢병이 제일 고질입니다. 흰 설사똥을 싸다가 똥구멍이 막혀 죽어버립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질같은 것인데 병아리의 경우에는 유전성에다가 전염성이 겸해있고, 똥을 밟던 발로 모이를 밟고 다니는 동물이라 만연도가 아주 빠릅니다. 심할 대면 하룻밤에 10마리도 더 넘어 죽어 나갑니다. 약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한번 걸린 놈은 약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백리병이 끝나면 콕시즘이란 병이 또 옵니다. 이 병은 피똥을 깔기다가 죽는 병입니다. 이것은 유전성을 아니지만, 역시 전염성이라 백리만큼 애를 먹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또 압사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병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눌려 죽는 것입니다. 구공탄불이 꺼지거나 화력이 약해지거나 해서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게 되면 병아리들은 서로 한군데로 몰키게 되고 눈깜짝할 동안에 희생자가 늘비하게 생깁니다. 기막힌 일이지요. 그러넫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경험없는 우리 부부는 네가 잘못했느니 내가 잘못했느니 하고 언성을 높이고 싸움을 합니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래도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게 자라나는 병아리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줄 모릅니다. 병아리는 희망입니다. 이 노란 병아리들의 보드러운 털빛이 하얗게 변색을 하는 것은 성장하는 모습입니다. 여편네도 기분이 좋고 나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때의 기분은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생은 병아리를 기르는 기술상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이를 대는 일이 또 있습니다. 나날이 늘어가는 사료의 공급을 하는 일이 병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인제 석달만 더 고생합시다. 닭이 알만 낳게 되면 당신도 그 지긋지긋한 원고료벌이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돼요.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하는 여편네의 격려말에 나는 용기백배해서 진지한 원고를 또 씁니다. 그러나 원고료가 제때에 그렇게 잘 들어옵니까. 사료가 끊어졌다, 돈이 없다, 원고료는 며칠 더 기다리란다, 닭은 꾹꾹거린다, 사람은 굶어도 닭은 굶길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여편네가 돈을 융통하러 나간다…… 이런 소란이 끊일 사이가 없습니다. 난리이지요. 우리네 사는 게 다 난리인 것처럼 난리이지요.

닭을 길러보기 전에는 교외같은 데의 양계장을 보면 그것처럼 평화롭고 부러운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양계는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가는 직업으로서 양계는 원고료벌이에 못지않은 고역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이 고역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양계를 시작한 지 2년인가 3년 후에 나는 老母에게 병아리 천 마리를 길러드린 일이 있습니다. 생전 孝라고는 해본 일이 없는 자책지심에서 효자의 흉내라도 한 번 내보아야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때도 돈 때문에 병아리를 철늦게 구입해왔고, 공교롭게도 장마철에 병아리들이 콕시즘을 치르게 됐습니다. 콕시즘이란 병은 습기나 냉기와는 상극입니다. 이 병은 날이 궂기만 해도 만연도가 빨라지는 병으로서 뉴캣슬과 지프스와 함께 양계의 3대 병역 중의 하나에 들어가는 무서운 병입니다. 양계가들은 이 병의 발병기가 장마철과 더블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3월 초순쯤 해서 일찌감치 병아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는 콕시즘이란 병이 얼마큼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나는 천 마리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아리를 처음으로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어설픈 효의 욕심이 시킨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모도 물론 양계를 업으로 하기는 처음입니다. 그때까지 시내에서 가게를 하시던 노모는 남 볼 상도 흉하고 세금도 많다고 하시면서 교외로 나가서 불경이나 읽으면서 한적하게 살기를 원했고,이런저런 궁리를 한 끝에 내가 권하는 양계를 해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창동에다 양계장을 새로 짓고, 병아리는 40일 동안만 내가 길러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나는 내 일보다도 더 힘이 났습니다. 판에 박은 듯한 난관을 치러가면서 40일 동안을 길러내고 보니 약 1할의 사망률을 낸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40일이 지난 병아리는 어른 주먹보다도 더 크게 자랐습니다. 이 병아리의 대군을 밧테리째 트럭에 싣고 우리들은 개선장군모양으로 창동의 신축양계장으로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진 鷄舍는 미비한 점이 많았고, 비가 오자 지붕이 새는 곳이 많았습니다. 짚을 깔고 보온을 철저히 하느라고 집안식구들이 총동원이 되어서 밤잠도 못 자고 분투했지만 아침이면 3,40마리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양계장에서 닭이 죽어갈 때는 상가집보다도 더 우울합니다. 약을 사러 다니는 일에만 꼭 한 사람이 붙어있었습니다. 닭약은 수용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제약회사들이 부정기적으로 이것을 생산해 내놓습니다. 꼭 약이 필요할 때 사료상이나 도매집이나 약회사에 약이 절품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입니다. 이럴 대에 약을 구하러 다니는 심고란 이루 말로서 다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노모와 둘이서 약 20일 동안을 눈코뜰새 없이 싸웠습니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강했습니다. 나는 곧잘 신경질을 냈지만 노모는 한번도 신경질을 내지 않았습니다. 내가 계사바닥을 삽으로 긁다가 팔이 아파서 쉴 때도 노모는 여전히 일을 계속하면서 내 삽이 불편할 것이라고 당신 삽과 바꾸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장마를 치르고 나니 겨우 남은 것이 7백마리밖에는 안됩니다. 그래도 그나마라도 건진 것이 다행이라고 노모는 기뻐했고 나의 수고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 7백마리로 시작한, 수지가 안 맞는 양계를 노모는 오늘날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집을 보고 어떤 친구는 양계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근 10년 경영에 한 해도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의 양계는 한국의 원고료벌이에 못지않게 비참합니다. 이 비참한 양계를 왜 집어치우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에는 특히 사료값 앙등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습니다. 군색한 원고료벌이의 보탬이 되기는커녕 원고료를 다 쓸어넣어도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비참한 양계를 왜 집어치우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계일을 보느라도 둔 담양에서 올라온 머슴아이가 우리집에서 야간중학교를 마치고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년에 야간대학에를 들어갔는데 이 아이의 인건비가 안 나옵니다. 새학기에 수업료를 또 내주어야겠는데 이것이 난감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전에는 모이를 사러 조합에 갔다가 모이 두 가마니를 실어놓은 것을 오줌을 누러 간 사이에 자전거째 도둑을 맞았다고 커다란 대학생놈이 꺼이꺼이 울고 들어왔습니다. 집안이 온통 배 파선한 집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에도 양계를 하니까 돈이 있는줄 알고 또 얼마전에는 도둑까지 들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서 일어나보니 여편네가 도둑이 들었다고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도둑이 어디 들었느냐고 물으니 만용이(만용이란 닭시중을 하는 앞서 말한 대학생) 방쪽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여편네와 함께 계사 끝에 떨어져있는 만용이방쪽으로 기어갔습니다. 어둠을 뚫고 맞지도 않는 신짝을 끌고 가보니 만용이는 도둑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도둑이라는 사람은 나이 50이 넘은 사나이였습니다. 헙수룩한 양복을 입고 외투는 입지 않고 만용의 방 밖에 서서, 무슨 동네에서 말이라도 온 사람처럼 태연하게 서있었습니다. 『당신 뭐요?』하고 나는 위세를 보이느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둑의 얼굴이 너무 온순하고 너무 맥이 풀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말이 없습니다. 『여보 당신 어디 사는 사람이오? 이 밤중에 남의 집엔 무엇하러 들어왔오?』 말이 없습니다. 『닭 훔치러 들어왔오?』 말이 없습니다. 여편네가 고반소에 신고해야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도 말이 없습니다. 나는 버럭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흉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래위를 훑어보았으나 그런 기색도 없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거 보세요, 이런 야밤에……』 하고 존댓말을 썼습니다. 그제서야 사나이는 『백번 죽여주십쇼, 잘못했습니다!』하고 비는 것이었습니다. 말투가 퍽 술이 취한 듯했으나 얼굴로 보아서는 싯뻘건 얼굴이 술이 취해 그런지 추위에 달아 그런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즉각적으로 이 사람이 밤길을 잃은 醉漢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이 어디요?』 쑥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우이동입니다.』

『우이동 사는 사람이 왜 이리로 왔오?』

『모릅니다…… 여기서 좀 잘 수가 없나요?』이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여보,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도둑은 발길을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두어서너 발자죽 걸어나가더니 다시 뒤를 돌아다보고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하고 태연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나는 도둑의 이 말이 무슨 상징적인 의미 같이 생각되어서 아직까지도 귀에 선하고, 기가 막히고도 우스운 생각이 듭니다. 도둑은 철조망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이 말은 사람이 보지 않을 제는 거리김없이 넘어왔지만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다시 넘어나가기는 겸연쩍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구태여 갖다붙이자면 내가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장면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도둑은 나고 나는 만용입니다. 철조망을 넘어온 나는 만용이에게 『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 하고 노상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떼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964>

장마 풍경





장마가 지면 강물이 내려가는 모양이 장관이다. 황갈색으로 변색한 강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내려가는 것을 보면 사자떼들이 고개를 저으면서 달려내려가는 것같다. 높아진 수위는 사자의 등떼기처럼 늠실거린다. 군데군데 하얀 거품이 이는 것은 숨가쁜 사자의 입거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것은 수천마리의 사자의 떼가 아니라 한 마리의 사자같이 보이기도 한다. 한 마리의 사자. 그러면 저 거센 물결들은 사자의 휘날리는 머리털이라고도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그 사자는 머리쪽과 궁둥이쪽이 서로 늘어나서 동서로 잡아다닌 엿가락처럼 자꾸자꾸 늘어나기만 하고, 그 신장되는 등 위를 물결이 흘러내려가는 것 같다. 혹은 뛰어가는 사자는, 꿈속에서 달려가는 것처럼 열심히 달려가기는 하지만 밤낮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계속되는 연상을 주는 강물은 삼라만상의 요술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지만, 나는 어느덧 연상에도 금욕주의자가 되었는지 너무 복잡한 연상은 삼가기로 하고 있고, 그저 장마철에 신이 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사자가 달려가는 것같다는 정도의 상식적 연상으로 자제하고 있다.

<사람은 바빠야 한다>는 철학을 나는 범속한 철학이라고 보지 않는다. 풍경을 볼 때도 바쁘게 보는 풍경이 좋다. 일을 하다가 잠깐 쉬는 동안에 보는 풍경.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풍경.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일을 하면서 보는 풍경인 동시에 풍경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연못가의 기름진 푸른 잔디 그늘에서 피크닉을 나온 부인이 부지런히 뜨개질을 하고 있는 영화의 장면 같은 것은 나에게는 평범한 풍경이면서도 결코 평범한 풍경이 아니다.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풍경을 사는 것은 더 좋다.

연극은 관객의 참여가 없이는 안 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러나 영화는 연극에 비하면 참여의 면에서 훨씬 소극적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풍경을 보는 것은 영화에 속하고 풍경을 사는 것은 연극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도 서구평론가들이 쓴 것을 보면, 요즘 우리나라의 시민회관이나 국립극장의 무대같은 액자무대는 참여를 할 수 있는 연극무대가 아니고, 셰익스피어시대의 삼면이 다 터진 애프론식 무대가 정말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무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현대연극은 우선 무대조건부터 개선해야 하며 서양에서는 이미 개량무대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연극평론가들이 참여 참여 하는 것은 어떤 무대를 가리키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풍경에 사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을 하면서도 나는 어쩌면 이들 우리나라의 연극평론가들과 똑같은 과오를 내가 범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도 없으면서 일이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혖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조건도 구비되지 않은 무대에서 참여를 하라는 그들이나, 일도 없는 사회에서 풍경에 살라는 나나 조금도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돈 생기는 일이 없을 뿐이지 그렇지 않은 일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요즘 집의 아이놈의 글을 알으켜 주면서 생각했다. 여편네가 하도 머리가 나쁘다고 어린놈을 윽살리는 것이 불쾌해서 만사를 제외하고 학기말 시험을 보는 중학교 1학년 놈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 2주일 동안을 계속해보았다. 돈벌이를 위한 일이 아닌 이렇게 순수한 일을 해보니 힘도 들지만 원고료벌이에 못지 않게 신이 났다. 아이놈이 시험이라도 잘 보고 오는 날이면 詩를 썼을 때에 못지않은 흐뭇한 감이 든다.

아무 일도 안하느니보다는 도둑질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하여간 바쁘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우선 풍경을 뜻있게 보기 위해서만이라도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나만 바쁜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바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나만 바쁘다는 것은 이런 세상에서는 미안한 일이 되고, 어떤 때에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기까지도 한다. 그러나 모두 다 바쁘다는 것은 사랑을 낳는다.

장마철의 한강물을 보고 성난 사자같은 연상을 하는 것도 너무나 살벌하고 고갈한 환경이 시키는 반사작용이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떻게 또 생각하면 세상사람들은 모두 다 너무 바쁘고 나만이 너무 한가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든다.

토끼





동물은 어떤것이든 직업적으로 기르게 되면 애정은 거의 전멸하고 만다. 양계를 생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얻은 경험이지만, 같은 닭이라도 착취의 대상으로 기르고 있는 우리집 닭보다는 남의집 마당에 두어서너 마리씩 한가롭게 기르고 있는 닭이 마치 공작처럼 귀해 보인다.

닭을 기르는 집에는 반드시 토끼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소독용으로 토끼를 몇 마리 길러 보았는데 이것도 어느덧 기업의식이 침입을 하고나서부터는 닭을 보는거나 마찬가지 기분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풀을뜯어다 먹이고 짚을 갈아주고 하는 일도 어느덧 싫증이 나고 해서, 자연히 나대신 닭일 보는 아이놈이 시중을 들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토끼에서 나오는 소산은 그놈의 공책값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것에 재미를 붙이고 한참동안을 닭보다도 더 열심히 기르더니 월동이 어려워서 그랬던지 바빠서 그랬던지 그놈은 토끼를 모조리 팔아버리고 말았다. 한 3,4년 전 일일 게다 그후부터 우리집에는 토끼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 외양간 냄새가 여간 좋지 않았다. 토끼장 냄새는 그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냄새가 평화스러운 감을 주는 것이 싫지 않다. 혹시 시골의 노모의 양계장에 내려가면 토끼축사에서 병든 닭들이 한데 놀고 있는 것을 보는데,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무슨 우애의 철학이나 세계평화의 산 표본을 보는 것같다. 肝病이나 소화불량이나 감기에 걸린 닭들도 이 토끼칸 안에만 들어가면 멀쩡해진다는 것이 노모의 자랑거리이다. 토끼오줌이 닭병에 약이 된다는 사람도 있고 안 된다는 사람도 있어, 그 가부는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않는한 확정한 것은 모르겠지만, 좌우간 닭과 토끼는 상극은 아닌 것같다. 그런데 닭하고 토끼하고가 의좋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의식의 심부에는 어떤 미신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닭띠이고 나의 아내가 바로 토끼띠이니까 말이다. 물론 우리들 부부는 결혼의 式典까지도 거부한 아파쉬적 취미인들이라 궁합을 맞춰보고 같이 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의 궁합이 더 신기해보인다면 신기해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소감을 아내에게는 한번도 말한 일이 없다.

아내는 요즈음 양계가 수지가 안 맞는다고 다시 토끼를 길러보자고 한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몇해 전엔가 메추리가 유행했을 때, 친구들 중에 이 메추리가 利가 많으니 해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굳이 듣지 않았다. 그러자 얼마 후에 메추리하던 사람들이 모조리 망하자, 이것을 권하던 친구들은 나를 보고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찬들을 했다. 나는 당시에 새와 열대어와 메추리 같은 것을 나에게 권장하던 사람들을 사람같이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조금도 반가웁지가 않았다. 이런 말을 한 사람 가운데에는 문학을 하는 사람도 끼어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문학까지도 경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토끼는 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토끼도(닭에 못지않게) 기르기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얼마가 남느냐보다도 얼마나 힘이 드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 아내는 아직도 나의 이 <力耕主義>에는 그리 신뢰를 두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1965>

모기와 개미





우선 지식인의 규정부터 해야 한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 우선 일본만 보더라도 이런 지식인들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지식인이 없지는 않는데 그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다. 지식인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민중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닿는다 해도 기껏 모기소리정도로 들릴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인의 소리가 모기소리만큼밖에 안 들리는 사회란 여론의 지도자가 없는 사회다. 혹은 왜곡된 여론만이 있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소위 4대신문의 사설이란 것은 이런 왜곡된 가짜여론을 매일 조석으로 제조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씌어지고 있다. 이것을 진정한 여론이라고, 민주주의사회의 여론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더도 말고 우리나라의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서만도 허다하게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지식인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 지식인이 가물에 콩나기만큼 있기 때문에, 문학가가 아직도 사회적인 멸시를 받고 그나마 여론을 조성하는 자리에서는 대학교수보다도 볼품이 없고, 우리의 시와 소설은 아직껏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잡지사가 그전보다 좀 깨었다고 하는 것이, 외국말을 아는, 외국에 다녀온 문인들을 골라서 글을 씌우고 싶어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것도 구역질이 나는 경향이다. 역시 탈을 바꾸어 쓴 후진성이다.

도대체가 우리나라는 번역문학이 없다. 짤막한 단편소설 하나 제대로 번역된 것을 구경하기가 힘이 든다. 요즘 나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200자 한 장에 20원도 못 받는 덤핑출판사의 번역일을 해주고 있다. 이 덤핑출판사의 사장이라는 젊은 청년과 나와의 거래의 경위를 간단히 말해둘 필요가 있다. 이 청년은 나다니엘 호오손의 유명한 소설 「주홍글씨」를 20원씩에 해달라고 통신사 친구의 소개를 받아가지고 와서 지극히 겸손하게 자기의 사업의 군색한 사정을 말하면서 부탁한다. 나는 그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듯한 거룩한 순교자의 표정으로 그의 청탁을 승낙했지만, 사실은 原書 이외에 일본말 번역과 한국말 번역책까지 가지고 온지라 여차직하면 <베끼는> 정도의 수고와 속도로 해치울 수 있을줄 알고 승낙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그게 그렇지 않다. 우리말 번역은 乙酉文化社에서 나온 저명한 영문학자인 최모씨가 번역한 것인데 이것이 깜짤 놀랄 정도로 오역투성이다. 게다가 적당히 생략한 데가 많아서, 청년이 900매로 예산을 해온 것이 천 3백매도 SJADFM 것같다. 다음 찾아온 청년사장을 보고, 원고매수가 예정보다 퍽 초과된다는 것과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퍽 어렵다는 것을 말하면서 20원씩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하자, 이 청년은 지극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장시간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그러면 헤밍웨이의 소설을 자기의 출판사에서 몇 년 전에 출판한 게 있는데 그것은 번역도 어지간히 된 것이니까 그것을 약간 수정―원고지에 쓸 것도 없이 교정보는 식으로 책의 여백에 고쳐넣을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해서 내 이름으로 내고 전부 합해서 4만원에 하자는 것이다. 청년은 그렇게 하면 「주홍글씨」와 한데 묶어 내 이름으로 내면 유리할 거라는 것이다. 나도 그 청년의 말이 그럴 듯하게 생각되고 이왕 시작한 일이고 착수금까지 받은 것이라,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승낙을 할 수밖에. 그런데 나중에ㅐ 그가 갖고 온 헤밍웨이의, 200자 원고지로 천 4백매가 착실하게 되는 전쟁소설의 번역책을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과 비교해가면서 읽어보니,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번역, 주인공인 대위가 메스홀에서 동료들과 농담을 하는데 군목을 보고 하는 대화 중에, 『신부 기분 잡쳤어. 신부 계집 때문에 기분 잡쳤어』 식의 말투를 예사로 쓰고 있다. 이것은 전후 문맥을 소개해야지만 이 오역이 얼마나 중대하고 창피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좌우간 이것은 아버지를 보고 『아범 기분 잡쳤어, 아범 계집 때문에 기분 잡쳤어』 정도에 해당하는, 농담이 아닌 무례한 욕지거리로 화해버린 오역이다. 그에 비하면 을유문화사의 정모씨의 번역은 월등 나은 번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번역에도 <미소했다>라는 식의 오역이 튀어나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에 청년사장이 또 찾아와서 한참동안 또 옥신각신을 한 끝에 이 정모씨의 얘기가 나와서, <미소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오역이 있더라는 말을 했더니, 이 청년은 의아스러운 얼굴로 『그럼 선생님이 하시면 어떻게 번역을 하시겠습니까』 하고 자못 정중하게 묻는다. 나는 이 <미소했다>가 얼마큼 중대한 오역인가를 그에 지지 않게 정중한 표정으로 설명해주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때면 정말 온몸에 맥이 풀리고 슬퍼지고 고문을 받는 것보다도 더 괴로운 심정이 든다. 그래도 당신같은 몰이해한 출판사의 일은 못하겠다고 큰 소리를 칠만한 용기가 안 나온다. 물론 안 나온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현실이다. 좀더 사족을 붙여 말하자면 이 청년사장과의 거래의 결말은, 헤밍웨이의 소설을 원고로 다시 새로 스기로 하고 「주홍글씨」까지 합해서 총 2천 8백매에 5만원으로 낙착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여오고 그 두 개가 된 혹을 또 떼러 갔다가 또 혹을 그 위에 하나 더 붙여온 셈이 되었다. 이제 출판사 사장하고의 거래는 완전히 그의 K․O승이다. 이렇게 되면 나의 전술은 간교해지는 수밖에 없다. 에라 모르겠다, 최모의 번역을 군데군데 어벌정 고쳐가며 베끼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불쌍한 생각까지를 예사로 하게 된다. 이러니 나는 내가 욕하는 최모씨나 정모씨보다 더 나쁘면 나빳지 조금도 나을 게 없다. 아직은 모른다. 과연 정모씨의 번역을 베끼게 될지 어떨지 일을 시작해봐야 안다. 그러나 벌써 그런 생각을 먹었다는 것만으로 내가 실제 그의 번역을 베끼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반은 죄를 진 셈이다. 필경 나도 누구를 지식인이 아니라고 욕을 할만한 권한이 점점 희박해져가는 처지에 이쏙, 그런 절망적인 처지에 이길 가망이 도저히 없느,S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소련의 현대시인 쏠제니친의 시에 나오는 개미와 같은 낡은 생리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감명적인 시라고 생각되어서 최근에 《思想界》지에 번역되어 나온 것을 그대로 옮겨서 소개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작은 나무쪽을 불 속에 던져넣었는데, 그것은 개미들이 오밀조밀 집을 짓고 있던 통나무쪽이었다.

통나무껍질이 딱딱 소리를 내면서 타기 시작할 때 개미들은 절망 속을 기어 허위적거렸다. 껍질로 기어나와 날름대는 불꽃 속에서 타죽어가고 있었다. 얼른 통나무의 한 쪽을 들어올려 부벼대었다. 많은 개미들이 도명쳐 모래밭을 횡단, 낮은 솔잎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기운을 피해 아주 달아나버리지 않았다. 일단 절박한 위헙을 극복하자마자 개미들은 다시 타고 있는 통나무 주위로 기어들었다. 마치 어떤 힘이, 개미들을 그들이 포기해버린 고향으로 다시 되돌려보낸 듯이 많은 개미떼가 불타는 통나무로 다시 기어오르기까지 했다. 기어코 타 죽을 때까지 개미들은 그 불붙는 집을 방황하는 것이었다.

― 「개미와 불」

<1966. 3>

生活의 克服

― 담배갑의 메모





나는 수첩을 갖고 다니기가 싫어서 담배갑 뚜껑에 메모를 해두는 버릇을 지키고 있는 지가 벌써 오래된다. 어떤 때는 그런 담배갑이 양복호주머니 속에나 책상 위의 꽃바구니 속에 수두룩하게 고일 때도 있다. 어쩌다 몇 달 전의 그런 메모가 호주머니같은 데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발견되고, 찢어버리기 전에 또 혹시나 하고 다시한번 훑어보는 수도 있는데, 남의 비밀같이 정이 안 가는 이런 메모의 암호로 그당시의 생활이 홀연히 눈앞에 떠오르고는 한다. 잡지사의 원고료의 액수와 날짜, 사야 할 책이름. 아이들의 학비 낼 날짜와 액스, 전화번호, 약 이름과 약방 이름, 외상술값…… 이런 자질구레한 숫자와 암호 속에 우리들의 생활의 전부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담배갑의 보이지 않는 메모가 내 머릿속에도 거의 언제나 들어있다. 요즘의 그 위에 써있는 메모는 미국시인 데오도어 뢰스케의 시의 짤막한 인용구다―<너무 많은 實在性은 현기증이, 체증이 될 수 있다―너무 밀접한 직접성은 극도의 피로가 될 수 있다.> 이것은 詩誌에 줄 시론을 번역하다 얻은 말인데, 이 말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나의 시적 사고의 문맥의 전후관계를 자세히 속새하지 않고는 그 진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대체로 시의 경험이 낮은 시기에는, 우리들은 시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수가 많으나, 시의 어느정도의 훈련과 지혜를 갖게 되면, 시를 <기다리는> 자세로 성숙해간다는 나의 체험이 건방진 것이 되지 않기를 조심하면서, 나는 이런 일종의 수동적 태세를 의식적으로 시험해보고 있다. 여기에서 <너무 많은 실재성>과 <너무 밀접한 직접성>은, 그러니까 시를 찾아다니는 결과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내 자신에게 경고를 주는 의미에서 이런 메모를 해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작상의 교훈은 곧 인생 전반의 교훈으로도 통하는 것이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리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는 수가 많으니 제반사에 너무 밀착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런 초월철학은 대단한 진리도 아니지만 나대로의 履行의 전후관계에서 보면 한없이 신선하고 발랄하고 힘의 원천이 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이 평범한 진리보다도 이것을 적어두고 있는, 파지가 다 된 담배갑일 것이다. 하다못해 고리타분한 李太白의 시 「山中與幽人對酌」 같은 것도 이런 담배갑의 이행에서 보면 뜻박의 새로운 맛을 준다.


그대와 내가 만나자

산꽃들도 바나가와 피네

한잔 들게 한잔 주게

또 한잔 해지는줄 모르고

나는 이미 취해서

풀밭에서 한참 자려고 하니

그대는 마음대로 갔다가

내일아침 거문고나 안고 오게


이 시에서 나의 가슴을 찌른 구절은 <풀밭에서 한잠 자려고 하니/ 그대는 마음대로 갔다가>의 <마음대로>다, 이런 여유―아아 잠시 생각해보자―이런 여유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나중에 原詩와 대조를 해보니, 원시의 그 대목이 <我醉欲眠卿且去/明朝有意……>로 되어있으니까, 엄격히 말하자면 <마음대로>는 원시에는 없는 것으로서 역자가 문장상의 윤기로 붙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오역은 좋은 오역이다. 이것이 오역이라는 것을 아 뒤에 나는 오히려 太白의 이 시가 더 좋아졌고, <마음대로>가 더 좋아졌고, 여유의 진리에 대한 지혜를 더 함축있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요전에 어떤 시 쓰는 선배의 집에 갔는데, 그 선배는 큰아이가 중학교 시험에 낙제를 했다는 얘기를 하는 끝에, 이런 말을 하면서 입맛을 다시었다. 『내가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자식이 떨어지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파요.』 자식은 자기의 몸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것이 부모의 상정이다. 자식의 미련을 청산하기란 자기의 미련을 청산하기보다도 몇 배나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 이 미련도 꺾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머릿속의 담배갑의 메모를 빌려서 나는 요즘 조금씩 이런 연습도 하고 있다. 우선 새학기부터는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말부터 하지 않기로 하자. 이를 깨물고 자식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자. 아직 이 연습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좋을 것 같다. 이런 回心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나는 사랑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그와 나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무서운 장해물부터 우선 없애야 한다. 그 장애물은 무엇인가.


지금 나를 태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욕심, 욕심, 욕심.

― 뢰스케의 詩에서


욕심이다. 이 욕심을 없앨 때 내 시에도 進境이 있을 것이다. 딴 사람의 시같이 될 것이다. 딴 사람―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

벌써 오랜 옛날에, 나의 머릿속의 담배에 오랜동안 적어놓은 일이 있던 공자인가 맹자인가의 글의 한 구절이 또 생각이 난다. 이런 뜻의 유명한 처세훈이다―<슬퍼하되 상처를 입지 말고, 즐거워하되 음탕에 흐르지 말라.> 마음의 여유는 육신의 여유다. 욕심을 제거하려는 연습은 긍정의 연습이다.>

우리집에는 올겨울에 처음으로 마루에 난로를 놓았고,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무명 조선바지를 해입었고, 조그만 통의 커피도 한병 마련해놓고 있다. 이만한 여유를 부끄럽게 여기는 否定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나의 경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순의 고민을 시간에 대한 해석으로 해결해보는 것도 순간적이나마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여유가 고민으로 생각되는 것은 우리들이 이것을 <고정된> 사실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흘러가는 순간에서 포착할 때 이것은 고민이 아니다. 모든 사물을 외부에서 보지 말고 내부로부터 볼 때, 모든 사태는 행동이 되고, 내가 되고, 기쁨이 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시―동기―로부터 본다―이것이 나의 새봄의 담배갑에 적은 새 메모다. 나의 <마음대로>의 새 오역이다.

<白羊>에서 가장 오랜 신세를 지다가 뒤늦게 <아리랑>으로 옮겨와서 최근에 <파고다>로 또 옮겨온 메모의 배경의 정다운 역사. 그리고 펜에서 만년필로 변했다가, 만년필에서 볼펜으로 변한 메모의 도구의 정다운 역사. 그것은 과거는 되찾아지기 전에 우선 부정되어야 한다는, 이 역시 너무나 평범한 발전의 원칙에 따른 돌음길. 부정은 끝났다―나의 메모와 메모의 배경과 도구를 돌이켜볼 때, 나의 내부의 저변에서 모기소리처럼, 그러나 뚜렷하게 들려오는 소리. 이 소리의 음미.

그러나 우리들의 앞에는 모든 냉전의 해소라는 커다란 숙제가, 우리들의 생애를 초월한 숙제가 가로놓여있다. 냉전―우리들의 미래상을 내다볼 수 있는 눈을 주지 않는, 우리들의 주위의 모든 사물을 얼어붙게 하는 모든 형태의 냉전―나와 나 사이의 모든 형태의 냉전―이것이 다름아닌 비평적 지성을 사생아로 만드는 냉전. <파고다>여, 전진하라.

<1966. 4>



解氷





목욕통에 얼어붙었던 물이 윗덮개가 조용히 풀리기 시작한다. 위의 3분가량에 흥건히 물이 괴어있고, 얼음의 근심은 소리없이 밑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아직도 마당 위에 얼어붙은 먼지에 쌓인 얼음들은 요지부동이지만, 직경 2미터도 안 되는 목욕솥의 해빙이 알려주는 봄의 전조는 새싹을 보는 것보다도 더 반갑다. 새싹이 틀 때 봄을 느끼는 것은 이미 늦은 감이 들고, 가을의 낙엽을 보고 셸리처럼 지나치게 일찍이 봄을 예고하는 것은 너무 詩的이어서 싫고, 그저 남보다 조금 먼저 凡人처럼 봄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워 좋다.

새싹이 솟고 꽃봉오리가 트는 것도 소리가 없지만, 그보다 더한 침묵의 극치가 해빙의 동작 속에 담겨있다. 몸이 저리도록 반가운 침묵. 그것은 지긋지긋하게 조용한 동작 속에 사랑을 영위하는, 동작과 침묵이 일치되는 최고의 동작이다.

가라앉은 얼음을 겨우내 굳어온 근심이라고 생각할 때, 이 불행의 잠수행위는 희열에 찬 풍자까지도 풍겨주고, 어지러운 현실의 걱정이야 어찌되었든 우선 까닭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수돗가에 씻어놓은 저녁쌀이 튀어나올 듯이 하얗게 보이고, 마루에 올라와 난로가에서 손을 부벼보면 손의 두께까지도 제법 두툼하게 느껴진다.

피가 녹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얼음이 녹는 것이 아니라 피가 녹는 것이다. 그리고 목욕솥 속의 얼음만이 아닌 한강의 얼음과 바다의 피가 녹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거대한 사랑의 행위의 유일한 방법이 침묵이라고 단정한다.

우리의 38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다. 이 강파른 철덩어리를 녹이려면 얼마만한 깊은 사랑의 불의 조용한 침잠이 필요한다. 그것은 내가 느낀 목욕솥의 용해보다도 더 조용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조용함을 상상할 수 없겠는가. 이것이 다가오는 봄의 나의 촉수요 採針이다. 이 봄의 과제 앞에서 나는 나를 잊어버린다. 제일 먼저 녹는 얼음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철이고 싶다. 제일 먼저 녹는 철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얼음이고 싶다.

<1968. 2>



이일 저일





구공탄냄새를 맡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과정이 참말로 신비스럽다. 언제 어떻게 맡는지 알 수 없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것으로는 해면에 물 스며들 듯하지만 그 완만한 속도는 무엇에 비해야 좋을지. 정말 느리다. 날이 하도 궂어서 여편네가 아침에 구공탄을 넣고 나간 것은 아는데, 그리고 방도 따끈따끈한 것은 지금 바로 이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아는데, 내가 구공탄내를 맡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통 알 수가 없다. 후각이 둔한 탓인지 머리가 고민으로 만성 마비증에 걸린 탓인지, 이렇게 안 맡아질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방귀냄새같은 것을 맡는 것을 보면 후각도 의심을 받을만한 여지가 없는데 구공탄냄새만은 통 맡아지지 않는다.

결국은 구공탄냄새를 맡아서가 아니라 염려와 공포에 못이겨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그것과 바람이 통할 수 있는 맞은편 쪽의 마당으로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그것과 바람이 통할 수 있는 맞은편 쪽의 마당으로 통한 큰 문짝까지도 열어제쳐놓는다. 그래도 구공탄냄새는 맡아지지 않는다. 다시 자리에 누워본다. 태풍이 열어제친 두 문 사이로 마구 질주한다. 춥지만 다시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그대로 누워있다. 구태여 묘사하자면 내가 누워있는 방은 여편네와 여덟살짜리 애놈이 단둘이 자고 있는 방이다. 아니 단둘이 자면 꽉차는 방이다. 서쪽으로 머리를 둘 때, 바른편에는 조그만 탁자가 있고 왼쪽에는 노란 칠을 한 빼닫이가 달린 옷장. 아궁이는 바른쪽 탁자의 바로 뒷벽에 붙어 있다. 그러니까 탁자 밑이 바로 아랫목. 나는 지금 이 아랫목의 탁자 밑에 놓아둔 담뱃갑 뒤의 짙은 어둠 속을 응시하고 누워있다.

구공탄냄새는 여전히 맡아지지 않는다. 다소 초조해진다. 벌떡 일어나 앉는다. 몇 번째 되풀이한 심호흡을 또한번 해본다. 골치가 아픈가 하고 생각해본다. 골치도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르겠다. 이건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지난 겨울에 집안 식구 넷이 흠빡 개스중독이 됐을 때도 경위는 이와 똑같았다. 구공탄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고 골치가 아픈 것을 겨우 깨달은 뒤에도 감기가 가서 그런줄만 알고 이틀밤을 그대로 지냈다. 사흘째 되던 밤에 아이들이 자다가 깨어나서 토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그 원인이 구공탄냄새인줄은 몰랐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놈이 먼첨 토했는데, 저희 어멈은 내가 낮에 그놈을 너무 심하게 때려주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나를 책망했고 나도 그런줄만 알았지 구공탄냄새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여편네하고 한참동안 싸우고 난 뒤에, 의사를 부르러 가려고 방문을 열고 나가자니 마루와 부엌 겸 쓰는 문간 안 현관이 개스로 꽉차있다.

이런 지독한 경험을 했는데도 구공탄냄새는 용이하게 맡아지지 않고 골치가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모르겠다. 구공탄냄새가 완연히 코에 맡아질 때에는 이미 늦었고 골치가 아프기 시작하면 벌써 상당한 분량의 개스를 마신 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경우도 그렇지만, 구공탄냄새를 맡았다는 것보다도, 번연히 알고 말았다는 것, 주의를 하면서 맡았다는 것, 혹은 극도로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경계를 해가면서 맡았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고 더 분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글이 쓰기 싫은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글을 막 쓰는지 모르겠다. 쓰고 싶은 글을 써보지도 못한 주제에, 또 제법 글다운 글을 써보지도 못한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주제넘은 소리이지만, 오늘도 나는 타골의 훌륭한 글을 읽으면서 겁이 버쩍버쩍 난다. 매문(賣文)을 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하면서 매문을 한다. 그것은 구공탄냄새를 안 맡으려고 경계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맡게 되는 것과 똑같다.

이 글은 쓰기 시작할 때는 사실은 구공탄냄새를 빌어서 우리나라가 아직도 부정과 부패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야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의 나의 심정은 우선 내 자신의 문제가 더 급하다. 내 영혼의 문제가 더 급하다.

타골의 「장난감」이라는 시가 있다. 좀 길지만 역해보자.


아이야, 너는 땅바닥에 앉아서 정말 행복스럽구나, 아침나절을 줄곧 나무때기를 가지고 놀면서!

나는 네가 그런 조그만 나무때기를 갖고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느 나의 계산에 바쁘다, 시간으로 계산을 메꾸어버리기 때문에.

아마도 너는 나를 보고 생각할 것이다. 『너의 아침을 저렇게 보잘 것 없는 일에 보내다니 참말로 바보같은 장난이로군!』 하고.

아이야, 나는 나무때기와 진흙에 열중하는 법을 잊어버렸단다.

나는 값비싼 장난감을 찾고 있다, 그리고 금덩어리와 은덩어리를 모으고 있다.

너는 눈에 띄는 어떤 물건으로도 즐거운 장난을 만들어낸다. 나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에 나의 시간과 힘을 다 써버린다.

나는 나의 가냘픈 쪽배로 욕망의 대해(大海)를 건너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자기도 역시 유희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타골의 이런 시를 읽으면 한참동안 눈이 시리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런 쉬운 말로 이런 고운 시를 쓸 수 있으니. 이런 쉬운 말로 이런 심오한 경고를 할 수 있으니. 사회비평이나 문명비평도 좀더 이렇게 따뜻하게 하고 싶다. 그것이 더 가슴에 온다. 세상이 날이 갈수록 소란하고 살벌해만지는 것을 보면, 이제는 소리를 지르는 데는 지쳤다. 기발한 것도 싫고 너무 독창성에만 위주하는 것도 싫고 그저 진실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진실을 추구하다 타골의 시보다 더 따분한 시를 쓰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도 모르는 나의 정신의 구공탄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무서운 것은 구공탄중독보다도 나의 정신 속에 얼마만큼 구공탄개스가 스며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무섭다. 그것은 웬만큼 정신을 차리고 경계를 해도 더욱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더욱 무섭다.

얼마 전에 우리집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다. 방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주인을 찾는다. 나가보니 수도국원이다. 수도세를 받으러 온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미터 검사원이다. 나를 불러놓고 가족이 몇 명이며 세든 사람이 몇가구나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그 묻는 품이 이상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미터가 이번달에 상당히 돌아갔다고 한다. 나는 여름철이라 빨래와 목물이 잦아서 그렇게 되었거니 정도로 생각하고, 얼마나 돌아갔길래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액수로 환산해서 2천 6백원이라고 한다. 그 전달까지 우리는 매달 백원밖에는 내지 않았다. 국원은 나를 계량기가 묻힌 곳까지 데리고 가서 미터뚜껑을 열고 속을 보여주면서, 심지어는 누수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증명까지도 해보이면서 자기의 검사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 국원과 나는 자연히 언성이 높아졌고, 나는 기계를 신용할 수 없다는 기계불신론으로 기울어졌고, 국원은 악착같이 기계가 사람보다 정확하다고 기계 절대주의를 내세웠다. 나는 결국 수도국에 직접 문의를 해볼 작정을 하고 싸움은 결말이 나지 않은 채 헤어져 버렸는데, 수도국에 가기도 전에 그 이유는 너무나 수월히 판명되었다. 이것은 그전에 다니던 검사원의 잘못이었다. 그 종래의 검사원이 지난 겨울 이래 미터를 들여다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사용량을 매달 똑같이 먹여놓았던 것이다. 그 동안에 우리집에는 세든 사람들이 4가구가량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이 2천 6백원은 그 동안에 누적된 사용량의 요금이었다. 그리고 이 새 국원은 자기들의 직무상의 책임과 체면을 생각해서도 선임자의 과실을 이쪽에 알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튿날 나는 그 국원이 집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사정을 해보려고 불러서 막걸리까지 같이 나누면서 화해를 했지만, 화해를 하고 나서도 나는 화가 가시지 않았고, 사람보다 기계를 신용한다는 그의 말을 귀에서 닦아내려고 술김에 이발소로 뛰어들어가서 삭발을 하고 말았다.

『여보, 백원씩 내던 수도요금이 별안간 2천 6백원이 되다니 이게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오. 밤낮을 노상 수도를 틀어놓고 있어도 그 금액은 안 나오리다』 하고 항의하는 말에, 국원은 종시일관 『그래도 미터에 그렇게 나와 있는 걸 어떻게 합니까. 사람보다 기계가 정확한걸요』 하면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구공탄 얘기가 이 수도국원과 어떤 연관의 아라베스크를 그리고 있는지 좀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만 오늘은 이만해두자.

讀者의 不信任





필자도 시를 쓰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기가 될까보아 대단히 마음 괴로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詩(비록 시작품뿐만이 아니지만)는 과거에 있어서 매월 빠지지 않고 줄기차게 나오는 문학지나 기타 월간지에 개재된 작품 중의 거의 90프로(상당히 돋보아서)가 詩가 아닌 작품들이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이런 현상은 日本은 물론 구라파 선진문화국가에도 예사로 있는 일

이라고 보면 그뿐이겠지만 시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큰 슬픈

이야기가 없고 이보다도 더 분격할 이야기가 없고 이보다도 더 중대한 범죄가 없다.

요즈음 문학계의 문제(기타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는, 정치적인 분란이 위주가 되는 바람에 제 3 제 4의 문제가 되고 있고, 앞으로도 정치적 경제적 문제같은 것보다 더 현실적인 難題의 처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니만큼 좀처럼 이 방면에 대한 고려를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쉽사리 올 것 같지 않지만, 그만큼 걱정스러움이 더 간절한 것도 사실이다.

일전에 4월 이후의 새로운 현상에 대한 잡담이 나온 자리에서 어느 문학지 기자가 하는 말이, 요즈음 통 잡지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것이 <나쯔가레>가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정치에 몰두하여 문학잡지 같은 것은 보지 않게 된 바람에 그런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문학지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그들이 문학을 애호하는 것은 (적어도 문학지를 구매한다는 것은) 평화시절에만 국한될 閑事에 불과하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진정한 문학의 본질은 결코 閑時에만 받아들일 수 있는 애완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오늘날과 같은 개혁적인 시기에 처해 있을수록 그 가치가 더 한층 발효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은(그것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문학계 전반에 대한 기막힌 모욕이요, 경멸이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혁명이란 이념에 있는 것이요, 민족이나 인류의 이념을 앞장서서 지향하는 것이 문학일진대, 오늘날처럼 이념이나 영혼이 필요한 시기에 젊은 독자들에게 버림을 받는 문학인이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을 고백하잠녀 나는 그 기자의 말을 듣고 내심으로는 오히려 통쾌한 감이 들었고, 우리나라 문학계도 이제야 비로소 응당 받아야 할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고 쾌재를 부르짖었다.

젊은층의 전면적인 불신임을 받아야 할 것은 정치계에만 限한 일이 아니라 문학계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각성의 시기는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사회란 경제적인 조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의 탐구가 상식이 되는 사회이어야만 하는데, 이러한 영혼의 탐구는 경제적 조건이 해결된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치 소학생들이 숙제시간표 만드는 식으로 시간적 절차를 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의 개발은 호흡이나 마찬가지다. 호흡이 계속되는 한 영혼의 개발은 계속되어야 하고, 호흡이 빨라지거나 거세지거나 하게 되면 영혼의 개발도 그만큼 더 빨라지고 거세져야만 할 일이지 중단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중단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시는 필자가 보기에는 벅찬 호흡이 요구하는 벅찬 영혼의 호소에 호응함에 있어서 완전히 낙제점을 받고 보기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허다한 혁명시가 나오지 않았느냐고.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너무 창피해서 대답하지 못하겠다.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는 영혼이란, 唯心主義者들이 고집하는 협소한 영혼이 아니라 좀더 폭이 넓은 영혼―다시 말하자면 현대시가 취급할 수 있는 변이하는 20세기 사회의 제현상을 포함내지 網總할 수 있는 영혼이다. 나는 <유심주의자>들의 협소한 영혼이라고 말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학계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이 <유심주의자>라는 말은 합당하지 않고 그것은 오히려 <逃避子>라거나 혹은 <기만적인 유심주의자>라고 부르는 편이 옳을 게다. 이러한 도피자나 기만적인 범죄자(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를 혁명을 수행하는 학생들이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기 때문에(혹은 간파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은 보류하기로 한다. 또한 이밖에 4월 이후의 혁명시가 어째서 진심으로부터 독자들의 환영을 못받고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도 여기에서는 보류하겠다.

다만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4월 이후의 우리나라 시작품에 대해서 젊은층들이 영혼의 교류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거부하였다면 그것은 사실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또한 때늦은 감은 있지만 진정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계는 이러한 철저한 불신임 속에서 다시 백지로 환원됨으로써만 새로운 시대의 작품의 생산을 기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견실한 독자가 없이는 견실한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 문학현상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젊은 독자들일수록 아무리 거센 호흡 속에서도 영혼의 개발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런 뜻에서 문학인들은 젊은 독자들의 다급한 영혼의 돌진 속에서 호흡을 꺾이거나 휴식하지 말아야 하겠다.

문학혁명은 독자들 입장에서도 필자의 입장에서도 먼 장래의 태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1960>



아직도 안심하긴 빠르다

―4․19 1周年





4․19당시나 지금이나 우두머리에 앉아있는 놈들에 대한 증오심은 매일반이다. 다만 그 당시까지의 반역은 음성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까놓고 하게 되었다는 차가 있을 뿐인데, 요나마의 변화(이것도 사실은 상당한 변화지만)도 張정권이 갖다준 것은 물론 아닌데 張勉들은 줄곧 저희들이 한 것처럼 생색을 내더니 요즈음에 와서는 <반공법>이니 <보안법 보강>이니 하고 배짱을 부릴 만큼 건방져졌다.

그러나 하여간 세상은 바꿔졌다. 무엇이 바꿔졌느냐 하면 나라와 역사를 움직여 가는 힘이 정부에 있지 않고 민중에게 있다는 자각이 강해져가고 있고 이러한 감정이 의외로 급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4․19당시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역사의 추진력의 선봉으로서 일반지식인들이 상당한 역할을 할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그러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가 없다. 교육자, 문학․예술인, 저널리스트들 중에서 과거에 호강을 했던 치들은 고사하고라도, 그래도 양식이 있다고 지목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 국가의 운명에 냉담한 친구들이 상당히 많은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도 아이들한테 자기가 쓴 시집을 반 강매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들, 파리에 갈 노잣돈을 버느라고 기관지마다 찾아다니면서 레알리즘 그림을 그리는 추상화가, 여당 덕분에 박사학위를 따고 <반공법> 공청회 연사로는 초청을 받고도 꽁무니를 빼는 대학교수, 곗돈을 붓느라고 아이들한테 과외공부를 시키는 국민학교 교원들, <보안법 보강>을 감행한다는데 반대데모도 한 번 못하는 문인들, 이런 사람들은 혁신계 정치가나 교원노조나 대구의 데모를 아직도 빨갱이처럼 백안시하고 있다.

그러니 그 이상의 지도층에 있는 부유한 자들이나 그들의 심부름을 하는 순경 나부랭이들의 골통 속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지―오늘이라도 늦지 않으니 썩은 자들이여, 咸錫憲씨의 잡지의 글이라도 한 번 읽어보고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시험해보아라. 그래도 가슴속에 뭉클해지는 것이 없거든 죽어버려라!

필자는 생업으로 양계를 하고 있는 지가 오래 되는데 뉴우카슬 예방주사에 커미숀을 내지 않고 맞혀보기는 이번 봄이 처음이다. 여편네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을 흘리더라. 백성들은 요만한 善政에도 이렇게 감사한다. 참으로 우리들은 너무나 선정에 굶주렸다. 그러나 아직도 안심하기는 빠르다. 모이값이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이값은 나라꼴이 되어가는 형편을 제어보는 가장 정확한 나의 저울눈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지금같아서는 형편없이 불안하니 걱정이다. 또 이 모이값이 떨어지려면 미국에서 도입농산물자가 들어와야 한다는데, 언제까지 우리들은 미국놈들의 턱밑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나? 여하튼 이만한 불평이라도 아직까지는 마음놓고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일주일이나 열흘 후에는 또 어떻게 될는지 아직까지도 아직까지도 안심하기는 빠르다.

<1961>

創作自由의 조건





李政權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문제이다.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모든 창작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상으로는 38선이 있지만 감정이나 꿈에 있어서는 38선이란 타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너무나 초보적인 창작활동의 원칙을 올바르게 이행해보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문학을 해본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십수년 동안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문학작품이 없는 곳에 문학자가 어디 있었겠으며 문학자가 없는 곳에 무슨 문학단체가 있었겠는가. 아마 있었다면 문학단체의 이름을 도용한 반공단체는 있었을 것이지만, 이 반공단체라는 것조차 사실에 있어서는 반공을 판 돈벌이 단체이거나, 문학과 반공을 <이중으로> 팔아먹은 돈벌이 단체에 불과하였다.

4월 이후의 都下 각 신문에 신물이 나도록 되풀이된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왜 또다시 꺼내느냐고 꾸짖을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이 4월 이후다. 4월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자유문협이 거꾸러졌다. 한국문협이 거세를 당했다. 전후문학가협회가 새로 나왔다. 시인협회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회원숙청을 했다 등등을 가지고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무엇이 달라져야 할 것인가부터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 것인가? 언론자유다. 1에도 언론자유요, 2에도 언론자유요, 3에도 언론자유다. 창작의 자유는 백퍼센트의 언론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 창작에 있어서는 1퍼센테이지가 결한 언론자유는 언론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李정권 하에서는 8할의 창작의 자유가 있었지만 張정권 하에서는 9할의 자유가 있으니 얼마나 나아졌느냐고 말하고 싶은 국회의원이 있을 성싶다. 아니 국회의원뿐 아니라 필자 자신 역시 그러한 망상과 유혹에 빠지기 쉬운 요즈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간첩방지주간이나 五列이니 國是니 할 때마다 나는 옛이나 다름이 없이 가슴이 뜨끔뜨끔하고, 또 내가 무슨 잘못된 글이나 쓰지 않았나 하고 한결같이 염려가 된다. 간첩이 오고 있으니까 간첩방지선전도 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간첩방지선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선전의 압력과 동일한 압력이 창작활동 위에까지 부당하게 뻗칠 것 <같은 불안>이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다. <보장된 자유>란 무엇인가? 이러한 불안을 없애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의 제거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위정자한테 있다.

지난날 같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중립이나 평화통일을 학생들이 논할 수 있는 새시대는 왔지만 아직도 창작의 자유의 완전한 보장은 전도요원하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왜 이다지도 무기력하냐는 비난이 요즈음 자자한 것 같지만 책임은 결코 문학하는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필자부터도 쓸데없이 몸을 다치기는 싫다. 정말 공산주의자라면 자기의 신념을 위해서 자업자득하는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섣불리 몸을 다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창작상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야말로 <불온사상>을 가진 것 <같이> 보여지는 수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의 결과가 사직당국의 심판으로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문제는 그 판결의 유죄․무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만일>에의 考慮가 끼치는 창작과정상의 감정이나 꿈의 위축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축현상이 우리나라의 현사회에서는 혁명 후도 여전히 그전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죄악이다.

필자는 앞으로 문학자들이나 각 문학단체가 규학하여 사회에 대한 통일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움직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고 있는 사람의 한 사람이지만, 그러한 단체는 우선 이 <완전한 언론자유>에의 戰取가 지고목표이며, 도 이 지고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서도 전체 문학인은 하루바삐 단결해야 할 줄로 안다.


제 精神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근대의 자아 발달사의 견지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요점으로 해서 생각할 때는 극히 쉬운 문제이고, 고대 희랍을 촛불을 대낮에 켜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은 철학자의 견지에서 全人에 요점을 두고 생각할 때는 한없이 어려운 영원한 문제가 된다. 한쪽을 대체로 정치적이며 세속적이며 상식적인 것으로 볼 때, 또 한쪽은 정신적이며 철학적인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本欄[靑脈 66.5]의 요청은 아무래도 진단적인 서술에보다는 처방적인 답변의 시사에 강점을 두고 있는 것 같고, 다분히 작금의 우리의 주위의 사회현상의 전후관계를 염두에 둔 고발성을 띠운 답변의 시사를 바라는 것 같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나는 이 제목을, <제 詩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범위를 詩壇에 국한시켜 위선 생각해보자. 우리 시단에 詩人다운 시인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시인다운 시인>의 해석에 으레 구구한 반발이 뒤따라 오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자유를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운명에 적극 관심을 가진, 이 시대의 지성을 갖춘, 시정신의 새로운 육성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금년도에 접해온 시 작품들을 한 번 생각해볼 때 내가 본 전망은 매우 희망적이다. 좀더 전문적인 말을 하자면 우리 시단의 경우, 시의 현실참여니 하는 문제가 시를 제작하는 사람의 의식에 오른 지는 오래이고, 그런 경향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경향의 작품이 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도의 예술성의 보증이 약했다는 것이 커다란 약점이며 숙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젊은 작품들이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국한된 조그만 시단 안의 경사만이 아닐 것이다.


四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東學의 함성,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여.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 엎었으면

이 군스러운 부패와 享樂의 不夜城

갈아 엎었으면

갈아 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 칠, 아 푸른 보리밭

― 申東曄 「4월은 갈아 엎는 달」에서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것을 이번에는 좀 범위를 넓혀서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4월 19일이 아직도 공휴일이 안 된 채로, 달력 위에서 까만 활자대로 아직도 우리를 흘겨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 까만 19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지성을 말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이 통행금지 시간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고, 윤비의 국장을 다음 선거의 득표를 위한 쇼오로 만들었고, 부정 공무원의 처단조차도 선거의 투표를 계산에 넣고, 노동조합을 질식상태에 있고, 언론자유는 이불 속에서도 활개를 못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한 일은 지식층들의 피로다. 이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면 그뿐이겟지만 좌우간 비어홀이나 고급 술집의 대학교수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목석같은 나이가 나를 울린다>를 부르면 좋아하지만, 언론자유 운운하면 세련되지 않은 촌닭이라고 핀잔을 맞는 것이 상식이다. 얼마 전에 모신문의 부정부패 캠페인의 설문을 받은 명사 궁ㄴ데에 바로 며칠 전에 그 집에 가서 한 개에 4천8백원짜리 쿠션을 10여개나 꼬매주고 왔다고 여편네가 나에게 말하던 그 노 경제학자가 있는 것을 보고 낙담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로 낙담을 했다고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는 심각한 병상이 우리 주위와 내 자신의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 나의 주위에서만 보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6부니 7부니 8부니 하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여편네더러 되도록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구두선처럼 뇌까리고 있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계를 드는 여편네를 막을 수가 없고, 돈을 빌려쓰지 않을 수가 없고, 딱한 경우에 돈을 꾸어주지 않을 수가 없고,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버렸다.

우리들 중에 누가 죄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은 神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진지하게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나의 연상에서는 진지한 침묵으로 통한다. 가장 진지한 시는 가장 큰 침묵으로 승화되는 시다.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더라도 지금의 가장 진지한 시의 행위는 형무소에 갇혀있는 수인의 행동이 극치가 될 것이다. 아니면 폐인이나 광인. 아니면 바보. 그러나 이 글의 주문의 취지는 英雄待望論이 아닐 것이다.

앞에서 시사한 유망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과도 유관한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문화정도는 아직도 영웅주의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재원의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나 신동엽의 「발」이나 「4월은 갈아 엎는 달」의 因數에는 영웅 대망론의 냄새가 아직도 빠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아직도 우리의 진정한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나의 직관적인 추측으로는, 표면상의 지식인들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들의 내면에는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각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이행이 은연중에 강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로 귀착된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따라서 나는 내 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가로 귀착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를 무한히 신나게 한다. 나는 나의 최근작을 열애한다. 나의 서가의 페이퍼 홀더 속에는 최근에 쓴 아직 미발표 중의 초고가 세 편이나 있다. 「식모」「풀의 影像」「엔카운터誌」라는 제목이 붙은 시들―아직은 사실은 부정을 탈 것 같아서 제목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이 중의 「엔카운터誌」 한 편만으로도 나는 이병철이나 서갑호보다 더 큰 부자다. 사실은 앞서 말한 김재원의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를 읽고 나서 나는 한참동안 어리둥절해 있었다. 젊은 세대들의 성장에 놀랐다기보다도 이 작품에 놀랐다. 나는 무서워지기까지도 하고 질투조차도 느꼈다. 그래서 그달치의 「詩壇月評」에 감히 붓이 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私心이 가시기 전에는 비평이란 쓰여지는 법이 아니다. 그러다가 그 장벽을 뚫고 나온 것이 「엔카운터誌」다. 나는 비로소 그를 비평할 수 있는 차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나는 여유 있게 그의 시를 칭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작자보다 우수하다거나 앞서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생활은 유동적인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와 나와의 관계만 하더라도 이 윤리의 밀도를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엔카운터誌」를 쓰지 못하고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의 월평을 썼더라면 나는 私心ㅌ이 가시지 않은 글을, 따라서 邪心 있는 글을 썼을 것이다. 개운치 않은 칭찬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죽이거나 다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엔카운터誌」의 고민을 뚫고 나옴으로써 나는 그를 살리고 나를 살리고 그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나를 <내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끊임없는 창조의 향상을 하면서 순간 속에 진리와 美의 全身의 이행을 위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두지만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어느 특정된 인물이 될 수도 없고, 어떤 특정된 시간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일순간도 마음을 못 놓는다. 흔히 인용되는 예를 들자면 우리는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는 육중한 바윗돌을 밀고 낭떠러지를 기어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自覺人의 세계의 대열 속에 미약한 한국의 발랄한 젊은 세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끼이게 된다는 것은 우리들의 오늘날의 그지없는 기쁨이다. 끝으로 《現代》지 4월호에 게재된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전문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開花는 강 건너 春分의 겨드랑이에 球根으로 꽂혀있는데 바퀴와 발자국으로 寧日 없는 鐘路바닥에 난데없는 개나리의 行列.

한겨울 溫室에서, 公約하는 햇볕에 마음도 없는 몸을 내맡겼다가, 太陽이 住所를 잊어버린 마을의 울타리에 늘어져 있다가,

副業에 궁한 어느 中年사내, 다음 季節을 豫感할 줄 아는 어느 中年사내의 등에 업힌 채 鐘路거리를 묶여가는 것이다.

뿌리에 바싹 베개를 베고 新婦처럼 눈을 감은 우리의 冬眠은 아직도 아랫목에서 밤이 긴 날씨, 새벽도 오기 전에 목청을 터뜨린 닭 때문에 마음을 풀었다가……

닭은 무슨 못견딜 짓눌림에 그 깊은 時間의 테로리즘 밑에서 목청을 질렀을까.

엉킨 未亡人의 繡실처럼 길을 잃은 세상에, 잠을 깬 개구리와 지렁이의 입김이 氣化하는 아지랑이가 되어, 암내에 참지 못해 請婚할 제 나이를 두고도 손으로 찍어낸 花甁의 執權의 앞손이 되기 위해, 알몸으로 都心地에 뛰어나온 스님처럼, 업혀서 亡身길 눈 뜨고 갈까.

금방이라도 눈이 밟힐 것같이 눈이 와야 어울릴, 손금만 가지고 握手하는 남의 동네를, 우선 옷 벗을 철을 기다리는 時代女性들의 目禮를 받으며 우리 아버지가 때없이 한데 묶어 세상에 업어다놓은 나와 내 兄弟같은 얼굴로 行列을 이루어 끌려가는 것이다. 溫度에 속은 罪 뿐, 입술 노란 개나리떼.


이것은 제 정신을 갖고 쓴 시다. 이 정도의 제 정신을 갖고 지은 집이나, 제 정신을 갖고 경영하는 극장이나, 제 정신을 갖고 방송하는 방송국이나, 제 정신을 갖고 제작하는 신문이나 잡지나, 제 정신을 갖고 가르치는 교육자를 생각해볼 때 그것은 양식을 가진 건물이며 극장이며 방송국이며 신문이며 잡지이며 교육자를 연상할 수 있는데, 아직은 시단의 경우처럼 제나름의 양식을 가진 것이 지극히 드물다. 균형과 색조의 조화가 없는 부정의 건물이 너무 많이 신축되고, 서부영화나 그것을 본딴 국산영화로 관객을 타락시키는 극장이 너무 많이 장을 치고, 약광고의 선전에 미친 방송국이 너무 많고, 신문과 잡지는 보수주의와 상업주의의 탈을 벗지 못하고, 교육자는 <6학년 담임 헌장>이라는 기괴한 운동까지 벌이게 되었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에 대한 처방전인 나의 답변은, 아직도 과격하고 아직도 수감 중에 있다.

<1966. 5>

文壇推薦制 廢止論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고, 후자는 전자의 敷衍이 되고 전자는 후자의 부연이 되는 법이다. 사카린 밀수업자의 붓에서 「두이노의 悲歌」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진달래꽃」을 쓴 素月은 자기반의 부유한 아이들을 10여명씩 모아놓고 高價의 과외공부를 가르치는 국민학교 6학년 선생이나 중학교 3학년의 담임선생은 될 수 없다.

이런 예는 좀 투박한 비유이지만 오랫동안을 두고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학잡지의 신인들에 대한 추천제도만 하더라도 이제는 좀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추천하는 사람이나 추천을 받는 사람이나 다같이 근본적인 반성을 해볼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것은 크게 보면 우리 문학의 앞으로의 성격을 좌우하는 중대한 영향력을 가진 문제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은 허구많은 직업 중에서 유독 예술을 업으로 택한 이유는―자기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보기 위해서 독특한 생활방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독특한 시를 쓰려면 독특한 생활의 방식(즉 인식의 방법)이 선행되어야 하고,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문단에 등장을 하는 방식 역시 이러한 생활의 방식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남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시를 쓰려는 눈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면, 자기가 문단에 등장하고 세상에 자기의 예술을 소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것이 독자적인 방법이냐 아니냐쯤은 한 번쯤은 생각하고 나옴직한 문제이다. 필자는 일제시대 말기에 淸水金一이라는 희극배우의 무대를 본 일이 있는데, 그는 좀처럼 종래의 배우들이 출입하는 무대 옆구리에서 등장하는 법이 없고 천장에서 들것을 타고 내려오거나 무대의 밑바닥에서 우산을 받고 기발하게 솟아 올라오거나 하면서 관객을 놀래고 웃기고 했다. 이것은 서푼짜리 희극 배우의, 관객의 허점을 노리는 값싼 흥행의식이라고만 볼 수 없는 예술의 본질과 숙명에 유관한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喜劇의 驚愕感이나 기발성과 예술의 본질과의 관계라든가 문학이나 문학가의 흥행성의 문제를 논할 여유는 없지만, 예술가나 예술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크나큰 관심을 두고 있듯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문제도 필연적으로 중대한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급한 규정을 내리자면 예술가는 되도록 비참하게 나와야 한다. 되도록 굵고 억세고 날카롭고 모진 가시 면류관을 쓰고 나와야 한다.

이런 비참한 가시 면류관의 대명사가 《現代文學》지의 추천시인이 될 수 있는가. 《現代文學》지의, 혹은 《詩文學》지의 씨도 먹지 않은 薦者들의 추천사를 통해서 배출되는 추천시인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두부 가시로 만든 면류관이다. 이런 두부 가시의 면류관을 쓰고 나오는 문인들을 향해서, 혹은 <신인문학상> 당선이나 <신춘문예> 당선 등의 비누 가시관을 쓰고 나오는 소설가나 시인들을 향해서 세상에서는 <멀지 않아 문인 주소록이 전화번호부처럼 비대해질지 모르겠다>느니 <문인들의 홍수>를 막기 위해서 <문단에도 혁명적인 산아제한이 시급하다>느니 하는 비판을 기회있을 때마다 퍼붓고 있지만, 그런 시비의 타당성의 여부의 정도는 고사하고, 우선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볼 때 적어도 그런 시비가 나올 수 이쓴ㄴ 여지가 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없는 일이다.

우리 문단의 추천제도의 폐해의 원인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 주장이 여러 가지일 것이고, 찬반의 정도나 대책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천제를 공박하는 세속적인 원인으로서 우선 가장 큰 것이라고 필자에게 느껴지는 것은, 문인들의 수가, 특히 시인들의 수가 왜 이렇게 많으냐는 것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詩다웁지도 않은 시를 쓴답시고 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말이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에 가장 순수하고 진지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문인들의 사회에서까지 신용할 수 없는 제품을 무작정 대량생산하는 제도가 있으니 이건 정말 어지럽고 불쾌해서 못살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종잡아 생각해보면 문인들의 수에 비해서 좋은 작품이 많지 않다(혹은 없다)는 말이 되고, 이런 허술한 문인들을 시인이나 소설가의 레텔을 붙여서 내놓는 추천제도의 권위는 말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추천제도의 추천자나 응모자의 편에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추천자는 이렇게 말한다. 『추천제도가 추천자의 수많은 亞流를 낳고 있다든가, 혹은 추천자의 개인적인 문학의 명성이나 문단의 세력을 구축 내지 유지하기 윟새서 추천작가들을 이용한다거나, 혹은 추천제도를 주재하는 잡지사의 그의 주간의 문단세력을 구축․확장 내지 유지하는 데 추천작가나 시인들을 이용한다거나 하는 폐습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나마 추천제도라도 있으니까 신진들에게 선을 보일 정도의 기회라도 줄 수 있지, 이것마저 없으면 신진양성을 사보타지한다는 죄명으로 기성문인들이 모조리 테러를 맞을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신진작가나 신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추천제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시다시피 폭발적인 인구팽창이 시키는 것이다. 비근한 예가 일본에서는 전국의 시 동인지의 수가 5백을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우리들이 추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질이 낮아간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일가견을 갖고 있다. 자고로 어느 나라의 어느 시대를 치고 우수한 동시대의 시인이 십명을 넘는 일이 없었다. 보통 한 시대에 한 두어서너명의 시인이 있으면 족하다. 나머지것들은 들러리나 비료의 역할이나 하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 5백명의 시인이 있다고 해도 이건 큰일나는 일이다. 희극으로서도 큰일나는 희극이다. 그러나 이 5백명이 서발막대기로 휘저어놓은 것같은, 죽도 밥도 아닌 졸렬한 시를 매달 써내놓는다고 해도 그 피해는 이 서발막대기를 마구 휘둘러서 사람을 죽이는 깡패나 밀수업자가 되느니보다는 낫다. 잡지사의 시 고료가 좀 허실이 날 정도이고, 그 대신 우리같은 가난한 추천자의 담배값 정도는 벌어주게 되니 피장파장 아닌가.』

이러한 추천자의 주장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이렇다.

『나도 신문사의 신춘문예의 심사원의 말석을 더럽히고 있는 몸이라 큰 소리는 할 수 없지만 귀하의 말 중에서 가장 실감이 나는 것은 귀하가―담배값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추천료에 유혹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오. 이것은 지극히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오. 그리고 이보다도 더 한심스러운 일은 심사원의 권위―아무리 低落한 권위라 할지라도―에 대한 매력이오. 이것도 지극히 유치한 일이지만 사실이오. 매력이란 말이 그야말로 유치하다면 유희나 장난 정도로 고쳐둡시다. 귀하는 매력도 아니고 유희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타성이오. 오늘날 추천제도가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이 타성 때문이오. 추천제도를 끌고나가는 문학잡지사의 타성이고, 그 문학잡지사의 추천제도를 모방하는 ABC의 문학잡지사와 XYZ의 詩誌의 타성이고, 이런 타성에 끌려가는 추천자 甲 乙 丙 丁의 타성이고, 이런 추천제에 응모하는 시를 생활할 줄 모르는 풋내기 문학청년들의 타성이오. 귀하는 일본의 시 동인지가 5백종이 넘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문학지의 추천제를 통해 나온 사람들은 아닐 것이오.

아세아의 폭발적인 인구증대와 급속도의 현대화와 거기에 따르는 자아의 각성에 유래되는 詩作하는 사람들의 증가의 현상은 귀하의 말마따나 그다지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오.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오. 서구의 어느 비평가가 말했듯이 앞으로 먼 후일에는 모든 세계의 인류가 詩를 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오. 또한 헷세가 그의 시에서 읊으고 있듯이, 시가 필요하지 않은 낙원이 도래하고 모든 사람들이 착한 시인의 생활을 하고 오늘날의 시가 무효가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오. 그리고 오늘날 詩作하는 인구가 많아지는 것을 그런 세상의 출현의 전조로 보려면 못 보는 것도 아니오. 오히려 그런 세상의 출현의 전조로 보기 위해서 이런 시비가 나오고 잇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오.

시를 쓰는 인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시작품의 年産量이 앙등하면 할수록 시의 세계에 있어서는 질이 문제되는 것이오. 이것은 물ㄹ폰 귀하도 인정하고 남음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오. 그런데 귀하의 추천제도를―그것이 천대 일이 되든 만대 일이 되든 간에―비료가 많아질수록 좋은 꽃이 더 많이 더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소.

나의 이의점이 여기에 있소. 서두에서 잠깐 시사한 것처럼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나아가는 가치)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오. 나의 이상으로는 개성있는 시인의 대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진 오늘날과 같은 치욕적인 추천제도에는 도저히 응해지지 않을 것이오. 오늘날의 문단의 추천제는 「007」의 영화를 보려고 새벽 여덟시부터 매표구 앞에 줄을 지어 늘어선 관객들을 연상케 하는 치욕적인 것이오. 이런 치욕을 치욕으로 직관할 수 없는 일만 편의 시 중에서 귀하는 한떨기의 芳香馥郁한 꽃이라도 피면 족하다는 것이고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오.」

이러한 추천자와 나의 논쟁의 귀결은 이제 지극히 평범한, 詩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지극히 따분하게 되돌아온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는 시가 여태까지 추천제를 통과해온 무수한 시작품이나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수많은 작품들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독자들도 짐작이 갈 것이고, 여태까지의 기성인들의 어떠한 작품과도 비슷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도 짐작이 갈 것이다. 시는 그러한 것이다.

<1967. 2>

<不穩>性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





지난 2월 27일자 [조선일보]의 「實驗的인 문학과 政治的 自由」라는 拙論에서, 본인은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서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거이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문화의 본질로서의 不穩性을 밝혀두었는데도 불구하고 李御寧씨는 이 불온성을 정치적인 불온성으로만 고의적으로 좁혀 규정하면서 본인의 지론을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전체주의의 동조자 정도의 것으로 몰아버리고 있다.

前衛的인 문화가 불온하다고 할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재즈음악, 비트族, 그리고 60년대의 무수한 앤티예술들이다. 우리들은 재즈음악이 소련에 도입된 초기에 얼마나 불온시 당했던가를 알고 있고, 추상미술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유명한 발언을 알고 있다. 그리고 또한 암스트롱이나 베니 굿맨을 비롯한 전위적인 재즈 맨들이 모던 재즈의 초창기에 자유국가라는 미국에서 얼마나 이단자 취급을 받고 구박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즈의 전위적 불온성이 새로운 음악의 꿈의 추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예는 재즈에만 한한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베토벤이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세잔느가 그랬고, 고호가 그랬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아이젠하워가 해석하는 샤르트르가 그랬고, 에디슨이 그랬다.

이러한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사가 바로 이 불온의 수난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문화의 이치를 李御寧씨 같은 평론가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오해를 고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의 글에 답변을 하려고 붓을 든 주요한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신변방어에 있지 않다. 그의 중상 속에는 나의 개인적인 것이 아닌, 어떤 섹트的인 위험한 의도까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고, 그러한, 실제로 있지도 않은 위험세력의 설정이 일반독자에게 주는 영향은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이다.

그는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이념의 시녀가 아니다>의 서두부터 <문학 작품을 문학작품으로 읽으려 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문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형편이다>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런 비난은 누구의 어떤 발언이나 作品이나 태도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중대한 말을 실제적인 예시도 없이 마구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는 내가 말한 나의 발표할 수 없는 詩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내가 발표할 수 없다고 한 나의 작품은 나로서는 조금도 불온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것은, 불온하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발표를 꺼리고 있는 것이지, 나의 문학적 이성으로는 추호도 불온하지 않다. 그러니까 李御寧씨는, 내가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어서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불온하다>고 낙인을 찍으려면, 우선 그 작품을 보고나서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나의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을 보지도 않고 <불온하다>로 비약을 해서 단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법은 문학자의 논법이 아니라, 그가 말하는 <機關員>의 논법이다. 아니, 요즘에는 기관원도 똑똑한 기관원은 이런 비과학적인 억측은 하지 않는다.

李御寧씨의 이번의 d나에 대한 반론은 거의 전부가 이런 식의 모함으로 충만되어 있고 이것을 일일이 가려낼 만한 의미를 나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나의 창작의 자유의 고발의 실제적인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설명해두고자 한다. 비근한 예가, 지금 말한 李御寧씨의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의 소위 <不穩詩>다.

지금 말한 것처럼 李御寧씨는 내가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온한> 작품이라고 규정을 내리고 있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발표를 하면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서 발표는 못하고 있지만, 결코 불온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나의 자유의 고발의 한계는 이런 불온하지도 않은 작품을 불온하다고 오해를 받을까보아 무서워서 발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李御寧씨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작가나 시인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아니 이들에게만―이들의 역량이 부족해서―있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해세력이 우선 대제도의 에이전트들의 획일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지적했다.

그런데 李御寧씨는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을 기관원도 단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불온하다>고 단정을 내림으로써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이 불온하지 않게 통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자는 나의 설명을 거꾸로 되잡아서,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이 바로 <불온한 작품>이니 그런 문화풍토가 조성되면 문학이 말살된다고 기관원이 무색할 정도의 망상을 하고 있다. 이런 망상은 문학이론으로서는 一考의 가치도 없다.

<1968>

詩人의 精神은 未知





시의 정신과 방법? 시 쓰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시의 정신과 방법을 아는가? 그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의 愚를 범하는 일이다. 시인은 자기의 시에 대해서 장님이다. 그리고 이 장님이라는 것을 어느 의미에서는 자랑으로 삼고 있다.

도대체가 시인은 자기의 시를 규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그에게 논꼽재기만한 플러스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의 시의 현시점을 이탈하고 사는 사람이고 또 이탈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어제의 시나 오늘의 시는 그에게는 문제가 안된다. 그의 모든 관심은 내일의 시에 있다. 그런데 이 내일의 시는 未知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정신은 언제나 미지다. 고기가 물에 들어가야지만 살 수 있듯이 시인의 미지는 시인의 바다다. 그가 속세에서 愚人視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기정사실은 그의 적이다. 기정사실의 정리도 그의 적이다.

그의 눈에는, 소설가란 생일을 잘 차려먹기 위해서 이레를 굶는 무서운 금욕주의자다. 무서운 인내가다. 결과로서의 소설의 발언이 시의 발언과 일치되는 점도 있지만 피차의 과정이 너무나 현격하다. 그 결과를 수긍하다가도 그 과정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파스테르나크는, 현대의 상황을 대변하려면 시만 가지고는 모자란다 해서 소설을 쓰고 희곡까지 썼지만, 그의 희곡이라는 것이 따분하다. 「유리 지바고」도 그의 초기의 단편만 못하다. 그런데 그의 단편은 아시다시피 백일몽이다. 『나의 「지바고」는 왕년의 모든 詩보다도 나에게 귀중한 것이다』라고 한 노후의 그의 말을 나는 신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죽는 날까지 시집만 내고 죽은 프로스트가 좀더 순수하다. 파스테르나크의 초기단편이나 딜란 토마스의 단편을 읽으면서 부러운 것은, 그들이 그런 잠꼬대를 써도 용납해주는 사회다. 그런 사회의 문화다. 나는 여기서는 오해를 살까보아 그런 일을 못하겠다. 여기에는 알지 못하겠는 글이 너무 많고, 그 알지 못하겠는 글이 모두 인찌끼다. 알지 못하겠는 글이 모두 인찌끼인 사회에서는 싫어도 아는 글을 써야 한다. 아는 글만을 써야 한다. 진정한 시인은 죽은 후에 나온다? 그것도 그럴싸한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만한 인내가 없다. 나는 詩作의 출발부터 시인을 포기했다. 나에게서 시인이 없어졌을 때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출발부터가 매우 순수하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나는 고백은 싫다.

그렇지만 <詩 一篇>이라고 명기한 시청탁서를 받을 때마다 나는 격노한다. 왜 내가 시밖에 못 쓰는줄 아는가? 불쌍한 한국문단아!

요즈음 S잡지사의 권유로 「詩月評」이라는 걸 써보았는데, 그 바람에 시는 통 못썼다. 시인은 심판ㅇ르 받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 시인이 심판을 하게 되면 불필요한 번민을 하게 된다(남에게 얻어먹은 욕은 즉석에서 철회할 수 있지만, 남에게 한 욕은 철회하기가 매우 힘든다) 또한 사기를 한다. 심판을 하자면 올가미를 씌워야 하는데 이 올가미에 자신까지 걸려들기는 싫다. 자기가 걸려드는 올가미는 시를 다칠까보아 싫고 자기가 걸려들지 않는 올가미는 비평이 거짓말이 되니까 싫다. 나의 월평이 게재된 같은 잡지에 소설평을 담당한 H씨의 글에 이런 말이 나와있다. <……특히나 요새처럼 작가의 정치색을 가장 날카롭게 작품 속에 구체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을 때 이러한 유행을 의식적으로 회피한다는 것은 어쩌면 성실한 작가의 자세라고 봐야 옳을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앗차!> 했다. 지금 말한 것처럼 H씨의 소설평이 실린, 같은 잡지에 나의 시월평이 그분의 글과 나란히 게재되어 있다. 이달뿐이 아니라 지난달 호에도 어깨를 나란히 해서 나는 시월평을 쓰고 그분은 소설월평을 썼다. 그는 소설월평을 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난달에도 이달에도 시의 현실참여를 주장해왔고 내달에도 그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아까와 같은 그분의 글을, 내가 쓴 글을 읽은 끝에 마을가는 기분으로 읽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그러지않아도 나는 연 3회를 현실참여의 월평을 써온 끝이라 또 다음호에 똑같은 논지를 내세우는 것이 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좀 의아한 생각을 품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재빨리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이 그런 말을 암시해 놓았다. <……이러한 유행을 회피하는 것은 어쩌면 성실한 작가의 자세……> 그렇다. 얼마전에 에케르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다짐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다. 그때가 벌써 S잡지사의 월평을 시작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그러니까 그 비평을 시작할 때부터 내 비상구는 만들어놓고 쓴 셈이다. 이번의 H씨의 글은 나의 사기를 재확인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密告 안에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시인은 밤낮 달아나고 있어야 하는데 비평가는 필요에 따라서는 적어도 4,5개월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야 한다. 혹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여야 한다.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寸秒의 배반자다.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 배반을 배반하는 배반자……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

시인의 정신과 방법? 나는 그대를 속이고 있다. 술을 마실 때도, 산보를 할 때도, 교섭을 할 때도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속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대를 속이고 dLT다. 그대는 영리한 사람인 경우에는 눈치를 챈다.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리한 그대는 내가 속이는 순간만 알고 있고, 내가 속이지 않는 순간이 dLT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그대를 구출하는 길은 그대가 시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

<1964. 9>

진정한 현대성의 지향

―朴泰鎭의 詩世界





泰鎭의 詩는 일견 특색이 없다. 일부러 意表에 오르지 않는 것을 쓰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소의 괴벽스런 影像의 포우즈도 있지만 희박한 인상을 준다. 그의 시에는 <인생><내일><어저께><오후><시절><계절><기대><과거> 같은 시간용어나 준시간용어가 자주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들이 구성하는 人生論的인 서정이 역시 시간 위에 溶解되고 있다. 그의 詩가 일견 특색이 없어보이는 것은 다분히 이런 음악적인 경향에서 오는 것이다. 이런 경향에서 볼 때 그의 詩에 나오는 용어들은 <憐憫><感情><孤獨><象徵> 등의 抽象語뿐만 아니라 <雪景><眼球><風化><戱畵><旅裝> 등의 具象語까지도 현대적인 潤色 속에서 지독하게 抽象化되고 있다.


이 눈 속에 地球를 생각하며 가을이 오듯이

그 후미진 곳을 향하여 落影하는 象徵들

眼球의 一角이 쑤시고

充血하는 곳

나의 故鄕이라고 하자

―「眼球」에서


이 「眼球」의 인용 구절처럼 그의 추상은 잘못하면 의미를 건질 수 없을 만큼 난삽해지며, 그의 초기의 작품은 대개가 이런 종료의 모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밖에 그의 詩를 난삽하게 만드는 요소로서 나르시스적인 감상이 있다. 그는 외적 정경을 서술할 때에도 이 나르시스의 그늘을 버리지 못한다.


오늘은 異邦의 直線車道를 건너며

나의 姿勢를 의심해 보았는데

―「공원길」에서


테므즈江 물은 자꾸 이야기를 띄워가는데

나는 흐르지 않는데

―「론든 부릿지에서」에서


마르지 않은 물줄기를 찾아

펠소나를 씻노라면

테므즈江은 나의 이야기를 싣고 간다.

―「同上」에서


걸음 걸음 나의 過去를 밟으며 暫時 나는

나의 부릿지를 생각해본다.

―「同上」에서



이러한 감상벽은 최근에 와서는 조화와 체념과 관조로 자리를 바꾸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의 내적 투쟁은 지드의 경우처럼 대부분 이 나르시스를 극복하기 위한 일이 바치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詩를 난삽하게 만드는 그밖의 요소로서 聯間과 行間과 行中의 연결에 부자연한 중단벽이 있고 우리말 사전에는 없는 난말의 亂用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묘사에 적합하지 않은 시적 기질이 산문의 의미를 성급하게 전달해보려는 무리에서 오는 수가 많다. 이것은 영상의 난삽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씩 겪어야 할 난관이지만 그의 경우는 좀 집요한 편이다. 이것을 구하는 길은 의미의 구출이다. 아무리 부자연한 중단이 많고 불가해한 낱말이 있어도 그것을 커버할 만한 의미의 연결이 서 있을 때는 성공이다. 「歷史가 알 리 없는……」「아름다운 空白」「어지빠른」「自問하는 마음」(이상의 작품은 모두 詩集 「變貌」 속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등의 그런 의미에서 성공한 작품들이다. 이 중에서도 그의 본질이 가장 잘 나타나 dLT는 것이 「歷史가 알 리 없는……」이다.


歷史가 알 리 없는……

나의 초조한 걸음을

나의 지지한 작은 일들을

歷史가 알 리 없는

西大門 근방은 먼지가 많다.

그러기에 하늘은 멀리만 보이고

이미지가 不毛하던 이유를

人生만이 알 수 있다고 하자

꿈없는 길이 새문안을 향하여


특색없는 굴르는 乘合길을

다만 나와 더불어 희미한 길을

나는 꿈을 부어줄 수 있을까

歷史가 알 리 없는 나의

삶의 자취는 나의 어저께


낡은 나와 생각들이 남을 수 없는

車道와 步道 사이에서 언젠가 無智가 죄로 소박맞은 女人이 울던

이 길은 사랑도 미움도 어지빠른데

순간마다 변하는 구름길이 더욱 길다.

歷史가 알아줄 리 없는 나의

응달진 過去에 謝過는 없다.


길은 都市를 안고 경사지며

나는 형적없이 경사진 나이에 기대어

오늘의 일을 한줌 모아 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못하는 일 나의 人生이라고 하자

그러나 비가 내리며

내 이마를 소리없이 적실 그리고

소리없이 젖을 街路樹의 리듬을

나는 진정 알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여러 발음들이 본질적인 현대성을 바탕으로 하고 유니크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에 나타나 있는 현대성은 육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를 쓰기 전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시단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이것이다. 진정한 현대성은 생활과 육체 속에 지각되어 있는 것이고, 그 때문에 그 가치는 현대를 넘어선 영원과 접한다. 이 시의 모티브는 <나의 초조한 걸음을 / 나의 지지한 작은 일들을 歷史가 알 리 없는>의 현대적 자각에 있지만 귀결은 <소리없이 젖을 街路樹의 리듬을 / 나는 진정 알고 있다>의 영원한 인식으로 통하고 있다. 이만하면 그의 흘음(吃音 ; 말을 더듬음-승주(昇注))들을 그의 애교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이를테면 다음의 구절 같은 것은 그의 서투른 솜씨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인데,


계단에 모든 것을 기대 선

두 다리는 언젠가

몽마르뜨르 긴 층층계에서 떨은 적이

론든 밤거리에 굳어버린 적이

실상 다급한 것은 없다.

바람은 일고 자고

―「아름다운 空白」에서


이런 구절들은 구조상으로는 「歷史가 알 리 없는……」에서의 <낡은 나와 생각들이 남을 수 없는>의 연(聯)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숙명적인 난삽의 고개를 넘어서 <응달진 과거에 사과는 없다>의 청징(淸澄)한 힘에 도달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고지식한 분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웃을 수 있고 신용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싸움에 20년 가까이 종사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대부분의 하이칼라한 현대어 사이에 유표난 동양어(東洋語)들이 섞여있다. 시집 「變貌」 안에서만 보더라도 <關東의 曲><散調><大門><落水><落淚><冠岳><落潮> 등이 눈에 뜨인다. 이런 습성은 그가 초기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습성인 것 같다. 이런 말들이 그의 詩의 배경에 흡수되지 않는 것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徐廷柱가 <역사><궤도><욕구><계단> 같은 현대어를(詩作品에서) 사용할 때의 느껴지는 대조감 같은 것을 준다.


바람의 아들과 딸은 콧노래로 關東의 曲을 뜯으며

바람에 부벼 여원 以來

성에 차지 않은 쟈즈를

바람에 묻어 띄워보내는

喜悲의 얼굴은 다시

바람의 散調

―「雪景」에서


어떻게보면 모더니티의 피로에서 오는 타성같이도 보이지만 그의 작품을 오래 접해보면 이런 어휘의 패배가 그의 숨은 순진을 보여주는 것 같은 감을 받는다. 그의 최근의 작품에는 이런 어휘가 풍기는 향수를 생활현실에의 접근을 통해서 폭을 넓혀보려는 기미가 보인다.

현대적인 착잡한 분장 속에 일관되어온 그의 시의 본질은 인생의 감회다. 그러나 여지까지의 그것은 한국에 사는 이방인으로서의 인생의 감회다. 만약에 그가 「武矯洞」(新東亞 10)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킬 때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人生詩를 새로운 吃音으로 노래할 수 있는 독보적인 세계를 획득할 것이다. <眼球의 一角이 쑤시고 / 充血하는 곳 / 나의 故鄕…> 속으로 紳士詩의 옷을 벗고 들어오라면 그는 화를 낼 것인가? 泰鎭과 나와의 교우는 그가 시를 발표하기 전부터 시작되어 왔다.

그가 <…시의 난해성이 여태의 의미로 그칠 리 만무하고 또한 우리 시인들의 시 경험을 자극하는 레알리떼가 불투명하다 치고 그러나 여태와 같은 의미에서 불투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현대시의 난해성은 또한 새로운 의미에서 난해할 것이 아닐까>(그의 詩月評 「難解詩에 대한 最終是非」 思想界 11에서)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말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는 <새로움>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의 추구에서 그는 우리 시단의 누구보다도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교양의 근거를 갖고 있다. 다만 그러한 立證이 작품을 통해서 뚜렷하게 서지 않는 것은 위에서 말한 그의 吃音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이 吃音의 여운과 싸우고 있다. 이러한 여운이 가신 진정한 오늘의 난해시가 어떤 것이냐? 그는 이 해답을 앞으로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모든 한국시의 카메라의 셔터는 灼熱하는 선진국을 보기 위해 구멍을 훨씬 오무려야 하지만 그의 셔터만은 어두운 한국의 시를 1965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구멍을 좀더 크게 크게 열어야 할 것이다.

<1965. 2>

演劇하다가 詩로 전향

―나의 처녀작





나는 아직도 나의 신변얘기나 문학경력 같은 지난날의 일을 써낼 만한 자신이 없다. 그러한 내력얘기를 거침없이 쓰기에는, 나의 수치심도 수치심이려니와, 세상은 나에게 있어서 아직도 암흑이다. 나의 처녀작의 얘기를 쓰려면 해방 후의 혼란기로 소급해야 하는데 그 시대는 더욱이 나에게 있어선 텐더 포인트다. 당시의 나의 자세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그야말로 완전 중립이었지만, 우정관계가 주로 작용해서, 그리고 그보다도 줏대가 약한 탓으로 본의 아닌 우경 좌경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항층 지독한 치욕의 시대였던 것 같다.

소위 처녀작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 것이 해방 후 2년쯤 되어서일까? 아무튼 趙演鉉이가 주관한 《藝術部落》이라는 동인지에 나온 「廟廷의 노래」라는 것이, 인쇄로 되어 나온 나의 최초의 작품이다. 그때 나는 연극을 집어치우고 혼자 시를 쓰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발표할 기회가 전혀 없었고, 《예술부락》에 작품을 내게 된 것도 그 동인지가 해방 후에 최초로 나온 문학동인지였다는 것, 따라서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최초의 발표의 기회였었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演鉉에게 한 20편 가까운 시편을 주었고, 그것이 대체로 소위 모던한 작품들이었는데, 하필이면 고색창연한 「廟廷의 노래」가 뽑혀서 실려졌다. 이 작품은 東廟에서 이미지를 따온 것이다. 동대문 밖에 있는 동묘는 내가 철이 나기 전부터 어른들을 따라서 명절 때마다 참묘를 다닌 나의 어린시절의 성지였다.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거대한 關公의 立像은 나의 어린 영혼에 이상한 외경과 공포를 주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공포가 퍽 좋아서 어른들을 따라서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무수히 절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廟廷의 노래」는 어찌된 셈인지 무슨 불길한 곡성같은 것이 배음으로 흐르고 있다. 상당히 엑센트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일부의 평은 나의 작품을 능변이라고 핀잔을 주고 있지만, 「廟廷의 노래」야말로 내가 생각해도 얼굴이 뜨뜻해질 만큼 유창한 능변이다. 그후 나는 이 작품을 나의 마음의 작품목록에서 지워버리고, 물론 보관해둔 스크랩도 없기 때문에 망신을 위한 참고로도 내보일 수가 없지만, 좋게 생각하면 <의미가 없는> 시를 썼다는 증거는 될 것 같다.

그후 이 작품이 게재된 《예술부락》의 창간호는, 朴寅煥이가 낸 <茉莉書舍>라는 해방후 최초의 멋쟁이 서점의 진열장 안에서 푸대접을 받았고, 거기에 드나드는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묵살의 대상이 되고, 역시 거기에 드나들게 된 내 자신의 자학의 재료가 되었다. 「廟廷의 노래」와 같은 무렵에 쓴 내딴으로의 모던한 작품들이 「廟廷의 노래」보다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廟廷의 노래」가 《예술부락》에 실려지지만 않았더라도―「廟廷의 노래」가 아닌 다른 작품이 《예술부락》에 실려지거나, 「廟廷의 노래」가 《예술부락》이 아닌 다른 잡지에 실려졌더라도―나는 그 당시에 寅煥으로부터 좀더 <낡았다>는 수모는 덜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나중에 생각하면 바보같은 콤플렉스 때문에 시달림도 좀 덜 받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후 나는 茉莉書舍를 통해서 朴一英 金秉旭 같은 좋은 詩友를 만나게 되었고, 寅煥이 茉莉書舍를 그만둔 후에 金璟麟 林虎權 梁秉植 그리고 寅煥과 함께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이라는 詞華集을 내게 되어서 지금도 나의 처녀작이라면 이 시화집 속에 수록된 작품들이 나의 처녀작인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실질적인 처녀작은 여기에 수록된 「아메리칸 타임誌」와 「孔子의 生活難」도 아니고, 「廟廷의 노래」도 아니다.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에 수록된 「아메리칸 타임誌」와 「孔子의 生活難」은 이 시화집에 수록하기 위해서 급작스럽게 粗製濫造한 히야까시같은 작품이고, 그 이전에 나는 「아메리칸 타임誌」라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일본말로 쓴 것이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집은 충무로 4가에서 <有名屋>이라는 빈대떡집을 하고 있었는데 치질수술을 하고 중환자처럼 자리보전을 하고 가게 뒷방에 누워있는 나는 벽지 위에다 「아메리칸 타임誌」라는 일본말 시를 서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자주 우리집엘 찾아온 秉旭이가 어느날 찾아와서 이 시를 보고 놀라운 작품이라고 하면서 村野四郞에게 보내서 일본 시잡지에 발표하자고까지 칭찬을 해주었다. 秉旭이가 경상도 기질의 과찬벽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날 지경으로 감격했던 것 같다. 그후 寅煥이가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을 계획했을 때 秉旭도 처음에는 한몫 끼일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璟麟이와의 헤게머니 다툼으로 秉旭은 빠지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寅煥의 모더니즘을 벌써부터 불신하고 있던 나는 秉旭이까지 빠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만둘까 하다가 겨우 두 편을 내주었다. 秉旭은 이때 내가 일본말로 쓴 「아메리칸 타임誌」를 우리말로 고쳐서 내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발로 히야까시적인 내용의 작품을 히야까시쪼로 내준 것 같다. 혹은 秉旭이가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내가 미리 秉旭의 추측을 앞질러서 그의 허점을 찌르려고 황당무계한 내용에 「아메리칸 타임誌」라는 같은 제목을 붙여서 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나는 이 시화집에 실린 두 편의 작품도 그후 곧 나의 마음의 작품목록으로부터 깨끗이 지워버렸다.

이 일본말로 쓴 「아메리칸 타임誌」라는, 내딴으로의 리얼리스틱한 우수한(?) 작품 이전에 또 하나의 리얼리스틱한 우수한 작품으로 「거리」라는 작품을 나는 썼다. 이것은 치질 앓기 전에 동대문안에 있는 고모집에 기식하고 있을 때 쓴 것이다. 이때 秉旭은 대구에서 오라오기만 하면 나를 찾아왔고 기식하고 있는 나의 또 기식자가 되었다. 그는 현대시를 쓰려면 우선 육체의 단련부터 필요하다고 하면서 나에게 권투를 가르쳐주려고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리석었던 시절이었고, 또한 상당히 즐겁고도 괴로운 시절이었다. 나는 현대시를 쓴다고 자처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상당히 로맨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리」도 그러한 로맨틱한 작품이다.


…………

馬車馬야 뺑긋거리고 웃어라간지럽고 둥글고 안타까운 이 全體의 속에서

마치 힘처럼 소리치려는 깃발―

별별 여자가 지나다닌다

화려한 여자가 나는 좋구나

내일 아침에는 夫婦가 되자

집은 산너머가 좋지 않으냐

오는 밤마다 두 사람 같이

貴族처럼 이 거리 걸을 것이다

오오 거리는 모든 나의 설움이다


지금 겨우 기억하고 있는 것은 끝머리의 요 몇 줄 정도다.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처녀시집이라면 처녀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 8년 전인가에 나온 시집이 이 작품과 「꽃」이라는 《民生報》에 실렸던 작품을 넣고 싶었는데 기어코 게재지를 얻지 못해 넣지를 못했다. 「거리」는 나의 유일한 연애시이며 나의 마지막 낭만시이며 동시에 나의 실질적인 처녀작이다. 나는 남대문시장 앞을 걷다가 이 이미지를 얻었는데, 秉旭은 이 시를 읽고 이런 작품을 열 편만 쓰면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기반을 가질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秉旭에 대해서는 愛憎同時倂發症에 걸려있었고, 이런 그의 말을 신용하면서도 경멸했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아메리칸 타임誌」를 통해서 반격 내지는 배반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거리」를, 秉旭의 말을 듣고 起林은 여기에 나오는 <貴族>이란 말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이것을 다른 말로 고치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며칠을 두고 고민한 끝에 기어코 고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이 <貴族>이란 말을 고치지 않은 것이 나의 시적 자기증명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하고 무심히 생각해볼 때가 있다. 起林은 이것은 <영웅>으로 고치면 어떠냐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영웅―나는 그가 말하는 영웅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에서 <貴族>을 <영웅>으로 고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모독이었다. 앞으로 나의 운명이 바뀌어지면 바뀌어졌지 그 말은 고치기 싫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나의 체질과 고집이 내가 좌익이 되는 것을 방해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시적 위치는 상당히 전통적이고 완고하기까지도 하다. 「거리」는 이러한 나의 장점과 단점이 정직하게 반영되어있는 작품이고, 현대시는 못되지만 「廟廷의 노래」에 비해서 그 나름의 수준에는 도달한 작품이다.

그러나 현대시로서의 진정한 자질을 갖춘 처녀작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볼 때 나는 얼른 생각이 안 난다. 요즘 나는 리오넬 트릴링의 「快樂의 運命」이란 논문을 번역하면서, 트릴링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하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10여 년 전에 쓴 「屛風」과 「瀑布」다. 「屛風」은 죽음을 노래한 詩이고, 「瀑布」는 懶惰와 안정을 배격한 시다. 트릴링은 쾌락의 부르죠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으니까 그의 주장에 따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屛風」 정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나의 진정한 詩歷은 불과 10년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릴링도 떠나서 다시 나대로 또한번 생각해보면, 나의 처녀작은 지난 6월 2일에 쓴 아직도 발표되지 않은 「미역국」이라는 최근작같기도 하고, 또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아직도 나는 진정한 처녀작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야단이다.

<1965. 9>

作品 속에 담은 祖國의 試鍊

---폴랜드의 作家 셴키에비치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두에 걸친 폴랜드의 작가 쎈키에비치를 말하려면 우선 폴랜드의 역사의 윤곽부터 말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폴랜드 국민은 10세기에 신화시대로부터 기독교시대로 들어갔으며, 따라서 그 시대서부터 폴랜드 국민의 역사적 생활이 시작한다. 이웃나라와의 격렬한 싸움을 겪어가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생존을 보존해왔고, 그동안에 폴랜드의 영토는 엘베강에서 도니에블강에까지 오, 볼틱 海에서 黑海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로마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폴랜드 문명의 특징을 유럽 문명의 그것과 똑같은 것으로 만들었다. 허기는 비잔틴문화의 영향이 바로 폴랜드의 접경까지 밀려든 일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이 나라의 문화의 특징은 기독교적인 것이다. 이런 특수한 地勢 때문에 이 나라의 문명은 진보를 보았고, 그 때문에 또한 이 나라는 전쟁을 겪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13세기 이후 폴랜드는 韃靼人(달단인)의 침략을 막아왔고, 이러한 폴랜드의 노력으로 그 침략이 유럽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유럽의 방어자로서 그 침략이 유럽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유럽의 방어자로서 폴랜드는 <기독교의 방패>라는 명예스러운 칭호를 얻게 되었다---그당시 이 말은 <문명의 방패>와 똑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는 것이었다. 16세기 말엽에 리토아니아와 王朝의 연결로 동맹을 맺고 그 후 1569년에 자발적으로 영구적인 합병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 폴랜드의 세력은 증대되고 국왕의 광대한 지배는 16세기에 전 유럽을 뒤흔든 동란을 무사히 막아낼 수 있게 했다. 국내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기 때문에 잔인한 종교적 박해라든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른 나라들이 겪은 특수한 싸움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폴랜드의 융성을 시기하고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세 이웃나라는 동맹을 맺고 폴랜드의 독립을 박탈하려고 책동하기 시작했다. 그후 세 나라는 전쟁으로 폴랜드 정복에 성공하고 1773년에 1795년까지 폴랜드의 3국 분할을 이루어놓았다. 이리하여 1795년에 폴랜드는 3차에 걸친 분할을 겪은 뒤에 드디어 독립국가로서의 존재가 완전히 말살되었다. 나라는 멸망했었지만 국민들은 살아 있었다. 러시아와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하는 전쟁에는 언제나 폴랜드 병사들이 참가했다. 나폴레옹 휘하의 폴랜드 군대의 용맹성에 의해서 그들은 불멸의 월계관을 차지했다. 그들이 피를 흘리고 싸운 보상으로 1807년에 와르소 大公國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후일 재생하는 폴랜드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애처롭게도 나폴레옹 1세의 몰락과 함께 그들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1815년에 원회의는 舊폴랜드의 일부에 소위 協議王國이라는 것을 만들고, 러시아 황제를 왕으로 하는 자치적 왕국을 세웠다. 러시아 황제의 지배는 폭정이었고, 그 후 수많은 반란이 일어났지만 번번이 러시아의 강력한 무력으로 탄압되고 실패에 돌아갔다. 1830년, 1863년, 1905년의 봉기는 적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지만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폴랜드가 독립국가로 다시 재생한 것은 1918년, 즉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였다. 그후 1934년에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1939년 9월에 독일군의 폴랜드 침입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폴랜드는 다시 소비에트와 독일에게 전 국토를 분할당했고, 1941년의 독일과 소비에트의 개전으로 독일이 전국을 점령하게 되었다. 그 후 1945년 1월에야 폴랜드는 독일의 패망으로 다시 독립을 하게 되었고, 1952년에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그 후 친소 사회주의 경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의 면에서 폴랜드를 볼 때 이 나라는 그러한 불우한 국가적 운명 속에서도 거대한 인물을 수많이 배출했다. 위선 15세기 중엽에 태양의 주위를 회전하는 지구의 운행에 관한 이론을 발견한 유명한 세기적인 천문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폴랜드사람이며, 최근에는 방사성 물질을 발견하고 노벨물리상을 탄 유명한 여류 물리학자 퀴리부인이 폴랜드사람이다. 또한 1919년에 폴랜드의 수상으로 취임한 저명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파데레브스키가 있다.

퀴리부인의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자유를 빼앗긴 폴랜드 국민은 아이들에게 자기나라의 말도 가르치지를 못했고, 祈禱도 아이들이 자기나라의 말로 드리면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았다. 국민들은 자기들의 땅을 소유할 권리가 없었다. 이러한 저주받은 구속된 기간 동안에 폴랜드 국민은 정부도 없고 군대도 갖지 못햇다. 이러한 절망에 빠진 폴랜드 국민에게 정신적 支柱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술과 음악과 문학이었다. 폴랜드의 시인은 고대의 예언자처럼 미래에 있어서의 국민의 재생을 예언하고, 자유를 잃고 기진맥진한 동포의 영혼을 격려하고 그들이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다. 미키에비치(1798~1855), (폴랜드의 대국민 시인)과 슬로바키와 크라신스키와 같은 시인들의 걸작, 작곡가 쇼팽의 작품, 위대한 화가 그로트거와 매티고의 그림, 이러한 것들은 압박당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폴랜드와 정복해야 할 敵에 대한 것을 열렬하게 호소했던 것이다.

헨리크 셴키에비치(1846~1916)는 1863년의 실패한 반란 후에 폴랜드 사회가 전반적으로 절망과 피폐에 싸여있을 때에 청년기에 도달한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여지껏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던 희망은 꺼져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생기를 주기 위해서는 비범한 영웅적인 先例와 正義의 승리같은 것이 사람들의 앞에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이 점에서 헨리크 셴키에비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모국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을 가장 성공적인 방법으로 성취시켰다. 매력적인 처녀작 「황무지에의 탈출」(1872년), 최초의 단편집「늙은 머슴」(1875년), 「음악가 양코」(1881년), 「정복자 발테크」와 「등대수」(1882년) 등이 그것이다. 그는 1883년에 당시 그가 편집하고 있던 일간신문 스로워를 통해서,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동포의 <정신적 要塞를 강화하기 위해서> 위대한 歷史詩 「三部作」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三부작」은, 「불과 칼을 들고」(1884년)와 「홍수」(1886년)와 「판 미카엘」(1887~1889년)로서 각각 출판되었다. 그후 1891년에 가련한 심리적 장편소설 「無信仰」을 발표하고 1895년에 교훈적인 소설 「폴랜드 가족」을 발표하고, 유명한 역사소설로서 로마시대의 폭군 네로를 취재로 한 「쿼 바디스」는 1896년에 완성되었다.

「三部作」은 17세기 중엽의 폴랜드의 敍事詩的 묘사로서, 스웨덴과 전쟁을 할 때 달단인과 코자크들이 침입해온 시대의 얘기다. 적은 사방에서 국내로 몰려들었다 수도는 그들에게 점령을 당하고 국왕은 간신히 피신을 했다. 이 불바다 속에서, 이 불행과 재앙의 도가니 속에서 단 하나의 要塞, 야스나 구라(빛나는 언덕이라는 뜻)의 교회만이 정복을 당하지 않고 공격에 견딜 수 있었다. 거대한 대포는 탄알을 성벽에다 대고 퍼부었고, 연이어 공격에 공격을 가했지만 모두다 허사였다. 그리고 이것을 방어하며 싸우는 용사들을 항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야스나 구라의 용감한 방어전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폴랜드 국민들은 각기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적을 쫓아내기 위해서 무기를 들고 다시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은 드디어 격퇴되어 폴랜드의 국경 밖으로 도망쳐나가고 야스나 구라는 무사하게 되었다. (이런 「3부작」의, 17세기 당시의 적에 대한 폴랜드 국민의 전투의 모습의 묘사는 역사가에 따라서 의견이 구구하지만 그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비평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것이 「3부작」의 최후의 장면이다. 이 소설은 세계문학의 걸작 중의 하나에 드는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00년에 나온 「십자가의 騎士」는 국경 근처에서 폴랜드를 공격한 독일 敎團과의 전투를 그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15세기 때의 것이고, 폴랜드가 <십자가의 기사> 교단의 힘을 결정적으로 분쇄한 유명한 구룽왈트 싸움의 묘사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책과 영화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쿼 바디스」는 로마의 폭군 네로시대에 있어서의 초기 기독교도들의 순교를 그린 작품으로, 이것은 1896년에 출판되자마자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후 1905년에 셴키에비치는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었다.

이상 열거한 전작품에 공통되는 관념은 무엇인가. 또한 압박당한 시대에 있어서 폴랜드에 대해서 어떤 목적을 갖고 있었나. 거기에는 투쟁이 있고, 正義에 대한 박해가 있고, 그리고 최후에는 정의의 승리가 있다. 적국의 검열관들의 엄중한 감시 밑에서 러시아와 프러시아의 압박에 대해서 공공연한 불만을 털어놓는 일은 폴랜드 작가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셴키에비치가 그의 눈을 과거로 돌린 이유이었다. 폴랜드에서도 구속받은 백년 동안에 수많은 네로가 있었다. 로마의 네로를 빌어서 그는 이러한 네로들을 암시하고 규탄했다. 셴키에비치의 고전적 작품은 폴랜드 국민의 정신에 영향을 주고 영광된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게 하고, 그리고 믿음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셴키에비치의 문학과 투쟁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도 절실히 요청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어떤 문학적 수법으로 어떻게 어디까지 싸워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셴키에비치의 시대에 비해서 오늘날의 상황이 급속도로 복잡하고 미묘하고 보다더 불행해진 것도 사실이며, 어찌보면 그의 역사적 방법이 낡은 감이 없지도 않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이며 조금도 낡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의 위대한 투지와 역량에 접할 때, 우리들은 새삼스럽게 한없이 압도될 뿐이다.

<1966. 1>

 

     



詩여, 침을 뱉어라*

―힘으로서의 詩의 存在





나의 시에 대한 思惟는 아직도 그것을 공개할만한 명확한 것이 못된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나의 모호성은 詩作을 위한 나의 정신구조의 上部 중에서도 가장 첨단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유일한 도구를 상실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교회당의 뾰죽탑을 생각해볼 때, 시의 探針은 그 끝에 달린 십자가의 십자의 상반부의 창끝이고, 십자가의 하반부에서 까마아득한 주춧돌 밑까지의 건축의 실체의 부분이 우리들의 의식에서 아무리 정연하게 정비되어있다 하더라도, 詩作上으로 그러한 明晳의 개진은 아무런 보탬이 못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며,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그는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 물음이 포괄하고 있는 원주가 바로 우리들의 오늘의 세미나의 논제인,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즉 노래―이 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동의어가 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는 것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시를 못쓰게 된다. 다음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思辨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시를 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나는 이미 <시를 쓴다>는 것이 시의 형식을 대표한다고 시사한 것만큼, <詩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전제를 한 폭이 된다. 내가 시를 논하게 된 것은―속칭 <詩評>이나 <詩論>을 쓰게 된 것은―극히 최근에 속하는 일이고, 이런 의미를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 <시를 논한다>는 본질적인 의미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태여 그것을 第一義的인 본질적인 의미 속에 포함시켜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은 논지의 진행상의 편의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詩에 있어서의 모험이란 말은 세계의 開陣, 하이데거가 말한 <大地의 은폐>의 반대되는 말이다. 엘리오트의 문맥 속에서는 그것은 의미 對 음악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엘리오트도 그의 온건하고 주밀한 논문 「詩의 音樂」의 끝머리에서 <詩는 언제나 끊임없는 모험 앞에 서있다>라는 말로 <意味>의 토를 달고 있다. 나의 시론이나 시평이 전부가 모험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들은 통해서 상당한 부분에서 모험의 의미를 연습해보았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 나는 시단의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참여시의 옹허자라는 달갑지않은, 분에 넘치는 호칭을 받고 있다.

산문이란, 세계의 개진이다. 이 말은 사랑의 留保로서의 <노래>의 매력만큼 매력적인 말이다. 시에 있어서의 산문의 확대작업은 <노래>의 유보성에 대해서는 侵攻적이고 의식적이다. 우리들은 시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을 공간적으로 상상해서, 내용이 반 형식이 반이라는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노래>의 유보성, 즉 예술성이 무의식적이고 穩性的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반이 아니다. 예술성의 편에서는 하나의 시작품은 자기의 전부이고, 산문의 편, 즉 현실성의 편에서도 하나의 작품은 자기의 전부이다. 시의 본질은 이러한 개진과 은폐의,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詩의 예술성이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의시의 기교에 정통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詩의 기교라는 것이 그것을 의식할 때는 진정한 기교가 못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자기의 시인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으로 사람이 자기의 전신을 바라볼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는 것은 남들이고, 소재이고, 현실이고, 신문이다. 그것이 그의 의식이다. 현대시에 있어서는 이 의식이 더욱더 精銳化―때에 따라서는 신경질적으로까지―되어 있다. 이러한 의식이 없거나 혹은 지극히 우발적이거나 수면 중에 있는 시인이 우리들의 주변에는 허다하게 있지만 이런 사람들을 나는 현대적인 시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현대에 있어서는 시뿐만이 아니라 소설까지도, 모험의 발견으로서 자기형성의 차원에서 그의 <새로움>을 제시하는 것이 문학자의 의무로 되어 있다. 지극히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만큼 많은 신문을 도입하고 있고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유가 없다.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되지만,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말은 사실은 <내용>이 하는 말이 아니라, <형식>이 하는 혼잣말이다. 이 말은 밖에 대고 해서는 아니될 말이다.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다>는 <형식>을 정복할 수 있고, 그때에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간신히 성립된다.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야 한다. 이것을 계속해서 지껄이는 것이 이를테면 38선을 뚫는 길인 것이다. 낙수물로 바위를 뚫을 수 있듯이, 이런 시인의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닐 때가 온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하고 외우다 보니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그것이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고 시의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그러한 시의 축적이 진정한 민족의 역사의 기점이 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참여시의 효용성을 신용하는 사람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까 서두에서 시에 대한 나의 사유가 아직도 명확한 것이 못되고, 그러한 모호성은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의 탐색이 급기야는 참여시의 효용성의 주장에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여직까지 없었던 세계가 펼쳐지는 충격.을 못주고 있다. 이 시론은 아직도 시로서의 충격을 못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직까지의 자유의 서술이 자유의 서술로 그치고, 자유의 이행을 하지 못한 데에 있다.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이다. 자유의 이행에는 전후좌우의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은 援軍이다. 원군은 비겁하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성립의 사회조건의 중요성을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다음과 같은 평범한 말로 강조하고 있다―『사회생활이 지나치게 주밀하게 조직되어서, 詩人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 이미 중대한 일이 모두 다 종식되는 때다. 개미나 벌이나, 혹은 흰개미들이라도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는 편이 낫다. 국민들이 그들의 <過激派>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고립된 단독의 자신이 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間隙이나 구멍을 사회기구 속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나쁜 일이다―설사 그 사람이 다만 奇人이나 집시나 범죄자나 바보얼간이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인용문에 나오는 기인이나, 집시나, 바보 멍텅구리는 <내용>과 <형식>을 논한 나의 문맥 속에서는 물론 후자 즉 <형식>에 속한다. 그리고 나의 판단으로는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기인이나 바보얼간이들이, 자유당때하고만 비교해보더라도 완전히 소탕되어있다. 부산은 어떨지 모르지만, 서울의 내가 다니는 주점은 문인들이 많이 모이기로 이름난 집인데도 벌써 주정꾼다운 주정꾼 구경을 못한 지가 까마득하게 오래된다. 주정은커녕 막걸리를 먹으러 나오는 글쓰는 친구들의 얼굴에 메콩강변의 진주를 발견하기보다도 더 힘이 든다. 이러한 <근대화>의 해독은 문학주점에만 한할 일이 아니다.

그레이브스는 오늘날의 <서방측의 자유세계>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없는 것을 개탄하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서방측의 자유세계의) 시민들의 대부분은 群居하고, 인습에 사로잡혀 있고, 순종하고, 그 때문에 자기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싫어하고, 만약에 노예제도가 아직도 성행한다면 기꺼이 노예가 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혹은 知的一致를 시민들에게 강효하지 않는 의미에서, 이 세계가 自由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이 인용문에서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유당때의 무기력과 무능을 누구보다도 저주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자유는 없었지만, <혼란>은 지금처럼 이렇게 처절하게 압제를 받지 않은 것이 신통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혼란>이 없는 시멘트회사나 발전소의 건설은, 시멘트회사나 발전소가 없는 혼란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란>의 향수가 문화의 세계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징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본질적 근원을 발효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임무인 것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자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도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나갈 수 있는 순간이 와있다. <막상 詩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인은 <詩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라는 나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1968. 4>


* 1968년 4월 釜山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의 발표 원고


反詩論




문학에는 숙명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곡예사적 일면이 있다. 이것은, 신이 날 때면 신이 나면서도 싫을 때는 무지무지한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곡예사란 말에서 연상되는 것이 불란서의 시인 레이몽끄노의 재기발랄한 시다. 얼마전에 죽은 꼭또의 문학도 그렇다. 빨리 죽는 게 좋은데 이렇게 살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주접이 붙는다. 분별이란 것이 그것이다. 술을 먹을 때도 몸을 아끼며 먹는다.

그리고 젊었을 때와 다른 것이, 젊은 사람들과 대할 때면 완연히 체면 같은 것을 의식해서 말도 함부로 하지 않게 되고 주정도 자연히 삼가게 된다. 이쯤 되면 거지가 되거나 농부가 되거나 죽거나 해야 할텐데 그것을 못한다. 나이가 먹으면서 거지가 안 된다는 것은 생활이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불안을 느끼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남을 판단한다. 하다못해 술친구들까지도 자기하고 생활정도가 비슷한 사이를 좋아하게 된다.

그렇지만 恒産이 恒心이라고, 생활에 과히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 정신의 불필요한 소모가 없어진다. 도시 마음을 쓸 데가 없는 것 같다. 약간의 사치를 하는 것도 싫지 않고, 남이 하는 사치도 자기의 사치보다 더 즐거웁게 생각된다. 하늘은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고 역사도 둥글고 돈도 둥글다. 그리고 詩까지도 둥글다.

그런데 이런 둥근 詩 중에서도, 하기는 이땅에서는 발표할 수 없는 것이 튀어나오는 때가 있다. 최근에 쓴 [라디오界]라는 제목의 시가 그것이다. 이런 작품도 느닷없이 맨 작품으로 내놓기보다도 설명을 붙여서 산문 속에 넌지시 끼어 내는 편이 낫겠지만 詩란 그런 것이 아니다. 위험을 미리 짐작하고 거기에 보호색을 입혀서 내놓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고 아예 발표하지 않고 썩혀두는 편이 훨씬 낫다.

그리고 그전에는 이런 발표할 수 없는 작품을 쓰게 되면 화가 나고 분하면서도 오히려 흐뭇한 감을 느꼈는데, 요즘에 와선 그런 자존심도 없어졌다. 후일에 언제이고 발표할 날이 있겠지 두고 보자, 하는 따위의 앙심도 없어지고, 영원히 발표할 날이 없다 해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은 기분이다. 아니 오히려 발표될 수 없어서 잘되었다는 안도감까지도 든다.

그런데 아주 발표하지 못하는 경우보다도 더 기분나쁜 경우가 있다. 그것은 수정을 해서 내놓는 경우다. 죽는 것보다도 못한 것이 병신이 되는 것이다. 나의 친척에 아들 다섯을 다 병신을 둔 사람이 있다. 이이는 검사노릇을 하다가 4․19 후에 그만두고, 그래도 먹을 것은 있고 몸도 별로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 얼마전에 60도 다 못 채우고 갑자기 죽어버렸다. 미친 자식을 두고 속을 썩인 분수로는 오래 산 셈이다. 그래도 글을 수정해내는 것은 미친 자식을 둔 것보다는 나을는지.

그렇지만 화가 난다. 최근에 某신문의 칼럼에 보낸 원고가 수정을 당했다. 2백자 원고지 5장 중에서 4,5군데를 고쳤다. 음담의 혐의를 받고 불명예스러운 협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고치자고 항복을 했을 때는, 나중에 나의 보관용 스크랩으로 두는 것만은 초고대로 고쳐놓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며칠 후에 신문에 난 것을 오려놓고 보니, 다시 원상대로 정정을 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겨우 두어서너 군데만 고치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고보니 오히려 수정을 해준 대목이 초고보다 더 낫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이왕 강간을 당하고 순결을 잃은 몸인데, 하는 심사도 있지만, 요는 내 글보다도 내 글이 자유롭게 내놓여질 수 있는 세상이 정작 문제이지 내 글은 문제가 아니라는 심정이고, 그러고보면 내 글보다 훌륭한 얼마나 많은 글이 파묻혀있겠는가 하는 수치감이 들고, 이런 쪽지글에 신경을 쓰고 보관을 하려고 스크랩을 하는 것부터가 무거운 자책감이 든다. 언론의 자유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천재의 출현을 매장하는 하늘과 땅 사이만한 죄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A윤리위원회에서 Z윤리위원회까지의 모든 윤리기관을 포함한 획일주의자가 멀쩡한 자식을 인위적으로 병신을 만들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곡예사가 재롱만을 부리지 않고 사기를 하게 된다.

또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흥분도 상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사기다. 그러나 이것만은 그만두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죽느니만도 못하다. 그러나 상품으로서의 흥분을 의식하면서 흥분하는 익살광대짓도 있지만 좌우간 피로하다.

이럴 때를 나는 至日로 정하고 있다. 지일에는 겨울이면 죽을 쑤어 먹듯이 나는 술을 마시고 창녀를 산다. 아니면 어머니가 계신 농장으로 나간다. 창녀와 자는 날은 그 이튿날 새벽에 사람 없는 고요한 거리를 걸어나오는 맛이 희한하고, 계집보다도 새벽의 산책이 몇백배나 더 좋다. 해방 후에 한번도 외국이라곤 가본 일이 없는 20여 년의 답답한 세월은 훌륭한 일종의 감금생활이다.

누가 예술가의 가난을 자발적 가난이라고 부른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나의 경우야말로 자발적 감금생활, 혹은 적극적 감금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적한 새벽거리에서 잠시나마 이방인의 자유의 감각을 맛본다. 더군다나 계집을 정복하고 나오는 새벽의 부푼 기분은 세상에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

이것은 탕아만이 아는 기분이다. 한 계집을 정복한 마음은 만 계집을 굴복시킨 마음이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거리에서 여자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볼 게 없다. 머리가 훨씬 단순해지고 성스러워지기까지도 한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도, 해장을 하고 싶은 것도 연기하고 발 내키는 대로 한적한 골목을 찾아서 헤맨다. 이럴 때 등굣길에 나온 여학생 아이들을 만나면 부끄러울 것 같지만, 천만에! 오히려 이런 때가 그들을 가장 있는 그대로 순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격의없는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 때묻지 않은 순간. 가식 없는 순간.

그런데 이런 至日의 중요한 휴식의 기회도 요즘에 와서는 놀라울 정도로 이용하는 도수가 적어졌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생활이 안정된 탓일 거라. 여유가 생기니까 이상하게도 여유가 없을 때보다도 덜 가지고 매력도 없어진다. 포옹의 매력도 그렇고 산책의 매력도 그렇다. 여유가 생기면 둔해진단 말이 맞는다. 그리고 둔해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고 둔해지는 것을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고, 자꾸 이런 식으로 무한대로 좋다는 생각이 드니 할 수 없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술을 마신 끝에, 간혹 좋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짓을 하고 부푼 마음으로 일찌감치 새벽거리로 뛰어나왔다가 혼이 났다. 아직 행인은 얼마 안 되고 행길은 쓸쓸한데, 노란 돌격모를 슨 도로 청소부의 한떼가 보도에 일렬로 늘어서서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다. 나는 종로거리에서 자라나다시피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용감한 청소부는 처음 보았다.

어찌나 급격하게 일사천리로 쓸고 나가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새벽에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처음 보는 풍경인 만큼 더욱 놀랐는지는 몰라도 아마 이 꼴을 자주 보는 사람도, 경기장에 들어온 관중을 무시하듯 행인을 무시하는 이들의 태도에 습관이 되려면 몇 달을 착실히 걸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도 간혹 버스정류장 부근같은 데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마구 먼지를 퍼붓는 열성적인 소제부를 보기는 했지만 이런 처참한 광적인 청소부의 표정은 처음 보았다. 나는 먼지를 받으면서도 한참동안 먼발치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자기 일의 열성의 도를 넘어서, 행인들에 대한 평소의 원한과 고질화된 시기심까지가 한데 섞여서 폭발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일종의 복수행위인가. 복수행위라면 소주에 유독소를 넣어서 파는 것도 복수행위이고, 백화점 점원들이 정가의 두 배를 얹어서 돈 있는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합법적인 복수행위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어느틈에 시대에 뒤떨어져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복수행위를 예사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행인들의 얼굴. 이들은 입에 손을 대고 지나가기는 하지만 별로 불쾌한 얼굴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입에 손을 대고 지나가기는 하지만 별로 불쾌한 얼굴도 하지 않는다. 불쾌한 얼굴을 지을만한 여유가 없느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청소부에 못지않은 바쁜 직장의 아침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좌우간 나는 청소부의 폭동보다도 행인들의 무료한 얼굴에 한층 더 가슴이 섬찍해졌다. 그리고 <거지가 돼야 한다. 거지가 안되고는 청소부의 심정도 행인들의 표정도 밑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는 없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하면서 재빨리 구세주같이 다가온 버스에 올라탔다.

지일의 또 하나의 탈출구는 노모를 모시고 돼지를 기르고 있는 동생들이 있는 농장에 나가보는 일이다.

흙은 모든 나의 마음의 때를 씻겨준다. 흙에 비하면 나의 문학까지도 범죄에 속한다. 붓을 드는 손보다도 삽을 드는 손이 한결 다정하다. 낚시질도 등산도 하지 않는 나에게는 이 아우의 농장이 자연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성당이다. 여기의 자연은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싸우는 자연이 돼서 더 건실하고 성스럽다. 아니 진실하니, 성스러우니 하고 말할 여유조차도 없다. 노상 바쁘고, 노상 소란하고, 노상 실패의 계속이고, 한시도 마음을 놓은 틈이 없다.

그들의 농장의 얼굴은 늙은 어머니의 시꺼멓게 갈라진 손이다. 이 손을 지금 40이 넘은 아우가 닮아가고 있다. 그전에 비하면, 이렇게 내 개인의 집안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쓸 만큼 된 것도 여유가 생겼다면 여유가 생긴 것이고 불순해졌다면 그만큼 불순해진 것이다. 소설을 쓸 수 있을만큼 불순해진 것이다. 그래도 여직껏 詩를 긁적거리게 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이외에 불교를 믿고 있다는 것이 또한 무언중에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곤란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제사. 그리고 제대로 담근 식혜와 제대로 만든 전여. 절에 갖다줄 돈이 있으면 반찬이나 해잡수시라고 노상 타박을 하다가도 文仁葬의 식장 같은 데서 향불을 입으로 끄는 무식한 선배들을 보면 노모의 노후의 그나마의 마지막 사치를 그다지 탓하고 싶은 마음도 안난다. 결국 내 자신의 되지 않은 문학행위도 따지고보면 노모가 절에 다니는 거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어머니는 절에도 다니지만 아직도 땀을 흘리고 일을 하는데 나는 땀도 안 흘리고 오히려 불공 돈의 몇갑절의 술값만 낭비하고 있다. 언제 어머니의 손만한 문학을 하고 있을는지 아득하다.


이제는 애를 써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책이 선두가 아니다. 작품이 선두다. 詩라는 선취자가 없으면 그 뒤의 사색의 행렬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고생을 하든지간에 시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책이 그 뒤의 정리를 하고 나의 詩의 위치를 선사해준다. 정신에 여유가 생기면, 정신이 살이 찌면 목의 심줄에 경화증이 생긴다.

이런 때는 고생이란 고생을 다 써먹을 때다―말하자면 수단으로서의 고생을 더 써먹었을 때다. 하는 수 없이 경화증에 걸린 채로 詩를 썼다. 배부른 詩다. 이것이 「라디오界」라는 작품이었다. 그후 「먼지」「性」「美人」 등의 3편을 썼는데 아직도 경화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만성 경화증인 모양이다. 이대로 나가면 부르좌의 손색없는 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전에는 무엇을 쓸 때 옆에서 식구들이 누구든지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신경질을 부렸는데 요즘은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도 않고, 오히려 훼방을 좀 놀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약이 되고 작품에 뜻하지 않은 구명대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잡음은 인간적이다. 그것은 너그러운 폭을 준다. 잘못하면 몰살을 당할 우려가 있지만, 잡음에 몰살을 당할 만한 연약한 詩는 낳지 않아도 후회가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서재가 없다. 일부러 서재로 쓰던 방을 내놓고 안방에 와서 일을 한다. 그저에는 잡음 중에도 옆에서 밥을 먹거나 무엇을 씹는 소리가 가장 싫었는데, 요즘에는 그것에도 면역이 된 셈이다. 정 방해가 될 때면 일손을 멈추고 잡담을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는 地理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몹시 신봉하던 때가 있었는데 근자에는 그 신조를 무시하고 쓴 詩가 여러편 있다. 요즘의 강적은 하이데거의 「릴케論」이다. 이 논문의 일역판을 거의 안보고 외울만큼 샅샅이 진단해보았다. 여기서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을 텐데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뚫고 나가고 난 뒤보다는 뚫고 나가기 전이 더 아슬아슬하고 재미있다.

아무리 해도, 자기의 몸을 자기가 못 보듯이, 자기의 詩는 자긱 모른다. 다만 초연할 수는 있다. 너그럽게 보는 것은 과신과도 다르고 자학과도 다르다. 그렇게 너그럽게 자기의 詩를 보고 세상을 보는 것도 좋다. 이런 너그러움은 詩를 못 쓰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바로 새로운 詩를 개척해나가는 무한한 寶庫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性」이라는 작품은 아내와 그 일을 하고난 이튿날 그것에 대해서 쓴 것인데 성묘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는 처음이다. 이 작품을 쓰고 나서 도봉산 밑의 농장에 가서 부삽을 쥐어보았다. 먼첨에는 부삽을 쥔 손이 약간 섬찍했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부끄럽지는 않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나는 더욱 더 날쌔게 부삽질을 할 수 있었다. 장미나무 옆의 철망 앞으로 크고작은 農具들이 보랏빛 산너머로 지는 겨울의 석양빛을 받고 정답게 빛나고 있다. 기름을 칠한 듯이 길이 들은 연장들은 마냥 다정하면서도 마냥 어렵게 보인다.

그것은 프로스트의 詩에 나오는 외경에 찬 세계다. 그러나 나는 쁘띠 부르的인 <性>을 생각하면서 부삽의 세계에 그다지 압도당하지 않을 만한 자신을 갖는다. 그리고 여전히 부삽질을 하면서 이것이 농부의 흉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고 나서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면 내 아우보다 꾸지람을 더 많이 들을 것은 물론 뻔하다. 그것은 각오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농부의 흉내를 내고 죄의 감형을 기대하는 것 같은 태도는 더욱 불순하다. 나는 농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삽질을 한다. 진짜 농부는 부삽질을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의 노동을 모르고 있다. 내가 나의 시를 모르듯이 그는 그의 노동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美人」은 가장 최근에 슨 작품인데 이것은 전부 7행밖에 안되는 短詩다. 낭독회의 청탁으로, 되도록 짧은 작품을 달라는 요청에 따라서 쓴 것이다. 詩는 청탁을 받고 스지 않기로 엄하게 규칙을 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규칙을 깨뜨린 것이다. 터치도 매우 가볍다. 여편네의 친구되는 미모의 레이디하고 같이 成吉思汗式이라나 하는 철판에 구워 먹는 불고기를 먹고 와서 쓴 것이다.

여편네의 친구들 중에는 상류사회의 레이디나 매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졸작 「美人」의 주인공은 그중 세련된 교양 있는 미인이라고 해서 같이 회식을 하러 갔다. 과연 미인이다. 나는 미인을 경멸하는 좋지 못한 습성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데, 이 Y여사는 여간 인상이 좋지 않다. 여유 위에 여유를 넓히려고 활짝 열어놓은 마음의 창문이 때아닌 훈기가 불어들어온 셈이다. 우리들은 화식집 2층의 아늑한 방에 앉아 조용히 세상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Y여사는 내가 피운 담배연기가 자욱해지자 살며시 북창문을 열어준다. 그것을 보고 내가 일어나서 창문을 조금 더 열어놓았다. 그때에는 물론 담배연기가 미안해서 더 열어놓았다. 집에 와서 그날밤에 나는 그들창문을 열던 생각이 문득 나고 그것이 실마리가 돼서 7행의 短詩를 단숨에 썼다.

이 작품을 쓰고 나서, 나는 노상 그러하듯이 運算을 해본다. 그리고 내가 창을 연 것은 담배연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천사같은 훈기를 내보내려고 연 것이라는 걸 알았다. 됐다! 이 작품은 합격이다. 창문―담배․연기―바람 그렇다, 바람. 내 머리에는 릴케의 유명한 「올페우스에 바치는 頌歌」의 제 3장이 떠오른다.


참다운 노래가 나오는 것은 다른 입김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입김. 神의 안을 불고 가는 입김.

바람.


또한 하이데거의 「릴케론」 속에 인용된,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독일의 사상가이며 문학자. 1744~1803)의 「인류의 역사철학적 고찰」에서 따온 다음의 문고가 密語처럼 울린다.


우리들의 입의 입김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세계가 繪畫가 되고, 우리들의 사상과 감정의 기본형이 된다. 인간이 일찍이 지상에서 생각하고, 바라고, 행한 인간적인 일, 또한 앞으로 행하게 될 인간적인 일, 이러한 모든 일은 한 줄기의 나풀거리는 산들바람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런 神的인 입김이 우리들의 신변에서 일지 않고 마법의 음색처럼 우리들의 입술 위에 감돌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필경 모두가 아직도 숲속을 뛰어다니는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름다운 Y여사와의 화식이 천한 것이 되지 않고, 나의 평소의 율법을 깨뜨린 것이 되지도 않고, 그녀에게 조그마한―아니 티끌만치도―결례도 되지 않았다는 또하나의 확실한 증거로서, 역시 「올페우스에 바치는 頌歌」의 제 3장의, 방금 인용한 것의 바로 앞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詩句의 복습은 한없이 즐거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노래는 욕망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급기야는 손에 넣을 수 있는 事物에 대한 哀乞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노래는 存在다. 神으로서는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언제 存在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들은 언제

神의 명령으로 大地와 星座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겠는가?

젊은이들이여, 그것은 뜨거운 첫사랑을 하면서 그대의 다문 입에

정열적인 목소리가 복받쳐오를 때가 아니다. 배워라


그대의 격한 노래를 잊어버리는 법을. 그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이다.



내가 읊은 「美人」이 릴케의 「天使」만큼은 되지 못했을망정 , 그다지 천한 미인은 아니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과신일까. 좌우간 나는 미인의 훈기를 내보내려고 창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내보낸 것은 담배연기뿐이 아니라 약간의 바람도 섞여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없이는 어떻게 연기인들 나가겠는가.

그전에는 산문 중의 인용문도 너무 파퓰러한 것은 피했다. 여기에 인용한 릴케의 詩句 같은 것도 옛날 같으면 막무가내로 인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가 파퓰러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간에 남의 글을 인용하기가 싫었다. 그것이 요즘에 와서는 파퓰러하고 안하고간에 필요에 따라서는 마구 인용을 한다. 그리고 그전에 비해서 요즘의 나는 훨씬 덜 소피스트케이티디해졌다고 생각한다. 「먼지」 같은 작품은 내 자신도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난해와 소피스트케이션의 구별을 분명히 가릴 수 있게 되었다. 필요에 따라서 소피스트케이션의 욕을 먹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쓸 작정이다.


파퓰러하다면, 原罪說처럼 정통적이고 파퓰러한 典據趣味가 없는데, 이런 데까지 서슴지 않고 소급해 올라갈 만한 용기가 생겼다. 나의 릴케는 내려오면서 만난 릴케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부근을 향해 더듬어 올라가는 릴케다. 그러니까 상당히 반어적인 릴케가 된 셈이다. 그 증거로 나의 「美人」의, 검정 미니스커트에 까만 망사 나이롱양말을 신은 스타일이 얼마나 반어적인 것인지 살펴보기 위해서, 부끄럽지만 졸시 「美人」의 전문을 인용해보자.


美人을 보고 좋다고들 하지만

美人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미인일까


美人이면 미인일수록 그럴 것이니

미인과 앉은 방에선

무심코

따놓은 방문이나 창문이

담배연기만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렷다


이 詩의 맨 끝의 <―아니렷다>가 反語이고, 동시에 이 시 전체가 반어가 돼야 한다. Y여사가 미인이 아니라는 의미의 반어가 아니라, 천사같이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이고, 담배연기가 <神的>인 <薇風>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반어다. 그리고 나의 이런 일련의 배부른 詩는 도봉산 밑의 豚舍 옆의 날카롭게 닳은 부삽날의 반어가 돼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詩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 통일된다.

우리 시단의 참여시의 후진성은, 이미 가슴 속에서 통일된 남북의 통일선언을 소리높이 외치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있다. 이것은 우리의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나는 천 년 후의 우주탐험을 그린 미래의 과학소설의 서평같은 것을 외국잡지에서 읽을 때처럼 불안할 때가 없다. 이런 때처럼 우리들의 문화적 쇄국주의가 저주스러울 때가 없다. 이런 미래의 꿈을 그린 산문이 시를 폐멸시키고 말 시대가 불원간 올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주비행을 소재로 한, 우리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만한 거대한 스케일의 과학시가 벌써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지구를 고발하는 우주인의 詩. 우주인의 손에는 지구에서 갖고 온 찝찝한 빵이 한 조각 들려있다. 이 찝찝한 빵에서 그는 지구인들의 눈물을 느낀다. 이 눈물은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최초의 눈물과도 통한다. 우리의 詩의 과거는 성서와 불경과 그 이전에까지도 곧잘 소급되지만, 미래는 기껏 남북통일에서 그치고 있다. 그 후에 무엇이 올 것이냐를 모른다. 그러니까 편협한 민족주의의 둘레바퀴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우리의 미래에도 과학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과학시대의 율리시즈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아까 <이제는 애를 써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말을 했지만,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반어가 되고 말았다. 때로는 책도 선두에 세우고 가야 한다. 아직 늙기는 빠르다. 종로의 새벽거리의 청소부의 狂態와 그 옆을 태연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이제는 꿰뚫려 보인다. 간신히 바늘구멍은 터진 셈이다. 또 한 번 Y부인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게 되면, 그리고 그녀가 나의 담배연기를 내보내려고 북창문을 열게 되면, 이번에도 나는 신사처럼 마주 그 문을 열면서 제 2의 「美人」을 쓸 구상이나 할 것인가. 아니다, 그때는 좀 달라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때늦은 릴케式의 운산만이라도 홀가분하게 졸업해야 할 것이다.


歸納과 演繹, 內包와 外延, 庇護와 무비호, 유심론과 유물론, 과거와 미래, 남과 북, 시와 반시의 대극의 긴장, 무한한 순환, 圓周의 확대, 곡예와 곡예의 혈투, 뮤리엘 스파크와 스프트니크의 싸움, 릴케와 브레흐트의 싸움, 앨비와 보즈네센스키의 싸움,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반시론의 반어.

<19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에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엘니뇨 현상이란 페루와 에콰도르 국경 부근에 대략 2~10년 주기로 평시 해수온도 보다 2~10도 정도 높은 난류가 발생해서 이 난류가 적도를 따라서 태평양의 서쪽으로 이동함에 따라서 광범한 해역의 수온이 상승하는 현상이며, 나니냐는 엘니뇨 이후에 찾아오는 엘니뇨와 정 반대의 현상으로서 이들이 발생될 때에는 지구 전반적으로 기후의 불균형을 가져와 어느곳은 태풍과 홍수가 발생하는가 하면 다른 곳은 한발로 극심한 가믐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같은 현상이 왜 발생되는가 그 원인을 규명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학설로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불안정한 대기상태가 무역풍을 약하게 하기 때문에 적도부근의 해수온도가 일종의 온실효과에 의해서 올라가게 된다고 추정하고 있는 정도 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설에는 몇가지 의문점을 남기게 된다.

왜냐하면 엘니뇨는 통상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겨울철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 이름도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the Christ Child)'를 뜻하는 엘니뇨(EL NINO)라 붙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해수면의 온도상승이 일사량도 적은 겨울철에 발생되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에는 지구과학도 세분화 해서 지구물리학,지구화학,기상학,지질학,해양학,화산학,지진학등 날로 가지를 더해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세분화해 갈수록 특정학문은 특정분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에 다른 분야나 전반적인 관련성과 같은 것은 등한히 할수있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상학은 천기에나 관심을 두는 반면 화산폭발이나 지진발생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같은 지구환경중에서 어떤 현상이 다른 현상과 무관하게 발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질적으로 비치는 두현상 또는 다현상간에 관계를 규명치 못하기 때문에 각각이 동떨어진 사건으로 보이고 있을 뿐이다. 하나의 지구 하나의 환경중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서 그 관련성을 규명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개별적인 현상들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이해를 하게 될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물리학의 역할이란 각 현상들간에 관계를 규명 함으로써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하는 일 이라 생각한다.

 

나는 바로 앞에서 지구핵의 용암은 식어가고 있는 불이 아니라 거시적으로는 우주팽창현상과 관련해서 영원히 타고 있는 화구로서 지상의 기온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지구 생명체들에 보물과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이제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엘니뇨,나니냐,화산폭발,지진등과 같은 지구현상들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리게 되며 이에 따른 새로운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엘니뇨 현상은 처음에 기술한 바와 같이 태평양의 동쪽 끝 페루와 에콰도르 연안에서부터 시작되어 적도를 따라서 서쪽으로 진행하여 서태평양 전반으로 퍼지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내가 [관계론]의 물리이론에 근거해서 추적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즉 페루와 에콰도르 연안의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심해구 에다가 지구 판구조(plate tectonic)상으로 화산활동이 아주 활발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엘니뇨 현상은 태평양상에 공기정체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먼저 해저 심해의 화산폭발과 용암분출로 인해서 심해저의 물이 더워지고 이것이 상승하여 해수면의 온도상승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지구의 반 시계 방향 자전운동에 의해서 태평양의 서쪽으로 이동하여 결국은 태평양의 상당한 해면이 온도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태평양의 이상해수온도 상승은 공기흐름에 정체를 가져오고 지구 전반적으로는 이상기후를 불러오게 된다.

이상은 [관계론]에 근거해서 추론해본 사항이지만 나의 이론을 뒷받침 해주는 학설이 있기에 여기에 즐겨 소개한다.

얼마전에 미국 하와이대학 지구물리학 교수인 대니얼 워커 박사는 지난 70대부터 동태평양 상의 이스터섬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강력한 해저화산 폭발을 감지 함으로써 엘니뇨 현상은 해저화산 폭발에 의한 것 이란 논문을 발표 하였지만 기상학자들은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늘만을 쳐다보는 기상학자들에게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관한 일로 비추일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대니얼 워커 박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나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한 사람의 편을 얻은 것에 크게 기뻐 한다.

지난 수십년간 관측한 자료에 의하면 엘니뇨 이후에는 반듯이 나니뇨가 찾아왔고 지구 곳곳에 화산폭발이 많았던 이후에는 지진 발생이 심했던 것을 보여 준다. 최근의 터키,멕시코,대만의 지진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거시적으로는 우주 팽창과 수축과정의 일환으로 지구상에 나타나고 있는 지구의 현상들인 것이며 숨쉬는우주 가운데 지구가 존재하고 있 는한 이들 현상들도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goldwave.hihome.com/22c.ht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06-03-1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갔습니다
 
 전출처 : 하늘바람 > [퍼온글] 사이시옷

사이시옷은 누구에게나 골칫거리지만 규정을 잘 알고 눈으로 익히며 외우는 수밖에 별 뾰족한 길이 없다. 사이시옷이 붙는 환경은 순 우리말 합성어에서 3가지,순 우리말+한자어 합성어에서 3가지,한자어에서 1가지로 모두 7가지다.

'순 우리말+순 우리말' 합성어 중에서 3가지는 (1)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냇가,햇볕) (2)뒷말 첫소리 'ㄴ,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거나(아랫니,잇몸) (3)뒷말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날 때(뒷일,깻잎)이다.

'순 우리말+한자어' 합성어에서 3가지는 (4)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콧병,햇수) (5)뒷말 첫소리 'ㄴ,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거나(곗날,툇마루) (6)뒷말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날 때(가욋일,훗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7)두 음절로 된 한자어 6개(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가 있다.

헷갈리는 말 100개를 정리했다.

갈댓잎,감잣국,갯값,건넛마을,계핏가루,고양잇과,공깃밥,군홧발,귀갓길,근댓국,기댓값,(기와집),꼭짓점,나랏돈,나랏빚,난롯불,날갯짓,냉잇국,노랫말,노랫소리,노잣돈,놀잇배,(농사일),눈칫밥,단옷날,담뱃잎,답삿길,대푯값,덩칫값,도낏자루,(도매금,동아줄),등굣길,등댓불,(마구간),마릿수,만둣국,만홧가게,맥줏집,(머리기사,머리말),머릿돌,며느릿감,모깃소리,뭇국,바닷고기,바닷모래,바닷새,배뱅잇굿,배춧국,뱃멀미,북엇국,비췻빛,빨랫방망이,사잣밥,상갓집,색싯집,선짓국,소싯적,소줏집,송홧가루,순댓국,시곗바늘,시빗거리,시줏돈,신붓감,신줏단지,쌈짓돈,연둣빛,(예사말),예삿일,외갓집,우윳빛,(인사말),일숫돈,잉엇과,자릿세,자줏빛,장삿속,(전세방),전셋집,조갯국,존댓말,종갓집,종잇장,죗값,주머닛돈,주삿바늘,처갓집,(초가집),출셋길,콧방귀,파랫국,판잣집,(피자집),하굿둑,호숫가,혼잣말,(화병),활갯짓.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62222

이런 거 그냥 놔두고 갈 수 있나요.

옛 말에 게으른 선비가 책장 수 센다고 하였는데,

내가 꼭 그 꼴인 것 같네용^^;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6-03-1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