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샘이의 논술일기
4. 큰샘이는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구나
큰샘이는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생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제시문을 무시한 채 논술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아예 제시문을 그대로 원용(援用)하는 등의 우를 범하고 있다.
바람샘은 큰샘이가 작성한 논술문과 제시문을 토대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해주려 한다.
논제 : 다음 제시문을 참고하여 ‘갈등의 의의'에 대해 서술하시오.
조선 중기에 이르러 향촌에 기반을 둔 사림(士林)이 중앙 정계에 대거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사림 세력은 강력한 훈구 세력과 대결할 때는 단결하였으나 훈구 세력이 무너진 뒤에는 자체 분열하여 학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붕당을 형성하였고, 붕당 간에 치열한 정권 다툼이 벌어졌다. 소위 당쟁(黨爭)이라고 불리는 붕당 간의 권력 투쟁은 여러 차례의 사화(士禍)와 같은 정치적 혼란과 폐해를 낳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붕당 경쟁을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구양수(歐陽脩)는,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붕당을 이루는 소인과는 달리 군자는 도를 추구하기 위하여 붕당을 이룬다고 하였다. 본래 붕당이란 성리학에서 늘 강조하는 바와 같이, 자신의 덕을 닦은 연후에 사람을 다스리라고 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공도(公道)를 실현하려는 정치집단이었다. 왕권의 전횡을 막고 신진 세력의 등용과 정치권력의 상호 견제 기능을 담당하였던 붕당정치는, 한정된 관직을 놓고 경쟁하던 당시의 현실에서 의미 있는 정치 형태였다. 그래서 윤휴(尹鑴)는 “붕당은 족히 천하를 어지럽게 하지만, 붕당을 싫어하여 없애버리면 천하를 망하게 하는데 이른다”고 하였다. 양반계급이 추구하는 권력, 지위, 명예 등 한정된 가치의 재분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 붕당정치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 김상봉, 『학벌사회』 중에서 |
큰샘이의 논술문 |
① 조선 시대 붕당들 사이에는 한정된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었다. 이는 정치적 혼란과 폐해를 야기했다. 그러나 붕당 정치는 왕권의 전횡을 막고 신진 세력의 등용과 정치권력의 상호 견제 기능을 수행했다. 따라서 붕당 정치는 제한된 가치를 놓고 생겨난 양반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는 갈등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 심각한 사회적 폐단을 가져오기도 하는 갈등은 ②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③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갈등 중에서 폭력과 차별을 수반하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 갈등은 자제해야 한다. |
“해원아, 큰샘이가 작성한 논술문을 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보거라.”
큰샘이의 논술문인데 바람샘은 뜬금없이 해원이에게 묻는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초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갈등의 의의'를 설명하는 부분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요.”
해원이는 당황한 듯 힘없이 대답한다.
“맞는 말이야. 큰샘이의 논술문에는 크게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구나. 하나는 제시문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탈이고, 하나는 제시문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탈이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잘 이해가 안 돼요.”
큰샘이는 라이벌인 해원이에게 지적을 당한 것이 내심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네가 수업 빠지고 농땡이 부리니까 논술실력이 형편없어진 거야.”
지성이가 놀리듯 이야기한다.
“하하하. 지성이 녀석, 오래도 우려먹는군. 그럼 한번 자세히 따져보자꾸나. 먼저 ①의 부분을 보렴. 제시문의 첫 단락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지.”
“그건 ‘요약'을 한 건데요?”
큰샘이는 바람샘의 지적에 항변한다.
“제시문의 단락을 그대로 쓰는 것은 ‘요약'이라고 할 수 없단다. 단순히 글자 수를 줄인 것밖에는 안 되지. 네가 제시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니?”
“선생님, 그렇다면 제시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성이 역시 제시문이 가장 난관이기 때문에 말을 끊고 대뜸 묻는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언어로 써야지. 차라리 ①에서 붕당의 긍정적 의미를 강조해서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균형과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붕당제'는 상호 견제와 인재 등용을 통해 정치의 균형과 발전을 꾀하였다”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쓰면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잘못'을 극복할 수 있단다.”
“자신에게 맞게 다시 풀어서 서술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해원아. 잘 이해하고 있구나. 그리고 ②처럼 두루뭉술한 단어는 좋지 않단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못해. ③은 큰샘이가 알다시피 ‘동문서답'이지. 이건 ‘갈등의 의의'보다는 ‘갈등의 주의사항'인 것 같구나. 결과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의의'는 빠뜨리고 말았어.”
“갈등의 양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큰샘이는 해원이에게 또 지적을 당하자 지지 않겠다는 듯 맞선다.
“일단 논제에서 ‘의의'를 요구했으면 ‘의의'를 쓰고, ‘양면성'을 요구하면 ‘양면성'에 대해 쓰도록 해라. 갈등의 의의 역시 ‘긍정적'이라는 평가 외에 더 나아가지 못했어. 왜 긍정적인지 독자를 납득시켜야지. 정치란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엉킨 사안이므로 갈등을 통해 타협에 이를 수 있다면 이는 갈등의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지.”
“그러네요. 그러면 갈등은 타협의 필수 조건이군요.”
큰샘이는 이제까지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았던 사실을 깨달으며 선생님께 묻는다.
“필수조건은 아니지. ‘대화'가 필수조건이야. 뉴스를 봐라, 대화가 없으니 정치권에서도 막말이 오가고 몸싸움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니. 제이는 논술문을 쓰기 전에 ‘제시문'을 꼼꼼히 읽도록 해라. 두 번, 세 번 읽는 사이에 제시문에 대한 접근 방향이 잡힐 게다. 지금 너에게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구나.”
바람샘은 아이들에게 고정적인 사고방식이 굳어지지 않도록 무던히도 애를 쓴다.
“예. 선생님 말씀대로 당분간은 제시문에 대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볼게요.”
큰샘이는 일단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논술쓰기나 사고방식 모두 미흡한 것이 너무 많아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막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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