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가 후원의밤 행사를 가지며 이제까지 고발했던 기업들에게 후원금 약정서를 동봉한 초청장을 보낸 것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기업활동과 단체활동은 나눌 수 없는 '활동'임은 명백하다. 저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가장 멋진 '벗'은 적장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칼을 서로 맞대며 싸우고 있지만, 나중에 만나면 술 한 잔 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는 지나간 선조들의 일만은 아닌 듯한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괘씸죄'가 강한 것 같다. 그것이 국민 특유의 '정서'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간혹 '공사(公私)'를 저버리는 일도 있어서 안타깝다.

그러면 사업(社業)은 '私業(사업)'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여러 말 하는 것보다 그냥 두 기사를 병기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참여연대 후원금행사 '빈축'
재벌주식거래 발표 앞두고 후원의 밤 초청장 보내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재벌그룹 특수관계인의 주식 거래에 대한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발표 대상 기업에도 후원의 밤 초청장을 보내 시기의 부적절성 지적과 함께 기업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참여연대는 4일 오후 6시30분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참여연대의 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 '희망 1번지 문패를 달아주세요' 행사를 개최한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개인과 기업에 최대 500만원의 후원금 약정서를 동봉한 초청장을 보냈으나 이 중 6일 이 단체가 발표할 '38개 재벌 특수관계인의 주식 거래에 관한 보고서' 대상 기업이 일부 포함돼 '오비이락'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이들 대상 기업은 참여연대의 영향력 등을 고려해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아무리 순수하고 예정된 행사라도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기식 사무처장은 "재벌 그룹 주식 거래 발표는 임시국회에서 입법화를 추진하고 상법개정위원회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려고 몇달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라며 "지난주에 발표하려다 마지막으로 내용을 검토해 더 신중하게 하려고 한주 연기한 건데 시기가 의도하지 않게 맞물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사무처장은 "기업에 전화를 해서 후원금을 내라고 강요나 '협박'한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각계 인사에게 행사 초청장을 보낸 것"이라며 "참여연대는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도 안 받고 이사에 필요한 자금도 회원이 십시일반하고 있다"며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기자메모] ‘꼬리표’ 달지않는 美의 기부문화
입력: 2005년 06월 02일 18:43:47 : 0 : 0
 
“대기업 재단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들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해도 문제가 없습니까?”

“그게 왜…이상한가요?”

미국 워싱턴DC의 ‘예산정책연구센터’(CBPP) 인터뷰실. 연구위원인 제임스 호니는 기자의 질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해외 예산감시현장을 가다’ 시리즈 취재를 위해 CBPP를 방문한 자리였다. CBPP는 저소득층의 관점에서 예산·경제 정책을 비판해온 연구기관. 특히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선 “빈부 격차를 확대시키고,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굳이 분류하자면 ‘진보’에 가깝다. 그런데, 단체 운영 재원을 묻자 “거의 100%가 포드, 록펠러, HP 등 재단 기부금”이란 대답이 돌아온 것.

호니는 “재단들이 공익 목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절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들’(CAGW)은 보잉사로부터 기부를 받은 뒤에도 국방부의 보잉 급유기 도입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기부에 꼬리표를 달지 않는’ 선진 문화에 대한 기자의 이해가 부족했던 셈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기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이 1일 “상생과 나눔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단 1%의 반대 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기왕이면 이미지 개선에 주안점을 두거나 입맛에 맞추는 기부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공익을 위한 것인 만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도 북돋워주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나눔경영’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길이 아닐까.

〈권석천 산업부 기자〉

 
[기자메모] ‘꼬리표’ 달지않는 美의 기부문화
입력: 2005년 06월 02일 18:43:47 : 0 : 0
 
“대기업 재단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들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해도 문제가 없습니까?”

“그게 왜…이상한가요?”

미국 워싱턴DC의 ‘예산정책연구센터’(CBPP) 인터뷰실. 연구위원인 제임스 호니는 기자의 질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해외 예산감시현장을 가다’ 시리즈 취재를 위해 CBPP를 방문한 자리였다. CBPP는 저소득층의 관점에서 예산·경제 정책을 비판해온 연구기관. 특히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선 “빈부 격차를 확대시키고,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굳이 분류하자면 ‘진보’에 가깝다. 그런데, 단체 운영 재원을 묻자 “거의 100%가 포드, 록펠러, HP 등 재단 기부금”이란 대답이 돌아온 것.

호니는 “재단들이 공익 목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절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들’(CAGW)은 보잉사로부터 기부를 받은 뒤에도 국방부의 보잉 급유기 도입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기부에 꼬리표를 달지 않는’ 선진 문화에 대한 기자의 이해가 부족했던 셈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기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이 1일 “상생과 나눔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단 1%의 반대 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기왕이면 이미지 개선에 주안점을 두거나 입맛에 맞추는 기부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공익을 위한 것인 만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도 북돋워주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나눔경영’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길이 아닐까.

〈경향신문, 권석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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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4-0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5만원 냈어요...감시 대상의 기업에서 돈을 받는 건 사실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지요...하지만 시민기부가 워낙 척박해서.....

승주나무 2006-04-0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 님//'일인 기부제' 정착을 위해 저도 손을 좀 써야 할텐데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사나 접사, 서술어 하나만으로도 주객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말은 특히 단어에 따른 의미변화가 크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표현을 더욱 세련되게 하거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글자를 더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문기사는 특히 무심코 읽고 넘어가는 것이 많기 때문에 맞춤법이나 중대한 사실의 착오가 평생토록 따라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신문에 시비를 거는 이유입니다.

아래의 경우도 좀 더 명확히 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례#1
교토의정서에 반대해온 미국은 8일 대표단을 철수했고
대표단에서 철수했고(교토의정서 대표단이 여러 나라인 경우)
대표단을 철수시켰고(교토의정서 협약에 미국 대표단을 파견시킨 경우)

☞ 모호한 문장은 이해를 어렵게 한다.

'05.12.12 국제11면 "2012년 이후도 온실가스 규제"

사례#2
비용은 전액 국고로 → 국고에서, 국비로

☞ 앞에서 '비용'이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서술어의 형태를 보면 국고로 환수된다는 이미지를 감출 수 없다. "국고에서 비용을 댔다"는 뜻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면 많은 독자에 의해서 오도되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호리지차 천리지말(毫釐之差 千里之末:처음에는 털끝만한 차이지만, 나중에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진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맞춤법뿐만 아니라 독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06.3.15, 지역종합 12면 "자기부상열차 유치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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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3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6-04-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는 '대표단'이라는 성격이 모호해서 딴지를 걸어 보았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앞에 '미국'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도 같네요. 암튼 여론을 좀 더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쟈 2006-04-0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도 나중에 책 한 권 쓰셔야겠습니다.^^

승주나무 2006-04-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내공을 더 쌓아야지요. 로쟈 님 서재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을 구독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나름 성실하게 읽고 스크랩해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단지 기사 스크랩과 서평, 간단한 코멘트를 다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요즘에는

너무 많은 네티즌들이 다녀가는 것 같습니다.

주소는

http://blog.khan.co.kr/97dajak/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인상적인 기사를 스크랩했다는 게 자랑입니다. 가끔은 일주일치를 날밤새며

스크랩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한 가지 불만이라면 '오탈자'와 그에 준하는 '티'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런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맞춤법이나 글쓰기 공부도 할 겸해서 차근차근 올려보겠습니다.

IT시대, 전자인쇄 시대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통 누락 현상'입니다. 작게는 한 줄 많게는 한 페이지를 통째로 없애버리는 이 무서운 병폐는 '육필의 시대'를 추억하게 만듭니다.


사례#1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협상을 할 것도 주문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으면 미국도 안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으면 미국도 이에 합당하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편집의 오류로 보이는 이 글쓰기는 행간의 한 문장이 통째로 누락되면서 큰 따옴표의 완결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맥 자체도 모호하게 되어 버린 사례이다.

'05. 12.9 종합 4면 : DJ 노벨상수상 5주년 기념식 특강

사례#2
디지털TV 수요가 폭발적으로 주문량의 50%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 폭발적으로 늘어 주문량의 50%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 중간에 '늘어'와 같은 술어를 누락시켰다.
'06.1.2 경제14면, 'LCD 생산 '분초를 다툰다''

사례#3
'대연합'의 축이
되겠다는 밝힌 바 있다→ 축이 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중간에 단어를 누락한 경우이다. 단어뿐만 아니라 줄이나, 단락 자체를 누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06.2.4 종합5면, '표심잡기' 노선ㆍ정책대결 불붙었다


[블로그 스크랩 업데이트 정보]

06년 3월 11일
<금융, 부동산>을 신설했습니다.
<역사> 외에 <과거사>를 추가했습니다.
<정보화사회>를 신설했습니다.
<생각해봅시다>를 신설했습니다

세상사가 복잡해질수록 제 블로그는 더욱 구체화됩니다



06년 3월 17일
경향신문 스크랩의 의도와 기사의 가치, 스크랩퍼의 관점을 좀더 분명히 나타내기 위해, 스크랩 기사 중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을 굵은 글씨로 표시했습니다. 스크랩에 시간은 더 들겠지만, 일종의 '표지'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한주간의 입시소식'를 시작합니다. 한 주간의 교육기사를 도우미가 압축적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스캐너를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신문과는 다르게 인터넷 신문은 중요한 표나 그림을 빼먹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자료들은 스캔으로 해서 파일로 첨부하겠습니다.

점점 변화하는 승주나무의 경향신문 스크랩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06년 3월 22일
칼럼과 사설의 분류를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각 분야별로 넣었습니다. 예컨대 국제 정세 관련 칼럼은 '국제'카테고리와 '칼럼' 카테고리에 함께 넣었습니다. 나중에 칼럼을 따로 정리하기 위함이며, 칼럼의 성격을 좀더 명백히 하기 위함입니다.

저의 경향 블로그는 계속 진화합니다. 좋은 의견 있으면 적극적인 제보 바랍니다.

인삿말이 자꾸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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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6-04-0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ㅋㅋ
일인미디어 시대를 열어야지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문 스크랩을 하다가, 나는 외국인이 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서강대 교수로 있는 스티븐 리비어라는 사람이 고정적으로 쓰는 칼럼이다.

며칠 후면 4월3일이 된다. 지금껏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노근리 학살보다 10배나 규모가 큰 제주 4·3사태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당신도 영웅이 되고 싶으면 4·3연구소(www.jeju43.org)의 회원이 되시라. 필자는 지난 2월 회원이 됐다.

'06.4.1 경향신문, '한국에 살아보니' 일부 인용

나는 그날 이곳이 '제주'가 아님을 알았다.

4월이면 제주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4.3주간이라 하여, 대학에서는 마당극, 시화전 등 젊은이들의 발표회가,

이곳저곳에서는 세미나나 각종 문화행사가 꽃을 이룬다.

제주는 이국적인 정취로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변하는 날씨와 역동적인 구름, 그 구름을 끌고다니는 바람은 제주의 특징이다. 하지만, 볼 만한 곳, 훤히 뚫린 거의 모든 곳에 피묻은 학살터라는 사실을 아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천혜의 제주 자연은 매우 역설적이다. 

거기다 제의(祭儀)는 참으로 독특하다.

제주는 유난히 한날 한시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

어린애들은 얻어먹을 것이 많아서 참 즐거워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묘석은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제주말로는 '백 하르방의 한 손지 묘'라고 한다.

4·3이 다소 진정되어 갈 무렵인 1950년 한국전쟁(6·25)이 발발하자,
1947년 3·1시위 사건과 4·3을 거치면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졌습니다. 즉 요시찰 인물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한 검거령이었다 하죠.
동으로는 서귀면에서 서로는 애월면에 이르기까지
7개 면에서 모두 130여 명이 검거되었습니다.
무고한 이분들은 당시 대정면 상모리에 위치한 절간고구마 보관창고에 수용되었다가 1950. 8. 20일(음 7. 7)에 알오름에서 모두 처형되었다 합니다.
그후 7년 동안 삼엄한 경비 속에 가족들은 아예 접근을 할 수 없었다 합니다. 
백조일손지묘는,1957년, 처형된 뒤 7년 동안 방치되었기에 누구의 시신인지 알아볼 수 없었던 유족들이 뜻을 합하여 유골을 거두고 묘지를 구입하여 한 곳에 시신들을 모신 곳입니다.
즉, '백 분의 할아버지 밑에 한 자손'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들을 한 곳에 모신 3년 뒤, 유족들이 '百祖一孫之墓'라는 비석을 세우고 그 후면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으나, 그 비석마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정부에 의해 두 동강나고 땅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helper1021?Redirect=Log&logNo=10000351931

우리 외할아버지는 한학에 정통한 학자라고 한다. 4.3의 어느 날 이슬처럼 속세와 헤어지신 후, 할머니는 밤마다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책자를 태우느라 밤을 지새셨다고 한다. 끝도 없이 나오는 할아버지의 유품들이 남아 있는 것조차 남은 사람에겐 '생명의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점집에 가서 나의 사주를 본 모양인데, 점쟁이 왈 "할아버지가 이분(나)께 가진 것을 물려주려고 마음을 먹으신 듯합니다." 암튼 할아버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전수해주세요.

난세에는 가장 많은 학살이 자행된다. 별볼일 없는 사람이 미군정에 잘 붙어 그 마을의 살생부를 쥐게 되는 모습은 당시 제주 사회에서느 매우 일반적이다. 천석꾼 만석꾼의 놈팽이 아들놈으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다가 인민정부가 들어서자 '씩씩거리며' 남하한 서북청년의 건달들은 마치 자기들을 쫓아낸 '니북 인민괴뢰정부'에게 맞은 것을 열 배 백 배로 돌려줬다.

강간하고, 음부를 난행하고, 젖먹이를 죽창으로
 꿰어 죽이고 하는 모습을 남편은 낱낱이 지켜봐야했다. 끝으로 거기다 시체 하나(남편)를 더했다.

정부가 4.3을 밝히는 것은 스스로의 정통성에 의문을 다는 형국이기 때문에 5.18의 경우와 동일하게 다룰 수 없다.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 당시의 제주는 광복 이후 혼란의 연속이었다. 대다수의 실업난, 생필품의 절대부족, 콜레라 창궐, 극심한 흉년,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경찰의 재임용, 공무원의 모리배 행태 등으로 제주 사회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다. 삼일절 발포 사건 이후 이에 항의한 '3.10총파업'은 관공서와 민간 기업 등 제주 전체의 95%가 넘는 직장이 참여한, 한국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총파업이었다. 선거판에서 '제주'를 '방향침'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해방 후의 좌우대립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그 중에서도 남로당 제주도당은 강성한 편이었다. 미군정이 조사을 제주에 파견해 분석한 결과 총파업의 결정적 원인은 '경찰 발포'와 '남로당의 선동'이로 결론이 났다. 미군정은 당연히 '남로당의 선동'을 부각시켜 제주도 자체를 '반공의 사각지대'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4.3 무장봉기가 단행된다.

뿐만 아니라 미군정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성사시키려 한 '5.10 남한 단독선거'를 끝내 성사시키지 못한 지역은 '제주'뿐이었다. 이때부터 미군정의 악랄하고 대대적인 진압이 시작된다. 그러면서도 6월 23일 재선거를 실시하려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만다.
"제주도를 완전 섬멸시켜도 무방하다"는 이승만의 발언은 이 즈음 나온다.

제주도민은 '낮에는 군경에게, 밤에는 폭도에게' 시달리다 살 길을 찾아 산으로 산으로 향한다. 진압군은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들에 일제히 소개령을 발령하여 해안으로 이주시키고,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 주민들은 게릴라부대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한다.(미군 정보보고서)

그 중에는 기막힌 일도 많았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해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을 자행하기도 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보도연맹 사건은 전국적으로 자행된 가장 커다란 규모의 학살 사건인데, 제주 4.3 관련자들은 '즉결처분'되었다. 다른 곳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제주도민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예비검속'이란 말이다. 이는 특히 '심증'만으로도 온가족을 몰살시킬 수 있는 행태로서, 이 조치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달렸다.

그후로도 제주도민의 입을 수십 년 동안 천금처럼 닫아두었던 것은 '연좌제 緣坐制이다. 4.3관련자나 관련자의 가족, 그리고 조금이라도 관련자라고 의심이 가는 사람이면 공무원은 물론 일반 회사에도 입사가 불허되었으며, 항상 감시를 받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90년대 초중반 때의 일이다. 어머니께 4.3에 관해 이야기를 들으려 했으나, 어머니는 혈색이 바뀌면서 아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학술조사를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4.3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술' 때문이었다. 술로 회유를 해서 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었다. 맨 정신으로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가혹한 기억인 셈이다.

내 이모는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소근소근'했다. 주위에 들을 사람이 없었음에도 매번 그렇게 했던 것은 4.3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 '육지'라는 것이 있다. 물론 섬사람의 근성이 뭍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답답하다.

4.3을 본격적으로 알린 분은 소설가 현기영 씨다. 현기영 씨는 '순이삼촌' 때문에 정보부에 단골로 끌려다니며 모진 고초를 당했지만 덕분에 우리는 4.3의 참상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현기영 씨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신의 작품을 영화화해서 함께 작업할 때의 일이란다. 새벽녘에 발작을 일으켜 '순이삼촌'을 부르며 울부짖었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참석한 세미나에서는 '4.3을 쓰기 위해서는 제주를 떠나야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제주 안에서는 도저히 4.3을 객관적으로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일리가 있는 것 같다.

4.3은 보다 예술적으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4.3은 제주 출신의 예비 작가들의 꿈이다. 항상 쫓아다니는 악몽이다. 가혹한 기억이다.
4월 3일을 앞두고 제주에서는 온갖 행사가 펼쳐진다는 데 먼 '육지'에 와서 나는 몹시 부끄럽다. 항상 그날만 오면 나는 몹시 부끄럽다. 아마 오랫동안 부끄러워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외국인 칼럼리스트의 발언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부끄러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과거를 잊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향한 이 한마디도 나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는 일본의 뒤를, 아니 일본과 나란히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일본의 역사망각증과 독도영유권 주장 등 위험한 우경화 경향, 그리고 전후 일본사회의 특징인 물질주의와 보수주의는 모두 과거청산의 결여와 연관되어 있다.
- 이안 부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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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4-0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씨 조선의 후예라고 떠벌이던 이승만이가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승주나무 2006-04-0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만 기념관 건립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는 ㅠㅠ
 
 전출처 : 로쟈 > 우리말을 지키는 소금

어제(4월 1일) 동아일보 '초대석'에 '우리글 지킴이'로 잘 알려진(나는 처음 알았지만!) 이수열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장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사정을 따져보니 지난 2004년에 한글학회로부터 '우리글 지킴이'로 선정되셨을 때 내가 국내에 없었다(핑계 없는 무지도 없는 법이다). '한글날' 시즌은 아니지만, 그리고 꼬장꼬장한(!)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분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서 기사를 여기에 옮겨놓고 군말들도 덧붙인다. 작성자는 허승호 기자이다.

 

 

 

 

-기자가 선생을 만난 것은 이번이 5번째다. 처음엔 그의 저서 <우리말 바로 쓰기>를 교재로 본인에게서 직접 강의를 들었다. 기자가 쓴 칼럼을 ‘빨간 사인펜’으로 ‘세게’ 교정을 본 후 우편으로 보내 주었다. 세 번이나 그랬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것이 선생과의 5번째 만남이다. 이수열(78)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장. 그는 매일 아침 신문 칼럼 10∼20개를 백지에 오려붙여 잘못된 표현을 빨간 사인펜으로 고친 후 필자에게 우편으로 보내 준다. 연간 5000여 건이나 된다. 그래서 칼럼을 자주 쓰는 교수들은 대개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왜 그런 일을 하는 걸까.

-“칼럼은 교수가 많이 쓰잖아.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분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쓰면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별로 나아지질 않아.” 선생의 불만은 신문 칼럼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부터 잘못됐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1조), ‘모든 국민은 ∼할 권리를 가진다’(10조)는 영어 번역 투야. ‘국민에게서 나온다’, ‘∼할 권리가 있다’로 고쳐야 해.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이나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60조) 같은 표현은 일본어를 흉내 낸 기형 문장이고.” 그의 불만은 이어졌다. “헌법은 나라가 국민에게 한 최고의 약속이야. 그런데 일본어 영어 중국어식 표현으로 아주 일그러진 모습이 됐어.”

-그는 헌법의 악문(惡文)을 바로잡는 책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을 펴냈다. 국어교과서에 있는 잘못된 표현을 잡은 <우리글 갈고 닦기-국어교과서 다시 써야 한다>는 책도 썼다. 헌법은 요지부동이지만 선생 덕분에 교과서는 많이 바뀌었다.

 

 

 

 

(*)헌법 전문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고종석도 자신의 칼럼에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우리의 근엄한 헌법 전문을 이렇게 돼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1987년 10월29일)" 

이에 대한 고종석의 코멘트: "310자 99어절을 한 문장에 구겨 넣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조악한 문장의 표본으로 작문 교과서에 수록할 만하다. 그 문장은 덮씌워지고 뒤틀리며 꾸역꾸역 이어지는 성분들로 숨차다. 역사적 선언문이나 헌법의 전문이 한 문장으로 이뤄진 예가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서술어가 문장 끝머리에 오고 관계대명사가 없는 한국어는 숨찰 정도로 긴 문장을 만들기에 적절치 못한 언어다." 이런 문장들을 읽어나갈 자신이 없어서 나는 '고시'쪽은 지레 접어두었었다! 나는 이런 역경을 딛고 어떻게든 논리/조리에 맞게 법률 문서들을 작성하는(작성한다고 하는) 법조인들의 능력에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지만 선생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표현을 몇 개 더 예시해 보자.

·의사들이 연극 공연을 갖는다→ ∼연극 공연을 한다

·임명동의안을 가결시켰습니다→ ∼가결했습니다

·전통이 뒤집어졌다→ ∼뒤집혔다

·정답은 3번이 되겠습니다→ ∼3번입니다

·배고팠던 시절이 있었다→배고픈 때가∼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졌으나→고성이 오갔으나

-표현에 대한 그의 문제 제기는 표기법에 그치지 않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당과 이적을 일삼는 철새 정치인들 있지. 이를 언론에서 합종연횡(合從連衡)이라고 부르는데 말도 안 돼. 전국시대에 강국 진(秦)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진의 동쪽에 세로로 늘어선 한(韓) 위(魏) 조(趙) 제(齊) 연(燕) 초(楚) 6국이 동맹한 것을 합종이라 하고, 진이 이들 소국과 개별 연대하면서 합종을 깨뜨린 것을 연횡이라 했어. 고도의 외교전략이지. 철새 정객의 움직임은 ‘오합지졸의 이합집산’이라 하면 딱 맞아.”

 

 

 

 

-경기 파주시에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난 이 씨는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다. 하지만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해 모교인 봉일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고교에서도 국어를 가르쳤다. 외솔 최현배의 <우리말본> 등 문법서로 독학을 하던 그는 1993년 정년퇴직하자 곧 <우리말 바로 쓰기>를 펴냈다. 이 책은 곧 12쇄가 나온다. 이 책이 눈에 띄어 그는 동아일보에 초청돼 1주일간 기자들에게 ‘바른 글쓰기’ 강의를 했다(기자가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이 이때다). 그리고 10년 이상 모 문화센터에서 주3회 ‘한글 바로 쓰기’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한글학회는 그를 ‘2004년 우리글 지킴이’로 선정했다.

-선생의 지적에 대개 ‘감사’의 반응이 오지만 불평도 없지 않다. 어법을 지나치게 고집하기 때문. 예를 들어 선생은 ‘그’나 ‘그녀’라는 말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 영어(he, she)의 일본어 번역을 다시 억지 번역한 거라는 설명이다. 대안은 뭘까. “그분, 당신, 걔, 소녀 등 많잖아. 사나이, 여인, 부인, 여사, 노파, 나그네 등도 3인칭 대명사로 쓰는 데 손색이 없어.” 이 기사를 쓰면서 기자는 선생의 권고를 따르려 애썼지만 이 대목만큼은 쉽지 않았다(*나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번역어이지만, '그'의 대응어로서 여타의 3인칭 대명사들이 갖고 있지 않은 의미론적 '중립성'을 갖고 있어서이다. 물론 '그'라고 통칭할 수는 있지만, 그건 남성중심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생은 심지어 “‘서로가 서로를 위해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 ‘서로’는 부사이므로 격조사를 붙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서로 위해야 한다’로 고쳐야 한다는 것. 그는 격조사를 붙이지 말아야 할 부사로 서로 외에 ‘그대로’ ‘스스로’ ‘모두’를 더 꼽았다. 도발적으로 물어봤다. “아니, 말이란 언중(言衆)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지 고정 불변의 계명이 아니지 않은가?” 어떤 교수도 “‘서로’가 무슨 해병대인가? 그게 한번 부사면 영원히 부사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어법은 함부로 바꾸면 안 돼. 그 교수가 나를 보고 ‘우리말을 지키는 소금’이라고 추어주더군. 근데 이 소금 맛이 너무 짜다는 거야. 아, 소금이야 짜야지. 그걸 많이 쓰거나 적게 쓰는 것은 요리사 맘이지만.”

 

 

 

 

(*)짜게 먹는 게 건강에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소금 없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글 지킴이'의 역할은 그래서 요긴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기형적인 번역투 문장들이 득세하는 우리 책동네에서는.

06. 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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