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 - 악의 역사 1,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인격화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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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악'에 주목하는가.

'악'은 음습하고 지저분하고 두려운 존재다. 눈을 부릅뜨고 '악'을 주시한다는 것은 한낮에 '태양'을 주시하는 것만큼이나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나 가까이 하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악을 이렇게 멀리 하는 사이에 '악'은 그 '공포감'을 십분 활용한다.

나의 악에 대한 생각도 뭇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악에 대한 사고관에 전환을 가져온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이 책의 초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저자로 하여금 '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서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세계는 어둡고 음습한 범죄나 추리, 법정이 주를 이룬다. 거기서 드러나는 불안정한 인간의 심리와 여러 가지 악의 유형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몬스터'라는 만화책에서 완전무결한 '악'의 상징인 '한스'의 천사같은 생김새는 나로 하여금 '악'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군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신문읽기를 하면서 우리 사회가 '악'에 얼마나 무방비한지를 절감했다. 이렇게 시작한 블로그 스크랩이 벌써  1년째다. '악학(惡學)'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서 세상의 '악'의 이야기들을 모아 왔는데, 벌써 5페이지를 넘었으니 300건 정도의 '악행'이 쌓인 셈이다. 이 이야기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으나, 다행히 이 책의 저자가 20년에 걸쳐 '악'의 전모를 밝혀놓은 역작을 만나게 되었다.

악의 이데아는 없는가

저자에 의하면 '악'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실존적'이다. 즉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 일부분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유착'에 주의를 하라는 말이다.
플라톤은 "거짓말이 악인 이유는 그 말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말 안에 진실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는 말로 악을 '결여'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선이나 신과 같이 이데아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그 완결성에 흠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총체적 악'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근원이 없는 생명은 없다. 만약에 '악'이 완결성을 상실한 '결여'일 뿐이라면 이토록 사람을 옥죄고 세계에 '치밀한 고통'을 안기는 시스템은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

악마는 하느님의 작품이다?

악마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똘히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악'이 탄생한 목적이 있을까. 그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 존재한다면 그 무게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악은 필연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나는 악이 '설계자의 의도' 또는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 원소'로 보기에 이르렀다.

신의 아들들은 하늘의 판관들이고 주가 거느리는 만신들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이 욕망과 자만심 때문에 죄를 짓는다. 자만심 때문에 죄를 지은 경우에는 하늘에서 내던져졌고, 욕망 때문에 죄를 지은 경우엔 자발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지만, 그 죄의 대가로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지상(계곡 안이나 땅 밑에)에서든 공중에서든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꾀어 죄를 짓게 한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유혹자의 대장이다. 때로 모든 죄는 그들에게 귀속되지만, 야훼는 분명히 그들에게 계속해서 악행을 저지를 권한을 준다. <본문 중에서>

악은 '파괴'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동서양의 '파괴'의 양상을 보면 '완전한 파괴자'와 '완전한 재건자'로 나뉜다. 완전한 파괴자는 그야말로 대상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재건자'는 시바 신과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한 후 그 위에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이 논리를 기독교에 적용시킨다면 '사탄'(악)은 인간을 하느님의 자비로운 품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목동이라 할 수 있다.

사탄이 유다를 선택해 악마의 영을 유다에게 집어넣은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를 택해 자신의 영을 예수에게 보낸다. 이러한 유비 관계는 더욱 가까워진다. 구원이라는 커다란 계획 안에서 신은 항상 예수가 구세주이고 유다가 배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가 수난을 당하기 위해서는 유다의 배반이 필요했으므로 신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의 과정에서 예수뿐만 아니라 유다도 자기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저자에 의하면 '구약 시대'에는 '원죄'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타락'과 '원죄'라는 말은 신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악마'가 신약성서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신의 왕국과 악마의 왕국이 싸움을 벌여 급기야 신의 왕국을 이기게 된다고 설파함으로써 신약성서의 중심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세상의 악을 뿌리칠 메시아를 예견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가졌던 불만은 악을 보면 화들짝 덮어버리려는 예민함이었다. 기독교에서 악은 배제의 대상이지 '연구'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것은 반면에 '음성적인 악'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가 배교(背敎)죄로 기소돼 사형 위기에 처한 압둘 라흐만(41,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교에 유연성이 없을 때 얼마나 많은 병폐가 생기는지 절감하게 된다.

바보야, '약(弱)한 것'이 '악(惡)'한 것이야!

지하세계는 죽음뿐만이 아니라 다산성과도 연관되고, 신화나 제의 안에서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악마는 성과 연관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 마그나 마터, 키벨레, 미트라, 이시스, 피타고라스주의와 연관된 의례들은 진위가 얼마나 의심스럽든지 간에 이후에 이교도와 마녀의 의식에 규범이 될 만한 요소들이 들어 있었다.
............
그리스에서 비록 철학(다이아드)이나 종교(헤카테, 에리니스, 라미아스)로부터 여러 근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성의 원리가 악의 원리로 인정된 적은 없다. 라미아스는 셈족의 릴리트와 쉽게 합쳐져, 밤에 나타나 남자를 유혹하거나 영아를 살해하는 음란하고 흉악한 여성성을 가진 영으로 창조되었다. 이 이미지는 중세에 점차로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자연적인 영역으로 바뀌어, 결국 마녀라는 개념으로 고착되었다. <본문 중에서>

한 과학자는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난소에 비해 생명 탄생에 기여하는 바가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열등감으로 여성에 대한 탄압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과학자는 미래에는 남성 없이 여성만으로도 임신이 가능하여, 남성이 '잉여존재' 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견을 내놓았다. 사실 역사는 '편견'의 역사이다. 특히 권위 있는 자의 편견은 수천 년 동안 철옹성의 지위를 차지한다. '약'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니 '악'이 되어버리는 유행가같은, 장난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미친 듯이 흘러갈수록 '악'은 왜곡된다. 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은 '집단이기주의'로 오독되고, 농업포기정책을 추진하며 미국의 시커먼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여정부는 '구국(救國)의 결단'으로 미화된다.

이제는 언론과 기득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노동투쟁'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지하철 파업이라는 것은 아침 출근을 엉망으로 만들고, 유통 마비로 인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괘씸한 행위일 뿐이다. 프랑스 노동계와 고교생, 대학생이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 26세의 사회 초년생을 위해 투쟁하고 '여론 지원'을 보내는 것을 우리 식으로 보면 '거대 집단이기주의'라고 해야 할까. 

'악'을 잘못 이해한 죄로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은 크다. 특히 악은 조직화가 가능하므로, 공동으로 연계한다면 멀쩡한 개념조차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악의 개념이 혼동된 시대야말로 '악'에 대한 개념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기에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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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벌써 다 보셨군요. 이거 정말 어렵던데. 먼 소린지 모르겠어서 발췌독 하고 있답니다.

승주나무 2006-04-0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가 짜증이 나서 불평을 좀 늘어놓으려고 했죠. 근데, 쓰다 보니 할 말이 많아지더라고요^^;;

류사 2006-04-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제 끝내신 것, 감축드리옵니다. ^^

승주나무 2006-04-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니 류사 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다음 숙제는 이미 제출해 놓았는뎁쇼
ㅋㅋ 2권으로 진군해야죠^^;;

stella.K 2006-04-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류사님이...! 이거 우리끼리 흉도 못 보겠군요.ㅜ.ㅜ
 
데블 - 악의 역사 1,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인격화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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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악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악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악을 정의할 수 없다. 제한적이나마 의사소통을 위해서 자의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은 애매모호한 개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적인 일관성을 갖지도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범주를 통해 정의하기보다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실존적으로 악을 인식해야 한다.-16쪽

지금껏 나는 악을 우리에게 행해진 어떤 것으로 다루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악을 행하기도 한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악이 미치지 않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악을 행하지 않고 살 수 없다.
..............
적어도 악의 문제에 대한 대답의 일부분은 내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도 나는 대개 악을 외부로부터 다가온다고 이해한다. 스스로 악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악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위험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의 악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이다.-21쪽

악마를 이해할 때 심층 심리학적인 입장, 특히 융의 견해가 가장 시사적이다. 융은 심리 발달을 개별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처음에 자신에 대한 혼돈스러고 미분화된 생각만을 갖는다. 그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차로 선과 악의 입장을 분별한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키워가며 악을 억압한다. 이러한 억압과정이 너무 지나칠 경우에 그 삶의 그림자는 괴물처럼 되어 결국 폭발해 그 사람을 압도해버린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세 번째 단계, 즉 조정의 단계가 있는데, 여기서 선과 악이 모두 인지되고 인식의 차원에서 다시 조정된다. -33쪽

①악마는 객관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② 악마는 역사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③ 악마에 대한 역사적 정의는 그 자체로 실존적인 악의 정의와 관련해서 얻어질 수 있다. ④ 악마란 사회 속에서 악으로 이해되는 인격화된 무엇이다. ⑤ 악마라는 개념은 이러한 인격화를 이해하는 전통으로 이루어진다. -53쪽

선과 악처럼 모든 것들이 신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기본 전제다. 그러나 사람들이 신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악이 신에게서 기인하지 않기를 원하는 한, 사람들은 신성 안에 대립되는 힘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립은 점차 구체화되어 짝이 형성된다. 신의 본성은 여전히 악의 원천이지만, 이제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으로(문자 그대로든 비유적으로든) 짝을 이루게 된다. 선한 본성은 하나님과 관계되고, 악한 본성은 신의 적이 된다. 이러한 짝을 '이중체'라고 한다. -68쪽

우주는 단순히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고, 신성과 더불어 고동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신의 권위를 그러내는 이 세상에 악의 원리라는 것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악의 원리는 신성한 계열의 일부로, 살아 있는 우주의 일부로만 존재할 수 있다. 죽음, 질병, 거짓, 사기 등 이 모든 것은 자연적인 질서가 파괴된 상태이며 따라서 악이다. -90쪽

플라톤은 전쟁, 살인, 착취, 거짓말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거짓말이 악인 이유는 그 말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말 안에 진실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악은 선의 결핍으로만 존재한다. 마치 스위스 치즈에 나 있는 구멍들이 치즈의 부족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플라톤은 존재론적으로 악이 없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악이 없다고는 주장하지 않았지만, 창조자에게서 악에 대한 책임은 없어진다고 했다. -186쪽

지하세계는 죽음뿐만이 아니라 다산성과도 연관되고, 신화나 제의 안에서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악마는 성과 연관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 마그나 마터, 키벨레, 미트라, 이시스, 피타고라스주의와 연관된 의례들은 진위가 얼마나 의심스럽든지 간에 이후에 이교도와 마녀의 의식에 규범이 될 만한 요소들이 들어 있었다.
............
그리스에서 비록 철학(다이아드)이나 종교(헤카테, 에리니스, 라미아스)로부터 여러 근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성의 원리가 악의 원리로 인정된 적은 없다. 라미아스는 셈족의 릴리트와 쉽게 합쳐져, 밤에 나타나 남자를 유혹하거나 영아를 살해하는 음란하고 흉악한 여성성을 가진 영으로 창조되었다. 이 이미지는 중세에 점차로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자연적인 영역으로 바뀌어, 결국 마녀라는 개념으로 고착되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기본 전제는 여자는 천부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므로 악의 원리라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 시대에 수준 높고 지능적인 마술은 주로 남자의 역할로 여겨지고, 반면에 쉽고 경험으로 하는 마술은 여자들의 분야로 여겨졌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223쪽

이 종말론적인 신정론이 가지고 있는 중대한 문제점은 프라이데이가 로빈슨 크루소를 당황하게 했던 질문과 같은 것이다. 만일 주께서 악마를 멸망시킬 권능을 가지고 있고 그를 멸망시키고자 했다면, 왜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까? 이 질문은 늘 신학자들을 괴롭혀왔다. 신은 왜 그렇게 엄청난 악을 허락했을까? 신이 다른 영에게 자신의 도움으로 파괴를 허락하고 심지어 권한을 부여했다면, 신은 그 파괴 행위에 대해 책임이 없는가? 신은 궁극적으로 그런 일을 스스로 원하지 않았단 말인가? 신이 져야 할 책임을 무마해보려는 히브리인과 예언서 시대의 유대인이 벌인 노력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었다. 마스테마가 하는 것이면 야훼도 한다. -261쪽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예민하게 악마를 직접적으로 의식했다. 악마는 기독교의 본질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쉽게 내버려질 수 있는 정도의 주변적인 개념은 아니다. 악마는 신약성서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신의 왕국과 악마의 왕국이 싸움을 벌여 급기야 ㅅ힌의 왕국을 이기고 있다고 설파하면서 신약성서의 중심을 차지한다. 악마는 기독교의 신론에서 중요한 대안을 형성하기 때문에 신약성서에서 악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80쪽

악마는 악한 인간들의 왕이기도 하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악마의 부하 또는 아들이라고 불린다. 베드로 자신도 예수를 꾀어 예정된 길에서 십자가의 길로 가도록 동요하게 했을 때, 악마라고 불렸다. 이상하게도 예수는 베드로가 수난을 피하려고 하자 악마라고 불렀다. 이들 두 사도의 공통점은 구원이라는 신성한 계획에 자신들의 개인적인 두려움을 개입시킨 것이다. 유다가 가장 일반적으로 악마와 관련되고, 누가는 유다에게 실제로 사탄이 들어갔다고 말한다. 유다는 너무나 가까운 예수의 상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둘의 관계와 신화에서 너무나 자주 나타나는 이중체들의 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알 수 있다. 사탄이 유다를 선택해 악마의 영을 유다에게 집어넣은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를 택해 자신의 영을 예수에게 보낸다. 이러한 유비 관계는 더욱 가까워진다. 구원이라는 커다란 계획 안에서 신은 항상 예수가 구세주이고 유다가 배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가 수난을 당하기 위해서는 유다의 배반이 필요했으므로 신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의 과정에서 예수뿐만 아니라 유다도 자기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01쪽

악마의 이야기는 잔인하지만, 악의 실존적 공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세계관은 모두 환영에 불과하다.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이반의 아이는 창조물 전체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물 전체와 같다.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어떤 세계관을 가졌든지 간에 그녀의 고통을 과소평가하고, 그러한 고통이 존재하지 않느다고 선언하거나 거기에 정교한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거나, 더 위대한 선이란 관점-그러한 선에 신의 이름이든 아니면 인간의 이름이 부여되든-에서 그 고통을 설명한다면, 그러한 견해는 그녀의 삶과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하고 헛되게 만들 것이다. 악이 현존하고 그 와중에 세상은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었다. "이 우주는 무엇으로 존재하든 창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우주에서 말한다. 내가 당신과 함께 사랑할 것이다"라고.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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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평 가 내 용  및  기 준

지시사항 불이행으로 인한 감점

∙답안길이 미충족

∙필기구 종류 및 색깔 위반

∙응시자의 신원노출

이해․분석력

(20점)

∙주어진 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분석 능력

∙제시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분석(독해) 능력

∙논술문이 논제에 충실한 정도

∙제시문을 적절히 활용한 정도

논증력

(30점)

∙근거 설정 능력

  - 주장에 대한 적절하고 분명한 논거 제시 여부 

  - 주장과 논거의 논리적 타당성

  - 논제에 대한 분명한 견해 표현     

  - 표현 견해가 제시문의 논의에 의거해 적절한 뒷받침

∙구성 조직 능력

  - 전체 논의 전개에 정합성 및 일관성이 유지 

  - 전체 논의 전개에 있어 논리적 비약은 여부

  -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

창의력

(40점)

∙심층적인 논의 전개

  - 본인의 주장이나 논거에 대해 스스로 가능한 반론들의 고려

  - 본인의 논의가 지니는 더 나아간 함축이나 귀결들에 대해 고려

  -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맥락이나 배경 상황에 대한 적절한 고려

  - 묵시적인 가정이나 생략된 전제에 대한 더 나아간 고찰

∙다각적인 논의 전개

  - 발상이나 관전 전환을 시도       

  - 가능한 대안들에 대한 고려

  - 여러 개념들의 종합 

  - 암묵적으로 가정된 전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

∙독창적인 논의 전개

  - 주장이나 논거에 새로움

  - 문제를 통찰함에 있어 특이함  

  - 관점이나 논의 지평에 참신함

표현력

(10점)

∙표현의 적절성

  - 문장표현의 매끄럽고 자연스러움, 적절한 비유 등

  - 단락구성 및 어휘 사용

  - 맞춤법, 원고지 사용법

<논술 채점 항목 기준(서울대)>

주의사항
1.  제시문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과 표현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익숙한 주제인 기계문명의 폐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제시문은 기계문명의 폐해라는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기계적인 체계의 인위성과 자연성사이에 놓인 인간의 모순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 기계의 발전 과정이나 산업혁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인간을 둘러싼 인위적 체계가 작동하는 양상을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해분석력을 키우려면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고 그 속에서 핵심 어구를 찾아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2.  자신의 주장을 제시함에 있어서 일관적이지 못한 글의 흐름과 논리적 비약은 빈번히 나타나는 문제점이고 무엇보다도 반대 주장과 논증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형식적으로는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논의가 전개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3.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슷한 문장으로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교훈조의 결론으로 끝맺는다. 이는 기존 논술 참고서에 제시된 정형화된 방식에 기초하여 비슷한 예상 문제를 가지고 연습한 결과로 추정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독자적인 사고능력을 표출하기보다는 예상문제에 대한 답안을 암기하는 방법으로 논술에 대비하지 않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통합교과형 논술
1. 개별 교과 지식이 통합되고 교과 영역 간에 전이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
2. 통합교과형의 개념은 교과와 교과의 단순한 통합이 아닌,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학생의 내면에서 길러지는 사고력의 통합을 의미 함. 따라서 통합교과형 논술을 대비하기 위한 별도의 교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개별 교과가 제안하는 여러 학습활동을 자기주도적으로 충실히 수행하는 것 자체가 논술을 준비하는 바람직한 방법임
3. 논술고사에 대한 준비가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준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계
4.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과 토론 위주의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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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06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점수매기기군요 저도 퍼갑니다 직업병^^
 
 전출처 : 하늘바람 > 브레인 스토밍

1941년 오스번(A. Osborn)이 개발한 브레인스토밍은 누구라도 어디서든지
간단히 응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전파 속도가 빨랐다. 브레인스토밍은 혹자에 따르면 발상기법이라기보다는 발상을 하기 쉽게 만드는 사고방법, 다시 말해
'발상법의 발상법'이라고도 불린다.

브레인스토밍의 사고방법, 특히 그 네 가지 법칙은 어떤 발상을 할 때 항상 전체로 머리 속에 넣어두면 좋은 것으로, 즉 일종의 아이디어 생산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법칙은 개인 및 집단 양쪽에 모두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발상의 연금술이라고 부르는 브레인스토밍의 네 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제1법칙-자유자재로 사고한다.
'자유롭게 방만하게 생각하고'라고 다짐해도 실제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메게 마련이지만 발상방법으로 귀중한 자세이다.

2. 제2법칙-비판을 엄금
마음을 비운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천적 법칙이며, 네 가지 법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아이디어의 질과 타당성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맨 마지막에 하는 방법이다.

3. 제3법칙-질보다는 양
한번에 만루 홈런을 치겠다는 것은 무리이다. 긴장을 풀고 아이디어를 낳는 리듬을 탈 것, 사고하는 양이 많아지면 당연히 질은 높아진다.

4. 제4법칙-결합 개선
기존의 정보 및 아이디어를 조합시킨다는 법칙이다.
몇 가지 제안된 아이디어를 크로스로 연결해 그 맛을 잘 음미해본다.
발상이 필요한 모든 경우에 요긴하게 쓰이는 보편적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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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0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예도 좀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매달 쓰는 논술 교재에 브레인 스토밍부분이 들어가는데 쓸때마다 고민입니다.
 

이야기로 된 논술 연재를 오늘 한 편 썼습니다.

신문사와 공동으로 기획한 원고는 8편까지 넘겼지만,

원래 의도했던 저의 원고는 이제야 6편을 완결지었군요.

이야기를 만들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소설가들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번 회에는 드디어 '지성이'가 마음을 들킵니다.

하지만 해원이의 단호함에 상처를 받는 불쌍한 지성이.

그 둘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한 권의 책 분량으로 다 쓰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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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4-0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터지는 거긴 하죠. 홧팅!

승주나무 2006-04-0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정말 머리 쥐어터지네요^^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