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산문전집, 민음사
갑자기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학문자유의 원칙'이라는 산문이 생각난다. 학문의 자유는 지나쳐도 모자라다. 학문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라면 사회적 역량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정식 논문으로 제출한 연구는 '학문' 안에 포함되고, 인터넷이나 대중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은 '학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궁색하기 그지 없다. 그러면 네티즌이나 나 같은 일반인의 생각은 그저 그런 가십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자존심 상한다. 기분나빠서 학위를 따든가 해야지 원. 공자도 속수 이상 가지고 오면 학문을 전수했듯이, 동양은 서양에 비해 비교적 일찍이 정보의 독점 시대를 극복해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와 같은 판결에 이와 같은 근거를 들으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슬프다. 간만에 글도 남기는데...
학문의 자유가 조금이라도 없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하며, 학문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학문이 전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李政權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문제이다.
- '김수영 산문전집' 학문자유의 원칙
강정구 유죄…실정법에 묶인 ‘정신의 자유’
출처 : 경향신문
입력시간: 2006년 05월 26일 18:14
강정구 교수에 대한 법원 판결은 ‘현실과 흐름’을 절묘하게 배분한 결과로 분석된다. 국가보안법에 따른 법적 책임은 명백히 물으면서, 형량에 있어서는 ‘국보법상 찬양·고무 조항은 손봐야 한다’는 사회적 합일을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변화된 남북관계와 우리 사회의 성숙도도 적극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이같은 판단 근거는 4가지 쟁점별 분석에 그대로 녹아 있다.
 |
|
- “통일전쟁 발언은 北과 흡사” -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보는 것은 북한주장과 흡사하다.’
강교수는 지난해 7월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전쟁은 한달 내에 끝났을 것이고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런 견해는 ‘6·25전쟁을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항거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보는 북한의 주장과 아주 유사한 것으로, 북한을 찬양·고무한 행위라고 판단해 국보법을 적용했다. 법원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참전이 없었으면 북한에 의한 통일이 이뤄져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볼 때 강교수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영속성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 “만경대 방명록 北 동조 의사” -
‘만경대 방명록 글은 북한 동조 의사로 봐야 한다.’
2001년 8월 평양을 방문한 강교수는 만경대(김일성 생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평소의 소신인 자주적인 통일을 이루자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만경대와 김일성, 김일성과 주체사상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고려할 때 방명록 내용은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김일성을 찬양한 것이라고 판단, 강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평소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강교수가 당시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만경대까지 찾은 것은 북한을 동조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강교수는 방북 직전인 그해 7월 경북대에서 “주체사상이 통일성취시대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연을 한 바 있다.
- “국가존립위협 선동은 불용” -
‘국가존립위협하는 주장은 학문의 자유에 포함될 수 없다.’
강교수측은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강조하며, 국보법이 학문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가능성이 많다는 논지를 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또한 강교수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미국을 ‘전쟁광’ ‘원수’로 표현하고, 북한을 ‘민족 정통성’이라고 본 그의 주장은 학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에는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강교수가 주장 내용을 논문보다는 대중잡지, 인터넷 매체, 강연 등을 통해 주로 발표한 점도 재판부가 학문의 자유를 적극 고려해 주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로 보인다.
- “극단적 주장도 사회서 포용” -
‘우리 사회 사상검증 능력 높다.’
법원이 강교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도 실형을 내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일 결심에서 강교수 주장에 대한 사회적 위험성을 들어 실형(징역 4년 구형)을 내려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강교수 주장으로 인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평가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건강함과 자신감을 가졌다”고 판단, 양형에 반영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확연한 우위를 보여, 이제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일지라도 사회내에서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표현의 폭이 넓어진 것도 강교수에 대한 불구속 재판과 집행유예를 이끈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재판부는 아울러 적용법률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개폐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 또한 실형선고를 하지 않은 요소 중 하나로 꼽았다.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기사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