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네가 읽은 건 장자가 아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도발적인' 것은 뜻밖에도 가장 오래된 고전 <장자>의 재번역본이다. 한겨레의 기사 타이틀은 아예 "왜곡·오역의 ‘장자’는 불태워라"인데, 그간에 나온 <장자>의 번역들이 왜곡과 오역으로 도배돼 있으니 다 불태워 마땅하다는 것. 역자인 기세춘 선생의 일갈을 옮기면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장자는 장자가 아니다.” 나도 몇 권의 번역서를 갖고 있는지라(비록 지금은 다 박스에 들어가 있지만),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동양 고전인지라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내가 처음 접한 건 허세욱 선생이 옮긴 범우문고판 <장자>였다), '네가 읽은 건 장자가 아니다!'란 소리니까 더 없이 도발적인/충격적인 발언임에 틀림없다. 소위 '전문가들'의 신뢰할 만한 리뷰들을 읽어봐야 상황판단이 가능할 듯싶지만, 일단은 역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책은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아마도 내일자 신문에 게재되는 모양이다.

경향신문(07. 01. 27) ‘장자’ 재번역한 기세춘씨

“노·장자의 기본 ‘캐릭터’가 완전 변질됐습니다. 저항성이 사라지고 지배 담론으로 윤색됐어요. 그 본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고증학적 작업을 거친 재번역이 필요합니다.”

기존 학계에 기세춘씨(72)는 ‘불편한 존재’다. “시중의 동양고전 번역서를 모두 수거해 불살라 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동양고전 번역서가 왜곡과 변질, 오역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게 기씨의 주장. 그가 “칠십 노인의 망령기와 당돌함으로 만용을 부려” 나선 재번역의 첫 결실로 ‘장자’(바이북스)를 내놓은 건 이때문이다.



“학계에선 아무도 경종을 울리지 않습니다. 저야 강단학계의 학맥이나 스승이 없어 자유로우니까 욕 좀 하겠다는 겁니다.” 기씨에 따르면 노장사상은 도교가 일어나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으면서 신비학으로 왜곡됐고, 정치권력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는 은둔과 청담의 사상으로 변질됐다. 왜곡의 뿌리는 2~3세기 중국 위진(魏晉)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조에 의해 등용된 왕필이 당시 반란의 중심이었던 도교 세력의 민중성을 거세하기 위해 ‘노자 도덕경’과 ‘장자’에 나타난 반체제성과 저항성을 제거해 체제순응적이고 권력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기씨는 “국내에 출간된 노장 주해 및 해설서들은 왕필의 주해를 근간으로 삼은 탓에 이러한 왜곡을 답습한 것들”이라고 비판했다.

번역자의 오역도 ‘장자’의 본 모습을 훼손했다. 시대와 문화, 언어 등의 차이로 인한 변질과 오해 가능성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번역했다는 것이다. 기씨는 “은미하고 철학적인 담론이 치졸한 처세훈이 되고, 서사적인 우화는 그 핵심을 놓치고 초점을 그르쳐 다른 길로 빠져버린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그가 ‘장자’의 오역으로 꼽는 예를 살펴보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죽일 자를 풀어주는 것이오(綽乎其殺之)’로 해석해야 할 것을 ‘여유있게 죄인을 죽이는 것이다’로, ‘잘못을 행해도 형벌로 다그치지 말라(爲惡無近刑)’로 해석되는 부분을 ‘어쩌다 악한 일을 하더라도 형벌에 저촉되지 않게 하라’로 옮긴 게 대표적. “권력 저항적이고 무정부주의인 노장 사상에서 어떻게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분노 섞인 한탄이다.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혁명적 담론인 ‘동심론(童心論)’도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올 김용옥 교수가 동심론을 기공술(氣功術)로 해석해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꾸어 젊음을 되찾자고 한 것은 “한심하다”고까지 말했다.

기씨는 “중국 고전의 경우 수천년 묵은 고문자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뜻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전은 내용이 포괄적이므로 신학,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등 광범위한 소양이 요구된다”며 “자기 깊이가 그걸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밥술이라도 먹게 됐으니까 적어도 동·서양 고전은 우리가 제대로 번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문은 비판정신이 생명입니다. 그냥 그대로 답습하려면 왜 합니까.”(김진우 기자)

07. 01. 26.

 

 

 

 

P.S. 참고로, 교수신문에 연재됐던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서는 안동림과 오강남 역주의 <장자>가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표플 얻었지만 반론도 만만찮은 것으로 소개돼 있다. 지난 1963년 최초의 완역본이 출간된 이래 60여 종 이상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자와 종교학자의 번역이 가장 '읽힐 만한' 번역으로 추천되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거기에 '재야' 고전학자의 새 번역본이 보태진 셈이다. '정역본'으로 공인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장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하여 전문가의 조언을 같이 옮겨둔다.

교수신문(05. 07. 04) 장자,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장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고전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해석의 다양성은 모든 고전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자’의 경우 이 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따라서 ‘장자’를 펼칠 때는 먼저 어떤 시각에서 읽을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각박한 현실로부터 삶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번득이는 지혜로 가득 찬 우화집으로 읽힐 수도 있고, 특유의 도가적 상상력으로 포장된 신화적인 사유의 보고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또 그런 주제들을 탁월한 레토릭으로 버무려낸 한 편의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형형색색의 얼굴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들어 있는 문제의식들의 면면을 감안한다면 ‘장자’의 본령은 역시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자’의 뼈대를 이루는 사유들이 조형된 시기가 중국철학의 황금기인 ‘戰國’ 시대라는 점도 이런 판단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므로 ‘장자’에 대한 제대로 된 독법은 그것을 한 권의 철학서로 읽는 것이다.

‘장자’를 철학서로 읽고자 할 때 그 종잡을 수 없는 사유의 늪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한 선이해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첫째, ‘장자’에서 구사되는 언어적 표현들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통상 ‘장자’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구사 방식은 크게 ‘우언(寓言)’과 ‘중언(重言)’과 ‘치언(癡言)’, 세 가지로 나뉜다고들 말한다. ‘우언’은 말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른 말 속에 은폐시켜 전달하는 방식이고, ‘중언’은 사회적으로 그 권위가 이미 확립된 사람의 입을 빌리는 이중의 방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이며, ‘치언’은 마치 내용물이 일정 기준 이상 차오르면 저절로 기울어져 쏟아지도록 고안된 술잔처럼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고착되는 것을 시종일관 거부하는 표현법이다. 이와 같은 언어구사 방식은 언어의 본성에 대한 특유의 통찰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이런 까닭에 ‘장자’를 읽을 때는 언제나 이른바 ‘행간’을 읽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장자’는 연대기를 달리하는 복수(複數)의 저자들이 만들어낸 집단 저작물이라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현재까지 가장 일반화된 견해에 따르면, ‘장자’에는 적어도 너댓 가지의 사상적 성향들이 혼재되어 있다. 장자 본인의 사상에서부터 그를 비교적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자후학들의 사상, 한비자류의 법가적인 경향성이 강한 사유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아나키즘적 색채가 농후한 사유 그리고 이런 정치적인 관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탈속적인 개인주의적인 성향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장자’를 읽을 때는 이런 혼재된 생각의 갈래를 개략적으로라도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장자’는 고작해야 잡다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끌어 모아 놓은 단편들의 모음집에 지나지 않게 된다.

셋째, ‘장자’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의 성격을 간파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장자’에 담겨 있는 사유의 폭과 깊이는 ‘전국’이라는 시대가 제기한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나름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고뇌하고 소화해낸 결과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중국의 전국시대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함께 이후의 동서양 철학사에 등장하는 모든 철학적 주제들의 원형이 제시된 시기이다. ‘장자’는 바로 이와 같은 지적 분위기의 중심을 관통하며 형성된 고전이다. 장자 본인의 사상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 내편에서 다뤄지고 있는 문제만 보더라도, ‘자연’과 ‘인간’을 비롯해 ‘주체’, ‘타자’, ‘언어’, ‘소통’, ‘실재’, ‘몸’ 등 그야말로 현대 철학에서 거론되는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를 정도로 다양하다. ‘장자’는 이런 주제들이 특유의 탈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심미적 세계관 속으로 수렴된 결과다. 이점이 또한 현대의 포스트모던적인 지적 상황에서 ‘장자’가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자’를 읽을 때는 이런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먼저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장자’를 읽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얽히며 구축해내는 철학적 사유의 정수와 대면하는 작업이다. 몇 번의 두레박질로 모두 길어 올리기에는 그 사유의 깊이가 너무 깊은 책, 그것이 ‘장자’이기 때문이다.(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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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대한 나의 입장

우선 두 약자의 입장에서 다가가려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단서는 스피노자의 금언에서부터 찾고자 합니다. 두 약자라 함은 악플에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과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자들이 그 하나이며, 악플러가 그 둘입니다. 악플러는 '인간말종'이나 '비정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입장입니다. 악플러들은 경직되고 폐쇄된 사회구조 안에서 상처 입은 피해자라는 관점을 덧붙여 제안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약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피노자의 금언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감정은 보통 사람이 좀처럼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사람도 죽일 수 있고, 스스로 죽이고도 힘이 남는다. 보통 사람은 감정에 예속되기 마련이다.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방법은 기존 감정보다 더 큰 감정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신의 영원한 사랑의 감정 등 고귀한 감정적 가치를 제외하고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감정을 진정 이해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주지 못한다." 제가 약간 윤색했습니다. 여기서 '감정' 대신 '악플'이라는 말을 넣어도 의미가 통하리라 생각합니다.


① 악성 댓글은 악플러와 악플 피해자들의 폐쇄성에 기인합니다.

악플러와 악플 피해자가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맞아야 이에 대한 피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악플에 대한 교육이나 이해가 충분하다면 악플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시킬 수 있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악플에 피해를 입어 상처를 받거나 자살하는 피해자들은 대체로 마음이 어리거나 악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우울증과 폐쇄적 정서를 가지고 있어서 악플 앞에 등불과 같습니다. 때문에 악플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공유되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악플에 대해 너무나 한심할 정도로 무방비하며 앞으로 악플러는 물론 악플의 피해자가 양산되어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약자로 규정된 악플의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를 위한 매뉴얼이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며, 이를 습득한 네티즌이 악플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는 길이 대안으로 여겨집니다.


② 악플이라는 용어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악성 댓글을 규제하는 사고에는 악플러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사고가 내재돼 있습니다. 악플러 역시 악플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내성적이고 폐쇄적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악플 문제는 성폭행이나 학교폭력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적으로 축적해온 폐쇄성과 경직성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악플러의 성향이 여러 가지이지만, 범죄자로만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악플러를 사회의 잠재적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또한 필요합니다. 악플에 대한 규제는 악플러의 내적 피해의식을 보듬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반발심만 유발할 뿐입니다. 
악플이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시 대통령이 몇몇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이 일방적인 표현이며 우리 사회가 편향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나는 악플이라는 용어 대신 제목에 단 것처럼 '벽플'(가칭)이라는 용어를 제안합니다.
벽플의 癖은 도벽 등과 같이 성벽 또는 안 좋은 버릇을 의미합니다. 자원의 해설에 의하면 "'벽'은 옆으로 비키다의 뜻. 몸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병의 뜻으로, 배앓이 등의 병의 뜻을 나타내었으나, 파생하여 '버릇'의 뜻도 나타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질환의 일종이기도 하면서, 안 좋은 버릇의 의미로 파생된 것은 악플러의 성향을 잘 설명해 줍니다. 즉 사회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생기는 피해의식적 행위이자, 자기도착적 배설 행위라는 의미와 동시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풀 길 없는 '상처'에 대한 '살풀이'의 기형적 개념도 가지고 있습니다. 벽병(癖病)은 '병통'을 뜻하며, 벽성(癖性)은 '편벽된 성질, 버릇'을 뜻합니다.(이상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참조') '-플'은 악플과 같이 reply의 뜻입니다. 이 용어가 악플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악플이 가지고 있는 일방적인 의미에 균형을 줄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악플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내용과 관계 없이 '언어'가 주는 '무지'의 자국이 고통스럽습니다.


③ 덮어놓고 규제와 단속을 운운하는 것은 사유하기를 포기한 행위입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한 '땜빵주의'는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구조적이고 역사 깊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자팔찌 역시 '교화'가 배제된 정책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폭행을 얼마나 차단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나 학교의 경찰력 강화 등의 방법 역시 '학생'을 죄인취급하는 무지의 발상에 다름아닙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잠재적 범죄자이며 잠재적 범죄의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성원들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영철 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지하철에서 아주머니를 밀어서 죽음에 빠뜨리게 했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끝모를 테러공포' 뉴스를 접하며 충격에 빠지지만 그다지 충격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감각이 왠만한 사건에는 콧방귀 하나 뀌지 않을 정도로 무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속깊이 곪은 상처들이 곳곳에서 터지는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백두대낮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미국의 총기난사와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나도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단념하게 되겠죠.


④ 벽플(악플)은 '해소'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악플은 정신병, 금지하면 금단증세"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원리는 간단합니다. 악플러가 일상에서 받은 억압과 상처를 악플이라는 기형적인 방법으로 풀고,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킬 때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희한한 구조입니다. 하지만 악플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억압을 해소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지속되거나 다른 형태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악플'은 필요악적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악'으로만 봉합한다면 무책임한 일입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입니다. 담배를 피기도 하고, 야동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등산을 하기도 하고. 사람 안에 내재된 억압은 어떤 형태로든 해소되어야 하는데, 긍정적인 해소를 '해소'라 하고, 부정적인 해소를 '배설'이라 한다면 자신의 정보에 '해소'에 대한 것이 없고, 오직 '배설'만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볼떼르는 "사람은 자신에게 옳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분개한다"고 하였고, 파스칼은 "그에게 틀렸다고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화를 내지만, 그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전제하고 다만 다양한 관점이 있는데 한정된 관점에서만 보았음을 이야기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해주면 그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악플러에게도 이른바 '배설'에서 '해소'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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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토론을 보면서 생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괜히 흥분해서 글을 남기고 시청자 의견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MBC 시청자게시판 담당자 왈 "생방송 아니며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아, 네~~

'면역'에 관한 이야기가 있던데, 참 한심하다. 악플에 대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최소한 악플이 학교폭력이나 성폭력만큼의 역사와 앙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규제나 단속과 같은 전근대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성찰 정도가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이 사례에 대한 나의 주장


1. 악성 댓글은 악플러와 악플 피해자들의 폐쇄성에 기인한다. 
☞ 악플러와 악플 피해자가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맞아야 이에 대한 피해가 생긴다. 만약 악플에 대한 교육이나 이해가 충분하다면 악플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시킬 수 있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가지 않을 수 있다. 악플에 피해를 입어 상처를 받거나 자살하는 피해자들은 대체로 마음이 어리거나 악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우울증과 폐쇄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악플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공유되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2. 악성 댓글을 규제하는 사고에는 악플러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사고가 내재돼 있다. 

☞ 악플러 역시 악플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내성적이고 폐쇄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악플 문제는 성폭행이나 학교폭력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적으로 축적해온 폐쇄성과 경직성에 기인한다. 악플러의 성향이 여러 가지이지만, 범죄자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악플러를 사회의 잠재적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또한 필요하다. 악플에 대한 규제는 악플러의 내적 피해의식을 보듬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반발심만 유발할 뿐이다. 
악플이라는 용어 자체도 무제가 있다. 그것은 마치 부시 대통령이 몇몇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것과 동일한 부작용이 생긴다. 용어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3. 악플에 대한 철학자들의 충고

☞ 스피노자는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보다 더 큰 감정으로 극복하거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감정'을 '악플'로 치환해도 의미는 유효하다. 악플과 악플러의 사고구조와 행위패턴 등에 대한 정보가 전반적으로 알려진다면 악플이 더이상 폭력으로 작용하지 않고, 더 이상의 피해는 멈춘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폭력에 대한 내적 발현으로 나타나거나 자기만의 공간에 만족하는 심리적 착시 현상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악플에 피해를 입는 경우는 악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상처를 더 깊이 받는 경우와, 온라인 세계의 경험을 오프라인과 혼동하거나 오프라인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경우이다. 심각한 것은 악플에 대하는 일반인들이다. 이들은 악플에 무방비한 상태이므로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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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2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100분 토론에 장나라가 나왔다는 줄 알았지 뭐야...
녹화방송이었구나. 나도 몰랐네.
악플러...문제이긴 해. 음...

승주나무 2007-01-2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스텔라 누님, 장나라는 여러 가지 공익사업에 불려다녀서 스케쥴 안 난대요~
 

축시로 좀 날렸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취하기보다는 동아리 운영비로 많이 썼지만,

선배들 결혼식만 챙겨도 적잖은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선배들의 수요와 우리들의 수요가 적절히 만난 것이다.

솔직히 나 결혼할 때도 누가 축시 써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 얼마 없는 동아리 동기 중 한 명이 결혼을 한다는데,

남은 동기가 축시를 써달란다. 최근에 썼던 소재도 있고 해서 흔쾌히 허락을 했는데,

이것이 또 시로 쓸 때가 다르다. 시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했으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다른 거는 다 빼고 마음만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음.... 나 욕심쟁이 맞다^^


아내는 내 언어의 집에 산다.


오늘도 내 아담한 집은 아내의 언어로 넘쳐났다.
가족, 친구와 악의없이 떠드는 잡담과
TV를 보며 울고 웃고 떠드는 일상은 죄다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대개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행복하다.

언어는 마술의 방과 같아서
아내와 맞댄 살보다 더 가까이 있는가 하면
아내와 나 사이에 커다란 우주가 끼어들기도 한다.
우주를 건너려면 100일 동안 따뜻한 언어로 녹여야 한다.

귀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언어의 집에는
많은 표정들이 산다.
작은 한숨, 미세한 실망, 불편한 얼굴 속에 떨고 있는
아내의 영혼을 발견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언어를 소비했다면
그저 말없이 아내의 손을 맞잡을 것
그리고 표정으로 사과할 것
아내의 영혼이 화답할 때까지 기다려줄 것
그제서야 "사랑한다"고 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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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모든시간 2007-10-16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들렀다가..올리신 시구절이 가슴에 따스함을 피워주셔서 추천한표던지고 갑니다~^-^
 

제가 온갖 정모를 다 다녀보았지만, 벙개불에 콩 구워먹을 듯한 진정한 정모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모임의 동인은 물론 항간의 사태에 대한 '대책회의' 형식이었지만, (와이프에게 '대책회의'라고 되도 않는 뻥을 쳐댄 승주나무^^;), 다들 항간의 사태와는 전혀 상관 없이 웃고 떠들고 재미나는 분위기였습니다.

정겨운 형님같은 안티테마 님과 주몽처럼 수려하고 얌전하신 아프락사스님, 보이쉬하고 아름다운 아름다운단비님, 미소가 꽂히는 모과양님, 눈이 짙고 '싸움의 기술'에 나오는 여배우를 닮은 데이드리머님(맞나, 스펠 자신 없음) 이렇게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저는 모임을 위해  6시 수업을 4시로 옮기고, 자꾸 느릿느릿하는 녀석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을 자꾸 연출했었더랬죠~

제가 도착하니 3:3 소개팅 포지션이 완성되었습니다. 여성측(?)에서는 단비님, 아니 아름다운단비님이 분위기를 띄우셨고, 남성측(?)에서는 제가 분위기메이커가 되었습니다. 갠적으로 미안한 것은 괜히 '중복리뷰' 이야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든 점입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는 학교교사와 논술강사, 간호사, 대기업 직원, 대학생이었지만(이렇게 적어놓으니 무미건조하고나), 그냥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겨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안티테마 님께 매우 과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1차와 2차를 모두 책임지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책임감'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좌파 선배'로서 인생의 길 또한 적잖이 전수받았습니다. 제가 '아프 후배'를 많이 알키겠습니다^^ 10년 후의 저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나중에 염치 무릅쓰고 수원으로 쳐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좀 능청은 있지만, 얌전하고 숫기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술자리의 재미를 위해서 '라주미힌''(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친구)의 칼라를 조금 발휘해서 온갖 잡담을 늘어놓았더니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은 '노무현'이었습니다. 1. 노무현씨의 독설로 고건씨가 서재를 폐쇄했지만, 노무현씨는 서재를 폐쇄한 것은 고건 자신이 찔리는 게 있어서이며, 청와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건씨가 왜 서재를 폐쇄했는지 따져묻고 싶다, 나도 이 사태의 '피해자'이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2. 노무현씨가 드디어 연임제 개헌안을 '터뜨렸습니다' 다들 개헌안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방법적' 혹은 '각론적'인 측면에서 아마추어리즘을 노출하는 것이 그와 그 집의 일상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프로패셔널한 아마추어리즘을 통해 개헌론자들을 순식간에 반 개헌론자로 만들었습니다.

'젊음'에 관한 접근도 있었습니다. 물론 '어림'의 다른 표현입니다만, 젊기 때문에 논리에 온몸을 투영할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경험상 아픈 뒷맛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우려스럽습니다. '인생'의 발견을 통해 되돌아와야 하지만, 되돌아온 지점이 바로 '이곳'일 거라는 생각이 잠시 흘렀습니다.

역시 '항간의 사건' 이야기를 하니까 온라인에서도 숙연해지는군요. 그래서 의미없이 떠드는 잡담이 참 즐거운 것 같습니다. 안티테마 님은 뭔가 다른 일을 준비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면모로 보았을 때 '성실'이 느껴졌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일상에 파묻히기 마련인데,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단비님도 대학생 때 많은 경험을 했고, 특히 많은 돈을 모았다는 점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100여개의 화장품 리뷰의 전모'를 밝혀서 시원합니다. 샘플 남은 거 있으면 저한테도 뿌려줘요.

막판에 아프 님과 데이드림 님과 '교육'에 대한 진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사교육에는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나는 '다르다'고 한 말들이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군요. 아무튼 저는 진심으로 '사교육과 공교육의 화해'를 그렸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신 데이드림 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서울'에 사신다는 모과양 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상을 들려주셨습니다. 인생 살 만큼 살았고, 관계가 이미 갖춰진 분들과 함께 있을 때의 소회를 잘 들었습니다.

언제나 나의 온화한 벗인 아프 님의 '바람끼'도 확인했습니다. 제가 술을 많이 퍼담았거든요. '주기'를 물어본 것은 정말 나빴다고 생각합니다. '주기'는 잊어주십시오. 그래서 2번만 옮깁니다. 다행히 목적지가 비슷해서 택시비가 적게 든 것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이 말을 하니까 '유부남 자본주의'가 생각나네요.

오늘 택시비하고 술값 나온 거 해서 가계부에 적어야겠습니다. 혹시 긴급 정모를 하게 된다면 아프 님께 연락을 해주시고요. 아프 님은 꼭 저에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혹시나 궁금할까 하여 제 버전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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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20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나게 읽었어요. 다음에 번개치면 저 꼭 나갈래요~

antitheme 2007-01-20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잘 들어가셨나요. 전 이런 자리 첨이었는데 즐거웠습니다. 지나치게 절 좋게 얘기해 주신 것 같네요. 이렇게 말씀 안 하셔도 수원오시면 반가이 맞겠습니다.

야클 2007-01-20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 본듯이 그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후기네요. ^^

Mephistopheles 2007-01-2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제가 갔다면..어벙하게 이야기만 듣고 왔었을 것 같습니다..^^

비연 2007-01-2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미있으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마늘빵 2007-01-20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 절 '바람둥이'로 만드시면 어떡해요. -_-a 어제 재밌었어요!! ^^
전 유부남은 아니지만 '유부남 자본주의' 정신을 따라 오래전부터 가계부를 적고 있습니다. 저도 적어놔야겠습니다. ^^

비연 2007-01-2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사진은 없나요? ^^;;;; 다들 궁금한데...

모과양 2007-01-2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닉넴을 돌려주세요 --;

승주나무 2007-01-2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 님//저의 든든한 지지자이신 라라님을 꼭 뵙고 싶네요. 아프 님이 조만간 번개를 치실 겁니다.
야클 님//반갑습니다. 제가 그림을 잘 못그리는데, 이번에는 잘 나갔나요?(음메기살어)
메피 성님//다들 메피 성님을 보고 싶어하는 눈치인 것 같았습니다.
비연 님//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이 시간에 후기 올린 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아프님은 알라디너 정모 중 가장 장시간이 아닌가 소회하였습니다.
아프 님//아프 님이면 충분히 바람둥이될 자격이 있습니다. 가계부는 빼먹지 말고 적으시기 바랍니다.
아, 비연 님// 사진은 아프님이 아프 버전 후기를 올리면서 같이 올리실 겁니다. 열심히 찍어댔거든요.
모과양 님//죄송해요. 저는 분명히 'ㅇ'받침을 못들었었거든요. 수정했습니당~~

책속에 책 2007-01-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대단하세요!! 저 시간에!!! 모임 후기를 올리시다니!!
참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자주 뵈면 좋겠어요..off 건 on 이건!
그런데 싸움의 기술에 나오는 여배우얘기가 제 얘기였나요?? @.@
흠, 아프님께 필히 제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를 부탁드려야겠군요 ㅎㅎ

승주나무 2007-01-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데이드리머 님//올리고 12시까지 자고 말았죠. 싸움의 기술 말고 뮤비에 자주 등장하는 눈이 짙은 배우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