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리뷰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지만,
사서에 대한 리뷰는 좀 달라야 하겠기에 전에 한창 했던 '심층독법'을 적용했습니다.
심층독법은 지금 생각해도 토가 나오는 방식인데,
일단 책을 읽어가며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고,
일독 후에 체크 부분을 워드로 정리하고,
워드의 오탈자를 검증하며 3독하는 것이 심층독법의 대강입니다.
특히 논어에 비해 맹자는 분량도 2배가 넘고,
주장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mp3를 자꾸 들으면서
각 장의 요지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맹자가 추구한 것이 '공자를 배우자'이기 때문에
논어에서 확충한 부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논어와 맹자를 대조하며 읽어야 합니다.
근데 매우 귀찮은 일이군요.
거기다 노자보다 3~4배는 긴 장자를 함께 읽은 것은 미친 짓인 것 같지만,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여,
맹자, 장자를 함께 읽기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좀 조잡한 예지만,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것을 풀어낸 칸트를
저는 '위대한 대타협'이라고 합니다. 동양도 이 지점에서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동양철학은 체질적으로 대타협을 이루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인데,
혹시 조예가 있으신 분은 대타협의 모델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학설이 난무하고 제자백가가 격론을 벌이던 시기의 두 거봉인
장자와 맹자는 서로의 지면에서는 한번도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유사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리뷰에서 다루겠습니다만,
둘 다 자신의 정신적 스승의 논의를 끝간 데까지 확충시켰다는 점이고,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한 문장의 조우라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이 철학자들의 시대에 날리던 사람들은 양주와 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한미했지만, 맹자는 주류를 향해 포화를 날리고,
장자는 겉으로는 공자를 집중 포화했지만, 맹자를 향해 날선 비판을 보입니다.
다만 장자의 비판 대상이 유가에 국한되지 않고 제자백가 전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릅니다.
장자와 맹자를 함께 읽으면서 발견한 가장 큰 수확은 역시 '포지션'입니다.
내가 이들의 철학을 접한 것은 어떤 형태든지 제3자의 논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나마 원전을 확인하고 보니 그 요지가 잡힙니다.
다만 맹자는 일상적으로 읽어오던 것이라 원문을 대조했지만,
장자는 학식의 폭만큼 한문이 너무 어려워 원문을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장자와 맹자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궁극의 지점뿐만 아니라, 대상을 향하는 구체적인 시선도 같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장자와 맹자는 관심사가 각기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이를 같은 지점에서 확인하려 하므로 '본의 아닌 대립'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특히 유학은 그 성질상 배타성을 극복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세 번째, 장자의 위치와 맹자의 위치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대등적 관계가 아니라, 장자가 형식적으로는 맹자 등을 포함한다고 보는 게 좋습니다.
네 번째, 두 사람은 비주류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전국책에 맹자는 2회, 장자도 이것을 넘지 못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종횡가 등 권모술수가에게 헌납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비주류'라는 것은 중요성을 갖습니다. 전국시대는 중국 전체의 사상사가 엄청난 농도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자연스럽게 포개집니다. 대개 내가 접한 장자서와 맹자서는 주류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이 주류가 된 것은 제3자의 시대일 뿐입니다. 이들을 주류로 다룬다면 당시의 시대와 주파수가 맞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중대한 오류입니다.
이런 점을 다두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추후에 장자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년 동안 모질게도 신문 스크랩을 해왔는데, 장자를 읽다 보니 신문이 재미없어졌습니다.
장자를 다 읽었으니 이제는 또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마음이 허합니다~~~ 장자보다 재미없는 세상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