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획'이 운명을 바꾸는 거야


화천·태백 ‘겨울한철’축제로 1년수입 한꺼번에
입력: 2007년 01월 29일 18:13:32
 
강원도 화천 500억, 태백 150억원. 올겨울 산천어축제와 눈꽃관광열차로 두 지자체가 벌어들이거나 예상되는 수입이다. 관광이 지역경제를 바꾸고 있다. 과거엔 겨울이면 관광객이 없어 ‘죽은 도시’나 다름 없었지만 요즘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지역경제가 활로를 찾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얼음 낚시를 즐기고 있는 산천어축제행사장(사진 왼쪽). 어린 남매가 얼음구덩이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한눈을 팔고 있는 모습(오른쪽)이 귀엽다. /박민규기자

화천군은 지난 6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5회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에 125만4250명의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29일 밝혔다. 주민 2만4000명의 작은 화천군에 3주동안 전체 주민의 50~60배에 달하는 관광객을 불러 모은 셈이다. 축제 개최 기간 중 34만740대의 차량이 몰리다 보니 시가지 전체는 아예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지난해 485억원을 훌쩍 뛰어 넘어 5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은 겨울 축제 하나로 화천경제가 돈다고 할 정도다.

축제의 성공요인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매년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화천군은 북한강 상류에 위치한 전방지역이란 지리적 한계로 인해 상수원 보호법,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는 등 소외감이 팽배한 지역이었다. 내세울 것이라곤 아름다운 자연 환경 밖에 없었다. 관광상품 개발을 위해 골몰하던 주민들과 지자체가 2002년 아이디어를 모아 만든 것이 ‘산천어 축제’ 였다. 산천어낚시 외에 눈·얼음썰매, 봅슬레이, 얼음기차 등 각종 겨울 레포츠를 접목해 가족단위 관광객을 불러들인다는 전략은 관광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만명 유치 목표였던 2003년 산천어축제에 22만명이 몰려들었다. 2004년 58만명, 2005년 85만명, 2006년엔 107만명이었다.

썰매를 대여(5000원)하거나 낚시 입장권(1만원)을 구입하면 5000원짜리 현지 농특산물교환권을 지급,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 관광객은 더욱 폭증했다. 주민 소득 증가에도 큰 도움이 됐다. 산천어축제가 인기가 높자 이를 벤치마킹 하려는 자치단체 관계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민간인으로 축제를 총괄하고 있는 나라축제위원회 장석범본부장(51)은 “산천어축제 수용인원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내년부터는 각 읍면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 관광객들을 분산시킬 계획”이라며 “대중교통이용자 우대방안, 주말예약제 실시 등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태백은 눈꽃열차가 바꿨다. 태백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겨울이 길고 눈이 많아 눈꽃열차가 다니기 전인 90년대 초반만해도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 겨울은 ‘동면의 계절’이나 마찬가지였다. 4~5개월의 긴 겨울 동안 모든 생산은 멈췄다. 요즘은 겨울이 성수기다.

눈축제기간(1.26~2.4)인 요즘 태백에는 평일 열차 4대에 3000명, 주말 7~8대에 1만~1만3천명이 찾는다. 축제기간이 아닌 때에도 1000~2000명 정도가 열차를 이용한다. 지난해의 경우 눈축제의 관광객 18만7000명중 무려 80.2%인 15만명이 열차를 타고 태백을 찾았다. 주유소, 버스회사, 택시회사, 음식점들이 모두 신났다. 당일치기 손님이 많아 숙박비 지출은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1인당 평균 6,700원을 숙박비로 썼다. 관광객들은 또 기념품·특산물 등을 구입하는데도 1인당 1,700원 정도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한기를 맞은 이 지역 농민들이 짭짤하게 수입을 올린 셈이다. 관광객들은 또 노래방비용, 술값 등으로 1인당 평군 1,700원 정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백시는 관광객 1인당 지출액은 5만9585원이나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눈축제로 89억8천5백만원의 돈이 태백에 풀렸다. 올해는 눈축제 기간을 포함, 눈꽃열차가 운행되는 12월부터 2월까지 약 15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태백 당골상가번영회 김백수(57)회장은 “평일 손님의 60~70%가 눈꽃열차를 타고온 관광객들이다”며 “22개 상가 회원들에겐 눈꽃열차가 그야말로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할수 있다”고 말했다. 태백산도립공원 내에서 명산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애씨(54)는 “과거엔 휴일과 태백산 눈축제 기간 등에만 반짝 특수를 누렸었는데 요즘은 눈꽃열차 덕에 평일에도 손님들이 심심치 않게 찾고 있다”며 “목좋은 곳 뿐 아니라 비교적 외진 지역에 위치한 식당에도 손님들이 찾고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태백시 정운교 관광문화과장은 “과거 태백의 겨울철 경제활동은 사실상 정지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눈을 테마로 한 열차관광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이제 ‘겨울’과 ‘눈’은 태백의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희일기자 yhi@kyunghyang.com

 

 

잠자는 ‘천년 古都’ 색깔이 없다
입력: 2007년 01월 31일 18:01:57
 
지난 5월 10일간의 나비축제기간동안 전남 함평을 방문한 관광객은 171만명이나 됐다. 강원 화천군의 올겨울 산천어축제에는 125만명의 관광객이 모였다. 두 곳 모두 국보 한 점 없고, 내세울 만한 관광자원이 없는 곳이다. 경주는 국보만 31점, 보물 81점, 사적지 76곳으로 17개의 호텔과 7개의 콘도, 300만평이 넘는 보문관광단지와 위락시설, 9개의 골프장을 끼고 있다. 하지만 올겨울 불국사와 석굴암 등 관광지 상인들은 “관광객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31일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불국사 경내. 평일이면 탐방객들이 크게 줄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성이 무색하다.

경주 관광산업이 위기다. 하드웨어(관광자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관광프로그램) 개발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수십년동안 ‘오는 손님’만 받았다. 안압지와 보문단지의 상설공연도 겨울에는 열지 못한다.
불국사 앞의 관광식당가. 관광버스 한 대 주차돼있지 않는 식당가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이상훈기자

31일 경주를 찾은 정형수씨(42·대전 유성)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큰 맘 먹고 경주에 왔는데 프로그램 하나 변변한게 없다”며 “아이들이 금방 싫증을 느껴 여행지를 잘못 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로 세계문화유산이란 명성이 무색하게 불국사와 석굴암의 넓은 주차장은 텅 비었다. 33년째 불국사 앞에서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주인은 “20여년 전에 비하면 장사가 3분의1도 안된다”면서 “주말과 공휴일 일부를 빼고는 파리만 날린다”고 한숨 지었다. 관광객의 취향은 급변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은 20~30년전과 별 차이가 없다. 경주를 찾은 한 50대 관광객은 “하다 못해 수문장교대식 같은 것도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반면 성공축제로 꼽히는 함평나비축제의 경우 지난해 마련한 체험프로그램은 56개. 전체 프로그램의 80%에 달한다. 산천어축제 역시 프로그램이 얼음낚시 등 대부분 체험으로 이뤄져있다.
2007년 3월 완공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인 보문단지 옆 신라 밀레니엄파크. 5만4000평의 파크내에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선다. /이상훈기자

안상은 경주경실련 사무국장은 “경주는 1970년대와 똑같다. 시는 관광문제점의 개선방향조차 못잡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경주관광의 미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때문에 수학여행단마저 줄고 있다. 제주와 금강산, 해외 등 여행지가 다변화됐기 때문이다. 70~80년대 연평균 13%의 증가세를 보이던 관광객은 90년대 후반부터 연평균 0.3%의 감소세로 돌아섰다. 홍준흠 경북관광협회 전무(59)는 “98년 900만명의 관광객을 기록했지만 이 해에 문화엑스포 개최로 일시 늘어난 200만명을 빼면 순수 관광객은 97년 876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48만4000여명)은 97년(47만5000여명) 이후 10년만에 최저치였다. 수학여행단(280여만명)도 95년(277만여명) 이후 12년만에 가장 적었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관광객 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관광정보 안내와 해설 부족(20.7%) ▲특성화된 관광기념품 부족(16.1%) ▲특징적인 먹거리 부재(13.3%) ▲볼거리·놀거리 부족(12.1%) 등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유적지 해설을 들으려면 각 관광지의 안내소별로 미리 예약을 해야하지만 절차와 방법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외국인들은 더 답답하다. 관광 안내판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어딜가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박종희 동국대 관광산업연구소장(52)은 “경주는 관광객 현황에 대한 기초통계 조차 제대로 안돼 있어 한심하기 짝이 없다”면서 “관광종사자와 문화인 등으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장·단기 관광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슬기·백승목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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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말에 아래와 같은 경우를 '숭시'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는 뜻이다.  

美 성장둔화 속 노동시장 활황 “이상하네”
입력: 2007년 01월 29일 18:14:32
 
다음달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고민에 빠졌다. 당장 30~3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경제현상의 해석을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혼선은 최근 발표된 4·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실업률이 경제원칙과 부합하지 않으면서 비롯됐다. 한마디로 ‘실업률 감소세의 경기침체’로, 한동안 경제정책 입안자들을 괴롭힌 ‘고용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과 정반대 양상이다.

자넷 옐렌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등 FRB 관계자들은 ‘지표간 불일치’에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옐렌 총재는 지난주 한 연설에서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왜 노동시장만 활황을 보이는지 알 수 없다”며 “새로운 수수께끼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수수께끼’는 2005년 금리인상 국면의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를 의식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당시 단기 금리가 오르는데도 장기 금리가 오르지 않아 생기는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에 대해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해소돼 ‘그린스펀 수수께끼’도 풀렸지만 새로운 수수께끼는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새 수수께끼는 잠재성장률과 실업률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나라 경제가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했다면 그 나라의 자원과 기회를 적정하게 활용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했을 때 실업률은 고정된다. 만일 잠재성장률을 밑돌아 성장하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또 그 이상으로 성장하면 실업률이 떨어질 수 있다.

2006년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3%에 약간 못 미치며 실제 경제성장률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실업률은 지난해 1·4분기 4.7%에서 4·4분기 4.5%로 하락했다. 지표해석을 둘러싸고,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실제로는 추정치를 밑돌았거나, 아니면 지표로 드러난 것보다 경제가 더 성장했을 것이란 조심스런 가설이 제기됐다. 어떤 상황이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게 되며 FRB 금리정책의 운신폭이 좁아지게 된다.

버냉키 의장은 최근 경제지표로 드러난 당혹스런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는 모호하면서 현란한 언어를 구사했던 카리스마의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과 달리 단순한 어법을 통해 금리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월가에서는 최근의 수수께끼와 같은 잠재성장률과 실업률의 불일치가 단지 경제지표와 현실 사이의 시차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들은 버냉키 의장이 사태를 더 지켜보며 이달에는 금리(연 5.25%)를 동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월가는 수수께끼가 ‘경기 과열’을 뜻하는 것으로 입증된다면, 미국의 금리를 추가로 인상해야 할지를 두고 버냉키 의장이 장고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안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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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기자로 산다는 것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TV에서도 며칠전부터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PD수첩에선가 한 꼭지로 다루는 걸 보면서 자료화면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소설가 김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마침 오마이뉴스에 인터뷰기사가 떴다(한겨레21의 관련기사는 http://www.hani.co.kr/section-021025000/2007/02/021025000200702020646009.html 참조). 일독해보는 김에 겸사겸사 옮겨놓는다. 편집자 주에서 언급되고 있는 책 <기자로 산다는 것>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듯하다.

오마이뉴스(07. 02. 07) 김훈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편집권, 우동-자장면 선택 문제 아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두 차례(1995~1997년, 2000~2002년)에 걸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훈을 지금까지도 '김국'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소설가이자 당대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김훈은 지금도 기자들에게 영원한 선배이자 편집국장일 따름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새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하느라 일산 작업장에 붙박여 두문불출하던 김훈이 홀연 <시사저널>사를 찾은 것은 지난 1월 25일. <시사저널> 기자들은 그 하루 전부터 회사의 일방적인 직장 폐쇄에 맞서 사옥 앞에 거리 편집국을 차리고 천막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이날 종일 농성장에서 기자들과 함께했던 김훈은 다음날 저녁 다시 천막에 찾아와 <시사저널> 사태 이후 지켜왔던 침묵을 깨고 편집권 및 재벌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언설들을 남겼다. <시사저널> 사태를 취재 중이던 MBC < PD수첩 > 강지웅 PD가 묻고 김훈이 답한 이날의 인터뷰 전문을 게재한다. 이 인터뷰는 최근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들이 펴낸 책 <기자로 산다는 것>에도 실렸다.
 <편집자 주>

- <시사저널> 노조가 직장 폐쇄에 항의하는 천막 농성을 벌이는 중입니다. 오늘(25일) 천막 농성장을 찾으셨던데, 후배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오늘 <시사저널> 사태는 저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것입니다.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저도 그때 무너진 기자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30년 후에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30년의 세월을 무효화하는 것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나는 내 후배들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끝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 <시사저널> 노조가 지금 상당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젊은 기자 시절에 나와 내 선배들은 인간의 사회가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가치에 의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언론 전체는 패배하고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30년 전에는 사실 덜 외로웠죠. 그때는 비록 우리가 패배했지만 억압적인 공포 정치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화가 되고 나니까 압박에 대항하는 연대의 대오가 많이 무너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더 외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시민들의 올바른 양식과 생각이 더 강하게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대단히 희망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30년 전으로 퇴보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 '짝퉁' <시사저널>이 발행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결호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되니까 그분들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결호를 내느냐 안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발행되는 <시사저널>의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 하는 문제도 아니고, 기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본의 문제. 이것은 30년 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집권의 문제이죠. 현재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자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것은 우동이냐 자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곧 편집권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서의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재산에 귀속하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부족했고, 인식의 진화가 없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편집권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편집권이 기자에 속한 것이냐, 편집인에 속한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논의의 수준 자체가 저급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논의할 게 아니라 그 작동 방향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문제 삼아야죠. 편집인에게는 편집권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이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인격권이나 재산권처럼 오해한 데서 결국 이 모든 사태가 빚어진 것이죠. 30년 전의 착각이 아직까지도 작동되고 있다는 것은 참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 '짝퉁' <시사저널>을 보기는 하셨습니까?
"짝퉁이라기보다는 결호 방지용이라 해야겠죠."

- 서명숙 전 편집장이 쓴 글("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을 보니 '짝퉁' <시사저널>이 나온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그런 적 없어요. 난 이미 오래 전에 눈물이 다 말라버려서 이제는 먼지밖에 안 나옵니다."(이때 배석한 문정우 전 편집장이 부연 설명했다. "'짝퉁'을 보고 그런 게 아니라 (서 전 편집장과 만나던) 그날, 후배들 얘기를 듣다 그러신 거예요. '후배들이 집에도 안 가고 회사에서 산다, 너무들 열심히 일한다' 이런 얘기를 들려드렸더니 '햐, 고놈들 참 예쁘다, 언제 가서 술이나 한 잔 사줘야겠다' 하시다가 '그런 애들이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느냐'면서 울컥하셨던 거예요.")

- 만약 발행·편집인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말없이 한동안 담배를 피우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호 방어용을 냈을 겁니다. 결호는 일단 막아야 했을 테니까요(*김훈다운 멘트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실제로 파업해서 제작을 사실상 좌절시킨 것은 한국 언론사에서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죠. 참 고통스러운 일이고, 말할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죠."

-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시절에도 재벌 관련 기사 때문에 경영진과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며칠간 지방 출장을 간 사이에 경영진 지시로 재벌 관련 기사가 (편집 과정에서)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상황을 몰랐죠. 출장에서 돌아와 상황을 파악한 뒤 곧바로 기사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인쇄했습니다.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민할 게 없었어요. 그것이 정당한 방향이었으니까요. 다만 그 뒤에 회사와 일이 좀 있었던 것은 사실이죠."

- 편집국장 재직시 사표를 몇 번 제출하셨다는데, 그 뒤 어떻게 되셨나요?
"편집권을 둘러싼 분란으로 사표를 낸 일은 있는데 회사가 사표를 수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수리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직 더 써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저 자를 쫓아냈다가는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그 뒤에도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 그때는 문제가 이렇게 사회적으로 돌출되지 않았지요.
"정당한 방향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회사 경영자들이 일정하게 이해했기 때문이겠죠.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처럼 끝까지 용납하지 않았으면 결국 문제가 터졌겠지요."

- 편집국장으로 계실 때 삼성 기사와 관련해 미묘한 일들이 많았나요?
(배석했던 장영희 기자가 먼저 대답했다. "삼성은 늘, 기사를 쓰면 집요하게 태클을 걸어왔어요. 삼성의 힘이란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단해서 편집장 흔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우리의 선배들, 편집장이나 간부들은 늘 일선 기자를 지지해줬고, 경영진 또한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죠. 그런데 금창태 사장이 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그러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거죠.")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죠. 일본 소니와 맞먹는 기업이잖아요. 우리 민족이 이만한 기업을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삼성은 정말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삼성이 그러한 거대한 힘을 가진 만큼 언론의 문제, 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인문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언론을 대하고 시민사회를 대하는 부분에서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 위신과 품격과 교양을 갖춰야 된다고 난 생각해요.

이건 삼성을 위해서 하는 얘기예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 난 삼성 미워하지 않아요. 근데 내 후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웃음). 삼성은 유능하고 소중한 기업이죠. 달러를 벌어오고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죠. 이런 훌륭한 기업이 어째서 사회적 관계나 언론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이러면 그 기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업이 되기 어렵잖아요. 이번 일이 삼성이 좀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현재 상황을 타개할 만한 나름의 해법이 있으신가요? 회사를 위하고 후배들을 위할 수 있는 어떤 길이.
"거야 있지요. 경영진이 스스로 거취를 정한다면 모든 문제가 봇물 터지듯 일시에 풀려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사저널> 경영진이 우선 편집권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합니다. 이것을 바꿀 수 없다면 그분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이에요. 사회적으로 경영자가 고립되면 결국 그 타격은 매체에 돌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그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죠. <시사저널>이란 매체는 비록 약소하지만 굉장히 건강한 매체였어요. 작지만 나름대로 강력했다고. 이것의 숨통을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근본은 편집권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된다고 봐요. 기자들도 유연하게 상황에 대응해야 할 테고요."

07. 02. 08.

P.S. 내친 김에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종석의 독후감을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론 시사저널을 몇 번 사보았고(김훈국장 시절) 한 친구 문제로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다는 게 유일한 시사저널과의 유일한 인연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서 그 기자의 이름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2. 01) [고종석 칼럼] 기자로 산다는 것

지난해 6월 발행인의 독단적 기사 삭제에서 비롯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사태가 기자들의 무더기 징계와 노조의 파업, 회사측의 직장폐쇄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 잡지의 전현직 기자들이 자신들의 직업 정체성을 더듬어보는 책을 만들고 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표제로 다음주 출간될 이 책의 텍스트를 미리 들여다보노라니, 언론계 한 귀퉁이에 인연을 걸쳐놓은 자로서 알량한 책임감이 새삼 느껍다.

● 시사저널 사태로 느끼는 책임감
일간신문과 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지배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인력이 넉넉지 않은 한 시사주간지가 시사저널만 한(곧이곧대로 말하자면 한 달 전까지의 시사저널만 한) '신뢰의 힘'을 키우자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지 못할 때, 시사주간지는 주류 저널리즘의 '뒤늦은 요약'이 될 수밖에 없다. '뒤늦은 요약'이 되지 않으려면 시사주간지 기사는 주류 저널리즘이 다다르지 못한 심층성을 움켜쥐어야 하고, 기사의 심층성을 떠받치는 것은 기자의 전문성이다. 시사저널은 그간 적잖은 기자들의 전문성에 힘입어 심층기사의 전형을 도톰히 보여주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의 글 몇 개에는 초년기자가 세월과 나란히 전문기자로 자라나는 과정이 담겼다.

신뢰의 두번째 조건은 공정성이다. 기사의 공정성은 기자가 특정 정파로부터는 물론이고 자본이나 노동을 우람하게 대표하는 주류 사회세력들로부터, 더 나아가 사사로운 인연으로부터도 독립될 때만 확보된다. 그런 독립적 시각들이 획일적일 수는 없다. 그것들은 때로 맞버티기 십상이다. 그렇게 맞버티는 독립적 시각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권한이 편집권이다. 그러니 편집권은, 바람직하기론, 기자공동체 전체가 공유할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은 그간 그런 독립적 시각의 견지와 그 시각들의 합리적 조율에 충실해 왔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선 시사저널 기자들이 정파와 사회세력과 사적 인연으로부터 독립적이 되기 위해 쏟아온 노력의 자취가 엿보인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는 장영희 기자의 글에서도 이 점이 또렷하다. 그는 경제전문기자로서 자신이 문제삼아 왔던 것은 기업이 아니라 기업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삭제기사의 핵심이기도 했다.

시사주간지가 주류 언론과 경쟁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은 소위 '근성'에서 나올 것이다. 시사주간지의 장처(長處)라 할 탐사기사는 심층성만이 아니라 지속성으로도 뒷받침돼야 한다. 시사저널은 이 점에서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이나 군대 의문사 사건 그리고 최근의 제이유그룹 사기사건을 비롯해, 시사저널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0년도 훨씬 넘게 한 사안을 추적하며 이 문제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해 왔다. 그리고 시사저널의 장기 탐사기사들은, 드물지 않게, 주류언론에서도 메아리를 얻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그 '근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 매체 신뢰는 기자에게서 나온다
<기자로 산다는 것>의 텍스트에는 드문드문 격정과 집단적 자기애가 배어있다. 격정과 자기애는 결코 저널리스트의 미덕이 아니지만, 시사저널 기자들로 하여금 이 힘겨운 싸움을 버텨내게 하는 미량원소일 것이다. 고제규 기자는 수습시절을 되돌아보며 선배 기자가 툭 내던진, '기자가 곧 매체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고 기자는 그 말을 '기자 개개인이 시사저널 안의 또 다른 매체'라는 뜻으로 해석하며, 기자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기사는 결코 쓰지 않는 '시사저널 문화'가 그 말에 담겨있다고 덧붙인다.

그것이 옳은 해석이겠으나 나는, 바깥사람으로서, 그 말을 '기자의 됨됨이와 태도가 매체의 성격을 규정한다'라는 뜻으로 평범하게 해석하고 싶다. 한 달째 나오고 있는 '대체 시사저널'은 내 식으로 이해한 '기자가 곧 매체다'라는 말의 엄중함을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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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영화를 보고 즐거운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독일식으로 '아브락사스'라고 불리는 아프 님이 영화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프 님께 개인적으로 이 리뷰를 바치고 싶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둘째는 요즘 나의 심경을 잘 해소시켜주는 영화이다. 요즘 직장 문제로 매우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의 요즘 증세는 허파에 바람든 것 마냥 실실 웃음이 나오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간만에 느끼는 심리적 공황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책도 잡아 보았는데, 풀리지 않았다. 연암의 민옹전인가에 나오는 시름 깊은 젊은이가 느낀 시름이 나와 같고, 해소 방식으로 민옹이 전해준 폭소가 바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사마천 사기의 골계열전과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민옹은 퉁소를 부는 악사의 뺨을 내려치며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악기를 부니 그게 즐거울 리가 있겠느냐'며 타박을 준다. 젊은이의 시름이 단박에 없어지는 순간이다.
깊이 있고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이 영화는 '만들어진' 영화이다. 뻔한 드라마와 헐거운 구조에 비해 탄탄한 캐릭터-특히 아이들과 임창정-가 만들어내는 웃음의 기제들만으로 상영 후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이다.
셋째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집어든 신문에서 만난 칼럼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과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사장의 대담이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061817151&code=210000

마치 이 영화를 가리켜 이야기를 하는 듯해, 내심 이 우연이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이 영화는 기획영화는 아니지만 충실한 팝콘영화이자, 대중영화의 문법을 철저히 따랐다. 감동을 끌고 대단원까지 가지는 못하지만(실은 이 영화는 너무나 뻔한 틀 때문에 혹 드라마의 속깊은 사연을 접하고 싶은 관객에게는 차마 권하고 싶지 않다) 관객을 끌고 당기고 희롱하는 품세가 진득한 영화임에 틀림 없다.

이 품세의 영광을 차지한 배우가 바로 임창정이다. 이 영화에 임창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매우 섭섭할 것 같다. 혹은 '임창정과 아이들'이라고 할까. 기본적인 틀은 '시실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실리의 건달들을 모두 임창정 한 사람에게 모아온 것처럼 대단한 포스를 자랑했다.

임창정이 문근영계와 달리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근영은 이미지를 고수하기 때문에 실망을 받지만, 임창정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임창정의 '어수룩한 건달 연기'는 이 영화에서 비로소 결실을 보는 듯싶다. 비트에서 보여주던 리얼한 초짜 건달에서 '1번가'에서 보여주는 해맑고 능글능글한 건달에 이르기까지 '코믹 건달사'를 온몸에 지니고 있는 임창정이 다음에 또 다른 건달로 나온다면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가 기대가 된다. 사실 포지션에 내공만 있다면 '변신'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연예인들의 '변신'은 대개는 내공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 영화 덕분에 순간이었지만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순간 압축적으로 크게 웃을 수 있고, 끝나고 나서도 그나마 덜 허무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그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녀는 괴로워'에는 못 미치겠지만, 300 정도 땡기지 않을까 배팅을 걸어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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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8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종종 표를 드릴 기회가 있을 듯 싶습니다.

승주나무 2007-02-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구 감사합니다. 영화보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이문열에 대한 비판도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상여를 메고 이문열의 책들을 장사지내는 것보다 이문열의 작품 한 줄이 더 긴 밈을 유지할 것이므로. 이문열보다 더 긴 밈을 유지하여 우위에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이문열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만큼 소소해야 하며, 궁극적 철학을 온몸으로 문학화시켜야 한다.



요꼬 가와시마 왓킨스의 <대나무 숲 저멀리서> “막는 것만 최선 아니다”
보스톤코리아 | 2007·01·29 21:46 | HIT : 6
진태원 (본지 칼럼니스트)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이메일을 보니, 보스톤 코리아 편집장께서, 본스톤 전망대에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있는 요꼬 카와시마 (Yoko Kawashima Watkins)씨의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글을 써보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차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30분쯤 떨어진 도버라는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 영어 교재로 사용되고있는 이 책이 이곳 지역사회와 한인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아마 한국에서도 이미 사건이 알려져 예민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심이 많은 분들은 대충 내용을 알고 계시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11살의 일본 소녀가 세계2차 대전에 패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한가족이 자신의 나라 일본으로 돌아가는 역경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것을 소개한 책을 써서, 1986년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 후에, 작가 가와시마씨는 미국 중학교들을 직접 방문하며, 그녀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소개 해왔습니다.
확인할 바가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은 사실이랍니다.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자기에게 있었던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하며,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여러개의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분개하는 것은, 미국의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일본 침략의 피해자인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이책에서는 나쁜 가해자로 나오고, 그로 인해서 일방적으로 한국 사람이 못되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 침략을 통해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삶을 처참하게 짓밟은 사건의 책임자인 점을 감안 할때, 미국의 감수성이 예민한 6학년학생들이 이책을 읽고, 일본이 피해자고, 한국인이 가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직접 읽어 보지 않고서, 의견을 올리는데 무리가 있기에, 점심 시간에 책방으로 달려 갔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So far from the bamboo groove 책이 어디있냐고 몰었더니, 청소년 추천 도서 칸에 있다고 알려줘 한권을 구입해 읽어 봤습니다.
어떤 내용이 실려 있기에 그렇게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나 해서, 문제가 될 부분이 무었일까 궁금해 하며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갔습니다.
나이든 어른의 입장이어서 일까요? 예민한 문제가 될만한 내용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서울까지 피난오면서, 간간히 북한 공산당원들의 악의적인 위협을 받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면서, 몇몇 술취한 사람의 횡포를 기록한 것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신분은 11장에 나오는 김씨가족을 기역하실것입니다. 패망해 일본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격으면서 북한에서 서울로 도망가는 히테요 (Hideyo, 작가의 오빠)에 보여준 생명을 무릎쓴 희생정신과 놀라운 사랑은 오히려 제가 한국 사람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11장이 너무도 감사 합니다. 11 장이 없었다면 저의 반응도 다른 한인 분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래간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는 대한민국을 잘못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나 하나 찾아서, 세계인들에게 그것은 잘못 된 것이고 왜곡된 것이라 지적하기에는 역부 족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서, 희망과 사랑으로 절망하지 않고 살아 남은 우리의 이야기들을 많이 발굴해서, 영어본으로 출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 어린이들이 가와시마 요코씨의 책만 읽는 것이 아니고, 일본의 침략의 만행과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전세계에 알리는 다른 책들도 함께 교재로 사용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 목적이 지금 일본사람들을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토록 방지하는데 있어야 겠습니다.
어제 뉴스에, 고국에서는 가와시마 요코씨의 책이 출판 정지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가까운 친구의 말이 생각 납니다.

나쁜 것을 없애려고 너무 노력 하지 말아라. 결코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그대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나쁜 것이 차지할 지리를 자꾸 작게 만들어라. 그러면 나쁜 것이 설 자리가 없어서 나중에 밀려 날지도 모른다
가와시마씨의 책을 미국 학교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 하는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대신 "좋은 책"을 추천해주면서 그들이 교재로 채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이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있는 한인 2세 들이 있다면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요?



[기고] 평화대신 분노 부른 ‘요코이야기’
경향신문 칼럼, 입력: 2007년 01월 24일 18:25:49
 
1945년 8월15일 직후 당시 조선의 치안은 일본의 경찰 및 군인들이 상당기간 담당했다. 치안 책임은 그해 9월 미군에게 인도되었다.

따라서 일본인에 대한 살인 및 강간 등 치안부재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그러한 사례가 있었다면 해방 후 60여년이 경과하는 동안 일본 우익들이 그냥 있었을 리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음료수를 제공하는 등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들을 우호적으로 대해 주었음이 일본인들의 수기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 ‘요코 이야기’(원제:So far from the Bamboo Story)가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요코 이야기’는 일본의 패망, 즉 조선의 광복을 맞아 북한 땅으로부터 본인과 어머니 언니 오빠가 ‘탈출’하여 귀국·정착하기까지의 과정, 그러니까 ‘역경의 역정’을 개인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지면을 ‘탈출’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위기를 헤쳐 나아가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또 상당량의 부분을 오빠가 ‘김씨 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있다.

소설은 또 탈출 도중에 당시의 조선인이 몹쓸 짓을 하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장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장면의 ‘사실’ 여부는 둘째 치자. 그렇지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설정은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역사관과 가치관의 형성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함은 물론 부정적 영향을 끼칠 위험을 애초부터 내포하고 있어 상당히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였던 일본인과 피해자였던 조선인이 뒤바뀌어 인식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 요코씨에게 묻겠다.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당신 아버지의 ‘전직’이라든가, 미군기에 의한 공습 장면, 또 추운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대나무 등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요코 이야기’가 당신의 말대로 ‘소설’인가, 아니면 역시 그가 말한대로 한두 곳만 빼고 ‘모두 사실’인가. 단순히 ‘소설’이라고 한다면 ‘허구’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 사실’인 경우는 이야기가 180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평화에 대한 책’이라 밝히고 있다. 당신은 정말로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탈출했던 자신의 모습보다 원폭을 당한 본국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또 묻겠다.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의 말과 가슴 속에 혹 조국 잃은 식민지 조선인이 받았을 고통과 매일같이 성노예 역할을 강요당한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의 그것이 빠져 있지는 않은가를.

‘요코 이야기’는 오류와 부정확한 기술에 근거한 것으로 ‘소설’ 형태를 취하면서도 자전적 실화에 기초한 양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한국인의 대일 감정과 일본인의 대한 감정을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요코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그렇게 될 때는 이 ‘대나무 이야기’의 대나무가 ‘죽창’이 되어 당신의 양심과 한국인의 뜨거운 가슴을 겨누게 될 것이라고.

〈김민규 동북아역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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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7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