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향신문을 구독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경향신문의 시사만화는 격조가 있고 풍자가 있어서 좋다.

예전에는 김용민의 만평을 많이 좋아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박순찬의 장도리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만평이란 한 면에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압축률만큼 한계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4컷만화는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컷에서 볼 수 있는 반전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어릴 때는 왈순이 아지매인가 하는 만평집을 재밌게 봤다. 그때는 무슨 시사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꾸 고유명사가 나오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비판과 풍자가 겻든 것이었구나 한다.

만평의 묘는 단순한 필치이다. 그림이 단순하면 그만큼 전달하는 것도 명확해진다.
나는 중앙일보 만평이 최악의 만평이라 생각한다.
펜으로 난도질을 해놓은 것 같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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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것두 안떠요. -_- 뜨네...

2007-02-15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2년 동안 가장 공들였던 경향신문의 '신문여행 블로그'

내 글도 별로 없고 신문기사 스크랩만 딥따 늘어놓아 하루 평균 15개씩 1만개의 게시물이 쌓였어요.

근데 1만개를 기점으로 해서 재미있는 일이 생기네요.

이선균(알포인트,손님은왕이다,잔혹한출근) 등이 출연한 <우리동네>의 미술조감독이 방명록에 글을 남겼어요.

안녕하세요. 평소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좋은 기사를 많이 접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제가 상업영화 연출부를 하게 됐는데, 저희 영화에 기자 홈페이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평소에 제가 보는 신문사인 경향신문에 연락을 했더니, 흥쾌히 신문사 이름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경향신문에는 기자분들 개인 홈페이지가 없어서, 선생님의 블로그를 사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홈피이지의 한 면만 사용되며, 날짜와 시간을 수정하고, 가짜 기자이름과 사진이 올라가겠지만, 이왕 쓰는거 선생님의 홈페이지가 주된 배경이 되면 좋을거 같아서요^^
혹시 허락해 주신다면 답장을 한번 주셔요.

나 같은 소시민에게 이런 재미있는 일이 생기다니. 참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네요. 아까 금방 통화를 했는데, 제가 빽으로 확보한 기자명함도 스캔해서 제공해줬어요. ㅋㅋ

영화에 공헌한 셈인가. 영화 나오면 시사회 티켓 준댔으니 와이프랑 손잡고 공짜영화 보러 가야겠다. 요즘 돈은 안 벌리고 문화생활 복이 터졌네요.

<우리동네> 많이 봐주세요. 알라디너 협찬입니다^^

덧 : 미술조감독이 보내준 우리동네 시놉시스를 첨부하려 그랬는데, 첨부하는 곳이 없네요.
제 블로그에 첨부하니, 혹시 관심 있는 분은 보시기 바랍니다. 미술조감독님이 공개적으로 보내준 거니까 공개해도 되는 거라는 말씀이겠죠 ㅋㅋ
승주나무 블로그 :
http://blog.daum.net/lycurgus/110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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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2-1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호! 좋겠다! 축하해! 이선균 최근 주목 받고 있잖아. 나도 괜찮게 보고 있는데.
경향신문 블로그 쓰는구나.^^

무스탕 2007-02-14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지네요!! 정성들여 꾸준히 가꿔온것이 빛을보게 되는군요.
나중에 영화볼때 신경써서 보겠습니다 ^^

승주나무 2007-02-1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누나, 무스탕 님// 내용은 더 재밌어요. 연쇄살인범이 기자로 위장하기 위해서 기자 홈페이지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제 블로그가 잠깐 나온다구 합니다.(스포일러인가 ㅋㅋ)

마늘빵 2007-02-1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그럼 머하는건가요 블로그가지구?

승주나무 2007-02-1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제 블로그는 극중에서 기자 홈페이지인 거고, 제 블로그 시작일이 2005년 4월인데, 영화의 시점이 2004년 1월이니까 CG 작업해서 바꾼다고 하네요.
한 장면을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을 알았어요.

chika 2007-02-1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311000

 

기록, 적인 일들. ^^


승주나무 2007-02-1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테치카 님//핫.. 감솸다.. 저를 위해서^^;; 저 영화에 캐스팅 되면 싸인해드릴게요 ㅋㅋ

물만두 2007-02-14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마늘빵 2007-02-1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승주나무님이 나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축하해요.

날개 2007-02-1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멋지군요..^^ 축하드려요~

책속에 책 2007-02-1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축하드려요~

승주나무 2007-02-1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반갑고 감사합니다.
아프 님//ㅋㅋ 고마워요. 아프님에게 협찬받은 이후로 영화 복이 많이 생기네요.
날개 님, 데이드리머 님//멋지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 제가 영화에 캐스팅된 듯 요란하게 해놨군요. 부끄~~
 
맹자 - 대학고전총서 8
홍인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2년 7월
평점 :
품절


동양사상 시리즈 논어에 이어서 맹자를 정리합니다. 아래는 동양사상 시리즈 전편의 목록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기에는 첨부파일을 붙일 수 없으므로 클릭하시면 첨부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맹자의 원전을 따로 정리한 한글파일입니다. 이 글과 별개로 보아도 좋고 연관지어서 함께 보아도 좋을 듯싶습니다.

[동양사상1]<논어> 정제된 인생의 철학적 시, 혹은 시적 철학 

[동양사상2]<맹자> 난세에 지성인으로 산다는 것

 

 

난세에 지성인으로 산다는 것

 

1. 호사가들의 맹자 뒷담화

 

맹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행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사서와의 관계 속에서 맹자의 철학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논어, 대학, 중용, 맹자 중에서 논어는 입구이자 출구라고 할 수 있지만, 독법의 순서도 순서이거니와 본령의 마무리 역시 맹자를 추천한다. 사서라는 것은 마치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과 같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는데 오나라의 부차가 아버지의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땔나무에서 잠을 잤다는 말[와신]과 월나라 왕이 오나라에게 패하고 나서 쓸개를 빨아먹으며 결의를 다졌다는 말[상담]의 운명과 같이 본의 아니게 정해졌다. 송나라 시대에 주희 등의 유학자들에 의해서 사서로 정해졌는데, 맹자는 그 유명한 역성혁명(易姓革命) 의혹 때문에 사서에 끼기에 난관이 많았지만 결국 말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호사가들의 뒷담화이고 맹자는 사서의 실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때문에 재벌의 순환지배구조처럼 대학이 논어의 지분을 얼마 취득하고, 중용이 대학의 지분을 차지하고, 맹자가 또 이런 식이다. 다른 거 다 집어치우고 맹자만 읽는 것도 상관없지만, 빚지고 있는 게 그만큼 많기 때문에 맹자의 지분을 취득하고 있는, 맹자를 형성한 책들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동양고전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 것은 두 번 이상 읽어야 뜻이 녹아든다는 점이다. 맹자는 명쾌히 논리를 끝내므로 다른 고전보다 심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최소한 20살에 한 번 30살에 한 번씩 해서 십년에 한 번씩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시대 상황이다. 맹자는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사상가다. 전국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합종과 연횡의 무리들이 암투와 권모를 총동원하여 빠른 시간 내에 상대의 목을 쳐야 살 수 있었던 시대이다. 전국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책의 구절을 옮겨본다.

 

감무는 진나라 상국이 되었다. 이때 진무왕은 공손연(公孫衍 ; 서수)을 총애한 나머지 하루는 그와 사담을 나누면서 이같이 말했다.

“과인은 장차 그대를 상국으로 삼고자 하오.”

진무왕이 은밀히 공손연에게 말하는 것을 감무의 부하가 땅에 구멍을 파 몸을 숨기고 있다가 몰래 엿들은 뒤 이를 감무에게 일러바쳤다. 감무가 곧바로 예궐해 진무왕을 알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왕이 어진 상국을 얻었다 하니 신은 감히 재배하여 축하드리고자 합니다.”

“과인은 나라를 그대에게 맡기고 있는데 어찌하여 또 현상(賢相)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오.”

“대왕이 장차 서수를 상국으로 맞이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대는 어디서 그같은 얘기를 들었소.”

“서수가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지무왕은 공손연이 누설한 것으로 알고 대노하여 이내 그를 쫓아내고 말았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중에서

 

위왕이 초회왕에게 미인을 보냈다. 이에 초회왕이 크게 기뻐했다. 초회왕의 총희 정수(鄭袖)는 초회왕이 새 여인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도 새 여인을 몹시 예뻐했다. 이에 의복과 완구물 등은 물론 기거하는 거실과 침구에 이르기까지 새 여인의 취미에 맞춰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골라주었다. 정수는 초회왕이 사랑하는 이상으로 새 여인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초회왕이 크게 감격해하며 이같이 말했다.

“부인이 지아비를 섬기는 것은 미색 때문이고 질투하는 것은 정 때문이오. 그런데도 지금 정수는 과인이 새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과인 이상으로 새 여인을 아끼고 있으니, 이는 효자가 어버이를 섬기고 충신이 군주를 섬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소.”

정수는 초회왕이 자신을 질투심이 없는 여인으로 믿게 된 사실을 알고는 이내 새 여인에게 이같이 말했다.

“대왕이 그대의 미색을 사랑하고 있으나 그대의 코만은 싫어하고 있소. 그러니 대왕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코를 손으로 가리도록 하시오.”

이에 새 여인은 초회왕을 볼 때마다 손으로 코를 가렸다. 초회왕이 의아하게 생각해 정수에게 이같이 물었다.

“새 여인이 과인을 만날 때마다 코를 가리니 이는 무슨 까닭이오.”

“소첩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비록 듣기 거북한 말일지라도 서슴지 말고 말하시오.”

“그녀는 대왕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자 초왕이 격노하여 이같이 하명했다.

“참으로 무례하기 그지없구나.”

그리고는 당장 하령하여 새 여인을 코 베는 의형(?刑)에 처하는 한편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치 못하게 했다.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중에서

 

전국시대는 대의를 말하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환경에 있었으므로 맹자나 그밖의 제자백가의 정의가 틀렸다기보다 전국시대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맹자를 만나본 임금들은 하나같이 ‘우활(迂闊)하다’고 평했는데,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유학은 농경 학문이다. 하지만 전국시대는 유목민의 시대이다. 농경 학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토양에 햇빛이 들고 쟁기질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비가 제때 내리는 조건이 성립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자의 말처럼 배가 따뜻해야 부끄러움을 아는 법인데, 살을 뜯어먹는 아비귀환 속에서 정의를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이야 하겠는가. 공자와 맹자가 평생을 주유하면서도 뜻을 얻지 못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2. 모든 법률은 헌법을 모체로 한다.

 

모든 유학은 공자를 모체로 한다. 공자 이전에 유학이 없지는 않았지만 공자가 집대성했기 때문에 공자를 유학의 비조로 보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소원이 ‘공자를 배우는 것[學孔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후세 학자들에게 공자의 철학을 ‘확이충지(擴而充之)’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맹자의 학설은 공자의 학설의 주석과 같이 작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공자의 학설에 배치될 수 없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을 일컬어 ‘플라톤의 주석서’라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맹자의 서술체계는 논어와 같이 앞 글자를 따서 제목을 붙였으며, 당시 동서양의 보편적인 추세인 대화를 기본 골격으로 구성하였다. 때로는 맹자가 단독으로 학설을 주장한 부분도 있었으나 포괄적으로 ‘자왈(子曰)’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글을 익히기 위해 주로 논어를 전범으로 하거나 맹자를 전범으로 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전범으로 글을 익혔는지는 그 사람의 한문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처럼 문학과 예술 등 감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논어를 좋아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맹자를 좋아할 것이다. 논어는 마치 한편의 시와 같이 압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독서와 체험을 통해 행간을 채워야 하는 반면, 맹자는 논리의 엄격한 체계를 유지하려 하므로 학술서 분위기가 많이 풍긴다. 사람들이 대개 맹자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체계 때문이다. 예컨대 논어가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사유를 전개한다면, 맹자는 개념이나 관념 중심으로 분석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특히 인간 본성의 영역에 대한 고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철학을 확충함과 동시에 유학을 기본 모델을 완성하였다는 공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장이 제기하는 유학의 비판적인 특성은 대개 맹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특히 공자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신격화(神格化)시킨 장본인으로서 유학을 계보와 대통의 관점으로 왜곡하고 순수한 학문의 정신보다 정파성을 갖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영웅주의는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배타주의를 함의한다. 노장이 비판하는 유학의 특징들은 대개 맹자에서 나타난 특징들과 유사하다. 공자 시절만 하더라도 유학이 학문으로 정리되지 않았고 진득한 경험을 통한 처세의 도를 전수하였다면, 맹자는 체계를 확립함과 동시에 이단에 대해서 보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여기서 공자가 도(道)와 성(性)을 말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궁극의 가치는 유연한 정신에서 비롯되지만 어느 한 관점에 주력한다면 그만큼 궁극의 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단을 공격하는 동양철학의 학풍은 대개 맹자로부터 연유한다.

 

 

3. 유학의 관점에서 본 맹자의 기본 철학

 

맹자는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유학의 궁극적 목표를 담고 있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유학의 궁극 목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자기 몸을 바르게 닦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까지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성외왕(內聖外王)’이다. 즉 안으로는 성인의 도를 체화하고 밖으로는 왕업을 이루는 것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수기와 치인, 내성과 외왕이 이분화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경문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유학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경문에 이어 나오는 내용은 그 역순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신(修身)으로부터 시작되는 순서와 평천하(平天下)로부터 시작하는 역순이 긴밀히 결합함으로써 유학의 본령이 달성되는 것이다.

맹자는 대개 성선설(性善說)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오해를 하게 된다. 맹자 또한 선한 본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비율은 매우 적으며 현실에 금방 함몰될 만큼 위태로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산의 나무는 처음에는 무성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이 큰 나라의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도끼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찍어대니, 무성하게 자랄 수가 있겠는가? 밤낮으로 잘라는 바요, 비 이슬이 적셔 주는 바라, 싹과 가지가 돋아남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소와 양이 또 들어와서 그것을 뜯어먹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이 그 민둥산을 보고서는 처음부터 재목이 없었다고 여긴다면,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라 하겠는가?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도,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으랴? 그 양심(良心)을 방치해 버리는 것은 역시 나무에다가 도끼를 대는 것과 같다. 하루 하루 이를 찍어내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길러지는 양심과 새벽의 기운은 그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람과 서로 근접하다는 것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낮에 하는 행위가 또 이것(양심과 새벽기운)을 어지럽히고 없애버린다. 이것을 어지럽히는 일을 반복하면, 밤에 길러지는 기운은 존재할 수 없다. 밤에 길러지는 기운이 존재할 수 없다면, 그는 금수와 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가 금수와 같은 것을 보고서는 일찍이 재질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성정(性情)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에 배양함을 얻으면, 어떤 사물이나 자라지 않음이 없고, 만약 그 배양함을 잃으면, 어떤 사물이나 소멸하지 않음이 없다. 공자는 ‘잡아주면 살아 남고, 버려 두면 없어진다. 출입에 일정한 시기가 없으니, 그 고향을 알지 못한다.’하셨으니, 바로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맹자(孟子)』, 「고자 상 11절」

 

우산의 비유로서 성선의 실상을 인정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사실 맹자와 순자는 성선과 성악으로 구분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다르지 않다. 순자가 후천적 교육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본질이 악(惡)이라면 교육의 가능성 또한 운운할 여지가 없다.

민심(民心)을 천심(天心)에 비유하여 최고의 가치로 평가한 것은 맹자의 업적이라 할 만하다.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고, 군국(君國)은 경미하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세운다. 제사에 쓸 희생동물이 살찌고, 제물로 고여 놓을 곡식이 깨끗하게 마련되어 제사를 때에 따라 지내는데, 그런데도, 한발(旱魃)과 수재(水災)가 난다면, 사직을 갈아치운다.

『맹자(孟子)』, 「진심 하 14절」

 

유학에 뜻을 둔 선비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생각하지만, 이것이 유학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후세의 학자들과 정치가들이 정치적이고 처세적인 의미를 부연해서 거품이 생긴 것일 뿐이다. 공맹의 유학을 선진유학(先秦儒學)(진나라 이전의 유학) 또는 원시유학(原始儒學)이라고 부르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맹자는 다섯 가지 고유한 관계, 즉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를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그 중에서도 효(孝)를 가장 강조했다. 효경(孝經)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유학은 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하물며 군대의 신병교육대에서도 효를 군기의 상징으로 두고 있지 않은가. 맹자는 순임금을 효의 상징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맹자가 말하는 효는 현실의 법규를 뛰어넘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이다.

 

도응이 물었다. “순이 천자가 되고, 고요가 법관이 되었을 때, 만약 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맹자 : “그를 체포할 뿐이리라.”

“그렇다면, 순이 막지 않겠습니까?”

“대저 순이 어찌 막을 수 있겠나?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있다.”

“그렇다면 순은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순은 천하를 버리기를 마치 헌신짝처럼 한다. 몰래 아버지를 등에 업고 달아나서, 해변을 따라가다 머물러 살면서, 평생토록 기뻐하며, 즐겁게 천하를 잊을 것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 35절」

 

맹자는 부귀와 여색 등 현실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가치를 효의 가치와 비교하는 것을 불허한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은 맹자의 구절 중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유학의 본질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천하에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같이 있지 않다. 부모가 함께 살아 계시고, 형제가 사고가 없으면, 첫째의 즐거움이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천하에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맹자(孟子)』, 「진심 상 35절」

 

대개 영재교육이나 학습지, 논술학원 광고지 같은 데 보면 세 번째 즐거움이 유독 강조되는데, 맹자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성선설 외에 맹자 하면 떠올리는 이야기이지만 방점을 잘못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볼 때 이 구절의 방점은 ‘왕천하는 즐거움에 포함되지 않는다’에 있다. 두 번이나 강조했기 때문에 알아보기 쉬울 것 같지만 대체로 이 방점은 무시되기 쉽다. 이는 입신양명이라는 유학의 전매특허와 배치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즐거움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관점으로 분석했을 때 수기와 치인이 2:1의 비율을 보이지만 유학의 열정은 대부분 수기에 바쳐진다. “제자는 안으로는 효도에 정성을 다하고 밖으로는 공손하며, 언행을 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되 인(仁)한 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울 것이다”(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논어(論語)』, 학이(李)>)라는 말을 수기치인에 적용하면 ‘생활의 모든 공력을 수기에 쏟고 여력이 있거든 치인을 해라’는 결론이 된다. 불교에서도 소승(小乘)은 수기(修己)와 어울리고 대승(大乘)은 치인(治人)과 어울리는데, 자신의 몸을 닦는데 한정되었다고 ‘소(小)’를 입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인이 수기를 감싸면 유학에서는 크나큰 배신이 된다.

맹자가 함의하는 기본적인 정신을 유학의 기본 관점에서 살펴보았는데, 성선설(性善說)은 유학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맹자의 관점이므로 기본 철학에 들어가기보다는 맹자의 캐릭터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4. 맹자의 『맹자』라는 책

 

맹자의 맹자, 장자의 장자, 순자의 순자 등 철학자의 이름이 책의 편명과 동일한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맹자는 제자백가의 철학서 중에서 저자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책이다. 주희가 엮은 사서의 맹자 서문과 후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맹자는 직접 편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비교적 철학의 개요와 저술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각 장절이 가지고 있는 논의의 요지를 살펴보면 맹자 철학의 대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 장은 ‘상,하’로 구분되며 첫편부터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 이렇게 7편으로 구분된다. 각 장은 맹자의 철학을 요소별로 포함하고 있으며 장과 장의 관계는 자못 유기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양혜왕부터 진심까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요지이므로 짧게 정리한다. 각 장의 상,하는 개별적인 의미가 있어 세분화하는 게 좋지만 여기서는 상하를 모두 묶어서 정리한다.)

 

 

1) 양혜왕편

 

맹자 양혜왕은 장 중의 첫 장이자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로 소개되는 것은 따분한 정치 이야기이다. 정치 이야기로 가득한데 어찌 맹자의 으뜸이라 할 수 있을까. 정치는 인간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인간 관계의 본질이다. 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를 한다. 새 새끼는 자기가 먹이를 더 많이 받아먹기 위해 목청을 높여 형제들의 목청을 묻어버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맹자 학문의 출발점이 ‘맹자’의 첫 편에 고스란히 실린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실이다.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왕과 그를 둘러싼 정계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백성들이 겪는 구조적 모순이 벌거벗겨진다.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안에서 이보다 더 근사한 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맹자의 전매특허인 ‘민중’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양혜왕 편의 특징이다. 이를 설명하는 구절과 근거는 지면상 다루기 어렵다. (첨부파일을 참조하기 바란다)

 

2) 공손추편

 

공손추는 만장과 함께 맹자의 수제자이다. 기록에 보면 맹자는 제자 만장 등과 함께 ‘맹자’를 정리했다고 한다. 거기에 공손추가 참여했으리라 판단된다. 공손추 편에서는 성선설을 포함한 맹자의 핵심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자와 깊은 토론이 이어지므로 다소 난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맹자의 핵심 사상이 ‘몸가짐’이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사실 공손추 전편은 수기(修己)를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장으로서 여러 시점과 장소를 넘나들며 제자와 군자의 몸가짐에 대해서 속깊은 토론을 펼친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사에서 흔히 보이는 편견이 있다. 그것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과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이다. 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육체에 대한 무지와 감정에 대한 무지의 노출일 따름이다. 서양에서 스피노자와 니체가 ‘몸’을 발견했다면, 맹자는 이(理)에 대하여 기(氣) 또는 감정이라고 번역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이러한 개념에 대해서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理)가 탑재된 건강한 기를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하는데, 어린이들 캠프가서 길러지는 것이 호연지기가 아니라 넓은 소통 가운데서 뜻과 사유가 충일하게 온몸에 녹아드는 것이 호연지기이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사단(四端)의 요지도 공손추 장에 나온다. 그것이 곧 성선설의 근거이기도 하다. 비록 유영철 같은 살인자라 하더라도 어린이가 달려오는 차 앞에서 무방비하게 서 있으면 구하려는 충동이 든다는 털끝만한 선(善)의 단서가 사단의 요의인데 이를 확충하여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거나 어떤 장소에 처하거나 벼슬을 하는 일상에서의 몸가짐이 사단 못지 않게 중요하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3) 등문공편

 

등문공편은 세 가지 점에서 맹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장이다.

① 등문공편만 따로 보면 마치 플라톤의 ‘국가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조선’과도 같은 신세의 소국이다. 하지만 등문공이 세자일 때 맹자와 교유하면서 국가정책에 대한 큰그림을 전수받고, 즉위하였을 때 맹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제2의 건국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주요 개념과 가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② 업계에서 농담으로 삼는 속칭 ‘맹자의 이빨’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신농씨를 비조로 여기는 허행의 무리와 이에 귀의한 정통 유학자 출신의 진량(陣良)과의 대화와 묵자(墨子)인 이지(夷之)와의 대화를 보면 통쾌하리만치 조리가 있고 주장이 명확하다. 이를 통해 당시 맹자가 전국시대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종횡가에 대한 비판도 자못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백가쟁명하던 시대에는, 수많은 설 만큼이나 수많은 시행착오와 황당한 정책이 가득하여 맹자로 하여금 부득이하게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부득이(不得已)’도 맹자의 전매특허다)

 

③ 맹자의 또 하나의 서문이자 맹자가 학문을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맹자의 마지막 장에는 자서(自序)의 형식으로 마무리가 있지만, 나는 이 장이 맹자의 본의를 가장 충실히 전하는 서문이라 생각한다. 역사 과정 속에서 도의 진보와 퇴행의 반복적 과정을 이야기하며 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맹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 유명한 항산(恒産)과 항심(抗心)에 관한 이야기, 즉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일정한 윤리가 성립할 수 있다는 철학과 백성들에게 생업의 길을 열어주지 않고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 법에 따라 이들을 처벌하는 망민(罔民)의 철학을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등문공편에서부터는 유학의 대표적인 철학인 ‘차등(差等)’이 등장한다. 차등애와 차등에 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천하 사람마다 위치와 임무가 다르고, 천하의 물건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관되게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4) 이루편

 

이루편은 공손추편과 안과 밖으로 짝을 이룬다. 공손추 편이 세상을 주유하며 펼쳐지는 야외수업이라면 이루편은 맹자의 학당에서 강연을 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제 역시 공손추편에서는 몸가짐에 대한 원칙적인 내용이었다면, 이루편에서는 ‘군자론’으로 설명되는 지성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다.

그 중에서도 지성인과 일반인을 가르는 기준이 주목할 만하다. 지성인은 일반인을 이끌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채워주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성인이랍시고 지식을 뽐내며 일반인들과 거리를 두거나 그들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지성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없다. 지성인이라면 유의할 대목이다.

아주 짧게 설명되어 지나치기 쉽지만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구절도 있다. ‘예상치 못했던 영예가 돌아올 수도 있고[불우지예(不虞之譽)], 정성을 다해 완벽함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해가 되고 질타가 되어 돌아오는 일[구전지훼(求全之毁)]도 있다’는 부분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열정을 다해 뜻을 펼쳤으나 돌아온 것은 비방과 좌절밖에 없었던 맹자 스스로의 위안이기도 하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루편은 세미나와 같이 ‘자왈(子曰)’ 체를 유지하다가 학생들이 손들고 질문하는 형식이 끝까지 이어지므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학문에 몸을 담거나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는 젊은 지성인들은 느끼는 바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5) 만장편

 

만장 장구에서는 주로 세 가지의 핵심 내용이 다뤄진다.

① 만장은 맹자의 대표적인 수제자로 맹자와 ‘맹자’를 함께 편수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만장편의 주된 이야기는 당연히 만장과의 토론인데, 만장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온갖 모순에 대해 의분(義憤)에 가득하고 모순을 타파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제자이다.

 

② 만장에서는 유가의 성인인 순(舜)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소개된다. 순임금은 효(孝)의 상징으로 대효(大孝)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유가의 핵심 덕목인 효의 철학에 대해서 다각도로 풀이된다. 그 이후에 천자(天子)의 양위를 이야기할 때는 ‘민심(民心)=천심(天心)’이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③ 교제방법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관계’와 ‘공유’로 구분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벗은 두 육체에 깃들 하나의 영혼이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도(道)’를 공유하는 것이 교제의 궁극적인 목적인데, 임금은 선비와 교제할 수 없다는 논리가 매우 특이하다. 곧 임금이 선비를 등용했다면 군신 관계이므로 교제가 불가능하며, 임금이 선비를 스승으로 모신다면 사제지간이 되므로 교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이 처한 위치에 따라서 관계의 여러 가지 차등이 있다.

그리고 교제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교유를 말한다. 맹자가 만장에서 교제를 유독 강조한 이유는 세상의 바른 길은 한 사람만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이다.

 

맹자가 만장에게 일러 말했다. “한 고을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한 고을의 우수한 선비와 사귀고, 한 나라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한 나라의 우수한 선비와 사귀고, 천하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천하의 우수한 선비와 사귄다. 천하의 우수한 선비를 사귐으로써도 부족하다면, 또 나아가 옛사람을 논한다. 그의 시(詩)를 외고, 그의 책을 읽고도, 그 사람을 모른다면 되겠는가? 그래서 그 세대를 논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나아가 옛사람과 친구로 사귀는 것이다.”

『맹자(孟子)』, 「만장 하 8절」

6) 고자편

고자편에는 인간 본성은 성선라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우연적일 뿐이라는 고자와 논쟁하는 대목이 주를 이루지만, 학문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맹자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전국시대라는 시대상황에서 자신의 학문이 펼쳐지지 못하리라는 구조적 문제를 감지하며, 왜 성선(性善)이 쉽게 물들고 지켜지기 어려운가 그 원인을 세밀히 분석한다. 그것은 지키기는 어렵고 없애버리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며,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시대적 상황이 덧붙여졌다.

맹자는 분석 작업 끝에 전국시대에는 종횡가들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착한 철학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 착한 사람이 고난에 쉽게 빠지는 이유를 ‘천(天)’의 목소리에 비유하여 초연히 밝힌다. 이 구절은 맹자의 전 구절 중에서도 백미로 꼽는 문장이며, 개인적으로는 고난에 처할 때마다 들여다보며 힘을 얻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것을 체념적이거나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자신의 실패에 대한 정당성으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순(舜)은 밭고랑 가운데서 발탁되었고, 부열(傅說)은 성벽을 쌓는 사이에서 천거되었고, 교격(膠?)은 생선과 소금을 파는 중에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는 옥관(獄官)에 의하여 천거되었고,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천거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이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수고로이 하고, 그 신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 보고, 나아가 그가 하는 일마다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고, 그가 할 수 없는 바(능력)을 북돋운다. 사람은 항상 잘못이 있은 뒤에 고칠 수 있고, 마음에 곤란을 받고, 생각이 막힌 뒤에 분발하여 일을 하고, 얼굴색에 나타나고, 말소리로 나타난 뒤에 이해를 한다.

안으로는 법도와 전통이 있는 세습 신하나 진중한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이나 우환이 없는 임금의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 그런 뒤에야, 우환 속에서는 생존하고, 안락 속에서 비로소 사멸한다는 것을 안다.

『맹자(孟子)』, 「고자 하 12절」

 

7) 진심편

진심은 마음을 다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본성을 안다는 것이고 본성을 아는 것은 ‘천(天)’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천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치를 몸소 체득하고 일상화하는 학자의 이상향을 그려낸 것이 진심편의 요의이다.

군자는 도를 낙으로 삼아 여유를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우주와 같이 기품이 넓고 유연하다. 세상 만물 모든 것은 다 그 사람에게 귀의하고 있으며 우주를 품은 기상으로 현실 세계를 끌어안는다.

 

광대한 토지와 많은 백성은 군자가 바라는 것이지만, 즐거움은 여기 있지 않다. 천하의 중앙에 나라를 세우고, 사해의 백성을 안정시킴은 군자가 즐거워하는 것이나, 천성은 이것을 향해 있지 않다. 군자가 본성으로 지니는 것은 비록 (그의 도가 천하에) 크게 행해진다 하더라도 여기에 더 보탤 것이 없고, 비록 곤궁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여기서 더 뺄 것이 없으니, 본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지니는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마음에 뿌리로 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빛깔은 윤택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드러나며, 사지에 널리 펼쳐져서 비록 말이 없어도 명확히 드러난다.

『맹자(孟子)』, 「진심 상 21절」

 

비록 군자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우지 않고도 알게 되는 양지(良知, 선험적 지식)와 배우지 않고도 알게 되는 양능(良能, 선험적 능력)이 있으므로 도에 도달하는 것은 마음 먹기 나름이며 도의 성취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비록 현실은 괴롭고 좌절이 더 많은 일상이지만, 군자의 풍모를 배우고 도가 펼쳐지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학자의 모습이 진심편에 그려져 있다.

 

 

5. 맹자의 비하인드스토리

 

맹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급진적인 사상 때문에 당시의 군주들에게 신망을 얻지 못했음은 물론 대대로 금서의 처지에 놓였다. 심지어 한나라의 무제는 맹자의 초상화를 오늘날의 다트처럼 사용했다. 종종 맹자의 얼굴에다 대고 화살을 쏘며 불경한 학자라고 욕했다.

송나라 주희에 이르러서야 사서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맹자는 우여곡절이 많은 책의 하나였다. 그런 까닭에 사서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가판대에서 파는 잡지 취급을 받았다. 이러한 처지의 원인이 되는 두 구절을 소개한다.

 

제선왕이 재상에 관하여 물으니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무슨 재상을 물으십니까?”

“재상이 다른가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성의) 귀족과 친척의 재상도 있고, 다른 성의 재상도 있습니다.”

“청컨대, 동성 귀족 친척의 재상에 대하여 묻겠습니다.”

“임금이 큰 잘못이 있으면 간(諫)하고, 이를 반복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임금의) 자리를 바꿉니다.”

왕은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다.

“왕께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왕이 신에게 물어서, 신이 감히 올바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의 얼굴색이 안정된 뒤에, 다른 성의 재상에 관하여 물었다.

“임금이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이를 반복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떠나갑니다.”

『맹자(孟子)』, 「만장 하 9절」

 

맹자의 사상 면면에 위와 같은 사고가 펼쳐지지만 이처럼 파격적인 설은 다시 보기 힘들다. 때문에 교양 수준이 미흡했던 한무제같은 임금들이 즐비한 중국 왕조에서 진면모를 인정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금서에서 놓여남은 물론 사서의 반열에 오르는 데 공헌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공손추 : “이윤은 ‘내가 의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수 없어, 태갑(太甲)을 동읍으로 추방하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고, 태갑이 어질게 되어, 또 그를 데려오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하였습니다. 어진 사람이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정녕 추방하여도 됩니까?”

맹자 : “이윤의 뜻을 가졌다면 되지만, 이윤의 뜻이 없다면 찬탈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 31절」

 

주희는 군주에게 맹자의 요지를 간곡히 설득한 후에야 사서의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문화혁명때는 공자가 화를 입었고, 맹자는 오히려 재발견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야말로 맹자의 말처럼 ‘불우지예(不虞之譽)와 구전지훼(求全之毁)’에 다름 아니다.

 

 

6. 맹자 텍스트

 

내가 접한 맹자 텍스트는 성백효 선생의 맹자집주(전통문화연구회)와 김종무 선생의 맹자신해(민음사), 홍인표 교수의 맹자(서울대학교출판부)이다. 특히 이 중에서 홍인표 교수의 텍스트를 신뢰하는 편이지만, 문맥과 친근하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최근에는 이기동 교수의 맹자강설(성균관대학교출판부)의 이야기를 접했지만 아직 읽어보지는 못해 코멘트할 게 없다. 시간이 나면 이기동 교수의 사서삼경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7. 하고 싶은 말

 

논어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체계도 더욱 세밀한 맹자를 정리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리뷰를 쓰기 위해 사전작업에만 일주일이 소비되었고, 집필을 시작한 것이 어제 오후 세시 경이니까 14시간의 고된 싸움이었다. 특히 각 편을 새로 읽고 요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괴로웠다. 예전부터 각 편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의미, 그리고 편과 편 사이의 의미 관계망에 주목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맹자를 나름대로 정리했고 맹자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맹자의 요의를 더욱 상세히 전달하기 위해 원전의 중요한 부분을 초록한 50쪽짜리 한글파일을 첨부한다. 각 편의 요지와 함께 읽거나 따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과연 이만한 글을 모두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스스로 추궁하기도 하지만 동양철학에 대해서, 전통문화에 대해서 갈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생각할 때 헛된 14시간은 아니라고 장담한다. 개인적으로도 이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14시간이었다.

드디어 나는 맹자의 결계에서 풀려났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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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별로 읽은 적은 없지만, 그의 직업이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고전문헌학자' 니체와 같은 고전문헌학자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수년이 되었지만, 내가 갖고 싶은 전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동안 세파에 휩싸여 꿈이고 뭐고 다 날아가버리기 전에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인문학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문에 업을 둔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고전번역원이 생긴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고전문헌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려면 왕의 남자와 같은 작품이 1,000개 이상 나오거나 동북공정 같은 사건이 100년은 지속되어야 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 고전은 숨겨진 책이다. '고전'이라는 말 자체도 지금은 양면성을 띠고 있지만, 긍적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 같다. 고전, 아니 고난의 길로 가는 버스가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난세에 살고 있었고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버스를 떠나보냈다.

얼마 전 교수신문에서 고전번역원 법안과 관련해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옛 추억에 잠시 젖었다.
한자도 병기해야 하는데, 거시기해서 그냥 놔둔다. 


"40년 넘도록 중장기 계획 없어"
[특집:한국의 고전번역]1. 구조적 문제점과 해결방안
2007년 02월 05일 (월) 13:53:38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  editor@kyosu.net

아직 번역이 안 된 우리나라 古典籍은 대략 6천5백여 책이다. 최근의 정책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이들 서적이 번역되려면 약 1백 여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고전 번역에 뜻을 둔 인재들이 드문 데다, 지금까지 번역을 담당해왔던 소수의 漢學元老들이 점차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따라 특히 고전번역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 고전번역이 지닌 구조적 문제점과 고전번역원 설립 추진 현황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모든 飜譯은 疏通을 위한 것이다. 漢字와 漢文은 지난 2000년간 우리나라에서 소통의 기본 도구였다. 하지만 근대화는 한문을 급격하게 퇴장시켰다. 결국 한문은 死語가 되었으며, 더 이상은 소통할 수 없는 言語가 되었다. 이를 한글로 바꾸어 주는 ‘번역’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소통할 수 있도록 對話의 場을 마련하는 일이다.

 ‘朝鮮王朝實錄’등 대표적인 한국 古典籍의 번역은 學問的 疏通의 장을 크게 확대하였다. 방대한 내용에 대한 용이한 접근으로 소장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자신이 원하는 더 많은 정보를 이전보다 훨씬 쉽고 간편하게 얻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조선시대 연구에 커다란 진척을 가져왔으며, 양적 확대는 물론 질적 제고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學問的 疏通과 함께 文化的 疏通의 場도 확대되었다.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에서 많은 소재들이 발굴되었으며, ‘대장금’이나 ‘왕의 남자’의 경우가 그 예라 하겠다. 인터넷에는 자신의 조상에 대한 각종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여 제공하는 홈페이지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역시 많은 부분 번역된 자료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사이트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가진 우리 文化에 대한 갈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源泉인 동시에 總體이면서도 漢文이라는 장애에 가로막혀 접근하지 못했던 古典籍을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飜譯은 곧 ‘古典資料 活用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행되는 漢文古典의 번역은 여타의 일반적인 번역과는 다른 역사적 特殊性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갑오경장이전에는 漢文이 公式的인 文語였다는 점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은 물론이고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은 물론이요 개인의 문자생활 역시 대부분이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전통시대에 생산된 문헌의 95%이상이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번역 대상이 매우 방대하다. 조사 결과 번역되어야 할 古典籍은 세계문화유산인 ‘承政院日記’ 등 번역된 책으로 계산하여 대략 6,500여 책에 달하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할 경우 대략 1백 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가 재정적 지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둘째는 번역 대상이 규모가 방대한 기록물이라는 점이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4천 7백만 자에 달하며, ‘承政院日記’도 2억 4천만 자나 된다.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이런 거질의 번역은 당연히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集團飜譯’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개별적 차원에서 특정문헌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번역하는 것과는 달리 ‘집단번역’은 다수의 역자가 協業하는 형식이므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번역 시스템과 그를 수행할 전문 기관이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는 한문교육의 단절이다. 정부의 한글전용정책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이 있었지만 한문에 대한 전문교육이 제도권에 편입된 것은 1973년 성균관대학교에 漢文敎育學科가 설치되면서 부터이다. 따라서 1894년 갑오경장으로 한문이 公式文語로서 자격을 상실한 이후 한문에 대한 교육은 거의 80여년 이상 제도권에서 외면 받았다. 특히 본격적인 번역인력의 양성은 지난 1974년 비제도권인 民族文化推進會에 國譯硏修院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역자의 양성을 비제도권에 맡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학문 일반과 원활한 연계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학계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간 고전의 번역사업은 원로 원학자와 번역분야 참여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양은 물론 질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었다. 국고의 지원 하에 民族文化推進會가 주축이 되고 世宗大王記念事業會 등이 수행한 번역은 지난 40여 년간 모두 500여 억 원 이상이 투입되었으며, 번역한 책 수가 1,600여 책을 넘기고 있다. 특히 ‘朝鮮王朝實錄’의 完譯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학계는 물론이고 문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들 번역서들은 難解한 文章, 부족한 註釋, 硬直된 逐字譯 내지 과도한 意譯 등에서 오는 疏通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적지 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古典飜譯은 지난 40여 년간 政府가 민간 번역단체에 補助金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따라서 보조금의 성격상 1년 내에 번역에서 출판까지 전 과정을 마쳐야만 했다. 더구나 예산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재정형편에 따라 예산이 책정되었고, 항상 제로베이스에서 검토되면서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멀리 있었다. 자연히 예산의 안정적 확보나 체계적인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국역 단체들은 단기간 실적위주의 사업운영이 불가피하였다.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계획은 수립될 수 없었고, 금년의 사업실적이 차기년도 예산확보의 관건이 되었기에 조속한 완료가 강요되었다. 번역대상을 적은 분량으로 분할하고 외부에 있는 다수의 역자에게 위촉하여 번역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사업을 기간 내에 완성하는 “위촉제 분할번역의 방식”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誤譯과 같은 번역 내용의 不實化는 구조화되었으며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런 국고 보조금 지원방식에서 오는 문제점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장기적인 종합 계획 없이 수행되는 고전국역사업
번역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종합적인 장기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국고의 지원에 의한 번역이 시작 된지 무려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체계적으로 짜여진 중장기 종합계획이 없다는 것은 정책의 부재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번역의 대상이 巨帙이라는 점에서 계획의 부재는 그 심각성을 더한다. 대표적인 번역서인 『朝鮮王朝實錄』에서 각 조대별 서명조차 통일하지 못했으며, 내용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계획의 부재가 번역의 부실로 이어진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번역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이나 번역기관 간의 조정 기능은 어디에도 없다. 국가의 예산으로 동일한 서책을 중복 번역하거나, 동일기관 내에서 번역의 대상이 시대별 내용별로 편중화 현상을 보이는 것은 종합계획의 부재에서 온 결과이다.

원전의 정리 없이 번역에만 치중된 기형적 구조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 대상인 原典에 대한 整理의 문제이다. 훌륭한 번역이 있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원전의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리되지 않은 원전의 번역은 번역의 안정화를 저해하며 이는 곧 번역의 品質 저하로 직결된다. 일반 고전 중에서 문집의 경우에는『韓國文集叢刊』과 같이 일정한 정리 과정을 거친 텍스트가 있지만, 대부분의 문헌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승정원일기』나 『日省錄』과 같은 대형의 國故文獻은 寫本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이는 번역에 앞서 학술적인 定本化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번역에 대한 예산 지원은 있지만 번역 대상서의 정리를 위한 예산의 지원은 거의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모든 實積이 오직 飜譯중심으로 파악되고 지원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번역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결과적으로 번역의 부실을 낳는 것이다. 자연히 번역대상서의 정리가 전문화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역자의 과중한 부담으로 번역이 부실화 되는 문제가 초래되었다. 校勘을 비롯하여 註釋, 標點, 索引 등 飜譯에 선행되어야 하는 原典의 정리에 대한 예산 지원도 충분하게 이루어질 때 번역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 것이다.

위촉제, 부실 번역의 근원
현재 국고로 지원되는 번역의 대부분은 개인 위촉에 의존하고 있다. 대략 연간 200자 원고지로 10만매 정도가 번역되는데 이중 75%인 7만 5천여매가 위촉이다. 그리고 분할되어 위촉된 원고들은 副業的 형태의 번역으로 수행된다. 전문가 집단이 양성될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그저 일정한 고료를 받고 부분적인 번역을 하는 다수의 부업적 역자집단 만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의 품질문제를 논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지난 5년간의 번역상황을 조사해 보면 『承政院日記』와 같은 국고문헌에서 분할번역의 정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또 역자간의 번역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편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고전의 번역이 “위촉제”로 운영되는 한 번역의 질적 제고는 지난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補助金 방식의 지원은 고전번역을 부실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점의 근원이다. 해결방안은 장기적인 종합계획 하에 예산의 안정적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국가에서 조속히 정부출연기관으로 ‘韓國古典飜譯院’을 설립 운영하는 것이 고전번역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분명한 방안이다.

지난해 필자는 교육인자원부의 지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과제를 받아 ‘韓國古典飜譯院’과 ‘古典飜譯大學院’의 설립을 위한 정책연구의 책임을 맡아 연구 결과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공청회를 열어 ‘韓國古典飜譯院’의 설립에 대한 대체적인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그리고 금년 초에는 유기홍 의원 등 32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한국고번역원설립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듣고 있다. 고전국역은 물론이고 人文學의 발전을 위하여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차제에 반드시 이 법안이 통과되어 안정된 번역시스템이 구축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신승운 / 성균관대·서지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성종조의 문사양성과 문집편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부장, 편찬부장, 국역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번역서로는 군서표기(국역 홍재전서 제18집), 청장관전서(공역) 등 다수다.


재번역은 엄두도 못 내"…번역 경시 풍토도 한 몫
[특집:한국의 고전번역]2.전통 한학자들이 말하는 고전번역의 문제
2007년 02월 05일 (월) 14:06:22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서당에서 공부한 전통 한학자들 가운데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20~30명도 안 된다.” 민족문화추진회(이하 민추) 관계자는 “서당에서 공부한 한학자들이 모두 번역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활동하지 않는 이들을 빼면 대략 그 정도”라고 말했다. 서당에서 四書三經을 익혀 한문을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번역에도 능숙한 이들은 불과 20~30명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전통 한학자들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까지 이들이 주축이 되어 고전을 번역하고 인재를 양성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후학들이 옛글 중 글자 한 두자를 해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면 전통 한학 원로들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때론 90대 원로가 자문해주기도 한다. 원로들이 살아 있을 때 후학이 양성돼야 하는 것. 전통 한학의 맥을 이은 마지막 세대가 지금 활동하고 있다면, 이때가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민추에서 번역을 많이 해온 장재한 儒道會 한문연수원장(60)은 “고전번역에 뜻을 둔 인재를 양성하기가 어려운 만큼, 이들의 대우를 적절히 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지금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문교육을 통해서는 결코 전문 번역자를 양성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장 원장은 “현대교육을 통해 공부한 이들에게서 한문의 한계를 볼 때가 있다”라면서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한문만 10여년 이상 익혀야 文理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령不現光’이라는 한자는 글자 그대로 하면 “그 빛이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해석되지만 정확히는 “드러나지 않는가 그 빛이여”라고 해석해야 한다. 詩經을 암송하지 않는다면 잘못 번역될 수밖에 없는 사례다.

   

장 원장은 얼마 전까지 민추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儒道會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중이다. 儒道會는 매년 석사과정 이상의 학생을 20여명 선발해 무료로 한문을 가르치는 사단법인으로, 재원은 수료생들의 자발적인 지원금이다.

정태현 민추 자문위원(62)이 고전번역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번역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산시문집, 성호사설, 승정원일기 등 다수의 번역에 참여한 정 위원은 “무슨 다리 공사하는 것도 아닌데, 돈을 3월에 주면서 금년까지 번역을 마치라는 식이라서, 충분히 검토도 못하게 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번역이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는 상관 않고 무조건 기한 내에 번역하라고 하는 정부 지원 정책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번역이 끝나면 별도로 외부에서 엄격히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양만 많이 늘었지 질은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번역하고도 제대로 평가를 안 하니 요즘엔 형편 없는 번역도 많이 나온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서삼경을 국내 최초로 완역해 고전 번역계에서 이름이 높은 성백효 민추 교무처장(57) 또한 ‘재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미 번역된 저서들도 다시 번역해야 하고, 번역에 대한 2차 평가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 교수는 “언어는 늘 바뀌기 때문에 고전 번역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일본은 20년 주기로 번역본을 바꾼다”라면서 “우리는 한 번도 번역하지 않은 것들을 다 번역하는 데에도 지금 1백 여년이 넘게 걸릴 상황”이라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지금대로라면 번역은 점차 부실해지고, 인재 양성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전망이었다.

박소동 민추 국역연수원 교수(59)는 ‘번역에 대한 인식’에서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정부와 학계가 번역이 고도의 지적인 작업이라 보지 않고 단순한 기능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그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쓴 고전일 경우에는 그 학문을 이해하고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번역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박 교수는 “번역하는 것을 논문 쓰는 것 보다 경시하는 풍토도 사라져야 하고, 번역을 한시적인 사업으로 보는 시각도 교정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박 교수는 “언젠가 정부 관료가 승정원 일기를 출판해도 아무도 안 살텐데, 왜 출판하냐고 하더라”라며 “도로나 상하수도, 공원, 학교 등 정부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듯, 학문의 간접자본인 古典이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번역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경제적인 시각으로 고전번역을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최근에 전국책과 맹자, 장자, 그리고 국어와 논어, 노자를 읽으면 드는 생각은 공맹과 노장이 난세에 적응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둘 다 난세에는 맞지 않았다. 난세의 분위기를 느끼고 나서 나의 현실을 보면 마치 부절을 붙여 놓은 것 같아 몸서리가 난다.

얼마 전에 매파가 비둘기파에 비해 구조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난세에 맞게 튜닝된 모델은 '자공' 이나 사마천을 들 수 있을까.

국역을 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전국시대의 맹자와 장자의 전철을 밟고 있다. 그것은 미래의 가르침이 될 수 있을지언정 현재의 돌파구는 될 수 없다. 다소 불행한 일이지만, 콘텐츠와 철학, 교육과 창작, 그리고 '시장'이 한꺼번에 어우러져야 결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학문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경향신문을 좋아하고 경향의 기자들을 몇몇 알지만, 경향신문이 자본주의 구조를 헤쳐나가기 버겁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도도함' 안에 있다. 중앙일보는 천박지만 비지니스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비지니스는 전설의 우임금처럼 도랑을 바다로 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이나 이웃 나라로 내는 것과 같이 시장 굴욕적이다. 이것을 양 극단의 길로 본다면, 제3의 길을 향해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찾지도 못했으면서 제1, 제2의 길에도 서 있지 못한 나는 이 시대의 사생아이자 반항아이다.

제3의 길은 나의 이상이다. 이를 위해 창작도 학문도 팽개치고 자본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반항아가 될 수는 없다. 결혼도 했고 서른이라는 무게도 있다.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자면 얼른 제3의 길 포기를 선언하고 제1이나 제2의 길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정상일 것이다. 제3의 길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고 제3의 길 언저리에서 서성대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랑아가 아직도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다가가서 술이나 한 잔 사주기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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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끼 때문에’ 베를루스코니 공개 부부싸움
입력: 2007년 02월 01일 18:18:33
 
‘남편 사과 받아내는 데는 언론 제보가 특효약?’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부부가 공개적으로 부부 싸움을 벌여 입방아에 올랐다. 총리 부인 베로니카가 이탈리아 한 일간지에 남편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일 보도했다. 베로니카는 일간 ‘라 레푸블리카’ 1면에 게재된 편지에서 “남편의 발언은 내 존엄성에 상처를 입혔다”며 “아직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지 못했으므로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곧 성인이 되는 딸아이에게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줄 아는 여성의 본보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로니카의 화가 폭발한 것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악명 높은 바람둥이 기질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 시상식 파티에서 여성 하원의원과 방송 리포터들에게 “내가 결혼하지만 않았다면 당장 당신과 결혼할 텐데” “당신과 어디든 가겠다” 등의 발언을 해 부인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결국 베로니카와 똑같은 방법으로 화해를 시도했다. 이튿날 라 레푸블리카에 서한을 보내 “부주의한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 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에게 청혼하지 않겠다. 나를 믿어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는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면 그들과 대화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핑계도 덧붙였다.
인디펜던트는 공개적으로 부부싸움을 하는 두사람에 대해 “베를루스코니 집안답다”고 비꼬았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1981년 연극에서 열연하는 배우 베로니카를 보고 한눈에 반해 청혼했다. 현재 별거 상태지만 대중 앞에서는 사이좋은 부부처럼 행동해왔다. 베로니카는 그간 남편의 여성 편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베로니카가 사과 요구 편지를 보낸 좌파 신문 라 레푸블리카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운영하는 우파 신문의 최대 경쟁사다.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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