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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대학고전총서 8
홍인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2년 7월
평점 :
품절
동양사상 시리즈 논어에 이어서 맹자를 정리합니다. 아래는 동양사상 시리즈 전편의 목록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기에는 첨부파일을 붙일 수 없으므로 클릭하시면 첨부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맹자의 원전을 따로 정리한 한글파일입니다. 이 글과 별개로 보아도 좋고 연관지어서 함께 보아도 좋을 듯싶습니다.
[동양사상1]<논어> 정제된 인생의 철학적 시, 혹은 시적 철학
[동양사상2]<맹자> 난세에 지성인으로 산다는 것
난세에 지성인으로 산다는 것
1. 호사가들의 맹자 뒷담화
맹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행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사서와의 관계 속에서 맹자의 철학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논어, 대학, 중용, 맹자 중에서 논어는 입구이자 출구라고 할 수 있지만, 독법의 순서도 순서이거니와 본령의 마무리 역시 맹자를 추천한다. 사서라는 것은 마치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과 같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는데 오나라의 부차가 아버지의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땔나무에서 잠을 잤다는 말[와신]과 월나라 왕이 오나라에게 패하고 나서 쓸개를 빨아먹으며 결의를 다졌다는 말[상담]의 운명과 같이 본의 아니게 정해졌다. 송나라 시대에 주희 등의 유학자들에 의해서 사서로 정해졌는데, 맹자는 그 유명한 역성혁명(易姓革命) 의혹 때문에 사서에 끼기에 난관이 많았지만 결국 말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호사가들의 뒷담화이고 맹자는 사서의 실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때문에 재벌의 순환지배구조처럼 대학이 논어의 지분을 얼마 취득하고, 중용이 대학의 지분을 차지하고, 맹자가 또 이런 식이다. 다른 거 다 집어치우고 맹자만 읽는 것도 상관없지만, 빚지고 있는 게 그만큼 많기 때문에 맹자의 지분을 취득하고 있는, 맹자를 형성한 책들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동양고전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 것은 두 번 이상 읽어야 뜻이 녹아든다는 점이다. 맹자는 명쾌히 논리를 끝내므로 다른 고전보다 심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최소한 20살에 한 번 30살에 한 번씩 해서 십년에 한 번씩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시대 상황이다. 맹자는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사상가다. 전국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합종과 연횡의 무리들이 암투와 권모를 총동원하여 빠른 시간 내에 상대의 목을 쳐야 살 수 있었던 시대이다. 전국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책의 구절을 옮겨본다.
감무는 진나라 상국이 되었다. 이때 진무왕은 공손연(公孫衍 ; 서수)을 총애한 나머지 하루는 그와 사담을 나누면서 이같이 말했다.
“과인은 장차 그대를 상국으로 삼고자 하오.”
진무왕이 은밀히 공손연에게 말하는 것을 감무의 부하가 땅에 구멍을 파 몸을 숨기고 있다가 몰래 엿들은 뒤 이를 감무에게 일러바쳤다. 감무가 곧바로 예궐해 진무왕을 알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왕이 어진 상국을 얻었다 하니 신은 감히 재배하여 축하드리고자 합니다.”
“과인은 나라를 그대에게 맡기고 있는데 어찌하여 또 현상(賢相)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오.”
“대왕이 장차 서수를 상국으로 맞이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대는 어디서 그같은 얘기를 들었소.”
“서수가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지무왕은 공손연이 누설한 것으로 알고 대노하여 이내 그를 쫓아내고 말았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중에서
위왕이 초회왕에게 미인을 보냈다. 이에 초회왕이 크게 기뻐했다. 초회왕의 총희 정수(鄭袖)는 초회왕이 새 여인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도 새 여인을 몹시 예뻐했다. 이에 의복과 완구물 등은 물론 기거하는 거실과 침구에 이르기까지 새 여인의 취미에 맞춰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골라주었다. 정수는 초회왕이 사랑하는 이상으로 새 여인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초회왕이 크게 감격해하며 이같이 말했다.
“부인이 지아비를 섬기는 것은 미색 때문이고 질투하는 것은 정 때문이오. 그런데도 지금 정수는 과인이 새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과인 이상으로 새 여인을 아끼고 있으니, 이는 효자가 어버이를 섬기고 충신이 군주를 섬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소.”
정수는 초회왕이 자신을 질투심이 없는 여인으로 믿게 된 사실을 알고는 이내 새 여인에게 이같이 말했다.
“대왕이 그대의 미색을 사랑하고 있으나 그대의 코만은 싫어하고 있소. 그러니 대왕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코를 손으로 가리도록 하시오.”
이에 새 여인은 초회왕을 볼 때마다 손으로 코를 가렸다. 초회왕이 의아하게 생각해 정수에게 이같이 물었다.
“새 여인이 과인을 만날 때마다 코를 가리니 이는 무슨 까닭이오.”
“소첩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비록 듣기 거북한 말일지라도 서슴지 말고 말하시오.”
“그녀는 대왕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자 초왕이 격노하여 이같이 하명했다.
“참으로 무례하기 그지없구나.”
그리고는 당장 하령하여 새 여인을 코 베는 의형(?刑)에 처하는 한편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치 못하게 했다.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중에서
전국시대는 대의를 말하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환경에 있었으므로 맹자나 그밖의 제자백가의 정의가 틀렸다기보다 전국시대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맹자를 만나본 임금들은 하나같이 ‘우활(迂闊)하다’고 평했는데,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유학은 농경 학문이다. 하지만 전국시대는 유목민의 시대이다. 농경 학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토양에 햇빛이 들고 쟁기질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비가 제때 내리는 조건이 성립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자의 말처럼 배가 따뜻해야 부끄러움을 아는 법인데, 살을 뜯어먹는 아비귀환 속에서 정의를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이야 하겠는가. 공자와 맹자가 평생을 주유하면서도 뜻을 얻지 못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2. 모든 법률은 헌법을 모체로 한다.
모든 유학은 공자를 모체로 한다. 공자 이전에 유학이 없지는 않았지만 공자가 집대성했기 때문에 공자를 유학의 비조로 보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소원이 ‘공자를 배우는 것[學孔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후세 학자들에게 공자의 철학을 ‘확이충지(擴而充之)’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맹자의 학설은 공자의 학설의 주석과 같이 작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공자의 학설에 배치될 수 없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을 일컬어 ‘플라톤의 주석서’라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맹자의 서술체계는 논어와 같이 앞 글자를 따서 제목을 붙였으며, 당시 동서양의 보편적인 추세인 대화를 기본 골격으로 구성하였다. 때로는 맹자가 단독으로 학설을 주장한 부분도 있었으나 포괄적으로 ‘자왈(子曰)’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글을 익히기 위해 주로 논어를 전범으로 하거나 맹자를 전범으로 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전범으로 글을 익혔는지는 그 사람의 한문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처럼 문학과 예술 등 감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논어를 좋아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맹자를 좋아할 것이다. 논어는 마치 한편의 시와 같이 압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독서와 체험을 통해 행간을 채워야 하는 반면, 맹자는 논리의 엄격한 체계를 유지하려 하므로 학술서 분위기가 많이 풍긴다. 사람들이 대개 맹자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체계 때문이다. 예컨대 논어가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사유를 전개한다면, 맹자는 개념이나 관념 중심으로 분석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특히 인간 본성의 영역에 대한 고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철학을 확충함과 동시에 유학을 기본 모델을 완성하였다는 공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장이 제기하는 유학의 비판적인 특성은 대개 맹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특히 공자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신격화(神格化)시킨 장본인으로서 유학을 계보와 대통의 관점으로 왜곡하고 순수한 학문의 정신보다 정파성을 갖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영웅주의는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배타주의를 함의한다. 노장이 비판하는 유학의 특징들은 대개 맹자에서 나타난 특징들과 유사하다. 공자 시절만 하더라도 유학이 학문으로 정리되지 않았고 진득한 경험을 통한 처세의 도를 전수하였다면, 맹자는 체계를 확립함과 동시에 이단에 대해서 보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여기서 공자가 도(道)와 성(性)을 말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궁극의 가치는 유연한 정신에서 비롯되지만 어느 한 관점에 주력한다면 그만큼 궁극의 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단을 공격하는 동양철학의 학풍은 대개 맹자로부터 연유한다.
3. 유학의 관점에서 본 맹자의 기본 철학
맹자는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유학의 궁극적 목표를 담고 있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유학의 궁극 목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자기 몸을 바르게 닦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까지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성외왕(內聖外王)’이다. 즉 안으로는 성인의 도를 체화하고 밖으로는 왕업을 이루는 것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수기와 치인, 내성과 외왕이 이분화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경문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유학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경문에 이어 나오는 내용은 그 역순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신(修身)으로부터 시작되는 순서와 평천하(平天下)로부터 시작하는 역순이 긴밀히 결합함으로써 유학의 본령이 달성되는 것이다.
맹자는 대개 성선설(性善說)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오해를 하게 된다. 맹자 또한 선한 본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비율은 매우 적으며 현실에 금방 함몰될 만큼 위태로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산의 나무는 처음에는 무성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이 큰 나라의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도끼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찍어대니, 무성하게 자랄 수가 있겠는가? 밤낮으로 잘라는 바요, 비 이슬이 적셔 주는 바라, 싹과 가지가 돋아남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소와 양이 또 들어와서 그것을 뜯어먹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이 그 민둥산을 보고서는 처음부터 재목이 없었다고 여긴다면,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라 하겠는가?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도,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으랴? 그 양심(良心)을 방치해 버리는 것은 역시 나무에다가 도끼를 대는 것과 같다. 하루 하루 이를 찍어내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길러지는 양심과 새벽의 기운은 그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람과 서로 근접하다는 것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낮에 하는 행위가 또 이것(양심과 새벽기운)을 어지럽히고 없애버린다. 이것을 어지럽히는 일을 반복하면, 밤에 길러지는 기운은 존재할 수 없다. 밤에 길러지는 기운이 존재할 수 없다면, 그는 금수와 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가 금수와 같은 것을 보고서는 일찍이 재질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성정(性情)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에 배양함을 얻으면, 어떤 사물이나 자라지 않음이 없고, 만약 그 배양함을 잃으면, 어떤 사물이나 소멸하지 않음이 없다. 공자는 ‘잡아주면 살아 남고, 버려 두면 없어진다. 출입에 일정한 시기가 없으니, 그 고향을 알지 못한다.’하셨으니, 바로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맹자(孟子)』, 「고자 상 11절」
우산의 비유로서 성선의 실상을 인정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사실 맹자와 순자는 성선과 성악으로 구분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다르지 않다. 순자가 후천적 교육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본질이 악(惡)이라면 교육의 가능성 또한 운운할 여지가 없다.
민심(民心)을 천심(天心)에 비유하여 최고의 가치로 평가한 것은 맹자의 업적이라 할 만하다.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고, 군국(君國)은 경미하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세운다. 제사에 쓸 희생동물이 살찌고, 제물로 고여 놓을 곡식이 깨끗하게 마련되어 제사를 때에 따라 지내는데, 그런데도, 한발(旱魃)과 수재(水災)가 난다면, 사직을 갈아치운다.
『맹자(孟子)』, 「진심 하 14절」
유학에 뜻을 둔 선비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생각하지만, 이것이 유학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후세의 학자들과 정치가들이 정치적이고 처세적인 의미를 부연해서 거품이 생긴 것일 뿐이다. 공맹의 유학을 선진유학(先秦儒學)(진나라 이전의 유학) 또는 원시유학(原始儒學)이라고 부르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맹자는 다섯 가지 고유한 관계, 즉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를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그 중에서도 효(孝)를 가장 강조했다. 효경(孝經)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유학은 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하물며 군대의 신병교육대에서도 효를 군기의 상징으로 두고 있지 않은가. 맹자는 순임금을 효의 상징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맹자가 말하는 효는 현실의 법규를 뛰어넘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이다.
도응이 물었다. “순이 천자가 되고, 고요가 법관이 되었을 때, 만약 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맹자 : “그를 체포할 뿐이리라.”
“그렇다면, 순이 막지 않겠습니까?”
“대저 순이 어찌 막을 수 있겠나?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있다.”
“그렇다면 순은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순은 천하를 버리기를 마치 헌신짝처럼 한다. 몰래 아버지를 등에 업고 달아나서, 해변을 따라가다 머물러 살면서, 평생토록 기뻐하며, 즐겁게 천하를 잊을 것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 35절」
맹자는 부귀와 여색 등 현실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가치를 효의 가치와 비교하는 것을 불허한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은 맹자의 구절 중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유학의 본질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천하에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같이 있지 않다. 부모가 함께 살아 계시고, 형제가 사고가 없으면, 첫째의 즐거움이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천하에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맹자(孟子)』, 「진심 상 35절」
대개 영재교육이나 학습지, 논술학원 광고지 같은 데 보면 세 번째 즐거움이 유독 강조되는데, 맹자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성선설 외에 맹자 하면 떠올리는 이야기이지만 방점을 잘못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볼 때 이 구절의 방점은 ‘왕천하는 즐거움에 포함되지 않는다’에 있다. 두 번이나 강조했기 때문에 알아보기 쉬울 것 같지만 대체로 이 방점은 무시되기 쉽다. 이는 입신양명이라는 유학의 전매특허와 배치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즐거움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관점으로 분석했을 때 수기와 치인이 2:1의 비율을 보이지만 유학의 열정은 대부분 수기에 바쳐진다. “제자는 안으로는 효도에 정성을 다하고 밖으로는 공손하며, 언행을 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되 인(仁)한 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울 것이다”(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논어(論語)』, 학이(李)>)라는 말을 수기치인에 적용하면 ‘생활의 모든 공력을 수기에 쏟고 여력이 있거든 치인을 해라’는 결론이 된다. 불교에서도 소승(小乘)은 수기(修己)와 어울리고 대승(大乘)은 치인(治人)과 어울리는데, 자신의 몸을 닦는데 한정되었다고 ‘소(小)’를 입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인이 수기를 감싸면 유학에서는 크나큰 배신이 된다.
맹자가 함의하는 기본적인 정신을 유학의 기본 관점에서 살펴보았는데, 성선설(性善說)은 유학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맹자의 관점이므로 기본 철학에 들어가기보다는 맹자의 캐릭터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4. 맹자의 『맹자』라는 책
맹자의 맹자, 장자의 장자, 순자의 순자 등 철학자의 이름이 책의 편명과 동일한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맹자는 제자백가의 철학서 중에서 저자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책이다. 주희가 엮은 사서의 맹자 서문과 후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맹자는 직접 편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비교적 철학의 개요와 저술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각 장절이 가지고 있는 논의의 요지를 살펴보면 맹자 철학의 대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 장은 ‘상,하’로 구분되며 첫편부터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 이렇게 7편으로 구분된다. 각 장은 맹자의 철학을 요소별로 포함하고 있으며 장과 장의 관계는 자못 유기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양혜왕부터 진심까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요지이므로 짧게 정리한다. 각 장의 상,하는 개별적인 의미가 있어 세분화하는 게 좋지만 여기서는 상하를 모두 묶어서 정리한다.)
1) 양혜왕편
맹자 양혜왕은 장 중의 첫 장이자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로 소개되는 것은 따분한 정치 이야기이다. 정치 이야기로 가득한데 어찌 맹자의 으뜸이라 할 수 있을까. 정치는 인간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인간 관계의 본질이다. 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를 한다. 새 새끼는 자기가 먹이를 더 많이 받아먹기 위해 목청을 높여 형제들의 목청을 묻어버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맹자 학문의 출발점이 ‘맹자’의 첫 편에 고스란히 실린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실이다.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왕과 그를 둘러싼 정계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백성들이 겪는 구조적 모순이 벌거벗겨진다.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안에서 이보다 더 근사한 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맹자의 전매특허인 ‘민중’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양혜왕 편의 특징이다. 이를 설명하는 구절과 근거는 지면상 다루기 어렵다. (첨부파일을 참조하기 바란다)
2) 공손추편
공손추는 만장과 함께 맹자의 수제자이다. 기록에 보면 맹자는 제자 만장 등과 함께 ‘맹자’를 정리했다고 한다. 거기에 공손추가 참여했으리라 판단된다. 공손추 편에서는 성선설을 포함한 맹자의 핵심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자와 깊은 토론이 이어지므로 다소 난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맹자의 핵심 사상이 ‘몸가짐’이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사실 공손추 전편은 수기(修己)를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장으로서 여러 시점과 장소를 넘나들며 제자와 군자의 몸가짐에 대해서 속깊은 토론을 펼친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사에서 흔히 보이는 편견이 있다. 그것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과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이다. 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육체에 대한 무지와 감정에 대한 무지의 노출일 따름이다. 서양에서 스피노자와 니체가 ‘몸’을 발견했다면, 맹자는 이(理)에 대하여 기(氣) 또는 감정이라고 번역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이러한 개념에 대해서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理)가 탑재된 건강한 기를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하는데, 어린이들 캠프가서 길러지는 것이 호연지기가 아니라 넓은 소통 가운데서 뜻과 사유가 충일하게 온몸에 녹아드는 것이 호연지기이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사단(四端)의 요지도 공손추 장에 나온다. 그것이 곧 성선설의 근거이기도 하다. 비록 유영철 같은 살인자라 하더라도 어린이가 달려오는 차 앞에서 무방비하게 서 있으면 구하려는 충동이 든다는 털끝만한 선(善)의 단서가 사단의 요의인데 이를 확충하여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거나 어떤 장소에 처하거나 벼슬을 하는 일상에서의 몸가짐이 사단 못지 않게 중요하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3) 등문공편
등문공편은 세 가지 점에서 맹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장이다.
① 등문공편만 따로 보면 마치 플라톤의 ‘국가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조선’과도 같은 신세의 소국이다. 하지만 등문공이 세자일 때 맹자와 교유하면서 국가정책에 대한 큰그림을 전수받고, 즉위하였을 때 맹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제2의 건국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주요 개념과 가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② 업계에서 농담으로 삼는 속칭 ‘맹자의 이빨’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신농씨를 비조로 여기는 허행의 무리와 이에 귀의한 정통 유학자 출신의 진량(陣良)과의 대화와 묵자(墨子)인 이지(夷之)와의 대화를 보면 통쾌하리만치 조리가 있고 주장이 명확하다. 이를 통해 당시 맹자가 전국시대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종횡가에 대한 비판도 자못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백가쟁명하던 시대에는, 수많은 설 만큼이나 수많은 시행착오와 황당한 정책이 가득하여 맹자로 하여금 부득이하게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부득이(不得已)’도 맹자의 전매특허다)
③ 맹자의 또 하나의 서문이자 맹자가 학문을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맹자의 마지막 장에는 자서(自序)의 형식으로 마무리가 있지만, 나는 이 장이 맹자의 본의를 가장 충실히 전하는 서문이라 생각한다. 역사 과정 속에서 도의 진보와 퇴행의 반복적 과정을 이야기하며 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맹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 유명한 항산(恒産)과 항심(抗心)에 관한 이야기, 즉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일정한 윤리가 성립할 수 있다는 철학과 백성들에게 생업의 길을 열어주지 않고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 법에 따라 이들을 처벌하는 망민(罔民)의 철학을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등문공편에서부터는 유학의 대표적인 철학인 ‘차등(差等)’이 등장한다. 차등애와 차등에 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천하 사람마다 위치와 임무가 다르고, 천하의 물건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관되게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4) 이루편
이루편은 공손추편과 안과 밖으로 짝을 이룬다. 공손추 편이 세상을 주유하며 펼쳐지는 야외수업이라면 이루편은 맹자의 학당에서 강연을 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제 역시 공손추편에서는 몸가짐에 대한 원칙적인 내용이었다면, 이루편에서는 ‘군자론’으로 설명되는 지성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다.
그 중에서도 지성인과 일반인을 가르는 기준이 주목할 만하다. 지성인은 일반인을 이끌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채워주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성인이랍시고 지식을 뽐내며 일반인들과 거리를 두거나 그들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지성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없다. 지성인이라면 유의할 대목이다.
아주 짧게 설명되어 지나치기 쉽지만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구절도 있다. ‘예상치 못했던 영예가 돌아올 수도 있고[불우지예(不虞之譽)], 정성을 다해 완벽함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해가 되고 질타가 되어 돌아오는 일[구전지훼(求全之毁)]도 있다’는 부분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열정을 다해 뜻을 펼쳤으나 돌아온 것은 비방과 좌절밖에 없었던 맹자 스스로의 위안이기도 하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루편은 세미나와 같이 ‘자왈(子曰)’ 체를 유지하다가 학생들이 손들고 질문하는 형식이 끝까지 이어지므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학문에 몸을 담거나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는 젊은 지성인들은 느끼는 바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5) 만장편
만장 장구에서는 주로 세 가지의 핵심 내용이 다뤄진다.
① 만장은 맹자의 대표적인 수제자로 맹자와 ‘맹자’를 함께 편수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만장편의 주된 이야기는 당연히 만장과의 토론인데, 만장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온갖 모순에 대해 의분(義憤)에 가득하고 모순을 타파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제자이다.
② 만장에서는 유가의 성인인 순(舜)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소개된다. 순임금은 효(孝)의 상징으로 대효(大孝)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유가의 핵심 덕목인 효의 철학에 대해서 다각도로 풀이된다. 그 이후에 천자(天子)의 양위를 이야기할 때는 ‘민심(民心)=천심(天心)’이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③ 교제방법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관계’와 ‘공유’로 구분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벗은 두 육체에 깃들 하나의 영혼이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도(道)’를 공유하는 것이 교제의 궁극적인 목적인데, 임금은 선비와 교제할 수 없다는 논리가 매우 특이하다. 곧 임금이 선비를 등용했다면 군신 관계이므로 교제가 불가능하며, 임금이 선비를 스승으로 모신다면 사제지간이 되므로 교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이 처한 위치에 따라서 관계의 여러 가지 차등이 있다.
그리고 교제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교유를 말한다. 맹자가 만장에서 교제를 유독 강조한 이유는 세상의 바른 길은 한 사람만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이다.
맹자가 만장에게 일러 말했다. “한 고을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한 고을의 우수한 선비와 사귀고, 한 나라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한 나라의 우수한 선비와 사귀고, 천하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천하의 우수한 선비와 사귄다. 천하의 우수한 선비를 사귐으로써도 부족하다면, 또 나아가 옛사람을 논한다. 그의 시(詩)를 외고, 그의 책을 읽고도, 그 사람을 모른다면 되겠는가? 그래서 그 세대를 논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나아가 옛사람과 친구로 사귀는 것이다.”
『맹자(孟子)』, 「만장 하 8절」
6) 고자편
고자편에는 인간 본성은 성선라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우연적일 뿐이라는 고자와 논쟁하는 대목이 주를 이루지만, 학문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맹자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전국시대라는 시대상황에서 자신의 학문이 펼쳐지지 못하리라는 구조적 문제를 감지하며, 왜 성선(性善)이 쉽게 물들고 지켜지기 어려운가 그 원인을 세밀히 분석한다. 그것은 지키기는 어렵고 없애버리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며,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시대적 상황이 덧붙여졌다.
맹자는 분석 작업 끝에 전국시대에는 종횡가들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착한 철학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 착한 사람이 고난에 쉽게 빠지는 이유를 ‘천(天)’의 목소리에 비유하여 초연히 밝힌다. 이 구절은 맹자의 전 구절 중에서도 백미로 꼽는 문장이며, 개인적으로는 고난에 처할 때마다 들여다보며 힘을 얻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것을 체념적이거나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자신의 실패에 대한 정당성으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순(舜)은 밭고랑 가운데서 발탁되었고, 부열(傅說)은 성벽을 쌓는 사이에서 천거되었고, 교격(膠?)은 생선과 소금을 파는 중에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는 옥관(獄官)에 의하여 천거되었고,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천거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이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수고로이 하고, 그 신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 보고, 나아가 그가 하는 일마다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고, 그가 할 수 없는 바(능력)을 북돋운다. 사람은 항상 잘못이 있은 뒤에 고칠 수 있고, 마음에 곤란을 받고, 생각이 막힌 뒤에 분발하여 일을 하고, 얼굴색에 나타나고, 말소리로 나타난 뒤에 이해를 한다.
안으로는 법도와 전통이 있는 세습 신하나 진중한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이나 우환이 없는 임금의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 그런 뒤에야, 우환 속에서는 생존하고, 안락 속에서 비로소 사멸한다는 것을 안다.
『맹자(孟子)』, 「고자 하 12절」
7) 진심편
진심은 마음을 다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본성을 안다는 것이고 본성을 아는 것은 ‘천(天)’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천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치를 몸소 체득하고 일상화하는 학자의 이상향을 그려낸 것이 진심편의 요의이다.
군자는 도를 낙으로 삼아 여유를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우주와 같이 기품이 넓고 유연하다. 세상 만물 모든 것은 다 그 사람에게 귀의하고 있으며 우주를 품은 기상으로 현실 세계를 끌어안는다.
광대한 토지와 많은 백성은 군자가 바라는 것이지만, 즐거움은 여기 있지 않다. 천하의 중앙에 나라를 세우고, 사해의 백성을 안정시킴은 군자가 즐거워하는 것이나, 천성은 이것을 향해 있지 않다. 군자가 본성으로 지니는 것은 비록 (그의 도가 천하에) 크게 행해진다 하더라도 여기에 더 보탤 것이 없고, 비록 곤궁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여기서 더 뺄 것이 없으니, 본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지니는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마음에 뿌리로 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빛깔은 윤택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드러나며, 사지에 널리 펼쳐져서 비록 말이 없어도 명확히 드러난다.
『맹자(孟子)』, 「진심 상 21절」
비록 군자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우지 않고도 알게 되는 양지(良知, 선험적 지식)와 배우지 않고도 알게 되는 양능(良能, 선험적 능력)이 있으므로 도에 도달하는 것은 마음 먹기 나름이며 도의 성취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비록 현실은 괴롭고 좌절이 더 많은 일상이지만, 군자의 풍모를 배우고 도가 펼쳐지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학자의 모습이 진심편에 그려져 있다.
5. 맹자의 비하인드스토리
맹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급진적인 사상 때문에 당시의 군주들에게 신망을 얻지 못했음은 물론 대대로 금서의 처지에 놓였다. 심지어 한나라의 무제는 맹자의 초상화를 오늘날의 다트처럼 사용했다. 종종 맹자의 얼굴에다 대고 화살을 쏘며 불경한 학자라고 욕했다.
송나라 주희에 이르러서야 사서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맹자는 우여곡절이 많은 책의 하나였다. 그런 까닭에 사서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가판대에서 파는 잡지 취급을 받았다. 이러한 처지의 원인이 되는 두 구절을 소개한다.
제선왕이 재상에 관하여 물으니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무슨 재상을 물으십니까?”
“재상이 다른가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성의) 귀족과 친척의 재상도 있고, 다른 성의 재상도 있습니다.”
“청컨대, 동성 귀족 친척의 재상에 대하여 묻겠습니다.”
“임금이 큰 잘못이 있으면 간(諫)하고, 이를 반복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임금의) 자리를 바꿉니다.”
왕은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다.
“왕께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왕이 신에게 물어서, 신이 감히 올바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의 얼굴색이 안정된 뒤에, 다른 성의 재상에 관하여 물었다.
“임금이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이를 반복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떠나갑니다.”
『맹자(孟子)』, 「만장 하 9절」
맹자의 사상 면면에 위와 같은 사고가 펼쳐지지만 이처럼 파격적인 설은 다시 보기 힘들다. 때문에 교양 수준이 미흡했던 한무제같은 임금들이 즐비한 중국 왕조에서 진면모를 인정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금서에서 놓여남은 물론 사서의 반열에 오르는 데 공헌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공손추 : “이윤은 ‘내가 의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수 없어, 태갑(太甲)을 동읍으로 추방하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고, 태갑이 어질게 되어, 또 그를 데려오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하였습니다. 어진 사람이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정녕 추방하여도 됩니까?”
맹자 : “이윤의 뜻을 가졌다면 되지만, 이윤의 뜻이 없다면 찬탈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 31절」
주희는 군주에게 맹자의 요지를 간곡히 설득한 후에야 사서의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문화혁명때는 공자가 화를 입었고, 맹자는 오히려 재발견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야말로 맹자의 말처럼 ‘불우지예(不虞之譽)와 구전지훼(求全之毁)’에 다름 아니다.
6. 맹자 텍스트
내가 접한 맹자 텍스트는 성백효 선생의 맹자집주(전통문화연구회)와 김종무 선생의 맹자신해(민음사), 홍인표 교수의 맹자(서울대학교출판부)이다. 특히 이 중에서 홍인표 교수의 텍스트를 신뢰하는 편이지만, 문맥과 친근하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최근에는 이기동 교수의 맹자강설(성균관대학교출판부)의 이야기를 접했지만 아직 읽어보지는 못해 코멘트할 게 없다. 시간이 나면 이기동 교수의 사서삼경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7. 하고 싶은 말
논어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체계도 더욱 세밀한 맹자를 정리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리뷰를 쓰기 위해 사전작업에만 일주일이 소비되었고, 집필을 시작한 것이 어제 오후 세시 경이니까 14시간의 고된 싸움이었다. 특히 각 편을 새로 읽고 요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괴로웠다. 예전부터 각 편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의미, 그리고 편과 편 사이의 의미 관계망에 주목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맹자를 나름대로 정리했고 맹자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맹자의 요의를 더욱 상세히 전달하기 위해 원전의 중요한 부분을 초록한 50쪽짜리 한글파일을 첨부한다. 각 편의 요지와 함께 읽거나 따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과연 이만한 글을 모두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스스로 추궁하기도 하지만 동양철학에 대해서, 전통문화에 대해서 갈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생각할 때 헛된 14시간은 아니라고 장담한다. 개인적으로도 이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14시간이었다.
드디어 나는 맹자의 결계에서 풀려났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