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슴으로 쓰는 리뷰

- 1. 서문

 

사실 이 글의 제목은 ‘가슴으로 쓰고 싶은 리뷰’이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시사모’)의 행사가 있던 날, 지각한 나는 빈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몇몇 사람들이 참여하는 조촐한 모임이라 생각하였는데, 대부분의 시사저널 기자들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시사모 회원 즉 독자들도 모여 있었다.

공식 행사 중 복학을 앞둔 독자의 편지 낭독이 진행 중이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순수한 걸까. 저마다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인사를 건네 달라고 권했다. 준비된 멘트가 없이 나는 ‘내가 안일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우리들의 만남을 근사하게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뒤이은 술자리에서 문정우 기자님이 나에게 ‘가슴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가슴이 콱콱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나의 분노와 우리 언론의 처지에 대한 슬픔이 교차되어 숨을 고르며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일독했지만, 시사모 모임 이후 자세를 곧추어 잡고 다시 읽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가슴으로 쓰는 리뷰’의 ‘서문’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리뷰 형태로 만들어진 ‘긴 서문’이다.

이 글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리뷰’의 첫 장이다. 나는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볼 요량이다. 만나서 그들의 심사와 그간의 사정을 묻고 이를 생생히 기록하고 싶다.

그 전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1. 반성의 기록

 

반성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명백한 잘못에 대한 회한’이며, 다른 하나는 ‘냉철한 성찰로 인한 자아의 발견’이다. ‘반성’이라는 것은 ‘용기’와 ‘성찰’의 절정이다. 보라. ‘명백한 잘못’에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으냐. ‘기자로 사는 법’은 ‘반성의 기록’이다. 이것은 ‘반성문’과는 구별된다. 차라리 시사저널의 역사와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묵시록’이다. 이 책의 한 기자는 ‘시인 김수영’을 반성의 거울로 삼았다.

 

그의 산문은 원고지 네댓 장짜리 조각 글 하나도 허투루 쓴 것이 없는데 스스로에게는 ‘글을 팔아먹지 말자’고 채찍질하고 있다. 치열한 시인의 문학 정신과 오죽한 기사 문장 따위를 비교하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어쨌든 그 날로 당장 나는 원고 장사를 마감했다.

- 김상익 전 편집장, 21~22쪽

 

이들은 왜 반성의 글을 남겼을까.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니면 냉정히 성찰할 것이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다만 시사저널의 한 기자가 복잡한 심사를 기탁한 칼럼의 조각으로나마 반추해볼 뿐이다.

 

“내몰려 본 자는 안다. 그 황량한 무력감과 들끓는 분노와 어이없음과 수시로 떠오르는 회한들을. 정치적 올바름과 윤리적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역시 한 세상이 돌고 또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의 실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패배주의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처세담화의 절정을.”

- 문학평론가 이명원, 한겨레 칼럼(기자가 시사모 사이트에 인용함)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파업의 현재 상황에서 그들이 두려운 것은 바로 스스로의 마음이다. 가슴의 열정은 식지 않았지만, 뛰어다니고 정신없이 마감을 해야 하는 터전에서 내몰려 고독하고 피로한 싸움을 하다가 혹시나 현실에 굴복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파고들 때 이들이 부여잡을 수 있는 ‘부적’이란 바로 열정과 정신이 보존되어 있는 이 기록일 것이다.

사람은 목마를 땐 목을 축이고, 눈앞이 막막할 때는 영감을 주는 ‘뿌리’가 필요하다.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이 책은 온전한 ‘뿌리’의 역할을 할 것이다.

 

 

2. 대간(臺諫)이라는 자의 사명과 언론의 매너리즘

 

사간원(司諫院) : 조선 시대에, 삼사 가운데 임금에게 간(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태종 원년(1401)에 설치하여 연산군 때 없앴다가 중종 때 다시 설치하였다.

대사간(大司諫) : 조선 시대에 둔, 사간원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삼품으로, 임금에게 정사의 잘못을 간(諫)하는 일을 맡았다. <표준국어대사전>

 

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잘못된 일에 대하여 직접 말하는 일, 즉 직간(直諫)이었다. 때문에 신변의 위협은 물론 멸문지화를 당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관직이 사라졌지만, 이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론직필(直論直筆)을 일삼는 사람들, 바로 기자들이다.

진실은 때로 매우 큰 위험을 동반한다. 소송이 빈번하고 살해 위협이 상존하고, 실제로 살해되기도 하는 이들이 바로 기자이다. 유럽에서 코소보 사태가 발발했을 때 공항이 폐쇄되었는데, 수십 시간 대기해야 하는 탑승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단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로 작가와 기자이다. 그만큼 유럽인들이 이들에게 가지는 존경심은 대단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 즉 기자가 모시고 받드는 왕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들에게 대사간이라는 관직을 허락한다. 다만 나 같은 왕이 수천만은 된다는 것. 이 관직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왕들의 관심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실은 경향신문의 애독자이자 열독자이다. 직론직필(直論直筆)은 다름 아닌 경향신문의 사시(社是)이기도 한데, 2~3년 전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사를 서캐훑이하고 스크랩을 해놓은 것이 1만개가 넘는다. 신자유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한 척박한 환경에서 비판적이고 균형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들만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직업이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시사모 뒤풀이에서 만난 한 기자에게 ‘매너리즘에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바로 기자’라고 서슴지 않고 얘기했던 것이다.

기자님들이여, 신문의 독자와 함께 옛일을 돌이켜보자. 마감에 쫓겨 설익은 기사를 송고하다 못해 그런 일에 무감한 적이 없었는가. ‘~라고 밝혔다’, ‘~한 대목이다’, ‘~라고 회고했다’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 안에 무책임을 감춘 적이 없었는가. 독자들은 안다. 이 기사가 발로 뛰면서 만들어낸 기사인지, 기자의 타성에서 배설된 것인지. 대다수의 언중은 속일지언정, 한 사람의 독자는 속일 수 없다. ‘정부 당국자에 의하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과 같이 익명의 취재원을 남용한 적이 없었나. 혹은 스스로 그 익명의 취재원이 된 적은 없었나. 금창태 사장이 말한 ‘익명 취재원 불가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익명의 취재원에 대한 남용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매너리즘은 기자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이에 대한 한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자.

 

돌이켜보면 언론의 무관심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CBS 사태 혹은 ‘경인일보’ 사태 때 나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사태에 대해서 알아보았나? 아니면 시사저널 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발발한 ‘시민의 신문’ 사태와 ‘인천일보’ 사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나? 그렇지 못했다. 그러므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시사저널 사태에 무관심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 고재열 기자, 237쪽

 

기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또 있다. ‘새로움’을 보여주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관료적 특성’을 다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작가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또는 독서계에서 도태된다. 하지만 기자들은 무심한 시청자, 관객, 독자들의 새로운 취향을 좇으면 그만이다. 구조적으로 기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에 대해서 면역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시사저널의 기자들이 대한민국 언론의 ‘매너리즘’에 대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진실은 자수하는 법이 없다.

 

김훈, 아니 김국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비빌 언덕’이다. 김국은 고백한다.

 

오늘 시사저널의 사태는 저 개인의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저도 그 때 무너진 기자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30년의 세월을 무효화하는 것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나는 내 후배들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끝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김훈의 인터뷰, 223쪽

 

김훈은 1995년 후배 기자에게 하나의 지시를 내린다.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명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던 시기였다.

“5.18 당시 언론이 얼마나 웃기는 보도 행태를 보였는지 되짚을 때가 됐으니 관련 내용을 취재하라”는 그 요지였다.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경향신문), ‘역사의 혼이 키워 낸 신념과 의지의 30년’(중앙일보), ‘우국충정 30년-군 생활을 통해 본 그의 인생관’(동아일보),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한국일보) 같은 기사들을 보며 나는 실소했고 또 분노했다. 기사를 일람한 뒤 당시 언론 상황에 밝은 전현직 언론인들을 취재하고 돌아와 단숨에 기사를 써 내렸다. 나는 의분에 차 기사를 썼고, 실제로 기사가 나간 뒤 반응도 뜨거웠다. 1980년의 언론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매체는 당시 시사저널이 거의 유일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난 뒤 김국이 폭탄선언을 했다. 한국일보의 신군부 찬양 기사를 자신이 썼다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기사의 바이라인(기사에 필자 이름을 넣는 일)이 ‘특별취재팀’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김국이 그 일에 연루돼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분노하기보다는 허탈했다. 그 뒤로 나는 김국이 세상에 대해 보이는 ‘위악(僞惡)’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80년 당시 그는 5년차 기자였다고 했다. 편집국 위계에서 5년차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막 날개를 펴려던 청년 기자에게 너무도 가혹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 김은남 기자, 111~112쪽

 

정의와 진실은 항상 뒤늦게 발동한다. 또는 영원히 파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양에 따라 사회적 성숙도가 결정된다.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은 알아야 한다. 진실을 숨기는 것은 소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거대다수에게는 좌절을 안겨준다. 때문에 ‘진실’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감히’ 숨기지 않는다. 진실을 숨기는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한 진실과 정의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진실과 정의가 늦게 발동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를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진실 판단에는 시간과 성찰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생각보다 일찍 진실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거나, 아주 오래 전부터 진실이 몸에 밴 경우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너무 늦게 진실을 알았거나 정의와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고유 특성이므로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최악의 경우는 지금과 같은 경우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의가 사라지고, 매체도 기자도 진실과 정의에 불감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상식’으로 통할 때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그것으로 밥을 먹는 언론과 이들의 비즈니스에 존경을 표하는 사회에서 ‘언론정신’이라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이때의 진실과 정의는 ‘뒤늦은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잘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는 스스로 자수하는 법이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잡으려는 사람에 의해 끌려나올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목숨을 걸고 진실을 잡으려다가 진실에 채여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사모 행사에서 보았던 기자들은 상처받았고, 오랜 시간 시달렸기 때문에 맑은 정신이 눈에 보였다. 나는 이 아름다움이 어떤 아름다움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이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싶다. 왜냐하면 진실과 정의는 뒷발로 채이면 몹시 아프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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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uck 2007-04-2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승주나무 2007-04-2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duck 님// 쑥스럽습니다. 조금 애정이 있을 뿐이죠. 아무튼 반갑습니다^^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아들에게 (고종석, 김훈)

 

 

                         성년의 문턱에 선 아들에게



   급히 마무리해야 할 글이 있어서 어제 네 졸업식에 가지 못했다. 서운했을 수도 있겠구나. 굳이 겨를을 내자면 못 낼 것도 없었지만, 네 어머니와 고모가 간다기에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았다. 더구나 아비는 세 해 전 네 형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으니, 네 졸업식에도 가지 않는 것이 공평한 일인 듯도 했다. 졸업을 축하한다. 그리고 이제 성년의 문턱에 이른 네게 몇 마디 당부를 하고 싶다. 이것은 아비가 자식에게 건네는 당부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문을 나서는 네 세대 청년들에게 앞선 세대가 건네는 당부이기도 하다.

 

   너는 어제 열두 해의 학교 교육을 마쳤다.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 모두에게 의무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 기간보다 세 해 더 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것은, 네 둘레의 친구들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너 역시 네 세대의 가장 불운한 한국인들에게 견주어 학교 교육의 혜택을 더 받았다는 뜻이다. 그 여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네 동갑내기들 가운데는 학교 공부에 대한 열의와 재능이 너보다 컸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마라.

 

   너는 이제 열아홉 살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다정다감한 부모들이 20대, 30대의 어린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터라 네겐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비 생각에 열아홉이면 두 발로 설 수 있는 나이다. 그것은 이제 네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기 시작할 나이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 독립의 첫걸음으로 우선, 앞으로의 학교 공부는 네 힘으로 하려고 애써라. 국가가 고등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대학에 다니고 싶으면 제가 벌어 다니라는 말이 야박하게 들릴 줄은 안다. 그러나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네 동갑내기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 또 네 형도 제 힘으로 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라. 지금 당장 온전히 독립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네가 아비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꼭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라.

 

   성년의 표지로서 경제적 독립 못지않게 긴요한 것은 정신의 독립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든, 책을 읽거나 신문·방송을 보든, 네가 접하는 지식과 정보와 의견들에 늘 거리를 두도록 애써라. 줏대를 버린 뇌동은 그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공동체에게도 크게 해롭다. 그러나 줏대를 지닌다는 것은 독선적이 된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줏대를 지니되, 진리는 늘 여러 겹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라. 독립은 고립과 아주 다르다. 고립은 단절된 상태를 뜻하지만, 독립은 연대 속에서도 우뚝하다. 연대는 어느 쪽으로도 향할 수 있지만, 아비는 네 연대가 공동체의 소수자들, 혜택을 덜 받은 사람들에게 건네지기를 바란다. 적어도 너 자신보다는 소수자의 표지를 더 짙게 지닌 사람들 쪽으로 네 연대가 길을 잡기 바란다. 높이 솟아오른 정신일수록 가장 낮은 곳을 응시한다.

 

   네가 막 그 문턱에 다다른 세상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상상하던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사악한 이성과 욕망의 온갖 광기가 휩쓰는 세상에서 너는 너 자신과 아비를 포함한 인간의 비천함에 절망하고 지쳐, 어느덧 그 비천함의 능동적 실천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노출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더러워 보이는 세상 한 구석에 인류의 역사를 순화하고 지탱해 온 순금의 정신이 숨어 있다는 것도 잊지 마라. 그 순금의 정신은 상상 속의 엘도라도가 아니라 바로 네 둘레에 있을 수도 있다.

 

   네가 잘 알고 있듯, 아비는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했고 충분히 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뒷세대가 저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아비에게도 스스로 이루지 못한 것을 네게 당부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독립적이 되도록 애써라. 소수자들과 연대하려고 애써라. 다시 한번, 네 졸업을 축하한다.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김 훈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 스러울 뿐이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 폐지해서,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것이다. 그런데, 얘야,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 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무너지면그 위에 세워 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적이다.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경험칙이다.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수가 있다. 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아.'생의 외경', 외경 스러운 도덕은 밥벌이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밥을 벌 수 있다. 우리는 구석기의 사내들처럼 자연으로부터 직접먹거리를 포획할 수가 없다.우리의 먹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있다. 그런점에 서 우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밥은 끼니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밥에 비할진대,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동해서는 안 된다.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낱알들이 입 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시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정이 꿰여저서 끌려가게 된다.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註] 부 (否) 라! -이 간결하고도 명석한 외마디 부정문은 부정되어야 할 것을 깡그리

초토화 시키는 권능을 갖는다.그리고 다시 부정될 수 없는 위엄을 갖추고있다.

조지훈 선생의 어법에서 차용한 이것을 선생의 혼백이 아시면 난 혼나야 한다.

 

 

 

**고종석 님의 책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를 보다가 앞선 칼럼을 보았어요. 불현듯 과거 어느 월간지에서 읽은 김훈 님의 아래글이 떠올라 찾아 보았어요. 김훈 님의 책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에 아랫글이 있네요. 이 두 분의 조언을 함께 모아서 보면 좋은 쪽으로 상호작용할 것 같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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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18: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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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2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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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2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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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모의 회원으로서 어제 있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번팅이나 정모인줄 알았는데, 공식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시뻘건 책(기자가 된다는 것)의 주인공들을 대거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밤이었고, 우리는 그 행복이 무슨 행복인지 알았습니다.
자학적이고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복이라는 사실을.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은이) | 호미, 268쪽, 2007년

부제 :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제가 어제부터 이름을 '안일이'로 바꾸게 된 경위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속으로 잠깐 화두로만 쓰려고 내놓은 말인데, 그 자리에서 기자님들에 의해서 아예 '안일'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참 기자라는 분들은 날카로운 펜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낭중지추라고 했나요. 그러니 시사저널이라는 주머니가 가만 있지 않았겠지요.

제가 안일했던 것은 또 있습니다. 기자들과 술을 그렇게 논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술은 대충 요령으로 넘기고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겁없이 버팅기다가 결국 가방을 놓고 왔습니다. 마침 가방은 무적전설 님이 챙겨두시겠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다시 만나자'라는 말 앞에 '최대한 빨리'라는 수식어가 붙고 말았습니다.

그것밖에 없었냐구요?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술도 취하지 않았는데 순동이 누나를 붙잡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감히 기자님 앞에서 '언론과 언론社의 정체성'에 대해서 따져물었습니다. 순동이 누나는 달관의 미소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순동이 누나의 진정성이 아니라 진품 시사저널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은주 누나(제 마눌님 이름이기도 한)에게는 '도대체 우리나라에 '언론 상식'이라는 글자가 있기는 한 거냐?'고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은주 누나에게서는 '토닥토닥'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자라 잘 알지도 못하는 CSR이니 SRI 같은 말들을 짓거렸습니다. 실명을 거론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분이기도 하며, "우리 나라 10년 안에 위험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고마운 충고를 해주셨던 그 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깡패'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농업에서 시작된 '지속가능'이라는 화두가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깡패 분은 아직도 우매한 대중을 공포 정치로 어찌 해보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기업철학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콱콱 막혀 옵니다. 은주 누나의 말 없는 '토닥토닥'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표합니다.

사실 제가 뻘건 책(기자로 산다는 것)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대항하려 합니다. '안일에도 격조가 있다' 그러니까 제가 덜 안일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자 님들을 만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마지막 인사를 권해주셨던 분에게 매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인삿말 덕분에 한 다섯 시간을 술독에 빠지고, 그리고 이렇게 김수영의 '낙타과음(駱駝過飮)'과 같은 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뻘건 책을 들고 가방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좀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가방을 찾는 척하면서 쳐들어가렵니다. 제가 고리타분하게 문자를 남발한 것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은남이 누나였던가요. 명숙이 누님이었던가요.

歲漢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송백지후조 : 찬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논어>

위와 같은 '문자'를 날려댄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군요. 감히 고수를 몰라 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보다 훨씬 덜 안일했던 '굴원' 할아버지의 글을 남깁니다. 시사저널 기자님들하고 어찌 이리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굴원은 바위를 쳐들고 멱라수에 자빠졌지만, 돌을 쳐들고 자빠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회사(懷沙)

양기 넘치는 화사한 초여름이라.
초목이 무성하구나!

상심한 심정을 깊이 슬퍼하며,
물을 따라 남쪽 땅으로 쫓겨왔네.
눈앞이 망망한 산수를 바라보니
지극히 고요하고 말이 없구나!
원통함은 가슴에 맺혀
풀어볼 길이 없이 영원히 막혔네.
비통한 마음 달래고 어루만지며
고개 숙여 스스로 억누르려 하네.

모난 것을 깎아 둥글게 만들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법도는 바꿀 수 없네.
본래 갈 길을 바꾸는 것을
군자는 추잡하게 여긴다.
멱줄 따라 바르게 긋는 것은
옛날 법도와 다름이 없다.
마음이 곧고 성품이 중후한 것을
현명한 사람은 존중한다.
솜씨 좋은 장인이 깎고 다듬지 않으면
누가 그 굽고 곧음을 알겠는가!
검은색 무늬를 어두운 곳에 두면
눈뜬 봉사는 무늬 없다 하고,
이루(離屢)*는 눈을 가늘게 뜨고도 볼 수 있는데
맹인은 그의 눈이 밝지 않다고 여긴다.


흰 것은 검다고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한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날아 다닌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나의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짐은 무겁고 실은 것 많건만
수렁에 빠져 건널 수 없구나.
아름다운 옥이 있지만
곤궁하여 보여 줄 수가 없네.
마을의 개들이 떼지어 짖는 것은
개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지.
준걸을 비방하고 호걸을 의심하는 것은
본래 못난 사람들의 태도이지.

재능과 덕성이 가슴 속에 흐르건만
나의 남다른 재능을 아무도 몰라주네.
재능과 덕망이 쌓였어도
내가 가진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인의를 더 닦고
삼가고 돈후하여 넉넉해졌건만,
순임금 같은 분을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나의 참모습을 알아주랴!

예로부터 [어진 신하와 군주는 때를] 같이하지 못하니
어찌 그 까닭을 알리오?
탕임금과 우임금은 아득히 먼 분이라
막막하여 사모할 수도 없네.
한을 참고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 내 자신을 스스로 힘써 본다.
슬픔을 만났으나 절개를 꺾지 않으리니
내 뜻이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머물려 하니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어둠이 깔리네.
근심을 삼키고 슬픔을 달래면서
오직 내 죽음을 바라본다.


* 이루(離屢) :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 유달리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을 터럭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맹자에 나오는 그 이루가 맞다.

 

ps :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이 황우석 사건으로 시끄러웠을 때, 그리고 pd수첩이 생사의 기로에 빠졌을 때 아무도 pd수첩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사저널은 사태를 꼼꼼히 관찰하고 '충분히 타당한 비판이다'는 평가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후에 pd수첩 관계자들이 이 일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후에 '시사저널 사태'가 생겼습니다. 이를 보도한 pd수첩의 방영분은 여러분이 보신 것과 같습니다.

알라딘 피에스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44228

작년 초에 했던 설문조사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했습니다. 그때는 '시사저널' 자체를 몰랐군요. 부끄럽습니다. 결국 한겨레21을 보기로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후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시사저널을 알았다면, 혹은 시사저널이 많은 표를 받았다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요. 아마 투표를 하신 분들까지도 저는 원망하였을 겁니다. 워낙 속이 좁은 놈이다보니까요. 
깜짝 놀랄 만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서명숙 누님(편집장)은 "한겨레21도 훌륭한 시사잡지이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 한겨레21의 공격은 너무 괘씸하다고 제가 불평했습니다. 그랬더니 은남이 누난지 은주 누난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당연한 거다. 영업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다. 하지만 한겨레21이라는 언론의 정신은 분명히 있다. 이것이 같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어요.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언론은 스스로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언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인간적이기 때문이죠. 보도부장은 삼성을 까는 기사를 잃지 않으려 윗선과 다투고, 광고부장은 광고를 잃지 않으려고 또 윗선과 다투는 광경이 벌어지는 언론사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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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2007-03-18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의 낙타과음! 비유가 참 멋져요.^^
촘스키,
"모든 형태의 권력은 그 자체가 사악하다!!!"

승주나무 2007-03-1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음 님//안녕하세요. 독서에서 나온 비유라고나 할까요 ㅋㅋ
과음과 장문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글인 것 같아요. (낙타과음이요)
 

 우리나라의 표절 시비가 한창이다.
'표절'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고민해서 애써 이룩한 성과물을 허락 없이 베낀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의미'도 덧붙여지는 추세다.
서울대 논술문제에 표절시비를 건 사교육 강사의 경우는 사교육 전례를 비춰보았을 때 '한 건'에 대한 관점이 강하다. 서울대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이미 '이의 제기자'들의 관심사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들은 이익실현을 한 셈이다. 표절 등의 사회문제가 대세가 될 때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한 여진들이 신문지상에서 매일같이 쏟아진다. 쏟아진 여진만큼 사람들의 판단력도 마비됨을 보게 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호사카 유지라는 세종대 교수는 경향신문에 흥미 있는 칼럼을 기고했다.

[한국에 살아보니] 일본의 억지를 이기는 법


이 중에서 "한국측은 그런 일본의 행동에 항상 화를 내는 것으로 오히려 감정을 지배당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나쁘지만, 한국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주요 쟁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갖고 있다면 냉정하게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일본도 한국에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라는 조언은 귀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력이 급격히 흐려지는 병통을 앓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언론의 '박리다매'이거나 호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표절 사태를 심층적이고 명쾌하게 건드린 논의들이 언론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아니면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원로들은 어떤 마음에서 표절을 '감행'했을까? 이들이 왜 표절했는지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음이 안타깝다.
매우 오랫동안 학문에 정진하신 분들의 고견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불경스럽기도 하거니와 나의 내공으로 가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지만, 항간에 논의되는 '표절 문화'라는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허무한 관점보다는 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맹자는 사람의 병통 중 가장 큰 것이 '항상 누군가의 스승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최소한 원로들이 사회의 대세에 편승해 돈을 벌고자 표절에 동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학계에 경종을 울리고 자성을 촉구하고자 한 진심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학자는 대중에게 혹은 동료 학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성을 촉구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것은 자신의 학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편집'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면 시류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학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논술강사는 논술강사로서 자성을 촉구하고, 작가는 작가로서,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자성'을 촉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자성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본인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의지를 가지고 누군가의 자성을 촉구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닐까. 학문적 타성은 여기서 파생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분들이 데카르트처럼 하룻밤이라도 엄밀히 성찰하고 반성하기를 시도하였다면 이들이 노출한 것들을 대부분 포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들이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해서 표절을 했다는 비판은 너무나 관대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본질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고, 때문에 일관된 행동이 나타나지 않은 자멸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내가 학계를 도매금으로 비판할 입장에는 절대로 있지 못하겠지만, 학문을 사랑하는 젊은이의 입장에서 우리의 학문이 자멸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애통하다.

진실 배반한 과학원로들…외국책 베껴 파문
입력: 2007년 03월 02일 18:15:49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를 계기로 연구자의 표절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출간된 책이 외국책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과학계 원로들이 과학자의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리자며 쓴 ‘탐욕의 과학자들’(왼쪽). 1982년 미국에서 출간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무단도용한 저자들이 한국천문학회장을 역임한 경희대 민영기 명예교수,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건국대 박택규 명예교수 등 과학계 원로들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2일 출판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출간된 ‘탐욕의 과학자들’(일진사 펴냄)은 전체 25%에 해당하는 84쪽을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에서 무단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책은 갈릴레오·뉴턴·다윈 등 고대 과학자에서부터 최근 과학자들까지 표절 등 부정행위 사례를 엮어 출간됐다. 머리말에는 ‘연구 진실성과 투명성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출판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 책은 1982년 뉴욕 타임스 과학담당 기자인 윌리엄 브로드 등이 저술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국내에서 한차례 번역소개됐지만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가 지난달말 미래M&B에서 재출간됐다.

‘프롤레마이우스의 관측 오류’를 담은 부분의 경우 ‘탐욕의 과학자들’과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 내용이나 표현, 글의 진행이 거의 유사하다. 갈릴레오, 뉴턴, 돌턴, 다윈, 멘델 등의 부정행위를 설명하는 총 19쪽에 달하는 내용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다. 로버트 훅의 부정행위 사례를 담은 부분 역시 29~30쪽에 걸쳐 그대로 베꼈다. 심지어 민영기 교수가 필자로 돼 있는 ‘펄서 발견에 얽힌 사제 간의 공적 논란’은 15쪽에 걸쳐 주어·서술어·수식어의 흐름이 모두 유사하다.

당사자도 ‘무단도용’에 대해서 시인했다. 민영기 교수는 “다른 공동저자가 원서를 주면서 저작권이 이미 소멸돼 편저로 내자고 했다”며 “책이 출간된 이후 표지에 저자로 돼 있어서 출판사측에 잘못됐다고 항의했다”고 해명했다. 박택규 교수는 “편저라 하더라도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라며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을 판권 없이 편집출판하는 관행에 대해서 잘못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인 일진사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일진사는 출간된 이후 ‘편저’라는 사실을 필자들로부터 들었으나 곧장 책을 회수하지 않았다. ‘편저’라고만 쓰인 띠지를 만들어 판매를 강행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출판한 미래M&B측은 “책의 일부를 발췌한 것도 아니고 무더기로 베꼈으며 역사연표까지 모두 표절했다”면서 “출처를 표시하든가 번역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진우·임지선·이고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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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려니와,
나와 어머니는 각별한 관계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참 바보 같은 말이다.
붕어빵이라는 말은 주로 '생김새'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 '붕어빵'은 '내면'에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차이는 '외면의 붕어빵'에 비해 '내면의 붕어빵'은 한참 뒤에 깨닫는다는 거.
사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내면의 붕어빵인 어머니의 내면이 나에게 그대로 들어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를 존경해 왔지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때는 어리고 철이 없어서 정말 버리고 싶은 것들이
지금에 와서 상당부분 재평가되었다.
만약 그때 억지로라도 떼버렸다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정체성의 상당부분도 소실되었을 것이다.
가끔 활동하는 커뮤니티의 글들을 살펴보던 중 '어머니'에 대한 유독 진한 흔적을 발견한 김에,
따로 '어머니 특집'을 모았다.





제목 : 어머니가 우셨다
(2005년 5월 26일, 전역하고 제주도 내려가서 일주일만에 무작정 상경하고 나서의 얼마간의 소회를 담았다.


오늘 아침 수업받는데 어머니께 걸려온 전화.

'밥통하고 이것저것 행(해서) 보내크매(보내니까) 겅(그렇게) 알라.'

그리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말끝에 어머니는 수화기를 막으시고는 우시는 듯했다.

다시 수화기를 드신 어머니

격앙되고 울음 섞인 목소리는 아들에게는 충격이다. 물론 난 아주 태연히 달래드렸지만

'군에 보낼 때도 울지 않았는데, 서울 보내고 나니 걱정되고 밥도 손에 안잡히고, 아프다.'

아프다는 말에 아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서울이 그렇게 무서운 곳인가. 군대보다 무서운 곳이 서울이냔 말인가.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아마 당장 제주도로 도망치고 말았겠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까 잘 참아내라.'

우리들은 강하게 자라고, 살아왔지만, 서로가 서로의 커다란 약점이다.

고등학교 때 썼던 어머니란 시를 보고 어머니는 몇일을 우셨다고 했고(우리 어머니는 그리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이모는 너무 좋아 한 장 써달라고 하시고는 가져가셨다.

쓰고 나서 너무 상투적이고 유치한 모습에 나조차도 놀라고 부끄러웠던 시였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우리 같은 학문이나 문학, 글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놓치는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생각으로 표현을 해서, 그들의 가슴을 직접적으로 두드렸지만,지금은 너무 작품성과 깊이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물론 '피일시 차일시',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중간세계에 있다고 자처하는 나는 좀더 명확히 문학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서울이 어머니에게는 비정하게 비쳐졌을 수도 있다.

유아기, 그러니까 내가 생사를 넘나들던 때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일주일에 서너번

제주도와 서울대병원을 왔다갔다 하셨으니까 그때 어머니에게 비친 서울의 모습이

'울음'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와 지금의 서울이 얼마나 바뀐지는 모르겠으나,

'군대보다 무서운 서울'이라는 어머니의 독특한 이미지는 그냥 아들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아니면 전번에 이야기했던 세끼의 압박이

날마다 어머니의 밥상을 괴롭혔을 수도 있다.

밥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비치는 배고픈 아들,

국에 비치는 차비없어서 걸어가는 아들,

밥상을 닦으며 보이는 옷가지, 이부자리 제대로 차리지 못한 아들,

이때 아들은 차라리 고문이다. 어머니가 낳은 고문이다.

서울에, 타향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가 한둘이랴마는

오늘 맛있게 먹은 김밥 두 줄이 어머니의 살인 것 같아 속이 쓰리다.

나는 지금의 이 생활이 소설을 쓰는 듯한 기분이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환경에 처할 기회가 나에게는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인물을 만들고, 사건을 정하고, 대화를 진행시키고, 도입을 고민하고, 휴지를 끼워넣고

나는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냥 문학적으로 나의 현생활을 정리하고 싶다.

아니면 이론가를 불러와서 완공중인 '야생 온실론'에 대해서 들어볼 수도 있다.

'가족'은 '야생 온실론'의 모체이다. 야생은 우리가 대면한 세계이고, 온실은 우리를 감싸는 테두리이다. 야생과 온실은 묘한 균형관계를 이루며 현실을 채워간다.

'온실 안의 화초' 징크스 때문일까. 세상에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이 없는

스무 살 어린 청년이기 때문에 일부러 야생을, 야생적인 것을 찾아다니는 나의 편벽이

야생 온실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야생적인 것도, 아주 온실적인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야생과 온실이 서로 뜯어먹지 못해 다투는 것이 건강하고 현실적인 그림인 것 같다.

가난은 삶을 변형시킨다.

그러나 난 가난하지 않다.

가난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기 때문에 나는 가난하지 않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부유했는지 확연해질 것 같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부러워서 미칠 정도로 최고로 행복한 시절 위에 서 있다.

어머니의 눈물을 밟고 서 있다.


<그 외의 어머니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들>(클릭하면 됨)

엄마, 미안한데 이번에 나 못 내려가 (2007-02-16 01:56)

울 엄니가 보내주신 토마토 중에 (2006-04-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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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승주나무님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다음 글을 보면, 제가 불효자이긴 한가 봅니다. -_-

승주나무 2007-02-2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불효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니까 안타까운 거지요^^;

2007-03-13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14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