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버지니아 엘리펀트

 

프레시안(07. 04. 18) 콜럼바인, 버지니아텍을 미리 보여주다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난지 8년만에, 이번에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사건이라 불릴만한 사건이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수만 33명. 게다가 범인은 한국계로 밝혀졌다. 도대체 이러한 비극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어떻게 총기를 난사해 그 많은 사람을 죽일 행동을 한 것인가? 왜 다른 나라 총기 소유 허가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미국에선 그토록 빈번한 것일까? 혹은, 20세 이상의 남자 성인이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 사격술을 훈련 받아야 하고 비공식적인 밀수 총기가 퍼져있다고 하는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미국에서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100% 만족할 만한 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답변을 주는 영화 두 편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고, 또 하나는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이다. 두 영화 모두 둘 다 1999년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있는 영화들로, 다큐멘터리인 <볼링 포 콜럼바인>은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난사 사건을 '부추기는' 미국의 사회 시스템을 분석하고, 극영화인 <엘리펀트>는 외롭고 상처입은 두 10대 소년의 일상을 건조하게 응시한다.

<엘리펀트>에서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분노와 외로움, 상처로 가득찬 두 소년의 황량한 내면과, 표면적으로는 남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이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우리는 여전히, <엘리펀트>에서 그 평화롭고 따사롭던 오후에 두 주인공이 친구들을 향해 총질을 시작하는 명시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발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상처입은 사람들이 모두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대지는 않는다.
  
마이클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듯, 미국은 개인의 총기 소유를 법적으로 보장하면서도 이에 대한 관리와 규제에는 매우 허술하며 총기 소지가 매우 쉽다. 물론 마이클 무어가 조롱했던 것처럼 은행에 계좌만 개설하면 사은품으로 총기를 주는 수준은 아니지만(이것은 총기 구입이 그만큼 쉽다는 마이클 무어식 비아냥일 뿐, 사실은 아니다.), 버지니아공대 사건의 범인 역시 학교 근처 총기상에서 신분증 세 개를 보이는 것만으로 아주 쉽게 범행 무기를 구입했다고 한다. 사용 용도가 무엇인지 설명하거나 신고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단순히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서 그만큼 총기 난사 사건도 빈번히 일어나는 것일까? 역시 총기 소지가 법적으로 보장된 캐나다에서 연간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에 비하면 훨씬 적다.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면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임을 설파하는 시스템이라고 분석한다. 빈부의 격차가 크고 양극화된 사회 현상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과 불안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복지와 이로 인한 최소한의 생활 안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국 외부의 적을 규정하고 적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재생산함으로써 사회적 불만을 무마하는 것, 그리하여 미국이라는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 자체를 공포와 분노에 두고 있다는 것, 이른바 '공포로 통치하는 사회'라는 사실이 이러한 비극을 계속 발생케 한다는 것이다.


  
  .
분열되고 파편화된 세상이 문제

만약 이번 사건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우리는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심리적 개연성이 없다며 비판할 것이고, 혹자들은 하필 범인을 한국인으로 상정한 것에 대해 감독이 혹시 인종차별주의자인지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이것은 영화에 불과하다"며, 더욱이 "바다 건너 먼 나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며 안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이성과 논리에 근거에 행동하려 하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우리와는 다른 매우 특수한 사람,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믿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인간 고유의 의지가 아니라 악마가 들려서, 혹은 귀신이 씌여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라는 등등 수많은 바깥의 이유들을 찾고 싶어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일지 모르며 내 자신조차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신과 공포, 불안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좀더 공포를 느끼지만 그것이 '총기 난사' 사건인 경우, 총기 소지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남의 나라 현실이라 믿으며 애써 무관심한 척할 수도 있다. 사실 총기가 엄격히 금지된 한국사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은 낯설고 두려운,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은 범인이 한국계로 밝혀지고 범행동기가 (누구나 평생 무수히 겪는) 여자친구와의 불화 때문인 듯하다는 잠정 수사결과가 전해지면서, 우리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총기난사 사고'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두 번씩은 자신이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탈의 경험을 하고, 이에 대한 죄책감 한두 가지씩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일탈이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범죄'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들은 분명히 있다. 이런 비극은 분명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고, 그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러한 풍요는 모두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며, 물질의 풍요로움이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힘든, 분절되고 파편화된 세상, 각종 통신수단은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여전히 (혹은 오히려 더욱 심화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세상을 견디어나가고 있다.
  
이 고통을 타인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 탓으로 돌릴 때, 그리고 타인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사물'로 여겨질 때, 그 사회는 위험 수위로 가까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건에 정말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한국사회를 포함해 전세계 거의 모든 사회가 이미 이런 위험 수위에 다달은 현대사회라는 점을 우리가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로지 생명을 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주변에 널려 있어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런 비극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종류의 비극을 보며 지나치게 범인을 동정할 필요도, 그럼에도 그저 정신나간 특정인의 소행으로만 돌리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으로 치부하고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먼 나라에서 벌어진 일일지라도 우리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김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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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시리즈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는데, 여태껏 사서를 정리하지 못했네요. 애초에는 한 달에 하나씩 다루려고 했는데, 무리했나 봅니다.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의 저항이 만만치 않네요. 이번 회부터는 '사회화'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만약 고전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면 현재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전에는 항상 그에 어울리는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혹시 시리즈를 기다리신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있네요. 아래는 지난 시리즈의 목록입니다. 링크를 걸었으니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양사상1]<논어> 정제된 인생의 철학적 시, 혹은 시적 철학

[동양사상2]<맹자>난세에 지성인으로 산다는 것

 

 

모든 學은 大學이라야 한다

- 총기난사사건과 관련하여

 

1. 사설

 

나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을 문화가 저지른 살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총기 허용에 대해서 대학은 '불행하지만 미국에서 총기 금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이 學에 대한 심각한 왜곡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미국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으로 파견된 미군과 비교될 때가 종종 있다. 미군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엽기적인 성폭행(60대 할머니를 성폭행하는 등)이나 폭력으로 매스컴에 이름을 알리며, 한국인 유학생들은 방황하는 문화상이나 그 안에서 배태된 '마약 문제', '각종 폭력 문제'에 연루됨으로써 미국인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그에 대한 결정판이 이번 총기 난사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이 사건은 한국에 더 책임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교육 문화가 이번 사건의 진범이라고 생각한다. 범인은 으레 볼 수 있는 유학생 부적응자로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아 미국 유학길로 내몰렸으리라 생각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10만에 가까운 유학생이다. 이들 중에 더러는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잠재적 부적응자가 자꾸 늘어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런 대목이다. 

 


미 이민세관국(ICE)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를 기준으로 미국 유학생 감시시스템(SEVIS)에 등록된 한국인은 9만3728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에 있는 전체 외국인 유학생 63만998명 가운데 14.9%를 차지, 출신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인도(7만6708명), 중국(6만850명), 일본(4만5820명), 대만(3만3651명) 등의 순이었다.

- 美 한국유학생 10만시대···송금도 44억弗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번 사건에서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부분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미국에 유학보내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부모/학생의 경우는 미국 유학이 바람직한 진로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명문사학이라고 일컫는 이름 있는 대학과 교육 당국은 빠져나가는 유학생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내 글의 전매특허인 '사설'은 부담 없고 잘 읽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총기 난사사건과 같은 침통한 사건을 당하여 사설의 방향이 쏠린 듯한 인상을 받는다. 논어와 맹자에 대한 서평을 힘들게 쓰고 나서 대학과 중용은 빨리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과목의 분량을 합쳐야 논어만큼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두 달이라는 공백기를 보내고 말았다. 그보다 나를 더 괴롭힌 것은 내가 정한 룰 때문이다. 대학을 쓰기에 앞서 나는 두 달간 '대학'만을 청취했다. 그래서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특히 관료주의처럼 체계가 딱 잡혀 있어서 극적 분위기도 나지 않기 때문에 대학을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때문에 이 글을 쓰고 나서 얼른 대학에서 빠져 나와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2. 왜곡된 學과 大學에 대한 오해

 

學에 대한 왜곡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완전히 절단된 제국주의 시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는 제대로 된 學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진정한 독립국이 되지 못했으며, 광복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최근 새삼 깨달았다. 굴욕적인 FTA 협상과정과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 처참히 농락당한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난사 사건을 목격하면서부터 나는 주권 없는 국가의 국민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일본에게 지배당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리의 것을 철저히 버리고, 서구의 문물에 경도된다. 전통문화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일제 시대를 중심으로 일제 이전 문화와 일제 이후 문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가 되고 말았다. 學이라는 말 자체에는 '두 사람'이 전제되어 있다. 즉 혼자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전수를 통해 연명하는 것이다. 교육과 학습은 매우 근원적인 문제이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학문의 끈이 놓아진다는 것은 아틀라스가 지구를 들다 말고 도망쳐 버린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상호적인 學이 개인적인 學으로 분리와 변질을 거듭하였고, 성찰이자 목적으로의 學이 도구의 學으로 전락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앎의 學이 헤게모니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 매우 결정적 타격을 안겼으며 이것이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난사사건은 물론 미국 유학 1위와 함께 문제아 한인 유학생들을 낳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學뿐만 아니라 부모의 자식들 또한 헤게모니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선택에 의한 미국행이었다면 최소한의 책임이 있었을진대, 자의와는 무관하게 내몰렸다면 그 책임은 내몬 자 즉 한국사회가 져야 하는 것이다.

이제 대학으로 돌아오자. 대학은 예기의 편명으로서의 위치와 사서로서의 위치를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먼저 사서로서의 위치는 소학과 대학이라는 교육의 두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삼대(하은주)가 융성할 때는 그 법도가 사뭇 잘 갖춰져 있었다. 때문에 왕궁이 있는 서울에서부터 일개 향촌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이 없는 곳이 없었다. 여덟 살이 되면 왕의 공자로부터 서민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으로 들어가서 청소하고 어른을 모시고 집안에서와 밖에서 해야 하는 행동지침과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점괘 보기 등 기본적인 교양을 가르쳤다. 그리고 열다섯이 되면 역시 천자의 자제나 대신의 자제, 그리고 서민의 자제 중 뛰어난 자를 가려 모두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도를 심층적으로 익혔으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크고 작은 과목들이 적절히 분류되고 완성되었다.

- 대학 서문(주자)

 

그러니까 소학은 플라톤이 주창한 지,덕,체 중에 체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소학을 '초중등 과정'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천지자연의 형이상학적 이치를 초중등이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풀어놓았고, 성찰의 근원이 되는 '행동의 표본'들을 축적하는 시기가 소학의 시기인 것이다.

이것은 송대(宋代) 이후의 관점이므로 대학의 본래 취지와 다를 수 있다. 대학은 원래 예기(禮記)라는 경서의 한 편명이었다. 여기서의 대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예기를 확인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學'에 관한 이야기로 갈음하려 한다. 한중일은 '배움'이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우리나라는 '공부(工夫)'라고 하고, 일본은 '면강(勉强)', 중국은 그냥 '學'이라고 한다. 공부는 불교 용어인 듯하다.  ‘공부(工夫)’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 또는 수행에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본분에 힘을 다하는 것이란 뜻이다. 공부(功夫)라고도 하며, 주로 선종에서 많이 쓰며, 선수행에 힘쓰는 것을 말한다. '면강(勉强)'은 원래 중용에 나온 구절로서 '면강이행지(勉强而行之, 고된 노력 끝에 실천할 수 있다)'의 의미이지만, 일본에서는 '산고와 같이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는 노력'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學이라는 일반명사를 쓰고 있다. 13억 중국인의 교과서인 논어의 가장 첫머리의 제목이 '학이(學而)'라는 말에서도 보듯 중국인들은 배움에 대해 별다른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환경일 수도 있지만, 공부에 대해서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고 미화하는 부분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수명사가 될 때, 그것은 자칫 특권의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 들끓고 있는 향학렬이나 식자층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 등을 종합해 볼 때 學은 보편성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분극복을 위한 주무기로 완전히 전락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양극화를 가장 고착화시키는 것이 바로 '학력 세습'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근한 예로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역시 일반명사로서의 學이 아니라 신분상승이나 신분유지,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도구적 특수명사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大'의 쓰임이다. 이 글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大人과 巨人이다. 거인은 외양이 큰 사람을 의미하며 대인은 내면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즉 대인은 외양과 무관한 그 사람의 본질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大國과 强國은 어떤가. 강국은 미국처럼 깡패같이 힘만 센 나라를 지칭한다.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있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모든 나라를 감화할 수 있는 나라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오해하는 말 중에 고학력자와 대학자가 있다. 고학력자는 가방끈이 긴 자를 말하는데, 이것 역시 대학자와 구분이 된다.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그가 비록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기꺼이 그에게 '學'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겠다'(논어)라는 공자의 말과 같이 대학자는 가방끈과 상관 없이 많은 사람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대학은 '대인의 학문'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된다. 결국 대학이라는 말 속에는 人이 감추어져 있으며 강력한 휴머니즘을 함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大學의 체계와 특징

 

대학은 한 마디로 삼강령 팔조목으로 규정된다. 즉 천성적으로 품부받은 선한 덕망을 확충시키는 데 있으며(在明明德), 이를 통해 만백성에게 혜택이 골고루 나눠지도록 하여 나날이 거듭나도록 만들며(在新民 또는 在親民이며 함께 해석함),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지극한 선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게 하는 데 있다(在止於至善)

이를 실천하는 방법론으로 배움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데 그것을 팔조목이라고 한다. 즉 온세계의 지도자가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국정에 앞서 가정을 잘 다독여야 하며, 온가족이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교양을 이뤄야만 한다. 이것이 행위의 준칙이다. 이어서 인식의 준칙이 나온다. 교양이 온몸에 충일하려면 마음공부를 바르게 해야 하는데(正心), 마음공부는 한치의 태만함도 없이 지극하고 전일한 성실함에서 나온다(誠意) 마음을 집중시켜 전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지의 안개가 걷혀야 한다.(致知) 지식의 최고 경지는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과 동화되는 데 있다.(格物)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이 역순으로 반복되는 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순환의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상향식도 아니고 하양식도 아니며 상호 쌍방향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음양이론의 발현을 대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장구들은 삼강령 팔조목의 주석에 해당한다.

 

대학에서 재미있는 것은 지식의 한계를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한계란 지식의 유한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식의 한계가 결정되는 순간 행동과 실천의 기반이 생긴다. 유학의 지식은 어디까지나 행위를 위한 지식이기 때문에 고도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지양하고 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문자에 대한 독점현상이 강하지 않았다. 주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대학의 가르침은 몸소 행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 역시 일반시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상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유학이 보편성을 갖게 된 데는 이러한 연유가 있다.

앞서는 '차등애'에 대해서 다뤘지만, '차등' 역시 유학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것은 대학에서도 드러난다. 사람마다 기질의 차이가 있고 저마다 잘하는 것이 있듯이 氣는 단일하지 않다.이는 중용에서 더욱 명확하게 그려지는 데, 학과과정을 통해 학문수준이 높아지는 단계라는 것이 동양에서는 의미가 없다. 결국 스스로 깨달은 바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수학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일종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개념이 여기서 등장하는 데 이른바 '활연관통론(豁然貫通論)'이 그것이다. 남보다 몇 배나 더 노력했지만, 깨달은 바는 남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나 그 반대의 상황을 동양은 매우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일반적인 기준보다 자기 스스로의 기준에 더 신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한계를 단정짓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굴레에 갇힌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굴레'로 단정짓기보다는 '잠재성'으로 인정한다. 만약 그가 굴레를 벗고 일어선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번번이 소개되는데, 자발적 학습이 뿌리를 이룬 동양의 내면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인 것이다.

 

 

4.  大學의 이상적 모델과 몇 가지 경고

 

앞서 대학이 휴머니즘을 함의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유학의 지향점이기도 한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완성되는 정신이 바로 '심광체반(心廣體반, 반은 살질 반)'이다. 즉 덕이 온몸에 충일해 그 반반한 빛이 외양에 자연스레 드러나는 인간형을 말한다. 일관된 인식과 실천을 보이는 지행합일의 인간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 유학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몸소 완성한 자는 진정한 군자라 할 수 있다.

중용으로 치자면 중용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군자라 할 수 있지만, 공자조차도 그런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고백한 바 있다. 때문에 대학은 군자가 진정한 군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피해야 할 점을 설파하고 있는데, 이 역시 대학에서 백미로 치는 문장이다.

 

1. 마음에 노여움이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며, 마음에 한줄기 두려움이 있어도 바름을 얻지 못하고, 따로이 즐기거나 좋아하는 바에 집착하면 역시 바름을 얻지 못하며, 따로 근심하거나 찔리는 바가 있어도 역시 바름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하면 살펴도 보이지 않고,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2. 사람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따로 아끼고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편파적이기 마련이며, 미워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자가 있으면 역시 그에게는 편파적이기 마련이며, 두려워하거나 그 이름에 압도당하는 자가 있어도 역시 편파적이게 되며, 오만하거나 소홀히 다루는 자에 대해서도 편파적이게 된다.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는 경우와 미워하지만 그의 장점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몹시 드물다.

- 대학 전문 7,8장

 

1은 '바름'을 방해하는 내적 요소이며, 2는 관계를 방해하는 외적 요소이다. 이것은 팔조목의 유기적인 순환을 몸소 갖추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이다. 내가 바르게 살고자 하여도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 이유는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당위만 있지 방법론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참여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결국 '불참정부'가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성찰에는 끝이 없으며 '다가감'과 '햇볕과 같은 성의'가 있어야 도달할 수 있다.

 

5. '대학' 텍스트

 

교수신문이 펴낸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에서는 김학주씨의 텍스트(서울대학교출판부)와 함께 박완식씨의 대학(여강출판사)을 소개하고 있다. 두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아 코멘트할 것은 없으나 교수신문의 평에 의하면 김학주씨의 텍스트는 정확하고 매끄러운 원문 번역과 상세한 해석으로 일반인에게 매우 접근도가 높다고 평하고 있다. 김학주씨는 온갖 동양고전을 다 역주한 분이지만, 나 같이 '천착형'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역주가라 생각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견이다. 노자와 장자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박완식씨의 텍스트는 대학의 선구적 주석가인 주자의 주장을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거기다 주자 이외의 설을 첨가해 주자를 보완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내가 접한 텍스트는 전통문화연구회의 성백효본이지만, 원문 텍스트 이외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이동환 씨의 『중용,대학』과 남회근 할아버지의 『남회근 선생의 알기 쉬운 대학 강의』를 언급하고 싶다. 이동환 씨의 텍스트는 자구 해석과 용어는 고지식하고 어렵지만 '천착형'에게는 다소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텍스트이다. 이것도 남명서당에서 교수님의 추천을 받은 텍스트라는 점을 밝힌다. 남회근 할아버지의 텍스트는 주자의 주석에 반해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책값이 비싸고 두꺼운 만큼 일상의 예시와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곁들이고 있으므로, '다양한 담론'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텍스트라 생각한다.

 

      

 

 

 

 

 

6. 大學의 사회학

 

이번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대학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1. 이번 살인은 방황하는 청년이 아니라 문화가 저지른 살인이다.

2. 이것은 學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된 참극이다.

3. 미국의 수정헌법이 아니더라도 총기사용에 대한 금지는 불가능하다.

4. 협력사회, 협력문화의 힘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국무회의에 상정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지금도 국무회의를 하고 있지만 '한낱 택시운전사의 자살'이라는 오늘날의 국무회의는 대체 어느 나라의 국무회의인지 부끄러울 지경이다. 조선이 살인사건에 대한 국무회의를 한 것은 사건의 희소성도 희소성이지만,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에 대한 당국의 유기적인 협력이 주 의제라 할 수 있다.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엽기적인 살인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테러는 일어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분위기이며, 그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사회분위기 자체에 대해서 완전히 무방비하다는 데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학력신장을 위주로 한 교육 병폐는 그대로라고 진단했다.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어요. 대학을 가기 위해 전부를 걸었고 나머지는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죠. ‘학력신장’ 앞에 ‘인성교육’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
그는 학교교육에서 인성도, 학력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겉보기에는 두 마리 토끼 같지만 사실은 ‘한 마리’라고 했다. 학생들의 인간관계를 우선적으로 회복시켜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집중력이 생겨야 학력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 강석준 교장 “인성과 학력은 한마리 토끼”

 

 

"집안을 화목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바로잡지 못하므로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서도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라는 말처럼 대학은 한 가정과 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절대적이다. "일가가 仁을 이루면 국가에 인덕이 넘쳐나지만 한 사람이 탐욕스러운 마음을 먹으면 국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난다"는 말 역시 유의할 대목이다. 가수 김흥국은 4년째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데, 평소 보이던 이미지와는 달리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매우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김흥국 관련기사)이것이 우리 가정의 현주소다. 살인자 조승희 역시 방황하는 1.5세대 이민가족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두 가족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증거이다.

미국이 총기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대학에서 이치로 증명하고 있다.

 

순임금이 천하의 사람들을 仁으로 이끌자 백성들이 이에 화답하였고, 폭군 걸주가 천하 사람들을 포악함으로 이끌자 백성들 역시 이에 화답하였다. 걸주의 백성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약 순임금의 인덕으로 이끌려 한다면 백성들은 극심하게 저항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군자는 자신이 갖춘 것만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자신이 완전무결한 후에야 남의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다.

- 대학, 9장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컬럼바인'이라는 다큐에는 '폭력의 미국 역사'가 잘 그려져 있다. NRA(전민총기협회)로 대표되는 대규모 로비 그룹은 헌법에 총기 소유를 명문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총기에 대한 여론을 압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대 행정부는 물론 언론까지 가세하여 전미에 공포분위기를 심어놓음으로써 무기 소비와 무기 개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디트로이트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캐나다 도시 윈저에는 3년간 총기 살인이 1건 발생했는데, 그것 역시 디트로이트에서 건너온 미국인의 소행이라 한다.

미국의 이야기는 그만 하자. 지면을 거기에 쓸 이유는 없다. 대학을 포함한 유학은 일상적인 수준의 언어 활용에도 불구하고 거론하는 사상의 외연이 광범위하다. 하늘과 땅은 물론 한 국가, 한 가정, 한 사람, 그리고 한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마음의 움직임 등에 대해서 속속들이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용에서 아주 거침없이 펼쳐진다.

대학이 총기 난사 사건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1인으로 시작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왜곡된 學을 바로 세우는 것도 포함된다. 동양의 성어에 호리지차천리지말(毫釐之差千里之末)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우 터럭만큼 조그마한 차이가 천리가 넘는 차이를 만든다는 말이다.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대학의 지론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에 표현된 협력문화와 국가의 운명에 관한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한 사람의 신하가 있는데 이는 매우 단정하면서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맑고 깨끗해서 온몸에 관용이 넘쳐난다. 만약 자기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그는 마치 자신이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뻐하며, 지혜로운 뜻을 가진 사람이 보이면 마음 속으로 그를 신뢰하여 단지 입으로만 찬사를 늘어놓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더욱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다. 이것이 바로 자손과 국민을 보존하는 사고방식이니 매우 커다란 이익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질시하고 큰 뜻을 가진 사람의 메시지를 끝내 무시하여 그를 좌절시키고 만다. 이것은 자손과 국민을 재앙에 빠뜨리는 일이니 그 자체가 커다란 재앙이 아닐 수 없다.

- 대학,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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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7-04-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잘 몰랐네요. 세상에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군요^^;
 

필자 : 김종태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전문위원)

 

지난해 경향신문에 승정원일기 관련기사를 연재하여 필자도 글을 실은 적이 있다. 또 근년에 와서 고전 국역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최근에는 고전번역원 설립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필자는 국역서 편수지침을 만드는데 참여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차제에 고전 국역에 대한 평소 생각을 좀 정리해서 당금의 賢者들에게 고견을 구하는 것이 시의에 적절할 것이라 생각되어 고전국역에 대해 부족하나마 愚見을 말해 보고자 한다.

  고전국역,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다
  대개 일반 독자는 물론 전문 학자들조차 고전국역에 대해 번역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보다 쉽고 간결한 우리말로 매끄럽게 표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다. 필자도 그런 생각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하등 이견이 없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불가피성과 항상 그것이 가치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근세 중국의 번역가 嚴復은 『天演論 譯例言』에서 信·達·雅 3원칙을 말하였다. 원의에 대한 신뢰성, 뜻을 전달하는 자연스런 표현, 우아한 문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번역인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다. 楊伯峻의 제자 沈玉成은 스승의 명을 받아 『左傳』을 현대백화로 옮겼는데 ‘직역을 위주로 하고 잘 안 되는 부분은 의역을 하였다’고 언급하면서 ‘역문은 원의에 대한 신뢰성[信]에 치중하였고 餘力이 있을 경우 표현[達]과 문체[雅]를 고려하였다’라고 하였다. 또 대만의 商務印書館에서 『老子』를 번역하면서 <引述>을 두어 주석과 역문으로 다 표현하지 못한 점을 보충하고 있고, 일본 역시 1978년에 『漢詩大成』을 내면서 <餘論>을 각 시편의 마지막에 두어 번역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 이해를 돕고 있다. 三民書局의 『古文觀止』 개정판도 종래의 <文章分析>을 <賞析>으로 바꾸어 이해를 돕고 있고 『東萊博議』는 각 편의 첫머리에 제목을 풀이하는 <題解>를 두고 있다. 또 중국에는 古文이나 詩·詞에 鑑賞辭典이란 이름이 붙은 책들이 많은데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중국뿐 아니라 훈독을 위주로 하는 일본이나 繁體字를 쓰고 있는 대만조차도 이렇게 번역하고 있는 것은 한문고전의 번역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원문에 주석을 다는 것이 아니라 역문에 주석을 달고 있지 않은가.
  고전 국역을 한 번으로 끝낸다는 성급한 마음을 먹을 것이 아니라 우선은 전문가나 연구자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다음에 시장원리를 감안한 選集의 발간이나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개발 등 단계와 여유를 두고 접근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이해되기 쉬운 쪽으로만 번역하면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부가가치의 창출은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원의의 전달을 가장 우선시하고 典故를 가능한 한 밝혀 주는 방향으로 번역해야 한다. 또 저자나 고전의 성격, 글의 종류에 따라 번역 방식도 다소 융통성을 둘 필요가 있는데, 이런 문제는 번역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용어의 정리나 내용 해설도 번역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고전을 국역하는 데 있어서 오늘날의 언어와 한국어의 어법 구조로 쉽게 번역하겠다는 생각과 원전의 언어를 살리고 고전의 風格과 체취를 가급적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둘 다 중요하다. 얼핏 보면 이 둘은 상이한 방향이라 어느 한 쪽이 걸림돌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漢詩大成』이 그 모순을 극복한 좋은 사례이며, 靑冥 任昌淳의 『唐詩精解』나 靑嵐 金都鍊의 『論語』는 그 분들이 무엇을 고민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知遇를 입어’ 같은 대목을 ‘알아줌을 받아’ 정도로 바꾼다거나 어느 지역에서 ‘待罪’하고 있다는 말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말이지 정말 죄를 져서 대죄하는 것과는 다르다 해서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따위는 우리의 번역이 아직 체계를 잡지 못한 데 따른 혼선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고전국역을 서양의 글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여 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데 필자는 이러한 생각이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고전은 애초에 우리가 쓰던 언어가 아니지만 한문 고전은 우리 조상들이 文語로 쓰던 언어이다. 어휘들 중 상당부분은 당대사회에서 그대로 쓰이던 말이었음을 가사나 시조, 판소리 사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한문고전을 번역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상들이 남긴 정신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자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조상들이 쓰던 언어를 다 내버리고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물론 상황에 따라 가급적 풀어 독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은 그것대로 필요하겠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예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언어 습관 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요즘 사람들을 예전의 언어로 데려가 구경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언어를 적절히 활용해서 번역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과도 맥이 닿을 뿐 아니라 한문 문화권의 공동체라는 면, 그리고 번역서를 이용한 제2의 가공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看山’ 같은 말은 한 용어에 역사, 문화적 의미가 깊이 내포되어 있어 ‘산소 자리를 살펴보다’ 등으로 바꾸는 것이 되레 부적절할 것이고 장황(粧䌙)을 『漢語大詞典』에 따라 粧潢으로 고치는 것은 조선시대에 실제로 쓰인 것과는 다르다. 이런 것을 보면 고전번역이 단순히 古語를 今語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전 중국의 譯經사업이나 조선조의 諺解처럼 당대의 학술 수준과 풍토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문만을 통해 단 한 번에 원의를 다 전달하기 보다는 독자에게 다소 어렵더라도 원전의 적절한 어휘는 그대로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주석을 붙이는 한편, 각 사건이나 배경 지식에 대한 해설을 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승정원일기』와 같이 전문 학술용어가 많고 배경 지식이 필요한 기록물일 경우에는 용어집의 발간 외에도 『銀臺條例』나 『銀臺便攷』와 같은 관련 서적의 번역은 물론, 개설서 같은 것을 별책으로 준비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집 역시 상황에 따라 그 글의 바탕이 되거나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원의를 훼손하지 않고도 역자가 역문에 다 나타내지 못한 뜻과 그런 번역이 나온 과정을 공유할 수 있어 독자와 원문과의 가교를 만들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의 번역을 위해서도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처럼 번역의 과정 역시 번역의 일부라는 차원에서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번역의 어휘를 적절히 선택하는 힘은 그 역자가 얼마나 많은 고전을 섭렵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기존의 사전을 보면 일부의 문헌만 살펴보고 그 정의를 내린 것이 많아 사전의 개념을 그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다. 뿐만 아니라 국역 과정에서 자주 나오는 어휘에 대해 국어사전에서 정한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새로운 의미를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례를 분석하고 관련 문헌을 검토하는 한편 다른 역자와의 토의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국역어휘에 관한 위원회 같은 것을 두어 번역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다양한 어휘를 자체적으로 연구,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저변확대와 인재의 양성
  필자 나이 스물 전후로 투르게네프, 까뮈,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을 읽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번역에 문제가 많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내 생각엔 오역보다도 아예 번역 자체가 안 되어 속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휠더린의 경우는 다른 책에 언급이 많이 되어 꼭 그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연구서만 있지 번역서가 없어서 여간 불만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동양 고전을 독서하면서도 번역이 되지 않아 독서를 조금 하다가 중단하고 만 경험이 비일비재하다. 李白, 杜甫 같은 大詩人의 시를 번역한 책조차도 여러 권 사서 읽어 보았지만, 내용이 중복되고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 번역 논쟁의 주 쟁점은 오역 문제인 듯한데 愚見으로는 오역도 오역이지만 아예 번역 자체가 안 되어 훌륭한 책이 잠자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月灘 朴鍾和는 작품을 쓰면서 명나라의 지원군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역관 洪純彦의 미담이라든가 稷山 싸움에서 왜적을 바늘로 물리친 일화 등을 고전 자료에서 발굴, 적절히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소설화 했지만, 요즘 각광받는 어떤 작가는 있는 소재도 잘못 분석을 하고 만다. 仁祖 때 경상도 咸昌의 幼學 蔡 아무개가 올린 상소에 대해 임금이 내린 비답을 두고 ‘19자의 간단한 것이었다.’라고 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통상 임금의 비답 내용은 그다지 길지 않으므로 이런 경우 ‘이례적으로 긴 비답을 내렸다’고 해야 맞다. 연전에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많은 호응을 얻어 그 원작인 연극 ‘爾’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신하를 높이지 않고 칭하는’ 이 글자의 뜻을 ‘신하를 높여 부르는 존칭’의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우연히 어떤 한글 잡지를 보니 固執은 漢字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보았는데, 승정원일기에는 신하들이 辭職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을 때, ‘경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라’는 임금의 비답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그러니 이는 순우리말만 국어라고 인정하는 좁은 소견에 다름 아니다. 이런 것은 모두 고전의 정리, 고전국역과 함께 한문의 저변확대가 병행되어야 함을 웅변하는 사례라 하겠다.
  국역 사업을 원활히 수행할 인재양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역서를 충분히 독해하기 위해서도 가령 『懸吐本三國志』나 『大東奇聞』 정도는 대강이나마 읽어낼 정도의 한문 교양을 갖춘 독자층의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李文烈 같은 작가는 『孟子』를 비롯한 經書에 나오는 문장과 對句를 잘 활용하여 『황제를 위하여』 같은 낭만적 명품을 선보였고, 아지랑이와 같은 열기가 스며들고 운율감이 풍부한 『詩人』 연작을 아주 성공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런 것은 한문 교양이 있는 계층이 형성되어야 제2, 제3의 가공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변이 확대되어야 국역자 양성과 국역서의 다양한 활용이 제대로 될 것이다.

  21세기와 고전의 인프라
  최근 중국을 소재로 한 다큐가 많이 방영되었는데 필자는 이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黃河는 중국에 있지만 그것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은 이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다시 말해 우리의 고전이라 해서 우리의 전유물이 아니고 중국이나 일본의 고전도 활용하기에 따라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전 국역을 지나친 민족주의적 시각이나 이에서 나온 한글 사랑 내지 성급한 대중화의 관점으로 보려는 태도는 진지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민족문화추진회는 우리나라 고전을 위주로 표점 가공도 하고 번역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二十五史나 『諸子集成』, 『十三經注疏』, 唐宋八大家의 문집, 저명 시인의 전집 등을 모두 번역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는 중요 서종들도 찾아 번역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해도 언젠가는 愚公移山을 실현하겠지만, 동북아 한문 문화권에서 지금 우리의 왜소함을 극복하고 종당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을 염두에 두고 고전을 체계적으로 정리·번역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보다 큰 범위에서 한국의 문화 자원을 축적해 놓는 것이 절실하고도 시급하다. 한번 생각해 보라. 역통사업이 시작되던 초기에는 반대도 있고, 그 과정상 진통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가. 앞으로 수많은 고전을 가능한 한 빨리 번역해서 정리해 놓는다면 우리의 문화 환경은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족보를 인명의 약력과 연계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하거나 역사지도 등을 편찬하는 사업 등은 어떤 개인이나 작은 단체가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들을 시급히 서둘러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국역 사업이 제대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고전 국역도 번역의 경험과 자료를 공유하고 번역의 이론을 정리할 수 있는 전문 매체를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싣는 글도 논문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실용에 맞게 하면 좋을 것이다. 또 오랫동안 논쟁이 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학술회의를 열어 해결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것이야말로 번역을 보다 전문화하고 과학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번역과 교열의 최종 단계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난해문제 전담반 구성 같은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결과정을 백서 발간 등으로 비축해 두면 나중에 관련 학자와 종사자들에게 매우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다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근세 일본이 유럽의 고전을 번역하여 서양 과학 문명을 재빨리 흡수한 결과 한국이나 중국 등 기타 아시아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갔듯이, 우리도 이제는 고전 번역을 21세기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다가오는 시대가 동양의 시대이고 문화와 지식의 시대라고 하는 미래학자들의 말이 사실로 징험된다면 지금처럼 우물쭈물하다가는 噬臍莫及이지 않겠는가.

 

주소 :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PDS&url=/ADD/board_view.jsp%3Fseq=214%26%26boardid=assembly%26page=1%26keyword=%26searchtype=%26listcount=10%26category1=1162272169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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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시사저널 사태'를 모티브로 재구성된 동화입니다. 여기에 묘사된 상징과 인물, 알레고리 등을 맞춰보면서 살펴보면 더욱 재밌습니다.

 

 

[창작동화]함부로 짖는 개

 

<경고>

이 동화에서 묘사된 사건들, 인물들, 그리고 단체들은 허구입니다. 어떤 실재 인물과의 유사성은, 현존인물이든 망자이든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심상이는 땅 매는 것이 싫었다. 땅을 매는 것만 가지고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 번도 아버지의 일을 도우러 밭에 나가지 않았다. 시험과 공부를 핑계로 집에 틀어박히기 일쑤였다. 땅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서 장사를 하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아버지를 설득할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건 다 팔아도 좋다. 하지만 ‘땅’은 우리의 근본이니 그것만은 팔 수 없다.”

심상이는 어쩔 수 없었다. 심상이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회장’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동산업자인 이회장이 ‘이사장’이 아닌 이유는 시골길에 어울리지 않은 최고급 외제차와 검은 안경과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그를 호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회장도 심상이 아버지 앞에서는 몹시 비굴하게 구는 것을 심상이는 많이 봤다.

“아이고 선생님! 그러지 말고 제게 넘기시지요. 이제 나이도 드시고 노후준비도 하셔야 하는데, 그 점은 제가 책임을 지겄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상이의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회장은 하다못해 심상이에게까지 와서 하소연을 한다.

“심상아, 똑똑하고 착한 심상아. 네 아버지 설득 좀 해 보렴. 별로 값어치도 없는 땅에 집착하시는 게 너무 안타깝지 않으냐. 농사를 짓겠다면 윗마을에 이보다 다섯 배나 큰 땅을 드릴 수도 있어. 나는 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별볼 일 없는 땅이라면서 이회장은 왜 이 땅에 집착하는 것일까? 심상이는 이 점이 궁금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아버지의 땅은 별 볼일 없는 ‘밭떼기’일 뿐이었다.

심상이가 못마땅한 것은 ‘밭떼기’뿐이 아니었다. 심상이의 말에 의하면 ‘함부로 짖어대는 못된 개새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심상이는 직필이에게 은근히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짖어대는 데도 아버지는 야단 한번 치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하룻 밤에 열 번이나 짖어대는 바람에 심상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아버지는 혹시 직필이가 아파서 그러는지 밤새 직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직필이는 ‘저 개새끼를 언젠가 쏴 죽여버려야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큰 병을 얻어 밭일은커녕 당신 스스로 어제오늘 하는 몸이 되었다.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아버지는 심상이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심상아,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이 터전을 너는 반드시 팔고 말 테지만, 다시 한번 부탁하마. 땅은 팔지 말거라. 그리고 직필이는 정직한 개다. 혹시라도 직필이를 해코지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만약 땅을 팔려거든 직필이를 내쫓지 말고, 직필이가 있을 때 팔도록 해라.”

심상이는 아버지의 죽음이 슬펐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못마땅했다. 도대체 그따위 개새끼, 이제는 죽을 나이가 다 된 늙은 개와 별볼 일 없는 ‘밭떼기’가 무슨 상관 있다고 아버지는 끝까지 그놈의 늙은 개를 두둔하는 걸까. 심상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필이는 부지런히 짖는 개다. 벌써 사람 나이로 따지면 90세가 넘었는데 요즘도 밤에 짖는 소리가 우렁차다. 특히 최근에는 짖는 회수가 부쩍 잦아졌다. 심상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직필이를 어쩌지 못했지만, 저놈에 ‘함부로 짖는 버릇’ 때문에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요 며칠 밤새도록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 사람들에게도 거센 항의를 받았다.

“아니 요즘 세상에 진돛개가 다 뭐야! 이놈의 개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겠잖아요. 제가 잘 안 짖는 귀여운 말티즈 한 마리 드릴 테니, 그 놈의 개 어디 처분해줄 수는 없겠소?”

이웃의 잦은 항의에 시달리자 심상이는 머리 끝까지 부아가 치밀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회장의 딴지였다.

“땅을 파시겠다고? 역시 아버지와 달리 영리한 친구로구만. 근데 저 놈의 ‘함부로 짖는 개’가 있으면 좀 곤란할 것 같어. 내가 그 땅의 주인이 되어도 그 놈은 끝까지 나를 괴롭힐 것 같단 말이야. 저 개를 처분하면 땅값은 내가 웃돈을 더 쳐줌세.”

아닌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은 이회장에게 땅을 죄다 팔아 지금은 나름대로 여유롭게 살고 있는 터였다. 농사를 짓지도 않으니 땅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던 그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심상이는 결국 ‘함부로 짖는 개’를 쫓아버리기로 결심했다. 이웃에게 공기총을 빌려다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며칠이 지난 밤에 여느 때처럼 직필이가 힘차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심상이는 직필이를 겨누었다.

“탕!!”

직필이의 짖음이 멎었다. 적막이 고요했다.

“탕! 탕!”

어디선가 ‘깨깽’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괴로운 비명 소리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직필이가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심상이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는 그놈의 개도, 그놈의 땅도 다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바로 계약서를 들고 이회장을 찾았지만, 이회장의 반응은 전과는 딴판이었다.

“지금 개발단지 투자 건으로 자금이 부족해서 자네 땅을 살 수가 없구먼. 한두 달 정도 있다가 살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심상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지 뭐 하고 생각하면 집으로 되돌아왔다.

직필이가 없는 동네는 매우 고요했다. 사람들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함부로 짖는 개’를 더 이상 안 봐도 된다는 기쁨은 오직 심상이의 것만은 아니었다.

 

직필이는 왼쪽 다리를 맞아 절뚝발이 되었다.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이 마을은 이제 죽어도 보기 싫다.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며 직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이웃 마을에서 아는 친구를 만났다.

“거기 분위기가 몹시 흉흉하다며. 자네 소식은 들었네. 그런데 ‘그놈’의 아비가 죽었을 때, 자네는 왜 떠나지 않았나?”

직필이가 대답했다.

“개는 자신을 아껴주는 주인에게 고기를 바치는 법일세. 녀석의 아버지는 녀석과는 달리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분이었어. 그분은 언제나 내 귀에 대고 이런 말씀을 하셨지. ‘심상이는 네가 꼭 지켜줘야 한단다. 나는 너보다 오래는 못 살 것 같거든. 네가 꼭 지켜줘야 한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녀석의 발길질이 더 심해졌지만, 나는 떠나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꼴이 이렇게 되었지만. 이제는 지켜주려고 해도 지켜줄 수가 없게 된 셈이지.”

“그래, 나이가 들었으면 이제는 짖지 않아도 되었지 않나? 그렇게 악착같이 짖어댄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함부로 짖은’ 건가?”

동료 개가 물었다.

“나는 단연코 한번도 함부로 짖어본 적이 없네. 내가 하룻밤에 열 번을 짖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열 번 짖어야 할 상황이라 그런 거네. 나는 보았네, 그 사람들이 ‘번쩍이는 딱딱한 것’을 땅에서 파가는 것을.”

 

한 달이 지났을까. 이회장은 땅을 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심상이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심상이는 하는 수 없이 반값을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땅값에 대해서 이회장과 심상이의 공방이 한 달간 계속되었다. 심상이는 결국 아버지가 물려주신 ‘밭떼기’를 10분의 1이라는 ‘개값’에 팔고 말았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심상이는 이제야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났다. 땅을 팔더라도 직필이가 있는 상태에서 팔라고 하신 말씀.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아버지만은 무언가를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했다. 심상이는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의 생각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한때는 심상이의 땅이었던 심회장의 땅과 그 부지 일대가 ‘매장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즉 유적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유적지가 되면 국가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개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곳은 백제의 중요한 유적지로 여러 개의 금불상과 백제 시대의 토기가 차례로 발견되었다. 가끔 왕관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유적지가 되었기 때문에 문화재청장이 직접 그곳을 찾았다. 청장은 그 땅의 주인인 이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함과 동시에 상패를 수여하였다. 이회장은 매우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일개 땅이 무엇인가요. 나라가 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요. 덕분에 땅값은 좀 떨어졌지만, 그보다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땅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문화재청장은 다시금 크게 인사를 하였다.

한참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심상이는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심상이의 아버지는 농부인데, ‘그 땅의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다. 게다가 심상이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이회장이 끈질기게 땅을 사겠다고 하는속셈 쯤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땅값을 비싸게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심상이의 아버지는 심상이가 ‘그 땅’을 소중하게 보존해주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죽는 순간 심상이가 그 땅을 팔아버리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때문에 ‘직필이’를 내쫓기 전에 땅을 팔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도굴업자인 이회장은 그 동네의 땅이란 땅은 모두 접수하여 그곳의 유물들을 대거 ‘접수’했다. 땅을 사기 전에도 그곳 땅의 유물들을 틈틈이 파내었지만 단 한 곳, 심상이네 땅은 ‘직필이’라는 몹쓸 개 때문에 건들지도 못해 못내 답답해하고 있었다. 결국 심상이가 이회장의 ‘앓던 이, 아니 앓던 개’를 쫓아보내 주었고,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껏 도굴한 끝에 그 땅마저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이회장은 그 일대의 땅을 ‘공헌’한 공로로 승승장구하게 되어 삼선(三選)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심상이는 서울 어딘가에서 서럽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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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상과 파업한지도 16일째가 되어갑니다.

지난달 말 충전도 하고 영양보충도 할겸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전복이며 해삼이며 푸짐하게 먹은데다가

FTA라는 엄청난 사건이 이후 온갖 좌절감과 모멸감, 트라우마에 방황하며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내 '살덩어리'는 주택담보대출이자처럼 띠룩띠룩 쌓아만 갔고,

그 때문인지 어떤 일을 해도 속도가 안 나고 일도 잡히지 않는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이틀 싸우고 끝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초체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준비물은 아령 2개와 줄넘기, mp3기능의 휴대폰, 이어폰입니다.

여기서 잠깐상식. 파워워킹은 '속보'와 '아령 휘두르기'를 동시에 하는 고칼로리의 운동으로
일반적인 '걷기'에 비해 2배 정도의 칼로리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걷기'는 '뛰기'에 비해서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라면
'뛰기'에 가까운 액션을 보여야 합니다. 속도를 붙여서 '속보'를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뛰기'는 무릎에 무리가 가며, 나이가 들수록 위험하므로
나는 '속보'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운동하는 게 좋으냐 '저녁'에 운동하는 게 좋느냐
찬반 양론이 다양한데요,
얼마 전에 병원 갔다가 전문의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더군요.
"사실 아침이냐 저녁이냐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활 패턴과 관계가 있는데,
아무래도 저녁 시간을 정해놓으면 '변수'가 많겠죠.
대신 '아침'은 일찍 일어나기만 한다면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잘 지켜지겠죠."
음.. 그럴듯합니다.

'바보 뚱땡이'가 되어 버린 나는 운동하는 동안 벌을 받았습니다.
대학 경문이 40분 정도인데,
서문(10분)도 끝나기 전에 헐떡헐떡 지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파업이고 뭐고 제 풀에 지칠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약속한 1시간을 채우고 샤워를 하니까 상쾌합니다.
몸에서 '띠룩띠룩'거리는 소리가 좀 줄어든 느낌입니다.

'파워워킹'이라는 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첫째로 '고독'을 살짝 가르쳐줍니다.
휑한 운동장에 홀로 거닐다 보면 '혼자'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누군가 이 운동을 '의미없이 걷기만 한느 운동'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실존이라는 내 방으로 간만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즐거웠습니다.
둘째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게 해줍니다. 거의 명상의 효과입니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미룬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할애해 운동을 하다 보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정리가 되고, 운동한 시간만큼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몸이 나에게 하는 하소연'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는 열흘 전에 먹었던 삼겹살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소화가 되지 않고 몸 안에 눌러앉은 찌꺼기는
운동을 통해서만 '처리'가 됩니다.
나는 '호리병 사탕빼먹기 이론'으로 이것을 설명합니다.
호리병에 든 사탕을 먹으려고 뒤집으면
사탕이 몇 개 안 나옵니다.
하지만 호리병을 흔들면 병 안에 담긴 사탕이 하나둘 떨어집니다.
사람 몸을 호리병이라고 한다면,
몸에 담긴 사탕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몸을 흔들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영원히 사탕을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원래는 운동하면서 들었던 경전구절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려고 했는데
운동에 대해서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한 것 같네요.
암튼 운동해서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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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4-1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쭈욱 열시미 하시와요!!!

antitheme 2007-04-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하세요.

승주나무 2007-04-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오랜만에 뵙네요. 열쉬미 하겠습니다.
antitheme 님두요. 처제 내외가 수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잘하면 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