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두 비우고 떠난 권정생, 그가 채워주는 것들
입력: 2007년 05월 21일 18:12:16
 
타계한 동화작가 권정생의 삶은 ‘녹색 세상’을 열고 홀연 사라지는 흡사 봄바람 같았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세상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남겼기 때문이다. 혈육은 아예 없었고 5평짜리 흙집도 허물어 자연으로 돌려보내라고 지인에게 당부했다. 혹시라도 자신을 기념하는 일은 제발 없도록 하라고 일렀다. 그가 생전에 남긴 유언은 새삼 우리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인세는 굶주리는 북녘의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 남과 북이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시신은 화장하여 집 뒷산에 뿌려 달라.’ 권정생은 진정 남아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진실한 동화작가이며 시인이었다. 삶과 문학이 일치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바보, 장애인, 노인 같은 약자들이거나 똥이나 돌, 풀처럼 볼품 없는 것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 그것들을 가장 따뜻하게 바라보고 보듬었다.
그는 평생 시달렸던 병마까지도 쓰다듬고 달랬다. 자신도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의 한 귀퉁이를 빌려 썼다. 새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 듯이. 그리고 그 둥지까지 없애라 일렀다. 진정 무소유의 삶이었다. 욕심이 욕심을 낳는 이 시대에 그와 함께 있음이 우리에게 위안이었다.

그는 어린이 때문에 인세가 생겼으니 어린이를 위해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인세를 돌려줌으로써 그가 남긴 100여편의 동화까지 영감의 원천이었던 어린이에게 나눠주었다. ‘너희들에게서 받았으니 내 것이 아니다.’ 세상 끝에서도 그는 어린이처럼 맑았다. 세상의 가식과 허울을 사르고 권정생은 떠나갔다. ‘강아지 똥’이 부서져 민들레 속으로 들어가 꽃을 피웠듯이 그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났다. 그는 비움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채워주었다. 이름을 팔고, 지식을 늘리고, 재주를 부풀리는 데 익숙한 우리들에게 권정생은 나눔과 배려와 낮춤이 무엇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주위의 모든 것을 섬기다 사라진, 그 끝이 아름다운 사람. 우리는 작가 이전의 성자, 권정생을 떠나 보냈다.


[기고] 권정생 선생님, 거기 가셨나요?
입력: 2007년 05월 22일 16:33:06
 
지금쯤 어머님은 만나 보셨겠지요. 어떠세요. 선생님께서 그리도 염원하시던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곳에 계시던가요? 슬픔도 고통도 싸움도 없는 나라에 살고 계시던가요? 그렇다면 저희도 안심입니다만, 무엇보다도 오줌 받아내는 보따리를 차지 않아서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 가실 때 뵈니 그렇더군요. 이젠 배에 난 구멍만 아물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지면 어머니 손잡고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신 청송 화목 근처 외삼촌 살던 칠배골도 가보시고, 안동 장터 어디 자장면도 마음 놓고 많이 드시길 바래요. 모든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고 가셨지만, 어머니 모실 차비랑 자장면 사드릴 돈은 그래도 좀 가지고 가셨겠지요? 저런,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뒤춤에 감추신 거 다 알아요. 걱정 마세요. 거기선 선생님도 어머니 손을 잡은 어린이가 분명할 텐데, 뭐 어때요.

부모 살아생전 효자 별로 없고, 죽은 뒤엔 불효자 드문 게 인생인 거 같아요. 선생님 가시고 나니 이렇게 효자인 척 하는 제 꼴 좀 보세요. 마치 선생님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호상을 맡아 일사천리 장례를 치르고 무슨 공치사를 바라는 양 이러고 있음을 용서해 주세요. 생전에, 선생님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뭘 좀 해드릴까요 하면 다 물리치시고는 오직 한 가지 “그케 해주고 싶은 게 있으만 내 대신 아파주기나 해라. 쯧쯧. 거 봐라. 그것도 못 하믄서 뭘 자꾸 해 준다꼬 그노” 라고 말씀하셨지요. 이젠 그런 핀잔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네요.

선생님. 이젠 하늘나라를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그동안 우리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슬프고 아프고 해도 참 무심한 하느님들이 많으셨는데, 이젠 선생님께서 가 계시니 뭐가 걱정이겠어요. 이젠 시간만 나면 그런 어린이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텐데 말이에요. 선생님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불경이고 성경이며, 그래요, 이미 아이들을 위한 경전이 되어 있으니 하느님 역할만 해 주시면 되겠네요. 선생님이 그리신 착한 하느님 말이에요. 아니, 평소 착하기만 해서는 못 쓴다고 하셨으니, 착한 마음을 몸으로 움직이는 하느님이면 좋겠네요. 마음이 바쁘시겠지만 서두르진 마세요. 우선 어머님하고 좀 지내시면서 맛난 것 많이 드시고 몸도 돋운 다음에 하세요. 괜히 성치 않는 몸으로 과로하여 거기서도 오줌보 차고 계시면 큰일 나잖아요. 오줌보 찬 하느님은 좀 그렇잖아요.

참, 이번에 선생님 누나, 동생, 조카들이 다 오셨어요. 반가웠죠? 모두들 많이 슬퍼했어요. 특히 조카들이 많이 안타까워했답니다. 생전에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조카들에게도 그러셨나보죠? 그것은 남에게 피해 끼치기 꺼리는 선생님 성품인데, 그걸 모르고 많이 섭섭했던 것 같아요.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것이 오해였다는 걸 알고 무척 가슴 아파했답니다. 우리들도 가족들이 선생님 챙기지 않는다고 오해한 것도 풀렸답니다.

5월입니다. 10년 전 이맘때쯤 내 아버지 저기 가셨는데, 올해는 또 찔레꽃 길을 따라 선생님도 저기 가셨습니다. 선생님 뿌려진 부모님 무덤 중에 유독 어머니 봉분에만 뻐꾸기 울 때 핀다는 뻐꾹채 한 송이 환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건 선생님이 달아 주신 거죠? 시치미 떼지 마세요. 다 알아요. 너무 어머니만 챙기지 마시고 슬픈 아버지도 좀 챙겨 주세요. 아셨죠, 아부지. 참, 진짜 아부지 되시려면 유언장에서처럼 건강한 남자가 되어 연애해서 장가 꼭 가세요. 꼭요.

〈안상학 시인〉

[이대근 칼럼]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
입력: 2007년 05월 23일 18:23:25
 
경향신문 문화부는 지난 17일 출판사로부터 부음 하나를 전해들었다. 그리고 두어 시간 지나 망자(亡者)를 돕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정으로 쓸 사진이 없다면서 경향신문에 게재됐던 그의 사진을 보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영정으로 쓸 사진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그는 누구인가. 평생 살아온 5평짜리 흙담집은 남김없이 헐어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고, 인세로 들어올 돈은 북한·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에게 나눠주고, ‘나를 기념하지 말라’며 나이 일흔이 남긴 흔적을 이 세상에서 말끔히 지워버리려는 그는 누구인가. 권정생. 도쿄 혼마치 빈민가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분단과 전쟁, 굶주림의 골짜기를 넘은 그는 제대로 배우지도 먹지도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무장수·고구마장수·담배장수를 했고, 10대에 결핵·늑막염·폐결핵·신장결핵·방광결핵을 앓았다. 그래도 살아남아 경상도를 떠돌며 걸식을 했고, 운좋게도 가난한 예배당 종지기 자리를 얻었다. 그의 거처는 예배당 부속 토담집.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그 곳에는 찢어친 창호지로 개구리가 들어와 놀다갔고, 잠자는 밤에는 쥐가 발가락을 깨물고 돌아갔다. 그는 거기에서 동화를 썼다.

-문학을 통해 세상에 맞서-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을 담아내기 턱없이 부족한 지면에서도 그의 부음이 한 구석을 차지할 정도로 그는 꽤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새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유명 아동문학가가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인생처럼 못나고 버림받고, 가난하고 하찮은 것들에 관해 써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이 풍지고 흐벅진 세상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추억의 당의정이 입혀진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로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동화는 세상을 예쁘게 포장한 선물세트가 아니다. 그 것은 그가 살아온 방식도, 글쓰는 방식도 아니다. 그는 전사였다. 그는 살아 숨쉬는 동안 생활이라는 최전선에서 그가 보고 듣고 알고 겪은 모든 모순과 부딪치며 하루도 쉬지 않고 싸웠다. 그는 농민들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착취계급에 저항하다 실패한 역사를 슬퍼했다. 물질이 한정된 세상에서 몇 사람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 나머지는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승용차를 버리면 기름 걱정안하고 전쟁할 이유가 없어지고, 우리가 파병을 안해도 된다고 믿었다. 미국은 절대악이었다. 약탈과 살인으로 강국이 되고, 전세계 인구의 5%가 세계 자원의 50%를 소비하는 미국은 그의 눈에 악마였다. 그리고 그 악에 맞선 테러리즘을 “새끼 빼앗긴 엄마 닭이 적한테 자기 목숨을 내놓고 달려드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서슬이 퍼렇던 1985년에는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썼다. 아버지는 월북하고, 남은 복식이는 동족을 살상하는 무기를 들 수 없다며 징집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주제이다. 이게 그가 스스로 꼽은 최고작품이다. 석유·자동차·전쟁·미국·자본주의와 터럭만큼의 타협도 용서도 화해도 하지 않았다. 신채호·장준하·함석헌을 존경하는 그는 히틀러를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조직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를 닮고 싶어했다. 물론 그는 안중근처럼 권총도 없고,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고, 테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것들을 했다. 저 깊은 곳에서 울렁거리는 분노를 삭이고 녹여, 그 진액을 짜내 시와 동화, 산문을 쓴 것이다.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 그의 베스트셀러 ‘우리들의 하나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31쪽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끝이 아닌 평화의 길로…-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리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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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은 남한산성 아래 있었다. 왜 그곳으로 왔을까? 왜 남한산성에서 오래된 위난을 불러들였을까?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이 책으로 나는 김훈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난다. 사실 김훈을 일컬어 시대의 문장이라고 칭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나의 독서목록표를 기울게 만든 원인일진대, 사람들은 김훈의 글붓에 환호하는 것인가, 그림붓에 환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붓을 휘두르는 풍모를 찬사하는 것인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면 그림붓이 되고, 글을 써넣으면 또다시 글붓이 되기는 하지만, 무엇을 표시하건 간에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뜻이 있기 마련인데 내 눈에 쉬이 밟히지는 않는다. 김훈이 정치적으로 중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알고 있지만 위난을 애써 불러놓고서 '패잔병'의 관점을 고수한 것은 다소 거북하다. 더욱이 그 '패잔병'조차도 '패배하지 않은 패잔병'이다. 만약 쓰라린 패배가 의미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면 패배를 낱낱이 드러내야 할 것인데, 이 글을 이어간 패잔병은 국지전의 승자와 국지전의 패자를 한 화면에 데려왔을 뿐이다.

남한산성에서 일관되게 그려지는 뜻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김훈에 의하면 생명은 아래로부터 피어나는 것인데,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고담준론에 의해 짓밟히고 공멸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회가 철저히 부숴졌어도 생명은 남는다. 기나긴 전쟁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을 텐데, 전쟁터를 기웃거리며 기물을 수집하고 봄나물을 캐고 천민 서날쇠는 정칠품 추증은 안중에도 없고 살 계획을 세우기 바쁘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마지막이 '봄'이지 않은가.

이 소설을 가만히 녹여보면 별로 눈에 띄는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특이하다. 주요 인물인 김상헌조차도 너무나 평범한 서생이다. 대장장이 서날쇠와 귀화 역관 정명수는 솟아나오려다 말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악을 배제한 것인가? 용장군과 칸은 일반적인 악인일 뿐 상대 진영일 뿐이다. 작가가 가장 사랑한 인물은 '최명길'이 아니었을까? "처형하라"는 공론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주상과 끝까지 시선을 맞췄고, 논적인 김상헌의 뜻을 가로막지 않는 아량이 여유롭다.

답답하다. 소설 속의 그림풍처럼, 등장인물들의 불평처럼 답답한 소설이다.

한 번의 교전도 없어서 진군대열은 한가했고, 행군 속도는 하루 백오십 리를 넘었다. 가마에서 흔들리며 칸은 이 무력하고 고집 세며 수줍고 꽉 막힌 나라의 아둔함을 깊이 근심하였다. (책 260쪽)

풀리는 강을 바라보면서 칸은 망월봉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조선 행궁의 망궐례를 생각했다. 홍이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명을 향해 영신의 춤을 추던 조선 왕의 모습은 칸의 마음에 깊이 박혀들었다. .... 난해한 나라로구나..... 아주 으깨지는 말자.....부수기보다는 스스로 부서저여 새로워질 수 있겠구나.....(책 276쪽)

알 수 없는 것은 조선이었다. 송파강은 날마다 부풀었다. 물비늘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칸은 답답했다. 저처럼 외지고 오목한 나라에 어여쁘고 단정한 삶의 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기를 쓰고 강자의 적이 됨으로써 멀리 있는 황제는 기어이 불러들이는 까닭을 칸은 알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조선 군대는 단 한번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대처를 지날 때에도 관아와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조선의 누런 개들이 낯선 행군대열을 향해 짖어 댈 뿐이었다. 도성과 강토를 다 바꿔 놓고 군신이 언 강 위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산성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달아나겠다는 것인지, 지키겠다는 것인지 내주겠다는 것인지, 버티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책 280~281쪽)


작가가 답답해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의 내력이었을 것이다. 수 천년의 문화와 함께 버릴 수 없었던 성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려낸 전선의 그림이 참으로 답답하다. 그것은 후쿠자와라는 일본의 지식인의 눈에도 그대로 비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FTA 시대라고 해서 달라지는 게 무엇일까.

문명이라는 것은 홍역이 유행하는 것과 같다. …… 이 유행병의 해로움을 증오하고 이것을 막으려고 해도 그 수단은 있는 것일까? 나는 결코 없다고 증명한다. …… 차라리 힘써 이 유행병의 전염을 도와, 일본 국민을 빨리 그 기풍에 물들게 하는 것이 지자가 해야 할 일이다. …… 문명을 막아 그 침입을 금하면, 일본은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 
불행한 일은 이웃 에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조선이다. ……이들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라가 망해, 국토는 세계의 문명 여러 나라들에 분할될 것임에 한 점의 의혹도 없다. 왜냐하면 홍역과 같은 문명개화의 유행에 직면하면서, 양국은 그 전염의 자연적 추세에 등을 지고 무리하게 이것을 피하려고 밀실 안에 틀어박혀 공기의 흐름을 막고 질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 중에서)


수만의 적군이 남한산성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본진을 차리고, 실질적인 전투는 본진에서 떼어진 수천의 청군과 남한산성을 지키는 초병이거나 성을 떠나 게릴라전을 펼치는 유군(유격대)의 각개전투이다. 사실 이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보다 '각개전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저마다 대의를 외치지만, 임금조차도 한목숨을 부지하기를 바라고 함부로 오줌을 싸대는 칸 앞에서 굴욕을 감수했다. 국서의 명을 받든 당하들은 자기의 이름을 역사에서 빼고자 똥오줌을 질질 흘리며 명을 거슬렀고, 병사들이나 서민들이나 당장 먹여주는 곳에 귀의할 뿐 전쟁의 국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이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김훈은 작가의 정체성이라는 해묵은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천상 소설가이다. 지식인을 대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민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그려낼 뿐이다. 개화파와 개전파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논쟁일 텐데,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논쟁이었다. 다만 거기다가 '말'을 덧붙였을 뿐이다. 그 논쟁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없다. 다만 허위를 드러낼 뿐이다. 소설가가 담담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뜻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정설이지만, 김훈은 이 점을 너무 미련하게 추구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논의하지 않고 그려낼 뿐이다'는 전설의 작가들도 자신의 할 말은 모두 했다. 다만 최종적인 결정을 독자에게 배려할 뿐이다. 그 정설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마치 최명길과 김상헌의 길이 다르지만 그 지극한 곳에 미쳐서는 하나의 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100년 후에 이 책을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우리의 해묵은 내력이나 짜증나게 훑으라는 것인가. 김훈의 '유보'가 너무나 아쉽다.

다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글붓과 그림붓이 다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유익한 가르침이었다. 나는 종이 한 장을 펼치고 거기에 인물들과 사건들을 지도처럼 표시할 것이다. 김훈의 인물들은 정물화처럼 희맑지만, 나는 인물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여 현장에서 녹이고 남을 듯한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의 나머지 작품들을 읽는 것은 나의 선택이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담담함보다 치열함과 섬뜩함을 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독자를 먹여살리는 것은 작가의 기록이 남긴 '의제'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치밀한 묘사가 아니라 인물들의 생생한 열전과 책이 일관되게 던지는 메시지다. 참으로 여민동락(與民同樂)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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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5-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분께 싸인 받았다. 나도 왠지 이 책은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데 그래도 전작주의 작가라 읽기로 했다.^^

승주나무 2007-05-2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스텔라 누나//나는 싸인은 받지 않았지만, 기회가 좋아 책을 얻게 되었어요. 처음 읽는 김훈이라 그런지 적응은 되지 않네요. 그래도 배울 것은 많은지라 읽기로 했죠~~
 

마일리지와 적립금 분리가 고객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게 정말 그래서 그럴까 하는 의심이 요즘 자꾸 든다.
가뜩이나 책 사기도 어려워진 환경인데, 콧물 받아먹듯 마일리지를 받아 쓰다가는 책 파산이라도 할 것 같다.

최근 구매 내역을 보면 내가 78,120원의 책을 사는 동안 2,140원의 마일리지가 생겼다.
책에 따라 마일리지가 다르겠지만,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분리하고 나서 마일리지의 활용도가 극히 부진해졌다. 예전에는 그래도 몇 권 사면 적립금으로 전환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노라 삼수갑산이다.
아~ 옛날이여어~~~


로쟈
에밀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1/1 가격 : 29,750 원
마일리지 : 900원 (3%)

파란여우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1/1 가격 : 11,25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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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ory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1/1 가격 : 7,500 원
마일리지 : 230원 (3%)

 

 


夢猫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1/1 가격 : 6,400 원
마일리지 : 200원 (3%)

 


젊은 느티나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1/1 가격 : 6,000 원
마일리지 : 60원 (1%)

파란여우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1/1 가격 : 6,000 원
마일리지 : 180원 (3%)

배혜경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1/1 가격 : 5,600 원
마일리지 : 60원 (1%)

raneenrajah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1/1 가격 : 5,620 원
마일리지 : 170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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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마일리지가 10,000원이 넘어야하니 힘겹습니다. 그냥 세월아 네월아 놔두다가 어느 순간 쌓이면 그때 써먹곤 하죠.
 
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간적으로는 ‘역사’의 과정으로 통해서, 공간적으로는 각국의 ‘관계’ 혹은 ‘이해관계’를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감안해서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때의 다른 나라’가 되어 버린다. 다른 나라의 역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 대해서 이러한 원칙을 적절하게 지켰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국사』는 특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때마다 ‘민족의 철천지원수’, ‘절멸시켜야 할 적’의 존재를 명확히 설정한 뒤, 이런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복종, 화합과 단결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에서 돋보이는 ‘상상 속의 적’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이다. 이와 같은 식의 역사서술은 일본아 자신들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일본의 현대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도 겹칠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현대사로 넘어오는 흐름의 중심에서 격변기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유교 중심적 전통주의에서 서방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일본이 아시아 최초였다. 만약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냉전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파악하려 한다면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구조를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책의 서술 의도는 일본 지식인이 자국의 중고등학생에게 읽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체가 평이하며 매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화폐 1만엔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학문의 권장』이라는 저자이기도 한 후쿠자와가 자신의 책을 ‘원숭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다’고 한 말은 오히려 이 책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용으로 집필되었다고 해서 기본적인 교양서나 학습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이보다 명쾌하고 간결하게 소개한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오히려 일반인에게 매우 유용한 점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은 국제정세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였으며, 동시에 국제정세의 흐름에 가장 깊숙이 편승하고 있다. 이 편승은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세계사를 만들어낸 주된 흐름이기 때문에 일본이 얻은 이익은 패해 그 이상이다. 현대사는 일방통행이며,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은 바로 미국(서방)이 만들어놓은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몇 년도에 무슨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리타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뜻’을 명쾌히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읽는 한국사』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뜻으로 읽는 일본 현대사와 한국, 그리고 세계의 현대사』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에 의해서, 일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저이 다르다. 즉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일본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 관점을 우리 역사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잃어버린 현대사’를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덧 : 원제가  '일본이라는 나라?'여서 한국 제목도 그것을 따랐지만, '번안'이 아쉽다. 일본에 관한 시시껄껄한 소개서가 많은데, 이 책의 제목이 마치 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뜻으로 읽는 일본현대사' 같이 좀 기획력 있게 제목을 만들었으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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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0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 2009-06-1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보고 건너뛰었다가 목차 보고 구입합니다. 제목에 대한 지적 공감해요. 땡스투! (알지의 자유)
 
유쾌한 딜레마 여행 -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사고 실험 100
줄리언 바지니 지음, 정지인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딜레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잘 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최악인 상황. 갑자기 쓰러진 친구를 업고 병원에 가면 수업불참으로 선생님께 혼이 날 테고, 교실에 갔다가 병원에 가면 친구의 증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상황. 누구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딜레마에 대한 예행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사서 딜레마의 상황에 빠져보는 것이다. 잘만 연습하면 실제상황이 닥쳤을 때 후회없는 최선의 선택을 하거나,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논어』에서도 ‘멀리 사고하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닥친다’(人無遠慮, 必有近憂)고 하지 않았나.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거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니까.

『유쾌한 딜레마 여행』은 무려 100가지 딜레마를 제시한다. 그 중에서는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만나기 쉬운 상황들이 제시돼 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부터 영화 메트릭스에 이르기까지 흥미 있는 주제들을 실제 사례와 상황을 만들어 간략하게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책이나 이론들을 표시해 놓았다. 그 다음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뒤따른다.

사고실험이라는 것은 실험도구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을 말한다.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단순하게 가정한 후 이론을 바탕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한다. 실제로 만들 수 없는 장치나 조건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다. 그야말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다. 우리가 철학책을 읽기 힘든 이유는 ‘이론’이 긴 분량으로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중요성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가끔 철학책에서 일상의 예시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상황이란 그런 것이다. 상황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심오한 주제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우리가 『장자』라는 책을 오래도록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논술’의 주요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논술학습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논술은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추상적 분석을 시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유추하는 작업이다. 제시문에서 간단한 상황이 펼쳐지거나 일상의 사례가 소개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신의 사고력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100가지 상황에 대해 알기 쉽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분석을 따라가면서 함께 배우거나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새로운 해석을 내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테마의 말미에 유사한 4가지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해서 생각해본다면 더욱 깊이 있는 사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100개의 딜레마를 정복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시간을 두면서 찬찬히 곱씹어보는 것이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딜레마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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