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능욕하지 못할 집을 짓자
<시사저널>과 결별하고 새 길 찾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박상기(hare8282) 기자   
 


 
▲ <시사저널> 노조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이 심상기 회장 자택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시사저널> 노조
 
지난 일 년 참 힘들었지요? 더구나 파업 이후 6개월은 기자들은 물론 가족까지도 무급인생을 사느라 고생이 암만했을 겁니다. 된 가뭄으로 바짝 마른 저수지 바닥에 남은 붕어들은 서로 침을 흘려 몸을 적신답니다. 침으로 비늘을 적시며 해갈의 비를 기리지요.

<시사저널>기자, 22명은 바싹 말라 갈라진 저수지 바닥에서 서로의 몸을 보듬고 6개월을 버텼지요. 그 고난의 체험 하나만으로도 그대들은 자본의 발길질에 급소를 채여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존재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북아현동 <시사저널> 심 사주의 집 앞은 참 인색하더군요. 진짜 그가 소문처럼 몇 백억 가진 부자라면 대문 앞에 한두 평의 공터는 내주는 게 상식일 텐데, 메뚜기 이마빡만한 여유도 없이 집을 지어서 대문 앞에 걸터앉을 자리조차 없더군요. 집주인의 인색함과 몰인정이 한눈에 읽혀지는 듯했지요. 아마 거지도 평생 그 집 대문은 두들기지 않았을 겁니다. 대문 꼬락서니를 보니 쉰밥 한 덩이 얻어가기 힘들겠다 싶었을 테니까요.

그대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존재가 아닙니다

언론의 편집권 확보를 위해 민주언론, 독립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시사저널> 정희상 노조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이 벌이는 단식투쟁인데,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궁둥이를 들고 일어나 쫓기듯이 비켜줘야 하니 단식의 격이 떨어지고 투지가 희화되는 듯했습니다.

하늘의 왕자 알바트로스가 뱃사람에게 잡혀서 날개를 꺾인 채 조롱당하는 치욕을 느끼지 않았을는지요. '선비 말년에 배추씨 장사'를 시켜도 유분수지, 한국의 보물급 기자 둘을 골목 논다니로 만들다니 그 집 주인은 참 예의도 없고 배알도 없는 사람이더군요. 그 땡볕, 그 모기, 그 빗속에서 9일을 굶은 건 실내 단식 보름 이상에 해당하는 고통을 견딘 것이고 곤장 백대 이상의 모욕을 참은 겁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삶이 오욕(汚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요. 오욕을 몰랐다면, 그런 삶이 가능했다면, 그건 어쩌다 주어진 행복이고 과거입니다. 산다는 건 더러움의 늪에, 욕지기의 바다에 섞여 있음을 자인하고 안간힘을 다해 그 바다를 건너는 겁니다. 한 평생 때 묻지 않고 흔들림도 없이 화살처럼 날아가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고 무명(無明)이지요.

그렇게 자신이 팔자 좋게 태어났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 전국의 미치광이들하고, 또 심(沈)-금(琴) 자 성을 가진 두 노인을 빼고는 없을 겁니다. 심과 금, 언론의 심금(心琴)을 부순 환멸의 커플이라고 해도 될까요.

만해 한용운 선생의 가르침 가운데 인욕(忍辱)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군요. 인욕이란 말 그대로 '욕됨을 참음'이지요. '계율을 굳게 지킴'의 지계(持戒)와 함께 불교 수행의 기본태도이지만, 불자(佛者)가 아닌 사람도 그럴 겁니다. 험한 세상살이에서 '욕됨을 참지 않고는' 직장생활도, 장사도, 공부도, 정치도 할 수 없으니까요. 부부 간에도 매사에 할 말 다하고 따질 거 다 따지고 살지는 않잖아요.

만해는 인욕(忍辱)을 말하기를 "인욕(忍辱)이란 것은 인욕(忍辱)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과정의 한 방편이다. 다시 말해서 욕(辱)됨만을 참기 위한 인내(忍耐)가 아니라 진일보하려는 도중의 한 소극적 수단"이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주 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욕(忍辱)이란 것은 당장에 설욕(雪辱)하는 것 이상의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능히 참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을 자율적으로 참는 것을 이름이니, 만일 참지 아니해야 할 것을 참는 것은 인욕(忍辱)이 아니라 굴욕(屈辱)이다."

참을 만큼 참았으니 더 참으면 굴욕입니다

욕됨을 싹 씻어내는 '설욕', 피동적으로 욕됨을 받아들이는 '굴욕'과 비교하면서 인욕(忍辱)의 참뜻을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주었지요. '아, 그렇구나!' 일제 식민통치에 맞서고 부패한 친일종단에 맞서 불굴의 저항을 펼친 만해 정신은 바로 '굴욕'을 거부하고 "참지 아니해야 할 것에 대해 참지 아니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대들은 지난 1년 참 잘 참았습니다. 사정을 듣고 보니 무단 기사삭제라는 긴급조치가 발동되기 전에도 언론의 심금을 깨뜨리는 독단의 징후가 짙었다면서요. 참을 만큼 참았으니 더 참으면 굴욕입니다. 참지 아니해야 할 것과 분연히 결별하는 아우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결별식장에서 흘린 눈물만으로도 휘발유는 충분합니다. 이제 새 길로 떠납시다.


 
▲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편집국 현판 앞에 모인 기자들은 "굿바이~ 시사저널!" 을 외치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빨래를 하십시요. 길 떠나기 전에 찌든 옷은 빨아야합니다. 옷을 벗어 가마솥에 넣고 삶으세요. 푹푹 삶아요. 미움도 실망도 미련도 배신까지도 푹푹 삶으세요. 특히 단식하느라 내복도 제대로 못 갈아입었을 두 전사는 애벌빨래로는 냄새가 안 가시니 표백제를 아끼지 마세요. 옷만이 아니라 지난 세월을 몽땅 가마솥에 넣어버려요. 이것저것 다 떠메고 출발하면 걸음이 무겁습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백두산 사냥꾼처럼 날렵하게 행장을 꾸리세요.

길을 묻는 자에게 길은 없습니다. 길은 뚫어야 생깁니다. 도끼와 벌목도로 잡목을 찍어내 밀림을 뚫고, 너도나도 낙타가 되어 사막을 건너야 합니다. 굴욕의 땅을 벗어나 사막을 건넙시다. 그리고 사막 건너에 새 집을 지읍시다. 그 행로에 눈물이 나고 피가 흐르고 골절이 생기겠지요. 이토록 힘들다가는 몰살이라는 비명도 나올지 모르겠지요. 그래도 그게 마지막 선택인데 어쩌겠어요. 가야지요. 사막을 향해 나가야지요. 누군가 그게 길이냐고 묻거든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선택'이라고 말하세요.

성자(聖者)도 잘 모르는 길을 중생이 어찌 알겠나요. 선택은 생존이고 운명입니다. 때로는 일생이기도 합니다. 그대들의 손으로 심지를 뽑았으니 두려움 없이 가야지요. 자신이 이정표이니까요. 더 이상, 누구도, 무엇으로도, 그대들의 펜을 능욕하지 못하게 해야지요. 능욕에 길들여진 사람은 그 동네에서 그렇게 살라고 할 밖에요.

그만 눈물을 훔치고, 신발 끈을 조이세요.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세요. 먼 행로의 시작입니다. 날마다 뜨고 지는 해는 있을 테니까 발이 부르트고 무릎이 아파도 새 날입니다. 걷는 게 길이요 살아나야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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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에 이따위 일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된다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삼성이고 심머시기고 참 대단들 합니다. 매일마다 지하철 가판대에서, 길거리 가판대에서 주간지 코너를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 혹시나 관심있는 주제를 다룬 게 있을까 해서 - 지금의 짝퉁 시사저널엔 눈도 마주치기 싫더군요. 정기구독자들이 다 빠져나가서 한번 망해봐야합니다. 근데 다 빠져나가도 삼성에서 꾸준히 광고를 대주면 봐주는 사람 없어도 꾸준히 나오겠다 싶더군요. 그게 지금 잘 팔리는지 의문입니다. 잘 팔린다면 그것도 참 개탄스럽습니다.

승주나무 2007-07-0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 한 분이 명언을 남기셨더군요. 시사저널을 구독하다가 갑자기 짝퉁 시사저널을 보니 마치 '성추행'당하는 기분이었다고요. 바꿔야죠. 정신 차리게 해야죠.
 

 

‘텃새’ 딱새와 ‘철새’ 노랑할미새의 ‘한지붕 두가족’
입력: 2007년 06월 06일 18:24:07
 

6일 전북 남원시 한 농가의 농기계안에 텃새인 딱새(사진 왼쪽)와 여름철새인 노랑할미새가 나란히 둥지를 튼채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품고 먹이를 주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텃새(딱새)와 철새(노랑할미새)가 나란히 둥지를 튼 채 새끼를 키우며 ‘한지붕 두가족’ 생활을 하는, 진귀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6일 전북 남원시 지리산국립공원 자연마을 한 농가의 농기계에 딱새와 노랑할미새가 한 뼘 간격을 두고 둥지를 튼 채 동시에 번식하는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고 밝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 4월 중순부터 마을 주민 정영상씨의 비닐하우스 창고에 보관 중이던 한약재 절단기에 노랑할미새와 딱새가 차례로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먼저 노랑할미새가 세 마리를 부화했고 며칠 후 딱새도 여섯 마리를 부화해 한지붕 두가족의 동거가 시작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홍보팀 오영상씨가 무인카메라를 통해 이들의 번식과정을 관찰한 결과 딱새와 노랑할미새가 상대방 어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등 다정하게 지내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랑할미새가 딱새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딱새가 노랑할미새 새끼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장면이 확인된 것이다.

공단측은 “번식기에는 새들이 민감하기 때문에 서로 스트레스를 받기 쉽지만 이웃사촌처럼 사이좋게 번식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

공원관리공단 윤덕구 팀장은 “조류의 특성상 선호하는 서식환경이 다른 종끼리 이처럼 가까이 둥지를 트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더욱이 상대방 새끼를 돌보는 모습도 기록돼 조류학계에서는 특별한 번식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촬영 : 국립공원관리공단

참새목 딱새과의 딱새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텃새로 민가 지붕, 처마 밑에서 둥지를 틀고 한번에 5~7개 알을 낳으며 중국, 한국 등지에 분포한다. 참새목 참새과의 노랑할미새는 여름철새로 4~10월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며 처마 밑, 나무줄기의 오목한 곳에 둥지를 틀고 한번에 4~6개의 알을 낳으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중·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이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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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뫼비우스 그림,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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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진화를 찾아나서는 신비로운 모험!

 

우리는 한번이라도 마음이 진실로 원하는 것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 본 적이 있었나? 하다  못해 학창 시절에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고, 대학교에 가서도 취직 공부 때문에 학문다운 학문을 못해보고 대학문을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은이 산티아고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 성직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을 뒤로 하고 목동이 되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룻밤의 강렬한 꿈을 표지로 삼아 삶의 터전이었던 양떼마저도 포기하고 단 하나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표지’를 향해서 긴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에 커다란 좌절을 경험하고 세속의 성공을 이루고 많은 안내자들을 만났지만 그것은 산티아고가 자신의 마음과 대화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만물의 언어를 익히고 바람과 해와 사막과 이야기를 나누고 만물에 새겨진 신의 뜻을 따라 도달한 곳은 결국 자신의 마음이었다.

이 책은 초자연적인 신비와 자연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에 대해서 동화처럼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체적인 뼈대는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듯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자연의 산물들을 자연의 언어에 따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가열하여 금속 특유의 물질적 특징을 발산시키고 오직 만물의 정기만을 만들어 낸다. (137쪽) 연금술사에 의해서 절대적인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가 만나게 된다. (231쪽) 뿐만 아니라 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연금술사의 영혼조차도 함께 용해되어 불순물들이 제거된다. 이들이 만들어낸 금이라는 것은 단지 값어치 나가는 결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와 인간의 영혼이 결합된 진화의 상징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자들, 즉 연금술사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화의 상징인 금이 전쟁의 신호가 되어 버렸다. (222쪽)

이 책을 읽으며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유명세’이다. 이 책의 모든 감명은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많은 찬사와 호평이 이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은 ‘물질적인 금’이 되고 만다. 산티아고를 비롯해서 이 작품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여 대화를 나누고 책이 들려주는 만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마침내 감동을 발견해야 한다. 혹은 이 작품이 너무 예언적이지는 않은지, 산티아고의 여행과정이 너무 비현실적이지는 않은지, 등장인물들이 너무 빈번히 나타났다 사라지지 않는지 회의와 비판의 시선도 물론 독자들이 잃지 말아야 할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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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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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난이라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제3세계의 기근 문제는 역사적으로 골이 깊은 문제이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민지 정책의 상처와 세계 금융 자본의 폭력이 이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제3세계 기근의 문제를 매우 단순하게 생각해 왔다. 게으른 자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고통이라거나,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남아도는 지역의 작물을 기근에 시달리는 곳에 융통하면 기근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얕은 희망을 품어 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기근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음식만을 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단식보다 복식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숙련된 전문의가 약해져 있는 소화기관에 영양주사를 통해 원기를 회복하고, 기본적인 신체기능이 서서히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정확한 진단과 신중한 처방이 있어야 한다. (58쪽) 뿐만 아니라 내전에 의해 처참한 식량난을 겪는 주민들에게 공수기를 이용해서 식량을 살포하는 것은 오히려 불쌍한 난민들을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식량 팩들이 들판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면 굶주린 여자들과 아이들이 그쪽으로 달려가다가 지뢰를 밟아 몸이 찢기곤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내전 지역의 주민들에게 식량을 안전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군사적인 보안 등 커다란 비용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조치 없이 단순히 식량만 살포할 경우, 그 식량은 대체로 독재자와 테러리스트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178~179쪽)

이 책은 저자인 아버지와 카림이라는 자식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림이 궁금한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면 아버지가 상세하게 답변해주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추가 질문을 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기근’이라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기아의 문제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경제적 기아란 환경재난이나 내전 등 돌발적이고 급격한 정세변화로 인해 순식간에 엄청난 난민이 발생하며 생기는 문제인 반면, 구조적 기아는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 결과라고 한다. (48~49쪽) 대체로 가난한 나라는 부패를 먹고 자란다. 관료들은 자신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하고 때때로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원조 역시 절실한 국민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로 허약해진 제3세계의 체력이 경제적인 기아를 만났을 때 처참한 결과를 빚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저자는 기아문제가 발생하는 기원에서부터 그것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복잡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들의 탐욕을 고발한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이나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대통령처럼 개혁에 나선 젊은 지도자들의 의지를 처참히 짓밟은 것은 강대국과 대자본이었다. 자급자족의 개혁은 자본의 침투를 방해하기 때문에 방해하는 세력을 없애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한 자본노예의 모습일 뿐이다.

기근과 생명파괴의 문제를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과 내부적인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다. 세계 각국도 제3세계의 나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이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여론이 동원되어 강대국의 지도자들을 각성시켜야 하며,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단체나 국가 간의 연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대안을 천명하고 있다. (167~169쪽)

가난은 그 나라의 숙명이 아니라 자본에 무자비하게 훼손된 인간 가치의 자화상이다. 제3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기근의 참상이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설익은 정당성으로 이 문제를 사소하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자본의 부당한 폭력행위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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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06-2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하는 게 아니라, '나라님'이어서 못하는(어쩌면 안하는) 것이란 사실을 이 책은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들은 그들의 부를 위해 세계의 가난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에게 가난은 극복의 대상이 아닌 부의 유지의 수단일 뿐이니까요. 분명 이 세계의 가난은 우리 '가난한' 자들의 연대로부터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ㅎㅎ

승주나무 2007-06-2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 님//가난을 먹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으니까요~~그들이 가난을 한번 먹어보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생활을 계속 해야겠지요. 감사합니다.

Koni 2007-07-03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아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한가를 깨닫게 만드는 책이에요. 그리하여 알량한 양심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것을.

비로그인 2007-07-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아영엄마 2007-07-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승주나무님이 이렇게 알찬 리뷰를 올려주셨으니 저는 책만 열심히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앗.. 차력도장 필독서인 거 까먹을 뻔 했다..-.-)

마노아 2007-07-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축하해요~ 요새 승주나무님 서재에서 시사저널 관련된 글을 인상깊게 보고 있어요. (>_<)

승주나무 2007-07-1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 님//이 세사에는 불편한 진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체셔고양이 님//리뷰 당선 소식을 이제야 봤네요.. 댓글도 보이지 않아서 이제야글을 남기네요. 감사합니다.
아영엄마 님//감사함니다. 리뷰보다 알찬 책이었어요.
마노아 님//시사저널 사태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홍보해 주세요^^;

승주나무 2007-09-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알리샤님//좋게 보셨다니 저도 좋네요~~
 
 전출처 : 승주나무 > 서재 1.0과 2.0, 업데이트와 다운데이트

뭐, 업데이트가 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그러면 업데이트가 아니라 '업-다운 데이트'가 아닐까.. 그래서 업데이트와 다운데이트를 정리해 본다. 내가 서재2.0을 구석구석 둘러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또 없나?

다운데이트


1. 가장 아쉬운 것은 '내가 남긴 댓글'이 없어진 것.. 댓글 남겼던 흔적을 하나씩 되새기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는데, 이제는 나의 '잃어버린 댓글'을 찾을 길이 요원하다. 알라딘 서비스센터 직원은 그 기능이 다음 업뎃 때 복원된다고 했는데, 어느 세월에~~~

2. 내 서재 댓글이 메일에 소개돼, 알라딘에 접속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기능이 없어져서 아쉽다.

3. 내 서재 대문에 들어가면 즐찾해놓은 이웃들의 글이 브리핑 되었는데, 그것을 보려면 서재 브리핑을 한 번 거치고 봐야 한다는 거.

4. '나의계정'이 따로 안 보이는 기능도 아쉽다. 왼쪽 상단 '알라딘 메인'에 기웃거리다가 '계정'을 클릭하면 되지만, 한번에 펼쳐지지 않아서 아쉽다. '보관함'은 '보관리스트'로 바꾼 것 같은데.. 

없어지진 않았지만, 없어진 것만큼이나 아쉬운 점

1. 카테고리 편집할 때 글들에 '전체체크'해서 한꺼번에 편집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서재 2.0에 나온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나오지 않아서 아숩다..


반가운 업데이트

1. 알라딘 서재에만 있던 현상인데, 서재1.0에서는 '링크' 기능이 없었다. 주소를 링크해서 올려놓지는 못하고, 주소 링크된 텍스트를 그대로 복사해서 놓을 수는 있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0에서는 링크 버튼이 생겼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내 서재 검색 기능'은 언제나 염원하던 기능이었다. 1.0에서는 생뚱맞게 알라딘의 모든 D/B가 검색돼 상당히 불편했는데.. 이제는 내 서재 검색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되었다.

3. '태그' 추가는 언제 봐도 반가운 기능이다. 알라딘 서재도 이제는 '일반적인 블로그'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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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07-0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운데이트1. 서재브리핑>댓글브리핑에서 볼 수 있던데... 새로 추가된 것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