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요즘 이 문제에 집착적으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전체의 값으로 보면 너무 미약해서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버를 좀 해야 평균값이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당분간 이 화두에 계속 매달릴 것 같습니다

민초들이 쏟아낸 1억원어치의 분노
PD수첩 보도 이후 전 시사저널 기자단 사무실 풍경
텍스트만보기   오승주(dajak97) 기자   
 

비가 무정하게 내리는 날이었다. 오목교에 위치한 시사저널의 새 둥지로 가는 길은 무척 고단했다. 공사장에서 새어나오는 빗물이 인도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마치 자본에 의해 점령된 대한민국의 언론과 같았다.

기자는 우연히 그 길을 걸어오는 문정우 기자(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장)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도 '여기'까지 오는 길이 무척 고단했으리라. 하지만 분명히 희망도 있다. 간밤에 MBC PD수첩 방영 이후 '각성한 민초'들이 하나둘씩 십시일반으로 모은 후원액과 구독 약정금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4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소액 계좌만 1억원을 넘었으며 이날 9시에는 9월 창간 예정인 창간 시사주간지(제호는 현재 공모중)의 구독 약정금만 1억원을 돌파했다.

같은 날 한 포털에 뜬 PD수첩 관련글은 조회수만 2만회 가까이 되는 등 네티즌들의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MBC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어제 방영된 방송분은 올해 2월 6일에 방영되었던 '삼성공화국, 언론은 침묵하라?'보다 시청률이 현저히 낮았지만, 방송에 대한 반응은 지난 방송때보다 몇 배나 더 뜨거웠다.

기자는 이와 같은 이유를 어제 방송분에 대한 관전포인트와 오늘 시사기자단 사무소의 밀착 취재를 통해서 추적해보았다.

PD수첩의 관전 포인트

① "우리나라 언론 전체가 졌다" 언론인들의 자성?

노순동 기자의 이 한마디는 많은 언론인들을 움직인 것 같다. 다음 날 주요 매체는 '당연히' 침묵했지만, 몇몇 언론은 노순동 기자의 발언을 큰제목으로 기사를 뽑았다. 미디어오늘은 7월 4일자 보도에서 "시사저널 사태 무관심, 대가 치를 것"을 큰제목에 "PD수첩 '기자로 산다는 것' 방송…주류언론 외면 지적"을 부제목으로 뽑았으며 기사 안에서도 편집권 문제에 침묵하는 한국언론의 행태에 대한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의 지적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TV리포터는 "시사저널 못 지킨 건 전언론의 패배"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언론인들의 '자성'은 시사기자단 사무소 안에서도 이어졌다. 경인일보의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노순동 기자를 찾았다. 이번에 '이달의 기자상'을 받게 되었는데, 어제 PD수첩 방영에서 노순동 기자의 말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상금 전액을 후원금으로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 7월 4일 저녁, X파일의 주인공 이상호 기자(오른쪽)가 시사기자단 사무소를 찾아, 정희상 전 시사저널 기자(왼쪽)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오승주
 

저녁에는 MBC의 이상호 기자가 사무소를 찾아왔다. 이상호 기자는 2년전 정치권과 언론, 삼성그룹간의 유착 비리를 고발한 이른바 X파일 사건 보도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그는 어제 PD수첩의 내용을 봤다며, 제작진이 말못할 어려움이 있어서 '할말'을 다 못했을 것이라며 미안해 했다.

본인 스스로도 중요한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는데, 그것이 무마되었던 사실을 고백했다. 결국 시사기자단 기자들에 의해서 '오마이뉴스 릴레이 기고'의 필자로 선정되는 '벌칙'을 받게 됐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지기 쉽다. 하지만 몇몇 의식 있는 언론인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고백하는 한국 언론의 패배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데서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② 누가 이 기자들을 아프게 했는가.

PD수첩은 첫 장면부터 매우 '심각'하다. 집회에 관해 기자들과 경찰 사이의 '교섭'이 진행되는 중 갑자기 들이닥친 '회사 관계자'들이 천막을 마구 찢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의 목을 조르는 등 공중파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상황을 정리하는 문정우 당시 시사저널 기자는 "노순동씨가 욕하는 것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 신호철 기자가 핏대 올리는 것을 보는 게 민망하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기자들이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한 데 대해서 안타까워했다. 그 중에서도 기자들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두 경영자의 '말바꾸기'였다. '몰상식의 표본'에 이어 그들은 '말 바꾸기의 표본'이자 '말 바꾸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으로서 '문제의 기사'를 보지도 않고 삭제를 지시한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지만, PD수첩이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금창태 사장은 '기사'를 보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꺼내든 논리가 더욱 가관이다. "기사내용은 보지 않았지만 삼성으로부터 이미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으므로 본 것이나 다름 없다"는 주장이다. 금창태 사장이 삼성의 관계자인지 시사저널의 관계자인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심상기 회장이다. 기자가 6월 20일 심상기 회장 자택 앞 단식농상장에서 이숙이 기자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이숙이 기자는 "당시 심상기 회장이 발행인을 겸하고 있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금 사장에게 발행인의 권한을 부여한 점이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이를 의식해 심상기 회장은 기자들에게 금 사장은 오로지 경영에만 관여한다는 약속을 해주었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6월 21일자 보도, "금권에 갇힌 언론자유")

하지만 오늘 시사기자단 사무소에서 "심상기 회장이 당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보였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기자들은 "심상기 회장은 그런 약속을 해준 바가 없다"고 답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면서 꺼내든 논리는 금창태 사장의 것과 몹시 흡사한데, "기자들이 저돌적으로 나와서 달래느라고 둘러댔던 것이지 그와 같이 명확히 약속을 한 적은 없었다. 경영인은 편집권과 경영권을 모두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순간 기자들은 철없는 어린애로 전락해 버린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와 같은 두 경영인과 함께 1년간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홀로 '허공'과 대화를 나눴다는 편이 더욱 정확하리라.

③ 기자들의 '가족' 이야기

기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가족들이다. 기자들이 싸우는 만큼의 '짐'을 가족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복지를 '가족'에게 떠넘기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으로 보았을 때 이들의 생활고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중에서도 '생활고'와 '투병고'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이숙이 기자의 상황이 독자들의 눈물샘을 가장 자극했으리라. 이숙이 기자의 아버지는 현재 모 병원에서 암 투병 중이다.

이숙이 기자는 "딸내미가 회사가 힘든 거하고 겹쳐서 안팎으로 힘든 모습이 함께 비춰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메모 일정을 확인하며 빨리 취재하러 가지 못하는 상황에 초조해했다.

편집권의 독립은 마땅하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금 하는 투쟁이 의롭고 옳은 것이지만, 동시에 (가족들에게는) 무책임도 된다는 상황이 여러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못해 집에 있는 에어컨을 떼다 팔아야 했던 기막힌 사연을, 백발이 성성한 50대 기자가 누이들에게 생활비를 얻어다 쓰던 날의 열패감과 쓴맛을 기자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더 미안하게 하고 끝내 눈물짓게 만든 것은 가족들이 던지는 의연한 충고이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끝까지 순수하게 사랑을 지켜왔어요. 그 사랑은 변하지 않고, 그 사랑은 지속되리라 생각해요. 불필요한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백승기 전 시사저널 기자의 아내인 박정미 씨가 울먹이며 전한 이 말에 단식투쟁까지 불사하며 강단있게 버티던 김은남 기자가 무너졌다. 22명의 기자들과 그 가족들의 역사, 드라마를 시청자들은 짧은 시간에 볼 수 있었으리라.

시사저널 방영 이후 전 시사저널 기자단 사무실 풍경


 
▲ 시사기자단 사무소 의 게시판에는 기자와 독자들이 '제호'에 대해 응모한 포스트잇이 수없이 붙어 있다.
 
ⓒ 오승주
 

예상 외의 대폭발이었다. 하루 종일 전화통에 불이 났고, 한 기자는 전화를 받느라고 전화기 옆에 음식을 옮겨 놓고 혼자 밥을 먹기도 했다. 한 아주머니 독자는 시사기자단 홈페이지에서 전화기가 한 대밖에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화 계정 하나를 선뜻 내놓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모 신문사의 소액주주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자신이 주주로 있는 신문사가 요즘 심하게 삐뚤어져 가고 있다는 불만을 털어놓은 후 이를 팔아 후원금으로 삼고 싶다고 전화를 해오기도 했다. 한 독자는 자신이 지방 유지임을 소개한 후 자신의 아버지가 수십 억의 노후 자금을 투자할 의향이 있으시다며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그것이 작품이다.

"선비는 자고로 의로운 행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데, 지금 여러분들을 돕지 않으면 누구를 도울 것인가?"

전화는 사무소 문을 닫고 음식점으로 이동한 시각에까지 끊이질 않았다. (이에 대비해 한 기자는 '착신'을 걸어두었다) 미국에 산다는 어떤 독자는 "왜 해외 독자를 위한 계좌는 마련돼 있지 않으냐"며 화를 냈다. 독자들은 때로는 쌓였던 울분을 쏟아놓기도 하고, TV 시청에서 느꼈던 감정을 울먹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일이 너무 더디다며 개선해야 할 점을 일일이 지적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한 기자는 "기존 매체에 대한 불만의 골이 시사저널을 통해 분출된 것 같다"며 이 현상에 대해서 논평하기도 했다.

이날 가장 바빴던 사람은 두 기자이다. 창간호 예약 및 후원에 관한 전화를 받았던 기자와 독자 서포터즈 지원을 받았던 기자이다. 독자 서포터즈 지원을 담당한 오윤현 기자는 빗발치는 신청자들의 전화로 하루 종일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오윤현 기자에 의하면 "부산 등 먼 지역의 독자들의 열의가 매우 왕성했는데, 뭐든지 돕겠다며 나서는 이 독자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며 난처함을 고백했다.

현재까지는 서울이나 가까운 곳에 있는 독자들의 도움이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무소 한켠의 게시판에는 기자들과 독자들이 신매체의 '제호'에 응모한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었다. 시사기자단은 7월 중에 제호 공모를 마감하고 제호를 결정하기로 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제호를 대대적으로 공모하고 있다. 제호에 당선된 독자에게는 '평생구독권'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7월 2일 성인 남녀 1502명을 상대로 한국 사회의 25개 파워집단에 대한 인식을 좋아한 결과 상위 3개를 모두 삼성, 현대차, SK가 차지했다. 특히 이 세 기업은 조사가 실시된 3년 내내 1~3위를 갈아치워 왔다. 정부기관, 시민단체, 정당 등 유력기관들은 모두 하위를 면치 못했다.(경향신문 7월 4일자 보도, "시민단체 갈수록 '퇴조'") 그야말로 '금권의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은 기업과의 오래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사저널 사태가 독자들, 국민들에게 안팎의 호응을 얻는지도 모른다.

자본에 빌붙어야만 언론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상식처럼 되어버린 시대에, 이를 시원히 깨뜨리며 '오래된 상식'을 구경시켜준 시사기자단 기자들이 국민들의 눈에는 예쁘고 신선하게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승주 기자는 4일 하루 동안 시사기자단 서포터즈 활동과 함께 밀착취재를 했으며, '시사모'에서 '안일(安逸)'이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는 회원이다.

 
  2007-07-05 09:2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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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

"중국의 고대 왕조인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은 공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로 성인 중의 성인으로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그에게 한 가지 씻을 수 없는 죄과가 있다. 바로 형제를 죽인 것이다. 주공은 어린 성왕(成王)을 보좌해 수렴청정하고 있었는데, 왕위를 탐낸 두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부득이하게 이들을 처형시킬 수밖에 없었다. 법에 따라 죄인을 처단한 것이지만, 형제를 죽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성인이)때를 잘못 만났다'(逢時不幸)고 회상한다."




<시사저널의 고재열 기자(오른쪽)가 짝퉁 시사저널 1호(통권 899호)로 만든 영정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나는 파업기자들이 쓴 책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을 좋아한다. 몇 번 반복해서 읽어봤음에도 여태껏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이 책이 언론에 대한 나의 오랜 불신감을 달래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시무시한 중동 땅을 가로질렀다는 전설적인 기자(백승기 기자), 미래가 보장된 명문 공대를 자퇴하고 오로지 시사저널 기자가 되기 위해 학교에 다시 들어간 이상한 기자(신호철 기자), 펜만 떼면 기관원처럼 보이지만 기관원보다 '그 바닥'을 더 잘 아는 기자(남문희 기자), 입사가 올해로 18년인데 17년 동안 한 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대한민국 탐사보도 모델'을 만들어낸 집념가 기자(정희상 기자), 유력 정치인에게 받은 촌지를 만연필로 돌려보냈다던 당찬 기자(이숙이 기자) 등등. 기자들의 온갖 열전은 독특하다 못해 상상초월인 데다가 편집부 전체가 고집스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몰래 즐겼다.

 

오늘 mbc PD 수첩을 앞두고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그때의 감동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기자들은 때를 잘못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마음이 문득 스쳤다. 대한민국은 아직 이런 맑은 정신을 가진 기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장자가 호접몽을 꾸었듯이, 대한민국은 18년간 시사저널이라는 단꿈을 즐기다 깨어버린 건 아닐까.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평생 빛을 보지 못하고 갔다. 보들레르가 그랬고, 스피노자가 그랬고, 공자가 그랬다. 시사저널 기자들도 그 길을 갈 것인가. 먼 미래의 기자들이 긴 꿈에서 깨어나 무너진 언론을 일으키는 단초로 오늘을 기억하게 될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로서 용납할 수 없다. 조금 격앙된 마음으로 TV를 틀었다.

이럴 수가.

찢기고, 뜯기고, 목 졸리고. 무엇보다도 기자 5명의 명퇴각서를 가져와서 무릎꿇고 사과하면 복귀시켜주겠다는 굴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 회사측의 모습에 분노가 끓었다. 단식 농성장을 지나던 회사의 핵심 간부는 '생생하네'라는 한마디로 단식을 제대로 한 거 맞느냐는 의심을 노골적으로 쏟아붓고는 떠나버렸다. 방송은 내내 '희망'을 말하기를 잊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이상하게 슬픔과 절망의 모습만 보였다. 아무래도 우울증 치료를 받아봐야 겠다.

 

하지만 조그만 변화, 그러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변화가 생겨났다. 2만원 3만원 소액의 후원금을 보내주는 '개미군단'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자 담을 수 없는 '입금정보'에는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각각의 목소리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미안하고 가장 두려운 가족들이 오히려 포기하지 말 것을 권려했다.

"기자들은 순수하게 사랑을 지켜왔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를 바란다."(한 기자의 가족)

1년 동안 시련을 겪은 기자들은 오히려 단련되었고 1년 전의 원칙은 더욱 굳건해졌다. "문제제기를 한다면 경영상의 불이익을 감당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시사저널 자체가 죽는 것이다."(남문희 기자) 시사저널 기자들은 세상의 언론이 다 틀렸다고 과감히 주장한다. 세상이 다 취해 있고 오로지 나만 깨어 있다던 시인 굴원처럼.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언론은 '시대착오(時代錯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독자는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언론의 고집을 지켜온 시사저널 기자들이 때를 잘못 만난 것인가, 아니면 대다수의 언론들이 시대를 읽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이 한판 승부를 바라보는 독자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힘겹게 두 번째 싸움판을 시작한 시사저널 선수들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2002년의 붉은 물결처럼 일렁인다. 시.사.저.널. 짝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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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7-0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널 생각하며 보았다. 그전부터 네가 여기에 몇편의 시사저널 사태를 올렸잖아.
보면서 난 참 무심했구나 했어. 그리고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07-06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사모 홈페이지(www.sisalove.com)에서 퍼왔습니다.
고재열 시서저널 전 기자가 작성했네요.
저도 중요한 미션을 하나 맡았지요.. 커밍쑨~~





PD 수첩을 봐야 하는 스물두 가지 이유

사장이 기사 하나 몰래 뺀 것 때문에 1년 동안 싸운 기자들이 있습니다.
사장이 기사 하나 몰래 뺀 것 때문에 6개월 동안 파업한 기자들이 있습니다.
사장이 기사 하나 몰래 뺀 것 때문에 결국 사표를 낸 기자들이 있습니다.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의 이름으로 거듭난 이들은 아직까지도 주장합니다.
편집권은 편집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파업은 불법 파업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펜은 돈보다 강합니다’

왜 고재열 기자의 옷에 단추들이 자꾸만 떨어지는지
정치팀 고제규 기자가 왜 난데없는 노동법 전문가가 되어야 했는지를  
채식주의자 김은남 기자가 채식까지 끊어야 했던 사연을
한반도 전문기자 남문희 기자가 투자 유치 팀장으로 변신한 까닭을  
노순동 기자가 기사가 아닌 보도자료를 쓰는데 지쳐야 하는 이유를  
문정우 기자가 누이들에게 생활비를 받아야 했던 이유를
백승기 기자가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한 까닭을
소종섭 기자가 독자를 보호하기 위해 검찰청을 들낙거려야 했던 이유를
신호철 기자가 사비를 털어 정명석 중국 현지 취재를 떠나야 했던 사연을  
안은주 기자의 똑똑한 딸 지민이가 매일밤 찐빵을 데워먹고 혼자 놀다 자야했던 사연을  
안철흥 기자가 금창태 사장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것을 후회하는 까닭을
안희태 기자가 에어컨을 팔아서 생활비를 대야 했던 까닭을
양한모 기자가 ‘시사저널 편집국’ 푯말을 들고 나온 사연을
동화작가 오윤현 기자가 난데없는 사업계획서를 만든 이유를
유옥경 기자가 6개월 동안 시위용품만 디자인해야 했던 사연을
시사저널 훈남 윤무영 기자가 집에 와서 싸울 생각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던 연유
이숙이 기자가 한 송이 국화꽃을 들고 대성통곡한 이유를
이정현 기자가 미술기자에서 카메라 감독으로 변신해야 했던 사연을
갖가지 징계에 시달린 장영희 기자가 끝내 금창태 사장을 고소해야했던 이유를
정희상 기자가 욕심쟁이 만화유통업자 집 앞에서 풍찬노숙 해야 했던 까닭을
주진우 기자가 회사 측이 고용한 용역 건달과 싸워야했던 이유를  
차형석 기자가 거리의 사회자로 재탄생해야 했는지를

알고 싶으시면 오늘 밤 MBC <PD수첩>(11시 5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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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07-0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봐야겠습니다.

비로그인 2007-07-03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 맞춰서 봐야되는데 TV랑 인연이 없어서 또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고맙습니다 :)

마늘빵 2007-07-0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보겠습니다.

승주나무 2007-07-04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 님, 체셔고양이 님, 아프 님//재방송이나 동영상도 있을 테니 꼭 봐주시면 감사.. 아울러 청탁받은 원고 '시청기'도 사랑해주세요^^;
 

국어문화운동본부가 영향력을 갖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평가서 5달째 꼴찌
국어문화운동본부, 6대 일간지 5월 사설 문장 평가 결과 발표
텍스트만보기   김영조(sol119) 기자   
 


 
▲ 6대 일간지 5월 사설 평가표
 
ⓒ 국어문화운동본부
 
<조선일보> 사설이 5달째 꼴찌다. 의도적인가? 국어문화운동본부(회장 남영신, 이하 본부)는 지난 1월부터 주요일간지 사설을 비교분석해 왔다. 이번 달로 다섯번째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꼴찌를 여전히 내놓지 않았다.

이번 발표에서 종합적으로 가장 잘못이 적은 신문은 134.3점의 <한겨레>로 평가되었고, 종합적으로 가장 잘못이 많은 신문은 257.3점의 <조선일보>였다. 또 국어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적은 신문은 <한겨레>, 국어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많은 신문은 <조선일보>, 논술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적은 신문은 <경향신문>, 논술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많은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 논술 부문에서 완벽한 점수(0점)를 받은 경향신문 2007년 05월 19일자 “남북 철도, 우선 개성까지라도 상시 개통을”이란 제목의 사설 전문
 
ⓒ 경향신문
 
이번 평가의 가장 특징은 <경향신문> 2007년 05월 19일자 '남북 철도, 우선 개성까지라도 상시 개통을'이란 제목의 사설이 논술 부문에서 완벽한 점수(0점)를 받았다는 점이다. 논점을 제대로 형성하였으며, 논지를 논리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전개한 점이 눈에 띄었다. 본부는 이제까지 분석한 사설 가운데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설이라고 보았다.

또 다른 특징은 <한겨레>의 사설이 국어 부문에서나 논술 부문에서나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국어 부문에서 많이 개선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겨레>와 함께 <동아일보>도 국어 부문에서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는 신문으로는 빠뜨릴 수 없다. 본부는 이 두 신문이 국어 부문에서 다른 신문들을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 5월 사설 부문별 점수표
 
ⓒ 국어문화운동본부
 

 
▲ 5월 사설별 평가
 
ⓒ 국어문화운동본부
 
그 밖의 특징으로는 논점 형성에 서투른 사설이 아직 많다는 것이다. 기자실 통폐합 관련 사설도 논점을 형성하지 못한 사설의 예에 속한다. 기자실 통폐합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현실과 이상을 배합하는 논리적 분석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또, 정부가 그런 정책을 내놓게 된 배경을 합리적으로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차분하게 분석하여 국민을 설득한 사설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본부가 사설 분석을 시작한 지 5달째 되었는데 각사의 사설에 대한 평가가 어떤 흐름이 있는지 분석함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각 사설의 평가 변화를 검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전반적으로 가장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중앙일보>가 1, 2월에 비교적 좋았던 데 비해 3월 이후에는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또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3월 이후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신문사별 종합 점수 추이
 
ⓒ 국어문화운동본부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이다. 그런 신문의 중심인 사설이 국어 부분이나 논술 부분 모두 가장 나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사실은 신문들이 독자를 바보로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아니 독자를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음이다.

어떤 이는 국어문화운동본부의 신문 사설 평가가 한두 달 하다가 말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 평가는 반년으로 다가선다. 아니 본부는 앞으로 사설뿐만이 아니라 기명 칼럼까지 분석할 계획이 있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신문들이 정신을 차려 적절한 사설을 써야 하고, 국민의 말글생활을 올바로 이끌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7-01 15:1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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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일한 독자였습니다"
시사모 회원이 올리는 릴레이 편지 (9)
텍스트만보기   오승주(dajak97) 기자   

▲ 6월 18일, 태평로 삼성 본사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기자회견 중 시사모 회원으로서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노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1일째 중에서)
ⓒ 시사저널 노조
나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시사모')에서 '안일(安逸)'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다. 내가 맨 처음 투쟁(?)을 한 것은 1997년 대학 새내기 시절이다. 때는 연세대 사태(1996년 8월 연세대에서 벌어진 충돌사태. 대학생 5848명이 경찰에 연행돼 이 가운데 462명이 구속되고 3341명이 불구속 입건됨)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투쟁분위기가 뜨거웠지만, 전반적으로 1997년은 학생운동의 쇠퇴기를 알리는 전환점이었다.

총학생회장 선거에서는 비운동권계열의 존재가 급부상되었다. 게다가 국민의 정부 시절에 터진 IMF 사태는 학생들을 군대로, 도서관으로 내몰았다. 신문이나 교양서적을 읽는 학생들이 사라졌고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구분은 점점 없어져 '고교 4학년'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 후로 10년. 새내기였던 청년은 별다른 자극 없이 소시민이 되어가고 있던 차에 '시사저널 사태'가 터졌다.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 사태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는데, 무엇이 나를 이토록 이끌었을까. 더욱이 나는 <시사저널>이라는 매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 '관계'에서부터 <시사저널>의 문제는 시작된다.

신문이 만들지 못한 '시사저널 의제'를 스스로 만들다

내가 <시사저널> 기자들의 투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은 파업을 시작한 지 70일이나 지난 '지지방문 모임' 때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한민국의 주류 언론에 대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비교적 진보 매체라고 평가받는 <경향신문>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스크랩을 하고 있었는데, <경향신문>이 <시사저널>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현재까지 10건 남짓이며 사설 등을 통해 의견을 낸 것은 단 1건, 외부 필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견을 낸 것도 단 1건이다.

비교적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두려고 노력하는 나조차도 <시사저널>과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들을 나의 '의제'로 삼지 못했다. 내가 <시사저널>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하게 찾아왔다. 저널리즘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세 작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강타한 '황우석 사건'을 보도한 < PD수첩 >의 한학수 CP가 쓴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라는 책과 <굿나잇 앤 굿럭>이라는 영화, 그리고 <시사저널> 기자들이 쓴 책 <기자로 산다는 것>이었다.

책 안의 절절한 내용들을 접하면서 이들을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투쟁하지만 행동으로 투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구호에서나 보았던 '행동하는 양심'을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흔하지는 않지만, 기자들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이것을 어려운 선택이자 딜레마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저널이 저널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 직면한 것이다."

그 글에서 나는 이와 같은 말을 남겼는데, 대한민국의 언론에 해당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저널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소중한 기회를 이미 날려버린 것이다.

안일한 독자임을 고백하다

출판기념회를 하고 얼마 후에 있었던 '힘주는 모임'이 있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파업 이후에 4번 이사를 했는데, 맨 처음 거리로 내몰렸을 때 '천막'부터 시작해서 언론재단 18층인 언론노조 사무실의 '한 켠', 용산 서울문화사가 보이는 시사저널 노조사무소, 최근 옮겼다던 목동의 방송회관.

퇴근길에 찾아간 언론재단 건물은 웅장해서 나 같은 일개 서민에게는 틈입을 허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18층 언론노조사무소는 매우 친근하고 소박했다. 그 한 켠에 케이크가 놓여 있고 여러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이 기자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는 기자들의 수만큼 나와 같은 서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었다. 진행자는 내가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동안 잠시 진행을 멈추는 배려를 보여주었다.

언론노조 사무소 시절(?)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그때는 기자들의 마음속에 '투쟁'보다는 '순정'이 더 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군 전역 후 복학을 앞둔 열혈청년이 낭송하는 편지를 들었을 당시에는 사건의 진상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때라 설익은 문장과 추상적인 개념만이 귀에 들어왔는데, <시사저널> 기자들은 저마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글'이라면 나보다도 이력이 날 정도로 썼던 사람들이 문장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기자들은 '뜻'을 읽었던 것 같다. 공자의 '어눌함'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행사가 거의 다 끝나갈 즈음이었는데 진행자가 진행을 잠시 중단하고 나에게 인사를 권했다. 지각한 데다가 언론사와 관계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선뜻 발언권을 주는 것이 몹시 당황스러웠으나 모임에 찾아가면서 뇌리 속에 항상 끓었던 '울분'을 쏟아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기자들도 안일했고, 독자들도 안일했고, 우리 모두 안일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우리들의 만남을 근사하게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뒤이은 술자리에서 한 기자가 나에게 '가슴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이야기하며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내가 안일한 독자로 남을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세상은 이미 '다른 독자'를 원하는 데 나는 전처럼 읽으려고만 했다. 문어체의 위력에 짓눌리면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안일'이라는 딱지를 스스로에게 붙인 것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안일한 독자가 아니다."

나의 투쟁

시사모는 언론독자운동의 역사적인 캠페인을 남겼다. 그 중에서 가장 시사모답고 유의미하게 기억되는 캠페인은 바로 '나도 고소하라'와 '진품 시사저널 예약운동'이다. '나도 고소하라'는 금창태 사장이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해 의견을 낸 <시사저널> 기자들과 각계의 인사들에게 고소 폭탄을 내던졌을 때 시사모 회원들이 실명을 내세우며 자신의 의견을 용감하게 게재한 운동이다. 지금도 시사모 홈페이지(www.sisalove.com)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진품 시사저널 예약운동'이다. 이미 짝퉁 시사저널이 인쇄되어 나오고 있지만, 독자들은 '진품 시사저널'이 반드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구독료를 미리 입금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시사모의 몇몇 회원은 금창태 사장에 의해서 또다시 '고소'를 당해야만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신문이 독자를 고소한 것은 아마 또 하나의 역사로 기억할 만하다.

내가 싸운 방식은 예컨대 고재열 기자의 방식과 유사하다. '나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다. 고재열 기자는 <시사저널> 사태를 알리기 위해 '퀴즈 프로그램'에까지 참여했다. 나는 이처럼 특출한 방법은 아니지만 나름으로는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자칭 '작가지망생'이기도 한 나는 글로써 <시사저널> 기자들과 함께 싸웠다.

4월 <시사저널> 노조사무소 개소식 때는 나름대로 투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축시'를 써서 배포했고, <시사저널> 투쟁 100일 문화제 때는 행사장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기사를 썼던 소녀기자를 형상화하여 시를 만들었고, <시사저널> 사태를 기탁하는 우화 '함부로 짖는 개'를 썼다.(공교롭게도 <오마이뉴스> 2007년 6월 26일자 "눈물의 결별식… 아, 시사저널!"라는 기사에서 노순동 기자에 의해 소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싸움은 바로 '곁에 있어 주기'이다.

사실 글을 쓰고 기사를 쓰고 하는 일들은 <시사저널> '곁에 있어주기' 또는 '관심 갖기'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 기자회견이나 문화제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가장 독자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로서 맨얼굴을 드러내고 현장에 선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독자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옳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 4월 14일 심상기 회장의 집앞에서 시사모 회원으로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심상기 회장 댁에는 그 후로 한번 더 찾아올 기회가 있었다. 바로 시사저널 기자의 단식 투쟁때였다.(시사저널 노조가 사진을 제공했으며 파업 100일 기념 시사저널 노보 특별판 10~11쪽에 사진이 게재됨)
ⓒ 시사저널 노조
<시사저널> 기자들을 자꾸 따라다니다 보니 언론에 몇 번 노출되었다. 4월 14일 심상기 회장 자택 앞에서 시사모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시사저널 노보>에 크게 실렸다.(위 사진) 그 후 몇 번의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했는데, 가장 하이라이트는 바로 삼성 본사 앞에 선 것이다.

삼성 앞에서의 지지발언은 시사모 부회장인 조형근님이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앞서 청양빌딩 시사저널 사무소 앞에서 지지발언을 했던 이유로 나에게 발언을 부탁하며 이루어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시사모를 대표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표성'이다. 발언을 하며 나는 본의 아니게 내가 시사모를 대표하고, 대한민국의 독자를 대표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그만큼 행동하는 독자들이 적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부끄러웠다. 나만큼 안일한 독자가 그만큼 또 많다는 일이 아닌가.

<시사저널> 기자들의 단식 현장을 찾아갔을 때 김은남 기자(노조 사무국장)의 소개로 당시 현장을 찾은 'CBS 시사자키'와 또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독자'로서 대한민국 언론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총체적인 사회관계의 부재에서 주목되는 독자의 역할

"예전에는 시장에서 사과와 토마토를 모두 사먹을 수 있었지만, 어느 날 시장에서 사과만 팔았을 때 우리는 토마토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이제는 독자가 수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매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심상기 회장 자택 앞에서 'CBS 시사자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현재의 언론은 '새로운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권력이 강대해지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현상'이며 '환경'일 뿐이다. 언론과 기업과의 관계는 관계가 아니라 '유착'이다. 그렇다면 관계는 무엇인가? 매체의 주체들이 각자 위치를 잡고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거기서 주목되는 주체가 바로 '독자'이다.

시사저널 사태는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언론독자의 역사'와도 중첩된다. 언론의 독자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한 유래는 이제까지 없었다. 나 자신도 이것은 독자운동의 남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세게' 이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 청와대 발 '기자실 폐쇄조치'와 '삼성의 언론 길들이기'로 대표되는 언론환경인데, 이것을 '관계'로 보기보다는 '환경'으로 보는 시선이 대다수이다. '관계'는 분명 투쟁으로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사이에 독자가 들어가지 않는 관계는 제대로 된 관계설정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언로(言路)의 환경'은 많이 변화되었다. 폐쇄적인 사회와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거치고 민주화된 사회를 만나면서 언로는 훨씬 개방되었지만, 유일하게 변화하지 못한 것은 바로 '독자'이다. 독자는 언제나 '우매한 군중'으로 남는다. <시사저널> 오너들이 이와 같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독자'를 우습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미FTA를 어이없게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독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한미FTA 찬사 기사를 쓰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독자 1인 미디어의 시대이다. 하지만 독자는 충분히 연대하지 않고 있고, 목소리는 분산되고 있다. 가깝게는 시사저널 사태에서 대한민국 언론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바로 '독자의 움직임'이다. 그것이 향후 수십 년의 언론환경을 좌우할 것이다. 시사저널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나는 이 시간 동안 독자의 강렬한 행동을 유감없이 남기려 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이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기자는 죽어서 '말'을 남긴다. 기자의 '말'과 독자의 '귀' 사이를 가로막는 무엇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기자는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독자는 귀를 더 쫑긋 세우고, 그것도 안 된다면 더 가까이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자. 기자와 독자의 위대한 대화는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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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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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품을 보길 원합니다. 저도.

승주나무 2007-07-0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진품은 없고 진품이 되려는 노력만이 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