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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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을 만나러 가는 고속 버스 안에서 이 글을 쓴다. “제4회 예스24 문학기행”에 운 좋게 추첨된 것이다. 첫 날의 강사는 은희경 작가이고, 둘째 날 황석영을 만난다. 때문에 급히 그의 소설 ‘바리데기’를 읽는다.

황석영의 이 소설에는 잔잔한 대하가 흐르는 듯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단한 길을 걸어간다. 그러니까 황석영의 소설 속에는 물과 길이 어우러져 흘러간다고 해야 하겠는데, 그것은 존경받는 중견작가로서의 완숙미를 보여줌과 동시에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은 기성 작가들이 보이는 일종의 굴레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피노자처럼 망치를 가지고 이것저것 깨부수는 철학자가 있는 반면 대학교수와 같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축적형 철학자’가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아무리 금태를 두른 듯 보이고, 존경과 선망을 받는 듯 보여도 나 자신에게는 가시밭길이자 굴곡이다. 특히 작가라면 자신의 아우라를 허물고 전혀 새로운 캐릭터로 변모를 거듭해야 하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점으로 보자면 황석영은 ‘중견작가 혹은 원로작가’의 직함이 더 어울릴 듯하다.

이야기는 ‘바리’라는 주인공의 태생에서부터 아기를 낳고 가족을 이룰 때까지의 경과를 다루고 있다. 바리가 살아온 행로는 고난의 길이었는데, 그것은 토속신앙에서 ‘바리’라는 인물이 만인의 고통을 대변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설 속에서 반영한 결과이다. 바리가 고난을 겪고 사람들을 만나는 행로는 사뭇 안정적이며 노련미 있다. 사건과 사건 간의 인과관계가 매우 세밀하며 상황 속에서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으면서도 문체 자체는 그야말로 청산유수처럼 쉽게 읽힌다.

그의 소설을 기대한 독자이거나 소설의 미학적이고 기법적 향취를 얻고자 하는 독자라면 일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런 이유 때문에 불만이다. 즉 주인공의 운명과 운명에 걸쳐 있는 메시지는 깔끔히 정리돼 있었으며 담아야 할 이야기 오늘날의 핵심적인 담론들, 이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읽은 후에 독자가 얻게 되는 교훈까지도 작가는 모두 배려했다. 마치 소설을 통해 강의를 들을 느낌이랄까? 나에게 소설 읽기는 소설쓰기의 일환이며, 본질적으로 그것은 ‘모험’이다. 소설은 나에게 무지의 세계이며 모험이며 내가 차곡차곡 쌓아둔 ‘도덕의 성’을 공격하는 적병이다. 예컨대 종교 지도자는 임종 시에 신비를 발휘한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사리’라는 기제를 통해 죽음의 신성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하지만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는 그 살이 부패하고 구더기가 모든 살을 파먹은 것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우리들의 ‘환상’을 여지없이 허무는 것이다. 이반 카라마조프의 ‘대심문관’은 어떤가, 예수가 강림했지만 사제는 그를 처형하려 하고, 그를 거부한다. 이것은 독자가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은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점이 아쉽다. 그가 비록 형식적 완성을 이뤘을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의 세계관은 침해당했다.
개인적으로 도스또옙스끼를 환기시켜 준 점은 이 소설을 읽고 내가 얻은 것이다.
핵심 담론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건드렸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자신의 입장을 가르쳤을 뿐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환기시켜준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운동가이자 지도층으로서의 황석영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황석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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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리뷰 반갑습니다 :)

승주나무 2007-08-15 14:29   좋아요 0 | URL
체셔고양이 님//어제 방금 도착했습니다. 정신없이 잠을 자다 이제야 깼네요. 저도 댓글 반갑습니다.

마늘빵 2007-08-1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잘 다녀오세요.

승주나무 2007-08-15 14:29   좋아요 0 | URL
아프 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마노아 2007-08-13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근데 혀익적 완성이 뭐죠? 오타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모르는 단어인가 싶어 국어사전도 찾아봤지만..;;;)

승주나무 2007-08-15 14:30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형식적 완성인데.. 호텔에 이너넷이 별로 없어서 급하게 올리다 보니 ㅋㅋ 국어사전까지 찾아보셨군요.. 아예 단어를 만들어버릴까요 ^^

멜기세덱 2007-08-1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재밌겠당....추천추천!!!!

승주나무 2007-08-15 14:31   좋아요 0 | URL
멜기세덱 님//황석영 작가의 이야기까지 직접 들으면 더 재밌어요 ㅋㅋ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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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은희경이 갑자기 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2박3일간의 문학기행을 떠나게 되었고,
거기서 만나는 작가가 바로 은희경이다.
나는 은희경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서둘러 은희경을 샀다.

처음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뭐랄까 휴대폰이나 화장품, 악세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한마디로 핸드백이나 여행 가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지품이다.
은희경 소설에 등장하는 생활인들은 살가우며 그럴 듯하다.
현대인들은 마치 그의 문장을 뜯어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에게 조금씩 뜯어먹히고 있다.

은희경 소설에는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 해지지 않는 행위들을 시도한다.
로망까지는 아닐지라도 마음 한켠에 파놓은 판타지를 찾아가거나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대개 이러한 시도는 보기좋게 좌절하고 말지만,
그 지점에서 독자들은 제 몫을 두둑히 챙겨 간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소설과 다르지 않은 구성방법이다.
그런데 은희경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부터 나는 최신작부터 역순으로 읽기로 한 방침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최근작으로 추론하건데, 은희경의 문체는 감각적이고 다소 씨닉한 데다, 사실적인 관찰력만은 정평이 난 듯하다.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성찰에서 중용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나와 만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은 과도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상황전개가 빠르고 다소 조악하다는 느낌을 준다.
인물의 운명과 행위에 대한 이야기구조에 대한 계산을 과도하게 많이 해서 그런지,
메시지가 불분명하다.
반드시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장인물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신호가 될 수 있겠지만,
은희경의 인물들 중 선 굵은 존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상황이 인물을 장악한다.
인물과 상황의 대결이 좀처럼 펼쳐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나의 '소설읽기'가 장편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치밀한 묘사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새의 선물'부터 장편을 차곡차곡 읽고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일단 나의 '쓰기'와 맞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역설적이게도 현대 독자들의 패턴을 추론할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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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설렘

생각지도 못했던 여행의 일정이 잡혔다.
'예스24'에서 주최하는 2007 전라남도 문학캠프에 당첨된 것이다.
마눌님에게 전화를 걸어 의향을 물었다.
아니, 묻는 척했다는 것이 더 솔직하리라.
최근에 제주에서 올라온 조카들에게 봉사했던 3일이 휴가가 아니라 무엇이란 말인가.

제안을 받고 나서 고민을 좀 했다.
갈지 안 갈지 고민한 것도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는 '무엇을 할지'와 '갈지 안 갈지'는 동시에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다.
만약 할 일이 없다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이름을 "전화위복 프로젝트"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정이 다채롭다. 무엇보다 두 명의 중견 작가를 만난다는 것이 기대가 된다.

1일 : 천년고찰 선운사 관람,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고창 고인돌군 관람, 전통국악공연, 은희경 작가 강연회
2일 : 순천만 갈대밭 관람, 낙안읍성민속마을 관람(마눌님과 연애할 때 가본 곳~), 천불천탑 화순 운주사 관람, 전통 국악공연(이놈의 전통국악공연은 자꾸 해싸), 황석영 강연회,
3일 : 담양 소쇄원 관람, 내소사와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 관람, 해산

일단 여행을 하려고 할 때는 큰 의미를 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허무맹랑한 방학 계획표를 만들듯이 복잡하게 꾸리기보다는 단순하고 선 굵게 하자는 원칙만 세운다.

나는 이 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곳에 인터넷이 된다면 현지의 생생한 기록과 사진을 남길 수도 있겠지.
얼마 전에 미친 척 하고 구입한 놋북과 동승하기로 하다.
사진을 제때 올리기 위해서 'USB 카드리더기'를 급매하다.

이번 여행은 속죄여행이 되기도 할 텐데,
한국의 현대소설을 너무 안 읽은 것이다.
문학기행이 있기 전에 '은희경'은 내 목록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충격은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 그래서 은희경의 신작과 출세작을 급 구매하다. 다행히 신작을 사니, 마이너그리그를 준다.












황석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별 수 없다. 신작이라고 구매하자. 그래서 바리데기를 급 구매











여기서 다시 샛길로 흘러가는데..
전역 후 2년 동안 착실하게 회사일하던 나의 생활이 4월을 기준으로 급변하게 되는데, 자물쇠를 열어놓으니 새로운 공기와 빛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평생 읽지 않았을 책도 많이 읽게 되었다. 아마도 이번 기행도 그런 흐름의 하나겠지. 첫날에 은희경 강연이 있으니, 은희경 거를 먼저 읽자. 일단 신작만 읽고 나서 바리데기를 쳐다보고, 시간이 남으면 나머지 작품들을 읽자.

최소한 신작 두 편에 대해서는 리뷰를 어떻게든 써 보자. 읽은 것에 내 생각이 덧붙어야 무슨 말인지 알 것이 아닌가. 그래서 리뷰도 두 편 과제로 낸다.

내가 마눌님에게 빼앗은 디카가 요즘 말썽이다. 다행히 마눌님 회사 근처에 수리점이 있다고 해서 오늘 찾아온단다. 작동이 잘 되게꼬롬 고쳐 놓고, 밧데리와 충천기를 챙긴다.
하루 종일 찍어대면 아마 밧데리를 두 개는 써야 할 테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 내가 가게 될 곳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살펴보자. 그냥 무턱대고 '좋네' 좋다'를 쓰기보다는 왜 좋은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나쁠 수도 있고..


간만에 기자본능을 발휘해 보자. 알라딘 커뮤니티 용의 무리 없는 글과 인터넷 신문의 기사 형식으로 글을 만들어 보자. 나중에 스스로 검사 맡자.

그리고 살며시 한 가지 과제..
도시의 일상에서 멀어진 나의 소설을 좀 환기시켜 보자.
이번 참에 한번 제대로 된 냄새들을 맡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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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pan 2007-08-10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일정이네요. 너무 욕심부리지 마시고, 여유있게 다녀오세요. 다녀오시면 한결 도시의 냄새도 색다를겁니다.

승주나무 2007-08-10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이제 되나보군요. 말은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욕심이 되는 건 사실이네요.. 잘 다녀올게요^^

바람돌이 2007-08-10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너무너무 축하드리고 부럽사와요. ㅎㅎ 잘 다녀오세요. ^^

Jade 2007-08-10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순간 "마눌님"이란 단어 이해 못했다는...ㅋㅋㅋ 승주나무님 잘 다녀오세요 ^^

readersu 2007-08-1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멋져요. 승주나무님..^^

승주나무 2007-08-1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바람돌이 님//잘 다녀오겠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잘 기록해뒀다가.. 풍성한 소식으로 전할게요
제이드 님//'옆지기'라는 말도 있고, 또는 '머슴'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발음이 좀 어렵긴 하지만 이걸로 할래요
readersu 님//원~래(퍼퍼퍽!!!)
 


 

스팸 메일 발송 회사의 관점

요즘 장사가 안 돼 큰일입니다. 예전에는 "000님" 하고 실명을 부르거나, "dajak00 님"하고 메일계정을 써놓으면 자신의 일인 줄 알고 클릭을 했었죠.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혹은 보낸이에 "운영자"나 "관리자" 등으로 써 놓으면 가끔 클릭을 하는데, 요즘은 스팸 차단 시스템에서도 그런 것들은 걸르더군요.


스팸 메일을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클릭을 해야 '장사'가 되므로, 신종 수법이 기승을 부립니다. 그 중에서도 가공할 만한 신공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Re:"라고 써놓아 마치 리플을 다는 것처럼 속인다.

2. "제목없음"의 수법은 단순하지만 클릭의 유혹이 매우 강하게 당긴다.

위와 같은 수법에 몇 번 당하고 나서부터는 비슷한 방식의 메일은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부재중 통화가 울리면 전화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보화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방어 본능이죠.

 

저는 시사기자단을 돕는 시사서포터스(http://cafe.daum.net/SISALOVE)의 지기로서 주민들에게 서포터스를 권장하며 이에 대한 표시로 몇 개의 정보를 포함한 신청 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메일을 보냈는데 등업 안 시켜주나요"라는 민원성 댓글을 올려주신 거에요.

"어디로 보냈단 말이지"하고 무척이나 궁금해 하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스팸 처리기가 나보다 먼저 알아 이미 '스팸함'에 쑤셔 담아 버린 겁니다. 암튼 너무 똑똑해도 탈이라니깐..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현대인의 방어 본능을 일부 버리고 스팸 편지함을 구석구석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클릭을 유도하는 마음으로 "제목없음"을 써넣는다면 나는 당연히 그것을 살펴보아, 나에게 오는 소중한 신호인지 끝까지 확인하겠습니다.

 

전화번호와 거주지, 직업 같은 민감한 내용을 자꾸 답하게 해서 매우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시사기자단을 안쓰러워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면 어디를 통하지 않겠습니까. 보내주시면 스팸이 먼저 알고 걸러내더라도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내겠습니다.

오늘은 보석을 여러 개 주워서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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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디워를 보면서 느낀 자긍심은 영화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서 만들어진 관객들의 숙연한 표정은 시놉시스를 보거나 매체에서 소개된 내용을 읽으며 내가 보였던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영화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지향해야 한다지만 나는 이 정의는 반쪽 짜리라고 생각한다.

즉 영화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양해야 한다.

거기에 영화적 모순성이 숨어 있다.

 

영화는 이미지로 말한다.

영화의 이미지는 텍스트의 기능도 하면서 텍스트를 뛰어넘기도 한다.
원작과 영화 이미지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는데, 영화가 우위를 보이는 경우는 텍스트의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디워의 이미지는 어떤가?


SF : 과학적 공상으로 상식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소설. 공상 과학 소설. [science fiction]
SFX : 영화의 특수효과. 원래 SFX는 음향효과(sound effects)의 약칭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특수효과를 가리키게 됨.

디워는 SF영화라기보다는 SFX영화라고 해야 한다. 내가 감동한 지점은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도 저런 장면이 나오나?"일 것이다. 그것은 영화 "씨받이"가 문화적 독특함으로 베니스의 선택을 받은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심형래의 강요'이다. 영화에 대한 시끄러운 평판이 미치지 않도록 매우 이른 시점에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형래의 역경'류의 비 영화적 요소에 나는 상당 부분 노출되어 있었다. 때문에 분명한 비판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용가리'와 비교하며 스스로 작품에 대해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발견했다. '심형래의 강요'는 영화 관계자들의 주요한 마케팅 전략이다.

그러니까 디워의 상당 부분은 영화적 요소가 아니라 마케팅 요소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심형래의 영화에 대해서 굳이 논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심형래 영화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는 '영구와 땡칠이'와 같은 선상에 놓고 싶다.
어릴 적 지방에서도 영화관 하나 없는 벽촌에 살았던 나는 메이커 신발을 사러 버스를 오래 타고 시내로 가야 했다. '신발 사기'는 당시 우리 또래에게는 매우 소중한 행사였는데, 영화를 한편 보기 때문이다. 그때 보려고 했던 영화가 영구와 땡칠이였다. 불행히도 영화는 매진되었고, 몇 달 뒤 비디오가 있는 친구네 집에 수십 명이 들어앉아 쥬스를 마시며 보아야 했다.

심형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디워 역시 12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동시에 12세를 거느리는 가족에게도 유익한 영화라는 의미이다.

내가 화려한 휴가를 보려고 했던 이유는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나는 영화 관계자들에게 이 점이 매우 유력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영화는 유난히 부채의식을 강조하고, 민감한 부분에서는 과장된 연출을 서슴지 않았다.

함께 영화를 본 동료들이 '불편함'을 느낀 점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요원이 그렇게 울부짖고, 안성기가 희생하고, 김상경이 폭도가 아니라고 목숨을 걸고 항변해도 눈물샘이 자극되지 않았다. 눈물샘이 옹골찬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무의미'로 다가온다.

뜬금없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라디오 스타'와 '웰컴투 동막골'을 상상했다. 라디오 스타를 떠올린 것은 안성기에 대한 연이은 실망 때문인데, 묵공과 화려한 휴가에서 안성기는 매우 가식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살가운 연기력과 진솔한 감정처리가 일품이었다. 피천득의 마사코처럼, 묵공과 화려한 휴가는 보지 않았어야 했다. 본 것은 화려한 휴가며 잃은 것은 안성기다.

웰컴투 동막골이 떠올린 이유는 화려한 휴가의 과장된 액션이 몹시나 거북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상경이 '나는 폭도가 아니다'고 오버액션한 부분에서 실망의 절정에 달했다.

웰컴투 동막골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가득 찬 영화다. 마지막 반전 역시 훌륭한 '종합'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와 비교하는 것이 무리는 있겠지만, 나는 한국의 현대사나 실존인물 등을 그릴 때는 이와 같은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요 언론들이 연일 화려한 휴가에 대해서 극찬을 하는 것과 이 영화의 값이 같다.

이 영화는 사실이라는 편린으로 이루어진 저널리스틱한 영화가 아닐까?


두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와 한국영화 시장에 관해서 드는 생각.

이런 식으로 한국영화가 살아나는 것이라면 한국영화는 좀더 길게 엎드려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영화에도 영혼이란 게 있다면 한국영화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리스에게 가 있다고 생각한다.

디워는 가족영화이므로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현대사에서 몹시 중요한 시점을 다루는 화려한 휴가가 이처럼 비겁한 방법으로

관객을 모으려 한다면 나는 차라리 조폭 영화나 선택하려 한다.

아주 진지하게 속은 느낌이다.

 

사실 내가 화려한 휴가에 이런 혹평을 할 이유는 없다. 안성기를 잃은 슬픔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화려한 휴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한국영화의 입장에서도, 한국현대사의 입장에서도 이 영화는 진전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것은 조폭물 수준은 아닐지라도, 다른 의미의 '소재주의'이다.

영화의 문법을 뛰어넘을 수는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잃어버린 한국영화의 영혼을 어디서 위로받아야 하는 걸까?

 

화려한 영화에게 민중가요 한 꼭지를 전한다.

"두부처럼 금남로에 베어진 너의 젖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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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은 2007-08-0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으, 글 좋습니다.

승주나무 2007-08-0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루은 씨 등장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