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하는 내내 비가 왔다.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조금씩 짜증이 묻어났고,

점점 젖어가는 운동화며 속옷이며

눅눅한 자취생 시절을 되돌리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특히 땡볕과 비가 동시에 떨어질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화가 풀릴 즈음은 집에서 사진을 정리하면서다.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꽃나무가 조금은 시무룩했을 것이다.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60)s F4.0



 


갈대밭도 무미건조해서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논 바닥 바짝 숨었다가 간만에 물만나러 나온 게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늘과 물과 안개가 만나는 순천만의 풍경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년에 일곱 번 얼굴이 바뀐다는 오만한 칠색조가 저렇게 발가벗은 것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야단법석이라는 말의 진정한 뜻과,

정말 들에서 법석을 벌여놓은 불상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났을지 모른다.

야단법석 (野壇法席) : 『불』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





담양 소쇄원을 감싸는 단아한 계곡물의 눈맑은 소리를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죽비보다 청아한 눈과 귀가 다 맑아지는 소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운주사에 거꾸로 누워 있는 와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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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8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8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8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8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7-08-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 사셨구랴~ 와불이 인상적이네요.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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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이야기를 듣다
- 형식실험을 멈추지 않는 사회적 작가

독자는 어떤 방식으로 작가를 사랑하는가?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이야기한다는 순수주의 독자가 있는 반면, 작가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열정형 독자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나타내는 궤적에 따라 좌우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황석영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겠지만 대단히 논쟁적이고 문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견해를 서슴지 않고 밝히며 텍스트 외적인 교유와 활약이 대단하다. 만약 텍스트 안팎에서 일정한 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그의 아우라를 보지 못한다면, 또는 그것들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는 지점을 목격하지 못한다면 황석영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내가 그를 만나기까지 가졌던 혐의점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바리데기를 통해 느꼈던 황석영에 대한 반감은 완숙한 작가가 가지는 일종의 매너리즘과 독자를 가르치듯 하는 교술적 특징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가 치열한 실험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외유'가 바로 소설 안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예스24에서 독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와 차세대 작가로 황석영과 은희경을 선택했는데 이 두 작가를 만나보니 '밥상'을 한상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은희경은 '밥'이고 황석영은 '반찬'이다. 밥은 밥상에서 물리적으로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반찬들이 모이는 통로이다. 그것이 전라도식 한정식 반찬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반찬'을 먹는다고 하기보다는 '밥'을 먹는다고 한다. 추상어로 말하자면 '내면'에 해당할 것이다. 항상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같은 듯하지만 매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세계가 은희경의 '나와바리'쯤 될 것이다.
황석영은 작품의 이상을 확대하고 밖에서 이를 실현시키려는 야심찬 작가이다. 그의 '반찬'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 역시 궁극적으로 '밥'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 작가의 다름이 나에게 '푸짐한 밥상'을 선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밥을 꼭꼭 씹어 먹고 반찬을 가리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서 독자들에게 '장길산'과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황석영 작가>



다음은 황석영 인터뷰


황석영은 실험중

바리데기를 쓰게 된 배경은?
☞ 손님 발표할 때 베를린 붕괴됐다. 이때 세계는 변한다는 사실 깨달았다.
세계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를 통해 드러나므로 문학적 형식 역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문학적 형식 실험을 하게 되었고 이 작품은 그러한 형식을 담아냈다.
서사를 우리 전통에 동아시아의 그릇에 담고 싶다. 손님 시도하다 형식적 만족이 되지 않았는데, 오래된 정원에서는 종래의 산문형식을 파괴하게 된다. 즉 1인칭과 3인칭으로 넘나드는 두 주인공이 시간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는 시간개념 역시 무시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손님에서 최초로 보이는 데, 소설을 하나의 굿과 같은 양식에 담았다. 즉 소설가가 마치 영매가 되어 전쟁 당시의 혼을 불러들이고 전달하는 것이다.
형식 변화의 두 번째 양식이 바로 ‘심청’이다. 형식실험 세 번째 작품은 바리데기인데, 굿에 나오는 바리공주/칠공주/말명(맡이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공주가 7째로 태어나 버림을 받기도 하고, 부모가 병들어 죽어 사천수 끝에 가서 생명수를 따와서 부모를 살리는 뼈대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이야기틀은 시베리아 만주 등지에서 1,500년도 넘게 내려온 전형적인 이야기틀이라 할 수 있다.

형식의 변화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종래의 서사를 떠올려 보자. 주인공이 친구의 집에 초대되어 찾아간다. 가는 길의 묘사와 정경, 화초 등이 들어온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집안의 인물들이 마중을 나와 있고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이렇게 한참 설명을 하는 것이다. 현대시대에는 이러한 대서사가 감당하지 못한다.
서사의 디테일을 변화시켜서 ‘시+서사’라는 시적 서사를 이루고 싶다.
뚜르니에, 끌레지오, 마르께스가 만년에 모두 이런 글쓰기를 하고 있더라.
서사의 무게를 압축과 영상으로 장르 내에서 산문형식으로 변화를 시작한다.
마치 미디어가 변화하듯.
영상적인 세계, 앵글은 렌즈 안에 들어오는 것만 보여준다.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은 연출자가 선택했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여기서 새로운 이미지가 생기는데 이를 몽타주, 미장센이라고 부르더라.
영화의 그대로는 될 수 없지만 영화적인 서술은 생각해볼 만한 화두이다.

작품 ‘바리데기’가 말하고 있는 세계관은?
☞ 나는 21세기의 주제는 ‘이동과 조화’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탈식민지’라고 하나 나는 ‘신식민지’라고 본다.
때문에 무슬림, 서방세계의 갈등을 동시에 그렸고, 출간 직후 공교롭게도 아프간 납치됐다.
이 작품이 북한, 중국, 영국 등을 넘나들기 때문에 ‘글로벌한 작품’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글로벌이라는 말은 미국 중심의 사고와 생활이 반영된 말이므로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 대신 인터내셔널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I am No global citizen, I am international citizen.
90년대 동구가 멸망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대두하는데, 이것은 신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고용유연성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소련의 서구화 이후에 데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대두되는데, 이는 노골적인 자본주의이다. 광주 사태 이전인 70년대에 런던에서 광주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노동자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를 시작해 50여 명이 숨진 것이다. 이것이 교양 있다는 유럽의 모습이었다. 레이건은 복지를 다 없앴다. 레이건과 데처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한편으로는 세계화, 이념의 밑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아시아 건너오면서 IMF가 터지는데, 이때부터 신자유주의가 재편성된다.
바리데기에는 이런 일련의 화두가 잠재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캠프 2일째 황석영이 강연을 위해 자리했다. 1일째에 이어 '후배작가' 백가흠 씨가 사회를 맡았다. 황석영은 자신의 글쓰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물리적 기반 위에 존재한다고 규정했다.>


작가 황석영의 형성과정

민족작가인데 어떻게 세계시민을 논하는지 궁금하다.
☞ 한반도와 나의 문제를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뜻임. 다만 공유할 것과 공유하지 못할 것이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동시성과 비동시성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작가라는 존재는 국경이나 민족이나 국가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이다.
내 조국은 한국어이다.
작가의 존재는 모국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만난 삶의 문제를 공유하지만 그 표현 방식은 모국어이므로.




<인생의 변화기>
- 제1변화
베트남 참전 후가 첫 변화이다.
고2때 ‘사상계’ 신인상을 받았으며,
당시 고교생은 현재의 대학생보다 더 성숙했던 것 같다.
책 많이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다가 점차 주변/내면 문제에 침잠하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분단사회, 베트남 의미, 사회적 인식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제2변화
광주 80년 군부 이동 허락, 학살 인용의 진정한 주범이 주한미군 사령부라는 것을 알았고, 이는 또 하나의 나가 존재함을 뜻한다.
제3세계 문학제 관계로 베를린에 처음으로 초청되었을 때 거기에서 수많은 망명자를 만났다. 그들과 교유하면서 북(北)을 발견하고 이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 시기의 의미 있는 변화이다.

- 제3변화
베를린 망명 3개월 만에 장벽이 무너졌다. 젊은이들 모두 나와 포옹하고 샴페인 나눠마시며 모든 사람이 웃고 즐기는 현장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눈물 흘렸다. 모두 개개의 인간이었으며 한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여기서 나는 개인을 발견한다. 
더불어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세계가 변화한다면 발상도 역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반문해 보았다. 여기서부터 산문실험이 시작된다.

- 제4변화
감옥 수감생활 5년만에 뒤늦게 ‘일상’을 발견했다.
나는 모험에는 매우 강한데 막상 손발이 묶이고 갇히면 견디지 못한다.
감옥에서는 괴롭도록 일상의 내공을 쌓았다.
무협지에도 보면 사부들이 처음부터 내공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무하기 설거지 등 사소한 ‘일상’을 가르치는데, 나는 너무나 늦게 ‘일상’에 대해서 학습하게 되었다.
뒤늦게 50줄에 일상을 쌓는 과정에서 미치는 줄 알았다.
출소 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문인은 “한국 교도행정의 일대 승리”라고 농을 던지더라.(웃음)
김수영이 낙동강 건너 서울로 돌아갔을 60년대 그에게 남는 것은 일상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것은 일상일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일상이었다. 김수영의 1960년대 작품들은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감상해야 할 것이다.
칼을 못 갈게 하니까 칼을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운동 1시간 동안 쇳조각, 깡통, 연통의 한 부분을 며칠 걸려서 다듬어
조그만 조각을 떼어내 깔창에 숨긴다.
화장실 시멘트 바닥에 두고 칼을 만들었다.
치열한 일상이야말로 나의 문학을 키웠다.

- 제5변화
감옥에서 나왔을 때 비로소 동시적, 전체적 세계를 발견했다.
동아시아와 세계가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7~8년 동안 형식의 실험을 거치고 있는 과정이 바로 오늘날의 모습이다.


작가의 소설쓰기란?
☞ 소설을 나는 ‘물리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글은 어떻게 쓰느냐 내게 묻는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글의 대부분을 궁둥이가 쓴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글쓰기의 8~90%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개똥폼 잡을 일이 아니다.
출근하듯 나도 소설을 쓰고, 쓰다가 코딱지도 후비고 그런다.
이러한 물질의 표출에서 깊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노동하는 동안)
그 순간이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시점이다.




<황석영 작가는 베르베르 베르나르, 움베르토 코엘료 등의 작가들이 한국에서 열광적으로 인기를 얻는 현상을 거론하며 우리나라도 작가에 대한 가치 평가가 엄정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강연회가 끝난 후에 팬 사인회를 갖고 있다.>


한국의 문학, 한국의 독자


한국문학의 위기와 근대문학 종언에 대한 입장을 말해달라
☞ 서구에서는 문학이 교양의 척도이며 모든 시험은 독후감이다.
그런데 우리의 풍경은 어떤가.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서로 ‘소설 쓰지 마라’라고 한다.
이를 본받아 아이들도 ‘소설 쓰지 마라’고 한다.
소설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학은 한 사회의 인간에 대한 가치 아닌가.
일본은 80년대 베트남전 이후 최고의 특수를 누리는데 80년대에 이미 거품 껴서 불경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소비가 워낙 왕성하던 끝물이었기 떄문에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90년대 와중에 거품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본문학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이때부터 베스트셀러 줄세우기를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줄세우기 속에서 소질 있는 세대들은 별똥별처럼 사라졌고,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구분이 완전히 없어졌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베르베르는 현지에서는 문학집 목록에 이름 한줄 올릴 수 없는 작가다.
문학동네 사장과 프랑스 작가회의 전시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젊은 작가, 프랑스문인협회 전, 현 회장.. 편집자 들이 와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활약하는 프랑스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질문을 받자 문학동네 사장이 ‘베르베르 베르나르’를 이야기하자 좌중에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묻고 물은 끝에 구석에 있던 편집자가 그 사람은 리옹 지방의 젊은 사람으로 가끔 지방 신문에 SF 꽁트를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직 대한민국만 이 사람의 소설이 엄청나게 많이 팔리는 것이다.
이것은 출판사, 기자가 다 엉망이라는 뜻이다.
일본이 그래서 망했다.
코엘료도 마찬가지다. 교양인들 사이에서 코엘료는 전혀 언급대상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가치평가가 매우 엄정하다. 대중 소설은 옐로 페이퍼라고 부른다.
우리도 이런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이 구분을 하지 못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최고의 작가가 된 기현상이 생긴 것이다. 일본 문학의 지성은 이러한 현상에 간판을 모두 내닫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소설의 한계>
☞노신 이후로 중국근대문학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은 검열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대만에서 나온 ‘오래된 정원’은 중국과 동일한 문자를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대만 분량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유사의 번역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토호 현상이 대단하다.
김훈 칼의 노래 역시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중국의 장수를 안 좋게 묘사했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우리나라의 독자들>
☞노벨상을 탄 빈터 그라스를 만나러 갔다.
시골 구석에서 아줌마 15명을 세워 놓고
그 노인이 자기의 작품을 낭독하고 있더라.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한국 독자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을 나는 한국문학의 중흥기라고 생각한다.
원로에서 신예에 이르기까지 근사한 문학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여러분 자신감을 좀 가지시라.

장길산 이전과 이후의 여성상
☞ 우리 시대의 남성은 죄가 많다. 나는 혜택받은 장남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와 겸상을 받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는 독상을 받았다. 지독한 가부장이었다. 우리 시대의 남자들은 다 이랬다. 여성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꽁무늬를 뺀다.
독방에 살명서 이제까지의 잘못들을 생각해 보았다.
‘독방의 수컷’이 생각났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내를 죽이고, 딸도 죽이고 수컷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일본근대문학의 모습이다.
남성적 억압과 갈등이 근대를 이뤘다. 문명에 대한 반성..
질서가 만들어낸 억압은 오래 되었다.
서구가 동아시아에 침투하는 것은 여자의 모습을 통해 그려냈다.
발전된 동아시아의 변화과정은 ‘심청’에 담았다.
세계적인 주변인 왕따 백성이 모여 사는 모습은 ‘바리데기’에서 그렸다.


통일에 대한 입장?
☞ 아프리카는 직접,간접적 영양실조로 300만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사료로만 20억 달러를 쓴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 15조 넘은 지는 15년이 지났다.
북한 식량지원 5년치에 해당한다.
통일되지 않고 북한이 붕괴한다면 국제법상 누가 북한을 우리 것이라 할 것인가.


장길산 같은 작품 다시 쓸 수 있겠나
☞ 장길산처럼 긴 서사는 프로작가로서 가장 큰 훈련이었다. 도스또옙스끼도 작가수첩에 온통 그림 투성이던데 나도 매 장면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3/4가 자료 조사에 바쳐졌다. 이런 짓 다시는 하지 않는다. (웃음)


<황석영 작가는 노벨 문학상의 작가 권터 그라스가 모국에서 독자들에게 받는 냉대를 예로 들며 높은 수준의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신은 매우 행복한 작가라고 말했다. 강연회가 끝난 독자들과 가진 단체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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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7-08-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이십니다.. ㅋㅋ

뽀송이 2007-08-2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승주나무 2007-08-2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 님//네~ 저도 황석영 소설에 관심을 좀더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작가론' 수업을 들으면서 '김유정 전집'을 분석해본 일이 있다. 그때는 그럴 듯한 '전집판'이 없었고, 김유정의 작품목록을 들고 이책 저책에서 작품을 복사하거나 사와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제법 김유정 소설사전까지 마련해 놓고 단어정리까지 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비평가들의 글을 좀 보았는데, '작품성은 있으나 퇴물'취급을 받았던 기억이다. 김유정은 많은 작가와 비평가에게 회자되지만 '언급'되지는 않는 이상한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유정의 작품을 읽고 나서 '비평문'들은 모두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분석하는 잣대를 작품 외적으로 너무 한정시키거나 작품 분석 역시 판형에 끼워맞추는 듯한 '생뚱함'을 느꼈다. 마치 '디워'를 찍으면서 공룡 전문 가게에 공룡들을 주문한 것과 같았다. (어떤 영화든 그 영화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도구를 재활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석제의 김유정 글은 반갑다. 김유정을 다시 읽고 싶게까지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작가로서 무엇이 부족했고, 어떤 점을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성석제와 김유정의 글을 쓰면서 자꾸 '디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디워 논란'을 보면서 비평의 채널이 너무 한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비평가들이 김유정을 평가하면서 제한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비평가는 자신의 눈으로 견적을 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최신의 문예사조가 역대의 문예사조를 모두 질서지으려는 욕구가 있듯이, 비평가들은 자신의 관점이 작품을 모조리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비평가 비평과 함께 작가 비평, 독자 비평이 필요한 것이다. 즉 논평하기 위한 비평과 쓰기 위한 비평과 읽기 위한 비평이 자리를 잡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수년 동안 찾지 않은 김유정 전집을 다시 읽고 싶다. 어줍잖은 비평가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그를 바라보고 싶다.



출처 :
2007 YES24, PAPER 공동 기획 "제4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내 마음 속 우리 작가> "김유정, 비참한 풍속에서 피어난 염화미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인가 하는 질문에 나는 대체로 연암 박지원과 벽초 홍명희를 꼽아왔다. 연암에게서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천부적인 낙천성을 느꼈고 벽초는 연면하고 도도한 서사성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근래 어떤 계기로 『김유정 전집』을 통독하고 나서 좋아하는 작가가 두 사람이 아니라 연암, 벽초, 김유정 세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아니 이들 작가의 후인으로서 충심으로 경애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자유교양문고 시리즈에서였다. 단편 「동백꽃」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과 누나들이 보던 시리즈의 ‘한국단편문학선’에서 읽은 것 같다. 그때는 「동백꽃」의 해학성보다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처녀 총각 간의 긴장과 접촉에 관심이 많이 갔고 닭싸움을 시킬 때 고추장을 먹이면 된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게 흥밋거리였다. 그 뒤로 교과서나 다른 책을 통해 읽은 게 「봄봄」이나 「금 따는 콩밭」정도였다. 『김유정 전집』의 산문에서 1930년대 사람들이 사이다를 마신다거나 냉면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게 역시 흥미로웠다.
『김유정 전집』에서 김유정 본령인 소설을 원문으로 읽고 나서 나는 그동안 내가 김유정에 대해 가져왔던 선입관을 완전히 버렸다. 아니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그는 널리 알려진 대로 해학과 풍자의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를 소름 끼치게 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웃거나 미소 짓기보다는 눈시울이 뜨거워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이유는 먼저 작중 현실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현실의 바탕이 되었을 작가의 현실이 비참하고 곤고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당대의 현실을 시종 냉정하게 심지어 냉랭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리를 두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위대한 시선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장을 보고 오는 농군을 농군이 죽엿다. 빼앗은 것이 한끗 동전 네 닢에 수수 일곱 되. 게다 흔적이 탄로날까 하야 낫으로 그 얼골의 껍질을 벗기고….’
「만무방」에 나오는 이 포악한 현실의 낫질에 대해 작중 인물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순응적이다 못해 속 터지게 만든다.

“저 사촌형님께 쌀 두되 꿔다먹은 거 부대 잊지 말고 갚우”하고 부탁할 제 이것이 필연 안해의 유언이라고 깨닫고는 “그래 그건 염녀 말아!” “그러구 임자 옷은 영근어머이더러 사정 얘길하구 좀 빨아달래우”하고 이야기를 곧잘 하다가 다시 입을 이그리고 훌쩍훌쩍 우는 것이다. - 「땡볕」

이러한 피동성은 아예 유전자인 듯 김유정의 작중인물 대부분에 해당이 된다. 「솟」을 보자.
‘안해는 분에 복바치어 눈 우에 털뻑 주저앉으며 입맛만 다실 따름. 종국에는 안해를 잡아 일으키며 울상이 되었다. “아니야 우리 솥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그리하여 피동성은 무지함으로, 무지함이 아예 후안무치함으로 변해 버린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들병이(떠돌이 매춘부)에게 가져다 주려고 제 집 부엌의 솥을 뽑아다 주는데 그 전에 ‘어젯밤에 아내의 속곳과 그제 밤 맷돌짝을 훔쳐낸 것이 탄로가 났다.’ ‘닳아 일그러진 수저가 세 자루 길고 짧고 몸 고르지 모산 젓가락이 너덧매 있었다. 그 중에서 덕이(아들) 먹을 수저 한 개만 남기고는 모집어서 괴춤에 꽂았다.’ 그런 연후의 정황인즉 ‘들병이의 남편, “왜 섰수. 어서 같이 갑시다유.” 솥을 빼간다고 들병이에게 달려드는 아내, 들병이 두 내외는 귀가 먹었는지 하나는 짐을 하나는 아이를 업은 채 언덕으로 늠늠히 내려가며 한 번 돌아다보는 법도 없다.’
들병이의 두 내외가 그냥 내려가는 게 아니라 ‘늠늠히’ 내려가게 만드는 것이 김유정다운 관점이다. 이러한 냉철한 작가적 태도가 작품에서 통속성을 걸러내고 고전성을 획득하게 한다.
이제 김유정 그 자체의 표상이 된 해학성을 이야기할 차례다. 유머, 해학(諧謔)은 자연스럽고 선천적이면서 기질에 근거한다. 김유정이 낙천적이고 웃음을 좋아하고 웃음기에 민감한 기질을 타고난 작가임은 분명하다.
먼저 「봄봄」에서 “빙모님은 참새만 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낫지유?” 하는 것이나 「金 따는 콩밧」에서 ‘뽕이 나서 뼉따구도 못 추리기 전에 훨훨 벗어나는 게 상책이겟다.’고 하는 언어적 감각이 해학성의 근간이다. 또한 해학성이 높은 작품을 남긴 대부분의 작가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특히 대사에 능하다. 「안해」를 보면 “이리와 자빠저 자---”라고 남편이 말하자 아내가 “곤두어 너나 자빠저 자렴---”하고 대꾸하는 것이 그런 예이고 한참 동안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 ‘나뿐 아니라 년도 매를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갗티 자리에 누우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없진 않지?”’ 하는 대사가 나온다. 웃기면서 리얼하고 한심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해학은 진주와 같아서 순결, 무구한 것이 아니라 상처에서 생겨나고 불순하고 냄새 나서 인간다운 희비극이 되고 또한 비희극을 이룬다.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그 연꽃을 자리로 형상화한 연화대 위에 앉은 부처의 염화미소처럼 김유정의 소설은 은연중에 피어서 빛나고 있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나리며 약이 오를대로 다 올랐다 하고 하는 것은 암탉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찍똥을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이 든 듯싶다. - 「동백꽃」

불과 스물아홉 살에 요절한 김유정은 다섯 해 남짓한 작품 활동 기간에 3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당시의 지면 사정이나 집필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다작에 속한다. 한편 20대이고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많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작가적인 성실성이 척도가 되는데 나는 김유정처럼 자신의 삶과 글을 직접 맞바꾼 예를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과장한다거나 엄살을 떤다거나 순교자처럼 군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작가는 직설로써 독자의 흉중에 가장 단거리로 단시간에 도달한다.
작가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당대 풍속의 기록자’가 되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깨끗하고 좁은 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김유정은 스스로가 풍속의 한 부분이었고 그 풍속을 가감 없이 서술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불후성을 얻었다. 언어의 장벽만 아니었더라면 당대는 물론 20세기 작가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성에 도달했을 것이다.


글/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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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2009-04-1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승주나무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졸업논문 주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검색창에 '성석제, 김유정'이라고 쳤더니 승주나무님 글이 짜자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스24에서 주최한 2007 예스24 문학캠프에서 은희경을 만났다. 혹자는 은희경을 두고 브랜드라고도 하고 장르라고도 하는데, 나는 은희경을 '코드'라고 말하고 싶다. 은희경의 작품 세계는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코드가 맞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은희경을 읽는다는 게 다소 피곤할 수 있다. 은희경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내면', '관찰', '노력', '상식'이다. 다음날 만난 황석영이 사회적인 작가라면 은희경은 지극히 생활적이고 내면적인 작가이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일상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감정의 편린들,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의미'를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은희경에게 천재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소설가의 천성과 천부적 재능은 물론이고 소질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은희경은 그것을 모두 일궈냈다. 아침에 출근하듯 소설을 쓰고 안절부절 못하는 작가의 직업병을 남보다 더 앓으며 만들어낸 언어는 생경하면서도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가 왜 30대 중반에 등단하게 되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소설가로 등단하려 하지만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을 보거든, 나는 절대로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은희경을 보고 위안을 삼아도 좋다.




<예스24 주최로 열린 문학캠프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은희경 작가. 후배 작가인 백가흠 작가(왼쪽)와 윤성희 작가가 진행을 맡았다.>



가족의 발견

- 가족이 소설에 어떻게 작용하나
☞ 모티브로 아주 많이 나온다. 특히 남편. 온갖 소설에 악역이 있는데 주변인의 항의가 많이 온다. 관찰을 제일 많이 하는 것이 가족이니까. 평상시 1순위는 소설이고 비상시 1순위는 가족인데, 그것은 가족이 평소에 양보를 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족은 가장 관심이 있고 소중한 것이다. 내가 책 팔아서 가족을 먹여살리므로 당당할 수 있다.


-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관련해 가족들의 민원은?
☞ 남편은 “또 나를 썼군. 다들 이런 사람인지 알겠군”하고 불평한다.
딸은 책을 매우 좋아하는데, 새의 선물에 나오는 주인공이 당시 12살이었는데, 내 딸도 12살이었다. 작품 중에 딸아이 또래가 방황하는 작품이 있는데, 친구들이 딸에게 “너 가출했었니?” 하는 말을 듣는 것 때문에 매우 싫어한다. 딸은 “공부 잘하고 귀엽고 예쁘게 써달라”고 주문했다.

- 소설 안에서 작가는 어떤 얼굴로 나오나?
☞ 내 소설은 주인공이 늘 둘이다. 1인 천진, 1인 조숙 패턴이 자주 나온다. 소설가로서 자질이 있다면 다중인격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 여러 명에게 자기 성격을 부여했다.
작가인 나도 기초적인 독법은 어쩔 수 없다. 백가흠 소설가(진행)의 소설에는 주인공이 살인자, 흉악범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나도 역시 독자로서 작가를 의심하게 된다.

- 소설을 쓰는 재미는?
☞ 해보지 못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소설에서 가족을 많이 이용한다는 은희경 작가. 생계를 위해서 가족을 판다고 하여 무마하기는 하지만 딸내미의 압박은 이기기 어렵다고 한다.>





'똥'으로 데뷔한 작가가 될 뻔해 가슴 쓸어 내려

- 제목은 어떻게 쓰나?
☞ 어떤 거는 제목부터 생각난다.(짐작가는 다른 이들), 아예 제목부터 시작하는 작품이 있는데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이런 작품은 문구가 발상이 되어서 시작하게 된다. 어떤 거는 다 쓰고도 제목 짓기가 매우 힘들다. “새의 선물”의 경우는 가장 힘든 작품이었는데, 원래 제목은 ‘사랑의 변주곡’이었다. 책을 내려고 할 때 자끄 플레베의 ‘새의 선물’이라는 시를 읽었느데, 거기서 제목을 따왔다. 이번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도 릴케의 작품 ‘드위노의 비가’ 중에서 한 구절을 취한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응모작 중 ‘똥’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친구가 이렇게 충고했다. "만약 당선이 안 된다면 모르겠는데 당선이 된다면 평생 이미지가 남는다. 똥으로 데뷔한 작가!” 그렇게 해서 현진건의 제목인 ‘빈처’를 제안했고, 내가 수락했다.

- 소설을 쓰다가 따로 환기하거나 휴식하는 방법이 있나?
☞ 소설, 산문을 쓸 때 산문은 주로 밤에 쓰고 소설은 아침 9시에서 오후 5까지 마치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듯 한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집에서 써도 긴장해야 하니까 끼는 옷을 입는다. 집중력 2~3시간 되면 커피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그리고 산책도 한다. 어떤 작가는 시간이 촉박하면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으려고 밥까지도 똑같이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먹는지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날은 잠을 잘 때도 가동된 마음이 꺼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술을 마신다. 이것은 행복한 단계다.
처음 구상하고 작품 스토리를 위해 메모하고 고민하느데 누가 문을 안 열어주듯이 잘 안 나올 때가 있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백가흠 작가 왈 "소설가 이기호는 축구복 입고 경기하듯 하더라")

- 소설 쓸 때의 핸디캡은 있나?
☞ 사소한 것도 신경 건드림. 그때는 시간 자체가 하나도 용납되지 않으므로 부모님과 잠깐 통화해도 얼른 끊으라고 한다. 특히 여성 작가의 경우 일상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워한다.
(윤성희 작가 역시 신경질적으로 변한다고 거들었다. "가족들이 눈치보며 TV도 안 보더라. 그때 나는(윤성희) 내가 무슨 대단한 일 한다고 아버지 TV도 못 보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타이트한 복장에 손을 자주 씻고 야구모자를 써보기도 하는 등 별짓 다한다.")
선배 작가들은 글쓸 때 긴장하는 습관을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고은 시인은 상 5개 차려놓고 5개의 시를 동시에 쓰기도 한다.
“일상에 갇히면 작가의 권능 사라지는 것 같아서 여행을 간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 영문 이니셜을 즐겨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의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
☞ 책으로 보니까 어떤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이름을 매우 신중하게 짓는 편이다. 이름에 대해 의미를 많이 두므로 신중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많이 둠. 카프카의 K를 많이 빌려오는 편(성의 주인공) 날씨와 소설의 주인공 B는 ‘벨라비의 환상’에 나오는 이미지.
머리카락 손에 걸레.. 머리 자르는데 벌레 떨어짐. 알 수 없는 불안과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있기 있기 마련인데. 작가의 이미지를 가져와 써서 나에게 B는 독특한 이름이다.
지도 중독의 P는 구해야 할 값(수학)이므로 나에게는 그대로 이름과 같다.
문학은 언어를 이용하므로 모순적 장르이다. 언어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누구나 다 아는 언어를 새롭게 쓸 수 있는지 항상 고민한다.
도시적인 것을 다룰 땐 모던한 이미지, 새의 선물은 1969년대 배경이므로 사설시조의 유장한 문체를 이용함.

- 정말 쓰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나?
☞ 쓰기 싫을 때는 안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자신이 기분좋고 행복해야 된다. 스스로에게 술을 산다. 술을 마시고 자신이 기분좋게 하고 쉬게 한 다음, 내일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백가흠과 윤성희 작가가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받는다.

- 딸이 작가를 꿈꾼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자기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가 되려 했으나 되지 못한 긴 시간 동안 상당히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작가가 되고 나서 더욱 행복했다 작가의 길이 쉽지 않다는 데 대해서 경고를 드리고, 꿈을 일찍 찾은 것을 축하한다. 모범생이 되지 않도록 막으라.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이미 생각한 것 역시 뚫고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므로 괴팍함을 잃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고 엉뚱하거나 괴팍한 데 대해서 칭창해
주어야 한다.



<은희경 작가는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생활인과 작가

- 작가, 가족을 동시에 만족하는 방법은 없나?
☞ 두 가지 모두 만족할 수는 없다. 글을 쓰려면 희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이기적 작품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평범한 가정 생활이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된다면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 때문에 좋은 작품을 희생한 동료 선후배 작가를 많이 보았는데, 단언컨대 좋은 작가가 되려면 좋은 가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을 팔아먹어도 좋다. 이 점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방정식?
☞ 잘하는 일이 있으면 해야 할 일을 적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잘하는 일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해서 작가의 재능, 성실성, 자유 중 ‘자유’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다.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작가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일치는 아니고 하기 싫은 게 너무 많지만..

- 등단 시점이 30대 중반이어서 깜짝 놀랐다. 오랜 무명 시절을 극복한 방법과,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을 충고한다면?
☞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생활에 떠밀려서 생활인이 되었고, 건전한 생활에 건전한 직장생활, 결혼 좋은 가족, 집도 장만, 한단계씩 숙제를 풀다 보니 30대 중반이 되었다.
이것이 내 인생인가 하는 자각이 들더라.
이렇게 산다면 남아 있는 하루하루를 메울 뿐이지 않은가.
나를 객관화하는 작업이었으므로 글을 썼으며 그것이 소설이다. 처음에는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고민했지만 독자의 공감을 얻어서 위안이 되었다. 등단이 앞섰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작가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절박하지 않았고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보편적인 인생으로 판단.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작가인데 나를 합리화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작가가 되지 못했다. 이것은 두 번째 질문과 맥이 통하는데, 내 인생을 재편해 보려고 할 때의 의지가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쓸 말이 있을 때에라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관점 없으면 소설이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와 소설은 다르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어야 하며, 수많은 관점에 자기 관점을 보태야 한다. (도스또옙스끼, 천재는 수많은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어야 한다.)



<은희경 작가는 소설가가 되려 한다면 자신이 쓸 것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독자가 자신의 소설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것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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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6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1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이 님의 페이퍼로 세번째 보이네요, 제게..
읽으라는 계시인가^^

승주나무 2007-08-16 20:22   좋아요 0 | URL
읽으세요.. 읽으세요.. 읽으세요..
주문을 외웠습니다^^

바리데기 2007-09-0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퍼갑니다... 저도 오늘 읽기를 마쳤는데 우연히 이곳까지 왔어요...^^
출처는 밝힐게요~~
 
여행의 설렘

예스24 문학기행의 여름 밤, 독자들의 꿈은 뭘까?
- "2007 YES24 문학기행" 2박3일간 체험취재



기자가  예스24가 주최한 문학캠프에 참여해 12일부터 14일까지 전라북도 고창과 전라남도 화순, 순천 등지를 돌아보는 돌아보는 동안 취재진이 관광버스 1대를 다 쓸 정도로 커다란 관심을 이끌었고 신문에는 연일 관련 기사가 봇물을 이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신문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즉 뉴스의 초점은 한결같이 뉴스메이커인 두 스타작가에게 집중되었고, 정작 행사의 취지나 내용에 관한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기자는 행사의 실무를 총괄한 도서1팀의 최세라 팀장과 행사에 참여한 여러 독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번 문학캠프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한국문학의 중흥과 한국문학 마케팅의 중흥(?)

이번 행사에 초청된 황석영 작가는 올해가 한국문학의 중흥이라고 말했다. 신예부터 원로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의 작품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모습을 근거로 한 말인데, 이들 덕분에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 등의 한국문학 마케팅도 더불어 중흥기를 맞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벌써 독자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다녀갔고, 소설가 신경숙 역시 경복궁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펜사인회는 기본이고 선상낭독회나 지방강연 등 문학이 자본과 함께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기세가 제법 매섭다.
이번 문학캠프도 이러한 흐름의 한 줄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예스24는 이번 문학 캠프에 앞서 자체 온라인 투표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대표작가’(올해 황석영 씨), ‘장차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우리 작가’(올해 은희경 씨)를 선정하는 등 대대적인 세몰이를 통해 하나의 캠페인을 성립시켰다. 올해는 4회째로 한국관광공사와 전라남도가 주최와 후원 등의 형태로 참여한 것은 그만큼 이번 행사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반증한다. 이번 행사의 실무를 총괄한 도서1팀 최세라 팀장은 "온라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그에 대한 후속작업으로 대규모 지원을 통해 문화의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예스24의 자긍심"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한국관광공사와 전라남도의 후원으로 질 높은 문화적 체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관광적 요소가 문학적 요소를 잠식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8월 12일 중흥 골드스파 & 리조트, 전라남도 국립국악단 공연모습) 



문학캠프, 문화캠프, 문화관광(?) 네 정체를 밝혀라!

예스24의 이번 캠프는 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전통적으로 예스24 문학캠프는 한 곳에 머무르면서 독자와 작가 간의 스킨십을 강조하는 형태였다. 작품 속의 현장에 찾아가는 것은 물론, 그 현장에 어떻게 작품 속에 담기게 되었는지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독자는 책에서 읽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행사는 다르다. 일단 규모가 2배 가까이로 커졌고, 많은 기업과 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행사의 기획과 비용부담, 진행 등 총괄적인 책임은 예스24가 맡았고, 한국관광공사는 전라남도와 예스24의 연결 역할을 했다. 전라남도를 통해 독자들은 이틀 동안 전남 국립국악단의 다양하고 질 높은 전통공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설사를 지원하였고, 입장료와 주차비 등을 지원했다. 지역 특산물이나 기념품, 각종 자료는 관광공사가 맡았다. 관광공사는 예스24와 공동으로 기획회의를 갖는 등 이번 캠프가 '관광'의 성격을 갖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행전문회사인 (주)웹투어는 패키지 일정을 맡았고, 가이드를 지원하였다.
(주)창비는 은희경 작가와 황석영 작가의 섭외와 에스코트를 맡았고, 참여독자들에게 작가들의 최신작을 각각 1권씩 지원하였다.

이렇게 많은 기업과 단체가 참여해 볼거리가 많아지고 참여독자들이 가져갈 선물도 두둑해졌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문학캠프의 취지가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많이 있었다. 작년에 신경숙 작가와의 문학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는 예스24 아이디 '롤러코스터'씨는 "신경숙 작가와 밥도 함께 먹고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은 추억이었는데, 이번 행사 때는 그런 점이 없어서 아쉬웠더"고 말했다. 예스24 측은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간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지만 그것이 캠프의 '문학적 특징'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취약점을 우려해 예스24측은 문화해설사들에게 관련 문학작품과 자료집을 전달하고 되도록 문학작품과 연관되는 설명을 하도록 요청했고, 웹투어의 가이드 역시 문학적 조예가 있는 자원으로 선정했지만 문학캠프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설명회나 사전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아이디 'red7370'을 쓰는 참여독자는 "일정이 빽빽해서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관광하는 느낌이 강했다. 문학캠프라면 일정을 느슨하게 하는 한이 있어도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독자들은 빽빽한 일정과 관광을 문제삼으며 '문학'을 요구한 반면, 예스24측은 '질 높은 체험'에 방점을 찍었다. 최세라 팀장은 "신경숙 작가 문학캠프 때는 '한 곳에만 머무르는 점이 좋지 않다'는 독자들의 비판이 있었다. 이러한 점 등을 반영해 이번에는 수상작가들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는 콘셉트를 잡았다"고 전제한 후 문학과 문화는 애초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문화'와 '관광'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많은 단체와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기획의 취지가 산만하게 분산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나의 캠프에 관광공사의 색채와 예스24의 색채, 관광회사의 색채를 담아내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간' 측면이 없지 않았다.




<담양 소쇄원에서 캠프 참여 독자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선발방식과 참여자 구성

먹을 것 많은 잔칫집에는 좋은 손님이 많다. 때문에 참여인원의 구성과 선발방식은 캠프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런 의미로 예스24가 기존의 임의 추첨 방식을 버리고 사연 심사 방식으로 바꾼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번 행사에는 1,050명의 신청자 중 최종적으로 156명이 선정되었다.
작년까지는 2~30대가 절대적인 분포를 보였으나 올해는 2~30대 80%, 초중등학생과 그 가족이 고르게 참여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최연소 참여자는 97년생이며, 최장수 참여자는 40년대생으로 대체로 고른 연령분포를 보였다. 그리고 참여자들의 따뜻한 사연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임의 추천 방식에 비해서 참여자들의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는 성과를 거뒀다. 예스24측이 소개한 사연 중에는 국어선생님이나 등단을 준비하는 예비작가,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내고 싶은 가족, 이번에 엄마와 꼭 여행을 하고 싶다던 딸내미, 은희경 작가 카페의 회원들, 예스24 독서도우미 클럽 회원들 다채로운 구성을 보였다. 특히 사회복지법인 행복공학재단의 백남극 사무국장(지체장애 4급)은 자체 프로그램의 사전 답사를 위해 참여를 요청했고 예스24는 이를 받아들였다. 지역분포 역시 대부분 수도권 참여자가 주를 이뤘지만, 전남에서 펼쳐진 행사답게 지방에서 합류한 참여자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상당한 규모로 치러진 문학캠프 답게 '사회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이너쿼터가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장애우나 소년소녀가장,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약자가 질 높은 문화 프로그램을 향유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의 가치 역시 돋보이지 않았을까? 이런 부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 행사는 가족이나 학생, 지방 참여자 등 다양한 참여자 분포를 갖는 것이 특징이다. 전라남도 국립극악단의 진행에 맞춰 진도아리랑을 배우고 있는 참여자들>



그밖에 행사의 이모저모


이밖에도 행사를 주최한 예스24의 여러 가지 사연과 취지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도서1팀 최세라 팀장과 인터뷰하였다.

- 친정에서 세간살이 다 끌고 온 거 아니냐?(웃음)
"업무에 마비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끌고올 것은 다 끌고왔다. 이번에 참여한 예스24측 스탭은 11명인데, 문학담당자와 전 문학담당자, 여행과지리 담당자 등 MD 3명과 경영지원팀 인력, 도서사업지원파트장, 영화사업팀에서 고루고루 데려 왔다.
- 이번 행사의 취지는 무엇인가?
"우리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높여보자는 생각에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독자들의 문학 취향이 영미권 문학에서 일본 문학으로 전이되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껴 네티즌을 대상으로 '우리 시대의 최고 작가'를 선정하는 등 '우리문학 우리작가 관심갖기'라는 대대적인 캠페인의 일환이 바로 '2007 예스24 문학캠프'라고 할 수 있다.
- 문학캠프이지만 '관광'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하나의 실험이었다. 머무르면 다양한 곳에 가봤으면 하고, 다양한 곳으로 다니다 보면 머물러 생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 반응을 극복하기 위해 은희경 작가의 고향인 고창에서 일정을 시작하고 하루에 한 번은 문학 속 장소로 가고, 가이드나 해설사 분들께 취지를 전달하고 문학성을 살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런 장치가 잘 작동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관광이라는 느낌을 감안해 보성 차밭 등 관광지는 제외했다.
- 요즘 문학체험 행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이번 행사가 다른 문학체험과 차별성을 갖는 점은 무엇인가?
"우선 예스24가 주도해서 진행한다는 점이며, 단편적인 문학기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학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마련된 대대적인 캠페인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자체적으로 테마를 널리 알리고 150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2박3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은 예스24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바로 그런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거대자본이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공격적 마케팅을 추진하면 영세 출판사나 신예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질 수 있고, 문화의 양극화 현상도 벌어질 수 있다.
"이 행사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판매를 다 가져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의 아니게 '창비'라는 대형 출판사의 두 책과 맞물렸고, 선정된 작가들 역시 올해 출판물을 낸 작가들이지만 그것은 '독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행사를 하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출판사가 제안한 프로그램 역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예스24는 기본적으로 형평성에 치우치지 않으려 하고 작가와 작품이 괜찮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전반적으로 참여자와의 스킨십이 불만이라는 지적이 많다. 작가-독자의 스킨십, 스탭-독자의 스킨십, 독자 간의 스킨십이 그것이다.
"그것은 직원들도 매우 안타까워한 부분이다. 저 역시 스탭의 차량에서 행사를 소화하다 보니 독자들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적었고, 직원들 역시 빽빽한 일정이나 안전사고 등으로 긴장한 상태라 참여독자들과의 소통이나 모니터링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작년 신경숙 작가와의 스킨십을 아쉬워한 독자들도 많았는데, 작가의 스케줄이 만만찮아 그런 점을 만족시키지 못한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 고객과의 접점을 찾는 부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데 그 점이 아쉽다.
- 이번 프로그램 중에 관광은 좀 즐겼나? 만약 여행을 간다면 다시 오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신경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관광지가 관광지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순천만에서 탁 트인 풍경과 신비한 안개를 느끼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담양 쇄소원을 설명해준 해설사(문화유산해설사 오영순 씨) 분의 맛깔나는 해설을 들으며 소개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곳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가를 깨달았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시집까지 펴낸 분이었는데 명함도 받고 시집도 찾아보겠노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순천만'을 얻었고, '좋은 해설사' 한 분을 얻고 간다.
- 작가들을 모실 때 반응은 어떤가?
"작가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독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황석영 작가 강연회 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가 조용한 마을에서 아주머니 15명 가량을 모시고 낭독회를 하고 있더라는 후문을 소개하며 수준 높은 대규모의 독자를 만나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다른 작가들도 이와 같다. 스케줄만 맞는다면 언제든 이런 기회를 갖고 싶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 예스24의 '한국문학 관심갖기' 캠페인 중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되나?
"어린이 독후감 대회가 7월부터 2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있고, 11월에는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이때 20위까지의 수상자를 가릴 계획이다."
- 이번 행사를 진행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개인적인 감회를 묻는다면?
"행사팀이 별도로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1년 내내 캠프 준비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책은 책대로 팔고 틈이 나면 행사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돌아가서 자체 평가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지만 정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리고 6개월 된 아기가 있는데 밤마다 떠올라 너무 힘들었다. 딸을 잊기 위해(?) 정신 없이 일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 휴가는 다녀왔나?
"일이 많이 밀려서 휴가를 허락해줄 지는 모르겠다."

<이번 행사의 실무를 총괄한 도서1팀의 최세라 팀장. 아기가 보고 싶어 끙끙 앓았다던 그의 사연이 애처로웠다.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문학체험 프로그램으로서 규모와 기획을 자랑하는 2007 예스24 문학기행은 독자들에게 한여름밤의 즐거운 기억을 제공했다. 하지만 커다란 행사일수록 세심한 배려와 관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회를 거듭함에 따라 새로운 기획을 추가하고 실험을 계속하는 예스24의 노력은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준비하는 주최자와 향유하는 독자들이 서로 만족하는 접점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표시한다. 독자들은 그들의 엄청난 고생과 고민을 알고 있을까. 한여름 동안 독자들은 행복했을까? 그밤 독자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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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

승주나무 2007-08-16 22:47   좋아요 0 | URL
잘 다녀왔습니다.^^

Jade 2007-08-1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피곤하시겠어요~ 안그래도 기사난 것 보고 궁금했었는데 ㅎㅎ

승주나무 2007-08-16 22:47   좋아요 0 | URL
네.. 어제 푹 쉬어서 피로가 사라졌습니다. 세 개나 되는 어리버리 기사를 쓰는 게 좀 힘들다면 힘들었죠 ㅋㅋ

2007-08-15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7-08-1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승주나무님이 시사저널 아니지 시사in에 입사하셔야 할 것 같네요... :-)

마늘빵 2007-08-16 00:07   좋아요 0 | URL
근데 경력기자 3년이상이던데요. 음... 요게 걸리네.

승주나무 2007-08-16 22:48   좋아요 0 | URL
시사in 입사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혹시 스카웃 제의한다면 생각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