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지도라는 말이 참 거창하기는 하다.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한번 개략적으로 그려봤다.
신(神), 즉 허구/환상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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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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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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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주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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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로슈푸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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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옙스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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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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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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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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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 도표는 '이분법'이 아님을 밝혀둔다. 밝은 세계는 좋은 세계, 어두운 세계는 나쁜 세계라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만들어진 표는 아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조합물이며 어느 순간에라도 두 물질이 섞여 있다. 테레사 수녀님이라고 해서, 성인이라고 해서 악의 이물질이 끼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를 신, 즉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인물이라고 판단한다.
'밝은 세계'는 현실이 기대고 사는 가공의 세계이다. 사기업이나 정치꾼이라고 하더라도 '명분'을 높여 한몫을 잡는데 이 세계가 활용된다. 그만큼 가식이 많이 묻어나고 빈틈이 많은 세계이기도 하다. 상식 역시 이곳에 머무른다. 이와 같이 밝은 세계는 '결코' 좋은 세계가 아니다.(이 말은 중의적으로 사용되었는데, 1.나쁜 세계이다. 2. 좋은 세계인 것만은 아니다) 때문에 밝은 세계의 상위에는 허위와 환상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만큼 허위와 모순이 범람하기 쉽다. 사기꾼들 역시 이 세계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등쳐먹는다.
'어두운 세계'는 차라리 솔직하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결코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이다. 현실인들이 피했으면 하지만, 누구나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세계이다. 밝은 세계는 사람들이 쫓아다니는 세계이지만, 반대로 어두운 세계는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사람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한 쪽에 완전히 머무를 수는 없다. 때문에 '방향'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이 보인 궤적이 그 사람의 위상을 결정하며, 그 사람이 보이는 방향성이 그 사람의 가능성을 예견한다. 그리고 어디가 최고의 포지션인지는 저마다의 가치판단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주제는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각각의 위치에 놓아 보았는데, '진중권'은 좀 애매하긴 하다. 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없고 그 사람이 그 위치에 놓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가장 싫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진중권'을 '현상'으로 파악해서 드러난 내용만 가지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따라서 여기에 표시된 진중권은 진중권이 아니라, 진중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판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알라딘 내에서는 '굶자'님이 이 위치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공식적으로 위치시키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내가 친한 척하는 '아프'님은 제 위치에서 화살표를 위로 하고 있는 모양으로 표시하고 싶기는 하다.
상자를 이원화한 것은, '선악관념'의 영향력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스스로 선악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도스또옙스끼나 라 로슈푸코는 선악관념을 초월했느냐 묻는다면 '그들은 최소한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글로 시도했다'는 대답으로 대신하고 싶다. 내가 화살표가 아래로 향하는 것은 도스또옙스끼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도스또옙스끼는 알려진 대로 '어두운 세계'를 소설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 소설 '죄와 벌'은 '악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화두를 실행하기 위해 젊은 지식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통해 고통받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서, '어둠의 세계'를 보여주는 알려진 소설이지만, 그보다도 '악령'이나 '지하생활자의 수기', '카라마조프 형제들' 같은 소설이 그의 '어둠'을 확실히 보증해준다고 생각한다.
라 로슈푸코는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작가·공작. 당시 살롱에서 유행하던 문학양식에 따라 저술, 발표한 작품이《잠언과 성찰》(1665)이다. 간결·명확한 문체로 인간 심리의 미묘한 심층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잠언과 성찰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간의 본성이나 감정, 심리에 대해서 너무 잘 드러내서 당대의 살롱인들이 불편한 심기를 많이 내비췄다고 한다.
라 로슈푸코적이라 할 수 있는 글귀를 몇 개 소개한다면 "만일 우리들에게 결점이 없었다면 남의 결점을 깨달을 경우에 이렇게까지는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당한 사람은 용서할 수가 있다. 하지만 당하게 한 사람은 당한 사람을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었음'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주위에서 '나이를 거꾸로 드시네요' 같은 아부성 멘트도 들으면 왠지 서글프다는 의미를 날카롭게 지적) "미덕은 강의 흐름이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가듯이 사욕(私慾)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다."
밝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로슈푸코의 문장이 다소 거북할 수 있지만, 어둠의 세계에 있는 사람은 매우 열광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글이 많다. 어두운 세계에 계신 분들에게 추천하고자 한다.
'조승희'는 총 두 자루로 대학교수와 같은 대학 친구들을 몰살시킨 충격적인 유학생이다. 지금 이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불편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는 '조승희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중에서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이들이 화살표를 위로 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화살표를 아래로 향하고 있다면 이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나도 역시 화살표를 아래로 하고 그곳에 가야 한다.
조승희류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매우 많을 것이다. 원체 말이 많은 데다, 나 같은 사람은 관념을 드러내놓고 하기 때문에 공격에 취약하며 공격에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내가 피하고 싶은 이유이다. 하지만 조승희류의 수사는 일종의 스크럼에 빠져 있기 때문에 다수의 동의를 얻기는 어렵다. 간혹 동의를 얻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그것은 논증 과정에서 '일리 있는 부분'이 있을 때다. 하지만 그것은 좋게 보려고 하거나, 전혀 문맥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이다. 어떤 주장도 '완성'을 짓지 않는다면야 그것이 '말'로서 가치가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에는 만들어진 말보다 '비아냥'이 수천배 많은 것이다.
참고로 어둠의 세계 아래에는 미지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절대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를 본 적이 없다. 만화책 '몬스터'에서 요한이나, 도스또옙스끼의 소설 '악령'에서 '스따브로긴' 정도가 절대악을 의식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미완성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사한 인간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밝음의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넘나들어 '근사한 조합'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공자를 결코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역시 중의적 표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