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와 88만원]우석훈, 짱돌과 바리케이트의 조건

- 우석훈 강연 요지

88만원 세대의 착취구조를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한다면 홍세화 씨는 이 현상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의 '원인'에 방점을 두었다. 반면 우석훈 씨는 '이 지경'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88만원 세대'는 한마디로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다룬 책이라면,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는 계층간 불균형 문제를 다룬다. 때문에 두 책은 함께 논의가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두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강연의 취지에 공감한다.

우석훈 씨는 짱돌과 바리케이트라는 결과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이 필요한 조건에 대해서 주의할 것을 요청하였다. 던질 때 던지더라도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을 떠나 '내전상황'이나 '폭동'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향해 우리는 달려가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는 당사자는 20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연의 요지는 12월 1일 서교동 태복빌딩에서 있었던 강연(예스24 등 주최)과 지난 11월 16일 문지문화원에서 있었던 강연(알라딘 등 주최)의 메모를 합쳐서 기록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다음은 강연 요지

<우석훈 씨(오른쪽)는 세대 간 불평등과 착취구조가 임계점을 넘은 상황이기 때문에 폭동이나 내전 등의 극단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20대를 대안시리즈의 '첫 타겟'으로 잡기까지

 

학위받고 12년차, 올해 지나면 13년차가 된다. 40이 되면 은퇴하겠다고 20세 때 친구들에게 공약했는데,

내년이 40이다. 이를 정리하려 10권 정도의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4권으로 구성된 한국 경제의 대안시리즈, 이른바 ‘기승전결’ 시리즈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1~3권까지는 모두 ‘죽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처참한 책인데, 내 식대로 표현하면 ‘좀비 영화’ 식이다. 좀비 영화 보면 모두 죽지 않는가. 드라큐라 영화는 드라큐라를 죽이지만, 좀비 영화는 다 죽는다. 공포는 헤피엔딩이 없다.

1권은 20대의 90~95%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디선가 죽는 이야기를 담았다.

2권은 1권에서 살아남은 5%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역시 여기서 죽게 된다.

3권은 1,2권의 인물들을 죽게 만든 게임의 고안자이자 권력자인 40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들 역시 이 지점에서 죽을 것이다. 

20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20대를 많이 만났고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20대가 싫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분석하면서 애정이 생겼고,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국회의원, PD를 대상으로 20대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다른 거 이야기하자”고 넘어가려 하더라.

좌파 쪽 사람들은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20대에 대해서)

386이 만든 세계를 20대가 다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우파 역시 20대에 대해서 한결같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20대는 좌파에게서든 우파에게서든 다 싫어하는 존재가 됐다.

20대한테 물어봐다. 다 싫다고 하더라. 20대는 특이하게 서로가 서로의 증오대상이기도 하다. 경쟁구도를 이렇게 만들어 왔는데, 당연한 귀결 아닌가.

10대한테 물어보니까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에서 20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은 ‘장사꾼’ 소위 마케팅 담당자들이다.

제일기획은 20대를 ‘껌값’으로 판단한다.

삼성은 20대는 생각이 없는데, 애들이 결국 소비자가 될 테니까 삼성을 좋아하게 만든다.

CF 촬영하는 여배우를 보면 이런 흐름을 알 수 있는데, 주로 40대 초반이나 30대 후반이다. 가수 역시 3~40대 아니면 10대이다. 20대는 상당히 특수한 조건이 된 것이다.  

솔직히 이 책 처음 시작할 때는 20대가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10대들이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하다”가 원제였고, 10대가 주제였다.

이 주제에 맞추다 보면 나머지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10대, 20대 정리하다 보니 눈물이 나더라.

그래서 20대를 잡았다.


<우석훈 씨는 자신과 같은 세대인 386 세대에 대한 증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애를 낳고 기득권이 되면서 배신을 했다는 것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그렇지 않지만, 집단으로 볼 때 386은 위선적인 집단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누군가 '삥당'을 친 것이 틀림없다

88만원 세대는 경제적 모델이 담겨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아버지(T1)와 아들(T2)이 살고 있다고 했을 때, 자산의 흐름을 나타내 보면 20+80(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20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증여를 받은 것이고, 80에 대해서는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이것이 2대의 모델이라면 3대의 모델로 세분화 해보자. 아버지(T1)와 나(T2)와 나의 아들(T3)는 20+60+20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아버지에게 20을 증여받아서 80을 개척한 것 중에서 아들에게 20을 증여해 주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20의 단위로 세분화해 보면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결국 세상의 흐름을 자산의 흐름으로 유추하는 것이 경제학의 관점이다.

이것을 자연환경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어쨌든 ‘현재’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지분이 각각 포함된 개념이다. 그런데 과거로부터 20을 받았는데 미래에게 20을 주지 않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20이라는 일정한 자산이 분배되는 형태를 기본 분배라고 한다면 뒤로 갈수록 30, 40, 50 하는 식으로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발전적인 분배의 형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기본적으로 분배해야 할 20 중 어느 정도, 또는 상당 부분이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누군가 ‘삥땅’을 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20대의 노동강도가 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누가 보든가 ‘착취’라고 해야 옳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안정적 교환’을 이야기하면서 만족스럽게 주고 받은 상태를 ‘just'라고 했다. 그런데 현재는 ’unjust'라고 할 수 있다. (우석훈은 <시사IN> 3호 커버스토리에 기고한 글에서 새뮤얼슨의 '세대 간 중첩 모델'과 균형성장론자인 솔론의 '세대 간 형평성', 그리고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의 틀을 적용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원래 인간은 20을 받으면 40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놈이 40을 받아쳐먹고 10밖에 안 준다고 생각해 보자.

이것이 불균형이다. 세대 간 불균형이 바로 이것이다.

누가 삥땅을 쳤나. 나는 386 이전 세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386이 밉다. 미운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다시피 한다. 자기들은 과외도 안하고, 그 사람들 스스로가 사회에 들어가면 좋아질 것이라고 떠벌이고 다녔다.

하지만 애를 낳고 나더니 달라지더라.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는 그렇지 않지만 집단적으로 보면 분명히 위선이다.
 
 

뺏기면 뺏겼다고 얘기해야 안 뺏아간다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lock-in' 갇혀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황우석 사태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데, 당시 MBC PD수첩에 황우석 편 방영을 반대한 비율이 98%였고, 찬성한 비율이 2%였다.

이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라는 장치가 가동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QWERTY"라는 말이 있다.

QWERTY 자판(쿼티 자판)은 영어 타자기나 컴퓨터 자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자판 배열이다. 자판의 왼쪽 상단의 여섯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이전의 자판은 주로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었는데 자판을 타자기로 칠때 인접한 키를 연달아 치게 되면 자주 엉키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QWERTY 자판이다. 때문에 속도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느리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현대의 워드프로세서 체제에서는 필요가 없지만 관습의 저항으로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는 과연 어떻게 ‘창조적 파괴’(앙팡 테리블 : enfant terrible)를 맞을 거냐 하는 것이다.

20대의 권리장전 한 열 몇 개는 만들어 보았지만, 여러분한테서 나와야 할 거라고 생각해 과감히 생략했다. 그 이상 이야기하면 답을 주는 것이므로 지웠다. 성형수술/우울증/사회부적응 친구들 나중에 다 뺐다. 구도만 들어도 충분히 슬프기 때문이다. 슬픈걸 다 빼고 났더니 다 무섭다고 하더라.

19세기 영국 이야기.인간이 살면서 그 나라 부자들이 20세에 결혼하지 않은 게 영국이 처음이다.

인도에 가서 돈을 벌어오든지 공을 세웠는데, 지금의 20대는 공을 세울 기회가 없다. 영국 당시 35세 결혼이 유행이었는데, 영국 사회에 벌어졌던 일하고 지금이 비슷하다. 영국은 그 이후 큰 전쟁 2번에 대영제국의 명예가 무너졌다. 19세기 영국 시, 소설을 많이 읽기를 권하고 싶다. 19세기 중후반, 20세기 후반까지 포스트모던이 유행하여 전세계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배고픈 것과 배고프지 않은 것의 원형이 바로 19세기 영국에 있었다.
뺏기면 뺏겼다고 얘기해야 안 뺏아간다. 지금 20대가 뭐가 필요한가. 다른 나라로 20대가 힘든 게 거의 없다. 자본주의 이런 사례 없고, 1~2년 안에 이런 게 풀려야 한다고 본다.

외부의 적이 있다면 서로 친해지겠지만, 지금 20대는 한명씩 끌려가서 죽는 구조이다. 카프카의 ‘성’이 바로 그런 구조다. 대학 축제도 마케팅으로 넘어갔다. 20대 세대주로 독립이 안 돼 있다. 독립세대에 대한 지원을 유럽에서 다 돼 있다. 요구를 해야 하는 거다. 지금까지 그런 요구가 한 번도 없었다. 안 요구하면 원래 없어지는 거다. 헌법적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데, 지금 상황이 사실 헌법에 안 맞는 거다.


<우석훈 씨(왼쪽)는 88만원 세대가 자신들이 빼앗긴 권익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요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인 한 독자와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한방 찍다> 


 

다음은 방청객과의 문답

허정윤 학생(인천 삼산고등학교)= 1. 언니와 함께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보았는데, 본인이 자신이 88만원 세대라는 것을 인지 못해서 답답하다. 이런 언니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겠나?

2. lock-in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안을 낸다면

 

- 1. 88만원 세대의 이름을 짓는 데 여러 과정이 걸렸다.

먼저 승자 독식의 시대를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충고했다. “그거 당사자들이 들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바꿨다. 베틀로얄이라는 말은 희랍시대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긴 놈, 즉 살아남은 놈만 영광을 보았다. 하지만 당사자들 대부분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막장세대, 끝장세대라는 말도 있었다. 즉 10대는 막장세대, 20대는 끝장세대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정성적인 규정이었다. 자기가 평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식을 과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선민의식은 허위일 수밖에 없는데, 이거 깨기가 힘들다. 그보다 더 인간적인 문제일 수 있다. 분명히 평균 맞는데, 자신은 평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치기 어렵다.

 

2. 게임을 풀어나갈 때 개입해법(individual play)과 집단해법(team play)이 있다.

예컨대 노벨상을 타고 싶다고 하자. 이것은 개인 해법이기도 하고 집단해법이기도 하다. 노벨상은 기여도에 따라 주는 것이다. 취직은 개인적 해법으로 되는 것이지만, 구조를 바꾸는 사람일 때는 팀플레이로 풀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저쪽에서 팀플하면 우리도 길드를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의 문제의 경우 학교에서 동의서를 발행하거나 구청 지원금을 통해서 시급을 인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일종의 공포감에 있다. 이제까지는 팀이 하나도 없었다. 50대는 곗돈 문화. 30~40대는 노동조합문화가 있는데, 20대 이후부터는 아무런 조직이 없다.

어차피 몰리고 몰렸다는 것을 알면 단결을 하게 된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난 극장 모델’이라고 부를 만한데, 사람들은 열 사람을 따라가며 군중을 만드는 데 그것이 출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앞 사람이 출구를 모른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95%에게는 해답이 없고, 나머지 5% 역시 해답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구조를 깨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0대 내에서 욕구가 생겨서 힘이 커지는 것이 좋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해법으로 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참에 집단해법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황규선 선생님 질문(인천 삼산고 국어교사)= 현실이해 명쾌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짱돌 들고 바리케이트를 쳐라! 는 명쾌하지만 그렇도록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경제학으로 설명이 되나. 막막한 벌판에 선 느낌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어떻게 만나고 20대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성찰이 빠를까? 짱돌이 빠를까? 짱돌드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혼란스럽다.

 

- 수능을 이기는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원에서는 100% 이기지 못한다. 문집 만드는 활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학생은 무조건 100점을 받게 돼 있다. 책 잘 읽고 생각 많이 하는 사람이 점수를 잘 받도록 설계됐고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수능 문제를 다 외워버릴 거라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논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논출책 10여권을 다 외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논술 채점 교수 이야기 들어보니까 학원에서 나온 교재를 보더라. 학원 표 비슷한 거 찾는 것이 채점의 중요한 과정이다. 학원에서는 이것을 깨려고 책을 자꾸 바꾼다. 이렇게 채점자와 학원에서 자꾸 전쟁을 하는데, 참 한심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원 가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공교육 내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전쟁이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군가 부처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부처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과부, 어린이, 노약자 돌보고 어른들이 대화를 많이 해라”

이 상태로 간다면 1,2년 내에 폭동이 난다. 폭동이 나려면 나는데, 폭동은 히틀러처럼 갈 확률이 높다.

혁명은 그렇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폭동으로 가지 않고 합리적으로 갈 수 있을까

책 보고 인문학 성찰이 답이지만 20대 비례대표 국회 건의, 주거권, 노동권 등 100만명 권리청원선언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짱돌이든 무엇이든 던져야 하지만, 어떤 것을 던지는 것이 효과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고3 수능 총파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차피 고3이야 다음 해에 들어가면 되니까. 외국에는 상식적으로 없는데, 우리에게만 이상하게 있는 것들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키는 10대가 쥐고 있다. 문제는 위에서 시킬 수 없고, 똑똑한 10대가 많이 탄생하는 해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88만원 세대의 질문=88만원 세대 중에서 뭉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거나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우리가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 공유된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가투에 나가면 열 사람의 바깥쪽에 있고 내가 안쪽에 있는 상황이 행복하다. 속도 역시 맞춰서 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안 잡힐 수 있다. 돌을 안 던진 친구가 돌을 던진 친구에게 10만원씩 준다. 싸우지 않은 친구들이 싸우는 친구들에게 물적/심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잡혀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스크럼은 안 잡혀가려고 하는 것이다. 공유된 경험이 틀을 만든다. 처음부터 탈법을 할 필요는 없다. 모일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 바둑둘 때 집이 있어야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마는 있는 데 모두 죽은 대마이다. 많은 집, 조그만 집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실 20대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잘 안 될 거다. 기타를 칠 때도 처음에는 어렵다. 하지만 기타와 자꾸 대화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클라이막스까지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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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에 현금 채우기 위한 경제?<BR> 선거 민주주의로는 살 길 못 찾는다"


오마이뉴스|기사입력 2007-12-05 17:53 기사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이명원 기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 남소연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를 만난 것은 지난 9월 17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무려 3개월 전에 있었던 만남을 '복기'하는 셈이 된다. 복기라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사실 나는 그간 김종철이 실천해왔던 사상의 궤적을 자못 골똘하게 '복기'해왔다.

한국의 지식인 지도를 작성한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에 따르면, 김종철은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분류되며, 그 사상의 핵심은 '환경 근본주의'로 명명되고 있다. 일찍이 김종철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여의도통신>의 정지환 대표기자 역시 그렇게 보는 듯 하다. 그런 까닭인지 그는 2000년에 <비평과전망>을 통해 진행된 인터뷰의 제목을 "파국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멈추게 하라"라고 뽑았다. 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야말로, 인간과 지구의 생물학적 토대 자체를 붕괴시키는 커다란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김종철 사상을 압축하는 표현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나는 김종철 사상을 '환경 근본주의'나 '급진적 민주주의'로 확정하는 것은 좀 경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김종철이 <녹색평론>을 통해서 제기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들은, 뒤의 대화에서 밝혀지겠지만 '급진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포괄하기 힘든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고, '환경 근본주의'의 명명법을 뛰어넘는 '생태 평화주의'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평론>을 통해 그가 던지는 물음

그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共生)은 물론이고, 인간과 인간의 공락(共樂)이 가능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꾸준히 <녹색평론>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 김종철의 이러한 '공생공락의 비전'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녹색평론>이 생태잡지가 아닌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우지간, 이제 김종철 자신의 육성을 들어보도록 하자. 나는 먼저 안정된 대학교수 생활을 스스로 청산하고 <녹색평론>에만 전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내 나이가 많아졌다. 공부도 안하는 사람이 대학에 있는 게 염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동시에 변화하는 대학에 우리같이 낡은 체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한 이유다. 예를 들어 내 경우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라든지 하는 식의 변화. 그런 분위기가 나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대학 내에서 비판적인 지식인이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대학은 우리 같은 사람이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는 분위기는 이미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 해 전부터 많이 들었다. 또 기본적으로 경제적으로 대학을 그만 무어도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일 수 있겠지."

오늘의 대학이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구조 조정기를 거치면서, 대학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교수사회와 관련해서도 갖가지 추문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빈번하게 제기되는 표절 사태는 물론이고, 한탕주의적 연구풍토와 이완된 윤리의식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와 '신정아 사태'에서 꼭짓점을 이루지 않았던가. 한 마디로 지식인 본연의 기능이 추락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 아닌가.


"사실 나 자신에게도 아픈 질문이다. 내가 지식인다운 지식인으로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는 없다. 하여간 과거에 우리나라가 지식인다운 처신을 할 만한 상황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면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대학 내에 지식인보다는 지식기술자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과장이 아니다. 옛날보다는 확실히 요즘의 대학선생들이 개인적인 공부나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와 비교하여 오늘의 대학 지식인들이 책상에 앉아있는 절대시간은 늘어났다.

하지만 교수나 학자라면, 그런 개인적 작업 이외에도 우리사회의 공동의 삶에 대해 근원적으로 고민하고, 먹고 사는 일에 바쁜  대중들이 미처 생각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근원적인 성찰과 실천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또 객관적인 지식을 대학이 많이 소유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응분의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공적 기능을 좀 더 확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풍토가 유난히 신자유주의 풍토에 적응력이 빠른 게 아닌가 싶다. 지식인 사회가 위기상황인 것은 틀림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에 대한 타개책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위에서의 '지식기술자'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대학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통적인 지식인 그룹이 '논문쓰기 노동자'로 전락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분류체계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저항해야 하는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학술진흥재단이 분류한 '등재지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연구업적 부풀리기와 연구비 수주행위에 골몰하고 있다. 인문학을 살리겠다면서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분배하는 인문한국 프로젝트야말로 사실은 반인문적인 발상인데, 이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는 소수의 연구자들에게서나 나오고 있다. 인문학자들조차 프로젝트에 동원되는 일의 문제성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문제 아닌가.

대학에 사표를 제출하고 나온 김종철은 지금 서울에 있다. 난 선생이 귀농이라도 할 줄 알았다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녹색평론>의 가치와 의미를 확산시키기 위해 가장 용이한 공간이 역설적이게도 서울이라는 것이다. 지방강연도 자주 다니는 편인데, 그러자면 서울이라는 장소의 효용성을 부정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녹색평론>의 본사는 대구에 있다. 그는 서울에서 <녹색평론>에 게재할 원고를 번역하고, 필자를 섭외하고 대구에서 전송된 원고를 검토하면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녹색평론>이 격월간지이니까 그의 일상 모두는 <녹색평론>에 바쳐지는 셈이다.

매주 토요일, 이반 일리치를 읽는 이유



 
ⓒ 남소연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울 청운동에는 <녹색평론 자료실>이 있다.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는 김종철과 독자들이 모여 '이반 일리치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성격의 모임이냐고 물었다.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이라고 하면 되겠다. 서울로 오면서 녹색평론 독자들을 중심으로 매주 토요일 날 책도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밖에서는 그럴 듯한 학구적인 모임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좋은 의미에서의 친교모임이다. 이반 일리치가 제일 중시한 것은 사람끼리의 친밀한 교류였다. 개인적으로 이반 일리치를 좋아한다. 그는 평생을 카톨릭의 신부로 살면서 결혼도 안하고 활동했던 지식인이다. 근대산업문명의 비인간주의를 가장 근원적으로 성찰했던 사상가가 이반 일리치다. 그 분은 가령 전통적인 좌파들처럼 사회변혁을 주장한다던지, 이론적으로 서양의 혁명운동을 지지한다던지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인간본연의 자연스러움, 대지를 일구면서 살아왔던 문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대부분의 민중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는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이것을 뿌리로부터 파괴했다고 여겨졌는데, 이것이 현대세계의 모순과 지속불가능성, 비도덕성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인 것이 그의 주장에는 인종적·문화적 편견이 없다. 흔히 서양사람들 중에는 동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 안다하더라도 내심으로는 서양우월주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 사람은 인간에 대한 편견이 없다. 그리고 기준이 엘리트가 아니고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이반 일리치 사상의 원점이다.

그 자신은 유럽 출신이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사는 데서 사목활동을 했다. 이후에는 멕시코 농민공동체에 정착해 구미 출신의 라틴 아메리카 선교 봉사자들을 모아서, 일종의 반(反) 세뇌활동이랄까 하는 것을 전개했다.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멕시코 원주민들이 아니라 북미의 지식인이나 엘리트들이며, 세계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생활방식을 하고 있는 것은 유럽사람, 백인들이라는 점을 명확히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이반 일리치의 활동이 가톨릭 교황청의 귀에까지 들어가 공산주의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미국의 근대주의, 민주주의, 풍요로운 문화를 전세계에 보급해야겠다는 서양인의 소명의식이란 오히려 세계를 망치고 파멸로 빠뜨린다는 것을 일찍이 명확히 밝힌 사람이 이반 일리치였다."

모임의 성격을 '친교의 공동체'로 소박하게 명명했지만, 이 모임은 마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의 경우처럼, 나날의 일상 속에서 산업화의 비인간주의를 거스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근원적 고민을 공유하면서, 자치와 협력의 의미를 되새기는 도시형 공동체로 나는 느껴졌다.

내게 이반 일리치는 자연을 거스르는 산업사회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조어인 '대응-생산성'(counter productivity)이라는 개념과 함께 떠오른다. 여컨대 질병을 제거하겠다는 병원의 제도화가 환자를 더 많이 만들고, 계몽의 이념을 전파하는 학교가 오히려 무지를 증폭시키고, 교도소가 범죄자를 오히려 구조적으로 양산시킨다는 근대의 역설에 대해 이반 일리치처럼 예민했던 사상가도 없는 것이다.

역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종철은 뛰어난 문학평론가다. 비평가로서의 그의 청년기의 열정은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에 응축되어 있다. 동시에 그는 일찍부터 한국에서의 제3세계 문학에 대한 소개와 분석에 주력했던 비평가이기도 하다. 90년대를 경과하면서 이른바 한국의 문학계에서 풍미했던 탈식민주의의 문제의식을 일찍이 제기했던 장본인이 김종철이다.

그랬던 그가 돌연 1991년 <녹색평론>이라는 책을 창간했다. 이 시기는 소비에트 및 동구원의 몰락이 한국의 지성계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때이며, 국내적으로는 강경대를 포함한 대학생들의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과 분신이 줄을 잇던 때였고, 문단 내적으로는 김영현의 소설을 둘러싼 최후의 리얼리즘 논쟁이 가열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는 왜 이 때 <녹색평론>을 창간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91년, 사상의 혼란기에 왜 <녹색평론>을 창간했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문학이 협소해졌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문학이야말로 제일 넓은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 내가 젊은 시절에 문학평론이랍시고 몇 편의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내 한계를 자주 느꼈다. 나는 문학은 천재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문학이란 나 같은 둔재들이 할 것이 아니다. 문학에서는 최고의 작품과 최고의 평론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재능도 재능이지만, 우리의 문단은 그런 상황이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내 전공은 영문학이다. 주로 학자로서 나는 주로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들을 읽고 연구했다. 그렇게 작품도 읽고, 강의도 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는데, 막상 한국문학에 관해서 언급할 경우 굉장히 착잡한 낙차가 느껴지곤 했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수준차가 아니다. 문학을 통해서 나는 동양과 서양의 관계, 근대와 전근대의 관계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생태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나는 이 점이 답답했다. 어디서 돌파구를 뚫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늘어가고, 그런 고민에 비해 역량은 부족한 듯하고. 문학공부를 한국에서 한다는 것은 집요한 정열과 함께 축적된 지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개인적인 재능도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천재가 아닌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젊을 때 많이 아팠다. 한동안에는 죽음도 심각하게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헌데 그럴 때 제일 절실한 게 문학이 아니더라. 문학을 통해 위로를 받거나 진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오히려 내 자식들의 운명, 내 다음 세대의 미래, 그리고 우리 선대의 삶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결국 사는 게 복잡한 게 아니고 기초적인 조건이 구비되어야 생존 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몸이 심각하게 건강을 잃게 되니, 그때부터 생명의 문제에 예민해졌다. 물론 그전에도 얼핏 현대문명의 진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만일 내가 건강해지면 이 문제를 사회적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데 역할을 하자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980년대는 이것을 공적인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다. 불완전한 민주화가 되었고 구 소련권이 무너지던 91년 시점에 이르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동안 우리의 지식인들은 자본과 노동,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를 전망해왔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생태계의 문제, 생존을 영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는 진보적 사색은 얼마나 허망한가라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필자를 찾기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녹색평론>을 창간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의 불모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외국잡지나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들이라도 소개해 보자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96호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녹색평론>의 근본적인 취지는 같지만, 지금와 생각해 보니 잡지의 성격과 편집태도가 상당히 변화한 듯한 느낌이 든다.

초기에는 원칙적인 문제제기를 주로 하는 편이었다. 가령 생명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식의 종교성을 띤 이야기들이 주로 실렸다. 영성적인 가치가 중요하다는 식의 개인수양을 강조하는 자료들도 많이 실렸다. 그러나 지금은 당면한 사회정치적 현안에 관해서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그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명석하게 정리한 바는 없지만, 이런 이미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시민운동가에게 생태문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마당에, 녹색평론이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중복적으로 이야기할 필요 없어진 것 같다. 동시에 편집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초의 내 생각이 다소는 나이브했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생태계 위기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한국사회는 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브한 기대였다. 현실과 부딪치면서 경험해보니, 사람이 생각이 어느 쪽으로 간다고 해서, 행동이 자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도 그렇고.


<녹색평론>을 시작할 때는 지구온난화라는 말보다는 환경오염, 환경파괴, 생활 속의 독성물질 등의 문제가 이슈였다. 지금처럼 전인류의 삶을 뒤흔들 가능성이 큰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에 대한 경고랄까 하는 것은 오늘처럼 중요한 사회 이슈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구온난화 문제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국내언론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지만, 외국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이 문제가 논의된다. 게다가 석유문명의 종말은 화급하게 닥칠 문제 아닌가. 10년 안에 석유생산이 정점에 이를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로서 예측이 되고 있으며, 이런 사실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현실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다면 정작 더욱 큰 문제는 우리들의 인식이 아니라, 그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뭔가 큰 타성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는 거대한 사건이 빈발한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폐해가 우리처럼 압축적 근대화를 한 사회에서는 모순과 불합리, 인간적인 위기상황이 가장 집중적으로 발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압축적인 근대화, 고도경제성장의 후유증이 오늘의 한국적 상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거의 매일 걱정스런 사건으로 사람들의 내면이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단순한 마음가짐이나 인식이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는 그런 차원 만으로만 안 되는 보다 복합적인 도전에 우리가 직면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 역시 중요한 쟁점인 동시에 생태적인 위기를 부채질하는 무서운 사태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옛날처럼 나이브하게 마음가짐을 고쳐라, 물욕을 고치라고 해서는 돌파가 안 된다. 왜냐하면 하루하루 자기가 놓여 있는 생활상의 급박한 요구들에 사람들이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혼란스럽고도 급박한 요구 앞에서 우선순위는 생태문제나 지구환경문제가 아니다. 설사 인류가 망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들은 무섭다. 과연 이 사태를 어떤 식으로 걸머지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지 나 자신도 고민이다. 그렇게 당면한 현실들, 사회적인 이슈들인 삶의 전반적인 조건을 외면하고 우원(迂遠)하고 장기적인 위기상황을 백번 이야기해봐야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자신도 <녹색평론>을 만들면서 많이 변해왔다고 느낀다."

갑작스럽게 강림한 병마라는 개인적 고통이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사상의 봉쇄현상과 조응하면서, 김종철은 이른바 세계관의 전회를 체험하게 된다. 나는 특히 위에서의 김종철의 발언 가운데서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생물학적 토대의 붕괴를 고려하지 않는 진보주의는 허망하다는 발언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요컨대 김종철이 문제삼는 것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이른바 '발전론적 세계관'이 초래해낸 인간과 자연의 대상화, 이를 통한 '경제성장지상주의'의 전면화에 따른 삶의 근원적 파괴현상이다.

이 부분에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독특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것이 그를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분류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을 간추리자면,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출현 이전의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 같고, 인간 상호간의 협업과 상호부조, 이를 통해 가능해지는 공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소공동체 중심의 지역 자치의 느슨한 네트워크를 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인식을 그는 어느 강연에서 '농민공동체'와 '근원적 민주주의'를 연결시키면서 논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떠할까.

"대의민주주의체제로는 인류가 살 길을 찾을 수 없다"



 
ⓒ 남소연  
"뜻밖의 말로 들리겠지만. 선거철마다 느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는 소위 대의민주주의체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갖고는 인류가 살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그걸 확연히 느끼는데, 언론에서의 대선쟁점은 경제문제다. 흔히 오늘의 대중들이 민주주의나 민주적 개혁과 같은 말에 실증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일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대중이나 지식인들이나 민주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것이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 삶을 자기 자신이 다스리는 자치를 의미한다면, 이것은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되는 문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표를 얻는 걸 중요시 한다. 소위 지금과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정치인들은 다음 4년 동안 국회의원이 되는 게 최대 관심일 거다. 그러니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을 한다는 게 위험하다고 말하는 정치가는 없을 것이다. 지식인 역시 경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제라는 게 내 주머니에 현금이 많이 있기 위한 경제다. 그러나 내 주머니에 현금이 많이 있으려면, 당연히 타인의 주머니는 가벼워질 것이다. 또한 사람들 사이의 상부상조의 관습이나 좀더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이 뒷전으로 물러날 것이고, 환경파괴는 당연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해 참다운 고뇌를 전개하고자 한다면 "이런 경제는 안 된다. 환경파괴 없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민주주의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과의 협력을 통해 내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경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게 지식인이고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런 계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틀 자체가 오늘의 대의제 민주주의 속에서 성립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도 대중이지만 대중들은 복잡한 설명을 싫어한다."

김종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나 대통령 선거로 상징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적인 생활을 강조하면서, 구성원들과의 자발적인 '협력'과 '상호부조'의 호혜적 자치와 경제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치의 모델은 오늘과 같은 메트로폴리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가경제 및 세계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가치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김종철의 주장은 아름답기 짝이 없지만, 현실 속에서는 실현불가능한 구상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김종철은 이렇게 반문한다. 그것이 실현불가능한가의 여부를 떠나서, 지식인이란 결국 한 사회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반문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냐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대의제 민주주의는 민의와는 무관하게 결국은 정치계급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어쩌면 대의제로 표상되는 근대 민주주의의 근원적인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의제를 대체할 가치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지를 떠나, 일단 그런 고민을 같이 하는 동지가 많다는 건 좋고 위로가 되는 일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해답이 없다. 그래도 우선 질문을 제대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우리의 미래나 활로가 없다. 이것은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제국인 미국이 변해야 한다. 제국이 변하는 데, 우리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나는 옛날부터 간디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그렇다. 간디는 국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형식적인 조정자 내지는 사회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인도에는 약 70만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인도의 마을이 유지된 것은 자치제도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중요한 일을 의논, 합의, 결정하기 위해 다섯 명의 지도자를 뽑았다. 그리고 또 다른 자치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들과는 횡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했고 필요할 경우 협력했다. 인도에는 이처럼 오래된 민중적인 자치의 전통이 있었다. 간디는 현대인도 역시 이러한 마을의 차치전통을 창조적으로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마을들이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하나의 공화국으로 기능할 때라야 인도가 제국주의 영국으로부터 온전하게 독립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간디의 생각에는 정치적으로 영국총독이 인도인 수상으로 바뀐다고 해도, 마을 자치제도가 유지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정한 독립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여간 인도의 독립 이후 간디의 수제자인 네루가 수상으로 취임해 인도를 현대국가로 건설하던 무렵에도 간디는 그의 자치 사상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신생 독립된 인도정부의 지도자들은 모두 시골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마을의 일꾼들과 함께 일하면서 아래로부터 마을을 튼튼하게 하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간디는 자신의 말이 결코 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이 조만간 암살당할지 모른다고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1909년부터 <흰두 스와라지>라는 소책자를 쓸 때부터 간디는 마을공화국을 주창했으며, 산업주의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했다. 동시에 농사를 경제의 근본이라 생각했으며 시골의 전통적인 수공업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근대 산업주의 모델이 아니라, 인도인 스스로가 자활·자립해야 인도의 민중들이 고르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식의 산업주의는 불평등을 구조화한다고 말했으며, 인도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가 산업화를 하게 된다면,  영국 제국주의 이상으로 전지구적으로 엄청난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간디는 생각했다. 물론 인도의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사실 역시 그는 알고 있었다.



간디를 암살한 청년은 근본주의자였는데, 재판 당시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간디를 존경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간디가 살아있다면, 인도가 세계국가로 발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디를 죽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암살범의 간디에 대한 평가는 산업화 세력인 당시의 네루 수상을 포함해 내심으로는 많은 수의 정치지도자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실제로 간디의 주장을 경청한 중요 정치지도자는 없었다. 간디 사후 제자들의 경우 역시, 종교적인 수행자의 면모를 따랐던 사람들은 꾸준히 존재했지만, 인도의 현실정치 상황에서 간디의 반산업주의와 반국가주의 논리가 실용적으로 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드물었다.

지구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생각된다면 간디사상을 재음미하라

오늘의 상황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생태주의자들이나, 자본주의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존재한다면 지구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간디사상을 재음미해야 한다. 현재의 인도는 현실적으로 세계공장이 되고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의와중에 있으며 중산층이 2억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는 점차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간디의 마을자치 논리는 무효가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라. 인도의 중산층은 2억이지만 인도전체 인구는 11억이다. 그런데 2억을 제외한 인도의 9억의 인구는 간디의 생존 시보다 월씬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인도의 농민은 1년에 5만명이 자살하고 있다고 한다. 오직 소수의 엘리트, 기술자, 지식인들만이 문명된 생활을 누리게 되는 것이 오늘날 인도의 산업화가 낳은 결과다. 간디가 염려했던 바로 그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까. 안이하게 세월이 간다고 9억의 빈곤층이 2억의 중산층처럼 되겠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9억의 빈곤층이 2억의 중산층을 가능케 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간디는 산업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와 국가가 근대화 과정에서 결탁할 수밖에 없는 필연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흔히 좌파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간디는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국가 역시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정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가 기능을 못하고, 모든 게 시장으로 이행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국가의 도움 없이는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 자체가 성장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풀뿌리 민중에 대한 법적인 억압이란 결국 국가를 통한 억압에 다름 아니다. 노동유연성이란 말도 흔하게 남발되는데, 이는 국가의 법적 절차를 거쳐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대통령조차 시장권력이 국가권력을 압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일 국가가 그야말로 시장에게 권력을 양도했다면, 노동자들은 비자 없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주노동자라는 개념 역시 필요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비자나 여건 모두 국가가 민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역사적 과제를 실현하자면,  국가에 대한 통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가 세계의 보편적인 정치문법이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는 중요하다.

내가 간디를 거론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우리는 간디가 생각했던 촌락공동체 중심의 풀뿌리 자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물론 내가 말하는 촌락이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촌락일 필요는 없다. 하나의 중간과정으로 도시에서도 이런 공동체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공동체에 대한 알레르기도 있었다. 공동체에서 어떤 이들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구속, 획일적인 규범의 지배를 연상했다. 특히 근대적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이런 거부감을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간디 역시 이런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모든 존재의 출발과 귀착점은 개인이다.
 
간디가 구상했던 풀뿌리 자치 역시 전통적인 촌락사회을 모델로 삼았다고는 볼 수 없다. 간디 역시 근대적인 지식인이었다. 영국에서 변호사 교육을 받으면서 근대적인 사상의 영향 속에 있었다. 오히려 간디는 가장 근대적인 사상으로 근대를 넘어서고자 했던 선구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나는 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 역시 흔히 전통적인 구속감을 연상시키는 그런 공동체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구성된 결정론적 공동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생각과 사상,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나이와 사회적 지위나 처지를 가리지 않고, 나름대로 모여서 복합적인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것은 어떤가. 적어도 그 사람들끼리는 국가나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삶의 공간이 도시건 농촌이건 간에, 바닥에서부터 횡으로 연결되어 일어난다면 이것이야말로 가능한 민주주의의 대안이라면 대안 아닐까."



 
ⓒ 남소연  
김종철의 사유체계는 국가와 시장의 연합 또는 동맹관계가 한 축에 있고, 이것이 풀뿌리 민중의 자율적인 자치를 억압하면서 노동력을 동원하는 기제로 군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종철의 사유방식과 유사하게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은 국가와 시장연합이 풀뿌리 민중들의 협업적 공동체인 어소세이션을 파괴하고, 결국은 국가에 의한 노동과 자본의 약탈/재분배에 근거한 모델이 오늘의 근대적 삶의 양식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위에서 거론되고 있는 '간디의 마을자치 모델'은 결국 이러한 국가-시장의 동맹모델 이전의 근원적 민주주의로서의 풀뿌리 민중의 자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치모델은 근대적 생산력주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사유다. 근대적 생산력 모델이 일종의 한정된 자원을 염두에 두지 않는 약탈적 개발주의 모델이라면, 간디의 자치모델은 순환경제 모델로서, 한정된 생명자원을 염두에 두면서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좋은 삶에 두는 '빈자의 경제학'이다.

김종철은 근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물질적 부의 축적이라는 권유가 허구적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생존 그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는 풀뿌리 민주의 자치능력을 국가권력에 위임함으로써 무력화시키고, 좋은 삶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비전을 궤멸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일리치)의 전집을 한번 살펴봐야게따..
김종철의 <녹색평론> 서문은 가슴을 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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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가 뽑은 올해의 단어는 
'죄수의 딜레마'다.
죄수의 딜레마는 검찰이 격리된 공간 안에 죄수 두 명을 가둬놓고 최선, 차선(차악), 최악이라는 3개의 선택권을 줬을 때 죄수가 최선과 최악을 피한다는 결과를 원리로 끌어온 이론이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88만원 세대들이 착취 구조에서 개별적인 해법만을 고민하여 사회변화의 여지가 없게 된 현 상황을 분석한 우석훈이 올해 말에 사용한 이래 삼성비자금 파문과 BBK파문을 떠돌아다니는 악령이다.
검찰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대선주자에 갇혀서 몸보신을 선택하되 국민적 신뢰를 배반하는 결과를 택했다.
우리나라 국가기관, 언론이 모두 삼성판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용기를 잃었다. 그래서 올해의 단어는 '죄수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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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사회 읽기
    from Fly, Hendrix, Fly 2008-01-01 00:14 
    사실 중요한 건 그 실천이겠지만, 일단 읽어야 한다. 무지한 행동주의가 낳은 지금의 상황이다.
  2. Even if it's so hard to confront of it, don't give up
    from 2008-01-04 13:10 
    Even if it's so hard to confront of it, don't give up There's nothing easy for you There's no one easy for you There's no dreams easy for you   But Don't forget your starting mind It was easy but it made to this position and made you not to
  3. 캐드제작 대행--캐드죤-010-8098-0815
    from 도면제작.출력(캐드죤사무소)010-8098-0815 2008-02-07 21:59 
    도면사무소-캐드죤010-8098-0815 캐드제작 대행--캐드죤-010-8098-0815 팩스02-6442-8815 인테리어도면
  4. 이벤트 응모:지금 훔치고 싶은 문학동네의 책 10권
    from 2008-02-22 14:01 
    문학책을 정말 좋아하고 가끔 글도 쓰는 50대 아줌마입니다 . 정말 문학적 가치가 큰 작품을 만나게 되는날은 정말 행복합니다. 요즘은 기다리는 작가의 글이 좀처럼 나오질 않아 심심하던중 문학서적을 이벤트하는 걸 알고 기쁨과 , 설레임으로 참가합니다. 열거하는 책중 읽은것도 있고 읽고 싶은 것도 있어요.제게 행운을 빌어주세요^^ 1) 연어  2)연금술사  3)달을 먹다  4)리진  5)오시리스의 신비  6)책
  5. 호텔, 그것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from 곁길에 선 책꽂이 2008-04-05 01:21 
    www.hoteljava.co.kr 호텔자바를 위하여
  6. 배려
    from 2008-07-03 15:40 
    제가 배려라는 책을 읽은것은 6개월전이다.자기들 생각에는 회사내에서 다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내보내면서각자 자기만 생각하는데서 좌충우동 일을 하면서 서로를 배려 하는 모습을 그려 넣었던 작품이라  제 마음도 흐뭇했던 작품입니다.
  7. 나에게 책이란 '푸른 바다'다
    from 사막의고독한검객 2008-07-05 21:22 
    책 속에는 수많은 단어와 수많은 이미지가 살아숨쉰다.  이름모를 해초들과 물고기들, 그리고 바다속에 스며드는 찬란한 태양빛.  아직도 태양이 비치지않는 심해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못할 생물들이 존재한다. 나는 책의 바다속에서 내가 살아갈 힘과 비전을 낚아올린다.    
  8. 10문 10답 이벤트
    from yangys0619님의 서재 2008-07-22 01:02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심리학을 일상에 적용시킨 책이나 인류학,역사 ,세계관 등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로마인 이야기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시오노 나나미,이외수,박완서,마광수,정진홍 등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웽스북스 2007-12-0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렇게 훌륭한 단어를 골라주시니, 감히 참석하기가 어려워요 ㅋㅋ

비로그인 2007-12-06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올해의 단어"라.....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죄다 정치 얘기 하지만,
정치의식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옆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죄다 '대선'이다.
그런데 듣고 보면
대선 이야기는 맞은데
정치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에 4:3으로 석패한 한일전과 묘하게 닮았다.

사람들은 한일전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의 '대선 이야기'를 '한일전'과 오버랩시켜 본다.

대선만담 : 김경준이가 온다더라, 왔다더라
한일전 야구 : 고영민이가 1회에 솔로홈런을 쳤다더라

대선만담 : 민주신당하고 민주당하고 단일화가 깨졌다더라
한일전 야구 : 챤스에 김동주가 병살타를 쳤다더라

대선만담 : 내일 검찰에서 결과를 발표한다라
한일전 야구 : 9회에 일본 특급 마무리 우에하라로 교체됐다더라



저마다 대선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좀처럼 분석을 내놓지 않았다.
대개 변수의 결과나 변화양상의 외양만을 그대로 반복할 뿐이었다.
그나마 한일전에서는 부정 오더를 해서 일본팀이 항의를 했던 점이나,
투수 기용을 특이하게 해서 일본팀을 교란했다는 정도의 전략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텐데,
이번 대선에서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언론이 경마식 보도를 자꾸 하니까,
사람들이 경마장식 만담을 나눈다.
세상이 경마판이 된 것 같다.


이히뤼야~~!! 디기딕 디기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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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0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늘 들은 가장 재미있는 발언은..
"노무현이 이명박을 지지하면 아마 이명박 지지율을 20%대로 떨어트릴 수 있을텐데."
였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참 씁쓸하죠...

웽스북스 2007-12-05 22:47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 발언 정말 재밌고 씁쓸하군요-_-
 









[80과 88만원]<2부>홍세화, 탈의식을 위하여

- 홍세화 강연 요지

"지금은 약자들조차도 서로 증오하고 있다. 연대의식이 강하겠나. 나는 비관적이다.

자기들끼리 경쟁하고 있는데, 어디서 단추를 찾을 수 있겠나."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20대는 기대를 안 하고 오히려 10대에게 기대를 한다.

20대는 집단적인 힘으로 할 수 있는 토대가 없다."

홍세화 씨는 '비관'이라는 말을 입에 자주 담았다. 하지만 그의 비관주의는 역설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얼렁뚱땅 아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데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 실상이라는 것이 좌절과 절망의 실상이다. 실상을 깨우치지 않고서는 '거대한 뿌리'를 만져보지 못한다는 것이 홍세화 씨의 주장이다. 12월 1일 강연의 내용을 요약했고, 방청객과의 문답을 정리했다. 방청객의 질문에 우석훈 씨와 함께 대답을 했기 때문에 질문의 내용은 중복될 수 있다. (우석훈 강연 요지는 딸림기사 참조)


다음은 강연요지

20의 소수가 80의 다수를 지배하는 유력한 2가지 방법

 

<작은책>에서 주최한 ‘작은책 스타’ 노동, 역사, 인권, 여성, 교육 문제를 다뤘고 그 강의록을 정리한 것이 바로 최근 출간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철수와영희)이다.

거기서 나는 80과 20의 관계가 무엇이길래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80이 계속 지배되는가 하는 문제를 교육과 관련해서 썼다.

보수정치인까지 한결같이 양극화 문제를 강조하고 나섰다.

민주화 사회에서는 80이 지배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희랍어로 말하면 democracy, 즉 '다중지배체제'가 된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철인정치가 되지 못하므로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소수가 대다수를 지배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판명된 지배방법이다.

1. 80을 분열시킨다. 이를 이주노동자/내국인노동자(노노갈등), 여성/남성, 숙련노동자/비숙련노동자, 정규직/비정규직 등등으로 나누면 저희들끼리 분열하므로 단결되지 못한다. 이를 지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 80 스스로가 자기의 처지를 배반하게 만든다. 즉 80에 속하면서 20을 편들도록 의식화한다. 이는 학교교육이나 언론장악 등 현재 일반화된 체제의 틀로 가능하다.

 

지난 11월21일 비정규직법안이 발효되고 나서 이랜드 홈에버, 뉴코아 30~50대 어머니 노동자를 취재했다. 만 5개월째 파업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전에 하루 종일 서서 8~12시간 동안 일해서 월 80만원을 받았다. 그나마 고용은 안정되리라 생각했는데, 외주화가 되면서 계약해지에 당면했다. 그 이전에는 자동연장되면서 ‘재계약’이라는 개념조차도 몰랐지만, 계약해지에 직면했다는 현실에 처하자 그제야 노조에도 가입을 하고 파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홍세화씨는 역사적으로 20은 80의 내부분열을 책동하고, 80 스스로 자기의식의 배반을 하게끔 세뇌하는 과정을 통해서 80을 지배해왔다고 설명했다> 

 

취재하면서 짓궂은 질문 2가지를 물어봤다.

첫 번째 질문은 "80만원 받아서 뭐하십니까?"였다.

 절대 다수가 생활비에 보태지만 그 중에서도 3~40만원은 꼬박꼬박 사교육에 썼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계층상승의 기회가 오겠는가 생각하면 회의적이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 질문은 차마 지면에 싣지 못했다. 솔직하게 대답해 달라고 했다. 파업 2달 전만 해도 노조는 물론 파업의 당사자가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 대선때 어느 당에 투표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제일 재밌었던 것은, 가장 많이 나온 것이 H당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아직 닫혀 있지 않았던 때의 ‘열린당’. 그리고 ‘민노당’ 지지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80에 속하지만 의식은 철저히 20에 치우친 증좌다.

분명히 그들 스스로 자기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 이런 말이 나와 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다. 이는 대중매체와 교육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지속한다. 의식세계를 토해내는 것은 지배체제이다. 그것이 사람들을 스스로 배반하게 만든다.



자기의식의 배반자 - 이랜드 파업노동자 지난 대선 때 대부분 한나라당 투표해

 

일단 의식 안에 들어오면 계속 그것을 배반하려 드는 본성이 있다. 예컨대 무상교육은 나를 위하는 정책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의식은 처지에 따라가지 않는다. 아무도 표를 찍지 않는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은 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주입됐다. 교육과정에 완전히 차단당한 것이다.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생각해보자. 주체적이 아니라 주입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스며든 것이다.

삶을 규정하는 것은 몸과 의식이라고 할 때, 만약 몸이 건강하지 않다면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몸 자체가 알려준다. 그러나 의식은 절대 그렇지 않다. 자기 처지를 배반하더라도 의식을 끊임없이 고집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자기 처지를 배반하더라도 그 의식을 끊임없이 고집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내 몸의 주인은 나이지만, 내 의식은 자라는 사이에 누군가 내 의식을 끊임없이 지배할 위험성이 있다. 의식세계는 사회가 온통 범잡해 있다.

한 사회의 의식이라는 것은 지배계급의 것이다. 요구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주체적 의식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하는 바라는 것이 태어날 때는 당연히 ‘無(무)’였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형체를 갖게 되나. 삶의 궤적에 따라서 환경에 조우하고 선택하는 바에 따라서 결정된다. 한국사회의 교육과정이란 개인의 의식과정을 제압해버렸다.

 

<홍세화 씨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 주요 매체 등이 만들어 놓은 '자기의식의 배반'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의식화'되어 있던 사고의 틀을 벗고 '탈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람을 설득하기란 정말 어렵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단지 고집에 머무른다면 설득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때 ‘고집’에 ‘합리화’가 더해진다.

누군가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오히려 ‘합리화의 동물’에 가까운 것 같다.

믿던 바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한겨레를 보던 분이 다른 아파트단지로 이사하면 몰상식한 신문으로 바꾸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경품 등이 화려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 분은 미안한 마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겨레의 논조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한번 형성한 의식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마주앉은 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을 향해) 앞에 앉아 계신 선생님께 질문을 드린다.

선생님은 교장, 교감선생님이 손톱만큼이라도 변할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럼 그 옆에 앉은 학생에게 똑같이 질문할 수 있다.

학생은 선생님이 손톱만큼이라도 변할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사회문화의 기본적인 성숙 없이, 구원, 믿음이라는 것은 철저히 거짓

 

자기의식의 배반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폭넓은 독서를 통해 구축한다.

2. 열린 토론을 통해 구축한다.

3. 직접 견문(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구축한다.

4. 도를 닦아서 구축할 수 있다.

 

위의 것을 조합해야만 의식의 배반을 극복할 수 있다. 책은 세계와 만나는 창이다. 책의 저자들은 어떤 환경에 처했고 어떤 인생을 선택했나. 교육과정이 책읽기를 거의 멀리 하게 하고 있다. (서양의 경우) 독서, 토론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토대인 것에 비해서 우리는 철저히 주변적이다. 사회문화의 기본적인 성숙 없이, 구원, 믿음이라는 것은 철저히 거짓이다.

지금 여기 오신 분들이 대한민국 일반계층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오기까지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국가권력이나 대중매체, 학교교육을 뚫고 자유인의 사고에 자극을 받았을 수 있다. 대학에서 선배를 잘못 만났거나(웃음) 학교구조를 한번 세심히 살펴 보라. 근대식 학교라고 하지만 일제시대의 잔재에 불과하다. 군국주의 일본의 한국 식민화 일찍부터 정형화되었다. 군사학교가 전범인 것이다. 운동장은 연병장, 구령대는 사열대, 수위실은 위병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결국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민주화시킬 것인가. 교사모임, 학생회, 교과서를 어떻게 민중/민주화시킬 것인가. 교장이라는 국가주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다음은 방청객과의 문답

전 학년이 80점에서 한두 점 올리려고 노력하는 이 답답한 구조

 

40대 독자 권인숙 씨(한겨레 신문 독자) = 대안이 뭔지 막막하다. 아이들의 엄마이다. 중2 여자애가 12시 반에 온다. 아이들이 그렇게 하니까 자기도 그런단다. 대안학교 보내기도 어려운데 출구가 안 보인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탁한다. 어려운 해법 말고.

 

- 정말 어렵다. 사회 총체적인 문제가 녹아 있다. 단초 같은 것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청춘시대 온통 억압되어 있어서, 그것이 폭발하면 겉잡을 수 없이 나온다. 입시폐지 대학 평준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트라이엥글. 온 세상이 전쟁을 벌이는 구조에서 모두 개인적인 해법을 찾아서 헤매고 있다. 개별적인 해법은 어차피 없다. 굳이 개인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도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늠름한 삶을 살아가고 가치관이 정립되고, 이를 자식에게 전수할 때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게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프랑스처럼 뛰쳐나올 가능성이 있겠느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있을 거라고 믿고. 기대를 하고 있다. 억압의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서열화된 대학 시스템은 대표적인 우민화 정책이다. 학교, 선생님, 학부모 모두에게 억압이다. 단편적인 지식 암기다. 단순화 강조. 이는 세상을 보는 눈을 가리고 만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적 위치를 알지 못하게 하는 지배권력, 줄세우기 쉽게 만드는 지배구조. 아주 좁은 공간에 갇혀 좁은 내용으로 평가하는 것이 4지 선다의 특징이다.

70점, 80점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몇등이냐의 가치는 교육을 왜곡시킬 뿐이다. 전 학년이 80점에서 한두 점 올리려고 노력하는 이 구조를 보면 답답하다. 모든 학생이 엄청난 공부를 하지만 대학 가면 다 잊어버리는 구조를 보면 더 답답하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권인숙 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자식이 12시 반에 들어오면서 친구들을 따라가려면 별 도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황규선 씨 질문(인천 삼산고 국어교사) = 현실이해 명쾌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짱돌 들고 바리케이트를 쳐라! 는 명쾌하지만 그렇도록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경제학으로 설명이 되나. 막막한 벌판에 선 느낌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어떻게 만나고 20대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성찰이 빠를까? 짱돌이 빠를까? 짱돌드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혼란스럽다.

 

- 고등학교 과정 속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교육이 너무 없다. 너무 모르는 10대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한국 젊은이는 사적 관계는 영악하지만, 사회/공적 관계에서는 맹탕이다. 외국, 특히 유럽의 젊은이들은 사적 관계에서는 순진하지만, 사회/공적 관계에서는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에 프랑스 학생들이 나섰다. 그것은 시민권/사회권/노동권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고등학교 필수 교육과정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우선 알게 해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명제를 외우기만 하는 수준이 우리나라의 교육이다. 사회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주체적 자아’로서 깨닫는 것이며, 주체적 자아가 자신의 사회적 가치와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영어단어만 암기시키는 것만으로는 영어를 할 수 없다.

서열화된 구조 속에서 학생들의 등급을 매겨야 하는 상황이 선생님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선생님들 어깨 무겁다.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선배도 되어야 하고 동지도 되어야 한다. 

 

88만원 세대 청년 = 88만원 세대 중에서 뭉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거나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우리가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20대는 기대를 안 하고 오히려 10대에게 기대를 한다.

20대는 집단적인 힘으로 할 수 있는 토대가 없다. 사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당시 386세대와 유신세대는 20대였다. 당시 20대는 정치적 억압 상황에 처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해야 했다. 지금은 가정 꾸미고 아기 낳고 정치적 동물의 성격이 죽고 경제적 동물의 성격만 남고 말았다. 20대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정치적 억압상황이 없고, 억압의 경험이 없는데, 과연 어떤 정치적 반응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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