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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님의 페이퍼를 읽고,
아니 읽기도 훨씬 전에~
자꾸 슬픈 마음이 들고,
거기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겹겹이 상처를 받아서
이 글을 씁니다.
먼댓글로 쓰려는 데 안 되더군요.
제가 갑자기 바람구두 님을 붙잡고 울고만 싶은 것은
12월 19일이라는 선거날,
아직 뚜껑도 열어보지 않은 이 아침에
두 가지 비교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모 대통령이 끌고갈(사실상 '해집어놓을') 5년의 파편을 상상하는 것이고
더불어 5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요식행위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더 이상 슬프지 않습니다.
눈을 뜨면 이것에 대해서 접하기 때문에
슬픔에 면역이 많이 됐습니다.
한미FTA를 하고 노동자들이 거리를 내몰리다가
피바람이 내 목까지 온다고 해도
나는 그럭저럭 이에 대한 슬픔을 맛봤습니다.
제가 다른 상황에 비해서 슬프지 않은 이유는
면역도 면역이지만,
이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있거나 또는 이 현상이 다른 상황에 파생되는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다른 상황의 그림자에 불과한 모습입니다. '영원히'이라는 것은 사실 다른 문단에 있는 부사를 여기다가 옮겨왔을 뿐이니, 바람구두 님은 '영원히'의 그림자를 보신 겁니다.
제가 슬퍼하는 두 번째 문제는 사소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여럿이 오늘 즐겁게 타지에 있거나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즐겁게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를 겹겹이 접하면서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5년 후에도 이날을 잡아서 즐겁게 여행을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투표를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고, 그렇게 죽을 것입니다. 영원히
저는 그를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을 생각도 없습니다.
호주 같은 나라처럼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처벌하는 법률 같은 것도 우리나라에는 없을 뿐더러, 그 법률을 설사 우리나라에 시행한다고 해도 그 법률은 호주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민이 동의한 호주의 법률을 우리나라에 적용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죠.
내가 지식인들에게 원망스러운 점은 이 문제를 환기시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식인의 많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는 요지는 투표를 하지 않게 할 지언정, 투표하는 행위를 돌아다보게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독려하는 글에서도 투표를 해야 한다는 당위적 선언만 있지 투표를 즐겁게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은 핵심을 잘못 잡은 상황 아닐까요.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현재 만연해 있는 '즐겁게 투표 회피하기' 문제에 대한 진단과 투표를 하는 행위에 대한 논의의 과정을 거쳐서 결과적으로 언급할 내용이지만, 앞의 내용들은 전부 뺀 채 '투표합시다!', '자신의 권리를 찾읍시다!'라는 말만 한다면 그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서 지식인들조차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도 이해는 갑니다만, 그것은 지식인들의 문제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행동은 유권자가 하는 것이고, 지식인은 유권자에게 자극을 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이며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실정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는 것이 대답일까요? 나는 좀더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너무 식견이 얕아서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글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면(사실 저는 구면)에 뜬금없이 이렇게 요청을 하게 됩니다. '즐겁게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가 문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만약 그것이 문제대상이 된다면 그것을 진지하게 논의한 글을 볼 수 있는지. 이것이 제 질문의 요지입니다.
화를 내며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치상황이 달라지면 투표장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즐겁게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치상황이 달라지더라도 투표장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죽을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정치상황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중간에 그것이 고착화되게 만든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혐의가 듭니다.
저는 저에게 할당된 투표소로 가면서 내내 즐겁게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 그리고 이 문제가 분명히 울면서 투표소로 달려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테니까요.
두서없이 긴 편지글을 쓰게 돼서 실례했습니다. 바람구두 님의 최근 글들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의 글을 보면서 나의 대화상대로 인식하게 되어 말을 건넵니다. 답답한 이 마음 어디서 달래지 못해 바람구두 님에게 울면서 달려나간 것이니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