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짐이 크면 큰만큼 다시 돌아오는 기울기도 크다.

 

 


이렇게 오만한 정권-인수위는 처음 봤다
[데스크 칼럼-김당 정치부장] 정부조직 개편안, 소포 배달하듯 예비야당에 전달

김당 (dangk)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과제 1차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의 오만과 독선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87년 헌정체제 이후 직선으로 뽑은 역대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처럼 오만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런 오만은 군부독재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16일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18부 4처를 13부 2처로 축소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현재 18개 부에서 통일·정보통신·과학기술·해양수산·여성가족부의 5개 부를 폐지하고, 4처 중 기획예산처와 국정홍보처를 각각 재정경제부와 문화관광부로 통폐합시키는 것이 골자다.

 

인수위는 이에 앞서 김형오 부위원장을 한나라당에 보내 강재섭 대표에게 정부조직 개편안을 설명하고, 당 차원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대통합민주신당 등 주요 정당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명박식 속전속결'의 부작용

 

한나라당은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 21∼25일 국회 행자위·법사위 처리 ▲ 28일 본회의 처리 ▲ 29일 국무회의 의결 ▲ 30일 공포의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고 한다. 건설회사 CEO 출신다운 이른바 ‘이명박식 속전속결’이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좋은 정부조직 개편안이더라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이명박 당선인이 총리와 장관을 인선하고 또 국회에서 청문회를 통과해야 이들을 임명할 수 있다. 그런 통과의례와 절차는 한나라당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

 

지난 98년 당시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김종필씨를 국회에서 인준해 주지 않아 6개월 동안 '총리서리 체제'로 국정을 절름거리게 한 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나라당은 지난 10년 동안 장상·장대환 총리 지명자와 전효숙 헌재소장, 윤성식 감사원장, 이헌재·김병준 부총리, 강동석·오장섭·주양자 장관, 홍석현 주미대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등 많은 인사들을 위장전입 및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인준을 거부했거나 현직에서 낙마시켰다.

 

국민은 이처럼 한나라당이 지난 정권에서 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한나라당 정권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처리하려는 행태를 보면, 이들이 과연 개편안을 제때에 처리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개편안의 내용은 물론 그 형식조차도 오만과 독선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부처를 13부 2처로 축소하는 개편안을 발표하기 1시간 전인, 16일 오후 1시 국회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실에서 최재성 원내대변인이 인수위 행정실 이윤호 행정관으로부터 정부조직개편안을 전달받고 있다. 인수위는 각 정당에 별도의 추가설명등을 하지 않고 개편안만을 일괄 전달했다.
ⓒ 이종호
정부조직개편

 

인수위 행정실 직원이 소포 배달하듯 전달한 정부조직 개편안

 

인수위는 1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식 발표하기 1시간 전에야 개편안을 인수위 행정실 실무자를 보내 통합신당 원내대표실에 전달했다. 아무런 배경설명도 없이, 단지 소포 배달하듯 책자를 전달했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최재성 통합신당 원내대변인이 "이럴 거면 퀵서비스로 하는 것이 빨랐을 것"이라며 "왜 발품을 팔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가 예비 야당을 무시하는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다른 대통령 당선인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2003년 1월 2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한나라당사와 민주당사를 방문해 고건 국무총리 지명 사실을 통보하고 국회 인준에 협조를 구했다. 당시 노 당선인은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에게 "한나라당과 청문회의 정서, 분위기를 고려해서 (고건 총리 지명을) 했다"면서 "저도 색깔이 선명한데 총리까지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고 총리 인준 협조를 부탁했다.

 

이에 서 대표는 이날 오후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노 당선인을 만나보니 앞으로 대화를 통해 여야 상생정치를 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 의원들에게 회동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 한나라당이 이런 오만을 부리는 것은 영락없이 '올챙이 시절 모르는 개구리'의 모습이다.

 

불과 이틀 전에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당선인은 대야 관계 설정 및 정국 대처방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가의 미래와 국익 극대화를 위해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과도 긴밀히 협조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 것"이라며 "야당이 4월 이후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야당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여야가 협력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아직 여당도 제1당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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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보좌역을 맡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인수위 사무실에 들어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정두언

사실 한나라당은 아직 여당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2월 25일 0시 전까지는 야당이다. 원내 다수당은 더더욱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석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4?9 총선 전까지, 아니 6월 18대 국회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한나라당은 통합신당의 협조가 절실한 원내 제2당이다. 

 

당선인이 '협력 모델'을 얘기해 놓고 인수위는 실무자를 시켜 정부조직 개편안을 툭 던져놓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처사다. 이처럼 어제 한 말과 오늘 행동이 다르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그럴 조짐이 이명박 당선인의 이른바 실세니 측근이니 하는 사람들의 행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보좌역인 정두언 의원은 지난 1일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내 지역구인) 서울 서대문을은 한나라당이 의원이 당선된 게 내가 처음일 정도로 호남 성향이 강한 곳"이라며 "4월 총선에서 센 사람(거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동영·이회창 후보 정도는 돼야지"라고 호기를 보였다.

 

이 당선인의 핵심 실세로 통하는 그는 11일에도 "DY(정동영) 나오라고 했더니 도망갔더라. 그것을 두고 우리 동네 사람들이 '오만하다'고 하는 데 그게 무슨 오만이냐"면서 "내가 강남에 나간다고 하면 그게 오만한 거지, 서대문에서 DY랑 붙겠다는데 그것보다 더 겸손한 게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명박 몸체와 따로 노는 '머리'(정두언)와 '입'(이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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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인수위원회 대변인이 7일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인수위원회

그뿐이 아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15일 "인수위 대변인을 맡으면서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만큼 어려운 지역에 나가 한 석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봉갑 출마를 결심했다"면서 통합신당의 재야 간판격인 김근태 의원(3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 대변인은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 이 당선인의 대선후보 경선 때 캠프에 합류해 공보팀장을 맡았다.

 

그는 "이 당선인의 재가를 받은 상태가 아니며 최종 결정은 이 당선인의 뜻에 따르겠다"고 전제를 달았다곤 하나, 공천은 공천심사위에서 하는 것이지 이명박 당선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박근혜 전 대표 진영으로부터 "한나라당이 이명박 사당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당선인 보좌역과 대변인은 말 그대로 이명박의 '머리'이자 '입'이다. 이쯤 되면 이명박 당선인의 어제 말과 오늘 행동이 다를 뿐 아니라, 한 몸의 머리와 입도 당선인의 몸체와 따로 노는 셈이다.

 

대선전의 적장(敵將)인 정동영은 비록 '패장'이지만 617만표를 받은 제1당의 대통령후보다. 또 아무리 이념의 시대가 지났다고 해도 김근태는 우리나라 민주화세력의 간판이다. 이명박의 머리와 입이 그의 재가를 받은 상태가 아니라면서도 적장에게 '한판 붙자'고 하는 것은 정치 도의를 벗어난 안하무인의 결례다.

 

이 대변인은 지난해 논설위원 시절 김근태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직후(6월 13일)에 쓴 ‘김근태의 2007년 여름’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를 '시대착오적' 인물로 묘사하며 이렇게 썼다.

 

"그는 20년 전 6월 민주항쟁 때 감옥에 있었다. 그때와 2007년 여름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직도 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어쩌면 이때부터 김근태와 맞짱을 붙으려고 칼을 갈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명박 당선인의 측근들이 입신과 양명의 제물로 삼을 만큼 허튼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아직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동지들이 주민등록지 이전이라도 해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정치인이다. 이런 오만과 독선이 계속되면 나라도 거주지를 옮겨 그에게 투표할 참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한없이 겸손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래는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의 과거와 통합신당의 오늘에 다름 아니다. 민심은 늘 무섭게 변한다.


2008.01.17 09:15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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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1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고보자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알 날이 오겠죠..^^
 
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경제민주화를 생각하며>1.한국경제 새판짜기 - 경제민주화의 조건


다시 찾은 '경제 화두'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서 귓가에 계속 맴도는 단어는 단 하나뿐이다. 바로 '경제'이다. '경제'는 모든 공약과 의제들을 집어삼켜 버렸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경제라는 단어를 끼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이고 내게 무슨 의미이고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까닭은 '경제'가 사용되었던 문맥에 그대로 나타난다. '경제' 화두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명박 당선자는 '경제'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최소한 2가지 이상 빠뜨렸다. 그는 오로지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는 정체 모를 수사만 반복하였다. 경제를 살린다면 반드시 경제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며 역시 '경제'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저마다 이전 정권의 실책을 극복한다고 선언했지만 실패에 대한 백서도 없고 실패의 원인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면 반드시 '경제정책 실패'를 기록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어이없이 때를 넘긴 '경제 화두'가 최근 몇몇 소장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시장만능주의와 경제주체의 무한대립을 합리적인 정부의 법 집행과 상생의 경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요지의 책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와 함께, 글로벌 선진국의 자기 모순적인 행태를 고발한 『나쁜 사마리아인』을 들고 나타났다. 김상조, 유종일, 홍종학, 곽정수는 아래로부터의 경제민주주의를 일으킴으로써 재벌 위주의 왜곡된 경제 시스템을 선순환시킬 수 있다는 해법을 내놓은 『한국경제 새판짜기』라는 책을 내놓았다. 저마다 한국경제의 문제에 대해서 대안을 내놓고 있으면서 서로 논쟁적인 경제사회서를 하나씩 훑어보며 '경제 민주주의'를 위한 방향을 잡아보고자 한다.


경제민주주의의 조건과 이를 가로막는 한계상황

『한국경제 새판짜기』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주요 경제정책을 입안한 경제학자와 경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경제학자, 대기업 전문기사 들이 좌담의 형식을 통해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점을 구체적인 실증 사례를 버무렸다. 책의 내용이 좌담의 정리인지라 논의가 중구난방이 되기도 하고 이전의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비교적 현장성을 갖추고 문제의 구조를 정조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의 논의가 복잡하고 반복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한국의 경제정책이 그만큼 즉흥적이고 일관되지 못하며 환부가 깊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이 '경제민주주의'를 위해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보았다.

1. 공정하고 합리적 규칙을 제정하고 집행함으로써 경제시스템을 수행하는 경제주체들이 공평한 경쟁과 협력이라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도록 한다. 간단히 말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면 부당 이득 이상의 제재를 받는다'는 관례가 일상화되어야 한다.(43쪽)
2. 경쟁 낙오자에 대한 보호와 재교육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이직, 전업의 환경을 만들고 지속적인 교육과 복지를 통해 노동효율성과 기업역량,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180쪽)

3. 국가의 공공성을 높이고 동시에 정책의 자의성을 통제하고 기업의 시장 횡포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침묵했던 수동적 대중들과 소비자, 시민들이 주축이 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 (340~343족)
4. 개방의 압력이 날로 높아지는 현재의 상황일수록 개혁과 개방을 혼동하지 않고 개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부역량을 키우는 개혁정책을 일관되고 끈기 있게 추진해나가야 하며, 몇몇 이익집단이나 기득권의 이익을 변호하는 개방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개방을 이뤄내야 한다. (252쪽)
5. 경제가 잘된다는 것은 경제지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인 만큼 모든 경제주체들이 경제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때 정책당국과 기업은 물론 언론의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347쪽)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경제민주화를 위한 위의 조건의 실현 가능성은 한마디로 '요원하다'. 실제로 『한국경제 새판짜기』의 분량 대부분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조건'보다는 '경제민주화를 방해하는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경제문제에 대한 거대담론이나 낙관론이 판을 치는 현 상황에서 이들의 문제의식은 소중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패의 백서'를 게을리 하였기 때문에 해법에 실패했듯, 경제민주화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는 과정을 게을리 한다면 백약이 무효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현상황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한계상황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대한민국의 현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조건을 앞서 제시했던 '경제민주화를 위한 조건'과 대비되도록 재구성해 보았다.

#1. 재벌과 기득권, 이익집단의 시장 장악과 법제도 농락이 극에 달했으며, 국가는 현 상황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거나 오히려 현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 (74~87쪽) 단기성과를 위해 개혁과제를 팽개치는 직무유기의 대물림도 심각한 실정이다.(337~339쪽)
#2. 대한민국이 극도로 저조한 노조가입률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은 노동조합에 '전투적'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덧붙여 노동조합행위 자체를 범죄시하는 풍토를 만들었으며 직원을 해고시켜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것을 경쟁력으로 알고 있으며 복지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이상한 상황을 만들면서 기득권을 위한 '감세'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있다. (124쪽)
#3. '공공성'을 더 이상 가치 있게 여기지 않으며, 대기업/기득권과 함께 짬짜미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바로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관료'이다. (269~270쪽)

#4. 현재 당국은 '개방'과 '개혁'을 구분할 줄 모른다. 때문에 외부의 메가톤급 '개방'을 통해서 '개혁'을 이루려는 허무맹랑한 착상을 매우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 개방은 양극화나 경제 위축 등 국가의 고질병을 모두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자 구원의 신으로 여겨진다. (249~260쪽)
#5. 관료와 대기업과 언론은 삼위일체가 되었다. 당국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불합리한 기업 구조를 관용하였고 언론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언론의 못된 점은 대기업의 나팔수가 되어 일신을 영위하는 천민자본의 대변인이 되었거나,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천박함으로 당국이나 기업이 불러주는 대로 읊을 뿐, 문제제기나 비판기능이 상당 부분 퇴화버렸다는 데 있다. (312~314쪽) 국민들은 국가기관을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보다 신뢰하지 않는다.



위에서 거론한 문제점은 논조나 지면 비중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책에서 언급된 내용을 토대로 필자가 윤색(潤色)한 것임을 밝힌다. 특히 책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재벌구조의 문제점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즉 소수 대기업 시장장악이 심각하다는 점(74쪽) 재벌기업의 성장이 내수로 연결되지 않은 점(76쪽), 재벌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령탑인 구조조정본부가 법적 실체와 책임 없이 운용되고 있는 기형적인 상황(81쪽), 하도급 횡포와 자사 계열사를 통한 회사기회 편취(계열사 몰아주기)로 건강한 시장경쟁구조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82쪽), 중소기업의 90% 정도가 외부 경영자문, 법률자문 등을 받아보지 못할 정도로 기업활동에 대한 서비스가 대기업 위주로 치우친 점(87쪽)을 주요 문제로 거론했다. 특히 2,200만~2,300만개의 국내 일자리 중에서 500인 이상 대기업, 금융, 공공기관의 일자리는 130만~140만 정도로 재벌이 우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음이 명백한 데도 역할에 비해서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125쪽)
 

고정관념, 편견을 버리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경제관

기득권은 시민, 소비자에게 '무지'를 강요한다. 시민이 똑똑하면 돈을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돈을 번다'는 것은 건강한 기업활동과 경쟁을 통해서 얻어낸 정당한 이익과 상관 없이 건강하지 못한 상황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말한다. 이는 가까이는 우민화정책을 떠올리게 만들고, 멀리는 옛날 백성을 보자기에 싼 아이처럼 부드럽게 다스려야 한다는 양반들의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조상들이야 국가의 옳은 방향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기득권이 만들어내는 무지의 카르텔에는 '사익(私益)'이라는 지상 과제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기업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경제문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대부분 거기서 비롯된다. 

이 책은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한 여러 가지 지적을 해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반드시 환기해야만 하는 편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소개했듯 재벌이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정도 이상으로 고평가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중론이다. 특히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 대기업은 미미한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업집단에 대한 양면성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제활동의 중심주체는 개별기업에서 기업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다. 기업집단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너지 효과와 위험 공유 효과이다. 10개의 기업 중 1~2개의 기업에서 선전을 해주면 기업 전체가 망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 공유는 위험전가의 역기능을 피할 수 없다. IMF라는 국가 위기 상황은 한보그룹이나 대우그룹 등 기업집단의 연쇄부도를 계기로 폭발되었다는 점은 이를 설명해 준다. 

먹튀자본에 대한 민족적 반감도 환기할 필요가 있는 편견으로 꼽혔다. 책에는 두 가지 사례, 즉 SK-소비린과 KT&G-칼 아이칸이 소개되었는데, SK는 불법적인 분식회계로 적정가치 이하로 폭락했으며 이를 소버린이라는 자본이 인수한 것이다. 당시 SK의 분식회계 수준은 해당 기업회장도 모를 만큼 SK는 불안정성이 극도의 상황이었다. 소버린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결정한 만큼 그들이 가져간 과실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반감을 가지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자본이란 이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생리가 있기 때문이다. 

KT&G는 잠재적 가치도 평가받지 못하는 우량 기업이었는데 이 가치를 칼 아이칸이 확인하고 투자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소버린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의 투자지수는 800~900포인트인 것으로 추산되는데 오히려 국내 기관투자가들보다 외국인 자본이 오래 머무른다는 점에서 '단기 자본/핫머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 저자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국내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와 금융구조의 문제점이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의 본질적인 내용"(280쪽)인 셈이다.

외국자본의 선진금융기법에 대한 환상 역시 환기해야 할 편견이다. 론스타 같은 사모 펀드는 은행의 경영경험도 없고 경영할 의지도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선진금융기법을 기대할 수 있느냐고 저자들은 반문했다.

금산분리에 대한 편견 역시 중대한 문제다. 저자들은 칠레의 예를 들었는데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 버렸는데, 그 결과 은행은 기업들의 사금고로 전락하였고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져 내려 결국 가장 극단적으로 자유 시장경제를 했던 나라에서 결과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릴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일어났다.

은행은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사전심사를 하고 빌려준 후에도 경영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데,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면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면서 자기관리의 기회를 잃게 된다. 산업이 금융을 지배하는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저자들은 경고했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는 읽기도 쉽지 않고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복잡한 경제 문제를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반문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그 동안 정치와 이념에 과잉돼 있어서 '경제동물'의 특징을 잊어버린 데 있다고 본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경제주체가 되는 것이다. 결혼, 가족계획, 보율, 교육 등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비용과 경제활동이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경제주체들을 길게 늘어뜨리면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된다. 그 중에서도 대기업이나 국가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기업과 국가가 주요한 경제주체임에는 틀림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고평가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민'이라는 경제주체를 이들과 동등하게 평가해야만 경제시스템이 안착될 수 있다. 김상조 교수의 말에 따라 "경제시스템이란 기업지배구조, 금융제도, 하도급제도, 시장 경쟁구조, 조세시스템, 노사관계, 사회복지제도 등이 합쳐져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여기서 시민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있는가.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과세국민으로서 사업파트너로서 사회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왜곡된 경제구도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시민은 마땅히 경제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자기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이 주제는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살리기'와 뜨거운 논쟁을 벌여야 했으나 그런 상황을 기대할 수 없었다. 늦었지만 이 논쟁이 한국경제가 발전방향을 잡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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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를 정리하고,
빌린 그릇이며 물어야 할 것들을 다 해결하고
마당에 묻은 물떼를 지우고,
사십구재 때문에 절에도 다녀오고
어머니 귀 얼얼하다고 해서
손잡고 이비인후과에도 몇 번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점심 먹고 병원 갔다 왔냐고 여쭈는데.
한말씀 하십니다.

"승주나무야~
직접 와서 부조한 사람이든, 전화로 한 사람이든, 사소하게 말 한마디라도 건넨 사람이든
꼭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
정석대로 하면 부조를 한 만큼
답례품을 돌리는 게 원칙이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꼭 전화해서 답례를 해야 하는 기야"

그러고 보니 옛날에 어머니에 대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국민학교 때 소풍 가서 사진을 찍었었죠.

"승주나무야~
네 돈 주고 필름을 찾을 때는 애들에게 필름값을 받지 말고
친구가 자기 돈으로 필름을 찾을 때는
반드시 네 몫으로 필름값을 주도록 해라."

그 어릴 적에도 '수지타산'이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네"하고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여러 모로 현명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매우 신비롭고 특이한 의미인데,
이런 것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이름하야 "어머니의 모순"이라고 할까요^^

지금 걸린 일들을 후딱 처리하고 짬이 좀 남으면
틈틈이 찾아뵙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전화기의 온도가 식지 않도록 따뜻한 위로전화와 위로문자를 주신 것하며, 
블로그 방명록에 무수히 남기신 위로의 말 하며,
메일로 보내주신 위로 하며,
승주나무와 관련된 글에 남긴 댓글들 하며,
제가 남긴 글에 대한 댓글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IT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를 경험한 것도 참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시키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일일이 전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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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5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5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8-01-1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인생관이 정말 훌륭하시네요. 멋진 어머님!! 그래서 승주나무님이 멋진건가요? ^^
어머님이나 승주나무님이나 힘내세요. 이렇게 멋진 아내와 아드님을 두셧으니 아버님의 한평생이 후회없을만큼 행복하셨을거예요.

2008-01-16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8-01-1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모순이죠. ^^
 





천민자본, 악질자본의 전형인 이젠텍을 아시나요?
2006년 6월 20일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기다 못한 직원들은 회사에 임금인상 대신
안전화, 작업 소모품 등 소박한 안전 도구를 요구했고,
제발 산재당하면 쫓아내는 짓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회사는 온갖 폭력과 폭언으로 이들을 묵살하려고 하였고,
그렇게 싸움을 시작한 지 어언 600일이 다 되어 가는군요.
지난 8월 24일 고등법원이 이젠텍 회사측이 낸 가처분 이의를 기각했지만 지난 9월 4일 회사측이 이에 또다시 불복, 상고함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까지 가게 되었지요.
그 대법원의 판결이 올해 1월 10일에 내려졌네요. 이젠텍지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지회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피해가 막대했습니다.
한 어머니 회원은 파업 기간 동안 대학생 자식에게는 한 달에 4만원, 고등학생 자식에게는 1만원의 용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216010.html

위는 기륭전자와 이젠텍의 사정에 관한 홍세화 위원의 칼럼이군요

사진은 시사IN의 창간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냈던 분의 한 꼭지 글을 읽고
저는 1년간의 싸움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나의 1년 싸움은 너무 가벼웠던 것입니다.

http://blog.daum.net/lycurgus/12615924

그 소회를 담아낸 글입니다.
그 분이 댓글을 남겨 주셔서 우리는 또 기막힌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약자들이 많지만,
약자 중에서도 등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사IN은 단연 약자 중에서도 최강이구요.
그 다음은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겠구요.
그 언저리에 정규직 귀족 노조들이 돌아다니고 있겠지요.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자들은 바로 이젠텍, 동희오토, 코레노, 승림분회, 대우자판, 르네상스 호텔, 하이닉스, 기룽전자, 콜트 악기, 콜텍, 테트라팩, 동방산업 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등급에도 오르지 못한 분들이 또 무수히 있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분이 대법원 판결에 관한 보도자료를 준비중이라고 하시니, 
이참에 '약자 중의 약자'에 대해서 떠오르는 글을 질서 없이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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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이제는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정도는 지킬 수 있을정도로 우리 나라 경제 규모 되지 않나요? 왜 이런 말도안되는 야만이 계속 확대되는건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마노아 2008-01-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길이 너무도 멉니다. 먼저 지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사 고맙습니다.
 

 
   
 

M군! 하늘을 꾸짖고 땅을 눈흘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M군 M군! 어머니는 돌아가시었네. 세상에 나오신 지 오십년에 밝은 날 하루를 보시지 못하시고 이렇다는 불평의 말씀 한 마디도 못하여 보시고 그대로 이역(異域)의 차디찬 흙 속에 길이 잠드시고 말았네. 불효한 이 자식을 원망하시며 쓰라렸던 이 세상을 저주하시며 어머님의 외롭고 불쌍한 영혼은 얼마나 이 이역 하늘에 수없이 방황하실 것인가. 죽음! 과연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나 사람들은 얼마나 그 죽음을 무서워하며 얼마나 어렵게 알고 있나. 그러나 그 무서운 죽음, 그 어려운 죽음이라는 것이 마침내는 그렇게도 우습고 그렇게도 하잘것 없이 쉬운 것이더란 말인가……
오십년 동안 기구한 목숨을 이어오시던 어머님이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풀잎에 맺혔던 이슬과 같이 사라지고 마시는 것을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그다지도 허무하더라는 것을 느낄 대로 느꼈네.


 - 이상(李箱) 소설 「十二月 十二日」

 
   

 

 

'소부니모들'이라 불리는 곳에 처한 가족공동묘지는 오름과 봉우리가 바라보이고 일출봉이 베개처럼 뉘인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그날은 봄날처럼 햇살이 비추고 바람도 아버님의 덕성처럼 잦아들었습니다.
매서운 겨울 바람으로 유명한 성산포 상가(喪家)에는 제기를 차도 될 만큼 한가한 미풍이 머물러 상주(喪主)는 몹시도 수월하게 큰일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혹 큰일이 있는 날 날씨가 궂으면 제주에서는 "상주가 복이 없어서..."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돌곤 하는데, 당신은 그 일까지 염두에 두고 가셨겠지요. 당신의 어머님이 백(百)에서 터럭 하나가 모자란 나이에 돌아가신 날(백수(白壽) : 99세)에도 시끄럽던 비바람이 몸 뉘실 때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지요.

 

살아 생전에 이 아들은 뜻이 꺾인 괴로움을 지우려는 아버님의 몸부림을 오래도록 보아야 했습니다. 물론 잡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거나 좋지도 않은 술과 담배를 몸에 붙이고 살아온 세월에 가족들이 몹시도 원망을 하였겠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당신을 좌절시킨 것이 무엇인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짧게는 제 유년에, 병마에서 저를 건져내며 가세가 기울어진 즈음일까요. 결국 동네에서 "살릴 아이는 죽고, 죽을 아이는 살렸다"는 소리를 기어코 듣고 만 제가 이렇게 남아 당신의 유훈(遺訓)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길게는 창창하던 젊은 시절 일본 밀항에 실패하고 3~4년을 허송세월로 버리고 모아둔 자산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일까요.

아들은 모릅니다. 아버지가 끝내 일어나실 수 없도록 옥죄었던 그 악연을. 그것이 악연이라면 반드시 나에게도 찾아올 테니, 저는 아버지에게 이 악연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염치 불구하고 전합니다.

서울에서 벗들이 먼 길을 넘고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영전에 절을 하고 지친 저를 위로하고 갔습니다. 먼 길을 오지 못하는 남은 벗들의 뜻도 전하고 갔습니다. 그들에게서는 바쁜 일상의 내음이 배어왔습니다. 제가 일상으로 얼른 돌아오도록 재촉하는 내음이겠지요.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제주의 오래된 말이 있다지요. 사람의 마음이야 옷고름처럼 매고 풀고를 간단하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슬픔을 뒤로 하고 돌아갑니다. 그날 뿌리지 못한 눈물은 평생 흘리겠습니다. 사실 아직도 당신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임종의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셨다고, 안방의 따뜻한 구들에서 가셨다고 호상 중의 호상이라고 말들 하지만, 한창 달려갈 나이에 호상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끝내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자로 남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남기신 뜻은 제가 아버님 나이가 되더라도 깨닫지 못하겠지만, 아버님을 붙잡은 악연에 다시는 빠지는 일이 없도록 조신하겠습니다.
아버님 영전에 긴 절을 바칩니다.


※ 덧붙여
잘 알지 못하는 이웃의 불행을 따뜻하게 위로해주신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일일이 호명하여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옳은 일이나 좋은 기회를 기다려 감사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일상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마당 앞에서 찍은, 끝내 영정 앞에 모셔진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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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1-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당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그저 힘내시라는 말을 보태봅니다. 시간에 의해 자연스레 치유가 될 날이 올 테지요.

2008-01-14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