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블로그에서 <먼댓글> 기능이 복구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다.
원래 먼댓글 기능으로 녹취록을 올리려고 했는데,
그냥 페이퍼로 올려야겠다.
메일레터에 내 글이 소개된 게 재미있다.
사실 허락도 받지 않고 내 천성에 따라 철판 두꺼운 얼굴을 들이밀어
표시를 남기지 않으려다가 기자정신을 발휘해서 기록을 해둔 것인데,
알라딘은 야단치기는커녕 메일레터에 올려 주어서
넓은 아량을 보여줬다.
http://blog.aladin.co.kr/booknamu/1877170
위 링크는 오마이뉴스에 함께 올린 독자간담회에 관한 기사
<서경식, 김상봉 그들은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다>이며,
http://blog.aladin.co.kr/drumset/1875046
위 링크는 아프락사스님이 남겨주신 후기 <<서경식-김상봉 대담, <만남> 독자 간담회 후기>이다. 아프락사스는 나보다 월등히 많은 이웃들을 끌고다니기 때문에 이 글에도 어김없이 진지한 의견이나 장문의 대화(거의 페이퍼에 가까운)가 들어 있으며, 나보다 덜 딱딱하게 기록돼 있으니 역시 맛이 다를 것이다.
서경식-김상봉 독자간담회 녹취록
- 1월 17일 서경식, 1월 29일 서경식,김상봉
★ 아래의 녹취록은 2008년 1월 17일 종로 영풍문고에서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인사회)가 마련한 서경석 씨의 강연회와 1월 29일 홍대 앞 KT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마련한 서경석-김상봉 씨의 독자간담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맥과 논리가 엉켜 있을 수도 있다. 붉은 색 당구장 표시는 감상을 표시해둔 부분이다.
1. 1월 29일 홍대 앞 KT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서경식, 김상봉 독자간담회
사회 : 저자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짐. 강연 형식이 아니라 독자들의 질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토론과 대담이 이루어지도록 소규모로 개최하였다.
(30석 규모의 소규모 강연장, 뒤쪽에 서서 들은 관객도 한 20명은 돼 보였다.)
서경식
원래 인따넷에 익숙지 않다. 일본은 블로그에 거의 악의적인 것밖에 안 나와서 마음이 상했다. 대다수가 진지하게 책을 읽어주어 행복하다.
※ 책에서도 독자들의 의지에 큰 힘을 받고 있다고 회고했다. (디아스포라 기행)
우리나라의 독서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익명으로 나온 분들이라 당혹스럽지만 호기심이 난다.
※ 강연 내내 독자들이 더 들어왔다.
조선인에게 일어난 일들은 일본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인이라는 고도에서 외롭게 살면서 투병통신을 써왔다. 90년대 나의 서양미술사상 ‘레뷰’ 올라와서 다행히 김희진 씨 등 이 나라의 출판인 덕분에 10권 정도 번역이 되고 이렇게 독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져서 행복하다. 김상봉 선생 같은 시대의 아포리아에 맞서 싸우면서 생각하는 각도가 다를 만도 한데, 만날 만한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까닭은 출판 덕분이다.
언어습득 쉽지 않다. 번역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책을 이루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한 시간 정도 강연할 수 있는 수준. 중앙정보부나 경찰/검찰의 취조에 답할 만큼 한국어에 능숙한지는 아직 의문이다. (웃음)
작년 프레모 레비 몰후 20주년 기념 논문 기고
<도쿄와 서울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는다>
※ 서경식은 출판에 대해서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나치, 홀로코스트 대단히 많이 번역되었으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중요한 목표 하나가 <만남>이었다. 중심과 손님이 아니라 하나의 과제를 공유하면서 시원스럽게 들어가면서 이 나라 사람들과 논쟁도 하고 싶었다. 이제까지의 사유방식을 검증하고 싶다. 한국이라는 현장에서 나를 확인하고 싶다. 물론 일본도 현장이지만, 어디까지나 현장 밖이다. 현장에 거주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그것이 김상봉, 김희진이다. 그들은 나에게는 현장인이다.
<국민주의 비판>
일본 국민주의의 어제와 오늘이란 주제로 전남대 철학 세미나에서 강연을 했다. 이것은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좀 다르다. 외모상 민주주의와 유사하지만, 국민 아닌 사람은 끊임없이 배척하는 것이 국민주의이다. 일제 때 2등 국민. 국민으로 국가에게 인권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허구이다. 외국인 노동자, 병역거부자 들은 끊임없이 국민이 아닌 자로 배척당하고 있다.
※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과 연관해서 볼 것.
19세기 국민국가의 한계성을 확인하고 분단,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극복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문제성 투성이인 근대국가가 아니라 미래의 공동체라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급속히 일본의 잘못을 모방하며 따라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추락하고 있다. 제가 있을 동안 투병통신에 경고문을 썼었다. 식민지 지배, 군사독재도 견뎠는데, 일본을 따라가면 무슨 소용인가.
김상봉
함석헌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만나지도 못하면서 돌아다니는 나는 사도 바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분도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밤마다 울곤 한다.
만남은 대담의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 5.18 이후에 한 세대가 끝났다. 이는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료 씨알들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겨야겠다. 장밋빛 이야기 반복이 아니라, 냉철히 역사비판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희망을 찾아내려 한다.
코뮌주의 사전을 정독했다. 매우 많은 것을 배웠다. 68세대 당시의 파업 공장 등 처음 듣는 이야기 많았다. 그러나 우리 한국 현실이 직접 언급한 내용 없어서 아쉬웠다. 한국의 저자, 한국의 현실과 대결하려는 흔적이 없다. 공부는 딴 데 가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서경식 선생의 밖은 밖이 아니었고, 내가 있는 곳은 안이 안이 아닌 것처럼 서경식 선생의 밀집된 역사철학에 비하면 나는 오렌지에 불과하다.
서로 다른 결을 비교하면서 싸워왔던 역사를 돌이키며 무엇을 그려낼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독재국가를 무너뜨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과제였다면, 지금은 통일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프랑스공화국은 분할할 수 없는 모나드, 원자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분할불가능성에 존립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뿔뿔이 흩어질 수 없는 것 역시 우리의 운명이고, 만나야 하는 것이 과제였다.
서로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만나야 하는 전형이었다.
대담기간 내내 어려운 고비가 많았다. 통일국가 새로운 공동체의 원자적인 모델이라는 사명감으로 임했다.
역시 가장 큰 철학자는 플라톤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플라톤의 문체이다. 대화이므로 살아 펄쩍 뛰는 문체이다. 나도 문체실험을 여럿 시도했다. 편지, 강의 등 문체실험이 그것이다. 언어를 지키고 성숙시키는 것은 철학자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아름답게 깊게 명징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혼자 하는 대담이었다. 형식은 대화이나 타자들은 소크라테스의 거울에 지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도 역시 플라톤의 거울일 뿐인 일종의 모놀로그였다.
서경식 선생과의 만남은 플라톤의 대화문체처럼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 예측 불허이므로 대담 전과 대담 후의 저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질문 1
연령차가 있으신 것 같은데, 그 부분으로 걸리는 게 없었는지. 한국사회, 연령주의, 가부장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서경식
호칭, 경칭, 반말 등 제가 잘못 많이 했다.
김상봉 선생이 가장 높임말로 해서 그렇게 대응했다. 일본은 서로가 서로의 이름으로 한다.
‘야, 상봉!’ 하는 식이다.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게 어렵다.
그래도 내가 나이가 위라서 좀 나았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씀씀이 말이다. 사실 위계를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김상봉 선생은 김희진 씨에게도 김희진 선생님이라고 하더라. 이 점은 불편했다.
친하면 친할수록 애칭을 쓰게 되는데, 김상봉 선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웃음)
권위에 싸우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야, 상봉!’이라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 나는 아마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상봉
어렸을 적 높임말/반말 → 우리 사회의 미진한 걸림돌이다.
저는 교사 만날 기회가 많은데, 초중등 학교에서도 경어를 쓰는 게 제 입장이라고 말한다.
제자에게도 높임말을 쓴다. 학부 때는 군과 양으로 쓴다. 지도교수일 때도 높였다. 대학원에 올라오면 아무개 선생이라고 하는 식이다.
김희진 편집자도 예전에는 사제지간이었다. 사제지간을 빙자할 수도 있고, 권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민단체에서는 그런 모습을 자동적으로 보게 된다. 간사를 김형 이형 등으로 쓴다. 이런 점에서 예민한 편이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멀고 가까운 거랑 차이가 없다고 본다. 원래 제가 거친 사람이다. 사석에서 기분 좋으면 ‘형님’이라고 한다. 뒷골목 문화에 익숙하다. 수틀리면 거칠게 드잡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치받을 수 있는 뜻이기도 하다.
서경식 선생에게는 아직 ‘형님’이라고 하지 않는데, 오늘 잘하면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웃음)
※ 김상봉 교수의 마지막 말에 서경식 선생이 흠칫 놀란 눈치다.
서경식
나는 아내를 파트너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동반자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
파트너는 현재 연세대 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집에서 제게 코치를 하니까 자존심 상하더라.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문화 질서에 편입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공공저인 대화를 하면서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독자2
책을 쓰면서 소설을 쓰실 생각은 없는지. 프리모 주기율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서경식
평싱의 목표 중 하나가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어렵다.
소설 나름대로 시장을 의식해서 인기가 있다. 소설 하나의 우주는 허구로 구성되면서도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가족, 부모, 형 중심으로 다각적으로 그리고 싶다. 한국인이라는 장면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일본, 독일 등 20세기 역사 속에서 가족관계사를 그려보고 싶다. 소설쓰기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나 나름대로의 문학형식이다. 일본에는 사소설이라고 개인의 사생활을 주된 소재로 하는 작품이 있기는 한데, 미술작품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도 수필도 아닌 형식을 저 자신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자3
김지하 생명활동 민중신학 등에 관한 의견을 묻고 싶다.
김상봉
김지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아는 것만 가지고 말한다면 김지하는 한 시대다. 이것을 부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를 동의하거나 비판할 수도 있지만, 비판해야 할 지점조차도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김지하 자체를 완전히 타자화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5.16 시대는 완전히 김지하의 시대로 포개진다.
비판적 견해를 말한다면, 김지하의 민족주의적 경향성에 대해 대단히 우려, 그 길을 같이 갈 수 없다. 우리 민족 원형 찾는 지적인 작업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 유지하려 한다.
긍정적 견해는, 공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은 동학을 비롯한 우리 현대 사상에 대한 식견. 김지하 이전에는 근대 이전의 새로운 지적 작업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한 사람이 부족하였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다.
김지하의 글에는 한 페이지에 외국인 3명 이상 난무하는데, 머리 아프다. 그런데 동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입으로 말한다. 그래서 독보적이다. 예전에 김지하 선생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의 남의 아류가 되어 남 얘기를 하는 것을 저는 원치 않습니다. 선생님의 언어로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4
현재는 바쁜 세상에서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상황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실현하려면 자극이나 경험이 필요한데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사를 보면 재일조선인, 재중동포, 카레이스키 등 소외계층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제노포비아 문제는 이민족과 저소득층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두 개의 디아스포라라고 본다. 이는 특히 경제적인 문제와 같은 사회구조의 문제가 결정적인 원인일 텐데, 철학적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서경식
답을 드리려면 아홉 번이나 또 만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체화시키는 길이 있느냐. 어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모임에 다녀왔다. 경쟁 없는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꿈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쉽게는 오지 않는다. 그것이 저의 사고방식이다. 희망이나 나아가는 길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다 보면 길이 생긴다. 가고 싶다는 열망과 의지가 관건이다.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게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전형적인 수사이다. 일본에서는 식민지지배유산으로 살게 되었다는데, 이렇게 살 수 있냐. 귀화하라. 그게 현실성 있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이런 식으로 가면 2~30년 후에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지금도 살고 있다. 이들이 살아 있는 한 계속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조금씩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겠는가. 이 나라가 가장 크고 활발한 공동체,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천황제, 국민주의 사고의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자기분열 등의 고통들을 겪어왔으므로 일본하고 정 반대로 가장 열린 사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인 일일지라도. 우리역사, 우리민족, 우리 같은 공간 안의 사람들, 즉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출발해서 그런 공동체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
제노포비아 문제에 대해서 말하면, 외국인은 타자이고 저들은 국민이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계급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들 한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노동자 역시 교육, 환경, 과정 자체가 한 사람의 국민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탄생 과정은 국민의 탄생 과정과 결부돼 있다.
조선민족의 수난사 경험을 역설적으로 활용해서 시사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상봉
개별성, 욕망, 서로주체성을 가지고 말씀드리겠다. 집단행동이 어려워질 정도로 개별화된 사회가 맞다. 7~80년대에 보았던 저항이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하나, 시대가 바뀌었다. 당연히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함석헌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는데, 아직도 그 돌멩이를 쥐고 있으면 되겠느냐”
시대변화는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정신의 연대가 요구되는 단계가 왔다. 사실 과거의 집단행동은 상당히 즉자적이었다. 누르니까 떨치려고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즉자적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서로주체성은 만남이다. 인간 최고의 욕구는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나는 프로이트의 절대적 나르시시즘을 믿지 않는다. 자기에게 완전히 복귀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저의 최고의 욕망은 참된 만남이다.
사이비만남이 아니다. 만남 속에서 내가 희생, 소멸이 아니라 이 속에서 깨어서 치열하게 살아있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을 항상 통해야 한다.
내가 칭찬받지 않는다면 돈, 권력이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개별화될수록 참된 만남에 대한 욕구도 강해질 거라 믿는다.
구체적인 방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주체성은 수동성으로부터 능동성으로 나아가며 서로 공속한다. 수동성이란 같이 고통을 나눠야 타인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이 싸워야 한다. 이것은 함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개별적 주체는 서로주체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경식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면서 집단의식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노동자, 지역, 재일조선인 역시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의 특징이다. 성공회대에서 같이 노래 부를 때 나는 어색했다. 민족, 지역, 계급의 모든 집단성과 거리가 있지만, 주변화돼 있으면서도 사회에 의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해소해 왔다. 모두가 디아스포라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제까지의 집단성의 환상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집단성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이다.
독자5
고통의 공감이나 낮은 수준의 동감, 연대라는 실천성으로 과연 가게 할 수 있는가. 고통이라는 것이 사람을 만나게 하는 동력이 되지만, 고통을 경험한 자와 그것을 들은 자는 완전히 만날 수 없는 게 아닌가.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의 동감이란 차라리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는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입장을 동시에 통합할 수는 있었을까. 이것이 통합되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닌가.
김상봉
제가 레비에 대해 가한 비판의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제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둔감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근저에 놓인 생각들은 저항의 중요성이었다.
광주항쟁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함께 총질도 하고 저항하고 싸우다가 죽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의미에서 르상티망에 갇혀 있지 않은 존재다. 이 경험은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서경식
이 부분에서 혈압 많이 올렸다.(웃음)
고통의 공감. 타자의 고통에 참여하고 공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프리모 레비가 던진 메시지다.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라는 에세이에 이 내용이 나온다. 인간으로서의 아포리아이다.
강제노동을 하던 무더운 날씨의 어느 날에 한 사람이 수도관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만 그것을 향유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수인들에게 알리면 금방 없어지기 때문이다.
알베르토라는 사람이 이 수도관의 존재를 알게 되고 둘이 같이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누군가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이 살아남았다.
서로 기쁨을 나누다가 목격자가 그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는 남아서 질문을 해야 한다.
마지막 에세이에서 레비는 “진짜 피해자는 모두 죽고 없다”고 증언했다.
5.18 현장, 제주4.3 현장은 인간성의 추하고 약한 모습을 보고, 이런 모습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 앞에 있다.
가해자에 대해서 레비가 분석하고 써야 했다. 아포리아 이해. 모든 것을 과학적 합리성으로 이해하려는 욕구 있다. 인간의 상상으로 훨씬 잔혹하고 괴물같은 사람, 선량한 시민도 그런 모습 보이는 데 이해할 수 있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 ‘이해’에는 용서가 스며 있다. <이해와 용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레비는 이 문제를 우리에게 던졌다.
독자6
새 정부에 관한 견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새 정부가 우리 사회의 모순성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새 정부가 걱정이 아니고 새 정부를 걱정하는 내가 오히려 걱정이다. 새 정부는 뻔하고 이미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돼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상징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이고 하나는 기독교이다. 이 두 상징은 전 지구적으로 공속하는 데,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함석헌은 악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떼는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살이 죽어서 나온 것이며, 악은 내가 나의 할 일을 다 한 후에 나온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은 좋은 말이지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상, 조직, 사람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사상이 있느냐? 없다. 우리 시대의 돌파구를 맑스, 공자, 예수, 헤겔에서 찾겠느냐. 이는 완벽하게 제로(0)이다. 지금이야말로 출발선에 섰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는 나 자신이 문제다. 조직은 사상의 정수이어야 한다. 그리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개별적인 만남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정당이라는 집이 아니라 만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너에게 씨알로 거듭나는 방법이 아니라 이 나라 민중이 정신을 차려도 현재 대안이 없다. 나는 아직 역사에 대해 절망한 자격이 없다. 어떤 일을 하지 않은 지식인이 냉소할 자격은 없는 거다. 그래서 나는 웅크리고 앉아 있다. 이하 생략이다.
서경식
요미우리 신문이 조사한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인의 93%가 자기 나라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일본은 현재 최대의 양극화이며, 자살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연간 1~3만명이다. 강간, 강도사건은 더욱 늘어난다.
설령 천국이라도 자기 나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런 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완전히 신자유주의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
독자7
요즘 철학 공부하다 보면 진리 다 해체돼서 뭘 근거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 정신저으로 나사 움켜쥘 수 있는 가치, 희망이 없는데 자꾸 희망을 찾으려 하시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인위적이고 당위적인 거 아닌가. 희망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당위와 억지가 아닌가 말이다.
김상봉
그런 질문 안 나오면 서운할 뻔했다. (웃음) 그런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치열하게 되묻는다. 어떤 경우든 역사에서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희망이 없는 철저한 배신의 시대이다. 불철저하게 절망하는 자의 특징이 도덕, 윤리로 절망하는 사람이다. 그런 거 원래 없다. 희망, 의미 자꾸 찾으려 하지 마라. 그것은 인간에게 꼬리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신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빛이 있으라고 말한 것처럼 희망을 끌어내려는 것이 사람이다. 함석헌이 아무 뜻도 없는 조선의 역사에서 뜻을 찾으려 시도했던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최고의 단계에서 발견해야 한다. 밑바닥은 다 똑같다. 어떤 역사가 보여주는 최고봉 같은 것이 있다. 역사는 5.18이라고 생각하고, 인물은 함석헌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최고의 지성들이 있다. 1930년대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사>라는 책을 썼다.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안 본다. 끊임없이 다른 곳에 가서 꽃을 꺾어다가 우리 집 꽃밭을 어지럽히고 있다.
90년대에 철학 스타가 사라진 까닭이 무엇인가. 수입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굉장히 처져 있다. 역사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20세기 역사.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읽어봐라. 고통이 깊었던 것처럼 단련이 깊다.
함석헌이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믿어야 한다. 신을 믿는 것은 아무나 하지만,
마주선 너를 믿고 나를 믿는 것이 진짜다.”
2. 1월 17일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인사회) 강연 - 서경식
유대인 시인 파울 체란. 동유럽 소도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모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그의 부모는 죽임을 당했고 그 자신도 강제노동에 처해졌다. 그 때문에 “적의 언어로 시를 쓰다니”라는 비난을 당한 적도 있다. 전쟁 뒤 파리에 흘러든 그는 거기서 주위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독일어로 계속 시를 썼고, 나중에 독일 브레멘 문학상을 받았다.
나치즘 역사에 둔감한 독일인들과의 접촉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친 나치 전력이 있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면회 신청도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 교과서 게재 역시 거절했는데, 그것은 독일인들에게 변명의 근거를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언어밖에 없었다. 첼란이, 자신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투병 통신’과 같은 것이라고 얘기한다. 고도에 표류한 사람이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흘려보내는 통신이다. 누구한테 가 닿을지 모르고,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 하더라도 몇 년 뒤일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거는 것, 그것이 ‘투병 통신’이다.
출판이라는 작업은 깨지기 쉬운 조그마한 유리병이다. ‘유리병’이 있어야 인간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글쓰고, 출판계에서 일하는 여러분은 투병통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71년 일본으로 감. 일본에서 거의 일본어만 보았다. 창작과 비평의 논문을 인용한 논문을 썼는데, 창비 창간사였다.
창비의 창간사는 호평성으로의 통로이다. 창비를 창간하며 호평성으로의 통로를 연다(백낙청) 어둡고 깜깜한 구석에 살고 있으면서도 호평성으로 나아가는 활로를 열어야 한다.
호평성 : 일본 기토 슈이치라는 인문주의자/휴머니스트는 90이 넘었다. <교양의 재생을 위해>라는 책이 생각나는데, 1940년 일본의 가장 험악한 군국주의 때는 대학까지 점령당했다. 그래도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던 교수들도 대동아경영을 얘기하던 시대에 어떻게 정기를 지켜낼 수 있었는가 하는 감탄이 든다. 그는 아주 고독하게 양심을 지켜냈다.
근대적인 분위기에 반발하고 도피하려고 프랑스에 간 게 아니다. 그러기에 너무 프랑스 문학을 뚫고 일본 사회의 모순을 철저히 꿰뚫었다. 크고 넓은 역사 속에서 주시하려 했으며 시리우스별처럼 외롭고 높은 위치에서 고독하더라도 그 상황을 겸허히 수용하였다.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이성> 넓은 시야 때문에 자신들이 갇혀 있는 세상을 버틸 수 있었다.
프리모 레비
600명 주 생존자의 비율은 3~4명이다. 목숨을 연명한 인간의 유형
정치적 독립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 살아남았다. 현실을 대처할 바깥 공간이 있다. 내세, 공산주의, 유토피아, 역사의 규정성의 하나의 과제. 반드시 도달할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에게로 살아 돌아가 증언하겠다는 의지가 그를 살렸다고 회고했다. 외부가 있다. 인간이 있을 때 특징이 없다는 기대. 프리모 레비는 20년 전 자살. 몰후 20기년 기념 논문은 세계 15곳에서 기고되었다. 출판 부수는 500부에 불과하다. 출판도 어렵지만, 20년이라는 긴 시야, 1세기라는 긴 시야. 르네상스라는 긴 시야. 유럽에서는 일본이라는 곳. 프리모 레비의 투쟁, 동아시아의 투쟁. 일본인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애를 이해하는 현주소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인간성/지식의 단편화
선배 여러분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고 지켜진 유산 때문에 지적인 맥락으로 보편성과 깊이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보편적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한국에 살아보고 느낀 것은 그래도 아직까지 좋은 독서문화가 남아 있다. 하지만 아주 빨리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최근 신자유주의 거치며 6~70년대의 지적 유산 소멸을 경험했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모습이 꼭 그러하다.
젊은이의 지식과 교양에 대한 냉소주의가 일본에서는 심각하다. 자신들의 아버지, 교수, 회사 관리, 이사 들이 일본의 식민주의 민주화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투쟁했던 그를 스스로가 냉소하는 데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덕분에 자가용, 집 사고 아이를 낳았다. 자기변명만 하는 것이 일본사회의 현주소다. 우리나라 민주화 세대, 시민혁명 영광스런 역사의 5~60대 세대는 정신 차리고 살지 않으면 비슷한 냉소주의에 빠진다.
90년대 중반 사회당-자민당 연합정부가 들어서서 사실상 일본사회가 이렇게 됐다. 처음으로 집권하고 나서 투쟁가들이 장관이 되고 정치인이 되고 그 뒤에 바로 집권 실패했다.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과 아주 같다. OECD 발표 학력 수준이 세계 2위이다. 1위는 핀란드이다. 그런데 두 나라의 교육방식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교과서 얇은 것 바뀌고 교육을 모두 교사들에게 맡겼다. 그야말로 자율이다. 핀란드에는 학원이 없다.
그 결과 자발적으로 사유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문교부 장관은 40대 여성이다. 대학 다니지 않은 노동조합 출신이다. 너무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이상’ 바깥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 출판계의 소명이다. 즉 ‘바깥 세계의 삶’이다. 이렇게 안 살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줄 필요가 있다.
자기 스스로가 정보를 차단하는 것도 문제다. 욕(欲) 아우슈비츠이다. 신입생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서 물었다. 여행 다니는 외국, 산, 바닷가 등을 기대하지만, 80%가 자기 집 자기 방 혼자 인터넷을 보고 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이것이 인터넷 시대의 수인의 모습이다. 여기서 해방하려면 출판사의 힘 필요하다. 인터넷과 싸워야 한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다. 인터넷은 이미 세계가 아니라 감옥이 되었다.
해방직후 80년대 막 반공시대에 지적인 공백기가 있었다. 이 시기가 너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젊은이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지적이 재산이 없다.
일본은 맑스주의 등 지적인 유산이 대단히 많다. 사회 변혁 시 이것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그들의 유산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유산이다. 적극적으로 이것을 이용해야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 신문기자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반전적인 기사를 많이 썼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역사를 돌이켜 봐야 한다. 지적인 공백을 앞으로 넘어가야 하는 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모든 지성인들이 힘을 합해서 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대영 박물관의 지적인 유산 역시 우리 것이므로 우리가 이용해야 한다. 우리 것을 빼앗아 기록한 것이므로 우리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층은 무척 얕다. 그런 사람들과 합심해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너무 산발적으로 번역되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지적인 산물의 맥락과 반박 등을 아울러 소개해야 효용 가치가 증대된다. 어떤 편집자가 좋으니 찔끔찔끔 소개하는 우발성, 산발성을 극복해야 한다. 개방되었을 때 지식인이 공부하지 않는 한 나쁜 것만 들어온다.
애를 쓰고 노력해야 좋은 것이 들어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