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대한민국 헌법 제21조)
나의 언론운동 소회
1년이 안 되는 시간이지만 전 시사저널 기자(현재의 <시사IN> 기자)들과 독자들 틈에 들어가 언론운동을 하는 동안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2007년을 내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변화가 있었다.
지금도 교육, 법률, 언론, 문화 이 네 가지가 나아진다면 대한민국에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고 믿으며, 그 중에서 나는 '교육'이라는 키워드에 매진한다는 초심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여러 갈래로 갈려 있어서 단지 교육의 토양 위에서만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언로(言路)라고 해서 수많은 주체와 관점이 부딪쳐서 격렬한 토론과 감시가 오가는 생생한 현장이다. 하지만 시사저널 언론운동을 하면서 우리 시대의 언론은 단지 언론사와 자본에 상당 부분 종속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와 언론사가 오롯하게 언론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시사저널 언론운동에 독자가 주된 주체로 급부상했듯이 언론에는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출판계'에 들어갔다. 출판사가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출판사는 왜곡된 출판구조에 일정 부분 봉사할 수밖에 없고 그 구조 자체를 깨뜨리는 데에는 그만큼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관심사가 언론의 독자에서 출판의 독자로 넘어간 것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헌법 21조에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묶어서 읽도록 기록되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전까지 반쪽의 자유(언론자유)를 외쳤다고 생각한다.
언론과 출판, 서로의 문을 두드리다
출판이 출판의 영역에 갇혀 있고, 언론이 언론의 영역에 갇혀 있는 것만큼 보기 싫은 것은 없다. 하지만 최근 닫혀있던 두 경계에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경향신문사가 기획특집기사를 출판화한 일과 시사저널 기자들이 만든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출판한 일을 무척 중요한 사건으로 본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비록 파업 자금을 위해 급히 출판되었다는 한계는 있지만) 경향신문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다시피 기획연재가 가장 탄탄한 신문 중의 하나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취재하고 연재한 기사는 애초부터 출판을 계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특집기사로서도 책으로서도 지적할 점이 별로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언론과 출판이 서로의 닫힌 문을 줄기차게 두드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출판과 언론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출판은 시의성을 좇지 못한다는 데서, 언론은 논의의 깊이와 형식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둘째, 독자들의 요구가 매우 까다롭고 심도 있다는 데 있다. 언론의 독자는 출판의 독자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이유는 앞서 밝힌 언론과 출판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꾸 이동한다. 독자는 더 이상 의도적인 언론 호도와 왜곡을 받아줄 만큼 어리석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셋째, 언론과 출판은 사회적 문제제기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있으며 의제를 교환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라는 단행본은 <김앤장>에 대한 취재의 방향과 문제점을 포함한 의제를 언론에 제시해 주었다. 언론 역시 정체된 출판계에 활력과 자극을 줄 능력과 사명을 모두 갖고 있다.
일단 출판으로 성립되면 독자들의 검증을 받으면서 쇄를 거듭할 수 있다. 리영희 선생의 저작집은 언론과 출판에 골고루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선생은 3월 27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 책이 팔린다는 것은 이 사회가 아직도 내가 매진하는 것에 대해 부족하다는 뜻”이라며 “역설적으로 내 책이 안 팔린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와 같이 언론에서 제기된 최초의 문제는 출판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씩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출판은 언론에게 문제제기의 시발을 제공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언론답지 않은 언론이 활보를 치는 현실에서는 '출판'이라는 검증의 장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의제가 채택되어야 한다. 언론의 출판화 과정 속에서 쓸데없는 문제제기는 모두 걸러질 수 있다.
사회적 독서
이것이 언론과 출판이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땅히 독자들은 '사회적 독서'로 화답할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적 독서를 한다는 것은 '불편한 독서'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편한 일이 많은 시대를 만난 독자가 불편하지 않고 편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책이나 신문 앞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불편한 독서'를 계속 하기로 했다.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나는 도서정보 유통매체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독자들과 함께 '경제민주화 읽기'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라는 화두가 '선진화 논리'에 심각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반드시 '경제민주화'는 언론계와 출판계 모두의 의제가 되었을 것이고, 출판이라는 문을 통해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후로 현재까지 좋은 책들이 독자들을 찾아오고 있다.



첫 번째 책은 <한국경제 새판짜기>(미들하우스)이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주요 경제정책을 입안한 경제학자와 경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경제학자, 대기업 전문기사 들이 좌담의 형식을 통해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점을 구체적인 실증 사례로 버무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분량 대부분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조건'보다는 '경제민주화를 방해하는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올인하고 있던 '경제'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는데, 오히려 '실패'라는 토대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신선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도서정보 유통매체 리더스가이드에서 독자들과 함께 서평단을 구성해서 책을 읽고 함께 리뷰를 썼다.
두 번째 책은 <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이다. '김앤장'은 IMF 이후에 국내의 알짜 기업들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는 법률자문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일명 '법률 전문 거간꾼 집단'인데, '변호사'라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인권을 지키는 사람들이 이런 존재근거를 배반하는 행태를 일삼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책이 바로 <벌률사무소 김앤장>이다. 이 책은 단지 리뷰어를 모아놓고 리뷰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와 직접 만나 '김앤장 문제'의 거대한 뿌리와 사회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2008년 3월 18일 오마이뉴스 기사"<법률사무소 김앤장> 공저자 장화식씨와 함께한 토론회")
세 번째 책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북)이다. 이 책은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일곱 팀을 다루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상조 교수, 노회찬, 심상정 의원, 이상호 MBC 기자,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그들이다. <김앤장>과 마찬가지로 탐사보도의 틀을 출판에 맞췄기 때문에 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도 있고, 시의성을 잃었거나 깊이와 천착에 한계가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도서포털에서 ‘삼성’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읽을 만한 몇 안 되는 텍스트가 나왔다는 점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레시안 기자들과 게릴라 몇 팀, 그리고 독자들과 만나 5월 초, 삼성특검이 최종보고서를 발표할 즈음에 맞춰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한다.취재의 어려움이나 삼성 사건에 담겨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한다.
출판사와 언론사가 경제민주화 의제에 호응해 좋은 책을 출간해준 덕분에 독자들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책으로 만날 기회를 얻었다. 사회적 독서의 정점이며 언론ㆍ출판의 연대의 이와 같은 모델이 자꾸 생겨나 광고탄압과 고소고발로 억압된 언론계와 처세서, 재테크 등 신자유주의 책에 가위눌린 출판계가 함께 활로를 모색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시사저널 사태라는 동굴을 뚫고 탄생한 <시사IN>이 한주의 기사를 넘어 단행본으로 출간될 수 있는 중장기 기획을 고민하여 독자들이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